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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 ⑯ 화장과 성형의 한국인 얼굴

눈빛이 죽으면 내 존재가 죽고, 그 나라가 망해

정리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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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 내 얼굴 아니라 아이콘 표정으로 대신하는 시대
⊙ 셀카 속에서 우리는 웃거나 울고, 아름답거나 우스꽝스럽다
⊙ 호탕한 영웅이 되지 못할 바에야 여인의 얼굴에 눈썹을 그리며…
⊙ 성형수술로 新몽골로이드 얼굴 버리고 서양인의 얼굴 닮아가
⊙ 일본 사람들의 눈빛이 사라지면서 일본은 ‘잃어버린 20년’ 겪어

李御寧(1933~2022)
서울대 국문학과·同 대학원 졸업, 문학박사 / 경기고 교사, 이화여대 교수, 《조선일보》 《한국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 《서울신문》 논설위원, 동아시아 문화도시 조직위원회 명예위원장,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 조직위원장, 초대 문화부 장관 역임

[편집자 註]
이어령 선생이 타계한 지 1년이 지났다. 선생은 생전(生前) 시리즈 ‘한국인 이야기’의 문패에다 ‘끝나지 않은’이란 수식어를 직접 붙이셨다.
생전 선생은 당신이 남긴 굵직한 저작물과 수많은 강연에서 언급한 ‘한국인 이야기’를 비록 당신이 떠나도 계속 이어가기를 희망하셨고 관련 원고와 저서의 일부를 《월간조선》에 전하셨다. 또 선생이 남긴 바탕 위에 편집자의 생각을 보태도 된다고 허락하셨다. 아주 조심스럽게 선생이 남긴 큰 발자국을 따라 연재를 이어가고자 한다. 선생에게 누(累)가 되지 않기를 소망할 뿐이다.
셀카를 찍는 대학생들. 작년 8월 이화여대 학위수여식 후 모습이다. 사진=조선DB
  드디어 우리는 정보 시대에 도달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얼굴을 찾는 대장정의 마지막 단계이다.
 
  정보화 시대가 되면서 우리는 이메일, 카카오톡 등 많은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도구를 이용하고 있다.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은 사실을 전달하는 훌륭한 수단이지만, 반면 감정을 담기는 어렵다.
 
  그래서 이러한 도구와 함께 발전하는 것이 이모티콘(emoticon)이다. 이모티콘은 감정을 뜻하는 이모션(emotion)과 그림을 뜻하는 아이콘(icon)의 합성어다. 인터넷이 만들어낸 정보화 시대의 디지털 소통에서 감정을 표현하는 도구인 셈이다. 디지털 소통에 있어 미묘한 감정이나 상태 등을 전달하기 위해 사용된다. 정보화 시대에 우리의 얼굴은 아이콘인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표정을 감춘 채 아이콘을 통해서 울거나, 웃으며 상대방에게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 진짜 내 얼굴이 아니라 아이콘의 표정으로 얼굴을 대신한다. 마치 옛날 사람들이 가면을 쓴 것처럼 현대의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가면을 언제든 쓰고 벗을 수 있게 되었다. 아이콘은 이 시대의 가면이다.
 
  반면 가면과 아이콘의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은 인식의 현실감이다. 가면은 누가 보더라도 ‘아, 저 사람이 가면으로 자신의 진짜 얼굴을 가리고 있구나’라는 것을 안다. 즉 진짜 얼굴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이콘은 인간의 뇌가 이것을 진짜 사람의 얼굴로 인식하게 된다. 모바일 메신저에서 스마일 아이콘을 보내면 타인의 뇌는 내가 정말 웃는 것으로 생각하고 인식한다.
 
  재미있는 것은 문화에 따라 이모티콘 역시 달라진다는 것이다. 서양은 옆얼굴로 표현하고 일본은 아직도 종서(縱書·세로로 글을 쓰는 것)의 문화이니 이모티콘 역시 세로 방향으로 만들어진다. 문화에 의해 똑같은 이모티콘이라도 달라지는 것이다. 우리의 얼굴은 사라지고 문화 속에서 문화를 반영하는 이모티콘들이 나타난다.
 
