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프리카 벗어나 다른 대륙으로 이주를 시작한 것은 대략 6만~7만 년 전
⊙ 산맥, 고원, 동토 지나 계속 걸어간 인종이 몽골로이드(黃人)
⊙ 4만 년 전 바이칼湖 근처에서 혹독한 추위를 견딘 이가 북방계 ‘新몽골로이드’
⊙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눈 작고, 털 없으며, 두상과 치아가 제일 커
李御寧(1933~2022)
서울대 국문학과·同 대학원 졸업, 문학박사 / 경기고 교사, 이화여대 교수, 《조선일보》 《한국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 《서울신문》 논설위원, 동아시아 문화도시 조직위원회 명예위원장,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 조직위원장, 초대 문화부 장관 역임
⊙ 산맥, 고원, 동토 지나 계속 걸어간 인종이 몽골로이드(黃人)
⊙ 4만 년 전 바이칼湖 근처에서 혹독한 추위를 견딘 이가 북방계 ‘新몽골로이드’
⊙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눈 작고, 털 없으며, 두상과 치아가 제일 커
李御寧(1933~2022)
서울대 국문학과·同 대학원 졸업, 문학박사 / 경기고 교사, 이화여대 교수, 《조선일보》 《한국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 《서울신문》 논설위원, 동아시아 문화도시 조직위원회 명예위원장,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 조직위원장, 초대 문화부 장관 역임
- 인물연구소가 제작한 한국인의 얼굴.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북경 원인(猿人), 황석리인(2300년 전 우랄 알타이에서 이주한 원인으로 1962년 충북 제천 청풍면 황석리 고인돌에서 발견된 유골을 토대로 복원했다), 늑도인 여자(2000년 전 경남 사천 앞바다 지역에 거주), 한국형 미인, 신라 처용, 김대건 신부, 연대도인(6000년 전 경남 통영 지방 거주)의 모습이다. 사진=조선DB
‘내 얼굴’을 찾는 행군은 생물학적인 나, 문화적인 나, 그리고 역사 속의 나를 찾는 과정입니다.
한국이라는 좁은 땅덩어리의 역사보다도 광활한, 단군신화보다 훨씬 더 요원한 몇만 년 전 우리의 선조가 이 땅에 오기 훨씬 이전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가야 해요.
힘든 대장정(大長程)을 마치고 나면 내 얼굴에서 인류의 역사와 문화, 한국인의 숨결을 읽을 수 있어요. 과거 국토 최남단에서 휴전선에 이르는 ‘국토대장정’ 행사가 매년 열린 적이 있어요. 목적지에 도착하면 참가자들 모두 너 나 할 것 없이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지요. 왜 우는지를 물어보면 딱히 정확한 답이 없어요. 그냥 웁니다. 그 눈물에는 분명한 의미와 감동이 있어요.
자기 나라의 땅을 본인의 발로 하나하나 밟고 완주했을 때의 성취감일 수도 있어요. 선조들이 지나가고 수많은 생명이 태어난 땅, 또 그만큼의 많은 생명체의 흙이 된 땅, 그 땅을 밟고 지나와 마지막 종착점에 이르렀을 때 자기도 모르는 감동이 있는 것이죠. 거기에 북받치는 눈물이 쏟아지는 겁니다.
지금부터 우리가 시작할 이야기는 국토대장정이 아닌 우리의 얼굴을 찾아 떠나는 ‘얼굴의 대장정’입니다. 국토대장정의 길이가 500km 조금 넘는다면 우리가 함께 떠나게 될 얼굴의 대장정은 2000km를 훨씬 넘어섭니다(서울에서 울란바토르까지가 약 2000km-편집자 주). 국토대장정의 기간이 40일 동안이라면 우리는 2만여 년의 세월을 거슬러 찾아가야 해요.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 누구의 아들이라는 것, 누구의 친구라는 것, 이 모두가 바로 우리 얼굴이 있기에 알 수 있는 겁니다. 얼굴에 의해 우리는 ‘나’라는 ‘정체성’을 갖게 되는 것이죠.
내가 내 얼굴을 찾는 것, 우리가 함께 우리 각자의 얼굴 찾기를 한다는 것은 결국 한국인의 얼굴 찾기가 될 것이며 지금부터 그 여정을 시작하려 합니다.
1. 피부색이 뭐기에…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 때 반죽을 오븐에 구워 빵을 만들 듯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처음엔 너무 오래 구워서 새까맣게 탄 것이 니그로이드(Negroid), 흑인입니다. 이른바 ‘너무 구운 인간’이죠.
두 번째는 너무 태우지 않으려고 오븐에 넣자마자 얼마 안 되어 꺼낸 것이 코카소이드(Caucasoid), 백인입니다. 이른바 ‘설익은 인간’이에요.
이번에야말로 실패하지 않으려고 온갖 신경을 써서 때맞게 꺼내어 잘 구워진 것이 바로 몽골로이드(Mongoloid), 황인종입니다. 이른바 ‘잘 익은 노란 인간’이지요.
물론 이 이야기는 아마도 황인종에 의해 만들어진 농담일 테지만 일종의 인종차별주의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어요. 인종 이야기는 얼마든지 ‘손이 안으로 굽는’ 이야기의 창조가 가능해요. 얼굴 이야기를 할 때 시각적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피부색입니다. 피부색에 의해 우리는 인종을 구별하고, 사람도 구별할 수 있어요. 문제는 이 피부색이 ‘구별’을 넘어 ‘차별’의 잣대가 된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얼굴이 노랗고, 흑인의 얼굴은 검다는 이유만으로 코카소이드가 지배하던 근대(近代)에는 많은 고초를 겪어야 했어요. 1863년 에이브러햄 링컨에 의해 노예 해방이 선언되기까지 약 300년 동안 유럽의 상인에 의해 신세계에 운송된 흑인 노예만 1500만 명에 달했다고 하지요. 노예무역의 아픈 과거만큼은 아니더라도 해외에서 사는 한국인이라면 한 번쯤은 황인종에 대한 백인 우월주의를 경험했을 겁니다.
일본은 탈(脫)아시아 정책을 쓴 국가예요. 일본인 중에 자신을 아시아인이 아닌 ‘바나나’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겉은 노랗지만 속은 하얀 바나나에 스스로를 비유한 것이죠. 서양인들도 그들을 특별 대우해 남아프리카공화국 같은 곳에선 일본인들을 명예 백인으로 대우하기도 했어요. 백인 이외에는 들어갈 수 없는 카페와 같은 곳들도 일본인들만은 예외로 입장할 수 있었죠. 물론 이런 일본인에게 수치심을 느끼고 이러한 문화를 부끄러워하는 일본인도 많았다고 해요. 얼굴색으로 남을 판단하고 무시하는 인종주의의 비극적 단면이라 할 수 있어요.
우리에게도 부지불식(不知不識)중에 옐로 콤플렉스가 있었어요. 이러한 콤플렉스는 백인 추종주의의 또 다른 면으로 흑인에 대한 멸시와 천대로 드러나기도 했어요. 1992년 LA폭동이 일어났을 때 유독 한국인들이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자신들을 무시했던 흑인들의 보복심리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LA에 사는 한국인 중 일부는 흑인들을 깜둥이, 연탄장수, 깜시 등으로 불렀다고 하니 흑인들이 한국인에 대해 가졌던 적대감은 어쩌면 당연했는지도 모르죠.
코카소이드는 유대 그리스도교의 인종적 우월주의
인종주의적 발상은 학자들이 인종을 칭하는 명명에서도 확실하게 드러납니다. 현생인류(現生人類)를 코카소이드·몽골로이드·니그로이드로 분류하는 사고방식이 일반적으로 보급되어 있으나, 인류학자 가운데는 이 분류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있어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이 세 분류의 명칭 역시 가장 객관적이어야 하는 학문의 영역에서마저 인종주의적 차별이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서양 문명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두 개의 큰 축이 ‘헬레니즘(Hellenism)’과 ‘헤브라이즘(Hebraism)’입니다. 이 중 우리가 이야기 나눌 주제와 관련 있는 것이 바로 헤브라이즘이에요.
