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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슬의 ‘건강의 지평선’ ① 건강검진의 숫자들은 어디서 왔나

글 : 박한슬  의료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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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혈압·당뇨병의 ‘정상 수치’, 제약산업·보험사·의료계의 이해관계가 낳은 복잡한 구조적 결정의 산물
⊙ ‘적정 수준의 의료’ ‘의사 적정 인원’은 수리적으로 계산할 수 없어
⊙ 현대 들어 만성질환 관심 높아지면서, ‘숫자’만 있고 증상은 없는 새로운 질병 탄생
⊙ 全국민 건강보험으로 ‘과잉진단’ 발생… 의료계는 건강보험으로 신규 환자 ‘발굴’

박한슬
1991년생. 차의과학대학교 약학과 졸업, 연세대 통계·데이터사이언스 석사 / 《중앙일보》 《주간조선》 칼럼니스트, 서울시 청년정책자문단 / 저서 《노후를 위한 병원은 없다》 《숫자 한국》 외 다수
장비와 장치가 주류가 되는 형태의 산업으로 이행하는 현상이 의료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사진=조선DB
  연말이 다가오면 부쩍 바빠지는 곳 중 하나가 건강검진센터다. 해를 넘기기 전에 연간 혜택으로 제공되는 건강검진을 마치려는 사람이 몰려서인데, 정작 결과지를 받고 당황하는 이들이 많다. 빼곡하게 적힌 숫자와 영문 명칭들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눈에 알기가 어려워서다. 의사로 일하는 지인은 연말께에 결과지를 찍어 보내는 친척 때문에 골머리를 앓을 정도라니, 이제는 구세군 냄비나 성탄절 트리같이 건강검진도 절기(節氣)에 행하는 풍습이 된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건강검진이라는 행위가 인류의 일상에 깊이 자리 잡은 것은 불과 100여 년밖에 되지 않았다. 말인즉슨, 낯선 수치가 빼곡하게 적힌 결과지를 보고 의미를 궁리하는 과정을 지난 100년간 의사들도 똑같이 겪었다는 말이다. 그러니 그간의 여정을 잘 복기(復棋)해 보면, 인류가 ‘질병’ 개념을 어떻게 변화시켜 왔는지, 그리고 거기에 영향을 준 요인들이 무엇인지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대체 그 많은 숫자는 어디서 왔을까?
 
 
  ‘감염성 질환’ 대 ‘증상 묶음’
 
크림 전쟁에서 활약한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깨끗한 붕대와 체계적 치료만으로도 병사의 사망률을 급격히 낮출 수 있다는 걸 최초로 입증했다.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질병’이라는 개념 자체다. 흐릿하게 인식은 하고 있지만 대답하기는 생각보다 까다로운 질문을 던져보자. 질병이란 대체 무엇일까?
 
  감염성(感染性) 질환의 경우 비교적 설명이 쉽다. 세균이나 바이러스, 기생충과 같이 감염의 원인이 되는 ‘병원체(病原體)’가 존재하고, 이 병원체에 의해 열이나 염증 같은 ‘증상’이 발현된다. 가볍게는 감기를 앓을 때 쉽게 보는 콧물이나 기침, 중한 감염증에서는 뇌부종 같은 증상도 나타난다. 어쨌거나 감염성 질환은 원인과 증상이 비교적 명확히 연결되어 있어 진단과 치료 역시 비교적 일관되게 이뤄질 수 있다.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직면하는 질병은 그 양상이 다르다. 예를 들어 천식은 가슴 답답함, 기침, 호흡 곤란과 같은 여러 증상을 수반한다. 그러나 이 질환은 단일한 병원(病原)이나 뾰족한 하나의 원인에 의해 발생하기보다는 유전적 요인, 환경적 요인 등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다. 감염성 질환과 같이 특정한 원인에 따른 결과로서 질병의 정의된다기보다, 호흡 곤란과 기침, 가슴 답답함 같은 증상이 공통적으로 발현되는 걸 관찰한 의학자들이 이를 하나로 묶어 ‘천식’이라고 정의한 것에 가깝다. 현대의 많은 질병은 이런 식으로 ‘일련의 증상 묶음’으로 정의된다.
 
