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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 ⑬ 지렁이 울음소리

밟히고 또 밟히면서 흙·생명 만드는 지렁이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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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우리 농촌에서는 지렁이 울음소리를 들었을까?
⊙ 날 키운 흙 떠나는 건 슬픈 게 아냐… 우리 씨가 퍼져야
⊙ 흙은 국토의 개념이고 내 생명의 개념, 민족의 개념
⊙ 흙에 누워서 별을 봤을 때 듣던 소리… 지렁이가 우는 소리
⊙ 역사는 ‘밟은 자’의 역사가 아니라 ‘밟힌 자’의 역사

李御寧(1933~2022)
서울대 국문학과·同 대학원 졸업, 문학박사 / 경기고 교사, 이화여대 교수, 《조선일보》 《한국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 《서울신문》 논설위원, 동아시아 문화도시 조직위원회 명예위원장,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 조직위원장, 초대 문화부 장관 역임

[편집자 註]
이어령 선생이 타계한 지 1년이 되어간다. 선생은 생전(生前) 시리즈 ‘한국인 이야기’의 문패에다 ‘끝나지 않은’이란 수식어를 직접 붙였다.
생전 선생은 당신이 남긴 굵직한 저작물과 수많은 강연에서 언급한 ‘한국인 이야기’를 비록 당신이 떠나도 계속 이어가기를 희망하였고 관련 원고와 저서의 일부를 《월간조선》에 전하였다. 또 선생이 남긴 바탕 위에 편집자의 생각을 보태도 된다고 허락하였다. 아주 조심스럽게 선생이 남긴 큰 발자국을 따라 연재를 이어가고자 한다. 선생에게 누(累)가 되지 않기를 소망할 뿐이다.
이어령 선생의 저술활동 50년을 기념하는 ‘만남 50년’ 행사가 2009년 11월 27일 오후 5시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열렸다. 펜을 쥔 자신의 손 모양을 담은 기념조각을 증정받은 이어령 선생이 활짝 웃고 있다. 사진=조선DB
  # 지렁이 울음소리
 
  여러분은 지렁이 울음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나요? 2015년 무렵 강연을 할 때, 지렁이 울음소리를 녹음해서 거리로 나가 사람들에게 무작위로 들려주고 무슨 소리 같으냐고 물은 적이 있어요. 그 소리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지요. 풀벌레 울음소리 같다는 사람, 바람소리 같다고 하는 사람, 귀뚜라미 소리라고 하는 사람, 또는 전자기기의 전파음 같다고 하는 사람 등등 다양한 답이 있었지만 지렁이 울음소리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뭐라고 딱 단정 지어 말할 수 없는, 윙윙~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잉~잉~ 하는 것 같기도 한 소리거든요. 나이가 아주 많은 시골 어르신에게 들려주었으면 “지렁이 울음소리야”라고 답을 했을지도 모르죠.
 
  옛날 사람들은 한밤중에 들려오는 그 소리를 지렁이 울음소리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땅강아지가 우는 소리예요. 과학적으로 발성기관도 조음기관도 없는 지렁이는 소리를 내지 못합니다. 지렁이 생김새를 보세요. 어느 한구석이라도 소리 낼 수 있게 생겼나? 그런데도 옛날 사람들은 깊은 땅속에서 지렁이가 운다고 생각했어요. 지렁이는 울지도 않고 소리 낼 방법도 없는데 왜 우리 농촌에서는 지렁이 울음소리를 들었을까요?
 
“저 알 수 없는 지렁이 울음소리를 듣고 싶은 간절함… 깊은 땅속 흙의 소리를 듣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사진=게티이미지
  저 알 수 없는 지렁이 울음소리를 듣고 싶은 간절함… 깊은 땅속 흙의 소리를 듣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우리 농촌의 저 땅, 혹은 흙 아래에서 울려오는 소리. 숲에서 울려오는 것도, 하늘에서 울려오는 것도 아닌, 땅속에서 나오는 저 소리, 그게 지렁이 울음소리예요.
 
  그런데 땅속에서 소리가 울려 나오려면 사실은 지진밖에 없어요. 땅강아지도 땅 위에서 울었지 땅속에서 울지는 않았을 거거든요. 그런데도 옛날 사람들은 그 땅강아지 소리를 굳이 지렁이의 울음이라고 생각한 거예요. 흙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 말이죠. 지렁이가 있는 땅은 살아 있는 땅이죠. 그러니까 지렁이가 우는 소리는 흙을 만드는 소리예요.
 
  우리 속담에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라는 게 있어요. 그 많은 벌레 중에 왜 하필 지렁이였을까요? 우리 옛이야기에 자주 등장하는 지네도 있고, 흔히 보는 메뚜기, 여치, 방아깨비, 귀뚜라미… 농촌에 가면 벌레가 얼마나 많아요. 그런데 그 속담에 등장하는 것은 다름 아닌 지렁이예요. 이유가 뭘까요?
 
  먹이사슬의 제일 밑바닥이 지렁이예요. 지렁이는 눈도 없어요. 그래도 몸으로, 피부로 빛을 느껴서 그 감각으로 빛을 피해 땅속으로 들어가죠. 지렁이는 암컷, 수컷도 없어요. 한 몸에 암수가 다 있어요. 그리고 지렁이는 모든 동물의 밥이에요. 하늘을 나는 새부터 물속 물고기까지. 우리가 낚시할 때 낚싯밥으로 지렁이를 쓰잖아요. 그러니까 먹이사슬의 제일 하층에 있죠.
 
