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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에 물들다 〈16〉 목을 매달려는 사람은 밧줄을 주게 되어 있어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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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름이 아니라… 사람이 죽고 나면 영혼이라는 것이 있나요?”
⊙ 나 두 야 가련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중국의 계획생육 정책을 홍보하는 대형 그림. 사진=위키백과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중국 작가 모옌(莫言·69)의 장편소설 《개구리》를 읽었다. 그는 1988년 베를린 국제영화제 황금곰상을 받은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붉은 수수밭〉의 원작인 소설 《홍까오량 가족》을 쓴 유명 작가다.
 
  《개구리》는 ‘나’(소설 속 이름은 ‘샤오파오’)의 눈으로 본 고모 ‘완신’의 이야기다. 소설이긴 하되 모두 네 편의 긴 편지글과 한 편의 희곡 작품으로 이뤄져 있다. 1970년대 중국의 산아(産兒) 제한 정책인 ‘계획생육’ 이야기가 중심이다.
 
  계획생육 정책을 이해하기 위해선 중국의 폭발적인 베이비붐 시대를 이해해야 한다.
 
  1949년 10월 1일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에서 마오쩌둥이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공식 선언할 당시 중국의 인구는 5억4100만 명이었다. 이후 국가 생산력이 늘고 흉년도 없었다. 의식주가 편해지자 여성들은 앞 다투어 아이를 낳았다.
 
 
  한 자녀 갖기 정책이 낳은 ‘웃픈’ 이야기
 
모옌의 장편소설 《개구리》.
  1969년 중국 인구가 8억 명을 넘어섰다. 20년 만에 인구 3억이 는 것이다. 저우언라이(周恩来) 총리의 건의와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의 동의로 1971년 ‘계획생육 사업 완수에 관한 보고’를 통해 인구 증가 억제 지표를 발표하면서 강제적인 ‘한 자녀 갖기’ 정책이 시행됐다.
 
  남편은 첫아이를 낳자마자 정관수술을 받아야 했고 아내가 둘째를 임신하면 낙태와 유산을 강제했다. 다만 농촌의 경우 첫째가 딸일 경우 8년이 지난 후에 한 명을 더 낳을 수 있도록 했다. 이러니 수많은 가정에서 고통과 비극이 일어났다.
 
  소설 《개구리》는 외진 시골 마을인 산둥성 가오미현 둥베이향에서 벌어진 산부인과 의사 완신의 강제적인 낙태와 정관수술을 둘러싼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작품 구성은 비극적이지만 문체는 부드럽고 내용은 아이러니처럼 ‘웃프다’.
 
  〈바짓가랑이를 접어 올리고 개구리 떼와 씨름하며 바삐 길을 서두르는 여의사, 소매가 온통 피로 얼룩진 채 한 손에 갓난아기를 받쳐 들고 큰 소리로 환하게 웃고 있는 여의사, 구깃구깃한 옷에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담배를 물고 있는 여의사….〉(소설 《개구리》 중에서)
 
  동서양 의술에 두루 능통한 ‘나’의 고모 완신은 공산당의 지시에 따라 ‘계획생육’ 정책의 실현에 앞장선다. 국권(國權)에 충실한 도살 집행자가 된 것이다.
 
  〈고모는 집집이 돌아다니며 피임약을 나누어 주기도 했어요. 하지만 부작용을 우려한 여성들이 피임약을 거부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억지로 입에 틀어넣어도 뒤로 돌아 손가락이나 젓가락을 입에 넣어 약을 토해 버렸죠. 상황이 이러니 결국 남성에 대한 정관수술을 시행하게 되었습니다. (중략)
 
  그즈음 마을 방송에 자주 고모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각 대대 간부들은 주목하십시오. 공사 계획생육 지도분과 8차 회의 정신에 따라 아이를 셋 이상 낳은 남자는 모두 공사 위생원에 와서 정관수술을 받으십시오.〉

 
  장교인 ‘나’는 어린 시절 소꿉친구 왕런메이와 결혼해 딸을 낳았다. 군인으로 출세하려면 산아 제한 정책을 철저히 따라야 했는데 만약 어기면 ‘고향 앞으로!’였다. 아내가 둘째를 임신하면서 비극이 발생했다. 왕런메이는 물론 어머니 또한 “후손이 없으면 제아무리 높은 자리에 올라도, 설사 마오 주석 다음가는 자리라 해도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아이를 숨어서 낳자고 호소하지만 고모는 극렬 반대, 낙태를 요구한다. 결국 왕런메이는 도망친다.
 