  20세기 중반 이전에는 감염성 질환이 주된 건강 문제였다 보니, 질병의 정의가 그리 까다로운 문제가 아니었다. 감염이 생기면 감염의 증상을 관리하고, 환자가 감염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돕기만 하면 됐다. 그렇지만 이러한 패러다임은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바뀌기 시작했다. 기존의 국지적(局地的)인 전쟁을 넘어 세계적 수준의 전면전이 벌어지며 부상자와 사망자가 속출하기 시작해서다.
 

  전쟁의 야만성이야 힘주어 논할 필요가 없겠지만, 병사들의 사망 원인에 대해서는 강조할 필요가 있다. 일반의 인식과 달리 전쟁에서 발생하는 사망자는 총에 맞아 죽는 경우가 적어서다. 물론 총에 맞아 실혈(失血)로 사망하거나, 탄환이 주요 장기(臟器)를 관통하여 즉사하는 예도 있긴 하나, 전쟁에서 사망하는 압도적 다수는 총상으로 입은 상처가 덧나 ‘감염’으로 인해 사망한다. 깨끗한 붕대와 체계적 치료만으로도 병사의 사망률을 급격히 낮출 수 있다는 걸 최초로 입증한 이가 19세기 중반 크림 전쟁에서 활약한 ‘백의(白衣)의 천사’ 나이팅게일 아닌가.
 
  그렇지만 감염 치료를 위한 마땅한 항생제(抗生劑)가 없다는 한계도 분명했는데, 1940년대에 인류 최초의 상업화된 항생제인 페니실린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며 전쟁의 판도가 크게 바뀌게 됐다. 페니실린으로 2차대전의 승리는 물론이고 종전 이후엔 감염성 질환이 점차 통제 가능해지게 된 것이다.
 
 
  異常수치가 차츰 ‘관리 대상’으로
 
  감염성 질환이 사망 원인의 옥좌에서 내려오자, 의학계의 관심은 조금씩 만성(慢性)질환으로 옮겨갔다. 가장 대표적인 게 바로 심혈관(心血管)질환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선진국 사망자의 상당수는 심장마비가 사인(死因)이었다. 심장이 멈추는 걸 ‘사망’이라고 정의(定義)하니 동어(同語)반복으로 들릴 수 있으나, 병적인 이유로 심장이 멈추는 건 특징적 증상이 맞다.
 
  어쨌거나 심혈관질환으로 인한 사망이 늘자, 의학 연구자들은 심혈관질환을 예방하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감염성 질환과 달리 장기간의 영향이 누적되며 질병의 진행이 더딘 만성질환은 뚜렷한 병인(病因)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예컨대 당뇨병의 경우를 보자. 당뇨병에는 뚜렷한 한 가지 원인이 있다기보다 생활습관부터 가족력까지 다양한 영향이 누적적으로 작용했다고 보는 게 훨씬 더 타당하다. 그러니 이러한 선행(先行) 요인들을 찾아내는 연구가 빠르게 진척됐고, 종래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던 특이한 ‘생체 징후’들이 질병의 전조(前兆)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높은 혈압, 높은 혈당, 높은 콜레스테롤 수치가 비로소 만성질환의 대표적 위험 요인으로 분류된 것이다. 즉, 2차대전 종전으로부터 지금까지의 의학사(史)는 특별히 질병으로 분류되지 않던 이상(異常) 수치를 ‘관리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이들을 적절히 관리하는 방법을 발전시켜 온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과정이 그리 순탄치 않았다는 점이 문제다.
 
