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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WATCH

The Slow City

유유자적한 도시, 풍요로운 마을에서 나를 돌아보다

글 :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  gsmoon@chosun.com

사진 : 이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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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담양의 메타세콰이어 길에 보슬비가 내리고 있다.
  세상은 빛의 속도를 향해 움직이는데 인간은 오히려 느려지고 있다. 이것을 ‘속도 숭배(崇拜)’가 ‘느림 숭배’로 대체된다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속도가 짜릿하고 생산적이며 강력할수록 밋밋하고 사유적이며 늘어지는 것이 정반합(正反合)의 묘다. 즉 균형을 맞춰 기계적으로 변할 수 있는 세상을 품위 있게 숙성시키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이 처음 일어난 게 1999년 10월이다. 이탈리아 그레베 인 키안티(Greve in Chianti)의 파올로 사투르니니 전 시장 등 몇몇 시장이 모여 위협받는 달콤한 인생(la dolce vita)의 미래를 염려해 ‘치따슬로(cittaslow)’ 운동을 시작했다. 치따슬로는 이탈리아어로 ‘유유자적한 도시, 풍요로운 마을’이라는 뜻이다.
 
  치따슬로의 영어식 표현이 ‘슬로시티’다. 왜 ‘슬로시티’ 운동을 하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이렇게 답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염원하며 우리는 다르게 살겠노라’고 말이다. 1999년 국제슬로시티운동이 출범한 이래 2016년 7월까지 30개국 225개 도시로 확대되었으며 한국도 11개 슬로시티가 가입되어 있다.
 
전라북도 고창의 학원농장 길이다.
  한국인만큼 빠른 것을 숭상하는 민족도 없다. 우리가 원래부터 그렇게 급했던 것은 아니다. 1910년 나라를 잃고 1945년 광복을 맞으면서 성정(性情)이 급해졌다. 암흑기 36년을 따라잡기 위해 모든 분야에서 급하게 일을 추진하다 보니 ‘빨리빨리’는 외국인들이 제일 많이 아는 한국어 가운데 하나가 되고 만 것이다.
 
  현재 슬로시티 가입 조건은 인구가 5만명 이하이고 도시와 주변 환경을 고려한 환경정책 실시, 유기농 식품의 생산과 소비, 전통 음식과 문화 보존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구체적 사항으로 친환경적 에너지 개발, 차량통행 제한 및 자전거 이용, 나무 심기, 패스트푸드 추방 등의 실천이다.
 
다산초당 길이다. 이 길을 지나 다산 정약용 선생은 초의선사를 만나러 갔다.
  우리나라의 슬로시티는 아시아 최초로 지정된 전남 3개 지역 담양군 창평면 삼지천마을, 완도군 청산도, 신안군 증도를 포함해 세계 최초의 차(茶)재배지인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 전라북도 전주 한옥마을,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경상북도 청송군 부동·파천면, 경북 상주시 함창·이안·공검면,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등 11곳이다.
 
  이곳을 한번 다녀와 보라. 우리가 얼마나 숨가쁘게 살아왔는지, 그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 슬로시티를 벗어나는 순간, 다시 ‘빨리빨리’를 외치고 싶을지 모르지만 슬로시티를 자주 찾을수록 와인이 숙성하듯, 막걸리가 익어가듯 성품과 태도가 한결 여유 있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전라남도 순천만의 갈대 숲 사이에 길이 나 있다.

강원도 대관령 삼양목장에 폭설이 쌓여 길이 끊겨 있다.

빼곡히 하늘을 가린 담양 죽록원 사잇길이다.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도. 안개가 걷히면 몽환적인 느낌 대신 총천연색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증도에서 화도 가는 길은 밀물 썰물에 따라 길이 끊겼다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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