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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Q의 시 읽기 〈66〉 적막의 詩와 위대한 순간

내 없이도 혼자 있겠나. 돌아보며 다시 묻는다 (이문길)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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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終日 本家’가 팔 할이 넘는 아버지 일기장을 뒤적이다(이동순)
⊙ 위대한 순간은 우리가 모르는 새 왔다 가는지도 모른다(장영희)
서울 중구 덕수궁 돌담길 앞에서 참새들이 비를 피해 벽에 붙어 있다. 사진=조선DB
  이문길(李文吉·1939~) 시인이 지금까지 펴낸 16권의 시집에서 동시의 자리에 놓을 수 있는 작품들만 골라 묶은 동시집 《눈물 많은 동화》(브로콜리숲 간)가 출간되었다.
 
  《월간조선》은 2020년 6월호 〈여든둘 감동 시인 이문길〉, 2022년 2월호 〈노시인 이문길의 감동 산문선〉을 통해 이문길 시인의 삶과 작품을 비교적 자세히 소개한 일이 있다.
 
  이번에는 할아버지의 시선으로 아이들이 읽을 수 있는 작품을 별도의 동시집으로 묶었다.
 
  시 같기도 하고 동시 같기도 하다. 읽을수록 깊은 맛이 있다. 적막하게 슬프면서도 순수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의 인생과 우리의 인생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이문길 시인의 동시집 《눈물 많은 동화》
  하느님, 저 참새 어디 아픈 참새인가 봅니다
  아니면 이미 다 늙어 날 힘마저 없어진
  참새인지 모르겠습니다
  깃이 다 젖었습니다
  참새 발아래로 물방울이 자꾸
  맺혀 떨어집니다
 
  하느님 저 참새 보세요
  하느님 저 참새 보세요
 
  -이문길의 ‘저 참새’ 일부

 
  어린 시절 조르르 달려가 엄마 아빠에게 이르듯, 날지 못하는 참새를 보고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조물주를 찾는 일이다. ‘하느님 저 참새 보세요’라고 2행 반복하며 안타까움을 드러낸다.
 
  가을 하늘, 기러기가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시인은 ‘한 만 년쯤 날다 보면 저렇게 줄지어 가게 되고, 말하는 소리, 우는 소리도 같게 된다’고 말한다. 우리 삶도 저와 같이 만 년쯤 지속되면 싸움도 미움도 전쟁도 사라지리라.
 
  한 만 년쯤 날다 보니
  줄지어 가게 되었네
 
  말하는 소리
  우는 소리도 서로 같게 되었네
 
  -이문길의 ‘기러기’ 일부
 
 
‘누가 내 소리를 듣고 말을 걸어올까 나 잠든 체하며 오래 기다렸네.’ 이문길의 시 ‘돌’ 중에서.
  누가
  내 소리를 듣고
  말을 걸어올까
 
  나 잠든 체하며
  오래
  기다렸네
 
  나만 너무 오래
  기다렸다
 
  -이문길의 ‘돌’ 전문

 
 
  “절망, 적막이 없으면 시는 존재하지 않는다”
 
  《눈물 많은 동화》는 동시를 묶은 작품집이기는 하지만, 눈물겨운 시집이다. 그는 “절망, 적막이 없으면 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적막해서 슬프고 적막하여 또한 맑다. 비유나 은유 같은 인공 조미료가 필요 없다. 그냥 보통 말과 같은, 이문길 시인만의 세상에 없는 시다.
 
  어디 갑니꺼
 
  아무 데나
 
  팔십 할머니 작대기 짚고
  아파트를 돌아다니신다
 
  길에 나가시거든 촌사람 파는
  감 홍시 사 잡수십시오
  네 개 천 원입디더
  어데 그런 데
  헐한 곳이 있노
 
  네 개 주거던 한 개 더
  달라고 하십시오
  안 주거던
  떼를 쓰십시오
 
  할머니
  나를 보고 하얀 틀니 내어
  웃으신다
 
  한 바퀴 도시고
  내 가까이 오시고
  한 바퀴 도시고
  내 가까이 와서 나를 쳐다보신다
 
  아무도 세상 얘기
  안 해주는가 보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한테서
  세상 얘기 듣고 싶으신가 보다
 
  -이문길의 ‘할머니’ 전문
 

 
  내 없이도
  혼자 있겠나
 
  돌아보며
  다시 묻는다
 
  내 없이도
  혼자 있겠나
 
  -이문길의 ‘산1’ 전문

 
  노시인은 말한다. “평생 아무것도 아닌 시를 써왔지만, 나에게도 시론 같지 않은 시론이 있다”고. 소개하면 이렇다.
 
  ①시의 본질은 적막이다. ②절망, 적막이 없으면 시는 존재하지 않는다. ③시는 그 적막을 넘어가는 적막이다. ④시의 본질은 적막강산이다. 시인의 말이다.
 
