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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대중문화 속으로

젊은이들에게 핼러윈과 이태원은 어떤 의미인가?

글 :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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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핼러윈은 사회적 룰에서 잠시 벗어나 보는 잔치… 이태원은 한국 사회의 금기들이 깨지는 문화적 해방구
⊙ 핼러윈, 한국과 일본 모두 ‘2002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유행… 광장 문화와 코스프레 문화 접목
⊙ 이태원, 박진영과 양현석이 無名 시절 보내고, 이수만이 신인 발굴하러 다니던 K-팝의 태동지

이문원
《뉴시스이코노미》 편집장, 《미디어워치》 편집장, 국회 한류연구회 자문위원, KBS 시청자위원, KBS2 TV 〈연예가중계〉 자문위원, 제35회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역임 / 저서 《언론의 저주를 깨다》(공저), 《기업가정신》(공저), 《억지와 위선》(공저) 등
2021년 10월 29일 이태원에서 열린 핼러윈데이 행사 참석자들은 〈오징어게임〉 등장인물을 비롯해 다양한 모습으로 분장했다. 사진=조선DB
  사망 156명, 부상 151명. 10월 29일 밤 10시15분경 일어난 ‘이태원 압사(壓死) 사고’의 11월 1일 기준 인명 피해 규모다. 핼러윈을 즐기고자 서울 이태원동으로 몰려든 인파가 해밀톤호텔 서측 골목으로 오르내리다 발생한 다중밀집(多衆密集) 사고. 사고 경과와 대응, 수사 진행 등에 대해선 이미 수많은 언론미디어에서 다뤘고 지금도 실시간으로 새 소식을 전하고 있지만, 문화적 차원에선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존재한다. 특히 젊은 층의 문화와 유행에 낯설어진 기성세대 입장에서 그렇다.
 
  어째서, 그리고 언제부터 핼러윈이라는 낯선 서양 명절이 젊은 층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어 이렇게 거대한 축제가 됐는지, 또 그를 즐기려는 이들은 왜 이태원을 중심으로 몰려드는지 말이다. 이번 사고 이후 필자도 이와 관련해 수많은 질문을 받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국내 기준으로 핼러윈은 여러 서양 명절 중 가장 후발 주자에 속한다. 엄밀히 2000년대 전까진 국내에서 거론 자체가 안 됐다고 보는 게 맞다. 사실 2000년대 초반까지도 이제 핼러윈이 한국 사회 일부가 됐다는 점을 체감하기란 힘들었다. 중·노년층에선 핼러윈 다음 날인 만성절(萬聖節·모든 성인 대축일)이 더 잘 알려져 있고, 그나마도 익숙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은 서양 문물을 상대적으로 잘 받아들이고, 정서에 맞는 서양 명절은 대부분 1980년대까지 한국 사회에 정착이 된 상황인데, 와중에도 한국에 좀처럼 들어오지 못했던 핼러윈이 어째서 2000년대 들어 갑자기 거대한 이벤트로 거듭났느냐는 것이다.
 
 
  “그날 그곳에선 아무런 행사도 열리지 않았다”
 
  한편, 사고의 배경이 된 이태원이라는 장소도 이에 친숙한 수도권 주민들에게는 다소간 의문으로 남는다. 이태원역을 중심으로 한 이태원동 상업 지구는 노후화(老朽化)된 유흥가다. 전체가 언덕으로 경사진 데다 길도 좁다. 메인 거리라는 해밀톤호텔 뒤편 세계음식문화거리에서 이태원로로 내려가는 골목들은 이보다도 좁다. 이번 사고가 일어난 골목도 이 중 하나다. 폭이 3~4m 정도밖에 안 되기에 통행 자체가 불편할 뿐만 아니라 경사까지 져 있어, 사실상 이런 곳이 아직까지도 옛 지형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놀라울 정도다. 늘어선 상가 건물도 대부분 낡고 이용이 불편한 경우가 많다. 이렇듯 불편한 점 투성이인 옛 유흥가에 왜 그토록 많은 젊은 층이 몰려들었느냐는 것이다. 길이 넓어 쾌적하고 평지여서 다니기도 편한, 거기다 새 건물과 시설들이 들어선 다른 젊은 공간이 서울시내에 수두룩한데 말이다.
 
