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편집장의 편지

언론(言論)의 난(亂)

글 :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1996년 9월 18일 스물여섯 명의 괴한(怪漢)이 강원도 안인진리 해변에 상륙했다. 안인진리는 관광객들이 해돋이를 보기 위해 자주 찾는 정동진과 지척이다. 이 검은 그림자들을 처음 발견한 이는 택시운전사였다. 그의 신고로 북한 잠수함이 바닷가 암초에 걸려 좌초했으며 거기 타고 있던 간첩들이 뭍으로 올라온 사실이 밝혀졌다.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의 특종은 《동아일보》에 돌아갔다. 스물여섯 명 가운데 북한으로 돌아간 한 명을 제외한 스물네 명은 집단 자살했거나 국군에 의해 사살됐는데 유일한 생존자 이광수의 절규하는 얼굴이 그야말로 대문짝만하게 그 신문 1면을 장식한 것이다. 당시 《동아일보》 기자는 강릉경찰서를 맡고 있었다.
 
  지금처럼 디지털카메라가 아닌 필름카메라를 혁대에 차고 있었는데 이광수가 경찰관에게 붙잡혀 들어오는 그 짧은 순간을 운 좋게 포착한 것이다. 당시 강릉경찰서에는 다른 기자들도 여럿 있었다. 그들이 눈앞에서 낙종(落種)한 것은 카메라를 가지고 있지 않았거나 카메라가 있었는데도 차 안에 두고 왔기 때문이다.
 
  기자의 특징은 특종에 미치고 낙종에는 광분한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그런 전통이 사라졌겠지만 당시 기자들은 남이 잔에 물을 따라 주면 마시지도 않았다. ‘물먹는다’는 말이 낙종과 같은 뜻이기 때문이다. 《동아일보》에 ‘물먹은’ 신문·방송들은 과연 집단 광분했고 일제히 언론계 용어로 ‘반까이’ 즉 만회에 나섰다.
 
  그 과정에서 무리한 취재와 오보(誤報)가 난무했다. 몇 가지 기억나는 것만 적어 본다. 첫 번째가 간첩들이 잠수함에 대형 방사포를 가지고 와 강릉시내를 포격하려 했다는 보도였다. 그 실물을 보기 전 영화 〈나바론의 대포〉에 나오는 초대형 대포를 연상했는데 눈앞에 있는 것은 임진왜란 때나 썼을 법한 녹슨 천자총통 같은 것이었다.
 
  두 번째가 강릉시내에서 시가전(市街戰)이 벌어졌다는 보도였다. 나는 그 현장을 보려 이 잡듯이 강릉시내를 돌아다녔지만 목격한 것은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노가리를 뜯는 군기 빠진 예비군들뿐이었다. 세 번째가 칠성산에서 사라진 3명의 간첩이 며칠째 모습을 보이지 않자 그들이 인천 앞바다까지 도주했다는 보도였다.
 
  그 기사를 쓴 기자는, 북한 간첩들은 초인적(超人的)인 체력의 소유자들로 하루에 몇십 km를 주파할 능력이 있으니 잠적한 그 며칠 동안 인천에 도달해 배를 훔쳐 타고 북한으로 넘어갔을 것이라고 했다. 얼마 후 반공소년 이승복의 집 근처 계방산에서 버섯을 따던 주민 세 명이 인천에 있을 것이라던 간첩들에게 사살된 사실이 밝혀졌다.
 
  인천 앞바다는커녕 코앞에 은신해 있었던 것이다. 최후의 간첩은 한참 행적이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자 추리소설가 코난 도일이나 애거사 크리스티, 《괴도 뤼팽》의 작가 모리스 르블랑도 두손 두발 다 들어 버릴 상상력의 소유자인 한국 기자들은 “간첩이 땅속에 은신해 있다가 추위를 못 견뎌 동사(凍死)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훗날 황장엽 선생이 귀순했을 때에야 그가 수류탄으로 휴전선 철조망을 까부수고 유유히 걸어서 북한으로 돌아가 ‘영웅칭호’를 받았음이 드러났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 역시 오보를 낸 적이 있다. 대간첩작전 중 처음 희생된 특전사령부 소속 중사가 사실은 아군의 오발에 희생됐는데 간첩 총에 맞아 죽었다고 쓴 것이다.
 
  중사의 죽음이 알려진 후 칠성산을 일곱 바퀴나 돌며 대간첩작전을 마치고 교대하기 위해 내려온 군인들을 붙잡고 상황을 묻고 통신 중사는 헬기에서 점프할 때 몇 번째로 뛰어내리느냐는 등 나름대로 취재는 열심히 했었다. 그러곤 ‘특전용사 칠성산에 지다’라는 울컥하는 제목의 희대의 명문장을 일필휘지 갈겨 댔던 것이다.
 
  반향은 컸다. 다음 날 모든 신문과 방송이 내 기사를 베꼈고 나는 마침내 이광수 사진 낙종으로 실추한 《조선일보》의 성가(聲價)를 되찾았다고 생각했다. 자부심은 몇 달 뒤 국방부가 발간한 《백서(白書)》로 깨졌다. 불과 한두 달 정도 ‘대특종’으로 대접받던 칠성산 기사는 수년간 후배들 술자리에서 조롱의 훌륭한 안줏감이 됐다.
 