  앞서 우리는 한국인의 특성 중 무표정함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표정은 꾸밀 수 있지만 안색은 꾸밀 수 없다. 서양 사람들은 표정은 보지만 안색은 보지 못한다. 표정이라는 말과 안색이라는 말이 영어에서는 구별되지 않는다. 한국인들은 표정 이면에 숨겨진 안색을 본다. 정철(鄭澈·1536~1593년)이 쓴 시 한 구절을 보자.
 
  ‘반기시는 낯빛이 예와 어이 다르신고….’
 
  -정철의 장편가사 〈속미인곡(續美人曲)〉 중

 
  정철은 시에서 표정은 똑같이 반기고 있는데 낯빛, 안색이 다름을 이야기하고 있다. 너와 나의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은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는 표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절대 숨길 수 없는 낯빛에 있는 것이다.
 
  우리 민족이 눈치가 굉장히 빠른 것은 사실인가 보다. 웃고 있는데도 안색이 별로 안 좋으면 그건 화내는 것임을 알아챈다. 그러니 한국인은 비록 무표정한 국민이지만, 표정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민족이 아니라 그 안에 진정으로 숨겨진 안색이라는 또 다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소통하는 민족인 셈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보화 시대에는 이러한 낯빛의 문화가 사라졌다. 감정의 전달에 아이콘이 자리하여 나를 대신해주고 있지만, 아이콘에는 낯빛이나 안색을 전달할 방법이 없다. 매일 수없이 쏟아지는 아이콘이라는 가면을 쓰고 현대인은 자신의 얼굴을 감추고 있다.
 
 
  또 하나의 얼굴, 셀카
 
  또 하나의 문화는 바로 셀카다. 자기 자신을 촬영하는 것을 한국식 표현으로 셀카(셀프카메라·self camera)라고 부르는데 영어로는 셀피(selfie)라고 한다. 2013년 영국 옥스퍼드대학은 ‘셀피(셀카)’를 올해의 단어로 뽑았고, 몇 해 전 미국 《타임》지는 ‘셀카봉(selfie stick)’을 최고의 발명품 가운데 하나로 선정했다.
 
  원래 얼굴은 남이 보기 위한 것이었다. 때문에 사진 역시 남이 찍어줘야 하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자기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찍는다. 지금까지의 얼굴은 내 몸에 있지만 숨어 있는 것이었다. 남이 봐주는 것. 그러나 지금은 내 얼굴을 내가 본다. 남이 나를 보듯이 내가 나를 본다. 심지어 아무도 없는 우주선 안에서도 셀카를 찍는다.
 
  세계 최초의 셀카 사진은 네덜란드 출신 미국 사진작가 로버트 코넬리우스(Robert Cornelius)로 알려져 있다. 이 사진은 1839년 10월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그의 집 뒷마당에서 촬영한 것이라고 한다. 해당 사진이 최초 셀카라 평가받는 이유는 인물 포즈에 있다. 초창기 사진들 속 인물들이 경직된 포즈를 하고 있다면 코넬리우스는 표정이나 각도 등이 현재 통용되는 셀카와 유사하다.
 

  정보화 시대의 셀카는 이모티콘과 함께 나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얼굴이 되었다. 셀카 속에서 우리는 웃거나 울고, 아름답거나 우스꽝스럽다. 촬영자의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다시 찍고 지우기를 반복할 수 있으며, 그중 선택된 이미지의 표정을 누군가에게 전달하여 상대방에게 그 얼굴을 진실처럼 믿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셀카는 카메라의 등장과 함께 발전하였지만, 당시의 장비는 중장비에 가까웠다. 진정한 의미의 셀카는 디지털 시대로 넘어오면서, 특히 휴대전화 카메라의 보급에 따라 더욱 가속화되었다. 현대인은 수많은 셀카를 촬영하고, 선택하고, 지우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며 자신의 얼굴 중 가장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을 취사선택하여 공개한다. 촬영자의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동안(童顔)으로 보이게 할 수 있으며, 눈은 크게, 턱은 갸름하게, 피부 톤도 조절 가능하고, 촬영 배경까지 교체할 수 있게 되었다. 사진이 현실을 기록하는 도구이냐를 묻는 것은 의미 없는 질문이 된 지 오래다. 오히려 이 시대에 사진은 가장 허구적인 매체에 가까워졌다.
 
