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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미야자키 난고손(南鄕區) 백제마을의 시와스마쓰리(師走祭り)

1300여 년 동안 백제 정가왕·복지왕 기리며, “사라바(살아서 봐), 오사라바(잘살아서 다시 봐)!”

글·사진 : 이오봉  월간조선 객원사진기자  ob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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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치오의 무덤이라고 전해지는 쓰가노하루(塚の原) 고분(古墳)으로 이동한 이들이 마중 나온 미카도 주민들과 함께 제(祭)를 올리고 가구라(神樂)를 공연하고 있다.
  “오사라바(おさらほ·잘 가세요).”
 
  일본 규슈(九州) 미야자키(宮崎)현 난고(南鄕)구 백제마을, 논두렁에 늘어선 사람들이 백제 왕족의 영령(英靈)을 모시고 가는 행렬이 지나자 하던 일을 멈추고 손을 흔들어 배웅한다.
 
  일본 규슈의 남동쪽 태평양 연안 미야자키현의 산골마을 미사토초(美鄕町) 난고에서는 매년 12월, 음력으로 섣달 그믐날 즈음에 2박3일 동안 전설 속의 백제왕족 이야기를 담은 시와스마쓰리(師走祭り·시와스축제)가 열린다. 마을 사람들의 액막이와 풍년, 순산을 기원하는 축제로, 1300여 년 동안 변함없이 거행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가장 오래된 마쓰리의 하나로, 1991년 일본 문화재청이 ‘무형민속문화재’로 지정했다.
 
신관(神官)을 포함해 18명으로 구성된 히키신사 일행이 마중을 나온 미카도신사 일행과 차남 가지오(華智王·화지왕)를 모신 도고초(東鄕町) 이사카(伊佐駕) 신사에서 합류해 함께 미카도 신사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규수 산맥에서 발원하여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오마루강(小丸川)을 따라 걸어가면서 연주되는 북소리와 피리소리가 산촌에 울려 퍼진다.
  《일본서기》 등 정사에 기록돼 있지는 않지만 이곳의 백제왕 전설에 따르면 660년 백제가 나당연합군에게 멸망한 뒤 일본 규슈 지방으로 망명한 백제 왕족 일행이 672년에 일어난 일본 임신란(壬申亂) 등 내란의 와중에서 배를 타고 규슈 북부 쓰쿠시(築紫)로 피란을 가다가 폭풍우를 만나 표류, 데이카오(禎嘉王)와 그의 장남 후쿠치오(福智王)가 이끈 2척의 배가 길이 엇갈리며 각기 깊은 산중인 미카도(新聞)와 히키(比木)에 도착해 정착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추격대와 맞서 싸우던 데이카오와 후쿠치오 등 많은 백제인이 장렬히 전사했고, 이들의 영령은 미카도 신사와 히키 신사에 모셔졌다.
 
1991년에 개관한 백제관(百濟館). 자매 도시인 부여군의 도움으로 부여의 왕궁터에 세워진 객사를 본떠서 지었다. 백제 금동대향로 등 백제문화를 소개하는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시와스마쓰리는 백제 왕자, 후쿠치오의 영령이 부왕 데이카오를 만나러 가는 의식을 치르는 축제다. 후쿠치오의 고신타이(御神體·영령)를 모시는, 18명으로 구성된 신관 일행이 미야자키 기조초(木城町) 히키 신사(比木神社)를 출발해 부왕이 모셔진 미사토초 난고구의 미카도 신사(新門神社)까지 행진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히키 신사와 미카도 신사가 90km나 떨어져 있기 때문에 과거에는 도보로 9박10일에 걸쳐 거행했던 축제였으나 2차대전 후부터는 자동차를 이용하여 2박3일의 일정으로 간소화했다.
 
히키신사 일행이 적의 눈을 속이기 위해 불을 질렀다는 전설에 따라 들판에 불을 놓고 있다.
  시와스마쓰리에는 고대 백제의 풍습이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충남 부여군 은산면에서 매년 3월에 치르는 은산 별신굿과도 매우 비슷하다. 718년에 창건된 미카도 신사에서는 그동안 33개의 동경(銅鏡)이 발굴됐다. 그중에 24개는 나라(奈良) 시대나 고훈(古墳) 시대의 동경으로, 백제 왕족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96년 9월에 난고손 미카도 신사에서 발견된 의복에서는 약 119개의 문자가 먹으로 쓰여 있는 능포묵서(綾布墨書)가 발견됐다. 제목은 기국호(記國號·나라의 이름을 기록한다)로, 백제의 성(城) 숫자와 백제 3대 무왕으로부터 31대 의자왕에 이르기까지 왕의 연호(年號) 변천을 볼 수 있는 기록도 나왔다. 《일본서기》에는 의자왕의 아들인 풍장왕(豊障王)이 일본에 와서 31년간 살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데이카오가 바로 풍장왕의 후손이다. 한국과 일본의 고고학·민속학 분야 관계자들이 시와스마쓰리의 기원을 밝히기 위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어, 《일본서기》나 《삼국사기》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백제 왕족의 전설이 사실로 밝혀질 날이 곧 올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후쿠치오 영령을 모시고 온 히키신사 일행이 부왕이 모셔진 미카도 신사가 보이는 곳에서 제를 올리고, 난고 마을 옆으로 흐르는 오마루강에 뛰어들어 목욕 재계(齋戒) 의식을 행하고 있다.
  난고에서는 1980년대 말부터 백제 왕족 관련 유적과 유물을 발굴해 니시쇼소인(西正倉院) 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다. 매년 한국과 일본 내에서 3만8000여 명의 관광객이 이곳을 찾고 있다. 1991년에는 한국 정부의 도움으로 부여 왕궁의 객사를 본뜬 백제관을 준공해 백제 관련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옛길의 양옆으로 설치된 높이 10m에 달하는 30여 개의 나뭇더미에 불을 피우고 있다. 히키신사 일행을 맞이하기 위한 ‘무카에비(迎ぇ火·혼백을 맞이하기 위한 불)’다. 우리나라의 쥐불놀이나 달집태우기와 비슷하다. 시와스마쓰리의 하이라이트로, 3000여 명의 관광객과 주민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환호를 한다.

늦은 저녁 무렵 히키신사 일행이 미카도 신사에 도착하여 의식을 치른 후 고신타이(神體)를 신사의 본전에 모시고 있다.

둘째 날 신관들이 신사 본전에서 고신타이를 새로 입힌 후 제를 올리고 가구라(神舞) 공연 준비를 한다.

산에서 가축과 농사가 잘되기를 기원하는 야마미야사마(山宮さま) 의식을 올리고 있다. 이때 수렵을 상징하는 가구라(神樂)와 제를 올린다.

축제 참가자들은 저녁 때부터 신전 앞마당에서 신에게 바치는 슬픔과 한(恨)과 웃음이 어우러진 다양한 요가구라(夜神樂)를 자정이 가까울 때까지 공연한다.

부여 낙화암의 정자와 똑같은 모양으로 지은 정자가 있는 ‘연인(戀人)의 언덕’에서 내려다본 깊고 깊은 산속 마을, 인구 3000여 명의 난고손(南鄕村) 전경.

히키 신사 일행이 귀로에 오르기 전에 얼굴의 검댕을 씻어 내는 고메가미(洗顔)를 한 후 마지막 숙박지인 쓰노초(都農町)에서 제사와 가구라(神樂)를 올리는 것으로 3일간의 시와스마쓰리(師走祭り)는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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