  〈변변치 못한 놈! 샤오파오! 이건 너 혼자만의 일이 아니야! 우리 공사는 삼 년 연속 단 한 건도 계획생육을 어긴 사례가 없어, 네가 그 기록을 깰 작정이야?
 
  난처해진 저는 이렇게 말했어요. 왕런메이가 죽자 사자 소동을 피우는데, 저러다 정말 무슨 일이라도 저지르면 저는 어떡해요?
 
  고모가 냉정하게 말했어요. 우리 지역 방침이 뭔지 알아? 독약을 먹겠다는 사람은 약병을 빼앗지 않고, 목을 매달려는 사람은 밧줄을 주게 되어 있어. (중략)
 
  누군 그러고 싶어 그러는 줄 알아?〉

 
 
  ‘위대한 이치’와 ‘악질 분자’ 사이
 
2011년 8월 12일 중국 소설가 모옌(왼쪽)이 만해대상 문학 부문 대상을 받았다. 사진=조선DB
  고모 완신은 계획생육, 인구통제가 ‘위대한 이치’라고 믿는다. ‘악질 분자’ 역할을 하는 것도 고모는 두렵지 않다. “죽어 지옥에나 가라”고 욕하는 사람들의 비난도 감내하는 인물이다. “철저한 유물론자들은 두려움이 없다”고 믿는다. 결국 숨어 있다가 발각돼 수술대에 오른 왕런메이는 배 속의 아이도 죽고 자신도 죽고 말았다. 고모가 자기 소매를 걷어붙여 굵은 주삿바늘로 피를 뽑아 왕런메이의 팔에 수혈을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전 수술실 문을 박차고 들어갔습니다. 하얀 천이 런메이를, 런메이의 몸을, 런메이의 얼굴을 덮고 있었습니다. 고모는 온몸에 선혈이 낭자한 채 맥없이 접이식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중략)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가 싶더니 이어서 마치 작은 벌 몇 마리가 귓가에서 윙윙거리는 것 같았습니다.
 
  고모… 그러니까… 고모가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했잖아요?〉

 
  아내의 장례를 치르고 식구들이 안정을 찾는 걸 보고 ‘나’는 곧바로 부대로 복귀했다. 한 달 후 다시 전보 한 통을 받았다. ‘모친 사망. 속히 귀가 바람.’ ‘나’는 휴가 신청을 하면서 전역 신청서도 함께 제출했다. 아내도, 배 속의 아이도, 그 충격으로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난 것이다.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른 그날 밤, 유난히 밝은 달빛이 마당을 밝히고 있었다. 배나무 아래 짚을 엮어 만든 자리에서 잠든 딸을 위해 아버지가 부채를 들고 모기를 쫓고 있었다. 강낭콩 덩굴 위에서 여치가 카랑카랑하게 울고 있고, 강 쪽에서 물소리가 들려왔다.
 
  “재혼해야지.”
 
  아버지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여자가 없으니 집안 꼴이 말이 아니다.”
 
  “전역 신청서를 냈어요. 돌아온 후에 다시 생각해볼게요.”
 
  “멀쩡하던 집안이 순식간에 이 꼴이 되었구나.”
 
  아버지는 “누굴 원망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탄식하며 이렇게 말했다.
 
  “고모 탓이라고 할 수도 없어. 고모가 무슨 잘못이 있는 것도 아니잖니.”
 
  “고모같이 충성스러운 사람이 없으면 나라에서 내놓는 정책들을 실천하기가 쉽지 않겠죠.”
 
  “그야 그렇지. 한데 왜 그 일을 네 고모가 떠맡아야 하느냐 말이다.”
 
