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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취재

‘나랏빚’에 허덕이던 나라들의 오늘과 우리의 내일 ② 이탈리아

포퓰리즘이 뿌린 ‘재앙’에서 탈출하지 못해

글 : 박희석  월간조선 기자  thegood@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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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도한 국가채무로 인한 신인도 하락과 국채 금리 급등이 경제위기의 주원인
⊙ 1970년대까지는 잘나갔지만, 1980년대 들어 ‘저성장·역성장’ 고착화
⊙ 경제 관료, 유럽중앙은행 총재 출신 총리들도 개선하지 못한 ‘재정건전성’
⊙ 1년에 ‘나랏빚’ 이자로 내는 돈만 GDP의 약 4%… 이자 갚기 위해 또 빚내는 ‘악순환’
⊙ 경제위기 후에도 나랏빚은 계속 늘어… 2021년 기준 국가채무 비율 151%
⊙ 연간 정부 지출 1400조원 중 840조원이 복지비… 복지비 중 500조원은 ‘공적연금’
⊙ ‘재정준칙’ 시행 안 하면 국가채무 비율은 2030년에 72%로 급증… 2040년에 100% 초과
사진=박희석
  ‘문재인(文在寅) 5년’은 대한민국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로 만드는 데 충분한 시간이었다. 문재인 정권은 집권 후 ‘국고’에 돈이 쌓여 있으면 썩는다는 식으로 재정 지출을 늘렸다. 재정 적자를 내면서 돈을 뿌렸다. 그사이 ‘나랏빚’은 폭증했다. 박근혜(朴槿惠) 정부 때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4년 동안 3.4%p 증가하는 데 그쳤다. 그와 달리 문재인 정부 5년 동안에는 14%p 늘었다. 금액으로 보면 660조원에서 1000조원을 돌파했다. ‘문재인 5년’이 남긴 유산은 앞으로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을 방해하는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곳이 바로 이탈리아다. 이탈리아는 11년 전, ‘경제위기’를 맞았다. 그 경제위기는 ‘국가채무’ 때문에 경제 기반이 무너지고, 그에 따라 신인도가 하락해, 국채 금리가 폭등하면서 발생했다. 그 이탈리아는 경제위기 후에도 막대한 ‘나랏빚’에 눌려 신음하고 있다. 1970년대에는 독일과 함께 유럽의 제조업 강국이었고, 1980년대에는 경제 규모 면에서 영국을 추월해 ‘세계 5위’를 기록했던 이탈리아의 형편이 지금 그렇다.
 
 
  한국과 경제 구조·규모 비슷
 
콜로세움 등 고대 로마 유적을 비롯한 관광자원 덕분에 이탈리아 관광산업 생산액은 연간 390조원에 달한다.
  9월 17일 오전 7시쯤,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 소재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숙소가 있는 바티칸 근처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40분쯤 달려 도착한 바티칸 주변은 이른 시각인데도 관광객들로 붐볐다. 아침부터 작은 깃발을 든 안내원들을 따라 세계 각국에서 온 이들이 주요 관광지를 구경했다. 오전 10시쯤에는 단체 관광객, 인도·아프리카계 행상, 구걸하는 집시들이 인파를 이뤄 주요 시설이 있는 곳은 제대로 걷기 어려울 정도가 됐다. 바티칸에서부터 도보로 30분, 지하철 등 대중교통으로 이동할 때는 10분 거리 이내에 콜로세움 등 고대 로마의 유적을 비롯해 로마의 주요 볼거리가 밀집해 있는데, 이 구역들 모두가 상황은 비슷했다.
 
  그야말로 조상이 남긴 ‘관광자원’ 덕분에 세계 각지에서 봇물 터지듯 밀려드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이탈리아가 벌어들이는 돈은 연간 GDP의 13%에 달한다. 2021년 기준 GDP가 2조1000억 달러이므로 관광산업 생산액은 2730억 달러다. 한화(韓貨)로 약 390조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우리의 경우 GDP 1조8100억 달러에서 관광산업 비중은 2.8%, 507억 달러(72조5000억원)에 불과하다.
 
