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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역사

중국의 시안(西安)사변, 12・12사태, 진주만 기습, 갑신정변, 존 레넌 암살…

12월 12일, 유엔이 대한민국을 유일(唯一)합법정부로 승인하다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ironheel@chosun.com

사진 : 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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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대한민국 승인을 얻기 위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3차 유엔총회에 참석한 대표단.
앞줄 왼쪽부터 모윤숙 조병옥 장면 김활란, 뒷줄 왼쪽부터 정일형, 김우평, 장기영(張基永·훗날 체신부 장관과 서울시장 역임), 김진구.
  1948년 12월 12일 제3차 유엔총회는 대한민국을 한반도에서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했다. 찬성 48, 반대 6, 기권 1.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의 감시와 협의가 가능하였으며 또 한국 국민의 대다수가 거주하고 있는 한국의 지역에 대해 실효적 지배권과 관할권을 가진 합법정부가 수립되었다는 것과, 동 정부는 한국의 동 지역의 유권자의 자유의사의 정당한 표현이자 임시위원단에 의해 감시된 선거에 기초를 두었다는 것과, 또한 동 정부가 한국 내의 유일한 정부라는 것을 선언한다.”
 
시안사변 전의 장쉐량(왼쪽)과 장제스.
만주군벌 장쭤린의 아들 장쉐량은 내전중단과 항일전쟁을 요구하며 시안사변을 일으켰다.
  1936년 12월 12일 새벽 6시, 시안(西安) 곳곳에서 총성이 울렸다. 공산군 토벌 작전에 동원되었던 장쉐량(張學良)의 동북군이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옛날 당(唐) 현종과 양귀비가 사랑을 나누었던 화청지(華淸池)의 호텔에 묵고 있던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 장제스(蔣介石)는 호텔 뒤의 산으로 도주했으나, 곧 붙잡혔다. 호통을 치는 장제스에게 장쉐량은 말했다. “이것은 병란(兵亂)이 아니라 병간(兵諫·군주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군사를 일으킴)입니다.”
 
  장쉐량은 장제스에게 공산당과의 내전을 중단하고 일치단결하여 일본의 침략에 맞서자고 요구했다. 우여곡절 끝에 장제스와 공산당의 저우언라이(朱恩來)는 제2차 국공(國共)합작에 합의했다. 장제스는 13일 만에 풀려났지만, 공산당을 진압해 내부를 안정시킨 후 일제 침략에 맞서려던 꿈은 무산됐다. 장제스는 1949년 타이완으로 패퇴하면서 1936년부터 연금(軟禁)생활을 하던 장쉐량을 끌고 갔다. 장쉐량은 1990년까지 연금생활을 하다가 하와이로 이주, 2010년 사망했다.
 
1979년 12·12사태로 군권을 장악한 전두환 장군은 이듬해 정권을 장악, 제5공화국을 열었다.
  1979년 12월 12일 저녁 7시15분경. 서울 한남동에 있는 육군참모총장 공관에서 총성이 울렸다. 10·26 사태 연루 혐의를 수사한다는 명목으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하러 출동한 합동수사본부 수사관들과 공관 경비병들이 충돌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군권(軍權)을 장악한 국군보안사령관 전두환 장군은 이듬해 9월 대통령에 취임, 1988년까지 집권했다. 12·12사태가 난 지 16년 후인 1995년 12월 3일, 김영삼 정권은 전두환 전 대통령을 군형법상 반란죄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97년 4월 17일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그해 12월 22일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1804년 12월 2일의 대관식에서 나폴레옹은 자기 머리 위에 스스로 관을 얹은 후 황후 조세핀에게 관을 씌워 주었다.
  1804년 12월 2일 프랑스공화국 제1통령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황제로 즉위했다. 그로부터 48년 후인 1852년 12월 2일에는 그의 조카 루이 나폴레옹이 삼촌을 흉내 내 나폴레옹 3세로 즉위했다. 카를 마르크스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이렇게 말했다. “헤겔은 어디선가 세계사에서 막대한 중요성을 지닌 모든 사건과 인물들은 반복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 한 번은 비극으로 다음은 소극(笑劇)으로 끝난다는 사실 말이다.”
 