  “지금까지 시를 쓰며 나는 16권의 시집을 내었다. 4년에 한 번씩 시집을 내었으니 64년이란 세월이 나도 모르게 흘러간 것이다.
 
  나는 좋은 시를 썼다고 생각할 때마다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한 권의 시집 속에 한두 편의 좋은 시가 있다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한 권의 시집 속에 한 편의 좋은 시도 없었다. 지금까지 시 쓴 것이 허무할 뿐이다.
 
  나는 평생을 시 같지 않은 시를 쓰려고 노력했다. 산문과 운문이 다르지 않은 시, 시와 동시와 시조가 다르지 않은 보통 말과 같은 시, 세상에는 없는 그런 시를 쓰려고 노력했다.”
 
‘텅 빈 버스 안에 불빛만 화안하다. 기다리는 사람 없는 정류장 앞을 지나간다.’ 이문길의 시 ‘빗속에’ 중에서.
  빗속에 가는
  산골짝 첫 버스에는 아무도 없다
 
  텅 빈 버스 안에
  불빛만 화안하다
 
  휴교 중인 초등학교
  운동장 앞을 지나고
 
  기다리는 사람 없는
  정류장 앞을 지나간다
 
  해가 갈수록 적막해지는
  산골짝 빗속에 젖어 있는 사람들
 
  산골짝 첫 버스는
  어두운 산속에서 나와
  다시 어두운 산속
  빗속으로 사라진다
  -이문길의 ‘빗속에’ 전문
 
  눈이 어두워 신문에 난
  ‘오늘의 운세’가 잘 안 보여 자세히 보니
  없어진 길에는 쉬어가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고 쓰여 있어 감동했다
 
  그래 다시 한번 자세히 보니
  엎어진 김에
  쉬어가라고 쓰여 있었다
 
  -이문길의 ‘눈이 어두워’ 전문

 
 
  ‘終日 本家’의 그 적막함…
 
‘아버지는 방안에 들어와 낮잠을 주무시거나 라디오를 들었습니다.’ 이동순의 시 ‘종일 본가’ 중에서.
  기자는 최근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가요연구가인 영남대 이동순(李東洵·1950~) 교수를 만나 가족 이야기를 들었다. 이 교수의 아버지는 젊은 시절 관부연락선을 타고 대한해협을 건넜다. 일본 남부 지역 고쿠라(小倉) 발전소 건설 현장에서 목수, 미장(美匠) 등 주로 토목 관련 막노동에 종사했다. 고생도 죽을 고비도 엄청 여러 번 겪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온갖 곡절 속에서 오랜 세월을 견디며 살다가 89세로 사망했다.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배려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고 한다. 여든 후반이 되었을 때는 영면(永眠)의 시간이 가까워서 그런지 종일 잠든 시간이 많았다. 그러다 돌연 뇌일혈이 와서 입원했을 때에도 대부분 혼수상태로 지내다 사망했다. 이 교수의 말이다.
 
  “아버지 만년(晩年)의 이야기입니다. 당신께서는 쓸쓸한 방 안에서 늘 혼자 덩그러니 누워계셨습니다. 새벽녘이면 라디오를 켜서 일기예보를 들었고, 자리에 누운 채 팔과 다리를 움직이며 운동을 하셨습니다. 잠시 마당에 나가서 빗자루로 한바탕 가랑잎이나 검불 따위를 말끔히 쓸어버리신 다음 다시 방 안에 들어와 낮잠을 주무시거나 라디오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매일 정해진 일과였습니다.
 
  간혹 무언가를 기록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건 아버님께서 일기를 쓰시던 모습이었지요. 아버님 돌아가신 뒤 유품을 정리할 때 책상 서랍에서 이 일기장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제 중학교 시절의 쓰고 남은 공책 여백 부분을 버리지 않고 따로 모아서 철사를 꿰고 표지를 씌워 새 일기장으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한 줄씩 쓴 일 년 열두 달 일기장의 내용이 거의 동일했다. 도합 네 글자인데 전문은 ‘종일(終日) 본가(本家)’였다. 간혹 이발, 목욕 다녀오신 기록이 보이긴 했지만 절대다수가 ‘종일 본가’로 채워진 아버지의 일기장을 마주하면서 이 교수는 뜨거운 눈물을 왈칵 쏟았다. 그렇게 해서 쓴 시가 ‘종일 본가’다.
 