바티칸 소재 성 베드로 대성당 인근의 인파. 바티칸과 로마 시내 주요 관광지는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로 붐빈다.
  이런 까닭에 “이탈리아는 관광으로 먹고사는 나라”란 고정관념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이탈리아는 제조업 강국이다. 제조업 비중이 상대적으로 유럽 내 다른 나라보다 크고, 산업 경쟁력도 높다. 유럽에서 독일 다음가는 경쟁력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조업 중에서도 주력 산업은 금속·기계·식품·패션·화학 등이다. 제조업의 GDP 비중은 25%다. 제조업의 GDP 비중이 27.5%인 우리와 별 차이가 없다. 1·2·3차 산업의 GDP 비중도 마찬가지다.
 
  GDP 규모도 비슷하다. 우리가 3000억 달러가량 적지만, 이는 이탈리아 인구가 6000만 명인 까닭에 규모 면에서 밀리는 것일 뿐이다. 1인당 국민소득(GNI) 역시 서로 엎치락뒤치락할 정도로 비슷하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의 1인당 GNI는 3만2193달러, 이탈리아는 3만1622달러였다. 지난해의 경우에는 이탈리아가 근소한 차로 다시 앞섰을 것이란 잠정 통계가 나왔다.
 
  정리하면, 이탈리아는 우리와 1·2·3차 산업의 GDP 비중이 비슷하다. 제조업도 마찬가지다. GDP 규모도 엇비슷하고, 1인당 GNI는 같은 수준이다. 그런데 이런 나라가 10년 전에 경제위기를 겪으며 ‘유럽의 문제아’라고 불린 까닭은 무엇일까.
 
 
  포퓰리즘 경쟁으로 경제성장 정체
 
  세계은행에 따르면 이탈리아는 1961년부터 1979년까지 연(年)평균 4.7% 수준의 경제성장률을 보였다. 1980년대에는 2.4%, 1990년대에는 1.5%, 2000년대에는 0.9%를 기록했다. 1980년대 들어서 ‘저(低)성장’이 고착화하고 1990년대 이후에는 종종 ‘역(逆)성장’까지 했다. 그럼에도 이 기간(1961~2010년) 이탈리아 GDP는 450억 달러에서 4750% 성장해 2조1400억 달러로 증가했다. 당시 이탈리아의 GDP 증가 양상은 같은 기간 세계 평균(4800%)과 엇비슷한 수준이다. 참고로 같은 기간, 우리는 20억 달러에서 570배 성장해 1조1400억 달러를 기록했다.
 
  2011년, 이탈리아가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2008년)’의 여파에 의해 ‘경제위기’를 맞았을 당시의 GDP는 2조2900억 달러다. 이후 이탈리아 경제성장률은 ▲2011년 0.7% ▲2012년 -3% ▲2013년 -1.8% ▲2014년 0% ▲2015년 0.8% ▲2016년 1.3% ▲2017년 1.7% ▲2018년 0.9% ▲2019년 0.5% ▲2020년 -9% ▲2021년 6.6% 등이다. 2021년 GDP는 2조1000억 달러다. 한마디로 이탈리아는 ‘경제위기’를 맞고 나서 10년 동안 이전의 경제 규모를 회복하는 데 실패했다는 얘기다.
 

  1990년대 들어서 이탈리아 경제가 과거처럼 성장하지 못한 까닭은 크게 두 가지다. 그중 하나는 미래 성장을 이끌 분야에 대한 재투자를 소홀히 해 갈수록 경제 기반이 취약해졌기 때문이다. 1960~1980년대 당시 이탈리아 정치권은 경제성장의 ‘과실’을 정권 유지 또는 획득을 위한 포퓰리즘 경쟁의 도구로 사용했다. 그 과정에서 오늘날 이탈리아 경제의 발목을 잡는 ‘복지 제도’들이 속속 등장했다.
 
  경제가 성장할 때는 세수(稅收)가 함께 증가하면서 각종 복지 정책 재원을 조달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문제는 경제성장이 정체되거나 퇴보할 때다. 경제 여건이 달라졌다고 해서 복지 혜택을 줄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강력한 저항에 직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복지 축소를 시도하는 정권은 선거에서 패배하기 십상이다. 같은 정책을 주장하는 정당은 선거에서 유권자 지지를 받지 못해 연립정권에 참여할 수도 없을 정도로 ‘소수당’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표를 바라는 정치권은 빚을 내서라도 복지 수요를 충족해야 한다.
 