일본군의 진주만 기습으로 침몰하는 미 해군 전함 애리조나호. 가라앉은 애리조나호 위에 기념관을 만들었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연합함대가 미국 태평양함대의 기지인 진주만을 공습했다. 다음 날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 나가 일본의 선전포고 없는 기습을 규탄했다. 의회는 388 대 1로 일본과의 전쟁을 승인했다. 반전(反戰)주의자인 재닛 P. 랜킨 하원의원은 격앙된 국민여론에도 불구하고 반대표를 던졌다. “민주주의란 만장일치가 있어서는 안 되는 정치제도”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지금 미국 의회 의사당에는 그의 동상이 서 있다.
 
갑신정변의 네 주역. 왼쪽부터 박영효·서광범·서재필·김옥균.
  1884년 12월 4일 김옥균 등 개화파는 우정국 낙성식 날 정변을 일으켰다. 일본군이 이들을 지원했다. 개화파는 메이지유신을 모델로 한 급진 개혁을 추구했지만, 수양대군의 계유정난 때처럼 살생부(殺生簿)에 이름이 오른 자들을 척살(刺殺)하는 낡은 수단을 사용했다. 고종과 민비의 반대, 청군(淸軍)의 개입으로 정변은 사흘 만에 실패로 끝났다. 청에 대한 조선의 종속은 더욱 심해졌다.
 
  1984년 12월 3일 인도 중부 마디아프라데시주 보팔시에 있는 유니언카바이드 공장에서 메틸이소시안이라는 유독가스가 누출됐다. 2800여 명이 죽고 20만명 이상의 피해자가 발생했다.
 
  1980년 12월 8일 비틀스의 전 멤버였던 존 레넌이 암살됐다. 7년여의 방황 끝에 그가 내놓았던 앨범 ‘더블 판타지(Double Fantasy)’는 그의 유작(遺作)이 됐다.
 
  2016년 12월 9일 국회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시켰다. 299명 중 234명이 찬성했고 56명이 반대했다. 국회가 검찰의 기소에 해당하는 탄핵소추를 하면서 증거로 제시한 것은 신문·방송의 기사가 전부였다.
 
  1948년 12월 10일 유엔총회는 세계인권선언을 채택했다.
 
난징학살 당시 안전지대를 만들어 중국인 20만명의 목숨을 구한 독일인 욘 라베.

1937년 중국의 수도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은 30만명을 학살했다.
  1937년 12월 13일 중국의 수도 난징(南京)이 일본군에게 함락됐다. 30만명이 학살당했다. 독일 지멘스사 직원이자 나치당원인 욘 라베는 난징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설득해 ‘국제위원회’를 조직, 안전지대를 만들어 20만명이 넘는 중국인들의 목숨을 구했다.
 
  1598년 12월 16일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서 전사했다.
 
  1773년 12월 16일 새뮤얼 애덤스 등이 이끄는 보스턴 한 무리의 시민들이 영국 동인도회사의 선박을 습격, 배에 실려 있던 차(茶)를 바다에 집어던졌다. 7년전쟁 이후 강화된 영국의 식민통치에 대한 항의였다. 이 보스턴 티 파티(Tea Party) 사건으로 미국 독립의 도화선에 불이 붙었다.
 
  1903년 12월 17일 오빌과 윌버 라이트 형제가 최초의 동력비행기 비행에 성공했다.
 
2014년 12월 18일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을 위헌정당으로 해산했다.
  2014년 12월 18일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을 북한식 사회주의 노선을 추종하는 위헌(違憲)정당으로 규정, 해산결정을 내렸다.
 
1971년 12월 25일 대연각호텔 화재 당시 투숙객들은 화마(火魔)를 피해 매트리스를 안고 건물에서 뛰어내리다가 목숨을 잃었다.
  1971년 12월 25일 서울 대연각호텔에서 화재가 발생, 163명이 죽고 63명이 다쳤다. 투숙객들이 불길을 피해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이 TV를 통해 생생하게 보도되면서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1989년 12월 25일에는 24년간 루마니아를 철권통치했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가 혁명군에게 붙잡혀 처형됐다. 집권 초기만 해도 반소(反蘇) 자주화 노선을 걸어 국민들의 인기를 끌었던 그는 1971년 북한 방문 후 ‘개인숭배’에 전염되어 인생을 망쳤다.
 
  1945년 12월 27일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조선에 대한 신탁통치가 결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승만과 김구를 중심으로 거국적인 반탁(反託)운동이 전개됐다. 공산당은 반탁에서 찬탁(贊託)으로 돌아서면서 국민의 신망을 잃어버리기 시작했다.
 
  1922년 12월 30일 전연방소비에트대회는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소련)의 수립을 선언했다. 69년 후인 1991년 12월 31일 소련은 해체됐다. 2006년 12월 30일에는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이 처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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