  또 하나 셀카의 범람은 소셜미디어의 발전과 그 궤를 함께한다. 라캉이 거울 이론에서 말했듯이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발견하고 가장 먼저 느끼는 것은 타인 속에 있을 때’이다. 스스로의 욕망은 순수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현시대에 수많은 셀카를 찍는 것은 단순히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소셜미디어를 통해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자신의 어떤 욕망을 손쉽게 전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전달된 이미지는 타인에게 ‘멋지다’ ‘아름답다’ ‘좋아요’ ‘대단해요’ 등의 피드백을 통해 완성되며, 허구적 셀카에 자신을 동일시한다.
 
 
  아름다워지려는 욕망
 
서울 시내 한 백화점 화장품 매장을 찾은 손님이 립스틱을 발라보고 있다. 사진=조선DB
  박가분(朴家粉)은 일제강점기인 1916년에 상표 등록되어 판매된 화장품이다. 여자들이 함부로 바깥출입을 할 수 없었던 시대에 집 안에서 자신의 피부색을 바꾸고 아름다움을 가꿀 수 있게 한 제품이다.
 
  당시의 어머니들에게 이 박가분은 최고의 사치였다. 화장품의 유통이 이 동네 저 동네를 돌아다니던 약장수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던 시대였는데 대부분 이 약장수들은 사기성이 농후해서 시골에 가서는 가짜 화장품을 팔기도 했다. 그런 화장품을 남편과 시어머니 몰래 퍼온 쌀과 바꿔가던 때였다.
 
  당시 박가분은 피부와 백분의 부착력을 높이기 위하여 납 성분을 넣었다. 이른바 납분 또는 염분이었다. 당연히 피부에 좋을 리가 없었다. 유해성분 때문에 몸에 좋지 않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화장을 해서 화장독 오른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어찌 보면 목숨을 걸고 화장을 한 셈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보는 사람들에게 더 예뻐 보이고, 아름다워지려고 한 것이다.
 
  물론 화장에 대한 관심은 그 이전 역사에서도 많이 찾을 수 있다. 일반인은 물론이거니와, 특히 왕의 간택을 받기 위해 궁녀들 사이에서는 화장이 매우 절실했다. 왕이 좋아한다는 소문이 나면 너 나 할 것 없이 따라 하는 유행이 되었다.
 
  역사자료에 의하면 당(唐) 현종(玄宗) 시기 여인들의 눈썹 형태는 매우 다채로웠다. 원앙미(鴛鴦眉), 소산미(小山眉), 오미(五眉), 삼봉미(三峰眉), 수주미(垂珠眉), 월미(月眉), 분초미(分梢眉), 함연미(涵煙眉), 불연미(拂煙眉), 도운미(倒暈眉) 등 12가지 방식이 있었다고 한다. 여인들은 매일 일어나면 눈썹부터 그리는 것이 당시의 유행이었다.
 
  여자들이 몇십 년에 걸쳐 하루도 안 빠지고 화장하는 걸 보자면, 어떻게 훌륭한 미술가 중에 여자들이 많지 않은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어떤 미술품이 얼굴 전체의 이미지를 바꾸는 눈썹만 한 게 있느냐는 말이다.
 
  이 세상에 그 어떠한 예술품도 여성의 아름다움만큼 사람을 설레게 하는 것은 없다.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는 말이 있듯 당 현종은 양귀비의 아름다움에 취해 나라를 망하게 하지 않았는가. 나라 하나와 바꾼 아름다움이다. 이태백은 당 현종을 멋쟁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중국의 고사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채신이라는 남자가 어느 날 부인의 눈썹을 그려줬는데 이 소문을 들은 중국의 관료들이 왕에게 여자의 눈썹이나 그려주는 채신을 파직(罷職)하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왕은 채신을 딱히 여겨 벌주지 않는다. 이를 보고 중국의 시인이 쓴 시가 있다.
 
  ‘사내대장부로 태어나서 세상을 호령하는 호탕한 영웅이 되지 못할 바에야 아름다운 달빛을 벗 삼아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에 눈썹을 그리는 것 또한 아름답고 좋은 게 아니겠느냐.’
 