  이에 따라 이탈리아 역대 정권은 ‘적자 재정’을 통해 복지비를 조달했다. 고령화·저출산·저성장에 따라 복지 수요는 갈수록 증가했고, 이와 함께 이탈리아 정부 지출에서 복지비가 차지하는 비중도 늘었다. 그 결과 현재는 복지비 비중이 57.5%에 달한다. 또 그 복지비의 60%는 오로지 ‘공적연금’에 투입된다.
 
 
  1년에 갚아야 할 이자만 110조원
 
이탈리아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이미 1994년에 120%를 초과했다. 이후 하락세를 보이다가 세계 금융위기(2008년) 발생 후 다시 급등했다. 자료=세계은행
  경제성장기에 구축된 지출 구조 탓에 1980년대 경제성장 정체기로 접어든 이탈리아의 ‘국가채무’는 급증했다. 거둔 세금보다 국민에게 주는 ‘복지 혜택’이 컸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였다. 1980년 당시 60%가 채 되지 않았던 이탈리아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1989년에 95%로 늘었다. 1992년에는 105%, 1994년에는 121.8%를 기록했다. 이후 2007년까지 점차 감소해 103%까지 하락했다. 1992년 이후 공공 서비스나 복지 수당 등의 지출을 세수 범위 안에서 편성해 집행했기 때문이다. 2008년에 세계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국가채무는 다시 증가했다. 이탈리아에서 ‘경제위기’가 촉발될 당시인 2011년에는 다시 국가채무 비율이 126%로 늘었다. 당시 EU 평균은 79.5%다.
 
  이렇게 급증한 빚은 국가 재정 여력을 갉아먹는다. 위기가 닥쳤을 때 국가는 확장 재정을 시행하려고 하지만, 이미 여력이 없기 때문에 결국 또 빚을 낼 수밖에 없다. 이미 빚이 많아 신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또 빚을 내려면 높은 이자를 지불해야 한다. 국가 재정은 사실상 이자 갚는 데 투입돼야 하므로, 국민에게 투자되는 금액은 많지 않다.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 이탈리아 경제는 성장을 못 하고, 성장이 저조하므로 세수 확대가 안 돼 다시 빚을 내 나라 살림을 꾸려야 한다. 이 같은 악순환을 반복하면 얼마 안 가 순전히 이자를 갚기 위해 국채를 발행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본격적인 ‘돌려막기’가 시작되는 셈이다.
 
  현재 이탈리아의 GDP 대비 국가채무 이자비용 비율은 3.8%(2020년 기준)이다. 이를 2021년 GDP에 대입할 경우 이탈리아가 한 해 나랏빚의 이자를 갚는 데 쓰는 금액은 약 777억 달러(111조원)에 달한다는 추산이 가능하다. 이는 같은 해 정부 지출 9590억 달러(1377조원)의 8.1%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경제개혁안 ‘살바 이탈리아’ 시행했지만…

 
2011년 11월, ‘장기 집권’ 하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우) 총리는 ‘경제 운용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그 뒤 ‘경제 관료’ 출신 마리오 몬티(좌) 총리가 취임해 ‘재정 긴축’을 포함한 ‘경제개혁’을 실시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사진=뉴시스
  2007년 미국에서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졌다. 2008년에는 세계 4대 투자은행이던 리먼 브라더스가 망했다. 그 후 전 세계는 ‘금융위기’를 맞았다. 당시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은 경기를 되살리기 위해 세 차례에 걸쳐 전례 없는 대규모 양적 완화를 시행해 시장에 돈을 풀었다. 공중에서 돈을 뿌리듯 대량 살포했다는 의미에서 ‘헬리콥터 벤’이라고 불린 그는 ‘금융위기 연구’에 기여했다는 공로를 인정받아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당시 미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은 재정 지출을 늘리고, 양적 완화를 통해 유동성을 늘렸다. 이탈리아도 마찬가지였는데, 그 와중에 ‘재정 적자’는 더욱 심화하고, ‘국가채무’도 급증했다. 외부에서는 경제 기초가 약하고, 상술한 ‘기저질환’이 산적했던 이탈리아 경제를 신뢰하지 않았다. 2010년부터 ‘이탈리아 경제위기설’이 대두했고, 국채 금리가 뛰기 시작했다. 2011년 11월 9일, 이탈리아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7.21%를 기록했다. 이는 그 전년도에 ‘구제금융’을 요청한 그리스 국채 금리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국채 금리가 7%를 넘어서면 이자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 외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는 게 국제 금융시장의 중론이다.
 
