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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속의 꽃 〈3〉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와 갈대

글 :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  gsmoon@chosun.com

사진 : 이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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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날 밤 귀여운 제비 한 마리가 도시로 날아왔다. 친구들은 모두 여섯 주 전에 이집트로 가 버렸지만 그는 혼자 남았다. 아름다운 갈대를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초봄에 커다란 노란 나방을 따라 강위를 날다 만난 갈대였는데, 그녀의 늘씬한 허리에 마음을 완전히 빼앗겨 날개를 접고 다가가 말을 걸었다.
 
  “그대를 사랑해도 될까요?” 제비가 물었다. 제비는 핵심 이야기로 바로 들어가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갈대는 제비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제비는 그녀 주위를 뱅뱅 돌다가 날개를 강물에 살짝 스쳐 은빛 잔물결을 일으켰다. 이것이 제비의 사랑법이었다. 제비의 사랑은 여름 내내 계속되었다.
 
  “웃기는 사랑일세.” 다른 제비가 재잘거렸다. “그 갈대는 돈도 없고 친척만 잔뜩 있는데.” 정말이지 강에는 갈대가 가득했다.
 
  이윽고 가을이 오자 제비들은 다 날아가 버렸다. 친구들이 다 가 버리자 제비는 외로웠고 애인에게는 싫증까지 났다. “도무지 대화라고는 몰라. 게다가 바람둥이인지도 모르겠어. 바람만 나타나면 애교를 떠니 말이야.” 아닌게 아니라 갈대는 바람만 불면 아주 우아하게 무릎과 허리를 굽혀 절을 했다. “그뿐인가. 이 아가씨는 나다니기를 싫어해. 하지만 나는 여행을 좋아하고, 그래서 내 아내가 될 사람도 여행을 좋아해야 하는데.”
 
  “나와 함께 가시렵니까?” 제비가 마침내 갈대에게 물었다. 그러나 갈대는 살랑살랑 고개를 저었다. 자기 집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를 가지고 놀았군요.” 제비는 소리를 질렀다. “나는 떠나겠어요. 피라미드로 가겠어요. 잘 있어요!” 제비는 날아가 버렸다.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 한복판에 있는 동상에 새가 앉아 있다.
동상은 행복한 왕자가 아니고 아일랜드 독립운동가이며 새는 제비가 아니지만 동화 ‘행복한 왕자’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침묵하는 갈대에게 실연(失戀)한 제비는 행복한 왕자를 만난다. 동상(銅像)인 그도 갈대처럼 말이 없다. 행복한 왕자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그런데 왜 울고 있어요? 그 바람에 내 몸이 젖었잖아요.” 제비의 물음에 왕자는 말했다.
 
  “나는 상수시 궁전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한번도 물어볼 생각도 하지 못했어. 내 주위의 모든 것이 너무나 아름다웠거든. 신하들은 나를 행복한 왕자라고 불렀어. 실제로 나는 행복했지. 그렇게 즐거운 게 행복이라면 말이야. 내가 죽고 나서 사람들은 날 여기 높은 곳에 세워 두었어. 그러자 그때부터 내 도시의 추하고 비참한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는 거야. 지금 내 심장은 납으로 만들어져 있지만 그래도 울지 않을 수가 없어.”
 
더블린의 오스카 와일드 생가 앞에 있는 공원에 와일드의 상(像)이 있다.
신랄한 비판을 일삼은 와일드처럼 동상도 조소에 가까운 미소를 짓고 있다.
  갈대를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시킨게 오스카 와일드의 1888년작 《행복한 왕자》다. 제비는 묵언(默言)과의 사랑을 즐기는 모양이다. 갈대와 행복한 왕자와 제비는 문학사에 남을 에필로그를 남긴다.
 
  “이 도시에서 가장 귀한 것 두 가지를 가져오너라.” 하느님이 한 천사에게 말했다. 그러자 천사는 납 심장과 죽은 새를 갖다 바쳤다. “제대로 골랐구나.” 하느님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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