 
  고혈압 치료 못 받고 사망한 루스벨트
 
세상을 떠나기 하루 전인 1945년 4월 11일 프랭클린 루스벨트. 사진=퍼블릭 도메인
  가장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질병인 고혈압의 사례를 보자. 의외일지는 모르지만, 인류가 고혈압을 치료하기 시작한 역사는 생각보다 길지 않다. 혈압계라는 게 도입된 건 훨씬 이전이긴 하나, 병원에서 혈압 측정을 하던 게 고혈압 진단을 위해서가 아니어서다. 사람이 정상적으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몇 가지 수치가 정상 범위 내에서 유지되어야만 한다. 이를 ‘활력징후(活力徵候)’라고 부르는데, 체온·호흡·맥박·혈압 같은 것들이 그에 해당한다. 즉, 병원에서 환자의 혈압을 재는 건 환자의 혈압이 갑자기 떨어지는, 혹시나 모를 위험 상황을 확인하려는 목적이 가장 우선이었다. 혈압이 보통 사람보다 높은 사람이 있다는 건 알려져 있었으나, 그에 동반되는 증상(고혈압성 두통 등)이 있어야만 치료를 고려하던 시절이었다. 혈압약이 개발되기 전이라 치료법도 마땅치 않았고, 환자가 특별한 증상을 호소하지 않는데 굳이 치료할 이유도 없다고 여겨서다. 의료 서비스에 접근 가능성이 낮은 보통 사람만의 얘기가 아니라, 대통령과 같은 사회 최고위층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당시의 굳건한 의료 관행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최초이자 최후의 4선 대통령일 프랭클린 D. 루스벨트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의무 기록을 살펴보면,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논의한 얄타 회담 즈음에도 이미 그의 혈압은 이미 230/126에 달할 정도로 높았다. ‘수축기 혈압 120, 이완기 혈압 80’인 120/80이 정상 혈압으로 간주되는 현대의 진단 기준으로 보면 중등도 이상의 매우 위중한 고혈압에 해당하는 수치였지만, 그는 그에 대해 별다른 치료를 받지 않았다. 당시엔 혈압을 낮추는 것이 중요한 목표가 아니었고, 루스벨트 대통령은 고혈압으로 인해 특별한 부작용(악성 두통 등)을 호소하지 않았기에 주치의들도 그의 높은 혈압 수치를 교정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결국 루스벨트 대통령이 조절되지 않은 고혈압으로 인해 뇌출혈(腦出血)을 겪고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이러니한 일인데, 만약 그가 뇌출혈로 급사(急死)하지 않았다면 미국의 핵무기 정책은 후임자인 트루먼 대통령과 사뭇 달랐을 가능성이 크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핵무기 개발에 부정적이었던 루스벨트 대통령이 살아 있었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냉전(冷戰)의 역사는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전개되었을지도 모른다.
 
 
  증상 없이 ‘숫자’만 있는 질병
 
  만성질환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며, 심혈관질환을 예방해야 한다는 의료계의 공감대가 형성되기는 했다. 그러나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대두됐다. 과연 혈압을 어디까지 낮추는 것이 좋으며, 치료적 개입이 필요한 고혈압을 진단하는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적절하냐는 것이다.
 
  혈압은 연속적인 수치다. 서양에서는 무지개를 일곱 가지 색으로 나누고 우리는 다섯 가지 색으로 나누듯, 연속적인 값의 중간 어디에 기준선을 설정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대선(大選)에 출마할 수 있는 최소 연령을 몇 살로 설정할 것이냐와 유사하게 사회적 합의와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영역에 진입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두 집단이 있으니, 바로 제약회사와 의료계다. 제약회사는 고혈압의 기준이 되는 문턱값이 내려갈수록 혈압약을 필요로 하는 환자군이 대폭 늘어나기 때문에 문턱값을 낮게 유지하는 걸 바랐다. 환자 수가 곧 잠재적 고객 수와 같아지는 제약회사 처지에서는 그럴 유인(誘因)이 당연히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의사 집단도 ‘증상은 없으나 수치는 나쁜’ 이들을 치료하기를 바랐기에, 이들 두 집단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혈압 관리 기준은 점점 엄격해졌다. 물론 그런 결정은 연구로 뒷받침되긴 한다. 그렇지만 ‘엄격한 관리가 더 낫다’는 결과가 나올 개연성이 높은 연구들에 제약회사가 집중적으로 연구비를 집행한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게 지난 70여 년간 혈압이나 혈당과 같은 만성질환 관리 기준은 꾸준히 엄격해졌고, 종국에는 이들 수치가 장기적으로 사망의 위험을 예방할 수 있는 간접적인 지표가 아닌, 그 자체 ‘질병’으로 개념화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숫자’만 있고 증상은 없는 새로운 질병들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보험회사의 필요에 따라 등장한 건강검진
 
