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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대중문화 속으로

‘정치영화’ 된 근현대사 관련 영화들

글 :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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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헌트〉, 5·18 ‘사상자 3000명’ ‘헬기 사격’ 언급
⊙ 〈화려한 휴가〉 통해 ‘공수부대 집단 발포설’ 되풀이돼
⊙ 안기부 미화(?) 논란 〈설강화〉에 대해서는 ‘역사왜곡’이라고 비판… 〈화려한 휴가〉 〈택시운전사〉에 대해선 ‘예술적 표현의 자유’ 주장
⊙ 미국에서도 좌파 성향 영화에는 관대, 우파 성향 영화는 비난

이문원
《뉴시스이코노미》 편집장, 《미디어워치》 편집장, 국회 한류연구회 자문위원, KBS 시청자위원, KBS2 TV 〈연예가중계〉 자문위원, 제35회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역임 / 저서 《언론의 저주를 깨다》(공저), 《기업가정신》(공저), 《억지와 위선》(공저) 등
〈헌트〉
  “18일부터 시작된 진압군의 발포가 열흘 동안 3000명이 넘는 사상자를 발생시켰고, 21일에는 헬기 사격까지 있었소. 가장 어린 나이가 11세. 흉부를 관통한 총탄이 그 자리에서 그 아이를 사망시켰소. 국민을 학살한 살인자를 인정하고 조국을 등지고 살라니… 매우 모욕적이군요.”
 
  신작 한국 영화 〈헌트〉 속 대사다. 개봉 20여 일 만인 8월 31일 현재까지 388만여 관객을 동원하고 있는 히트작이다. 그리고 ‘팩션(faction)’ 형식 영화다.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의 합성어로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상상력을 덧붙여 가상의 새로운 얘기를 재창조해내는 형식. 이 같은 형식을 통해 〈헌트〉는 제5공화국 시절인 1980년대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국가안전기획부(이하 안기부) 소속 두 요원이 조직 내 숨어든 북한 간첩을 색출하기 위해 서로를 의심하며 혈투를 벌인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위 대사는, 이미 알 수 있겠지만, 1980년의 광주(光州) 5·18에 대한 묘사다. 그런데 어딘지 위화감(違和感)이 느껴진다. 많이들 “3000명이 넘는 사상자”라는 대목을 지적하고 있지만, 사망자와 부상자를 모두 아우르는 사상자(死傷者) 기준으로는 틀린 얘기가 아니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5·18 민간인 사상자는 사망 165명, 부상 후유증 사망 376명, 행방불명 76명, 부상 3139명 등이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그 뒤 “헬기 사격” 부분이다.
 
  이 부분은 엄밀히 지금까지도 논란의 여지가 있는 대목이다. 해당 건은 2017년 광주광역시의 의뢰를 받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금남로에 위치한 옛 전일빌딩 10층의 탄흔을 조사·감정해 헬기 기총소사에 인한 것이라는 분석 결과를 발표하면서 크게 점화(點火)됐다. 같은 해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출범한 국방부 5·18특별조사위에서도 이를 기반으로 “1980년 6월 광주에서 계엄군의 헬기 사격으로 양민이 학살됐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헬기 사격 논란
 
  그런데 이 같은 내용은 이후 수없이 반박되며 여전히 논란거리로 남아 있다. 당장 문재인 정권 당시인 2019년,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사자(死者)명예훼손 재판의 1심 판결문에서도 ‘시민을 향한 조준사격’이 아닌 ‘위협사격’에 한해서만 헬기 사격이 있었다고 후퇴한 바 있다. 상황을 “국군에 의한 국민 학살”로 규정했던 국방부 5·18특별조사위 보고서가 사실상 부정된 셈이다. 물론 거기서 그치는 것도 아니다. 《월간조선》 2020년 12월호 기사 ‘“헬기에 탄 군인이 밤중에 창을 열고 M16을 쐈다”는 주장이 도전받다!’를 보자.
 
  〈증인신문에서 국과수 감정관은 헬기 사격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 과정에 대한 객관적·논리적 설명을 요구받았는데 “자신이 쏴봐서 안다”고 답했다. 탄흔이라고 판정한 근거에 대해서도 “전일빌딩 내 흔적이 원뿔형 또는 원추형 함몰 형태를 이루고 있는데,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탄흔도 그와 같은 함몰 형태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탄흔이라고 판정하게 되었다”고 증언했다. 한편으로는 “콘크리트 벽이나 테라조 바닥에 못을 박는 등 뾰족한 물체로 충격을 가할 경우에도 탄흔과 흡사한 흔적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함몰 흔적을 모두 탄흔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증언도 했다.
 

