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편집장의 편지

우리의 사전(辭典)에는 전쟁(戰爭)이라는 단어가 있는가?

글 :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20세기 역사에는 전쟁을 결심한 지도자가 여럿 등장한다. 독일 총통 히틀러, 일본 왕 히로히토(裕仁), 중국 주석 마오쩌둥(毛澤東), 소련 공산당 서기장 스탈린,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델라노 루스벨트 등이다. 히틀러, 히로히토가 일으킨 제2차 세계대전이나 김일성(金日成)을 도운 스탈린의 6·25는 악의(惡意)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루스벨트에게 전쟁은 일본의 진주만 선제공격에 대한 불가피한 선택이었고 마오쩌둥이 6·25 때 참전하면서 내세운 명분은 항미원조(抗美援朝)였다. 북한이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 직후 연전연패해 압록강까지 후퇴하자 유엔군이 만주를 침공할 것을 우려했다고 하지만 훗날 소련의 지침에 따른 북한 돕기였던 것으로 판명됐다.
 
  북한이 수소폭탄 실험을 하면서 한반도에 짙은 전운(戰雲)이 깔리고 있다. 언제 전쟁이 시작돼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상황인데 우리 지도자와 국민들만 그것을 모른다.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전쟁은 없을 것’이라는 헛된 망상(妄想)에 사로잡힌 것인지, 딴 나라 이야기처럼 여기는 무관심 때문인지 알 수가 없다.
 
  세 가지 이유 중 하나인지, 세 가지 다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정세(情勢)를 종합해 보면 남북한 간에 전쟁이 시작되면 한국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참패하고 말 것이라는 것은 자명해 보인다. 한국은 거란족의 요(遼), 탕구트족의 서하(西夏), 여진족의 금(金)에 시달리다 끝내 몽고의 원(元)에 망한 송(宋)보다 상황이 더 한심하기 때문이다.
 
  전쟁은 국력을 다한 싸움이기에 무엇보다 목숨을 내놓을 각오를 해야 한다. 국민들이 하나뿐인 목숨을 걸려면 지도자가 그럴 만한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 우리의 사전(辭典)에 왜 전쟁을 해야 하고 왜 이겨야 하는지가 명확하게 규정되고 설득하지 못한다면 국민들은 난파선의 쥐떼처럼 우왕좌왕하다 몰살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정치지도자 가운데 생(生)의 사전 속에 전쟁이란 단어가 없기에 극단적인 상황과 맞닥쳤을 때 이겨 낼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국력이 아무리 북한보다 월등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다. 국력이 전쟁에서 위력을 발휘하려면 국민의 신념이라는 도화선에 불이 붙어야 하기 때문이다.
 
  1940년 5월 10일 윈스턴 처칠이 영국의 총리로 취임했을 때 독일 히틀러는 폴란드·노르웨이·스웨덴·덴마크를 점령한 뒤였다.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의 사자는 이 정도 포식했으면 길게 하품을 하고 단잠을 즐겼을 텐데 아귀(餓鬼) 같은 히틀러는 그날 프랑스 침공을 시작했다. 5월 15일 처칠에게 비극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내각 구성도 채 마치지 못한 처칠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프랑스 총리이자 친구였던 폴 레노였다. 레노는 절규했다. “졌습니다. 전투에서 패했어요!(We are defeated, we have lost the battle!)” 다음 날 프랑스 파리로 간 처칠이 “예비부대가 어디 있느냐”고 묻자 가믈랭 영불연합군 총사령관은 어깨를 으쓱하며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몇 달 동안 영국과 처칠은 촛불 앞의 등불 같은 신세가 돼 근근이 버틴다. 덩케르크 해변에서 영국과 프랑스군 34만여 명이 독일군에 포위된 것이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처칠은 1940년 5월 28일부터 6월 4일까지 영국군 22만6000명, 프랑스군 11만2000명을 철수시켰다.
 
  이 철수작전은 세계사에 3대 철수작전으로 유명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오늘날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게 한 흥남철수작전과 미 해병대가 영하 40도의 혹독한 추위 속에서 중공군의 천라지망(天羅地網)을 뚫고 성공적으로 후퇴한 장진호 전투처럼 덩케르크 철수작전도 숱한 감동을 자아냈지만 그것은 단순한 철수작전이 아니었다.
 
  34만여 명의 영불연합군은 이제 잉글랜드를 지키는 힘이 돼 독일의 영국상륙 작전 가능성을 완전히 사라지게 만든 것이다. 육군과 해군으로 안 되자 독일은 영국 본토에 대공습(大空襲)을 시작했다. 이때 처칠은 다시 한번 지도자가 갖춰야 할 덕목, 어떤 위기 상황에도 굴하지 않는 침착함으로 영국 국민들의 전의(戰意)를 북돋았다.
 
  처칠은 전쟁이 진행 중인 곳이라면 어디든 방문하려 했는데 독일의 공습이 한창일 때도 그랬다. 그는 런던과 브리스톨의 공습지역을 찾았으며 독일군의 폭격기가 런던 하늘을 새까맣게 덮을 때 지붕에 올라가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처칠은 국민들에게 용기를 줬다. 1940년 8월 20일 행한 처칠의 연설은 지금도 유명하다.
 