  이처럼 기성세대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의문이다. 이번 사고를 외신을 통해, 그리고 현장에서 촬영된 유튜브 동영상 등을 통해 접한 외국인들도 마찬가지다. 사고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한 유튜브 동영상에 어느 외국 유저가 영어로 남긴 댓글이 공통된 의문을 대변한다.
 
  “그날 그곳에선 아무런 행사도 열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저 핼러윈이 가까운 시점이라는 점 외에 다른 어떤 이유도 없이 사람들이 몰려든 것이다.”
 

  보통 이런 종류의 다중밀집 사고는 대형 행사가 치러진 이후에 발생하곤 한다. 비슷한 경사 길에서 21명이 압사한 2010년 독일 뒤스부르크 테크노음악축제 ‘러브 퍼레이드’ 사고가 한 예다. 한국에서도 1959년 67명의 사망자를 낸 부산공설운동장 ‘시민위안잔치’ 사고나 2005년 11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경북 상주시민운동장의 MBC ‘가요콘서트’ 사고 등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이태원 사고는 핼러윈 축제를 주최한 곳이 없으니 아무런 행사도 열리지 않았다. 그러니 더더욱 의문에 빠지는 것이다. 핼러윈이 지금 한국에서 이 정도로 중요한 축제인가, 이렇게 불편하고 위험한 환경임에도 이토록 많은 사람이 이태원으로 몰려들어야 할 어떤 이유라도 있었는가 말이다.
 
 
  韓美日의 핼러윈
 
  이 같은 의문에 접근하기 위해선, 뜻밖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먼저 핼러윈을 받아들이는 한국과 옆 나라 일본의 모습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단적으로 말해, 한국의 핼러윈은 일본의 핼러윈과 유행의 시기상으로나 전개 초기의 면면(面面) 등에서 상당 부분 일치한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핼러윈은 사실상 ‘없었다’. 핼러윈이 어떤 서양 명절인지 알긴 해도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러다 대략 2004~2005년경부터 본격적으로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국이나 일본이나 핼러윈의 본질은 같다. ‘특이한 분장(扮裝)을 하고 거리를 다니는 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를 흔히 ‘코스프레’라 부른다. 영어 단어 ‘코스튬(costume)’과 ‘플레이(play)’를 합성한 일본식 조어(造語)로, 대부분 영화나 만화 등 대중문화 콘텐츠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따라 하는 것을 가리킨다. 근래 들어선 국내 대중문화계는 물론 정치권 등에서도 자주 사용되는 단어다.
 
  물론 핼러윈이 가장 활성화된 미국에서도 이런 ‘핼러윈 코스프레’는 존재한다. 어떤 의미에선 이 같은 놀이의 원조(元祖)라고까지 볼 수 있다. 그래도 한국·일본과는 다른 점이 있다. 미국에서 ‘핼러윈 코스프레’는 대부분 어린이 중심으로 행해진다. 대도시 번화가에선 성인들도 ‘코스프레’를 하고 다니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교외 주택단지나 지방도시 등에선 여전히 ‘어린이의 놀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의 ‘핼러윈 코스프레’는 20~30대 성인들이 많이 한다. 적어도 야외 거리에서 이런 비일상적(非日常的) 분장으로 돌아다니는 건 거의 대부분 성인들이다.
 
  또 미국의 핼러윈은 ‘코스프레’만 있는 게 아니다. 한국에서도 많이 알려진 ‘트릭 오어 트리트(Trick or treat)’ 놀이, 즉 어린이들이 ‘핼러윈 코스프레’를 하고 동네 가정들을 방문해 현관에서 사탕을 얻어내는 풍습 등 다양한 놀이들이 많다. 그런데 한국·일본에선 실질적으로 ‘코스프레’가 전부다. 결국 한국과 일본에서 핼러윈이란 ‘코스프레를 하기 위해 모이는 날’인 셈이다.
 