‘헤브라이즘’은 헤브라이 민족의 사람들, 즉 유대인의 문화 전통이 서구화된 것을 지칭하는 말로 헤브라이즘의 가장 근간이 되는 것은 유일신(唯一神) 사상이죠.
오직 ‘야훼’만이 신이고 그 밖의 어느 것도 신이 아니라는 생각이었어요. 이러한 헤브라이즘은 창세기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태초의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선악(善惡)의 열매를 따 먹은 죄로 쫓겨나고 그 후 신을 잊은 채 살아가던 인간들에게 대홍수의 형벌이 내려지며, 노아의 방주를 타고 있던 노아의 가족만이 살아남습니다. 그들이 현재의 인류에게 유일 선조인 셈이죠. 홍수가 끝나고 노아의 방주가 도달한 곳, 방주 안의 비둘기가 날아가 간난잎(올리브잎)을 따 온 곳이 바로 튀르키예(터키) 코카서스 산맥의 아라랏산입니다.
아라랏산은 튀르키예의 제일 동쪽 끝에 있는 산이에요. 크게 두 개의 산이 있는데 그 가운데 골짜기에서 고대인의 백골이 출토되었고 출토된 백골의 골격 구조가 지금의 유럽인들과 똑같았어요.
‘코카소이드’를 말 그대로 해석하자면 ‘코카서스 산맥까지 이른 사람들’이라는 뜻이에요. 이 이야기가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오늘날 코카소이드라고 부르는 것은 현재의 인류는 노아의 자손이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품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유대 기독교에 기반한 백인 우월주의적 명명이라 할 수 있지요.
백인이라는 것 역시 흰색에 대한 우월성을 표현한 것입니다. 사실상 신=백인이라고 하는 말과 같아요.
# 피부색 이전의 민낯을 바라봐야
몽골로이드라는 명칭 역시 그 유래가 과학적이지는 않아요. 어째서 하필 아시아 중에서 몽골이라는 특정 지역이 동양인 민족을 칭하는 대표적인 단어가 되었을까요. 이 역시 서구 중심적인 해석입니다. 칭기즈칸(1162~1227년)의 후예인 쿠빌라이 칸(Khubilai Khan·1215~1294년)이 유럽을 지배할 때 유럽 사람들이 이 말을 만든 것이죠. 그리고 당시 아시아를 왕래한 마르코 폴로(Marco Polo·1254~1324년)와 같은 사람들 역시 쿠빌라이 칸이 중국을 지배했을 때 중국을 다녀왔기 때문에 몽골은 아시아를 상징하는 단어이자 대표하는 단어가 되었어요.
‘몽골병’이라는 것이 있어요. 영국의 다운(John Langdon Down·1828~1896년)이 1886년 특수 정신지체를 보이는 병을 발견하고 이를 ‘몽고인형(型) 백치(白痴)’라고 보고했으나 1959년 J. 레장(Je′ro^me Lejeune·1926~1994년) 등에 의해 병의 원인이 염색체 이상에 있다는 것이 밝혀져 다운증후군이라 불리게 되었지요.
이 병에 걸리면 지진아가 되거나 심장에 이상이 생깁니다. 후천적인 병이 아니라 태어날 때 이미 유전자에 의해서 걸린 병인데 옛날에는 이 병에 걸린 아이들이 눈도 튀어나오고 꼭 몽골인처럼 생겼다고 해서 몽골병, 혹은 몽골인병이라 불렸다고 합니다.
피부색처럼 코카소이드니 몽골로이드니 하는 말부터가 이미 과학으로부터 거리가 먼 것들이라는 이야기예요. 그러니 피부색도 벗겨내야 해요. 인류가 가진 피부색 이전의 민얼굴, 민낯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래야 인류의 첫 시작점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어요.
2. 아웃 오브 아프리카
오늘날 우리 조상의 시작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우리는 검은 대륙, 아프리카를 맞닥뜨리게 됩니다. 인류의 기원을 두고 몇 가지 설이 존재하지만, 가장 유력한 설이 ‘아프리카 기원설(Out of Africa)’입니다. 현생인류의 직계 조상이 약 10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갑자기 출현했으며 그때부터 5만 년 전까지 그전에 이미 정착해 살고 있던 네안데르탈인 등 다른 모든 인종을 대체했다는 것이죠.
‘제노그래픽 프로젝트(Genographic Project)’를 이끈 스펜서 웰스(Spencer Wells·1969~) 박사팀은 지난 1987년 DNA 연구를 통해 인류의 기원이 아프리카인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했어요. 사람의 미토콘드리아 DNA(mtDNA)가 모계를 통해서만 전해진다는 사실로부터 출발, 현 인류의 가계도를 거슬러 올라가 보니 현대인의 근원지는 아프리카 대륙이었고, ‘미토콘드리아 이브’인 어느 한 여성이 인류의 공통 조상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주장에 신빙성을 제공하는 근거들 역시 제시되었어요. 인류의 오랜 화석이 아프리카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되고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1974년 에티오피아의 하다르 계곡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Australopithecus afarensis)’라고 불리는 원인(猿人)의 화석 골격이 발견되었어요.
250만 년 전의 직립원인 화석으로 인류의 직접적인 조상이라 여겨지고 있으며 ‘루시’라고 불립니다. 발견 당시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라는 비틀스 노래가 흘러나와 ‘루시’라고 붙여졌다고 하지요. 이 곡은 비틀스 명반으로 꼽히는 1967년작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의 수록곡입니다.
이 외 탄자니아 올드바이(Tanzania Olduvai Valley) 유적에서도 여러 점의 인류 화석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아프리카였을까요? 왜 그것도 에티오피아였을까요? 이 역시도 많은 주장이 있을 수 있습니다.
고릴라, 침팬지, 오랑우탄과 같은 대형 유인원들을 포함한 영장류가 점차 진화하고 발전하여 현생의 인류에 이르렀다는 것이 우리가 가장 광범위하게 인류의 기원으로 믿고 있는 진화론이죠. 이 중에서 인류의 조상이 된 유인원은 다른 유인원들과 달리 정글과 숲의 나무에서 내려와 너른 평지에서 삶의 터전을 잡게 된 유인원들입니다.
아프리카 에티오피아는 사막지대도 정글도 아닌 사바나 지역이에요. 즉 숲에서 나와 초원에서 생활하게 된 유인원들이 인류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이들은 숲속 나무 위에서 내려올 생각은 하지 않은 채 머무른 유인원들과 달리 스스로에게 던져진 도전과 과제들을 풀어가며 진화해왔어요. 이렇듯 다른 유인원들과 달리 평지로 내려와 독립적으로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간 인종을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us·원숭이 사람)로 지칭해요. 학계에서는 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출현을 인류의 탄생으로 여기고 있어요.
네발로 나무를 타던 숲속 생활과 달리 평지의 생활은 두 발을 요구했어요. 직립보행(直立步行)입니다. 초원과 같은 평지에서 생활을 하던 ‘루시’의 형제들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중 일부가 새롭게 걷는 방식을 시작했어요.
이렇게 시작된 직립보행은 인간의 이동을 보다 용이하게 했을 겁니다. 인간은 직립보행을 했기 때문에 멀리 이동할 수 있었겠죠. 그래서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이기 이전에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였어요. 영어로 일렉트(erect)는 ‘똑바로 서다(straight)’ ‘세우다’는 뜻입니다.
두 발로 걷기 시작한 인류는 아프리카를 떠나 대장정을 시작했지요.
벅찬 감격의 아름다운 말, 나그네
‘나그네’라는 한국말은 아름답습니다. 어원은 더욱 아름답죠. ‘나간 사람’이라는 뜻인데, 문지방을 넘어 방에서 뜰로 나가고, 뜰에서 빗장을 풀고 문밖으로 나가는 사람입니다. 조금씩 낯익은 것으로부터 밖으로 나가는 사람이죠. 사방의 벽에서 벗어나 무수한 문밖, 그 문과 문 사이의 길을 걷는 보행자가 되는 겁니다. 문화인류학자들은 말하죠. “사람은 어떤 동물보다도 많이 걷는데 그 특성이 있다”고요.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침팬지나 고릴라는 하루에 기껏 걸어봐야 3km 이상을 벗어나지 못해요. 그러나 수렵·채집 시대의 원인들은 하루의 보행거리가 30km를 넘었다고 합니다. 원숭이 손은 인간과 똑같이 물건을 잡을 수가 있지만 발의 구조는 달라요. 원숭이는 다리로도 나뭇가지를 잡을 수가 있도록 되어 있어요. 그래서 우리의 상식과는 달리 잡는 능력보다는 오히려 걷는 능력에서 원숭이와 인간의 차이가 생겨나요. 한마디로 걸어서 ‘나그네’가 된 원숭이만이 인간이 된 겁니다.