  국제사회의 우려가 현실화하자, 이탈리아 내부에서는 ‘경제 운용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어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당시 총리에게 ‘퇴진’을 요구했다. 2011년 11월 13일,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사임했다. 경제학자 마리오 몬티 보코니대 총장이 총리직을 맡고 과도내각을 이끌게 됐다.
 
  재무부 장관을 겸한 몬티 당시 총리는 취임 2주 만에 고강도 경제개혁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이른바 ‘살바 이탈리아(이탈리아 구하기)’다. ‘살바 이탈리아’는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재산세 도입 ▲연금개혁 ▲사치세 부과 ▲부가세 인상 ▲조세 행정 개선 ▲공공부문 구조조정 등을 통해 200억 유로(28조원) 규모의 재정 긴축을 시행하고, 100억 유로(14조원)가량을 경기 부양에 쓰겠다는 계획이었다. 그 결과는 ‘실패’였다.
 
 
  “혜택 줄이는 몬티의 개혁 반기지 않아”
 
2010년대 초반 ‘유로존 경제위기’ 당시 유럽중앙은행 총재로 활동하며 ‘슈퍼 마리오’라고 불렸던 마리오 드라기 총리도 이탈리아 재정 상황을 개선하는 데 실패했다. 사진=뉴시스
  이와 관련, 정치학자로서 1974년부터 이탈리아 정당·선거·정치 시스템에 대해 연구한 로베르토 달리몬테 루이스대 정치학과 교수는 “이탈리아 국민 대다수는 몬티를 지지하지 않았고, 자신들이 받는 혜택을 줄이는 몬티의 개혁을 반기지 않았다”며 “그 몬티의 재정 긴축은 ‘반체제 정당’인 오성운동이 성장해 2013년부터 지금까지 이탈리아 정치를 좌우하게 한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재 이탈리아에 ▲재정 긴축 ▲복지 축소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주장하는 정치 세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이 집권할 기회는 당분간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몬티 총리는 물론 그 뒤를 이어서 엔리코 레타(2013년 4월~2014년 2월, 10개월 재임/민주당), 마테오 렌치(2014년 2월~2016년 12월, 2년 10개월 재임/민주당), 파올로 젠틸로니(2016년 12월~2018년 6월, 1년 6개월 재임/민주당), 주세페 콘테(2018년 6월~2021년 2월, 2년 8개월 재임/오성운동계 무소속), 마리오 드라기(2021년 2월~, 1년 8개월 재임/사임 예정/무소속) 모두 국가 재정건전성 회복, 국가채무 감축 등을 이루지 못했다. 특히 2010년대 초반 ‘유로존 경제위기’ 당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로 활동하며 ‘슈퍼 마리오’라고 불렸던 마리오 드라기 총리도 이탈리아 재정 상황을 개선하는 데 실패했다. 경제위기 발생 후 총리 6명을 거치는 동안 이탈리아 국가채무 비율은 오히려 상승해 2021년에는 150.8%를 기록했다.
 
  지금까지 살핀 내용을 정리하면, 이탈리아 경제위기는 ‘정치’가 주요 원인이다. 집권욕에 눈먼 정치권이 1960년대부터 포퓰리즘 경쟁을 하면서 뿌린 ‘재앙’의 씨앗 때문에 이탈리아는 ‘유럽의 문제아’ 취급을 받게 됐다. 이탈리아 경제의 ‘고질’인 복지 과잉과 국가채무는 모두 ‘정치실패’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76년 동안 69개 내각 구성