 
  광장 문화와 코스프레 문화
 
2002년 월드컵 당시 거리 응원은 한국과 일본에서 핼러윈이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사진=조선DB
  그럼 왜 한국·일본에선 2000년대 들어 이처럼 묘한 명절이 갑자기 유행하게 된 것일까. 기원을 따지고 들어가면 짐짓 놀랄 만한 원인점이 등장한다.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핼러윈은 ‘2002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유행한 문화 흐름이라는 것이다. 아리송하게 들리겠지만 하나씩 풀어보면 이해가 쉽다. ‘2002 한일 월드컵’이 공동 개최국인 한국과 일본에 남긴 문화적 영향은 크게 둘이다. 하나는 ‘광장(廣場) 문화’, 다른 하나는 ‘코스프레 문화’다. 일본이 ‘2002 한일 월드컵’의 꽃이라 볼 만했던 응원 열풍을 겪으며 ‘광장 문화’에 충격을 받았다면, 한국에선 이를 통해 ‘코스프레 문화’가 대중적으로 스며드는 계기가 마련됐다.
 
  많이들 당시 한국의 월드컵 응원 풍경을 기억할 것이다. 젊은 층, 특히 젊은 여성층에서 가지각색 응원 의상을 개개인이 만들어 입고 광화문 등 도심 공간에 나와 응원하던 풍속도(風俗圖)를 말이다. 그 의상들은 말 그대로 만화에나 나올 법한 신기한 모양새가 많았고, 일상에서 입기 힘든 노골적인 노출 의상도 적지 않았다. 마치 지금의 핼러윈 의상들처럼 말이다. 많은 점에서 원조 격 광경이었다고도 볼 만하다.
 
  한편, 이미 ‘코스프레 문화’가 자리 잡고 있던 일본에선 언급했듯 ‘광장 문화’가 ‘2002 한일 월드컵’을 통해 폭발했다. 물론 각종 해외 축제들을 꾸준히 유입해온 일본에선 이전부터도 핼러윈 축제가 존재하긴 했다. 대표적으로, 1997년부터 가나가와현(縣) 가와사키시(市)에서 열리고 있는 핼러윈 퍼레이드를 들 수 있다. 그런데 2010년대부터 일본 핼러윈의 중심은 도쿄 최대 번화가인 시부야 거리가 됐다. 곧 시부야 자체가 핼러윈의 상징이 돼 ‘시부하로(시부야 핼러윈)’라는 신조어(新造語)까지 등장했다. 이에 대해 일본 TV아사히 아침 정보 프로그램 〈하토리 신이치 모닝쇼〉는 정확히 ‘2002 한일 월드컵’을 그 계기로 들고 있다. 당시 일본 대표팀 서포터들이 시부야 거리에 집결해 번화가 곳곳으로 흩어져 다소 무질서하게 열띤 응원을 펼치면서, 이후에도 그때 광장의 해방감과 자유분방했던 기억을 잊지 못해 핼러윈이라는 서양 명절을 명분 삼아 ‘시부하로’를 정착시키고 있다는 해석이다.
 
 
 
‘시부하로’

 
  그러나 대략 2013년경부터 한일 양국의 핼러윈 풍경은 서로 사뭇 다른 모습을 띠게 됐다. 일본의 ‘시부하로’는 점차 ‘코스프레족’들이 시부야 거리를 무법천지 해방구(解放區)처럼 만드는 방향으로 성격이 뒤틀렸다. 그중 2018년 상황을 담은 《서울신문》 2018년 10월 31일 자 기사 “일본 ‘할로윈의 성지’ 도쿄 시부야, ‘광란의 할로윈’ 초비상”을 보자.
 