네안데르탈인은 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와 만년 이상 공존했다고 해요. 옷을 입혀 모든 인종이 섞여 있는 뉴욕 지하철에 갖다 놓아도 조금도 이상하게 바라볼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네안데르탈인이었지만, 몸집도, 두뇌의 크기도, 심지어 장례식을 치르고 꽃을 좋아한 것까지 인간과 닮은 네안데르탈인이었지만, 끝내 그들은 인간이 되지 못하고 빙하기와 함께 절멸하고 말았다고 해요.
그들과 호모 사피엔스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요? 골짜기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았지만 호모 사피엔스의 유적을 파보면 100km 이상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의 석재를 사용한 흔적이 있다고 해요. 그러나 네안데르탈인들에게서는 그런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다고 합니다. 인류가 탄생한 곳은 아프리카입니다. 그 자리에 그냥 머물러 살아온 인종이 니그로이드(흑인)이고 아프리카를 벗어나 유럽대륙까지 걸어 나온 인종이 코카소이드(백인), 그 한계선마저 돌파하여 산맥과 고원과 동토(凍土)대를 지나 계속 걸어 나간 인종이 바로 몽골로이드(황인)입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아프리카 탈출)’에서 인간이 형성되고 그 모험의 역사는 시작됩니다. 인류학자들은 그것을 ‘그레이트 저니(Great Journey)’라고 불러요. 무엇 때문에 인간은 편안한 열대의 정글과 초원을 떠나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북녘 설원을 횡단해야만 했을까요?
걷는다는 것, 나그네라는 것, 밖으로 나가는 보행의 의지와 그 자유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걷지 않고 무엇인가를 탑니다. 말을 타고 배를 타고 자동차와 기차와 비행기를 탑니다. 그러나 전쟁은 언제나 보병이 걸어 들어가는 것으로 끝나듯이 궁극적으로 ‘타는’ 문화는 ‘걷는’ 문화에 의해서 종결되죠. 어떤 이동수단[乘用物]도 보행의 의지와 자유를 대신할 수가 없습니다.
실려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멈추고 싶으면 멈추고 가고 싶으면 갑니다. 길이 없어도 걷습니다. 중력을 거슬러 등뼈를 똑바로 세우는 오기를 두 발로 증명하죠. 어느 짐승이 이렇게 걸을 수가 있나요. 한 발 한 발 앞으로 걸어갈수록 새로운 지평이 다가옵니다. 그리고 걷는 것만큼의 새로운 풍경이 펼쳐져요. 그때 비로소 굴러가는 바퀴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여행의 참된 신체성(身體性)을 발견하죠. 보행을 통해서 나는 수송된 여객이 아니라 나 자신이 됩니다. 아주 천천히 나는 ‘나그네’가 되는 것이죠. 나그네의 그 리듬을 상실할 때 모든 승용물의 의미도 함께 사라져요.
몽골로이드의 길고 긴 보행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국경 없는 세계화이든, 사이버 스페이스이든, 위험과 희망이 도사린 벤처의 길이든 인류의 그레이트 저니는 중단될 수 없지요. 우리는 네안데르탈인이 아닙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경주(競走)에서 가장 멀리 온 호모 사피엔스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됩니다.
3. 인종의 3가지 분류… 코카소이드, 몽골로이드, 니그로이드
짐승과 달리 인간은 정해진 영역 없이 끊임없이 움직이며 나아갑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
아프리카에서 끝없이 밖으로 나간 것이죠. 이 ‘아웃 오브 아프리카’ 경로는 두 개의 길로 나뉩니다. 하나는 유럽으로, 또 다른 하나는 인도로 해서 남쪽으로 갔습니다.
코카소이드, 몽골로이드, 니그로이드라는 인종의 분류는 이렇게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인류 대장정의 루트에 근거해요.
코카소이드는 아프리카 대륙을 벗어나 유럽대륙의 코카서스 산맥에까지 이른 인류로 지금의 서양인들입니다. 코카소이드의 이동 경로에서 알 수 있듯 이들은 추위를 모릅니다. 지금의 러시아 사람들 역시 이 부류에 속하지만, 처음부터 이 지역에 다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문화와 문명이 생기고 난 이후에 정착한 사람들이죠. 난방시설이 되어 있고, 모피 코트로 몸을 감싼 후에 추위를 경험한 사람들과 알몸으로 추위를 견딘 사람들은 당연히 다르겠지요?
두 번째 몽골로이드는 코카소이드보다 더 먼 길의 여정을 택한 인류입니다. 결국 가장 긴 거리를 걸어 몽골까지 도착한 인류지요. 한국인 역시 이 분류에 속합니다. 몽골로이드는 두 갈래로 나뉩니다. 7만 년 전부터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현재의 중국을 거쳐 남방 루트를 택해 일본까지 간 몽골로이드를 ‘고(古)몽골로이드(남방계)’라 불러요. 또 한 갈래의 몽골로이드는 남쪽에서 시작해 4만 년 전 시베리아 북쪽으로 북상(北上), 신빙하기에 바이칼호(湖) 근처에 갇힌 채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살아남은 사람들입니다. 바로 ‘신(新)몽골로이드(북방계)’입니다.
지금의 호주인 남쪽으로 이동한 몽골로이드는 남방계로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일본의 오키나와 지역과 같은 곳으로 퍼진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중 추위를 겪어 지금 우리와 같은 몸의 형태를 가지게 된 사람들이 ‘신몽골로이드’라고 해요.
마지막으로 아프리카에서 떠나지 않은 사람들, 그 자리에 주저앉은 사람들을 우리는 니그로이드라 부릅니다.
코카소이드, 몽골로이드, 니그로이드는 얼굴에 각각의 특징을 가지고 있어요. 안면과 두개골 구조와 형태 역시 다릅니다. 우리는 흔히 인종을 피부색으로 구별하지만 인종이라는 것은 피부색 이전의 문제입니다. 피부색은 우리 스스로가 정해놓은 하나의 틀일지도 모릅니다.
그럼 우리의 직접적 조상이라 할 수 있는 신몽골로이드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나눠볼까요? 몽골로이드는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택한 인류의 조상 중에서도 가장 긴 여정을 택한 인류입니다. 그들은 시베리아 쪽 추운 지대로 들어가 인류의 마지막 빙하기인 신빙하기가 도래한 후 얼음 속에 갇혀버리고 맙니다. 나가질 못한 것이죠. 그들이 갇힌 곳, 그곳이 바이칼 호수입니다.
같은 몽골로이드라 할지라도 바이칼 호수의 혹독한 추위를 경험했는가, 경험하지 못했는가에 따라 많은 차이가 발생합니다. 한국인의 얼굴에는 바이칼호의 추위가 서려 있어요. 오염되지 않은 지구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맑은 바이칼 호수. 그 신비한 호수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본다면 우리 선조들의 얼굴을 볼 수 있을 겁니다.
4. 추위를 이겨낸 한국인의 얼굴
광복 이래 70여 년 동안 무엇이 제일 많이 바뀌었냐는 질문에 사람들은 각자 대답이 다를 것입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얼굴’이에요. 몇십 년 전의 사진을 꺼내보면 바로 이 말에 수긍할 겁니다. “이게 한국인인가?” 할 정도니까요. 성형수술을 해서가 아니라 얼굴 그 자체가 많이 바뀌었어요. 이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들이 있습니다. 병탄(倂呑) 이듬해인 1911년 조선총독부는 전국 128개 군의 남녀에 대해 4~8명씩 정면과 측면을 촬영하여 사진마다 고유번호를 붙이게 했어요.