 
  아낌없이 주는 지렁이
 
“옛날에 멍석 펴놓고 말이야, 흙에 누워서 별을 볼 때 듣던 소리야. 지렁이가 우는 소리야. 저것은 땅강아지 소리 아니야. 내가 들었어. 저 지층(地層) 깊숙한 곳에서 지렁이가 울었다고.” 사진=게티이미지
  두더지는 땅속에 살아요. 두더지가 왜 굳이 땅속에서 살게 되었을까요? 눈이 보이지 않아서 땅속으로 들어간 건지, 땅속에 들어갔기 때문에 눈이 보이지 않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제 두더지는 영영 땅 위로 못 올라와요. 눈이 보이지 않으니까, 약하니까.
 
  땅 위에서 살지 못하는 약한 것들이 새가 되어 하늘 위로 도망쳤어요. 하늘로 도망치지도 못하고 땅 위에서 살 만큼 강하지도 못한 것들은 땅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러니까 땅속 동물은 가장 약한 생명체예요. 그런데 실은 이게 역설적으로 생명력이 가장 센 생명체이기도 해요. 가장 약한 존재지만 가장 생명력이 강한 존재인 거죠.
 
  땅속에 사는 두더지는 지렁이가 없으면 죽습니다. 그 깜깜한 땅속에서 지렁이밖에 먹을 게 없잖아요. 눈이 안 보여서 땅 위로 나갈 수도 없는 두더지가 땅을 파봐야 지렁이 말고 나올 게 뭐가 있어요. 그 두더지가 땅을 파서 지렁이가 나오면 그걸 먹는데 한번에 다 먹지 않아요. 두더지가 지렁이 목장을 운영하는 거죠. 반쯤 먹고 그 목장에 던져두는 거예요. 그러면 지렁이는 알아서 먹힌 부분을 재생해내며 살아나거든요. 세상에 이런 생명력 강한 동물이 또 있을까요? 놀라운 거죠.
 
  지렁이가 동물 먹이로서만 이렇게 이로운가요? 아니에요. 식물들도 지렁이가 없이는 못 삽니다. 가랑잎이 땅으로 떨어졌는데 지렁이가 없으면 그건 그냥 마른 가랑잎으로 끝나는 거예요. 그런데 지렁이들은 구멍을 파서 땅 위로 나와 떨어진 가랑잎을 먹어요. 그리고 소화해서 하루에 자기 몸만큼의 배설물을 내놔요. 그게 흙을 만드는 겁니다. 가랑잎을 먹어서 흙을 만들고, 그 흙에서 식물이 자라요.
 
 
  # 박완서 소설 〈지렁이 울음소리〉
 
등단 40주년이 되던 2010년 1월 박완서 소설가. 사진=조선DB
  소설가 박완서 선생이 1973년 《신동아》에 발표한 단편 〈지렁이 울음소리〉라는 작품이 있어요. 이 작품은 그 얼마 후 잡지 《문학과 지성》에 재수록됐어요. 비로소 ‘작가’로서 대접받기 시작한 소설인 셈이지요.
 
  소설 속 화자인 ‘나’는 ‘욕쟁이’라는 별명을 가진 스승과의 추억이 있습니다. 광복 후 미군정 시절, 국어를 가르친 이태우 선생은 ‘내’가 다니던 여학교 선생이었는데 아니꼬운 것도 부정도 못 보던 성격의 소유자였어요. 수시로 분통(憤痛)을 터트리며 욕을 했어요. 그 시절, 욕할 일이 좀 많았겠어요?
 
  항상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세상사에 참견을 하고 비분강개를 터트리는 사람’이었죠. 그때는 일제가 끝난 직후였으니, 학생들이 학교에서 일본말을 쓰는 경우가 많았을 거 아니에요. 강점기 때는 조선어 사용을 완전히 금지했으니 일본어가 입에 배었을 테죠. 무의식 중에 일본말을 쓰면 국어선생다운 결벽성으로 절대로 그냥 지나치는 일이 없었어요.
 
  “이 자식들아, 그래 너희는 밸도 없나. 그 지긋지긋한 왜놈의 말을 또 입에 담아봐. 노예근성이 뼛속까지 박힌 놈으로 알고 회초리로 다리몽둥이를 부러트려 줄 테니까.”
 
  이렇게 쌍욕을 했죠.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윤동주의 시를 젖은 목소리로 정성스레 낭송해 들려줄 줄도 아는 사람이었어요. 그러니까 여학생들이 너무너무 존경하는 선생님이었죠. ‘아, 저 사람은 분노가 있구나’ ‘불의(不義) 앞에 막 소리를 치는 용기가 있구나’ 하면서요.
 
 
  남편이 하는 딱 두 가지
 
  ‘나’와 결혼한 남편은 좋은 대학 상대(商大)를 나와 은행 중역을 거쳐 지금은 지점장입니다. 제 시각에 퇴근할 뿐 아니라 술·담배도 못 해요. 대신 단팥이 잔뜩 든 생과자나 찹쌀떡, 시골에서 고아온 눅진한 조청 따위를 즐깁니다. TV 연속극과 쇼를 재미나 합니다. 삶의 모험이나 불굴의 투쟁정신이니 하는 남성성은 먼 나라 이야기죠.
 