  물론 이런 수치를 낮게 유지하는 게 향후 건강에 이점이 있다는 건 과학적으로 명확하게 입증된 사실이다. 다만, 이런 방향으로의 강조가 일어난 건 분명한 산업적인 이점(利點)이 있어서이고, 실제로 이런 접근은 ‘수치(數値) 진단’이라는 새로운 의학 패러다임을 빚어내는 데 성공했다. 환자가 느끼거나 호소하는 증상은 없어도, 신체에 나타나는 다양한 이상 사례를 수치적으로 검사하자는 접근이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대목을 읽으며 기시감이 드신 분이 계시리라. 우리가 자주 접하는 알 수 없는 수치가 빼곡하게 적힌 결과지, 건강검진이라는 개념이 정립된 것도 이 맥락 위에서 이루어진 일이라서다.
 
  질병이 무엇인지, 그리고 질병을 진단하는 수단으로서 검사 수치를 증상보다 우선시하는 ‘수치 진단’이 무엇인지 알았으니, 드디어 건강검진에 대해 다룰 수 있게 됐다. 건강검진은 어떻게 우리 관습으로 들어왔을까?
 
  건강검진의 역사를 살펴보면, 현재와 사뭇 다른 배경과 목적에서 출발했다는 인상이 짙다.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건강검진은 스스로의 건강을 지키고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려는 취지의 ‘건강 관리’의 일환으로 자리 잡았지만, 초기의 건강검진은 철저히 ‘관리와 통제’의 도구로서 발전해 왔다. 건강검진이 어떻게 사회적 변화와 맞물려 발전해 왔는지 살펴보면 그 목적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건강검진을 처음 시행한 곳이 보험회사와 사기업이었다는 게 중요하다.
 
  20세기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개인에 대한 보험업은 지금과 같은 다양하고 포괄적인 건강 관련 서비스보다는, 사망시 보험금을 지급하는 생명보험이 주력 상품이었다. 그런데 소크라테스에게도 돼지에게도 죽음은 늘 공평하게 찾아온다. 그러니 생명보험을 취급하는 보험사는 가입자의 사망을 최대한 늦추는 게 이익을 극대화하는 거의 유일한 방안이다. 보험금 지급을 늦출수록 그간 받은 보험료의 이자 수익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 수단으로서 보험사들은 보험 계약자들에게 건강검진을 정기적으로 실시하게 해 이들의 건강을 관리하고 사망 위험을 줄이는 ‘엄청난 인류애’를 보여줬다.
 