 
9월 22일, 고대 로마 공회장 인근에서 열린 이탈리아 녹색좌파동맹의 선거 유세. 마리오 드라기 총리는 지난 7월, 연정을 구성한 원내 1당 ‘오성운동’이 지지를 철회하자 사임 의사를 밝혔다. 이에 따라 이탈리아는 9월 26일 조기 총선을 실시했다.
  1946년 이탈리아 공화국 수립 이후 76년 동안 69개 내각이 구성됐다. 집권 1~2년도 안 돼 사임하고, 연정(聯政)이 무너지고, 조기 총선을 실시하는 사이에 복지 정책은 계속 늘었다. 그 과정에서 일부 내각, 정치인들은 국가 경제의 미래를 위해 국민적 저항과 각종 이익집단의 반발을 무릅쓰고 연금개혁, 복지혜택 축소 등을 추진했다. 일례로 2007년에는 연금의 수급 시기를 기존 60세에서 65세로 늦췄다. 2011년 경제위기 후에는 다시 67세로 연기했다. 하지만 2018년 좌파 정당인 ‘오성운동’과 북부 지역의 극우 정당 ‘동맹’의 연립정권이 이를 62세로 돌려놨다.
 
  이 같은 ‘정치실패’와 ‘경제위기’의 상관성에 대해 로렌조 카스텔라니 루이스대 정치학과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탈리아는 내각 책임제를 채택하고 있는데, 과반 지지를 얻는 정당이 없어서 연립정권을 수립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각 정당의 세가 약하다 보니, 연정 구성원들 사이에 분열이 있을 경우에는 새로운 내각을 구성해야 합니다. 이런 까닭에 이탈리아에서 정치적 안정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거듭되는 정치 불안정은 이탈리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단기간 집권하는 정권은 경제성장을 꾀할 수도 없고, 국가채무를 줄이는 일도 할 수 없습니다. 또 선거 때마다 포퓰리즘 공약을 내놓은 정당들이 내각을 구성하면, 재정 지출이 증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감안하면, ‘정치실패’와 ‘경제위기’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로베르토 달리몬테 루이스대 정치학과 교수도 ‘정치실패’와 ‘경제위기’의 상관관계에 대해 동의했다. 그는 “정치적 불안정 탓에 투자를 유치하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필요한 사법 제도·세법·행정 관련 주요 개혁이 통과되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정치실패’를 지적했다. 그럼에도 이탈리아 정치권이 바뀌지 않고, 경제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로 그는 ‘무관심’을 꼽았다. 달리몬테 교수는 “문제는 이탈리아의 정치 문화는 독일처럼 정치적·경제적 안정을 강조하지 않는다는 점”이라며 “이탈리아 국민도 ‘국가채무’를 그렇게 걱정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저조한 R&D 투자
 
이탈리아 경제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생산성’ 문제는 미국, 독일과 비교했을 때 낮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노동 생산성은 한국, 일본보다 월등하게 높다. 자료=OECD
  ‘정치실패’와 그로 인한 ‘경제위기’를 겪었지만, 이후에도 이탈리아 정치권과 국민은 경제 회생을 위한 투자를 하지 않았다. 국가경제를 짓누르는 막대한 규모의 나랏빚과 이자 때문에 여력이 없었을 수도 있다. 이에 따라 경제위기 전 이탈리아 경제의 문제점이라고 지적됐던 사안들은 지금까지도 별다른 개선 없이 ‘경제성장’을 방해하고 있다. 이탈리아 총리실 산하 G7·G20 협의체 고문인 시모네 로마노 박사(경제학)는 이를 ‘뿌리 깊은 이탈리아의 약점’이라고 명명했다. 다음은 그의 설명이다.
 
  “이탈리아 경제는 구조적 문제 때문에 오랫동안 침체했습니다. 이탈리아는 유럽에서 부가가치세 회피율이 가장 높습니다. 탈세가 일반화돼 있습니다. 이는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합니다. 재정 여력이 감소하면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줍니다. 노동시장도 비효율적입니다. 다른 선진국에 비해 고등교육을 받은 이들이 매우 적습니다.”
 
  이냐치오 비스코 이탈리아 중앙은행 총재도 2020년 9월 당시 ‘유로사이언스 포럼’에서 발표한 〈경제성장과 생산성〉이란 연구보고서에서 “지난 30년 동안 이탈리아는 혁신을 이룰 인적 자본을 육성하는 교육에 투자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비스코 총재가 발표한 보고서의 관련 대목이다.
 