  그는 ‘같은 조건의 물체에 사격을 실시해서 그 흔적을 전일빌딩에서 발견한 흔적과 비교해본 적’이 없고, ‘전일빌딩에서 발견한 흔적을 탄흔도감과 비교해본 적’도 없으며, ‘실제로 탄흔으로 밝혀진 흔적의 그림이나 사진을 전일빌딩에서 발견한 흔적’과 비교해본 적도 없다. ‘전일빌딩 흔적에서 화약 성분을 검출하는 등 화학적 조사’를 실시해본 적이 없으며, ‘탄흔의 생성일자를 감정’한 적이 없고, 전일빌딩 탄흔이 5·18 당시 생겼다고 판단할 과학적 근거도 없지만 자신의 주관적 “경험에 비추어” 탄흔이라고 판정했다고 증언한다. 국과수에서 객관적·실험적 조사는 실시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팩션, ‘팩트’인가 ‘픽션’인가
 
  이 밖에도 국방부 5·18특별조사위 보고서에 대한 ‘합리적인’ 문제 제기는 무수히 많다. ‘헬기 사격’은 최소한도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있는’ 대목인 게 맞다. 그럼에도 〈헌트〉는 당시 누구보다 국내 사실관계를 잘 알고 있어야 할 안기부 국내 파트 차장 캐릭터의 입을 빌려 헬기 사격 부분을 그대로 인정하고 있다. 팩션이라는 복잡한 틀을 입혀놨다고 해도 두리뭉실 넘어갈 수 없는, 상당히 논쟁적인 지점을 건드리고 있는 셈이다. 최소 팩션 형식 내에서라도 해당 내용은 그럼 ‘팩트’ 영역인가 ‘픽션’ 영역인가, 명쾌한 대답은 나오지 않고 있고, 아마 앞으로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사실 〈헌트〉 정도면 그나마 정치 상황을 다룬 영화들이 흔히 빠지는 편파성(偏頗性) 부분을 나름 피해나가려 애쓴 영화다. 비록 ‘기계적 균형’에 가까울지언정 말이다. 당시 안기부의 고문과 간첩 조작 등에 대해 언급하면서도, 동시에 북한은 전면전(全面戰)을 획책(劃策)하며 대한민국 각계각층에 고정간첩을 침투시키는 명확한 주적(主敵)으로 위치시킨다. 안기부를 무능하고 부패한 조직으로 묘사하지만, 당시 운동권 대학생들 역시 그저 술이나 마시고 난동을 부리는 철부지들처럼 묘사하기도 한다. 일종의 양비론(兩非論)적인 균형 감각이다.
 
  이처럼 그나마 예민하게 신경 써 논란을 피해나가려던 영화조차 ‘헬기 사격’ 같은 논쟁 지점은 미처 피해나가지 못하는데, 그보다 둔감하거나 애초 균형에 대한 생각조차 없는 영화들은 당연히 훨씬 심각한 사실왜곡 오류들을 범한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에 따른 논란이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역사 사건은, 〈헌트〉에서도 짚어지는, 1980년 광주 5·18이다.
 
 
  영화 통해 되풀이되는 ‘집단 발포설’
 
〈화려한 휴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2007년 영화 〈화려한 휴가〉다. 2007년 7월 개봉해 686만 관객을 동원하며 12월의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긴장감을 자아냈던 5·18 소재 영화다. 그리고 5·18 소재로서 가장 사실왜곡 논란이 크게 인 영화이기도 하다. 그 충격이 어느 수준이었냐면, 2013년 서적 《역사로서의 5·18》을 출간한 재미(在美) 현대사연구가인 김대령이 책 첫머리에 “본서의 집필 동기는 영화 〈화려한 휴가〉 관람 소감을 표현할 필요와 5·18 기록물의 세계 기록유산 등재에 대한 반응”이라 밝힐 정도였다.
 
  이 같은 〈화려한 휴가〉 문제에 대해 《월간조선》 2007년 10월호 기사 ‘조갑제의 심층취재/ 당시 공수대대장과 함께 본 영화 〈화려한 휴가〉의 〈화려한 조작〉’은 영화 속 한 장면에 집중해 상황을 설명한다.
 
  〈첫째, 영화에서는 공수부대가 누군가로부터 사격 명령을 받고 탄창을 M-16 소총에 끼운 뒤 무릎 쏴 자세를 취한 다음 애국가를 부르는 시민들을 향하여 아무런 경고도 없이 일제히 사격한다. 그날 전남도청 앞에서는 그런 사격도, 그런 사격 명령을 내린 장교도 없었다. 광주사태에 대해서 가장 정밀하게 조사했던 1995년의 서울지검과 국방부 검찰부도 “사격 명령은 없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둘째, 공수부대의 발포는, “시위대가 탈취한 장갑차를 몰고 군인들을 향하여 돌진해 공수부대원을 깔아 사망하게 한 사건을 계기로 자위적, 그리고 조건반사적 대응 차원에서 이뤄졌다”고 검찰은 밝히고 있다. 이때도 공수부대 중대장들에게만 15발씩 지급되고 일반 사병들에겐 실탄이 거의 지급되지 않은 상태였다.
 