지금과 달리 카메라가 발달하지 않았던 때라 유리에 감광액을 칠하여 만든 흑백사진입니다. 유리원판인지라 몇 장이라 해도 무게가 만만치 않았을 겁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약 90년 전의 우리 선조들의 얼굴을 보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어요.
두 번째 자료는 조용진 얼굴연구소장이 1986년부터 촬영 수집한 한국인의 약 3000명 분의 얼굴 사진입니다. 얼굴연구소는 3차 곡면인 얼굴의 형상을 기록하기 위해 지도책과 같이 등고선을 그어 기록해놓은 자료들도 보관하고 있어요.
인간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얼굴을 연구하려면 과학적인 분석이 중요합니다. 문화적인 껍질을 다 벗겨내고 온전한 민얼굴의 과학적 연구야말로 우리의 얼굴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잣대가 되기 때문이죠.
조용진 선생은 홍익대와 동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후 가톨릭 의과대학에서 7년간 인체해부학을 연구했다고 해요. 일본 동경예술대학에서 미술해부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서울교대 미술대학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남대 미술대학 객원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그는 ‘미술해부학’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셨어요. 험난한 히말라야 정상을 향해 산을 오르는 산악인들에게 현지에 능통한 셀파들이 필요하듯, 몇십만 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우리의 ‘얼굴 찾기’에 중요한 가이드를 해주신 분입니다.
한국인만의 용모적 특성
문화의 껍데기를 벗고 과학으로 우리 얼굴을 찾아야 합니다. 과학자가 아닌 문화학자인 나 혼자의 힘으로 ‘얼굴 찾기’는 힘들어요. 제대로 얼굴을 알려면 이렇게 문화와 과학이 결합된 나침반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제3의 길에서만이 우리 얼굴 찾기가 가능합니다.
조용진 선생 덕분에 귀중한 자료 하나를 얻을 수 있었는데 충청남도 사람들의 얼굴입니다. 옆과 앞 얼굴 등을 전부 사진으로 찍어서 데이터화한 것입니다. 이게 옛날 한국 사람들의 얼굴이에요. 이 사진은 불과 50년밖에 지나지 않은 과거지만 지금의 한국인들과는 많이 달라요. 1m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으며 하나하나 얼굴을 자로 재고 당시의 얼굴과 현재의 얼굴을 비교 분석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빅데이터가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얼굴 찾기’의 근거자료로 많이 활용되었어요.
그렇다면 2000~3000년 전에 한반도에 정착을 한 우리 선조들의 얼굴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얼굴은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또 그들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우리의 얼굴은 조상님이 주신 것이요, 결국 유전자를 통해서 형성된 것입니다. 수천 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한국인의 얼굴, 그 얼굴을 알아볼 수 있어요.
세계인의 용모에 대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이 획득하고 있는 용모적인 특성이 있다고 해요. 이 통계자료는 대략적인 감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해부학에 근거하여 전 세계인의 표본을 대상으로 방대한 자료의 조사는 물론 엄격한 분석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통계입니다. 이 통계에 의한 한국인이 1등인 특성은 크게 네 가지입니다.
세계에서 눈이 가장 작고 털이 없기로 1등 민족은…
첫째가 눈이 세계 1등으로 작다는 것입니다.
둘째가 털이 없기로 세계 1등입니다. 여기서 잠시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를 소개하자면, 우리 인간은 원숭이에서 진화했다고 하잖아요. 인간 모두가 어릴 적 원숭이라는 이야기죠. 그렇다면 털이 많고 적음의 정도가 진화의 정도라는 이야기가 될 수 있어요. 즉 털이 많은 서양인과 비교해 털이 적은 우리가 더 진화했다는 것이죠. 이게 네오테니(Neoteny)라는 것입니다. 네오테니 혹은 유형성숙(幼形成熟)이라는 용어는 ‘유아화’를 뜻하는 말로 생물이 나이를 먹었는데도 어릴 적 형태를 그대로 간직하는 경우 적용됩니다.
침팬지가 사람 얼굴하고는 전혀 다르지만 갓 태어난 침팬지 새끼와 갓 태어난 어린아이의 얼굴은 어떠한가요. 서로 비슷합니다. 안면각도 그렇고, 털이 없다는 것도 그렇죠. 동양인들이 서양인에 비해 동안인 이유에 대해 서양인에 비해 동양인이 네오테니적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어요.
셋째로 우리가 1등인 것은 귀에서 머리까지의 길이입니다. 다시 말하면 두상이 크다는 이야기죠. 뇌와 머리가 무엇이 먼저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뇌가 생기고 뇌를 감싸기 위해 머리가 생겨났을 겁니다. 이런 특징을 갖는다는 것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당연히 뇌도 다를 것이 아니겠어요?
마지막으로 골상학 등을 이용해 실제 과학적으로 하나하나 계측하고 통계를 낸 객관적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의 치아는 세계에서 제일 크다고 해요. 이가 크다는 것은 참으로 많은 문화적 특성과 연계되어 있어요. 어금니가 크니 뒤로 밀려들어 가고, 사랑니 같은 것은 나오지도 못한 채 저 밑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의 발음 체계라든가, 먹는 식문화와도 깊은 연관이 있어요.
이 이야기는 뒷부분에서 좀 더 나누도록 해요. 한국인이라는 민족이 원래 다른 나라의 사람들에 비해 좋은 점이든 나쁜 점이든 유별난 것은 사실입니다. 용모에서 봐도 이미 금메달 몇 개는 가지고 있지 않은가요?
바이칼호에 살던 新몽골로이드
이런 한국인의 특성이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그 얼굴 대장정의 시작은 바로 시베리아의 바이칼호입니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우리 조상들의 1만km가 넘는 대장정이 지금의 우리 얼굴의 모양과 무관하지 않아요.
신(新)몽골로이드만이 바이칼 호수에서 영하 70도의 추위를 견뎌낸 사람들입니다. 얼굴 중에서 추위에 가장 많이 노출될 수밖에 없는 부위가 코와 눈이에요. 혹독한 추위를 이기기 위해 코는 더 낮아지고, 눈두덩은 두꺼워지게 됩니다. 또 얼굴 광대뼈는 튀어나오게 되었어요. 쌍꺼풀 없이 두툼해진 눈, 튀어나온 광대뼈, 납작한 코. 이것은 그 어떤 인간도 겪어보지 못한 그 추위 속에서 살아남아 한 발 한 발 내디뎌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온, 그래서 결국 한반도에까지 이른 우리 선조들이 남겨준 얼굴입니다. 혹한이 만들어낸 바이칼 호수가 만들어낸 조각이고 예술품이고 상징입니다.
이 모든 것을 과학의 표처럼 도식화할 수는 없겠지만 대체로 그러한 경향이 있다는 것 역시 부인하기 힘들어요. 바이칼 호수에서 산 사람들을 우리는 부리야트(가장 북쪽에 사는 신몽골리안)라고 부르는데 이들의 얼굴과 안압 3호분에서 발견된 벽화를 보면 비슷합니다.
요즘 젊은 분들 중에는 신몽골로이드로 태어난 것을 한탄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몰라요. 어찌 보면 왜 그리 험난한 길을 걸어온 걸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유럽 쪽으로 가서 코카서스 쪽으로 갔더라면 지금의 선진국에서 태어나 얼굴 성형수술을 하지 않아도 오뚝한 코와 멋진 쌍꺼풀의 눈을 가졌을 텐데 말이죠.
그러나 내가 모르는 그 이전의 역사, 이 추위를 견뎌내며 이 땅에 도달한 바이칼호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가슴이 뜁니다.
“내가 해냈구나. 우리가 해냈구나. 그래서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겪어낸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구나.
그 어떤 짐승도 못 하고, 그 어떤 인간도 해내지 못한 영하 70도의 추위를 이겨냈구나.”
우리 얼굴이 바로 자랑스러운 훈장이고 서사이고 조각입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는 시베리아의 그 추위가 남아 있고, 우리 안에는 추위에 맞서 한 발 한 발 내디딘 인간의 위대함이 있습니다.