 
  유진 피스크의 생명연장연구소
 
유진 L. 피스크
  이 과정에서 지대한 역할을 한 인물이 바로 유진 피스크(Eugene L. Fisk)이다. 그는 생명연장연구소(Life Extension Institute)를 설립해 1920년대 초반까지 25만 명에 달하는 보험 계약자들을 대상으로 건강검진을 실시했다. 그리고 건강검진 결과를 바탕으로 어떤 생물학적 특성을 가진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사망 위험이 큰지를 분석하는 대규모 통계 분석을 수행했다. 결과적으로 가입자의 사망에 관련된 ‘위험 요인’을 선별하는 데 성공했고, 그런 위험 요인을 가진 사람의 사망 위험을 통계적으로 평가하는 기법이 도입되었으며, 이를 토대로 사망 위험이 높은 이들을 ‘고위험군’으로 분류하는 조치도 처음으로 시도했다. 보험사가 긍휼함을 갖고 개인의 건강을 돌보려는 목적이 아니라, 보험사가 사망보험금을 지급하는 ‘위험’을 줄이기 위한 관리의 일환이었음은 자명하다. 사기업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건강검진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물론 기업이 종업원에게 건강검진을 제공하는 건 나쁜 일이 아니다. 자기네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건강을 보호하겠다는 명분은 노동운동의 성과로서 포장되기도 하니, 이 자체를 비난할 이유는 없다. 그렇지만 건강검진 결과가 활용돼 온 방식을 분석해 보면, 실제로는 부상이나 질병의 위험이 있는 사람들을 사전에 감시하고 관리하려는 목적이 훨씬 더 컸다. 특히 이 시기에는 채용 과정에서 신규 직원에게 건강검진을 시행하는 관행이 자리 잡았는데, 신입 직원에 대한 보상이라기보다는 추후 상해 등으로 인해 회사가 책임질 여지를 줄이고, 필요시 아예 채용을 거절하려는 목적이 컸다. 보험사가 ‘손실 관리’의 일환으로 건강검진을 시행했다면, 기업들은 ‘종업원 관리’의 수단으로 건강검진을 적극 도입한 것이다.
 
 
  전 연령대에 걸친 건강검진 시스템 구축
 
  초창기 건강검진의 목적성이 관리와 통제였다 보니, 개인이 호소하는 증상이 없더라도 광범위한 신체 수치를 수집하고 검사하는 게 당연시됐다. 건강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검사를 받아야 현재 건강 상태를 면밀히 파악하고, 또 그 결과를 바탕으로 ‘관리 대상’으로 삼을 수 있지 않나.
 
  그렇지만 시간이 흐르며 건강검진은 점차 공중보건의 관점에서 재해석되기 시작했다. 과도한 검사 대신 적시에 필요한 검사를 하자는 방식으로 변화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특정 연령대 이상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암 검진처럼 시기와 나이대에 꼭 필요한 검진이 강조되었고, 증상이 없어도 무작정 검사부터 하던 초기 방식에서 점차 벗어나게 되었다.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는 이런 세계적 흐름과는 다소 다른, 더 포괄적이고 빈도 높은 형태의 건강검진이라는 조금 엉뚱한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는 게 문제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국가 검진이 시작된 건 1980년 공무원과 사립학교 교원을 대상으로 한 건강진단이다. 그보다 3년 앞선 1977년에 ‘공무원 및 사립학교교직원 의료보험법’이 제정되고 1979년엔 공적(公的) 의료보험이 시행되었는데, 이 연장선상에서 건강검진 역시 보장 항목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목적은 서구나 북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장기적으로 국가의 의료보험 급여 지출 부담을 줄이기 위해 특정 직업군을 대상으로 건강관리를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1990년대에는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암 검진이 시행되었고, 2000년대 들어 전 국민 건강보험 체계가 완비되면서는 국가 암 조기검진과 생애전환기, 영유아 건강검진까지 순차적으로 자리 잡아, 전 국민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건강검진 체계가 완성되었다. 다른 선진국에서도 보기 어려울 정도로 전 연령대를 촘촘하게 포괄하는 국가 검진 체계가 자리를 잡은 것이다. 건강검진을 통해 질병을 조기 발견하고, 적절한 치료를 제공함으로써 국민의 전반적인 건강 수준이 개선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는데, 한편으로는 과잉검사로 인한 과잉의료 문제를 낳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갑상선암이다.
 