  최태민·최순실 스캔들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로 이어진 최근의 사태에서 의미있는 특종을 한 것은 《TV조선》과 《한겨레》뿐이다. 지난 9월부터 10월 사이 두 매체에 ‘특종’을 빼앗긴 다른 매체들은 21년 전의 우리가 그랬듯 무리한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다. ‘무리’ 정도가 아니라 아예 추리소설급(小說級)도 있다.
 
  문제는 무리와 소설과 억측이 간첩을 쫓는 게 아니라 우리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쫓았고 탄핵심판대에 올렸다는 사실이다. 작년 11월부터 보수 인사들 사이에서 최태민·최순실 스캔들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가 ‘언론의 난(亂)’이라고 규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언론이 심각하게 자성해야 할 문제다.
 
  예를 들자면 한이 없겠으나 내가 읽은 기사 가운데 최악의 오보는 ‘세월호가 잠수함과 충돌해 침몰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기사다. 이 기사를 보도한 매체는 최순실이 사용한 태블릿PC를 입수했다고 보도해 작년 말 각종 상(賞)을 휩쓸었으나 지금은 ‘조작한 기사’라는 반론에 제대로 된 변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망각 증세가 심한 한국인이어서 기억하는 사람이 별로 없겠지만 ‘세월호가 잠수함과 충돌해 침몰했다’는 가설은 2년 전에도 제기됐다. 이 기사가 얼마나 엉터리인가는 포털 사이트에서 제원 등 몇 가지만 검색해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일단 대한민국 해군은 1300톤급 209급 잠수함 9척과 1800톤급 214급 6척을 가지고 있다.
 
  209잠수함은 길이가 56m고 높이가 5.5m다. 214급 잠수함은 그보다 더 커 길이가 65m이며 높이가 6.3m다. 세월호가 침몰한 맹골수도는 평균 수심이 37m이며 가장 깊은 곳이 50m고 우리나라 해역(海域) 가운데 가장 물살이 세며 암초가 많은 곳이다. 이곳에 높이 5.5m와 6.5m 잠수함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외부로 드러나지 않고 바닥의 암초에 걸려 선체가 파손되지 않으려면 거의 서커스급에 가까운 조종이 필요하다. 바닥으로부터 15m, 수면 밑으로 15m를 유지하며 남해에서 가장 센 물결을 헤쳐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잠수함이 이럴진대 한국 해군보다 큰 미국 잠수함이 맹골수도에서 잠항하고 있을 리는 더더욱 만무하다.
 
  이것은 수학(數學)이 아닌 산수(算數)의 문제다. 그런데도 이런 억측을 제기하고 그것을 큰 특종인 양 보도한 매체는 괴상한 물체가 레이더에 잡혔다면서 해군에 대고 “그게 무엇인지 공개하지 않으면 잠수함 충돌설이 사실이라는 반증”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음모론자들이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철마다 써먹는 수법이다.
 
  광우병 사태·다이빙 벨 등 국민을 잔뜩 현혹하다가 실망시킨 일련의 허무맹랑 보도 시리즈를 보면 패턴이 있다. 음모론 제기→ 사실 공개 촉구→ 못믿겠다는 식으로 물고 늘어지는 것이다. 자기 주장이 틀렸는데 왜 ‘(무식한) 나를 납득 못 시키느냐’고 생떼를 부리는 것이다. 이런 패턴이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먹히는 이유가 있다.
 
  한국인들은 생래적으로 정부를 못 믿고 국군(國軍)을 불신하며 어떤 주장이 억지나 왜곡으로 밝혀져도 응징하지 못하고 잊기 때문이다. 이런 엉터리 주장을 펴 국민을 속이고 혈세(血稅)를 낭비하게 만든 언론매체 중 한 곳이라도 망한 선례가 있었다면, ‘미국 쇠고기 먹으면 뇌 송송 구멍 탁’이 된다는 코미디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과적(過積)과 미숙련 선원들의 실수와 ‘문을 열고 바다로 뛰어들라’고 방송하지 않고 자기들 몸만 내뺀 선원들의 이기심 때문에 세월호 비극이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기자들이 ‘대통령의 7시간’에 집착하는지 알 수가 없다.
 
  7시간의 행적이 밝혀지면 차디찬 바닷속에 빠진 아이들이 살아 돌아올 것이며 대통령이 머리만 매만지지 않았으면 전원 구출됐을 것이라고 정말 믿는 것인가? 아니면 대통령이 맹골수도로 달려가 심청이처럼 뛰어들어 박태환 같은 신기(神技)의 수영 실력을 발휘하며 학생들을 구하다 지쳐 물에 빠져 죽었어야 옳았다는 말인가?
 
  대통령이 최순실이라는 몸종의 농간에 허망한 짓을 했다면 그것은 단죄받거나 무능하다는 질책을 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그것과 ‘7시간’은 별개다. 이렇게 구분할 것을 구분하지 못하다 보니 언론이 본연의 사명을 망각하고 희대의 대하 소설로 나라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괴물(怪物)’처럼 변한 것이 아닌가.⊙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1708

지난호
별책부록
정기구독
프리미엄결제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