이런 배경을 모르는 인간들과는 게임도 안 되는 것이죠. 참고 견디며 그 추위를 뚫고 나온 사람들이 우리입니다.
이러한 역사의 장정을 뚫고 나온 덕분에 우리는 이 얼굴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난 것입니다. 이것이 한국인의 얼굴이고 내 얼굴입니다. 이 얼굴은 단 몇 년 만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수년, 수만 년을 거쳐 지금의 얼굴이 된 것이에요. 그렇기에 얼굴을 보기 위해 거울을 보지만, 지금 당장 거울을 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요. 역사의 거울, 문화의 거울을 보아야 비로소 내 얼굴이 드러나니까요.⊙
한국이라는 좁은 땅덩어리의 역사보다도 광활한, 단군신화보다 훨씬 더 요원한 몇만 년 전 우리의 선조가 이 땅에 오기 훨씬 이전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가야 해요.
힘든 대장정(大長程)을 마치고 나면 내 얼굴에서 인류의 역사와 문화, 한국인의 숨결을 읽을 수 있어요. 과거 국토 최남단에서 휴전선에 이르는 ‘국토대장정’ 행사가 매년 열린 적이 있어요. 목적지에 도착하면 참가자들 모두 너 나 할 것 없이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지요. 왜 우는지를 물어보면 딱히 정확한 답이 없어요. 그냥 웁니다. 그 눈물에는 분명한 의미와 감동이 있어요.
자기 나라의 땅을 본인의 발로 하나하나 밟고 완주했을 때의 성취감일 수도 있어요. 선조들이 지나가고 수많은 생명이 태어난 땅, 또 그만큼의 많은 생명체의 흙이 된 땅, 그 땅을 밟고 지나와 마지막 종착점에 이르렀을 때 자기도 모르는 감동이 있는 것이죠. 거기에 북받치는 눈물이 쏟아지는 겁니다.
지금부터 우리가 시작할 이야기는 국토대장정이 아닌 우리의 얼굴을 찾아 떠나는 ‘얼굴의 대장정’입니다. 국토대장정의 길이가 500km 조금 넘는다면 우리가 함께 떠나게 될 얼굴의 대장정은 2000km를 훨씬 넘어섭니다(서울에서 울란바토르까지가 약 2000km-편집자 주). 국토대장정의 기간이 40일 동안이라면 우리는 2만여 년의 세월을 거슬러 찾아가야 해요.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 누구의 아들이라는 것, 누구의 친구라는 것, 이 모두가 바로 우리 얼굴이 있기에 알 수 있는 겁니다. 얼굴에 의해 우리는 ‘나’라는 ‘정체성’을 갖게 되는 것이죠.
내가 내 얼굴을 찾는 것, 우리가 함께 우리 각자의 얼굴 찾기를 한다는 것은 결국 한국인의 얼굴 찾기가 될 것이며 지금부터 그 여정을 시작하려 합니다.
1. 피부색이 뭐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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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선생의 생전 모습이다. 2019년 11월 서울 영인문학관에서 촬영했다. |
두 번째는 너무 태우지 않으려고 오븐에 넣자마자 얼마 안 되어 꺼낸 것이 코카소이드(Caucasoid), 백인입니다. 이른바 ‘설익은 인간’이에요.
이번에야말로 실패하지 않으려고 온갖 신경을 써서 때맞게 꺼내어 잘 구워진 것이 바로 몽골로이드(Mongoloid), 황인종입니다. 이른바 ‘잘 익은 노란 인간’이지요.
물론 이 이야기는 아마도 황인종에 의해 만들어진 농담일 테지만 일종의 인종차별주의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어요. 인종 이야기는 얼마든지 ‘손이 안으로 굽는’ 이야기의 창조가 가능해요. 얼굴 이야기를 할 때 시각적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피부색입니다. 피부색에 의해 우리는 인종을 구별하고, 사람도 구별할 수 있어요. 문제는 이 피부색이 ‘구별’을 넘어 ‘차별’의 잣대가 된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얼굴이 노랗고, 흑인의 얼굴은 검다는 이유만으로 코카소이드가 지배하던 근대(近代)에는 많은 고초를 겪어야 했어요. 1863년 에이브러햄 링컨에 의해 노예 해방이 선언되기까지 약 300년 동안 유럽의 상인에 의해 신세계에 운송된 흑인 노예만 1500만 명에 달했다고 하지요. 노예무역의 아픈 과거만큼은 아니더라도 해외에서 사는 한국인이라면 한 번쯤은 황인종에 대한 백인 우월주의를 경험했을 겁니다.
일본은 탈(脫)아시아 정책을 쓴 국가예요. 일본인 중에 자신을 아시아인이 아닌 ‘바나나’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겉은 노랗지만 속은 하얀 바나나에 스스로를 비유한 것이죠. 서양인들도 그들을 특별 대우해 남아프리카공화국 같은 곳에선 일본인들을 명예 백인으로 대우하기도 했어요. 백인 이외에는 들어갈 수 없는 카페와 같은 곳들도 일본인들만은 예외로 입장할 수 있었죠. 물론 이런 일본인에게 수치심을 느끼고 이러한 문화를 부끄러워하는 일본인도 많았다고 해요. 얼굴색으로 남을 판단하고 무시하는 인종주의의 비극적 단면이라 할 수 있어요.
우리에게도 부지불식(不知不識)중에 옐로 콤플렉스가 있었어요. 이러한 콤플렉스는 백인 추종주의의 또 다른 면으로 흑인에 대한 멸시와 천대로 드러나기도 했어요. 1992년 LA폭동이 일어났을 때 유독 한국인들이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자신들을 무시했던 흑인들의 보복심리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LA에 사는 한국인 중 일부는 흑인들을 깜둥이, 연탄장수, 깜시 등으로 불렀다고 하니 흑인들이 한국인에 대해 가졌던 적대감은 어쩌면 당연했는지도 모르죠.
코카소이드는 유대 그리스도교의 인종적 우월주의
인종주의적 발상은 학자들이 인종을 칭하는 명명에서도 확실하게 드러납니다. 현생인류(現生人類)를 코카소이드·몽골로이드·니그로이드로 분류하는 사고방식이 일반적으로 보급되어 있으나, 인류학자 가운데는 이 분류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있어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이 세 분류의 명칭 역시 가장 객관적이어야 하는 학문의 영역에서마저 인종주의적 차별이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서양 문명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두 개의 큰 축이 ‘헬레니즘(Hellenism)’과 ‘헤브라이즘(Hebraism)’입니다. 이 중 우리가 이야기 나눌 주제와 관련 있는 것이 바로 헤브라이즘이에요.
‘헤브라이즘’은 헤브라이 민족의 사람들, 즉 유대인의 문화 전통이 서구화된 것을 지칭하는 말로 헤브라이즘의 가장 근간이 되는 것은 유일신(唯一神) 사상이죠.
오직 ‘야훼’만이 신이고 그 밖의 어느 것도 신이 아니라는 생각이었어요. 이러한 헤브라이즘은 창세기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태초의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선악(善惡)의 열매를 따 먹은 죄로 쫓겨나고 그 후 신을 잊은 채 살아가던 인간들에게 대홍수의 형벌이 내려지며, 노아의 방주를 타고 있던 노아의 가족만이 살아남습니다. 그들이 현재의 인류에게 유일 선조인 셈이죠. 홍수가 끝나고 노아의 방주가 도달한 곳, 방주 안의 비둘기가 날아가 간난잎(올리브잎)을 따 온 곳이 바로 튀르키예(터키) 코카서스 산맥의 아라랏산입니다.
아라랏산은 튀르키예의 제일 동쪽 끝에 있는 산이에요. 크게 두 개의 산이 있는데 그 가운데 골짜기에서 고대인의 백골이 출토되었고 출토된 백골의 골격 구조가 지금의 유럽인들과 똑같았어요.
‘코카소이드’를 말 그대로 해석하자면 ‘코카서스 산맥까지 이른 사람들’이라는 뜻이에요. 이 이야기가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오늘날 코카소이드라고 부르는 것은 현재의 인류는 노아의 자손이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품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유대 기독교에 기반한 백인 우월주의적 명명이라 할 수 있지요.