  게다가 유산으로 물려받은 작은 상가건물에서 적지 않은 월세까지 받으니 경제적으로 얼마나 윤택하겠어요. 알토란 같은 삼 남매와 아름답고 순종적인 부인까지 두고 있으니 남부러울 게 없죠.
 

  남편은 안정된 생활을 누리면서 딱 두 가지, 텔레비전 보는 것과 정력제 사는 것만 해요. 이 남편은 텔레비전 볼 때 TV 채널을 돌리는 독특한 기술을 가지고 있대요. 이 소설을 쓴 시절에는 지금과 달리 리모컨이 없어서 채널을 바꿀 때는 TV 본체 옆에 붙은 다이얼을 돌려 채널을 바꿔야 했거든요. 작가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7에서 9로, 9에서 11로, 이 매혹적인 홀수에서 홀수로 옮아가는 길에 아무리 바빠도 거쳐야 하는 8이나 10이란 공허한 짝수를 용케도 냉큼냉큼 건너뛰어 곧장 7에서 9로, 9에서 11로, 또 11에서 9로, 9에서 7로 전광석화처럼 채널을 돌리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이게 남편의 기술에 대한 칭찬 같지는 않죠? 심지어 남편은 TV를 보면서 군것질을 즐기죠. 소설에선 이렇게 묘사합니다.
 
  〈맛있게 맛있게 먹으며 입술 언저리를 야금야금 핥으며,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줄기차게 연속극과 쇼에 재미나 했다. 아니 연속극도 맛있어하더라고 하는 편이 옳을지도 모른다. 나에겐 그가 흡사 연속극도 단팥과 함께 먹고 있는 것같이 보였기 때문이다. 실상 두뇌나 심장이 전연 가담하지 않은 즐거움의 표정이란 음식을 맛있어하는 표정과 얼마나 닮은 것일까.〉
 
 
  ‘그럴 수는 없어. 그것만은 참을 수 없어’
 
  ‘나’는 남편과 함께 다디단 간식, TV 연속극을 즐기는 사람이면 좋을 텐데, 불행하게도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TV 연속극도 단것도 안 좋아했다. 나는 단것이 위장에 해롭다고 믿고 있었고, TV는 바보상자라는 말에 깊이 공감하고 있었고, 연속극이 퇴폐적 단세포적 어쩌고 저쩌고 하며, 자못 고상하고도 혹독하게 매도되는 소리에 귀 기울이기를 즐겼다.〉
 
  그러니, 남편을 어떻게 바라보았을지는 짐작할 수 있겠죠? ‘나’를 더욱 외롭고 슬프게 만드는 건 이 현대에 욕을 할 줄 모르는, 아니 욕할 생각이 없는 남편이었죠. 타성에 젖어 자신의 행과 불행을 굳이 따져볼 일이 없었던 화자를 깨운 사람은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맏아들이에요. 느닷없이 이 아들이 미술대학에 가고 싶다고 하자 남편은 어처구니없어합니다. 아들에게 안정된 생활의 행복을 찬양하고 또 찬양하며 아들을 타이릅니다.
 
  〈“서울상대를 가야 해. 뭐니뭐니 해도 생활 안정이 제일이니라. 봐라 지금의 네 애비를. 뭬 그릴 게 있나. 뭬 걱정인가.”〉
 
  이 말을 할 때 남편 입가에 떠오르는 득의와 회심의 미소가 싫고 징그러워 아들이 남편의 그 말에 반기를 들어주기를 ‘나’는 바랍니다. 그런데 이 아들은 뜻밖에도 다소곳이 아버지의 말을 듣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화자의 내부에서 별안간 힘찬 반란이 일어요. ‘아니지, 당신은 그렇게 살아도 좋지만 내 아들은 당신처럼 살아서는 안 돼, 그건 안 돼!’ 그렇게 생각하게 된 거죠. ‘그럴 수는 없어. 그것만은 참을 수 없어’ 하는 격렬한 외침이, 심한 딸꾹질처럼 오장육부에 경련을 일으키며 치솟아요. 부유하고 평화로운 현재의 생활에 감사하고 속물처럼 살아가지만 화자가 여학생 시절에 생각했던 생이라는 건 이런 게 아니었으니까요.
 
 
  여학생 시절의 우상, ‘욕쟁이’ 이 선생
 
“국어를 가르친 이태우 선생은 여학교 선생이었는데 아니꼬운 것도 부정도 못 보던 성격의 소유자였어요.” 50여 년 전 교복 차림에 단정한 머리를 한 여중생들 모습이다. 사진=조선DB
  겉으로만 볼 때 ‘나’는 특별한 고민도 없고, 특별히 해야 할 일도 없고 하니 취미로 조화(造花) 만들기를 익혀요. 이 조화를 만들어 남편에게 자랑하니 남편이 “와! 당신 이런 재주가 있었어? 이제 꽃 안 사 와도 되겠네. 비싼 생화를 왜 사 오냐? 시드는 거. 이거 갖다 놓으면 좋은데”라고 말해요. 남편이 그렇게 말할 때마다 ‘나’는 남대문 꽃시장에 가고 싶은 충동을 느껴요. 시드는 꽃, 살아 있는 꽃, 흙에서 생성되어 생명을 가지고 있는 꽃을 가지고 싶은 거죠.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행복이라는 것은 화자가 만든 것과 같은 조화예요. 아무런 변화도 없이 항상 행복하지만, 화자는 시들어버릴지언정 살아 있는 생명의 흙에서 나온 꽃과 같은 행복을 가지고 싶은 거죠.
 