  “약 30년 동안 이탈리아의 경제성장을 억제한 원인 중 하나를 꼽으라면 저조한 연구개발(R&D) 투자입니다. 2018년 이탈리아의 R&D 지출은 GDP의 1.4%(한국은 4.52%)에 불과합니다. 이는 미국과 같은 선진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입니다. 투자가 저조해 연구개발을 담당할 인력들을 육성하지 못했습니다. 이탈리아 경제 활동 인구 1000명당 연구개발 인력은 5.5명(한국은 2020년 기준 16명)에 불과합니다. OECD 평균은 9명입니다. GDP 대비 특허 수도 OECD 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칩니다. 가족 소유·경영 위주의 ‘왜소’한 기업이 대다수인 이탈리아 생산 체계는 ‘생산성 저하’를 초래합니다. 대기업의 경우에는 이탈리아 기업이 프랑스나 독일 기업보다 생산성이 높지만, 대다수 소기업은 주요 경쟁기업보다 생산성이 낮습니다. 평균을 깎아 먹고 있습니다. 만일 이탈리아 규모별 기업 분포가 독일과 같다면, 이탈리아 기업들의 평균 생산성은 지금보다 20%p 상승해 독일을 능가할 것입니다.”
 
  참고로, 앞서 이탈리아 경제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지적한 이탈리아의 ‘낮은 노동생산성’은 시간당 노동생산성이 ‘60달러 이상’인 미국 또는 독일 같은 ‘최상위권’ 국가와 비교했을 때의 얘기다. 그렇게 혹평받은 이탈리아의 ‘생산성’은 한국은 물론 일본보다 우수하다. 경제위기를 맞았던 2011년 당시 이탈리아의 노동생산성은 ‘53달러/시간’이다. 같은 시기, 한국과 일본의 노동생산성은 각각 ‘33.1달러/시간’ ‘43.7달러/시간’이다.
 
 
  후진국 수준의 ‘지하경제’와 ‘정경유착’
 
  이탈리아의 경제 전문가들은 지하경제(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음성·불법적인 경제 활동) 역시 개선해야 할 ‘고질병’이라고 말한다. ‘이탈리아 지하경제’와 관련해서 살바토레 카파소 나폴리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하경제는 투자 속도를 늦추고, 신기술의 채택을 방해하며, 정부가 공공재와 기반 시설 관련 지출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한다”며 “최종적으로는 투자가 왜곡되고, 소득 불평등은 심화하고, 경제성장은 저해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가 지목하는 이탈리아 지하경제 확산 원인은 ▲높은 수준의 과세 ▲번거롭고 비효율적인 관료주의 ▲열악한 법적 보호 등이다. 카파소 교수는 “흔히들 지하경제의 확산 원인으로 ‘조세 회피’를 얘기하지만, 이는 원인 중 일부에 불과하다”며 다음과 같이 밝혔다.
 
  “복잡한 법률, 높은 급여세 및 노동 비용은 기업을 비공식적 영역으로 유인하는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회보장기여금(사회보험 유지·운영을 위해 사회구성원으로부터 갹출하는 보험료)은 직원과 고용주가 각각 부담해야 하는 ‘비용’입니다. 이런 비용을 피하기 위해 ‘노동’ 자체를 숨기게 됩니다. 그와 함께 엄격한 노동 규제, 과도한 관료주의 역시 지하경제 규모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통상적으로 개발도상국의 지하경제 규모는 대략 GDP의 30%, 선진국은 10~15%로 추정한다. 2019년 당시 이탈리아 통계청(ISTAT)은 불법 및 비공식 활동에 따른 지하경제 규모가 GDP의 12.1%에 해당한다고 추정했지만, 1982년부터 이탈리아 정치·경제·사회 분야에 대해 분석하고 정례 보고서를 펴내는 민간 연구기관 ‘에우리스페스’는 2019년 이탈리아 지하경제 규모가 GDP의 25%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발생하는 탈세액은 2620억 달러(375조원)라고 주장했다. 이를 바탕으로 이탈리아 지하경제 규모가 일반적인 선진국 수준으로 축소될 경우를 가정하면, 1048억 달러(150조원)에 달하는 신규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는 추산이 가능하다.
 