백인이라는 것 역시 흰색에 대한 우월성을 표현한 것입니다. 사실상 신=백인이라고 하는 말과 같아요.
# 피부색 이전의 민낯을 바라봐야
몽골로이드라는 명칭 역시 그 유래가 과학적이지는 않아요. 어째서 하필 아시아 중에서 몽골이라는 특정 지역이 동양인 민족을 칭하는 대표적인 단어가 되었을까요. 이 역시 서구 중심적인 해석입니다. 칭기즈칸(1162~1227년)의 후예인 쿠빌라이 칸(Khubilai Khan·1215~1294년)이 유럽을 지배할 때 유럽 사람들이 이 말을 만든 것이죠. 그리고 당시 아시아를 왕래한 마르코 폴로(Marco Polo·1254~1324년)와 같은 사람들 역시 쿠빌라이 칸이 중국을 지배했을 때 중국을 다녀왔기 때문에 몽골은 아시아를 상징하는 단어이자 대표하는 단어가 되었어요.
‘몽골병’이라는 것이 있어요. 영국의 다운(John Langdon Down·1828~1896년)이 1886년 특수 정신지체를 보이는 병을 발견하고 이를 ‘몽고인형(型) 백치(白痴)’라고 보고했으나 1959년 J. 레장(Je′ro^me Lejeune·1926~1994년) 등에 의해 병의 원인이 염색체 이상에 있다는 것이 밝혀져 다운증후군이라 불리게 되었지요.
이 병에 걸리면 지진아가 되거나 심장에 이상이 생깁니다. 후천적인 병이 아니라 태어날 때 이미 유전자에 의해서 걸린 병인데 옛날에는 이 병에 걸린 아이들이 눈도 튀어나오고 꼭 몽골인처럼 생겼다고 해서 몽골병, 혹은 몽골인병이라 불렸다고 합니다.
피부색처럼 코카소이드니 몽골로이드니 하는 말부터가 이미 과학으로부터 거리가 먼 것들이라는 이야기예요. 그러니 피부색도 벗겨내야 해요. 인류가 가진 피부색 이전의 민얼굴, 민낯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래야 인류의 첫 시작점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어요.
2. 아웃 오브 아프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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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자연사박물관에 있는 네안데르탈인(오른쪽)과 호모 사피엔스(왼쪽) 모형. |
‘제노그래픽 프로젝트(Genographic Project)’를 이끈 스펜서 웰스(Spencer Wells·1969~) 박사팀은 지난 1987년 DNA 연구를 통해 인류의 기원이 아프리카인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했어요. 사람의 미토콘드리아 DNA(mtDNA)가 모계를 통해서만 전해진다는 사실로부터 출발, 현 인류의 가계도를 거슬러 올라가 보니 현대인의 근원지는 아프리카 대륙이었고, ‘미토콘드리아 이브’인 어느 한 여성이 인류의 공통 조상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주장에 신빙성을 제공하는 근거들 역시 제시되었어요. 인류의 오랜 화석이 아프리카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되고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1974년 에티오피아의 하다르 계곡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Australopithecus afarensis)’라고 불리는 원인(猿人)의 화석 골격이 발견되었어요.
250만 년 전의 직립원인 화석으로 인류의 직접적인 조상이라 여겨지고 있으며 ‘루시’라고 불립니다. 발견 당시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라는 비틀스 노래가 흘러나와 ‘루시’라고 붙여졌다고 하지요. 이 곡은 비틀스 명반으로 꼽히는 1967년작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의 수록곡입니다.
이 외 탄자니아 올드바이(Tanzania Olduvai Valley) 유적에서도 여러 점의 인류 화석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아프리카였을까요? 왜 그것도 에티오피아였을까요? 이 역시도 많은 주장이 있을 수 있습니다.
고릴라, 침팬지, 오랑우탄과 같은 대형 유인원들을 포함한 영장류가 점차 진화하고 발전하여 현생의 인류에 이르렀다는 것이 우리가 가장 광범위하게 인류의 기원으로 믿고 있는 진화론이죠. 이 중에서 인류의 조상이 된 유인원은 다른 유인원들과 달리 정글과 숲의 나무에서 내려와 너른 평지에서 삶의 터전을 잡게 된 유인원들입니다.
아프리카 에티오피아는 사막지대도 정글도 아닌 사바나 지역이에요. 즉 숲에서 나와 초원에서 생활하게 된 유인원들이 인류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이들은 숲속 나무 위에서 내려올 생각은 하지 않은 채 머무른 유인원들과 달리 스스로에게 던져진 도전과 과제들을 풀어가며 진화해왔어요. 이렇듯 다른 유인원들과 달리 평지로 내려와 독립적으로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간 인종을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us·원숭이 사람)로 지칭해요. 학계에서는 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출현을 인류의 탄생으로 여기고 있어요.
네발로 나무를 타던 숲속 생활과 달리 평지의 생활은 두 발을 요구했어요. 직립보행(直立步行)입니다. 초원과 같은 평지에서 생활을 하던 ‘루시’의 형제들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중 일부가 새롭게 걷는 방식을 시작했어요.
이렇게 시작된 직립보행은 인간의 이동을 보다 용이하게 했을 겁니다. 인간은 직립보행을 했기 때문에 멀리 이동할 수 있었겠죠. 그래서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이기 이전에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였어요. 영어로 일렉트(erect)는 ‘똑바로 서다(straight)’ ‘세우다’는 뜻입니다.
두 발로 걷기 시작한 인류는 아프리카를 떠나 대장정을 시작했지요.
벅찬 감격의 아름다운 말,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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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인종의 이동 경로 추정도. 그래픽=조선DB |
네안데르탈인은 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와 만년 이상 공존했다고 해요. 옷을 입혀 모든 인종이 섞여 있는 뉴욕 지하철에 갖다 놓아도 조금도 이상하게 바라볼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네안데르탈인이었지만, 몸집도, 두뇌의 크기도, 심지어 장례식을 치르고 꽃을 좋아한 것까지 인간과 닮은 네안데르탈인이었지만, 끝내 그들은 인간이 되지 못하고 빙하기와 함께 절멸하고 말았다고 해요.
그들과 호모 사피엔스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요? 골짜기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았지만 호모 사피엔스의 유적을 파보면 100km 이상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의 석재를 사용한 흔적이 있다고 해요. 그러나 네안데르탈인들에게서는 그런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다고 합니다. 인류가 탄생한 곳은 아프리카입니다. 그 자리에 그냥 머물러 살아온 인종이 니그로이드(흑인)이고 아프리카를 벗어나 유럽대륙까지 걸어 나온 인종이 코카소이드(백인), 그 한계선마저 돌파하여 산맥과 고원과 동토(凍土)대를 지나 계속 걸어 나간 인종이 바로 몽골로이드(황인)입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아프리카 탈출)’에서 인간이 형성되고 그 모험의 역사는 시작됩니다. 인류학자들은 그것을 ‘그레이트 저니(Great Journey)’라고 불러요. 무엇 때문에 인간은 편안한 열대의 정글과 초원을 떠나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북녘 설원을 횡단해야만 했을까요?
걷는다는 것, 나그네라는 것, 밖으로 나가는 보행의 의지와 그 자유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걷지 않고 무엇인가를 탑니다. 말을 타고 배를 타고 자동차와 기차와 비행기를 탑니다. 그러나 전쟁은 언제나 보병이 걸어 들어가는 것으로 끝나듯이 궁극적으로 ‘타는’ 문화는 ‘걷는’ 문화에 의해서 종결되죠. 어떤 이동수단[乘用物]도 보행의 의지와 자유를 대신할 수가 없습니다.
실려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멈추고 싶으면 멈추고 가고 싶으면 갑니다. 길이 없어도 걷습니다. 중력을 거슬러 등뼈를 똑바로 세우는 오기를 두 발로 증명하죠. 어느 짐승이 이렇게 걸을 수가 있나요. 한 발 한 발 앞으로 걸어갈수록 새로운 지평이 다가옵니다. 그리고 걷는 것만큼의 새로운 풍경이 펼쳐져요. 그때 비로소 굴러가는 바퀴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여행의 참된 신체성(身體性)을 발견하죠. 보행을 통해서 나는 수송된 여객이 아니라 나 자신이 됩니다. 아주 천천히 나는 ‘나그네’가 되는 것이죠. 나그네의 그 리듬을 상실할 때 모든 승용물의 의미도 함께 사라져요.