  아버님 돌아가신 후
  남기신 일기장 한 권을 들고 왔다
  모년 모일 ‘종일 본가’
  ‘종일 본가’란
  하루 온종일 집에만 계셨다는 이야기다
  이 ‘종일 본가’가
  전체의 팔 할이 훨씬 넘는 일기장을 뒤적이다
  해 저문 저녁
  침침한 눈으로 돋보기를 끼시고
  그날도 어제처럼
  ‘종일 본가’를 쓰셨을
  아버님의 고독한 노년을 생각한다
  나는 오늘
  일부러 ‘종일 본가’를 해보며
  일기장에 이런 글귀를 채워 넣던
  아버님의 그 말할 수 없이 적적하던 심정을
  혼자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동순의 ‘종일 본가’ 전문

 
유지선 시인의 시집 《목화꽃 송이로 터지듯》
  시조 시인 유지선의 시집 《목화꽃 송이로 터지듯》(천년의시작 간)을 읽었다. 시집은 지난 1월 출간되었다. 여러 시편 중 ‘고해’가 눈에 띄었다.
 
  1행 ‘지상에서 마지막 허락된 침대 한 칸’은 관(棺)을 말한다. ‘어머니의 유배지’는 이 지상을 뜻하는 걸까. 우리 모두는 유배 나온 것일까. 코로나19로 어머니를 떠나보내며 화자는 어둠 속에 서 있다. 울며불며 발을 동동 굴렀지만 ‘외부인 출입 금지’여서 떠나는 어머니 손을 잡지 못했다.
 
  어머니 생각에 강낭콩으로 밥을 지었다. 뚝배기에 냉이를 넣은 된장국을 끓였다. 된장국 앞에서 어머니 생각이 간절하다. 손님으로도 밥 한 끼 대접 못 했다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의 죄를 시를 통해 고(告)한다.
 
  지상에서 마지막 허락된 침대 한 칸
  어머니 유배지에 긴 밤이 찾아왔다
  코로나
  어둠 속에 있고
  외부인 출입 금지
 
  엄마의 유년 닮은 강낭콩 밥 지어 놓고
  뚝배기 냉이 된장 보글보글 끓여 놓고
  하룻밤
  손님으로도 못 모신
  이 불효를 고해합니다
 
  -유지선의 ‘고해’ 전문

 
송희 시인의 시집 《고래 심줄을 당겨 봤니》
  지난 1월 간행된 송희 시인의 시집 《고래 심줄을 당겨 봤니》(천년의시작 간)를 읽었다.
 
  시 ‘구두별자리’는 세상을 떠난 아버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장례식을 모두 치르고 집으로 돌아오니 구두 한 켤레가 현관을 지키고 있다. 살갗이 다 튼 아버지의 구두였다. ‘못 가실까 봐, 발 시릴까 봐’ 부랴부랴 산소로 달려갔다. 깊은 밤, 무덤가에서 아버지 구두를 태웠다. ‘발등의 실핏줄들이/ 죽죽 푸른 선을 긋고’ 날아갔다. ‘푸른 선’이란 표현에 눈길이 간다. 구두의 발가락 자리와 발뒤꿈치 자리가 오그라들며 ‘우둘투둘 새 별자리를 만들어 갔다’. 아마도 시인이 올려다본 하늘에 별이 유난히 반짝이고 있었던 모양이다.
 
  구두를 두고 가셨네
 
  아버지 보내 드리고 돌아와 보니
  살갗이 다 튼 구두 한 켤레 여전히 현관을 지키고 있었다
  못 가실까 봐 발 시릴까 봐 부랴부랴 산소에 가서 불을 붙였다 걸을 때마다 허리뼈까지 당기던 발등의 실핏줄들이
  죽죽 푸른 선을 긋고 날아갔으나
 
  도루코 칼로 다듬던 발톱 자리와
  여러 갈래 길이 난 발뒤꿈치 자리가 오그라들며
  우둘투둘 새 별자리를 만들어 갔다.
 
  새벽 너머까지 뛰어다니던 아버지의 빠른 행보는
  검은 도넛 모양이 되었다
  두고두고 자식들이 먹을 먹거리인 듯
  쉽게 지워지지 않아
  아무도 빗자루로 쓸어내지 못한다
 
  유훈(遺訓)이 된 불씨를 별빛처럼 모셔 왔다
 
  -송희의 ‘구두별자리’ 전문

 
 
  잊을 수 없는 크리스마스이브 이야기
 
장영희 교수의 수필집 《무릎 꿇은 나무》
  2011년 5월 예수회 후원회가 펴낸 고(故) 서강대 장영희(張英嬉·1952~ 2009년) 교수의 수필집 《무릎 꿇은 나무》는 기자가 가장 아끼는 책이다.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책이다. 손바닥만 한 크기에 145쪽에 불과하지만 감동을 주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이 수필집에 실린 단편 〈위대한 순간〉을 꺼내어 다시 읽었다.
 