  이런 와중에 화자는 우연히 여학생 시절의 ‘욕쟁이’ 이 선생을 다방에서 만나게 됩니다. 그는 ‘몰라보게 늙었을 뿐 아니라 몰라보게 점잖아지기까지’ 했어요. 심지어 ‘탁하고 처진 소리로 길길길길길 오래 웃기’까지 하지만 ‘나’는 그래도 그가 가슴속에 여전히 분통(憤痛)을, 욕을 간직하고 있을 터라고 기대해요.
 
  이 조화와 같은 현대의 행복에 대해 그가 퍼부어주는 욕을 들으면 얼마나 시원할까 생각하죠. 그래서 화자는 그가 욕쟁이의 본색을 감추고 있을 뿐, 자극하면 다시 그 본색을 드러낼 거라고 생각하지만 ‘쉬 개발될 것 같지 않은 변두리의 복덕방 영감 같아’ 보이는 그는 쉬이 욕쟁이의 본색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심지어 그렇게도 혐오했던 일본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말에 섞어 쓰는 모습까지도 보여요. 때문에 ‘나’는 구정물을 뒤집어쓴 듯이 불쾌해집니다. 비단 ‘길길길’ 하는 웃음소리만이 아니라 ‘오야지’니 ‘요오시’니 ‘기마에’니 ‘앗싸리’니 ‘쇼부’니 하는 소리를 이 선생의 입에서 듣다니 기가 막히는 거죠.
 
 
  비명이라도, 신음이라도…
 
  그래서 ‘나’는 ‘그를 다시는 만나지 말아야지’ 하며 진저리를 치면서도 며칠 뒤 다시 그를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찾아갑니다. ‘어떻게든 그를 다시 욕쟁이로 만들고 말 테다’ 하는 결심으로요. 만남이 거듭되면서 그와 ‘나’는 서로에 대해 알아갑니다. 욕쟁이였던 이 선생은 이제 현대사회의 평범하면서도 비열한 소시민이 되었어요. 이전에 그가 그렇게도 욕했던 그런 사람이 된 거죠. ‘나’는 차츰 그에게서 욕을 짜내기는 건포도에서 포도즙을 짜내기보다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를 못하는 거예요. 이 선생으로부터 욕은 단념했지만 비명이라도, 신음이라도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죠. 그렇게 ‘기름 안 친 기계의 운동처럼 고단하고 힘들고 쇳소리가 나게 지긋지긋한’ 사귐이 이어지던 어느 날, 이 선생이 기다리고 있어야 할 다방에는 이 선생 대신 편지 한 장이 남겨져 있습니다.
 
  편지에는 뜻밖에도 이런 내용이 담겨 있어요. ‘제자였던 숙이를 만난 이후, 사기성을 띤 일을 해야만 하는데 하지 못한 자신에 대해 한탄한다’고요.
 
  이것이 무슨 말일까요? 이 선생은 아마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제자의 도장을 이용해 사기를 쳤을 텐데, ‘옛 스승의 기개(氣槪)를 기대하는 제자의 눈빛 때문에 더는 그 일이 하기 싫어졌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예전의 그 욕쟁이로 돌아가지도 못합니다. 요새는 그와 같은 고전적 욕쟁이의 시대가 아니라는 것 또한 알고 있는 것이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 선생은 숙이에 대해 은근한 복수심마저 내비쳐요. ‘유부녀가 아무리 선생이라도 찾아다니는 건 아니야. 나는 너와 고궁 앞에서 찍은 사진이 있어. 그 사진을 가지고 나는 여관방에서 연탄불을 피우든지 청산가리를 먹고 죽어버릴 거야. 그러면 숙이는 난처해지겠지, 내가 난처했던 것처럼. 내 죽음이 신문에 나면 너의 남편과 함께하는 편안한 생활도 끝장이 날 거야.’ 그 편지는 이렇게 끝납니다. ‘그러니 나를 내버려 둬. 나를 숙이의 기대로부터 풀어줘. 나에게 욕을 조르지 말아줘. 날 그만 쥐어짜. 제발 날 살려줘.’
 
 
  “날 놔줘” “제발 날 살려줘”
 
  편지를 받은 ‘나’는 실제로 그가 죽었든 아니든 어차피 ‘나’에게 있어 그는 죽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허탈해지는 거예요.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도시의 바람이 아무리 불어도 그 욕쟁이는 변함없이 생존해서 시원하게 세상을 향해 욕을 내뱉는 것을 한번 보고 싶었는데 도시의 그 많은 사람과 똑같아지려다가 ‘나’를 보고 갈등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 떼어놓는 편지만을 남기고 도망쳐 버린 겁니다.
 
  일요일 아침, 화자는 남편이 신문을 들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어쩌면 이 선생의 협박대로 된 것인지도 모르지요. 남편을 그렇게도 지겨워했던 ‘나’는 자유로워질지도 모른다는 상상에 가장 먼저 두려움을 느낍니다. 자유를 감당할 자신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뜻밖에 남편은 분노에 부들부들 떨었던 것이 아니라 웃느라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어요. 메릴린 먼로가 시도 썼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그렇게도 웃긴 일이었던 거죠.
 