몽골로이드의 길고 긴 보행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국경 없는 세계화이든, 사이버 스페이스이든, 위험과 희망이 도사린 벤처의 길이든 인류의 그레이트 저니는 중단될 수 없지요. 우리는 네안데르탈인이 아닙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경주(競走)에서 가장 멀리 온 호모 사피엔스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됩니다.
아프리카에서 아시아로 이동은 어떻게 아프리카 대륙은 대부분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서 그곳을 벗어나기 힘든 지형이지만, 홍해 유역을 통해 아프리카는 아시아와 만날 수 있다. 현생인류가 최초로 아프리카를 벗어나 다른 대륙으로 이주를 시작한 것은 대략 6만~7만 년 전이라고 한다. 오늘의 우리의 눈으로 보면 1만 년의 시간은 거의 인간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기간이다. 처음에는 소수가 아프리카를 떠나 아시아 남동부로 이주를 했을 것이다. 일부는 유럽 쪽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지금보다 해수면이 낮았던 5만~6만 년 전, 당시에는 육지였던 곳이 지금은 바다로 변한 곳이 많다. 따라서 당시 현생인류의 이동경로를 정확히 추적하기는 어렵지만 아시아 남동쪽으로 이동한 무리 가운데 일부는 해안을 따라서 지금의 동남아시아를 거쳐 오스트레일리아까지 이동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곳에서 5만 년이나 된 그들의 화석이 발견되는 것은 이 같은 사실을 말해준다. 다만 어떻게 이동했는지는 수수께끼다. 아시아 본토와 인도네시아가 ‘육교’로 연결되던 시기에 이들이 이동했다고 하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여기서 육교란 지구의 물이 대부분 빙하로 동결되어 해면 수위가 낮았던 빙하기에 얕은 바다 위로 등성이를 드러내던 육지를 가리킨다. 또한 인도네시아에서 보트나 갈대를 묶어서 만든 뗏목을 타고 뉴기니 섬으로 이주했을 것이다. 그러나 뉴기니에서 오스트레일리아로 가려면 100km나 항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위험한 일을 기도한 이유는 찾기 힘들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폭풍에 밀려 마지못해 바다를 건넜으리라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자손을 아보리진(Aborigines)이라 부른다. 의미는 ‘시초(始初)’라는 뜻이다. 어떤 자료에는 약 20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진화하여 아시아로 들어왔다는 주장도 있다. 우리나라의 구석기 시대 유적인 북한 평안남도 상원군 모루동굴 유적과 충북 단양군 금굴 유적 등이 이들 직립원인인 호모 에렉투스의 주거 유적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대략 10만 년 전까지 아프리카와 아시아 대륙에 넓게 존재했으나 그 뒤 멸종했다. 이들이 사라지기 앞서 이미 우리와 같은 종(種)이 등장했는데 이들이 바로 호모 사피엔스, 즉 지능을 가진 사람이다. 우리가 이런 이름을 붙인 것은 직립원인(에렉투스)에 비해 두개골이 둥글고 그 안에 큰 뇌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한 것은 약 15만 년 전으로 보고 있다. 현생인류는 동아프리카 지역에서 처음 등장해 아프리카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6만~7만 년 전에는 서아시아 지역으로, 약 5만 년 전에는 동아시아, 약 4만 년 전에는 유럽 지역으로 이동해 빙하가 없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살았다. 또한 이들은 2만5000년 전 처음으로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동하여 북쪽 지역에서 살았다. (임영태의 《스토리 세계사1》, 제임스 데이비스의 《쉽고 재미있는 인류 이야기》 인용) |
3. 인종의 3가지 분류… 코카소이드, 몽골로이드, 니그로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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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는 몽골로이드와 코카소이드의 안면과 두개골 차이점. 아래는 북방계와 남방계 남녀 모습이다. |
아프리카에서 끝없이 밖으로 나간 것이죠. 이 ‘아웃 오브 아프리카’ 경로는 두 개의 길로 나뉩니다. 하나는 유럽으로, 또 다른 하나는 인도로 해서 남쪽으로 갔습니다.
코카소이드, 몽골로이드, 니그로이드라는 인종의 분류는 이렇게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인류 대장정의 루트에 근거해요.
코카소이드는 아프리카 대륙을 벗어나 유럽대륙의 코카서스 산맥에까지 이른 인류로 지금의 서양인들입니다. 코카소이드의 이동 경로에서 알 수 있듯 이들은 추위를 모릅니다. 지금의 러시아 사람들 역시 이 부류에 속하지만, 처음부터 이 지역에 다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문화와 문명이 생기고 난 이후에 정착한 사람들이죠. 난방시설이 되어 있고, 모피 코트로 몸을 감싼 후에 추위를 경험한 사람들과 알몸으로 추위를 견딘 사람들은 당연히 다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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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쪽부터 바이칼 호수 동쪽에서 내려온 퉁구스 북방계, 그리고 두 번째는 바이칼 호수 서쪽에서 내려온 알타이 북방계, 세 번째는 통일신라 이후 남방계와 북방계의 혼혈로 출현한 중간계, 네 번째는 인도네시아 순다 열도에서 올라온 남방계 한국인 여성의 전형적인 얼굴. 특정 인물의 사진이 아니라, 각 집단의 특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얼굴을 합성해서 만든 사진이다. 사진=조선DB |
지금의 호주인 남쪽으로 이동한 몽골로이드는 남방계로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일본의 오키나와 지역과 같은 곳으로 퍼진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중 추위를 겪어 지금 우리와 같은 몸의 형태를 가지게 된 사람들이 ‘신몽골로이드’라고 해요.
마지막으로 아프리카에서 떠나지 않은 사람들, 그 자리에 주저앉은 사람들을 우리는 니그로이드라 부릅니다.
코카소이드, 몽골로이드, 니그로이드는 얼굴에 각각의 특징을 가지고 있어요. 안면과 두개골 구조와 형태 역시 다릅니다. 우리는 흔히 인종을 피부색으로 구별하지만 인종이라는 것은 피부색 이전의 문제입니다. 피부색은 우리 스스로가 정해놓은 하나의 틀일지도 모릅니다.
그럼 우리의 직접적 조상이라 할 수 있는 신몽골로이드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나눠볼까요? 몽골로이드는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택한 인류의 조상 중에서도 가장 긴 여정을 택한 인류입니다. 그들은 시베리아 쪽 추운 지대로 들어가 인류의 마지막 빙하기인 신빙하기가 도래한 후 얼음 속에 갇혀버리고 맙니다. 나가질 못한 것이죠. 그들이 갇힌 곳, 그곳이 바이칼 호수입니다.
같은 몽골로이드라 할지라도 바이칼 호수의 혹독한 추위를 경험했는가, 경험하지 못했는가에 따라 많은 차이가 발생합니다. 한국인의 얼굴에는 바이칼호의 추위가 서려 있어요. 오염되지 않은 지구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맑은 바이칼 호수. 그 신비한 호수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본다면 우리 선조들의 얼굴을 볼 수 있을 겁니다.
4. 추위를 이겨낸 한국인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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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진 인물연구소장. 사진=조선DB |
그중 하나가 바로 ‘얼굴’이에요. 몇십 년 전의 사진을 꺼내보면 바로 이 말에 수긍할 겁니다. “이게 한국인인가?” 할 정도니까요. 성형수술을 해서가 아니라 얼굴 그 자체가 많이 바뀌었어요. 이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들이 있습니다. 병탄(倂呑) 이듬해인 1911년 조선총독부는 전국 128개 군의 남녀에 대해 4~8명씩 정면과 측면을 촬영하여 사진마다 고유번호를 붙이게 했어요.