  “인류의 전쟁 역사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소수의 사람들에게 빚을 진 적은 없었다.”
 
  나는 우리가 독일군의 런던 대공습 때처럼 북한의 미사일이 서울 상공을 뒤덮고 북한의 장사정포가 쏘아 댄 대포알이 서울의 전역을 강타해 아파트와 건물이 붕괴되는 상황을 내일 혹은 내주 혹은 내달 맞을지도 모르다고 생각한다.
 
  처칠은 이런 절대 열세의 상황을 견뎌 내면서 가느다랗게 찾아온 승기(勝機)를 마침내 거머쥐게 된다. 만일 처칠이 비관적인 성격의 소유자였거나 매사에 짜증을 냈거나 오늘과 내일 말을 다르게 하는, 오락가락하거나 좌고우면을 일삼는 베르테르 같은 성품이었다면 오늘날 유럽 전역은 나치 히틀러의 후예들 차지가 됐을 것이다.
 
  인터넷에는 처칠의 성격을 보여주는 유머가 널려 있는데 몇 가지를 소개해 본다. 미국을 방문한 처칠의 연설에 인파가 몰리자 한 여성이 말했다. “자리가 미어터지니 얼마나 기분 좋으세요?” 처칠이 답했다. “연설이 아니라 교수형을 당할 때라면 지금보다 최소 두 배 이상의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라는 것을 전 늘 기억하지요.” 이것은 처칠이 최악과 최상에 대비하는 유연한 사고의 소유자라는 것을 보여준다.
 
  어느날 처칠의 비서가 일간지를 들고 오더니 흥분했다. 처칠을 시거를 문 불독으로 묘사한 만평(漫評)을 그 신문이 게재한 것이다. 처칠이 말했다. “기가 막히게 잘 그렸군. 벽에 있는 내 초상화보다 훨씬 나를 닮았어. 당장 저 초상화를 떼고 이 그림을 오려 붙이게.” 이것은 처칠이 비판언론도 수용할 줄 아는 포용성을 보여준다.
 
  2차 대전 초기 미국으로 건너간 처칠이 호텔에서 목욕을 하고 있을 때 루스벨트 대통령이 나타났다. 공교롭게도 허리에 감고 있던 수건이 스르르 내려가 처칠은 알몸이 됐다. 난처해하는 정장 차림의 루스벨트에게 처칠은 이렇게 말했다. “각하, 보시다시피 우리 영국은 미국과 미국 대통령에게 아무 것도 감추는 것이 없습니다.”
 
  이것은 처칠이 상대국 지도자와 어떻게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여는지를 아는 정치인임을 보여준다. 끝으로 처칠은 영국 의회 사상 첫 여성 의원이 된 에스터 부인과 매우 적대적이었다. 처칠이 여성의 참정권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에스터 부인이 우연히 만난 처칠에게 독설(毒舌)을 퍼부었다.
 
  “내가 만약 당신의 아내라면 서슴지 않고 당신이 마실 커피에 독을 타겠어요.” 이때 처칠은 태연히 답했다. “내가 만약 당신의 남편이라면 서슴지 않고 그 커피를 마시겠소.” 이것은 처칠이 상대 당(黨)이라도 최소한의 예의와 유머를 잃지 않는 상식적인 인물임을 보여준다. 그런 지도자를 만났기에 영국은 이길 수 있었다.
 
  윈스턴 처칠이 남긴 일화(逸話)에는 숱한 과장이 가미됐을 것이다. 하지만 당면한 위기에 둔감한 지도자, 최악과 최상의 상황에 대비하지 못하고 한쪽만 바라보는 외눈박이 지도자, 비판언론에 발끈하는 지도자, 우방국 지도자와 친해지지 못하고 의심만 사는 지도자, 상대 정당을 박멸할 대상으로만 보는 지도자들만 그득한 우리 처지에는 정말 가지고 싶은 부러운 지도자임에 틀림없다.
 
  대한민국은 이제 물러설래야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을 맞고 있다. 북한은 끝장을 볼래, 항복할래 하는 양자택일을 강요하고 있고 역사적으로 한민족을 가장 괴롭혀 온 중국은 북한을 편들고 한국을 골탕먹이고 있으며 일본은 이 기회에 자기들의 최대 숙원인 무장화을 꿈꾸고 있다. 거기에 대한민국의 유일한 구명줄인 미국마저 우리를 의심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자초한 일이다. 20년 전, 10년 전, 아니면 몇 년 전 그 여러 번 맞은 고비에서 우리가 전쟁을 각오하는 결연한 자세로 일관했다면 지금 같은 어처구니없는 풍경 속에 서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단 한 번의 기회가 남아 있다. 그 기회를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2건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Lucky Guy    (2017-09-25)     수정   삭제 찬성 : 5   반대 : 0
요즘 볼게 없어서 여기만 들어 오는데 ..,

문편집장님 힘 내십시요
  채순실    (2017-09-22)     수정   삭제 찬성 : 0   반대 : 1
이진x 기자와 인터뷰를 한 사람 어디 갔나

201711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정기구독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