  “그렇지만 먼로가 시를 썼다니 사람 웃기는군. 그렇게나 몸뚱이가 기막히게 좋은 여자가 뭬 답답해 시를 썼겠어. 책이나 팔아먹으려는 협잡이 뻔하지.”
 
  남편은 그렇게 말하면서 아내를 봅니다. ‘마치 그 여자의 몸뚱이를 구석구석 싫도록 주물러댄 경험이라도 있는 것처럼 그 방면에 도통한 듯한 음탕하고 권태롭고 느글느글한 웃음을 흘리면서’요. 그런 남편에 대해 ‘나’는 이 선생의 비명을 생각합니다. 소설 속 한 구절입니다.
 
  〈“날 놔줘” “제발 날 살려줘” 그건 어떤 소리 빛깔을 하고 있었을까. 지렁이 울음소리 같았을까 몰라. 그 신음을 육성으로 들어두지 못한 건 참 분하다.〉
 
  여기에서 지렁이 울음소리라는 게 뭐였을까요. 생태계 피라미드의 제일 하위에 있지만 거기에서 생명이 나오는 거잖아요. 먹이사슬의 제일 밑바닥에 있는 지렁이. 그 지렁이의 울음소리를 ‘해석’해낼 수 있다면 그건 이 선생의 “살려줘”라는 그런 소리가 아니었을까요?
 
 
  흙이 운다, 죽어가는 흙이 운다…
 
  ‘나’는 그 소리, 지렁이 울음소리를 못 들은 것이 한이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보통의 사람들이,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면서 ‘내가 행복하다, 이 문명이라는 것은 참 편한 것이구나, 이것이 내가 추구하던 삶’이라며 맹목적으로 살아가다가 어느 날 밤 그 지렁이 울음소리를 듣는 겁니다. 땅속 깊은 곳에서 이놈한테 뜯기고 저놈한테 뜯기면서도 열심히 생명의 흙을 빚는 어둠의 영웅들의 소리를요.
 
  마치 고장 난 전자제품에서 들리는 지잉~, 윙윙~ 하는 것 같은 그 소리, 실상은 땅강아지의 울음소리일 뿐인데 사람들은 지렁이 울음소리라고 인지했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흙이 운다, 죽어가는 흙이 운다, 살아 있는 흙의 생명이 운다… 라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요?
 
  참 한국 사람들 대단하지요. 지렁이는 한자어 지룡(地龍)에서 파생된 말이에요. 그 하찮아 보이는 지렁이를, 햇빛 나면 그냥 말라비틀어질 뿐인 그 약한 지렁이를 저것은 지룡이다, 땅속의 용(龍)이다 생각했어요. 용이라는 게 뭐예요. 중국에서는 황제를 상징할 만큼 신령스러운 동물, 하늘을 날아다니고 자연현상을 관장하는 존재 아닙니까. 자연현상은 인간의 생존에 가장 중요한 요소예요. 그러니까 용은 인간에게 가장 두렵고도 소중한 존재지요. 결국 지렁이를 알아주는 사람은 한국인, 그중에서도 지렁이의 울음소리를 들은 사람들이에요.
 
 
  # 지구의 사과껍질에 사는 우리와 지렁이
 
  처음에 지질학적으로 지구의 단층을 보면 그 가장 표면에 흙이 있어요. 사과를 생각해보세요. 우리는 그 사과껍질 위에서 사는 거예요. 전체 지구에서 흙은 그 사과의 껍질만 한 두께와 무게밖에 차지하지 않습니다. 이 껍질, 바이오 스피어(Biosphere·생태계로서의 지구)라고 해서 모든 생물이 다 살고 있는데 그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아세요?
 
  지구 전체 무게의 10억 분의 1도 되지 않습니다. 지구 무게 중에 생물의 무게는 흙먼지만큼도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현재 밝혀진 바로는 이 넓은 우주에, 생명체가 있는 행성은 지구밖에 없고, 그 지구 전체의 10억 분의 1도 안 되는 게 생명체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하나하나는 얼마나 놀라운 존재입니까. 각기 다 다르고 가치 있는 생명이에요. 우스운 것 같지만 우주에서 하나하나 들어가 보세요. 우주의 지구, 지구의 10억 분의 1, 그 어마어마한 확률 안에 내가 들어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 어마어마한 확률의 생명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누가 만들어요? 바로 지렁이입니다. 지렁이가 흙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갈 수 있어요. 모든 생명체는 먹이사슬에 묶여 나고 또 죽어요. 흙에서 생물이 나와 살아가다 다시 죽으면 지렁이가 나서서 우리를 분해시켜 다시 흙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지요. 흙으로 분해시켜야 거기서 또 생명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한국인에게 흙이란 무엇인가. 바이오 스피어가 무엇인가. ‘신토불이(身土不二)’예요. 몸이 바로 흙입니다. 흙은 나와 같아요. 내가 농협에 만들어준 말이 하나 있어요. ‘농도불이(農都不二)’. 신토불이만 하면 도시 사람들은 전부 흙이 뭔지도 모르는데 공허한 말이잖아요. 그러니까 농도가 불이. ‘농촌과 도시가 하나’라고 좀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해줘야죠. 이 아스팔트와 돌멩이로 흙을 끝없이 질식시키고 죽이는 도시 사람도 구해달라는 거죠. 신토불이는 본래 불교용어고요.
 