  세월이 흘러 퇴직한 고모는 점토 공예가인 남자를 만나 결혼한다. 그리고 자신이 중절한 아이들의 모습을 점토 인형으로 빚으며 속죄한다.
 
  〈인형을 받쳐 든 고모가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 인형을 요리조리 살펴보았습니다. 고모의 얼굴이 한껏 포근해졌습니다. 그래요. 바로 이 모습이에요. 그 애예요. 고모는 갑자기 말투를 바꾸어 인형에 대고 말했습니다. 바로 너야, 꼬마 요정! 빚 받아 가야지! 이 고모할머니가 저세상으로 보낸 2800명 아이 중에 네 녀석이 빠졌어. 이제 너까지 모였으니 모두 모인 셈이구나! (중략)
 
  고모가 들고 있던 인형을 하나 남은 빈 공간에 올려두고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중앙에 놓인 조그만 제사상 위에 향 세 자루를 피운 다음 무릎을 꿇고 두 손을 합장한 후 중얼거렸습니다.〉

 
  소설 제목이 ‘개구리[蛙]’인데, 다산(多産)의 의미와 함께 올챙이가 남성의 정자와 닮았음을 상기시킨다. 개구리는 작가 모옌의 고향(산둥성 가오미현)에서 전해 오는 민속 토템이기도 하다. 소설 속 고모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자신이 낙태시킨 생명이 울부짖는 소리처럼 느껴져 무서워한다. 때로 개구리 울음의 환청에 기절한다.
 
  그러나 개구리 울음은 생명력의 상징이다. 산아 제한조차 법으로 옭아매는 공산당의 구호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 숨 쉬는 민중의 외침을 담고 있다.
 
  모옌은 소설 《개구리》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계획육성 정책에 얽힌 이야기가 허구가 아님을 밝힌다. 그의 고모는 평생 산부인과 의사로 일했고 낙태한 여성들의 통곡과 그 가족의 욕설을 감내해야 했다고 고백한다. 고모의 깊은 마음속 고통과 모순은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었다”고 모옌은 회고했다.
 
 
  루쉰의 단편 〈축복〉의 샹린댁 이야기
 
1930년대 루쉰의 모습이다. 본명은 ‘저우수런(周樹人)’이고, ‘루쉰’이라는 이름은 그가 글을 쓸 때 사용한 이름이다. 사진=Corbis/토픽이미지
  소설 《개구리》에 루쉰(魯迅·1881~1936년)의 단편 소설 〈축복〉이 잠깐 언급돼 있어 찾아 읽어보았다. 김동인(金東仁·1900~1951년)의 단편 〈감자〉 〈붉은 산〉과 같은 자연주의 경향의 작품이었다.
 
  소설 〈축복〉 속 ‘나’는 음력 세밑에 고향 루전으로 돌아왔다. 고향이라지만 집도 없어서 루쓰 어른 댁에 잠시 머무를 수밖에 없는 처지다. ‘나’는 마을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강가에서 샹린댁과 만났다. 5년 전 보았을 땐 희끗희끗하던 머리가 지금은 백발이 되어 있었다. 얼굴에 어렸던 슬픈 빛조차 지금은 다 사라져 마치 목각인형 같다. 아무리 봐도 마흔 전후의 나이로 보이지 않는다. 뜻밖에 그가 먼저 ‘나’에게 물었다.
 
  “돌아오셨군요. 글을 아는 분이고 출세까지 했으니 아는 것도 많겠지요.”
 
  흐릿하던 그의 눈이 돌연 빛났다.
 
  “다름이 아니라… 사람이 죽고 나면 영혼이라는 것이 있나요?”
 
  ‘나’는 오싹함을 느꼈다. 영혼이 있는지 없는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아주 짧게 망설이다 그가 바라는 것을 말해주는 편이 나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어물어물 “있을 것 같네요”라고 말한다.
 
  “그럼, 지옥도 있겠지요?”
 