  얼굴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오히려 쉽다. 하지만 문화적인 분석은 논쟁도 많고 그만큼 어렵다. 과학이야 자로 재는 숫자의 세계고 이론의 여지가 없는 객관성의 세계이지만 문화의 세계는 가치에 따라 그 해석이 달라진다. 채신의 일화에서처럼 눈썹을 그리는 행동이 파직의 대상일 수도 있지만 영웅에 못지않은 아름다운 행동일 수도 있는 것이다. 칼을 들고 세상을 호령하는 무(武)의 얼굴보다 책에 파묻혀 자연을 사랑하는 온화한 선비의 얼굴, 그 문(文)의 얼굴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 문화적인 얼굴이 생겨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화장품과 성형 산업
 
서울 강남구 신사동 일대의 성형외과 간판들. 사진=조선DB
  정보화 시대 우리 얼굴은 하나하나의 아이콘으로 대체되었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바깥출입마저 자유롭지 않았던 시대에 살았던 한국 여성들이 보자면 황홀한 세상이다. 시대와 역사가 바뀌어 이제 억압된 사회에서 벗어나 자기를 표현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것은 곧바로 자기중심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산업화의 과정에서 여성들의 바깥출입은 자유를 맞았으며 화장품 산업 또한 급속도로 발전하게 된다. 시골에서 화장품을 파는 약장수는 사라진 지 오래다. 약장수들이 소규모로 팔던 화장품 산업은 엄청난 규모의 산업으로 성장했다.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이야기할 때 대개 군사력, 경제력을 이야기하지만 지금은 ‘알력’ ‘페이스 파워’ ‘얼굴력’도 존재한다. 화장품 산업과 성형 산업의 규모가 그것을 대변한다. 이미 한국은 대중가요에 의한 한류 못지않게 화장품과 성형수술에 있어서도 대표적인 국가가 되었다.
 
  화장품 산업은 지난 10년간 폭발적 성장세로 수출 규모를 키우고 있다. 세계 수출 3위라고 하며 대한민국 무역흑자 효자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화장품 수출 규모는 10년 전인 2012년 10억6700만 달러에서 2021년 91억8457만 달러로 8.6배 성장했다. 화장품 수출액에서 수입액을 뺀 무역수지는 2012년 8926만 달러 흑자에서 2021년 78억7883만 달러 흑자로 무려 88.3배 이상 늘어 수출 효자산업이 되었다.
 
  몇 해 전 한국갤럽의 조사에서 응답자 10명 중 9명이 ‘인생에서 외모가 중요하다’고 답해 한국인의 외모 관심을 재차 확인시켜주었다. 2020년 2월부터 2주간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500명에게 물으니 89%가 인생에서 외모가 중요하다고 답했다. 성형수술 경험을 묻는 말에는 남성 2%, 여성 18%가 ‘성형수술을 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여성 화장 산업의 발전은 여성들의 아름다워지려는 욕망에 비례한다.
 
  근래 아이를 보고 “얘는 한국 애처럼 안 생겼어요”라는 말이 의미심장한 칭찬으로 자리한 적이 있었다. 코는 오뚝하고, 눈은 쌍꺼풀이 진 아이를 보고 아이가 참 서양 애 같다고 하면 엄마들은 속으로 뿌듯해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성형수술이 신(新)몽골로이드의 얼굴을 버리고 서양인의 얼굴을 닮아가고 있던 것이다.
 
  우리가 1등을 한 얼굴의 특성들을 모두 버리고 다른 얼굴로 가고 있던 것이다. 지금은 어떠한가. 중국이나 대만 등 아시아 지역 여자들의 성형 모델은 한국의 스타들이다. 바이칼 호수에서 벗어나 몇천 년을 살아오면서 만들어진 내 문화와 내 역사, 내 유전자들이 종합되어 형성된 우리의 얼굴이 지금은 아시아의 미의 표준이 되어가고 있다.
 
 
  화장은 가면일까? 문화일까?
 