 
  세계에서 채소를 가장 많이 먹는 한국인
 
  이유가 있어요. 전 세계에서 한국 사람들이 채소를 가장 많이 먹습니다. 참 놀라운 거예요. 김치니 뭐니 우리 밑반찬이 전부 채소거든요. 최근 신문을 보니 미국 뉴욕의 동네마트 신선식품 진열대에 ‘KIMCHI’라고 쓰인 제품들이 진열돼 있더군요. 코로나19가 몰고 온 발효식품 재평가로 ‘진짜 한국식 김치’를 맛보고 싶어 하는 현지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고 해요.
 
  연간 대미(對美) 김치 수출액이 지난 2011년 280만 달러에서 2018년 900만 달러, 2020년 2300만 달러, 2021년 2820만 달러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요. 김치 수출 대상 국가도 10년 전인 2012년 기준 62개국에서 2022년 89개국으로 확대됐다고 하지요.
 
  미국 캘리포니아, 버지니아, 뉴욕, 워싱턴DC 등은 11월 22일을 ‘김치의 날(kimchi day)’로 제정했어요. 그날은 모든 주민이 김치를 의무적으로 먹는 날일까요? 그렇지 않을 테지만 신기해요. 또 미시간, 메릴랜드 등 5개 주에서도 ‘김치의 날’을 선포했다고 합니다. 김치가 한류(韓流) 덕을 보는지, 한류가 김치 덕을 보는지 모르겠지만, 김치는 더는 한국만의 전통음식이 아닙니다. 세계인의 음식이 되었어요.
 
 
  # 디아스포라, 전 세계로 우리 씨를 파종하는 것
 
진주 남강과 촉석루. 1984년에 촬영한 사진이다. 사진=조선DB
  여러분이 도시에 살든 어촌에 살든, 사는 곳이 어디라 해도 흙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흙의 생명을 키워야 해요. 외세의 침략에 쫓기면서도 의연하게 길을 걸어갔던 할머니의 뒷모습, 그걸 내가 《흙 속에 저 바람 속에》(1962)를 쓰고도 한 10년 뒤에 알게 되었어요. 그 앎이 《생명 자본주의》(2014)를 쓰게 만들었죠.
 
  한국인, 참 지지리도 못났어요. 오죽했으면 중국 한번 쳐들어가지 못하고 원(元)나라에, 청(淸)나라에 그렇게 시달렸을까요? 허구한 날, 왜구에게 시달려 어쩜 이리 지지리도 못났나 했는데, 광복 후 70여 년 동안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서구의 자유시장·민주주의 모델을 가지고 이룩한 부(富)에 흙의 마음, 그 흙의 의미를 깨달으면 서양 사람이 못해낸 것, 우리 조상이 이룩하지 못한 것까지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런데 내 민족만 앞세우고, “난 흙을 떠나선 살 수 없으니 우리나라에 붙박이로 남아야 해”라고 말해선 곤란해요. 흙의 마음이 글로벌해져야죠.
 
  “내 고향 난 못 떠나!” “천리길을 내 어이 왔던고~” 하면 안 됩니다. 세상에 천리길이 뭐 그렇게 멀다고요. 고작 서울에서 진주까지의 거리예요. 그 정도 가지고 “내 어이 왔던고~”가 뭡니까.
 
  남들은 조랑말 타고 전 세계를 누볐어요. 칭기즈칸 보세요. 몽골 초원에서 시작해 대륙을 건너 유럽까지 쳐들어가는데 우리는 겨우 진주 정도 가서 고향 떠났다고 “내 어이 왔던고~” 하고 노래하는 식이죠. 칭기즈칸처럼 정복을 하라는 게 아닙니다. 그 땅을 정복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그 땅에 뿌리내릴 수 있어요.
 
  나를 키운 고향 흙을 떠나야 하는 디아스포라가 슬픈 게 아닙니다. 우리 씨가 퍼져야 해요. 전 세계로 파종을 하는 것이 디아스포라입니다. 생명을 뿌리는 거예요. 그런데 그 씨는 흙이 있어야 싹이 납니다. 콘크리트에선 씨가 나지 않아요. ‘붉은 산’을 간직해야 합니다.
 
대중가요 ‘진주라 천리길’
 
  경남 진주를 소재로 한 대중가요 ‘진주라 천리길’은 1941년에 발표되었다. 조명암(趙鳴岩) 작사, 이면상(李冕相) 작곡, 이규남(李圭南)이 노래했다.
 
  대중음악 평론가 이동순에 따르면, 충남 연기 출신의 이규남은 식민지 시절 일본 유학비를 벌기 위해 진주의 재래시장에서 유성기 음반과 바늘을 팔았다고 한다. 작곡가 이면상이 진주에 갔다가 이 광경을 보았고, 서울에 돌아가서 그 이야기를 작사가 조명암에게 들려주었다. 깊은 감동을 느낀 조명암은 즉시 노랫말을 지었고, 이면상이 곡을 붙였다. 이 곡을 들어보면 나라의 주권을 잃고 군국주의 체제의 시달림 속에서 허덕이는 식민지 백성의 설움과 눈물을 느낄 수 있다.
 
  이면상은 ‘사랑도 팔자’ ‘네가 좋더라’와 같은 대중가요도 여러 곡 남겼다. 1946년 초 월북해 북한 음악가동맹위원장을 맡는 등 북한 최고의 작곡가가 되었다.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당 중앙위원 등을 역임했다.
 