  〈지난주 주말인 27일 밤부터 시부야는 다양한 분장을 하고 나온 젊은이들로 극도의 혼잡이 빚어졌다. 분위기에 취한 상태에 음주가 더해지면서 28일 오전 1시쯤에는 일부 사람들이 ‘시부야 센터’ 거리에서 트럭 1대를 옆으로 넘어뜨리는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경찰은 기물손괴 혐의로 사건을 조사 중이다. 또 다른 20대들은 식당 앞 자동판매기에 물을 부어 기계를 망가뜨렸다가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자수하기도 했다. 경찰은 이와 별도로 거리에서 사람을 때리거나 여성의 스커트 안을 몰래 촬영한 혐의 등으로 5명을 체포했다.
 
  지난 주말과 같은 상황이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경시청은 지난 30일 밤부터 시위 현장을 방불케 할 정도의 대규모 기동경찰을 시부야 일대에 배치했다. 교통통제 계획을 마련한 것은 물론이고 테러에 대비하는 부대까지 모처에 대기시키고 있다. 한 번에 건너는 사람의 수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에서는 정복 경찰관들이 몇m 간격으로 배치됐다. 이들은 지나는 사람들에게 확성기로 “구타나 접촉 등 신체에 위해가 발생할 수 있으니 주의하라”고 안내했다.〉
 
  결국 이번 이태원 사고를 계기로 국내 언론미디어에서 앞 다퉈 소개한 일본의 핼러윈 풍경, 즉 그 중심인 시부야 거리에 대규모 경찰 병력이 배치돼 시민들을 통제하는 광경은 실제로 이 같은 난동을 수차례 겪고 난 뒤 이를 미연에 방지하고 고질적으로 일어나는 ‘핼러윈 치한’ 문제를 살피기 위한 목적이 크다. 시부야 거리 상점들에 술 판매 자제를 요청하고 길거리나 공원에서 음주를 금지시킨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핼러윈의 심리학
 
  이처럼 올해 이태원 사고 이전까지는 일본의 핼러윈 쪽이 한국의 핼러윈보다 훨씬 큰 사회적 문제로 여겨지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 만큼 젊은 층의 ‘핼러윈 심리’에 대한 분석도 한국보다 일본에서 먼저 이뤄졌다. 여러 일본 언론미디어의 분석들을 종합해보면, 결국 핼러윈의 특정 캐릭터 분장 문화가 모든 이상 행태의 중심에 있다는 결론이다. 자신이 아닌 다른 인물로 분장해 세상에 나서면 스스로를 옭아매던 각종 책임과 의무, 도덕률(道德律) 등으로부터 일시적으로나마 해방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고, 그동안 억제해왔던 내면의 거친 욕망들이 튀어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평상시 일상을 살면서는 차마 해보지 못한 일탈(逸脫)들을 거리낌 없이 행하는 위험한 즐거움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나아가 핼러윈 분장이 특정 대중문화 콘텐츠 속 캐릭터를 향한다면 잠시 자아(自我)의 무거운 짐으로부터 벗어나 해당 캐릭터로 빙의(憑依)해 평소 동경해온 캐릭터처럼 행동하는 일도 가능해진다고 지적한다. 이렇게 지금의 무법천지 ‘시부하로’와 ‘코스프레’는 사실상 한 몸으로 연결돼 있다시피 하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우려가 현실로 거듭난 범죄사건도 이미 존재한다. 지난해 10월 도쿄 게이오선 지하철에서 벌어진 이른바 ‘조커 범죄’다. 핼러윈 저녁, 인기 만화 〈배트맨〉 속 악당 조커로 분장한 한 24세 남성이 전동차 안에서 30cm 길이의 칼을 휘두르며 방화(放火)해 승객 17명이 부상당한 사건이다. 경찰 조사에서 범인은 조커로 분장한 이유에 대해 “조커는 태연하게 사람을 해치우기에 그를 동경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침 조커를 주인공 삼은 2019년 작 영화 〈조커〉에서도 훗날 범죄조직 두목 조커로 변신하는 3류 코미디언이 지하철에서 자신을 조롱하고 구타하던 여피족 일행을 권총으로 살해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렇게 핼러윈은 대중문화 콘텐츠 속 범죄를 따라 하는 모방범죄의 장(場)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한층 심각한 우려가 수면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사회적 금기를 깨는 가벼운 일탈