 
  갑상선암 환자가 15배나 많아진 이유
 
  작고한 고려대 의과대학 안형식 교수의 연구를 살펴보면 이렇다. 우리나라의 갑상선암 진단은 1990년대 말 전 국민 국가 암검진사업이 시작되며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는데, 2011년 기준으로 1993년 대비 약 15배나 높아지는 급격한 상승을 보였다. 결국 그즈음부터 국내에서는 갑상선암이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암으로 자리를 잡게 됐는데, 놀랍게도 다른 나라에서는 같은 기간 이런 현상이 관찰되지 않았다. 식습관이 비슷한 일본이나 중국과 비교해서는 물론이고 영국이나 미국과 비교해서도 5배 이상 높은 수치다.
 
  이질적일 정도로 높은 우리나라의 갑상선암 발생 빈도의 원인을 좇다 보니, 결론은 과잉검사가 질병의 과잉진단을 유도한 것에 가까웠다. 실제로 암이 있는 것은 맞지 않으냐고 하기에는 워낙 작아 몇 년간 추적관찰을 하며 지켜보는 경우도 많으며, 가장 중요하게는 갑상선암으로 사망하는 치명률 자체가 1990년대와 비교해 변화가 없었다. 즉, 갑상선암을 미리 발견한다고 해도 건강에 이익이 되는 게 전혀 없더라는 것이다.
 
  이 연구는 ‘과잉진단’의 대표적 사례로 세계 3대 의학 학술지에 실렸고, 각국에서 이런 현상을 경계하게끔 하는 계기가 됐다. 특별히 의료적 개입이 필요하지 않은 환자에게도 불필요하게 과도한 의료적 개입을 수행하는 사회적 낭비가 발생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막강한 건강검진 역량의 이면이다.
 
  그렇다면 짚어봐야 할 건, 왜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저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냐는 것이다. 의료계의 다양한 연구자들이 꼽는 이유는 바로 왜곡된 의료구조다. 우리나라는 건강보험 체계가 전 국민을 포괄하게 되면서 의료행위의 가격 상한(上限)이 굉장히 강하게 작동하게 되었다. 정부에서 라면이나 짜장면 같은 물가안정품목의 가격 인상을 억제하기 위해 간접적인 압박을 가하는 방식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정도를 넘어선다.
 

  국내에서 수행되는 거의 모든 의료행위는 보건복지부와 산하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서 직접 가격을 결정한다. 라면 가격을 낮추라며 세무조사를 하는 식이 아니라, 라면 가격을 정부 부처가 정해 주는 식이다. 의료비 재정을 관리해야 하는 정부 부처가 가격 결정권을 쥐니 결과적으로 의료 서비스의 가격 인상이 극도로 제한됐고, 국내 의료기관들은 낮은 가격을 벌충하기 위해 많은 환자를 보는 ‘박리다매(薄利多賣)’ 모델을 강제적으로 채택하게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특정 증상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는 ‘자발적 환자’가 방문하길 기다리는 건 시장의 확장에 분명한 한계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환자를 보다 적극적으로 ‘발굴’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국내 의료계가 신규 환자를 ‘발굴’할 방법으로 선택한 게 바로 건강검진이다. 건강검진이 객관적으로 환자에게 위해를 가하는 행위가 아니기도 하거니와, 검사 자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진단 시장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보건복지부의 직접적인 가격 통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 가격 인상이 보다 용이했다는 의미다.
 
  그러니 통상의 산업화가 그러하듯, 노동집약적인 산업으로부터 자본집약적인, 즉 장비와 장치가 주류가 되는 형태의 산업으로 이행하는 현상이 의료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각종 비싼 진단기기를 들여놓고, 더 넓은 범위에서 생체 이상 징후를 찾아내고, 더 많은 수의 환자를 선제적으로 발굴해야만 의료산업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외견상으로는 국민 건강 증진이라는 숭고한 목표가 존재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경제적 하부구조가 일으킨 동력이 만든 결과다. 이러한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문제가 의대 정원 확대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객관적인 의사 수요’는 환상
 