  조명암 역시 대중가요 ‘신라의 달밤’ ‘서귀포 칠십리’ ‘낙화유수’ 등을 작사했는데 그 역시 월북해 북한 교육문화성 부상(副相), 문예총 부위원장 등을 지냈다.
 
  가수 이규남(본명 임헌익)은 성악에서 대중음악으로 진로를 바꾼 인물이다. 처음엔 그 역시 월북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유족들의 증언과 당시 정황에 의해 납북으로 밝혀졌다. 이 곡은 분단 이후 줄곧 금지곡 목록에 들었다가 훗날 해금되었다. ‘진주라 천리길’의 노랫말은 이렇다.
 
  ‘진주라 천리길을 내 어이 왔던고/ 서장대에 찬바람만 나무기둥을/ 얼싸안고 아~ 타향살이 내 심사를/ 위로할 줄 모르느냐.
  진주라 천리길을 내 어이 왔던고/ 달도 밝은 남강가에/ 모래사장을 거닐면서/ 아~ 불러보던 옛 노래는/ 지금 어데 사라졌나.’
 
  공적이면서도 사적인 장소, 찜질방
 
  요즘은 시들시들해졌지만 몇 해 전만 해도 다들 황토방이나 찜질방을 찾아갔어요. 중년 주부들이 우스갯소리로 “남편 없이는 사는데 찜질방 없으면 못 산다”고 했을 정도예요.
 
  왜 우리가 전 세계에 없는 찜질방, 황토방을 만들었을까요?
 
  왜 ‘방 문화’를 만들었어요? 공(公)도 아니고 사(私)도 아니고 참 특이한 공간이거든요. 다방, 요즘엔 커피숍, 모두 길거리와 마찬가지인 공적 장소예요. 호텔 이런 곳은 남들 눈에 띄지 않는 사적 공간이죠. 그런데 그 중간 지점이 찜질방입니다. 공적이면서도 사적인 장소예요.
 
  찜질방에선 연인이 이마를 맞대고 잠을 자도 아무렇지 않아요. 손을 잡고 있어도 불편한 시선으로 쳐다보는 이가 없지요. 엄마가 딸이 밤늦도록 집에 오지 않자 전화를 겁니다.
 
  “너 어디야!”
 
  소리치다가도 “나, 찜질방인데…” 하면 “응, 알았어” 하고 전화를 끊어요. 그 황토방, 찜질방이 참 묘한 문화예요. 공도 아니고 사도 아닌 중간 문화인데, 뭔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어느 정도의 선을 지킬 수 있는 곳이죠. 중간 영역이에요.
 
  그러니까 뭔가 고민이 있고 맘속에 맺힌 게 있어 풀고 싶을 때 황토방을 갑니다. 아스팔트에 갇혀 고향을 잃어버렸을 때 흙의 생명력, 자연의 치유력을 얻는 곳이 황토방입니다. 이런 공간을 가진 나라는 우리밖에 없어요. 지금은 디아스포라로 흩어진 한국인이 해외에서 찜질방을 많이 만들었지만 말이에요.
 
 
  # 에티오피아 왕 이야기
 
1968년 5월 18일 오전 11시 에티오피아의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 1세가 박정희 대통령의 초청으로 내한했다. 사진은 김포공항 터미널 2층 로비에 마련된 환영식장에서 에티오피아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경례를 하고 있는 셀라시에 황제. 사진=조선DB
  한 발 한 발 흙을 디디며 살아가는 삶에, 우리 국토, 우리 땅만 소중한 것이 아닙니다.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대륙의 모든 나라가 유럽의 식민지가 될 때 유일하게 자주성을 지킨 나라입니다. 유럽의 여러 국가가 아프리카 대륙을 침략해 종단하고 횡단하며 유린할 때, 그들 중 누군가는 에티오피아에도 갔어요. 그 나라를 침략하기 위해 땅을 재고 항구를 측량할 때 에티오피아의 국민과 왕은 그들을 그냥 내버려 둡니다. 아니, 내버려 둔 정도가 아니라 환대를 해요. 먹을 것도 주고, 측량도 도와주고. 심지어 그들이 측량을 마치고 떠날 때엔 잔치를 열어주고 국왕의 근위병을 호위로 붙여 항구까지 데려다줍니다. 그런데 그 유럽 사람들이 막 배에 타려고 하는데 뒤따라온 근위병들이 신고 있던 구두를 벗겨 구두에 묻은 흙을 조심스럽게 털고 깨끗이 닦아낸 후 다시 건네주었습니다. 영문을 몰라하는 서양의 탐험가들에게 근위병들은 황제의 말이라며 이렇게 전했습니다.
 
  “그대들은 멀리 떨어진 강한 나라에서 왔다. 그대들은 에티오피아가 모든 나라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을 그대들의 눈으로 보았을 것이다. 이 땅의 흙은 우리에게 소중하다. 우리는 그 흙에 씨앗을 심고 우리의 죽은 자들을 묻는다. 우리는 피곤할 때 그 위에 누워 쉬고 들판에서 우리의 소 떼에게 풀을 먹인다. 그대들이 계곡에서 산으로, 평야에서 숲으로 걸어 다녔던 바로 그 오솔길들은 우리 조상의 발과 우리 어린이들의 발로 만들어진 것이다. 에티오피아의 흙은 우리의 아버지, 우리의 어머니, 우리의 형제다. 우리는 그대들을 환대했으며 귀한 선물을 주었다. 그러나 흙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값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흙을 단 한 알갱이도 줄 수 없다.”
 