  “아! 지옥요? 이치로 보면 분명 있어야겠지요. 하지만 꼭 그렇다고 할 순 없지요. 그런 걸 본 사람이 없으니….”
 
  “그럼, 죽은 가족은 다시 만날 수 있나요?”
 
  “그게, 만날 수 있는지 없는지….”
 
  ‘나’는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이 세 가지 질문을 감당할 수 없다. 갑자기 겁이 나서 방금 전에 한 말을 죄다 물리고 싶었다. “그건… 사실 확실하지는 않다. 실은 영혼이 있는지 없는지 정확하게는 모른다”고 말하며 도망치듯 헤어졌다.
 
  이튿날 ‘나’는 뜻밖에도 샹린댁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에 빠진다. ‘나’는 전에 보고 들었던 그녀의 반평생 편린(片鱗)을 떠올리며 샹린댁을 추억한다.
 
  샹린댁보다 열 살이 어린 남편은 나무꾼이었는데 어느 해 봄에 죽고 말았다. 그는 시댁에서 도망쳐 루쓰 집안의 하인이 되었다. 어떤 투정도 없이 전혀 몸을 돌보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남자 머슴보다 더 부지런했다.
 
  〈사람들이 저마다, 루쓰 어른 댁에서 고용한 식모가 부지런한 남자 머슴보다 더 부지런하다고 말했다. 연말이 되면 먼지를 털어내는 일, 바닥을 닦는 일에서부터 닭을 잡고 거위를 잡는 등 밤을 새워 복례 음식을 차리는 일까지 전부 혼자 떠맡아서 날품팔이꾼을 쓰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만족해했고, 점차 입가에 웃음기를 지었으며 얼굴에도 허여멀겋게 살이 올랐다.〉(소설 〈축복〉 중에서)
 
 
  샹린댁이 겪은 또 다른 비극
 
근현대 중국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루쉰의 《루쉰 소설 전집》.
  하지만 얼마 후 샹린댁은 시어머니에게 잡히고 말았다. 품삯도 시어머니가 가져갔다. 심지어 시어머니는 샹린댁을 어느 산골 허씨(賀氏) 마을의 허라오류(賀老六)라는 늙은이에게 80냥에 팔아버렸다. 그 돈은 샹린댁의 시동생을 장가보낼 밑천으로 쓰였다.
 
  〈(개가한) 샹린댁은 보통사람들과는 달랐대요. 그들이 말하길 그녀는 가는 길 내내 울부짖고 욕을 하며 허씨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목이 꽉 잠겨버렸다더군요. 가마에서 끌려나온 뒤에도 두 남자와 시동생이 힘껏 붙들었지만 식을 올릴 수가 없었답니다. 그 사람들이 잠깐 방심하여 손을 늦추었더니, 어이구, 나무아미타불, 그녀는 혼례상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쳐 이마에 커다란 구멍을 냈답니다. 피가 펑펑 쏟아져 두 묶음이나 되는 향불 재를 바르고 붉은 헝겊으로 싸맸는데도 피가 멈추지 않았대요. 여러 사람이 달려들어 그 여자를 신랑과 함께 신방에 집어넣고 밖으로 문을 잠갔는데도 욕을 하더라는군요. 아이구, 정말….〉
 
  샹린댁은 이후 마음을 고쳐먹고 허라오류 사이에서 아들까지 낳았다. 그런데 어느 해 가을, 샹린댁의 팔자가 폈다는 소식이 있은 지 2년이 지나서였다. 그녀가 다시 루쓰 어른 집을 찾아온 것이었다. 흰 끈으로 머리를 동여매고 있었고 눈을 내리깔았는데 눈꼬리에는 눈물 흔적이 보였다고 한다. 알고 보니 허라오류가 장질부사로 죽었고, 어린 아들마저 이리가 물어간 것이었다. 그러고 얼마 후 남편의 큰아버지 되는 사람이 와서 집을 빼앗고 샹린댁마저 쫓아내고 말았다.
 
  그는 하는 수 없이 다시 루쓰 어른을 찾았다. 그러나 예전같이 손발이 민첩하지도 기억력이 좋지도 않았다. 마을 사람들도 그를 차갑게 대했고 비참한 삶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어느 날 류어멈이란 일꾼이 샹린댁에게 이렇게 말했다.
 