  셋째, 애국가를 부르는 평화적 시위대를 향해 공수부대가 집단 발포하는 장면은 공수부대가 대한민국에 대해서 발포하는 듯한 상징성을 풍긴다. 영화 관람자는 공수부대가 반란군이라는 인상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의 집단 발포 장면은 2017년 또 다른 5·18 소재 영화 〈택시운전사〉에서도 “애국가를 부르고 있는데 군인들이 다짜고짜 발포했다”는 대사 등을 통해 또다시 반복된다. 이쯤 되면 논란을 피해나가려는 생각 자체가 아예 없었다고 봐야 한다는 얘기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논리
 
〈국가부도의 날〉
  물론 5·18 관련으로만 사실왜곡 논란이 벌어지는 건 아니다. 바탕이 되는 역사적 배경이 근현대사 사건들로 넘어올수록 사실왜곡 논란은 한층 빈번해진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상황을 다룬 2018년 영화 〈국가부도의 날〉도 그중 하나다. 이 영화는 실제 IMF 외환위기로 이어지는 상황과 그 이후의 여파(餘波) 등에 대해 ‘사실상 모든 면에서 왜곡’이라는 극단적 오명(汚名)을 얻고 있다.
 
  예컨대 영화에서 외환위기 발생 일주일 전까지 정부가 위기 상황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설정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 1997년 외환위기 가능성을 최초로 언급한 보고서는 1997년 3월 26일 한국은행 정규영 국제부장 보고서였고, 대통령비서실 측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상황을 인지했다고 밝힌 1997년 11월 중순 전까지 한국은행은 청와대, 총리실, 재정경제원 등에 무려 23차례에 걸쳐 외환사정을 보고해 대책을 건의했었다. 한편 영화 속에서 한국은행은 IMF 구제금융 신청을 반대했지만 정부가 강행했다는 묘사, IMF 탓에 노동유연화와 자본시장 개방이 이뤄졌다는 설명 등도 아예 왜곡이거나 실제와는 거리가 멀다.
 
  심지어 영화는 미국 재무부 차관이 구제금융 협상 장소인 한 호텔에 있었다는 이유로 IMF 협상 자체가 미국의 음모라는 식의 음모론까지 내비친다. IMF는 어디까지나 이익단체이며, IMF의 최대주주는 2017년 기준으로 지분율 15.2%의 미국이므로 미국 관료가 IMF 협상장에 있는 건 당연한 일인데도 말이다. 이쯤 되면 사실상 막 나가자는 얘기다. 그런데 이처럼 막 나가자는 왜곡들은 한국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너무나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같은 사실왜곡 논란이 일 때마다 콘텐츠 제작자 측에서 늘 내미는 똑같은 해명이 있다. “영화는 영화일 뿐”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실제 역사를 다뤘더라도 다큐멘터리가 아닌 이상 그를 예술적으로 소화하는 과정에서 표현의 자유는 충분히 주어져야 하며, 소비자들 역시 그런 사고에 근거해 콘텐츠를 소비하는 게 문화시민으로서 보다 성숙한 태도라는 논리.
 
 
  ‘안기부 미화(?)’ 논란 〈설강화〉
 
  물론 그런 사고(思考)도 있을 수 있다. 특히 역사 문제를 놓고서 교육의 영역과 문화의 영역을 혼동해선 안 된다는 주장은 상당 부분 설득력을 지니기도 한다. 문제는 그렇게 표현의 자유를 추구한다는 태도가 모든 콘텐츠에 똑같이 적용되는 건 또 아니라는 점이다.
 
  가까운 예로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방영됐던 JTBC 드라마 〈설강화〉 건이 있다. 1987년을 배경으로 대학생 여주인공이 북한 간첩인 남주인공을 운동권 학생으로 착각해 숨겨주고 치료까지 해준다는 설정이 등장, 거센 비판에 휩싸였었다.
 
  이 같은 설정만으로도 1980년대에 간첩 색출(索出)을 빌미로 벌인 정권의 운동권 수사와 탄압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복잡한 우려에서다. 나아가 안기부 요원들이 간첩 수사를 빌미로 벌이는 고문 등 각종 악행은 거의 묘사되지 않고 간첩만 열심히 찾는 원칙주의자들 정도로 묘사됐다는 점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됐다.
 
