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장인] 손으로 빚어 내는 예술 매듭의 장인 金喜鎭 : 월간조선

50여 년의 세월 동안 한국전통 다회(多繪·실을 땋아 만든 띠)와 매듭을 복원하고 연구해 온 이가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22호 김희진(79·金喜鎭) 매듭장이다. 그가 올해 팔순(八旬)을 맞아 전통 매듭을 연구하는 제자들과 함께 회고전을 준비 중이다.

매듭이란 명주실을 염색하고 합사(合絲)해 끈을 짠 뒤 여러 형태로 만드는 공예품을 말한다. 실생활의 편의를 위해서 시작된 매듭은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예술로 변모하며 장인의 손끝에서 손끝으로 전해져 왔다. 전통 매듭은 왕실의 예를 상징하는 궁궐의 장식과 국악기 장식부터 궁중과 상류 사회의 의복 장식과 실내 장식에 이르기까지 널리 활용됐다. 특히 상여(喪輿)나 임금의 어진(御眞·초상화)과 국새(國璽)에도 장식돼 강한 상징성을 부여했다.

다양한 종류의 기본 매듭.

김희진 선생이 매듭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63년 상여에 맨 매듭에 반하면서부터다. 그는 작은 매듭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색감과 오묘한 결구(結構·짜인 모양새)에 반해 한국 초대 무형문화재 매듭장 고(故) 정연수 선생 문하로 들어갔다. 이후 1964년 강기만 선생의 실타래 염색 시범을 바탕 삼아 독학으로 염색기법을 터득했다. 또 박용학 선생에게 4사(네 가닥의 실을 합사한 것. 사용되는 실의 가닥 수에 따라 구분한다)와 8사 기법을 전수받아 12사, 24사, 36사 등 모든 다회기법을 오랜 세월에 걸쳐 연구, 복원했다. 술의 기초는 김입비 할머니에게 배웠다. 이렇게 전국의 장인을 찾아다니며 전통 매듭 기술의 기초를 전수받아 매화매듭, 나비매듭, 거북매듭 등 38가지 한국 고유의 매듭 문양을 복원했다.

다회를 만들기 위해 명주실을 합사하는 과정. 합사한 실의 올 수에 따라 가늘게도, 굵게도 짤 수 있다.

다회와 매듭 제작은 그 재료가 되는 생사를 비눗물에 알맞게 삶아 끈적끈적한 물질을 말끔히 빼내는 작업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렇게 준비된 명주실을 색색으로 염색하고 다시 원하는 굵기만큼 합사해 바탕을 꼬아 틀에 앉혀 끈 짜는 과정을 ‘다회친다’고 말한다. 이렇게 준비한 여러 종류의 다회로 원하는 매듭을 보기 좋게 맺고 그 끝에 알맞은 술을 만들어 달면 하나의 장식품이 완성된다. 그녀는 명주실에 빛깔을 입히는 것부터 매듭짓고 술을 달기까지 모두 손수 작업한다. 한 달에서 길면 1년이 걸리는 작업이다. 그만큼 정성을 들여 만들기에 작품 하나하나가 자식 같다고 했다. 지난 2004년에는 평생을 바쳐 만든 매듭 공예품 430여 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값을 매길 수 없어 팔지 못하고 가슴에 품어왔던 작품들이다.

“매듭은 손으로 빚어내는 언어와 같아요 . 각각 다른 모양의 매듭들은 마치 갖가지 악기들이 서로 다른 소리를 내듯 나름대로 음률을 품고 있어요. 이런 매듭이 하나로 합쳐졌을 때 오케스트라처럼 웅장한 소리를 내는 것이지요. 이렇게 마음의 소리를 들으며 끈을 매만지다 보면 내 안에는 남모를 희열이 채워집니다. 손끝과 마음이 하나 되어 빚어지는 창작의 세계는 무한대여서 신명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