 
지난 10월 29일 이태원 핼러윈 축제에 참여한 젊은이들. 핼러윈은 젊은이들에게 해방감을 안겨주는 ‘작은 일탈’이었다. 사진=조선DB
  물론 한국의 핼러윈은 아직 일본 정도로 심각한 범죄 문제를 일으키진 않고 있다. 적어도 주차된 트럭을 넘어뜨린다거나 고의로 기물을 파손하는 등의 도시테러 행각은 발견된 적 없다. 개개인에 미치는 사회 공기(空氣)의 압력이 일본보다는 확연히 덜하고 상대적으로 자유분방한 분위기이기에 일탈 욕구의 차이가 생긴다는 분석이 많다.
 
  그럼에도 한국 역시 코스프레를 통해 해방감을 느끼고자 하는 감각 자체는 일본과 다를 바 없다고 봐야 한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한국도 동북아시아 특유의 집단주의 분위기에 일정 부분 억눌려 살아가는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애초 클럽 이벤트로서 클럽 내부에서만 행해지던 ‘핼러윈 코스프레’가 슬금슬금 야외 거리로 무대가 확장돼 지금의 모습이 됐다는 점만으로도 같은 해방구를 찾는 젊은 층 대중심리의 유사성을 잘 알 수 있다.
 
  물론 핼러윈 축제 거리를 방문하는 이들이 모두 코스프레를 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코스프레하는 쪽이 소수(少數)다. 다수(多數)는 언론미디어 보도와 소셜미디어(SNS) 등을 통해 핼러윈 광경을 접하고 흥미를 느껴 ‘구경’하러 나온 일종의 관광객일 뿐이다. 그러나 이들 역시 사회적 금기(禁忌)를 깨는 각종 의상과 거리에 모인 이들의 가벼운 일탈 행각들을 보면서 모종의 해방감을 느끼고 즐기는 건 마찬가지다. 일반 사회의 갑갑함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일탈 욕구란 그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해소되기 마련이다. 그렇게 한국과 일본에서 핼러윈은 개인을 둘러싼 수많은 사회적 룰과 억압에서 잠시 벗어나 보는 잔치다. 미국 등 서양 전반에 걸친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왜 이태원인가?
 
지난 10월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압사 사고 희생자를 추모하던 외국인 여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조선DB
  그리고 바로 이 같은 점에서 서두에서 제시한 의문 중 후자(後者), 즉 왜 비좁고 불편한 이태원이 한국 핼러윈의 주(主)무대가 됐는지가 풀려나간다. 특히 외신들에서 이 부분을 많이들 착각한다. 예컨대 미국 《월스트리트저널》도 이번 이태원 사고를 다루면서 “한국에서 핼러윈은 어린이들이 사탕을 얻으러 가는 날이 아니다”며 “20대 안팎의 젊은이들이 핼러윈 축제를 특유의 복장으로 치장한 채 클럽에 가는 이벤트로 만들어버렸다”고 설명했다. 또 “핼러윈 행사가 열린 이태원은 서울의 유명한 유흥 지역 중 한 곳”이라며 “사고가 발생한 이태원에는 핼러윈 파티를 여는 클럽과 바가 많았고, 이번 참사 희생자 대부분은 20대 젊은 층이었다”고도 했다. 이 같은 설명만 보면 이태원이 핼러윈의 중심지가 된 것은 단순히 핼러윈 파티를 여는 클럽이 많은 유흥가이기 때문이라 여겨지게 된다.
 
