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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WATCH

九曲

“구곡에는 자연경관뿐 아니라 역사적 인물의 삶과 사상이 깃들어 있다”

글 :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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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는 구곡이 참으로 많다.
충청북도 괴산에 있는 선유동구곡에는 거대한 두 바위가 머리를 기대듯 서 있다.
그 사이 공간에 신선(神仙)이 쉬고 있을 법한데 과연 그 이름이 은선암(隱仙岩)이다.
  양(洋)의 동서(東西)를 막론하고 인간들은 이상향(理想鄕)을 꿈꿔 왔다. 서양에서는 ‘에덴’에서 ‘유토피아’에 이르기까지 낙원의 상징이 있었고 동양에서는 무릉도원(武陵桃源)부터 청산(靑山), 동천(洞天)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유학자들이 바라던 이상향은 구곡(九曲)이었다.
 
전라북도 남원 지리산국립공원에 가면 또다른 구곡이 있다.
숲속에 숨겨져 있는 용호정 밑에 용이 뛰놀았다는 용소(龍沼)가 있다.
  구곡이라는 용어를 만든 이는 남송의 성리학자 주자(朱子·1130~1200, 이름은 熹)다. 주자는 중국 복건성(福建省) 우계현(尤溪縣)에서 태어난 인물로, 공자가 만든 유학(儒學)에 새 의미를 부여해 ‘주자학’이라는 말을 낳게 했다. 조선 선비들은 그런 주자를 성리학의 태두(泰斗)처럼 본받았다.
 
  주자는 54세인 1183년 4월, 복건성 무이산(武夷山) 구곡에 은둔해 제5곡에 무이정사(武夷精舍)를 짓고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노래했다. 무이산은 전설과 노래와 이야기가 풍부했으며 한족(漢族)이 들어오기 전에는 남방 이민족이 살았다. 그래서인지 불교와 도교의 자취가 강했다.
 
충북 괴산에 있는 쌍곡구곡의 제2경이 만물상이다.
한낱 바윗덩어리인데 살펴볼수록 만가지 형상이 숨어 있다고 해서 만물상이다.
만물상이라는 경치는 금강산부터 우리 산의 곳곳에 있다.
  이 무이구곡을 주자가 유학자만의 강학(講學)공간으로 만들자 조선의 내로라하는 선비들도 구곡 만들기 열풍에 휩싸였다. ‘무이’라는 지명은 한(漢) 시인인 무이군(武夷君)이 최초로 거주했기에 붙여진 이름인데 36개의 봉우리와 9개의 굽이(曲)가 기묘해 천하의 명산으로 꼽혔다.
 
구곡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곳 중의 하나가 우암 송시열이 은거했다는 충북 괴산의 화양구곡이다.
바윗덩어리가 널린 계류에 맑은 물이 흐르고 위에는 정자가 조성돼 있다.
  조선 선비들의 무이구곡 따라하기 열풍의 예를 들어 본다. 퇴계 이황은 안동 외곽 청량산 인근에 ‘도산구곡’을 만들었으며 율곡 이이는 ‘고산구곡’을, 조선 중후기 사림의 영수로 꼽혔던 우암 송시열은 ‘화양구곡’을 조성했다. 이 밖에도 계정구곡, 옥산구곡, 양동구곡 등 이땅의 구곡은 숱하게 많다.
 
괴산에서 경북 문경 가는 길에 본 풍경이다. 새벽의 산야(山野)는 그야말로 한폭의 수묵화(水墨畵)다.
  경상북도는 2015년 《경북 구곡-영남 선비의 멋이 담긴 아홉 굽이를 찾아》라는 책을 냈는데 여기 안동 도산구곡·고산칠곡·퇴계구곡·하회구곡, 영주 동계구곡·죽계구곡, 봉화·안동 대명산 구곡, 봉화 춘양구곡, 예천 수락대구곡, 문경 선유구곡·쌍룡구곡, 상주·문경 용유동구곡, 성주·김천 무흘구곡, 성주 포천구곡이 등장한다.
 
경북 예천에도 구곡이 있다. 바위 모양이 뱃머리를 닮았는데 그 위에 주암정(舟巖亭)이라는 정자가 올라타 있다.
  경북도는 책에서 ‘구곡에는 자연경관뿐 아니라 역사적 인물의 삶과 사상이 깃들어 있다’고 했는데 과연 그렇다. 안동 도산구곡에는 퇴계 이황과 민족시인 이육사의 삶이 스며 있으며 하회마을 일대 구곡에는 겸암 류운룡, 서애 류성룡 형제와 관련된 병산서원·겸암정·만송정 등이 펼쳐져 있다.
 
화양구곡 초입의 바위들이 병풍처럼 서 있다.
  가야산을 끼고 흐르는 대가천 일대 무흘구곡에서는 요즘 한창 사드 문제로 언론에 등장하는 성주(星州) 출신의 대유학자인 한강 정구(鄭逑)의 체취를 느낄 수 있다. 경북도는 이 구곡을 문화재청에 세계유산 잠정목록으로 등록하고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할 계획이라는데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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