 
  미완에 그친 ‘마니 풀리테’
 
조르자 멜로니의 ‘이탈리아 형제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전진, 이탈리아’, 마테오 살비니의 ‘동맹’이 결성한 소위 ‘우파 연합’이 9월 26일 총선에서 상하원 모두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사진=뉴시스
  프리드리히 슈나이더 오스트리아 린츠대 경제학과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1998년 GDP의 30%에 달했던 지하경제 규모는 2015년에 20%로 감소했다. 이를 고려했을 때 지하경제를 양지로 끌어올리는 일은 결코 실현 불가능한 작업은 아니다. 하지만 ‘지하경제’를 장악한 마피아, 이들과 결탁해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정치권을 감안하면 ‘이탈리아 지하경제 양성화’는 ‘백년하청(百年河淸)’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이탈리아는 과거 이 공고한 ‘카르텔’을 없애기 위해 ‘정경유착 척결작업’을 추진한 바 있다. 1992~ 1994년, ‘마니 풀리테(Mani pulite·깨끗한 손)’라고 불리는 부정부패 수사를 통해 전·현직 총리들의 비리 혐의를 밝히고, 정치·경제인 1000여 명을 구속했다. 이로 인해 이탈리아 양대 정당이던 기독민주당과 사회당은 붕괴했지만, 부정부패 척결은 미완에 그쳤다. 기성 정치권의 몰락을 틈 타 정계에 등장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1994년 이후 세 차례 총리직 역임) 같은 이들이 한 자리씩 차지한 까닭에 이탈리아 부정부패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마니 풀리테’를 주도한 검사로서 전국적인 스타로 부상했던 안토니오 디 피에트로 전 이탈리아 하원 의원은 2017년 당시 프랑스의 AF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마니 풀리테’가 한창일 때 대중이 경찰과 도둑 사이의 전투를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면, 오늘날엔 서로 다른 도둑 무리 간의 전쟁을 목격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고 한탄했다.
 
 
  ‘재정위기국’보다 ‘나랏빚’ 빨리 증가하는 한국
 
  ‘국가 자원의 효율적인 분배’를 담당해야 할 정치권이 무능하고, 부패했던 까닭에 이탈리아 경제는 활력을 잃었다. 성장률은 곤두박질쳤다. 정치권이 경쟁하듯 쌓아놓은 ‘빚더미’에 눌려 활로를 모색하기 어려운 지경에 빠졌다. 서두에 밝혔듯이 이는 ‘먼 나라’ 얘기가 아니다. 대한민국 상황도 이탈리아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기간, 대한민국의 재정건전성은 급속도로 악화했다. 지난 5년 동안 누적된 재정 적자에 따라 국가채무가 가파르게 증가했다. 사실상 박근혜 정부 마지막 해인 2016년 당시 627조원이었던 국가채무(정부가 직접 상환 의무를 가진 확정채무)는 문재인 정부 마지막 해인 올해 1064조4000억원(본예산 기준)으로 늘었다. 문재인 정부 기간에 404조2000억원이나 폭증한 셈이다. 이명박(李明博) 정부 당시 증가한 나랏빚이 180조8000억원, 박근혜 정부 때는 170조4000억원 등 총 351조원이었던 걸 감안하면, 그야말로 ‘빚잔치’를 벌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도 매년 상승했다. 통계청 통계로 따지면 문재인 정부 기간 국가채무 증가율은 ‘최악’이다. 김대중(金大中) 정부 당시 국가채무 비율은 15%에서 2%p 증가해 17%가 됐다. 노무현(盧武鉉) 정부 때는 10.5%p(17→27.5%), 이명박 정부 당시에는 3.3%p(27.5→30.8%),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5.2%p(30.8→36%) 증가했다. 문재인 정부의 경우에는 36%에서 14%p 늘어 50%를 기록했다. 노무현 정부와 그를 계승했다는 문재인 정부 때 ‘나랏빚’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2020년 8월, 한국경제연구원이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2000~2018년 당시 우리나라의 국가채무 증가 속도는 OECD 34개국 중 4위였다. 연평균 증가율 4.4%는 재정위기 국가로 꼽히는 그리스 3.1%, 이탈리아의 1.2%보다 심각한 수준이라는 게 연구원 측의 분석이다.
 