  그런데 한국에서 클럽들이 즐비한 것으로 유명한 유흥가는 이태원만이 아니다. 이른바 ‘서울 3대 클럽 거리’로 강남역 일대와 홍대 일대, 이태원 일대가 꼽히곤 한다. 그리고 이태원에 비해 강남역과 홍대의 클럽 거리는 많은 인파가 지나다니기에 훨씬 쾌적한 공간이다. 길도 상대적으로 넓고 경사가 심하지도 않다. 늘어선 건물들도 상대적으로 신축(新築)에 가깝다. 상황이 이런데 왜 좁고 불편하고 위험한 이태원 일대가 한국 핼러윈의 중심이 된 걸까.
 
  단순하다. 이태원은 그간 한국 사회에서 서양 문물이 가장 먼저 들어오는 지역이자 낯선 서양 문화가 자연스럽게 들어서 기존 한국 사회 금기들이 깨지는 문화적 해방구의 상징과도 같은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6·25전쟁 이후 용산에 미군기지가 들어서고 그 근처 이태원 일대로 기지촌(基地村)이 형성된 뒤로는 늘 그래 왔다. 상점에서 파는 미군 군수품이나 PX에서 유출된 각종 물품과 함께, 어딘지 이해가 가지 않고 다소 불온하며 위험해 보이기까지 하는 낯선 문화가 거침없이 펼쳐지는 공간. ‘그래도 무방한’ 공간. 이것이 이태원이 지닌 상징성이었다.
 
 
  K–팝의 태동지
 
  물론 처음에는 용산 미군기지에 사는 미군들과 그 가족, 또는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나 드나드는 공간처럼 여겨져 게토화됐었지만, 1980년대 초중반부터 낯선 서양 문화를 즐기려는 내국인들도 쉽게 드나드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특히 젊은 층의 관심과 열기가 뜨거웠다. 상황을 담은 《조선일보》 1986년 8월 31일 자 기사 “‘깎는 재미… 싼맛’ 국제 명소 이태원”을 보자.
 

  〈이태원은 젊은이들의 거리다. 반포로 네거리에서 한남동 자동차면허시험장까지 1.4km 거리에 무려 1300여 점포가 들어서 있는 쇼핑과 환락의 이색 지대. 해밀톤호텔을 경계로, 낮에는 서쪽의 쇼핑가에, 밤에는 동쪽의 유흥가에 엄청난 인파가 몰려든다. 특히 유흥가는 손님의 대부분이 내국인이고, 대개가 20대 전반의 젊은이들이다.〉
 
  한편 한국에서 가장 먼저 서양 대중음악이 도착하는 이태원의 클럽들은 한국 대중문화의 신기원(新紀元)이 마련되는 장소가 되기도 했다. 서양 최신 유행곡들이 흘러나오던 이태원 클럽 문나이트는 1980~90년대 무명(無名) 시절 가수 박진영과 양현석이 자주 들러 춤추면서 서양 문화 감각을 익혀나갔던 곳이고, 또 다른 가수 이수만이 신인을 발굴하기 위해 찾던 곳이기도 하다. 현재 K팝 한류(韓流)를 이끌어가는 3대 K팝 기업, SM엔터테인먼트와 YG엔터테인먼트, JYP엔터테인먼트 수장(首長)이 이들이다. 이 외 K팝의 기틀을 마련한 수많은 1990년대 댄스가수들이 대부분 이태원 클럽들을 거쳐 갔다.
 
 
  ‘이태원 프리덤’
 
이태원을 배경으로 한 TV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
  이런 흐름은 이후로도 계속됐다. 새로운 해외 문화에 관심 많은 젊은 층이 찾는 공간으로서 이태원의 유명세는 날이 갈수록 더해졌다. 그러다 보니 2010년대부터는 각종 대중문화 콘텐츠 소재로 이태원이 등장하는 일도 잦아졌다. 그룹 UV의 2011년 노래 ‘이태원 프리덤’ 가사를 보자.
 