한반도에 정착한 한국인의 선조가 되어 살아온 이래 지난 100년만큼 한국인의 얼굴에 많은 변화가 일어난 적은 없다. 사진은 영국 자연사박물관에 있는 네안데르탈인(오른쪽)과 호모 사피엔스(왼쪽) 모형. 사진=조선DB
  한국의 화장품이 중국에서 불티나게 팔리는 것은 중국 여성들에게 한국 여배우처럼 예뻐지고 싶다는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전에 프랑스 랑콤과 일본 시세이도에 열광하던 때가 생각난다.
 
  2010년 스페인에서 발견된 조개껍데기가 연구 결과 5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이 사용했던 화장 용기로 밝혀졌다. 그들은 이미 5만 년 전부터 다양한 방법으로 색소를 생산, 얼굴과 몸에 화장을 한 것으로 보인다.
 
  화장에 대한 최초의 공식적인 기록은 기원전 7500년 이집트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신분에 상관없이 먹으로 눈 주위를 칠해 눈을 크게 만드는 화장을 했는데 이는 신으로부터 보호를 받는다는 의미를 나타냄과 동시에 건조한 사막지대에서 눈을 보호하는 기능을 했다. 이처럼 초기의 화장은 종교적인 이유나 주로 신체를 보호할 목적으로 한 것이라고 한다.
 
  화장품을 영어로 코스메틱(cosme tics)이라고 한다. 코스모스(cosmos)는 우주를 뜻한다. 왜 화장품이 우주를 뜻하는 cosmos에서 유래가 됐을까? 인간의 타고난 얼굴은 완전하지가 않다. 일종의 카오스(caos·무질서)의 세계다. 거기에 질서를 부여하여 카오스를 코스모스의 세계로 바꾸는 것이다. 인간은 타고 태어난 것, 주어진 것만으로는 부족한 존재다. 그것을 완전하게 만드는 것이 ‘아름다움’이요, ‘조화’다. 화장을 한다는 것은 완벽하지 않은 자신의 민얼굴의 약점을 보완하고 조화 있게 만든다는 것이다. 바로 우주의 질서와 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아름다움을 창조한다는 것이 올바른 화장관이다.
 
  나를 위장하고 가면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의 부족함을 보완하고 진실한 소통을 위한 수단으로서 화장을 하는 것이다. 화장을 하는 것이 가면을 쓰듯 나의 민얼굴을 가려 거짓된 얼굴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냐, 그것이 아니냐에 따라 화장 문화 역시 달라질 것이다.
 
 
  모험 유전자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기지 않는가. 왜 우리의 선조들은 그 머나먼 여정을 자처했을까. 과연 그들의 장정은 그들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탐험의 길이었을까, 아니면 무언가에 쫓겨 어쩔 수 없이 행해진 도피의 행로였을까.
 
  쫓긴다는 것은 쫓기도록 운명 지워진 것이다.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다. 쫓아가서 잡아먹으려 하는 짐승들의 눈은 전부 앞에 달려 있다. 늑대, 사자, 호랑이가 그러하다. 그런데 초식동물들의 눈은 전부 옆에 붙어 있다. 포식동물은 목표물을 겨냥한 채 정확히 그 목표물만을 바라보며 쫓는다. 그렇기 때문에 눈이 앞쪽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쫓기는 초식동물들은 앞만 보고 달릴 수 없다. 어디서 무엇이 자신을 덮칠지 모른다. 그러니 여기저기 살 곳을 찾아 도망칠 수 있도록 눈이 옆에 달려 있다. 이렇게 보면 인간은 역시나 강한 동물이다. 눈이 앞에 달려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초식동물 중에서도 가장 슬픈 짐승이 토끼다. 360도 모두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다. ‘토낀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토끼는 도망가는 것이 전공이다. 심지어 토끼는 길고 큰 귀까지 가지고 있다. 앞발이 작고 짧기 때문에 언덕을 이용해 쉽게 포식자들로부터 도망칠 수도 있다. 사슴도 그렇고, 말도 그렇다. 쫓겨 도망 다니는 숙명으로 태어난 동물에게 신은 360도 모두를 볼 수 있는 재능을 선물로 주신 것이다.
 
