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편집장의 편지

역사에 길이 남을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며

글 :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남평 문(文)씨는 단일 본이다.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에는 시조 문다성(文多省)에 얽힌 설화가 전해지고 있으며 그가 태어났다는 문암(文巖)이라는 바위가 있다. 백제 개로왕 때인 472년, 남평 동쪽에 장자지란 연못이 있었고 그 못 가에 천길 높이의 바위가 솟아 있었다.
 
  하루는 왕이 그 바위 아래서 놀고 있는데 갑자기 바위에 오색구름이 감돌며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신기하게 여긴 왕이 사다리를 타고 바위 위에 올라가 보니 돌로 된 함 속에 피부가 옥설(玉雪)같이 맑고 용모가 아름다운 갓난아이가 있어 궁(宮)으로 데려와 길렀다.
 
  아이가 나이 5세에 문장에 통달하고 무재(武才)가 뛰어났으며 사물의 이치마저 스스로 깨달았다. 이에 왕은 아이의 성(姓)을 문으로 하고 이름을 다성이라 칭했다. 문다성은 이후 고려 개국 벽상공신 남평백(南平伯)에 봉해지고 무성(武成)의 시호를 받았으며 98세까지 살았다.
 
  훗날 남평 문씨 대종회에서는 백제 개로왕 때 아이가 400년 뒤인 고려 개국 공신이 됐다는 게 꺼림칙했는지 탄생 연도를 통일신라 말로 정정했다. 기록에 따르면 남평 문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38명을 배출했다는데 이 가문(家門)의 역사를 지켜보게 된 것은 내가 문씨여서만은 아니다.
 
  초등학교 때인가 어느 선생님이 문씨 성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문익점 선생을 ‘절도범’이라고 칭하는 것이었다. 문익점 선생은 중국에서 목화를 가져와 헐벗은 한민족을 따뜻하게 만들어 준 인물인데, 어찌된 일인지 그 선생님은 그렇게 표현했다. 농담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이후 등장한 문씨들은 하나같이 흉악범 아니면 과격한 인물 일색이었다. 1973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강도 사건이 구로공단 카빈강도 사건이었다. 총기 휴대를 금지한 당시에 주범 문도석은 교도소 동기 이종대와 함께 예비군 무기고에서 군용 M-2 카빈 세 자루를 훔쳤다.
 
  문도석 일당은 이 총을 들고 구로공단에서 직원들의 월급을 찾아오던 경리사원을 살해하고 돈을 빼앗아 달아났다. 하필이면 사건 당일, 북한의 적십자회담 대표단 일행이 서울을 방문했다. 체제경쟁이 극심했던 상황에 비춰 보면 남측은 전전긍긍했고 북측은 흥미진진했을 것이 뻔했다.
 
  문도석은 사건 발생 1년 뒤인 1974년 7월 25일 어린 아들을 죽이고 자살했다. 감독 이장호는 이 사건을 소재로 〈그들은 태양을 쏘았다〉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한탕주의’와 ‘물질만능주의’에 물든 한국사회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려고 했다는 게 감독의 변(辯)이었는데 흥행엔 실패했다.
 
  문도석이 준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1974년 8월 15일 나는 서울 마포의 집에서 흑백TV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탕탕’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손에 신문지를 든 키 큰 남자가 뛰쳐나와 나를 향해 총을 겨누는 것이었다. 방금 전까지 연설을 하던 고 박정희 대통령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훗날 알고 보니 나를 향해 권총을 뽑은 사람이 ‘피스톨 박’으로 불리던 고 박종규 대통령 경호실장이었다. 그날 저녁 육영수 여사가 대통령 암살 미수범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는데 하필 그 흉악범이 문세광(文世光)이었다. 문씨들은 그날부터 얼굴을 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 뒤로도 문씨들은 계속 뉴스에 등장했다. 1982년 3월 18일 문부식이라는 대학생은 광주항쟁의 진실을 밝히겠다며 부산에 있는 미국문화원에 불을 질렀다. 1986년에는 경기도 부천경찰서에 근무하던 문귀동이라는 경관(警官)이 위장취업한 대학생을 성고문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문씨들은 그후에도 쉬지 않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문익환·문동환 목사와 문익환 목사의 아들인 배우 문성근, 문정현·문규현 신부 등이 그들이다. 그들의 행적에 대한 평가는 유보하겠다. 지난해 말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자 마침내 포털 사이트에는 괴상한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박사모와 박대모, 즉 박근혜 대통령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모임이라는 단체에서 ‘남평 문씨 빨갱이 설(說)’이라는 것을 대대적으로 유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개중에는 광우병 파동 당시 어느 방송국 PD로 촛불집회 프로그램을 제작했다는 사람의 이름도 들어 있었다.
 