  장 교수가 유학 중이던 대학 기숙사의 경비였던 토니 아저씨를 떠올리며 쓴 글이다. 당시 그는 한 예순쯤 되었는데 전직이 콜택시 기사였다. 언젠가 자신이 기사 시절 크리스마스이브 새벽에 겪은 일을 장 교수에게 들려주었다.
 
  그날 밤 당번이었던 그는 시내 어떤 주소로 가라는 연락을 받았다. 아마도 늦게까지 파티를 한 사람이 집으로 가기 위해 부르는 것일 거라고 생각했다. 가서 한참을 기다렸으나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보통 때 같으면 경적을 한두 번 누르고 가버렸겠지만 그날 밤 일부러 차에서 내려서 벨을 눌렀다.
 
  “잠깐만요.”
 
  아주 작고 힘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고는 무엇인가 마룻바닥에 질질 끌리는 소리가 들렸다. 한참 있다가 문이 열렸다. 거기에는 마치 1940년대 영화에서 막 걸어 나온 듯한 복장에 모자까지 단정히 쓴 아주 나이 든 할머니가 서 있었다. 그 뒤로 보이는 방은 가구가 다 흰색 천으로 덮여 있었다.
 
  “이 가방 좀 들어주겠수?”
 
  할머니는 아주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방을 나오면서 할머니는 문간에 놓인 사진틀과 앨범이 가득 담겨 있는 상자 앞에서 잠깐 망설였다.
 
  “할머니 그것도 가져가실 거예요?”
 
  할머니는 잠깐 생각하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그냥 두고 갈 테야.”
 
  차에 타자 할머니는 주소를 주면서 시내를 가로질러 가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 돌아서 가는 건데요, 할머니.”
 
  “괜찮아요. 나는 시간이 아주 많아. 지금 호스피스 병원으로 가고 있는 중이거든.”
 

  순간 토니는 뒷좌석의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어둠 속에서 할머니 눈에 이슬이 반짝였다. “식구가 하나도 없어서. 의사 선생님이 인제 갈 때가 얼마 안 남았다고 하우.”
 
  토니는 요금 미터기를 껐다.
 
  “어떤 길로 갈까요, 할머니?”
 
  그로부터 두 시간 동안 토니와 할머니는 함께 조용한 크리스마스 새벽 거리를 드라이브했다. 그녀가 젊은 시절 엘리베이터 걸로 일하던 빌딩, 지금은 가구 공장이 되었지만 처음으로 댄스 파티에 갔던 무도회장, 신혼 때 살던 동네 등을 천천히 지났다. 때로는 어떤 건물 앞에 차를 세우고 그냥 오랫동안 어둠 속을 쳐다보기도 했다.
 
  어슴푸레 날이 밝아오자 할머니는 “이제 피곤해, 그만 갑시다”라고 말했다. 침묵 속에서 토니는 할머니가 준 주소로 차를 몰았다. 간호사들이 할머니를 맞아 휠체어에 앉혔고, 토니는 자기도 모르게 할머니를 안아 작별 인사를 했다.
 
  “자네는 늙은이에게 마지막 행복을 줬어. 아주 행복했다우.”
 
 
  위대한 순간은 우리가 모르는 새…
 
연극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의 깐깐 할머니와 묵묵 운전사. 배우 신구와 손숙. 사진=조선DB
  할머니가 말했다. 할머니를 두고 토니는 건물을 나왔고, 뒤로 문이 ‘찰칵’ 하고 닫혔다.
 
  “그건 마치 삶과 죽음 사이의 문이 닫히는 것 같았어.”
 
  토니는 말했다.
 
  “나는 그때 집으로 가지 않고 한참 동안을 할머니를 생각하며 돌아다녔지. 그때 내가 그냥 경적만 몇 번 울리고 떠났다면? 그래서 크리스마스 날 당번이 걸려 심술 난 다른 기사가 가서 할머니에게 불친절하게 대했더라면…. 난 내 일생에 그렇게 위대한 일을 해본 적이 없어. 내가 대통령이었다 해도 아마 그렇게 중요한 일은 하지 못했을 거야.”
 
  이 글 말미에 장영희 교수는 이렇게 쓰고 있다.
 
  〈… 우리는 우리의 삶이 아주 위대한 순간들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위대한 순간, 내가 나의 모든 재능을 발휘해 위대한 일을 성취할 날을 기다리며 산다. 내게는 왜 그런 기회가 오지 않느냐고 안타까워하고 지치고 슬퍼한다.
 
  그렇지만 그 위대한 순간은 우리가 모르는 새 왔다 가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우리 스스로가 하찮게 생각하는 순간들 속에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무심히 건넨 한마디 말, 별생각 없이 내민 손, 스치듯 지은 작은 미소 속에 보석처럼 숨겨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순간은 대통령에게도, 신부님에게도, 선생님에게도, 자동차 정비공에게도 모두 골고루 온다.…〉 (85~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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