  인간은 쫓기긴 했으나 두발이 있고 지능이 있고 도구를 만들 수 있는 재능을 갖고 태어났다. 절대로 쫓기도록 만들어지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공격용으로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바로 인간에게는 쫓기느냐, 쫓느냐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로운 선택권을 주신 거다. 아프리카에서 벗어나 머나먼 미지의 세계를 찾아 떠난 인간의 대장정…. 단지 지금 우리는 얼굴에 대한 이야기만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선택지를 가진 인간이 안주하는 것이 아닌 탐험의 선택을 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이야기이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내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따뜻한 아프리카에서 벗어나 머나먼 시베리아까지 온 사람들. 그 사람들이 왜 이러한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선뜻 답하기가 어렵다. 왜냐면 그들 하나하나가 각각의 선택지를 가진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먹이를 가지고 싸우기 싫어서, 어떤 사람은 싸움에 져서 어쩔 수 없이 쫓겨 왔을 수도 있다. 또 어떤 사람은 호기심에 새로운 곳을 보고 싶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무리 중에는 모험심을 가슴 가득 품고 있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문화인류학자들 역시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단행한 인류의 동기에 대해 왈가불가 많은 논쟁을 벌인다. 감히 내가 단정해보자면 그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험하고자 하는 유전자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탐험하는 자의 눈빛
 
  많은 사람이 등산을 한다. 목숨을 걸고 산에 오르는 사람들도 있다. 인간이란 참 묘한 동물이다. 아마 최초로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단행한 인류 역시 한 치의 의심 없이 자신들에게 다가올 미래가 희망만 가득하다고 믿지는 않았을 것이다. 틀림없이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도 분명 존재했으리라. 자신이 확신할 수 없고, 알지 못하는 미지의 땅으로 한 발 한 발 내디딘 네오필리아(neophilia). 다른 짐승과는 전혀 다른 유전자, 위험하지만 새로운 것에 대한 탐험심으로 가득한 유전자가 인간의 몸에 흐르고 있다. 모험하고자 하는 유전자다.
 
  달나라에 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쫓겨서 달나라를 탐험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최초로 우주를 탐험한 인간들 역시 마찬가지다. “귀찮은데 그냥 여기서 살자”라고 머무른 니그로이드에 대한 인종 차별이 아니다. 그냥 살아간 사람도 있지만 끝없이, 끝없이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는 것이다.
 
  원래 인간은 바다에서 태어났다는 설도 있다. 바다에서 튀어 올라 육지로 나온 물고기는 어떤 물고기일까. 처음의 육지에는 아무런 생물도 살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뭍으로 나왔지만 삶이 고달파 다시 바다로 들어간 물고기도 있다. 고래가 그렇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인류 중에도 다시 아프리카로 들어간 사람들이 있다. 떠났다가 다시 돌아간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들을 포함한 모든 생물에게는 기본적으로 머무르기보다는 번지고 확대하려는 경향이 있다. 민들레를 보라. 우리가 무엇을 택하느냐는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지만, 위험한 유전자를 가진 인간들이 있기 때문에 끝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동물 중에 인간의 눈을 가장 닮은 동물은 사자와 독수리다. 멀리 바라보기 때문이다. 멀리 바라보고 탐험하는 자의 눈빛, 그 눈빛은 살아 있다.
 
 
  눈빛 살리기
 
  인간이 화장이나 성형으로도 손댈 수 없는 얼굴의 마지막 영역은 어디일까? 아무리 가면을 써도 가릴 수 없는 그것, 바로 눈동자다. 그런데 참으로 아쉽게도 이 눈동자마저 이젠 변형이 가능하다. 색을 넣은 서클렌즈(circle lens)로. 우리도 서양인처럼 검은 눈동자를 버리고 파란색의 눈동자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머리카락을 염색해 금발로 바꾸듯 이젠 눈동자도 염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가면으로도 못 가렸던, 복면으로도 못 가렸던 그리고 성형수술로도 불가능했던 마지막 내 얼굴을 꾸미는 장치가 서클렌즈인 것이다. 우리가 1등을 했던 눈이 작다는 얼굴의 특징은 더 이상 사실이 아니다. 서클렌즈를 끼면 눈이 커지는 효과까지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섣부르게 이것이 좋으냐 나쁘냐라는 판단을 할 수는 없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민주주의에서 쓰이는 한자 ‘민(民)’은 백성 민이다. 백성 민자는 눈을 쇠꼬챙이로 찔러 눈을 멀게 한 것이다. 이렇게 눈을 멀게 해서 노예를 만들었다. 백성이라는 것이 바로 노예다. 인간이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바로 이 눈인데 이 눈을 찔러 짐승으로 만든 것이다.
 