  그런데 문씨의 역사에 전환점이 찾아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것이다. 나는 문 대통령이 국가를 위해서뿐 아니라 문씨를 위해서도 제발 나라를 잘 지키고 경제를 살리며 국민을 고루 사랑하는 균형된 정책을 펴고 임기를 잘 마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그런 나의 희망 속에 한 가지 불안한 요소가 있다. 안보를 미국에 의지하는 대한민국 입장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아무리 선거 전에 여러 말을 했어도 한미동맹을 해칠 수는 없을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문 대통령은 그렇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나라가 대한민국임을 금세 알 것이다.
 
  대북관계도 새 대통령의 뜻대로 굴러갈 리 없다. 김정은은 할아버지 김일성과 아버지 김정일에게서 못된 유전자만 물려받은 인물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했다고 태도가 달라질 것이라고 믿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 당장 북한은 새 대통령 취임 1주일도 되지 않아 미사일을 쏘지 않았는가.
 
  아마 김정은은 새 대통령을 이명박이나 박근혜 전 대통령 못지않게 괴롭힐 궁리를 하고 있을 것이다. 한국과 미국을 이간질시키고 한국과 중국을 멀어지게 하고 한국과 일본을 골려 먹는 데서 쾌감을 찾는 게 북한이며, 북한의 목적은 대남 적화와 김씨 왕조 및 그 소수 추종자의 생존뿐이기 때문이다.
 
  경제도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것이어서 대통령 한 명의 힘으로 뭔가를 바꾸긴 힘들다. 복지도 재원(財源)이 뒷받침돼야 하니 하고 싶어도 자기 꿈을 다 펼칠 수 없을 것이다. 일자리 창출은 세계적인 경제학자들도 뾰족한 수가 없으니 젊은이들이나 노년층의 기분만 좋게 해 주는 선에서 그칠 것이다.
 
  내가 제일 불안해하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슬로건으로 내건 ‘적폐 청산’이라는 말이다. 적폐라는 것은 말 그대로 켜켜이 쌓인 폐단이라는 것인데 이것을 한꺼번에 청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적폐 자체가 좋든 싫든 대한민국이 살아온 역사인데 그걸 어떻게 바꾼다는 말인가.
 
  적폐 청산이라는 것은 과거 지향적이다. 우리는 작년 중반부터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과 대통령 탄핵사태로 국정(國政)이 거의 마비된 상태다. 새 대통령은 하루빨리 국정을 정상화시키고 20년 가까이 멈춘 나라의 성장동력에 다시 윤활유를 부어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겠다고 다짐해야 옳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 주변에 등장한 좌파 최고의 미남 조국 신임 청와대 민정수석의 입에서 ‘정윤회’라는 이름이 등장하고 있다. 이것은 새 정부가 보수를 절망케 한 정윤회·최순실 스캔들을 재점화(再點火)시켜, 선거기간 중 한 전직 총리가 본심을 털어놓았듯 보수를 궤멸시키겠다는 시도로 보인다.
 
  대통령의 의도와 관계없이 대통령을 앞세워 그렇게 해서 보수를 망가뜨리고 망신 줘서 영구히 집권할 플랜을 가동하겠다는 것 같다. 보수는 지금 구심점도 없어, 지금 이대로라면 그들 뜻대로 5년 후에도 정권을 되찾지 못할지 모른다. 그런데 정권을 잡았다고 이렇게 과거사만 내리 뒤진다면 그들이 정작 정권을 잡은 이유는 무엇인가.
 
  좌우를 막론하고 정치가들의 꿈은 국민을 편안하게 만들고 나라를 든든하게 지키는 일이 최우선 과제다. 그런 것은 등한히 한 채 우리가 보수세력 때문에 9년 동안 고생했고 자기들의 우상이었던 한 전직 대통령까지 자살로 몰아넣은 앙갚음을 하겠다고 달려든다면 나라는 순식간에 거덜 날 것이다.
 
  만일 이렇게 5년을 허송하다 임기를 마친다면 문재인 대통령을 보좌하는 측근들은 의무를 다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을지문덕 장군이 수나라 장수 우중문에게 보낸 시를 인용해 본다.
 
  神策究天文(신책구천문) 신통한 책략은 천문을 꿰뚫었고
  妙算窮地理(묘산궁지리) 오묘한 작전은 지리를 다했네.
  戰勝功旣高(전승공기고) 전쟁에서 이겨 공이 이미 높으니
  知足願云止(지족원운지) 만족한 줄 알고 그만두기를 바라노라.⊙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201711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정기구독

MAGAZINE 인기기사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