  〈좀 더 힘이 세거나 아니면 그때 차라리 책상에 머리를 부딪쳤을 때 죽어버렸으면 좋았을걸. 지금에 와서, 자네는 두 번째 남편과는 이태도 살아보지 못하고 죄명만 뒤집어쓴 꼴이 되었어. 생각해봐. 자네가 죽어서 저승에 가면 귀신이 된 두 남자가 서로 차지하려고 다툴 터이니, 자넨 어느 쪽으로 가야 하지? 염라대왕은 자네를 톱으로 잘라서 두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수밖에 없을걸. 그렇게 되면 정말…. (중략)
 
  내 생각인데, 자네가 서둘러 방비를 해두는 것이 좋을 거야. 토지묘에 가서 문지방 하나를 기증하게. 그걸 자네 몸 대신 천 명의 사람들에게 밟게 하고, 만 명의 사람들이 타고 넘게 하면 이 세상의 죄도 사라지고, 죽은 후에도 고통을 면할 수 있게 될 거야.〉

 
  샹린댁은 류어멈의 말에 속아 은화 열두 냥을 내고 문지방을 기증하고 말았다. 이후 그는 얼빠진 사람마냥 우두커니 서 있거나 겁이 많아져서 깜깜한 밤을 무서워할 뿐만 아니라, 검은 그림자만 보아도 무서워하고 사람만 보면 벌벌 떠는 것이 마치 대낮 생쥐 같았다.
 
  결국 루쓰 어른 집에서 쫓겨나 거지가 되었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루쉰의 소설 제목은 〈축복〉이다. 중국에서 축복은 복을 비는 제사라는 뜻을 담고 있다. 샹린댁이 이토록 불행하게 된 이유는 그의 운명 때문일까, 아니면 무지몽매함 때문일까. 불행에 눈감은 이웃의 잘못은 없을까.
 
 
  최서해의 단편 〈홍염〉 속 서간도 이야기
 
서울 망우리공원에 있는 작가 최학송 문학비. 그는 체험을 바탕으로 한 ‘빈궁문학’의 선구자이다. 대표작으로 〈탈출기〉 〈홍염(紅焰)〉 〈그믐달〉 등이 있다.
  〈축복〉을 읽은 뒤 최서해(崔曙海·1901~1932년)의 단편 소설 〈홍염(紅焰)〉을 읽었다. 소설은 1927년 《조선문단》 1월호에 실렸다. 서해의 본명은 학송(鶴松). 주로 가난한 하층 사람의 호소와 절규를 다룬 빈궁(貧窮)문학으로 1920년대 식민지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탈출기〉(1925), 〈박돌의 죽음〉(1925), 〈기아와 살육〉(1925) 등이 대표작이다. 그의 작품은 대개 가족의 가난과 죽음을 다루고 있는데 〈홍염〉도 소작료를 지불하지 못하는 지주와 소작인의 갈등이 원인이다.
 
  〈홍염〉은 일제의 강제 수탈로 궁핍한 1920년대 중국 서(西)간도의 가난한 마을을 배경으로 조선인 이주자 문 서방과 중국인 지주 인가(殷哥)의 대립을 통해 조선인의 비참한 삶과 저항을 그렸다.
 
  〈겨울은 이 가난한—백두산 서북편 서간도 한 귀퉁이에 있는 이 가난한 촌락 바이허[白河]에도 찾아들었다. 겨울이 찾아들면 조그만 강을 앞에 끼고 큰 산을 등진 바이허는 눈 속에 묻히어서 차디찬 좁은 하늘을 쳐다보게 된다.
 
  눈보라는 북국의 특색이라 바이허의 겨울에도 이러한 특색이 있다. 이것이 바이허의 생령들을 괴롭게 하는 것이다.
 