  흔히 아이 콘택트(Eye Contact)라는 표현이 있듯 사람과 사람이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도 이 눈은 가장 중요한 의사소통의 매개체이다. 진실한 사람의 눈은 흔들림 없이 상대를 똑바로 볼 수가 있다. 그래서 눈을 마주치는 것은 최후의 커뮤니케이션이다. 낯선 사람과는 눈을 마주치는 걸 꺼린다. 남녀 간에 ‘눈 맞았다’라고 하는 것은 그만큼 눈과 눈의 교감이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외국 사람들이 눈을 그릴 때는 꼭 얼굴과 같이 그리는 습성이 있다. 옆을 그리든 앞을 그리든. 그런데 우리는 눈을 잘 안 그린다.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내 마음 따라 올라갔던 하얀 그때 꿈을
  풀잎에 연 이슬처럼 빛나던 눈동자/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다 가는 얼굴
 
  -윤연선이 1975년에 부른 노래 ‘얼굴’ 가사 중

 
  우리가 좌뇌와 우뇌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동그라미를 그리는 것은 기하학적인 수학이니까 좌뇌에 속한다. 그런데 ‘무심코’는 우뇌의 영역이다. 그다음에 나오는 것이 ‘빛나는 눈동자’다. 한국 사람들은 눈을 잘 그리지 않는다고 했는데 만화에서는 반드시 눈빛을 그린다.
 
  눈 안의 하얀 부분을 강조하고 어떤 만화에서는 여기에 다이아몬드를 그려 넣는다. 눈빛을 더욱 강조하려는 것이다.
 
 
  내 얼굴 찾기 대장정
 
  우리가 갖는 우리 얼굴의 모든 부분에서, 그리고 문화적, 유전자적인 모든 면에서 눈빛이 죽으면 나의 존재가 죽고 눈빛이 죽으면 회사가 죽고 눈빛이 죽으면 그 나라가 망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우리 얼굴은 많이 바뀌었다. 바이칼호에서 벗어난 민족이 한반도에 정착하며 한국인의 선조가 되어 살아온 이래 지난 70년만큼 한국인의 얼굴에 많은 변화가 일어난 적은 없다. 한국인들이 아무리 전쟁을 겪고 굶주림에 죽어가고 배고픔과 싸워왔어도 우리는 눈빛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풍요해지고 삶이 윤택해질수록 눈빛이 사라져 가고 있다. 한국인의 초롱초롱하던 눈빛, 그 눈빛을 살리는 것이 바로 내 얼굴을 살리는 길이다.
 
  이 글을 읽기 전과 이 글을 읽은 후에 여러분의 눈빛이 달라진다면 여러분의 얼굴이 달라질 것이고 아마도 여러분의 삶이 달라질 것이다.
 
  이토록 사라져 가는 우리의 눈빛을 어떻게 살리느냐가 내 얼굴 찾기 대장정의 방향이다. 우리가 가꿔온 얼굴의 최후의 결전이 이 눈빛에 달려 있다.
 
  소니가 워크맨을 시작으로 전 세계 전자시장의 패권자로 군림했던 때가 있다. 그런데 소니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엇이 소니를 힘들게 한 것일까. 일본인들에게 물었더니 그들의 답이 이렇다.
 
  “옛날 소니가 처음 시작했을 때 사원들의 눈빛이 빛났는데 지금은 신입사원이나 누구나 오타쿠처럼 전부 처졌어요.”
 
  일본 사람들의 눈빛이 사라지면서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의 세월을 겪었다.
 
  정보화 시대의 이모티콘은 눈빛이 없는 죽은 도형이다. 농업사회에서 공업사회, 공업사회에서 산업사회, 정보사회를 겪으며 우린 서서히 우리의 눈빛을 잃어버린 채 눈빛 없는 도형들로 소통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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