지금과 달리 카메라가 발달하지 않았던 때라 유리에 감광액을 칠하여 만든 흑백사진입니다. 유리원판인지라 몇 장이라 해도 무게가 만만치 않았을 겁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약 90년 전의 우리 선조들의 얼굴을 보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어요.
두 번째 자료는 조용진 얼굴연구소장이 1986년부터 촬영 수집한 한국인의 약 3000명 분의 얼굴 사진입니다. 얼굴연구소는 3차 곡면인 얼굴의 형상을 기록하기 위해 지도책과 같이 등고선을 그어 기록해놓은 자료들도 보관하고 있어요.
인간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얼굴을 연구하려면 과학적인 분석이 중요합니다. 문화적인 껍질을 다 벗겨내고 온전한 민얼굴의 과학적 연구야말로 우리의 얼굴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잣대가 되기 때문이죠.
조용진 선생은 홍익대와 동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후 가톨릭 의과대학에서 7년간 인체해부학을 연구했다고 해요. 일본 동경예술대학에서 미술해부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서울교대 미술대학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남대 미술대학 객원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그는 ‘미술해부학’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셨어요. 험난한 히말라야 정상을 향해 산을 오르는 산악인들에게 현지에 능통한 셀파들이 필요하듯, 몇십만 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우리의 ‘얼굴 찾기’에 중요한 가이드를 해주신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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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여 년 전 백제인의 얼굴. |
조용진 선생 덕분에 귀중한 자료 하나를 얻을 수 있었는데 충청남도 사람들의 얼굴입니다. 옆과 앞 얼굴 등을 전부 사진으로 찍어서 데이터화한 것입니다. 이게 옛날 한국 사람들의 얼굴이에요. 이 사진은 불과 50년밖에 지나지 않은 과거지만 지금의 한국인들과는 많이 달라요. 1m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으며 하나하나 얼굴을 자로 재고 당시의 얼굴과 현재의 얼굴을 비교 분석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빅데이터가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얼굴 찾기’의 근거자료로 많이 활용되었어요.
그렇다면 2000~3000년 전에 한반도에 정착을 한 우리 선조들의 얼굴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얼굴은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또 그들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우리의 얼굴은 조상님이 주신 것이요, 결국 유전자를 통해서 형성된 것입니다. 수천 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한국인의 얼굴, 그 얼굴을 알아볼 수 있어요.
세계인의 용모에 대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이 획득하고 있는 용모적인 특성이 있다고 해요. 이 통계자료는 대략적인 감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해부학에 근거하여 전 세계인의 표본을 대상으로 방대한 자료의 조사는 물론 엄격한 분석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통계입니다. 이 통계에 의한 한국인이 1등인 특성은 크게 네 가지입니다.
세계에서 눈이 가장 작고 털이 없기로 1등 민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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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용모의 특징. |
둘째가 털이 없기로 세계 1등입니다. 여기서 잠시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를 소개하자면, 우리 인간은 원숭이에서 진화했다고 하잖아요. 인간 모두가 어릴 적 원숭이라는 이야기죠. 그렇다면 털이 많고 적음의 정도가 진화의 정도라는 이야기가 될 수 있어요. 즉 털이 많은 서양인과 비교해 털이 적은 우리가 더 진화했다는 것이죠. 이게 네오테니(Neoteny)라는 것입니다. 네오테니 혹은 유형성숙(幼形成熟)이라는 용어는 ‘유아화’를 뜻하는 말로 생물이 나이를 먹었는데도 어릴 적 형태를 그대로 간직하는 경우 적용됩니다.
침팬지가 사람 얼굴하고는 전혀 다르지만 갓 태어난 침팬지 새끼와 갓 태어난 어린아이의 얼굴은 어떠한가요. 서로 비슷합니다. 안면각도 그렇고, 털이 없다는 것도 그렇죠. 동양인들이 서양인에 비해 동안인 이유에 대해 서양인에 비해 동양인이 네오테니적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어요.
셋째로 우리가 1등인 것은 귀에서 머리까지의 길이입니다. 다시 말하면 두상이 크다는 이야기죠. 뇌와 머리가 무엇이 먼저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뇌가 생기고 뇌를 감싸기 위해 머리가 생겨났을 겁니다. 이런 특징을 갖는다는 것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당연히 뇌도 다를 것이 아니겠어요?
마지막으로 골상학 등을 이용해 실제 과학적으로 하나하나 계측하고 통계를 낸 객관적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의 치아는 세계에서 제일 크다고 해요. 이가 크다는 것은 참으로 많은 문화적 특성과 연계되어 있어요. 어금니가 크니 뒤로 밀려들어 가고, 사랑니 같은 것은 나오지도 못한 채 저 밑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의 발음 체계라든가, 먹는 식문화와도 깊은 연관이 있어요.
이 이야기는 뒷부분에서 좀 더 나누도록 해요. 한국인이라는 민족이 원래 다른 나라의 사람들에 비해 좋은 점이든 나쁜 점이든 유별난 것은 사실입니다. 용모에서 봐도 이미 금메달 몇 개는 가지고 있지 않은가요?
바이칼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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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한국인의 특성이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그 얼굴 대장정의 시작은 바로 시베리아의 바이칼호입니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우리 조상들의 1만km가 넘는 대장정이 지금의 우리 얼굴의 모양과 무관하지 않아요.
신(新)몽골로이드만이 바이칼 호수에서 영하 70도의 추위를 견뎌낸 사람들입니다. 얼굴 중에서 추위에 가장 많이 노출될 수밖에 없는 부위가 코와 눈이에요. 혹독한 추위를 이기기 위해 코는 더 낮아지고, 눈두덩은 두꺼워지게 됩니다. 또 얼굴 광대뼈는 튀어나오게 되었어요. 쌍꺼풀 없이 두툼해진 눈, 튀어나온 광대뼈, 납작한 코. 이것은 그 어떤 인간도 겪어보지 못한 그 추위 속에서 살아남아 한 발 한 발 내디뎌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온, 그래서 결국 한반도에까지 이른 우리 선조들이 남겨준 얼굴입니다. 혹한이 만들어낸 바이칼 호수가 만들어낸 조각이고 예술품이고 상징입니다.
이 모든 것을 과학의 표처럼 도식화할 수는 없겠지만 대체로 그러한 경향이 있다는 것 역시 부인하기 힘들어요. 바이칼 호수에서 산 사람들을 우리는 부리야트(가장 북쪽에 사는 신몽골리안)라고 부르는데 이들의 얼굴과 안압 3호분에서 발견된 벽화를 보면 비슷합니다.
요즘 젊은 분들 중에는 신몽골로이드로 태어난 것을 한탄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몰라요. 어찌 보면 왜 그리 험난한 길을 걸어온 걸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유럽 쪽으로 가서 코카서스 쪽으로 갔더라면 지금의 선진국에서 태어나 얼굴 성형수술을 하지 않아도 오뚝한 코와 멋진 쌍꺼풀의 눈을 가졌을 텐데 말이죠.
그러나 내가 모르는 그 이전의 역사, 이 추위를 견뎌내며 이 땅에 도달한 바이칼호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가슴이 뜁니다.
“내가 해냈구나. 우리가 해냈구나. 그래서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겪어낸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구나.
그 어떤 짐승도 못 하고, 그 어떤 인간도 해내지 못한 영하 70도의 추위를 이겨냈구나.”
우리 얼굴이 바로 자랑스러운 훈장이고 서사이고 조각입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는 시베리아의 그 추위가 남아 있고, 우리 안에는 추위에 맞서 한 발 한 발 내디딘 인간의 위대함이 있습니다.
이런 배경을 모르는 인간들과는 게임도 안 되는 것이죠. 참고 견디며 그 추위를 뚫고 나온 사람들이 우리입니다.
이러한 역사의 장정을 뚫고 나온 덕분에 우리는 이 얼굴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난 것입니다. 이것이 한국인의 얼굴이고 내 얼굴입니다. 이 얼굴은 단 몇 년 만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수년, 수만 년을 거쳐 지금의 얼굴이 된 것이에요. 그렇기에 얼굴을 보기 위해 거울을 보지만, 지금 당장 거울을 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요. 역사의 거울, 문화의 거울을 보아야 비로소 내 얼굴이 드러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