  오늘도 눈보라가 친다. (중략) 눈보라 때문에 눈도 뜰 수 없거니와, 지척을 분간할 수 없이 되어서 집은커녕 산도 보이지 않았다.〉(소설 〈홍염〉 중에서)

 
  문 서방은 원래 경기도 어느 곳의 소작인이었다. 도저히 살 수가 없어 딸 하나를 앞세워 아내와 서간도 바이허에 정착했다. 그러나 지팡살이[小作人]의 멍에를 벗을 수 없었다.
 
  중국인 지주 인가의 소작인이 되었으나 겹친 흉년으로 갚아야 할 소작료를 낼 수 없었다. 인가는 그의 딸 용례를 빼앗으려는 음흉한 속셈으로 유독 문 서방에게만 가혹하게 재촉했다.
 

  〈“예 왔소? 장구재(주인) 있소?”
 
  지주 인가는 어설픈 웃음을 지으면서 마당에 들어서다가 뒤줏간 앞에 앉은 문 서방을 보더니,
 
  “응 저기 있소!”
 
  하고 손가락질을 하면서 그 앞에 가 수캐처럼 쭈그리고 앉았다.
 
  서천에 기운 태양은 인가의 이마에 번지르르 흘렀다.
 
  “어디 갔다 오슈?”
 
  문 서방은 의연히 옥수수를 바르면서 하기 싫은 말처럼 힘없이 끄집어내었다.
 
  “문 서방! 그래 오레두(올해도) 비들(빚을) 못 가프겠소(갚겠소)?”
 
  인가는 문 서방 말과는 딴전을 치면서 담뱃대를 쌈지에 넣는다.
 
  “허허 어제두 말했지만 글쎄 곡식이 안 된 거 어떡하오?”
 
  “안 돼! 안 돼! 곡식이 자르되고 모 되구 내가 아르오? 오늘은 받아가지구야 가겠소!”
 
  인가는 담배를 피우면서 버티려는 수작인지 땅에 펑덩 들어앉았다.
 
  “내년에는 꼭 갚아드릴께 올만 참아주오! 장구재(주인)도 알지만 흉년이 되어서 되지두 않은 이것(곡식)을 모두 드리면 우리는 어떻게 겨울을 나라구 응?… 자 내년에는 꼭, 하하….”
 
  인가를 보면서 넋 없는 웃음을 치는 문 서방의 눈에는 애원하는 빛이 흘렀다.〉

 
  그러나 빚을 못 갚아 빚 대신 외동딸을 빼앗긴 문 서방 내외는 절망에 빠졌다. 화병으로 누운 문 서방의 아내는 딸 용례를 한 번이라도 만나보기를 원했다. 문 서방은 인가의 집을 찾아갔다. 대문에는 울긋불긋한 채필로 그려진 무서운 관운장과 장비가 버티고 있었다. 인가를 만난 문 서방은 아내가 다 죽어가니 딸을 보여달라고 통사정하지만 인가는 거절한다.
 
  〈부뚜막에 놓은 낫을 들어서 인가의 배를 확 긁어놓고 싶었으나 아직도 행여나 하는 바람과 삶에 대한 애착심이 그 분(憤)을 제어하였다.
 
  “그러지 말고 제발 보여주오! 그러면 내 아내를 데리구 올까? 아니 바람을 쏘여서는… 엑 죽어도 원이나 끄고 죽게 내가 데리고 올게 낯만 슬쩍 보여주오, 네? 흑… 끅… 제발….”
 
  이십 년 가까이 손끝에서 자기 힘으로 기른 자기 딸을 억지로 빼앗긴 것도 원통하거든, 그나마 자유로 볼 수도 없이 되는 것을 생각하니… 더구나 그 우악한 인가에게 가슴과 배를 사정없이 눌리는 연연한 딸의 버둥거리는 그림자가 눈앞에 언듯하여, 가슴이 꽉 막히고 사지가 부르르 떨리면서 주먹이 쥐어졌다.〉

 
 
  살인과 방화 이야기
 
박용철 시인
  그러나 병석의 아내가 떠오르면서 그의 주먹은 풀리고 머리는 숙어졌다. 밖으로 나가는 인가를 울며 따라가는 문 서방에게, 마당에 한참이나 서서 무엇을 생각하던 인가는 지전(紙錢) 몇 장을 손에 쥐여주었다.
 