  “요즘 심심할 땐 뭐해 / 따분할 땐 뭐해 / 어디서 시간 때우나
  강남 너무 사람 많아 / 홍대 사람 많아 / 신촌은 뭔가 부족해
  다 알려주겠어 / 다 말해주겠어 / 새로운 세상 그곳을 말해봐
  음악이 있어 / 또 사랑도 있어 / 세계가 있어 나에게 말해줘 (중략)
  이태원 프리덤 / 저 찬란한 불빛 / 이태원 프리덤 / 젊음이 가득한 세상”
 
  한편 2020년에는 이태원 일대를 무대로 한 JTBC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가 방영돼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현상적인 인기를 누렸다. 〈이태원 클라쓰〉 덕택에 이태원은 K컬처에 빠져든 해외 관광객들의 기본 관광코스가 되기도 했다. 〈이태원 클라쓰〉 역시 ‘이태원 프리덤’처럼 일종의 ‘이태원 찬가(讚歌)’이며, 이태원에서 동료를 모아 창업 신화를 꿈꾸는 청춘들의 군상극(群像劇)이다.
 
  이렇듯 인기 대중문화 콘텐츠로까지 이태원의 화려하고 긍정적인 이미지가 계속해서 홍보되니 아무리 비좁고 불편하며 위험한 공간이더라도 젊은 층이 몰려들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특히나 핼러윈과 같은 낯선 서양 명절, 코스프레라는 음지의 문화일수록 지탄(指彈)받지 않고 이를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이태원이 가장 먼저 떠오르게 된 것도 어색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태원은 그 명성과 상징성에 비해 노후한 불법건축물 투성이 공간, 수많은 인파가 찾아들었을 때 그를 원만히 감당해낼 수 없는 좁고 복잡한 공간이었다. 안전상의 모든 문제는 근본적으로 여기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던 셈이다.
 
 
  ‘명품 전쟁’ 早期 교육?
 
  물론 이 같은 젊은 층의 문화적 해방구로서 핼러윈도 낯선 핼러윈을 굳이 한국 사회로 끌고 들어온 ‘지금의 젊은 세대’에나 국한되는 얘기일 것이다. 요즘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시절부터 핼러윈 문화를 접해 마치 우리 명절처럼 자연스러워졌다는 후문이다. 그러면서 또 다른 문제가 벌써 수년 전부터 제기돼왔다. 《한국경제신문》 2016년 10월 23일 자 기사 “‘핼러윈 데이’가 뭐길래… 서양 명절에 전국 유치원이 ‘들썩’”을 보자.
 
  〈경기도 부천의 한 유치원에서 근무하는 강모(27·여) 교사는 “요즘 대다수 유치원들이 이벤트 형식으로 핼러윈 데이를 챙기는데 부모님과 아이끼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아무래도 더 좋은 옷, 더 예쁜 소품을 자식에게 들려 보내려고 하다 보면 위화감도 조성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략) 유치원에서 핼러윈 데이 행사를 하지 않으면 부모들이 나선다. 자녀가 같은 유치원에 다니거나 사는 곳이 가까운 부모들끼리 돈을 내 핼러윈 파티를 열어준다.〉
 
  이렇듯 핼러윈을 어린 시절부터 경험한 세대는 핼러윈에 대해 기성사회 규율과 억압으로부터 일시적으로나마 해방되는 이벤트가 아니라, 정반대로 일찌감치 기성사회의 경쟁과 격차를 경험시키고 소위 ‘명품 전쟁’을 조기 교육시키는 이벤트로서 받아들일는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일본의 경우 핼러윈 관련 상품의 일본 국내시장 규모는, 일본기념일협회의 2016년 추산에 따르면, 무려 1400억 엔(현재 환율로 약 1조3400억원)대에 이른다고 한다. 한국도 그를 닮아간다면, 한국 사회에 가장 잘 정착한 두 서양 명절, 크리스마스와 밸런타인데이가 걸어온 길이 다시 한 번 반복되는 풍경이 되겠다. 유래나 의미는 정확히 잘 모르고 엄밀히 관심도 없지만, 어찌 됐건 돈은 써야 하는 또 다른 날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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