2024년 3월 11일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반대하는 피케팅을 하는 부산대병원 교수진과 의대생들. 의대생 증원의 근거를 묻는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조선DB
  의대 증원에 대한 논의 시작부터 따라붙은 논란이 바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의사 수요’를 추계(推計)한 게 맞느냐는 것이었다. 어느 연구를 통해 살펴보면 증원은 몇백 명이 적절하고, 또 다른 연구에서 도출된 결과는 몇천 명도 부족하다는 식이다. 그런데 애초에 객관적인 의사 수요를 산출할 방법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고혈압이나 당뇨병의 ‘정상 수치’라는 것도 결국 사회적 합의의 산물로서 연속적인 값 어디에 경계선을 그은 것일 뿐이다. 그마저도 검진을 통한 시장 확대를 노리는 제약산업과 보험사 그리고 의료계의 이해관계가 맞물려서 나타난 복잡한 구조적 결정의 산물일 뿐이다.
 
  그런데 ‘적정 수준의 의료’라는 게 과연 수리적(數理的)으로 계산해 낼 수 있는 값인가? 앞에서 살펴봤듯 현대의 의료 패러다임은 점점 더 많은 의료를 이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병리적(病理的)’이라 여겨지는 진단 수치는 점점 더 엄격해지고 있다. 심장마비 예방을 위해 고혈압을 치료하자는 논의는 어느새 ‘고혈압으로의 진행을 막기 위해’ 고혈압 전(前)단계를 치료하자는 ‘예방의 예방’까지 나아간 상태다.
 
  의료의 이런 역사적 변화 경로를 조망했을 때, 질병으로 정의되는 신체적 증상들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한때는 질병으로까지 포섭되진 않았던 비만이 이미 ‘의료화(medicalization)’를 거쳐 ‘질병’이 되었고, 질병이 된 비만에 대한 치료제로 다양한 약물이 출시되어 막대한 매출을 발생시키고 있다. 퇴행성 질병의 일종이라 여겨지던 치매 역시 치료제의 개발과 동시에 ‘개선 가능한 질병’으로 재(再)범주화되었고, 앞으로의 생명과학 발전에 따라 노화(老化) 자체가 질병으로 정의될지도 모른다. 전체 인구에서 만성적인 질병을 앓는 환자의 비율이 지속적으로 늘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면 의대 정원을 얼마나 늘리든 의사는 계속 부족할 수밖에 없고, 의사가 늘어나는 만큼 새로운 질병의 정의와 재범주화도 늘어 재차 의사 부족을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 물론 고령인구의 증가로 인해 불가피하게 늘어나는 의료 수요도 분명히 있긴 하다. 그 역시 합의와 결단의 문제이지 특정 수치가 근거로서 맹신할 값이 될 수는 없다.
 
 
  국민들, 의대 증원은 동의하지만…
 
  의정(醫政) 갈등이 시작된 지 1년이 다 돼가는 중이다.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가 존재하고,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의사 수를 늘려야 하는 것도 맞긴 하다. 그런데 정확히 알 수 없는 이유로 특정 증원 숫자를 고집하며 합의 없는 대치 상태를 이어가다 보니 상황이 이 지경으로 악화됐다. 지난 2024년 11월에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2024년 6월부터 약 3개월 간격으로 같은 질문을 국민들에게 던진 결과 ‘의대 증원 찬성’은 꾸준하게 50%를 넘어섰으나, ‘정부가 잘하고 있다’는 의견은 38%에서 18%로 대폭 감소했고, ‘증원 규모를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은 48%에서 50%로 소폭 증가했다. 방향은 맞더라도 속력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 국민 대부분의 의견인 셈이다. 그런데도 갈등이 그 상태로 방치된 탓에 예비 의사들의 학습 환경은 심각하게 악화됐고, 의사 사회가 쌓아온 고유의 숙련 지향적 문화 역시 망실되어 가는 중이다.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더 늦기 전에 결자해지(結者解之)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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