  집으로 돌아온 그의 앞에서 아내는 피를 토하며 죽고 바이허의 이웃들은 죽음을 목격하고 “우리도 다 그 신세지”라며 한마디씩 되뇐다.
 
  이튿날 문 서방은 인가의 집 뒤에 쌓아 놓은 보릿짚 더미에 불을 질렀다. 치솟아 오르는 홍염(紅焰)을 바라보며 문 서방은 쾌감을 느낀다. 불 속에서 두 그림자가 어리는데 앞에 섰던 장정의 그림자를 향해 문 서방의 도끼가 향했다. 그리고 어린 딸을 품에 안았다.
 
  〈이런 불 속에서 여러 사람이 오고 가는 밭 가운데로 튀어가는 두 그림자가 있었다. 하나는 커다란 장정이요, 하나는 작은 여자이다. 뒷산 숲에서 이것을 본 문 서방은 그 두 그림자를 향하고 내리뛰었다. 그는 천방지방 내리뛰었다. 독살이 올라서 불빛에 번쩍이는 그의 눈에는 이 두 그림자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으윽 끅.”
 
  문 서방이 여러 사람을 헤치고 두 그림자 앞에 가 섰을 때, 앞에 섰던 장정의 그림자는 땅에 거꾸러졌다. 그때는 벌써 문 서방의 손에 쥐었던 도끼가 장정 인가의 머리에 박혔다. (중략)
 
  “용례야! 놀라지 마라! 나다! 아버지다! 용례야!”
 
  문 서방은 딸을 품에 안으니 이때까지 악만 찼던 가슴이 스르르 풀리면서 독살이 올랐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떨어졌다. 이렇게 슬픔 중에도 그의 마음은 기쁘고 시원하였다. 하늘과 땅을 주어도 그 기쁨을 바꿀 것 같지 않았다.〉

 
  이 작품은 갈등의 해소를 살인과 방화라는 극단적이고 비극적인 해결 방식을 택하고 있다. 1920년대 다수의 신경향파 문학이 이런 식의 클라이맥스와 대단원으로 구성되었다. 현실의 모순과 울분을 등가의 폭력과 저항으로 되갚는 대응은 속 시원하게 보일 수는 있지만, 그리고 불가피한 방식일지라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근본적인 해결책일까. 그 해답은 독자 여러분이 찾길 바란다.
 
  이 소설을 읽다 보니 박용철(朴龍喆·1904~1938년)의 시 ‘떠나가는 배’가 생각났다. 1930년 《시문학》 창간호에 실린 이 작품은 정든 고향과 조국을 떠나는 유랑인의 비애를 노래한다.
 
  나 두 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가련다.
 
  아늑한 이 항구인들 손쉽게야 버릴 거냐.
  안개같이 물 어린 눈에도 비치나니
  골짜기마다 발에 익은 묏부리 모양.
  주름살도 눈에 익은 아아 사랑하는 사람들.
 
  버리고 가는 이도 못 잊는 마음
  쫓겨 가는 마음인들 무어 다를 거냐.
  돌아다보는 구름에는 바람이 희살짓는다.
  앞 대일 언덕인들 마련이나 있을 거냐.
 
  나 두 야 가련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간다.
 
  -박용철의 시 ‘떠나가는 배’ 전문
 
  (‘묏부리’의 표준어는 ‘멧부리’. 산등성이나 산봉우리의 꼭대기를 뜻한다. ‘희살짓다’는 짓궂게 훼방 놓다는 의미로 표준어는 ‘헤살짓다’이다.)

 
  이 시는 ‘나 두 야 간다’에서 ‘나 두 야’를 의도적으로 띄어 쓰고 있다. 시를 읽을 때 각각의 음절을 강하게 소리 내어 읽게 된다. 시적 화자의 삶에 대한 의지를 느낄 수 있다. 당대 식민지 청년의 울분과 열정을 떠올리니 가슴이 뜨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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