 
  ‘재정준칙’ 도입해 ‘재정건전성’ 회복해야
 
  문재인 정부 때 정부 지출(본예산 기준) 역시 폭증했다. 매년 슈퍼예산을 편성해 돈을 뿌렸다. 국가 예산이 400조원에서 600조원으로 50% 늘었다. 증가분 중 상당액은 한 번 시행하면 경제 사정이 변화하더라도 탄력적으로 수정하기 어려운 ‘하방(下方)경직성’을 띤 복지 정책에 투입됐다. 이에 따른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국채를 발행하며 ‘나랏빚’을 늘렸다. 그 결과 우리는 ‘세계 금융위기’ 같은 외부 충격이 있을 경우 과연 버틸 수 있을지 우려해야 할 상황에 직면했다.
 
  이런 까닭에 윤석열(尹錫悅) 정부는 이탈리아를 반면교사로 삼아 지금이라도 재정건전성을 회복하는 밑그림을 짜야 한다. 정부 출범 이래 “50조원” “100조원” 운운하며 각계각층에 보상금·지원금을 뿌린 행태를 지양하고, 건전한 재정운용을 위해 ‘재정준칙’을 도입해야 한다. 재정준칙은 국가채무 등 재정지표가 일정 수준을 넘지 않도록 정하는 국가 재정운용 규범을 말한다.
 
  국제통화기금(IMF)에서는 적정 채무비율 상한으로 60%를 제시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기축통화국이 아니므로 보수적으로 상한선을 설정하고 채무 비율을 관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저출산·고령화에 따라 영구지출 성격의 사회보장 비용이 급증할 수밖에 없고, 북한 붕괴 또는 남북통일 등에 대비한 비용 조달 등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보수적인 목표 ▲‘정치권 압력’ 배제 장치 ▲재정준칙 위반 시 제재 ▲재정 운용 견제 위한 독립적인 ‘재정 운용 감시위원회’ 구성 등을 골자로 하는 ‘재정준칙’을 법률로 제정하고 시행해야 할 필요가 있다.
 
 
  총체적 ‘위기’ 직면한 대한민국 경제
 
윤석열 정부가 ‘재정준칙’을 도입, 시행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 국가채무는 2030년에 GDP 대비 70%를 넘고, 2040년에는 100%를 초과할 수 있다. 자료=국회 예산정책처
  국회 예산정책처가 지난 8월 발간한 《2022년~2070년 장기 재정전망》에 따르면 재정준칙 없이 기존의 재정 정책과 제도를 계속 유지할 경우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2030년에 72.1%, 2040년에 100.7%를 기록할 전망이다. 이어서 2050년에는 130%, 2060년에는 161%, 2070년에는 192.6%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고려하면, 윤석열 정부가 조속히 ‘재정준칙’을 법제화하지 않으면 재정건전성을 확보할 수 있는 ‘골든 타임’을 놓치게 되는 셈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우리나라는 현재 6개월(4~9월) 연속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는 중이다.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 철강, 자동차, 무선통신기기 등의 수출이 전년 대비 20~30% 감소했기 때문이다. 전반적인 수출 실적 역시 20% 줄었다. 이른바 ‘수출로 먹고사는’ 대외의존형 또는 개방형 경제구조인 나라의 수출이 대폭 감소했다는 점은 예삿일이 아니다. 수입이 11.3% 감소했는데도 올해 무역적자 누적액(1~9월)은 이미 300억 달러(43조원)를 초과했다. 경상수지 역시 ‘마이너스’다. 경상수지 적자는 8월 말 현재 30억5000만 달러다. 통계청 통계에 따르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한 해는 세계 금융위기가 촉발된 2008년뿐이다. 이를 감안하면, 우리는 사실상 이미 ‘위기’에 진입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정치권이 경쟁하듯이 재정 여력을 훼손하는 ‘선심성 복지’를 내놓는다면, 판돈 올리듯 “○조원 더!”를 외치는 정치권의 무책임한 포퓰리즘을 경계하지 않을 경우 우리는 과연 어떤 ‘내일’을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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