  이것이 에티오피아의 정신입니다. 이 정신이 있었기에 유럽 국가들의 제국주의에 의해 아프리카 대륙이 유린될 때 유일하게 나라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흙은 국토의 개념이고 내 생명의 개념이고 민족의 개념입니다. 여러분은 이 흙의 의미를, 앞으로 우주만큼 넓어지는 보편적 인류의 꿈과 접목시켜야 합니다.
 
 
  # 역사는 밟힌 자의 역사
 
  누군가 여러분에게 “너는 앞으로 어떻게 살래?”라고 묻는다면 “나는 지렁이처럼 한 번 살아볼래”라고 말해보세요. 사실, 지렁이처럼 살면 밟힙니다.
 
  우리 역사는 ‘밟은 자’의 역사가 아니라 ‘밟힌 자’의 역사예요. 미사여구가 아닙니다. ‘밟힌 지렁이’가 없었다면 어떻게 초목이 나오고 어떻게 나뭇잎이 다시 되살아나는 봄이 옵니까? 우리의 모든 역사는 ‘밟힌 자들의 역사’이기에 영웅이 생겨나고 지도자가 있어온 것이 아니겠어요? 그게 없었다면 어떻게 우리가 이 많은 사람을 바라볼 수 있겠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앞에서 이야기한 암흑의 영웅, 무명의 영웅, 밟히면 꿈틀 한다는 먹이사슬 최하위에 있는 지렁이의 울음을 들어야 합니다. 저 땅속에서 들리는, 사실은 울지도 못하는 지렁이의 울음을 들었다고 고집해야 해요. 실제로는 땅강아지의 울음이라고 해도 그걸 지렁이 울음이라고 해야 합니다.
 

  도시 사람들은 그걸 들을 기회가 없으니 녹음해서 가끔 들으세요. 저는 가끔 그런 상상을 해요. 찜질방에 지렁이 울음소리를 기증해 사람들이 거기 멍석에 누워 쉬고 있을 때 들려주는 거죠. 그러면 젊은 사람들은 “아, 이게 무슨 소리지?” 하지 않겠어요? 그럼 나이 든 분들이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옛날에 멍석 펴놓고 말이야, 흙에 누워서 별을 볼 때 듣던 소리야. 지렁이가 우는 소리야. 저것은 땅강아지 소리 아니야. 내가 들었어. 저 지층(地層) 깊숙한 곳에서 지렁이가 울었다고. 과학자들은 지렁이가 무슨 소리를 내느냐고 역정을 내겠지만 지렁이는 분명히 울어. 내가 들었어.”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이 이렇게만 말할 수 있어도 이 ‘한국인 이야기’가 헛된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우리나라는 걱정을 안 해도 돼요. 지렁이는 ‘밟히더라도’ 무기물을 유기물로 만드는 생명의 통로입니다. 그런 사람이 된다면, 그러니까 흙을 기억하고 역사를 기억하면서 미래를 만드는 세대가 될 수 있어요.
 
 
  恨을 푸는 지렁이 울음소리
 
  생명, 생명력이 어디로부터 옵니까. 물론 부모로부터 오지요. 그런데 그 부모의 생명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흙에서 왔지요. 지렁이가 애쓴 결과로, 우리는 죽더라도 우리의 몸이 썩어 흙으로 돌아가 다시 꽃이 되고 작은 이파리가 되어 자자손손 순환하는 것을 생각하면 죽음도 별로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한국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고, 그래서 도망치고 싶을 때, 그것 때문에 우리가 사방에 퍼진 겁니다. 그건 쫓겨난 것이 아니에요. 파종한 겁니다. 그러니까 ‘나쁜 정치를 하는 사람도 애국하는 거야’라고 생각하면 속도 편하고 여러분도 희망이 생기는 겁니다.
 
  우리가 지금껏 추구해왔고 또 끝없이 추구해가야 할 것은 지렁이 울음 같은 삶이에요. 밟히고 또 밟히면서 흙을 만들고 생명을 만드는, 그래서 먹이사슬의 최하위가 최상의 것으로 올라가 한을 푸는 지렁이 울음 말입니다.
 
  어떤 색깔인지 몰라도 소설 속 ‘이태우 선생’처럼, 그땐 욕하던 이유를 몰랐지만, 욕쟁이가 한을 풀어서는 안 되던 그때가 어쩌면 우리가 행복했던 시절이 아니었을까요? 욕쟁이의 한이야말로 땅속 깊은 곳에서 솟아 나오는 지렁이 울음소리입니다.
 
  자, 여러분에게 다시 말합니다. 한밤에 눈 뜨거든 귀를 기울여보세요. 지렁이 울음소리가 들릴 겁니다. 그건 분명 아파트 층간 소음이 아닐 겁니다.
 
  “눈도 다리도 없고 소리 낼 목청도 없다는데 어떻게 지렁이가 울음소리를 낸다고 합니까?”라고 따지지 마세요. 그 소리는 우리 할머니가 밭에서 묻혀온 흙냄새, 혹은 어머니의 친정집 시골 뒷마당에 묻어둔 어린 시절 우리의 생명 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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