  이에 심상정 당시 정의당 대선 후보까지 나서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운동권에 잠입한 간첩, 정의로운 안기부, 시대적 고민 없는 대학생, 마피아 대부처럼 묘사되는 유사 전두환이 등장하는 드라마에 문제의식을 못 느낀다면 오히려 문제”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 그리고 그 분위기를 적극 반영해 비판을 가한 언론미디어들의 공세(攻勢)에 〈설강화〉에 예정된 협찬을 취소하는 기업들은 물론 드라마 앞뒤로 자신들 상품의 광고 노출을 중단시키는 기업들까지 줄지어 속출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광고를 계속 노출시키는 기업들에는 그를 비난하는 협박 메일들이 쏟아졌다. ‘역사를 지키는 사람들’ 이름으로 JTBC 사옥이 위치한 서울 상암동과 광화문, 종로, 강남 일대에서 트럭 시위도 벌어졌다. 결국 〈설강화〉는 시청률 2~3%대를 맴도는 저조한 성적으로 막을 내렸다.
 
 
  ‘그때그때 다른’ 잣대
 
  한편 2017년에는 영화 〈군함도〉 사건이 있었다. 일제 시대 당시 군함도로 끌려온 조선인들 얘기를 다루면서, 이들의 참상을 낱낱이 다루기보다 조선인들 내부 갈등이나 일본인과 조선인 지도자 사이 음모 묘사 등에 치중(置重)했다는 이유에서다. 또 영화 속 군함도의 조선인들이 담배와 술, 과일을 먹는 모습이나 조선인들끼리 집단 회의나 토론이 가능했다는 묘사 등도 마찬가지로 비판받았다. 영화가 조선인들의 군함도 탈출기를 픽션으로 가미해 클라이맥스를 조성한 점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이 같은 비판의 폭격을 받은 〈군함도〉는 손익분기점인 800만 관객 선에 한참 못 미치는 659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막을 내렸다. 개봉 당일 아침 기준 예매 관객 수가 57만 명으로 한국 영화 사상 역대 최고 예매량을 기록하는 등 초반 열기는 엄청났지만, 이후 벌어진 언론미디어의 네거티브 포화(砲火) 속에서 뒷심이 받쳐주질 않았던 탓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위 〈설강화〉와 〈군함도〉에 대해 역사왜곡 관련으로 강한 비판을 가한 언론미디어와 평론가 중 상당수는 〈화려한 휴가〉나 〈택시운전사〉 〈국가부도의 날〉 등의 역사왜곡 논란에 대해선 예의 ‘예술적 표현의 자유’를 부르짖으며 강한 방어논리를 펼쳤다는 점이다. 지금 당장도 포털사이트의 뉴스 검색을 통해 쉽게 확인해볼 수 있는 부분이다. 분명한 원칙의 고수(固守) 없이 태도가 ‘그때그때 다르다’는 것이다.
 
 
  ‘대중의 동조’
 
〈택시운전사〉
  그런데 이 같은 문제를 거론하는 언론미디어나 평자는 거의 없다. 관련 뉴스들을 검색해봐도 《씨네21》 2017년 8월 22일 자 영화평론가 김영진의 칼럼 ‘〈택시운전사〉의 역사적 허구가 동조된 이유’가 거의 유일하다. 해당 칼럼은 “〈택시운전사〉는 〈군함도〉와 달리 압도적인 절찬을 받았으며 〈군함도〉가 받은 악의적 역사왜곡에 관한 비판도 가볍게 피해나갔다. 이를테면 〈군함도〉의 대탈출 장면이 비난을 받은 것과 달리 이 영화에서의 택시 추격전 클라이맥스는 허구가 분명한데도 아무런 저항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면서 “그렇다면 그건 역사에 대한 허구의 창작이더라도 관객의 동조를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그럼 그렇게 콘텐츠 따라 다르게 진행되는 대중의 동조(同調) 원인은 또 뭘까. 위 칼럼 설명에선 비켜가지만, 결국 대중의 동조란 수십 년 걸쳐 ‘문화전쟁’을 주도해 ‘의견의 시장’을 장악해온 정치 세력 측 메시지들과 사회 전반의 언더도그마에 지배되기 마련이란 점을 짚을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각종 사실왜곡 논란을 일으키는 역사영화들, 그중에서도 특히 논란이 치열해지는 근현대사 영화들은 실질적으로 ‘역사영화’가 아니라 ‘정치(政治)영화’로서 기능하고 있다고 보는 게 옳다. 모든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영화의 ‘역사왜곡’에 너그럽던 미국도…
 
〈리차드 쥬얼〉
  이제 해외를 돌아보자. 어찌 됐건 예술적 표현의 자유를 ‘필요할 때’나마 옹호하곤 하는 측에서 저 ‘필요할 때’ 가장 자주 들고 오는 사례, 세계 영화의 메카 할리우드가 위치한 미국의 상황은 과연 어떨까.
 
  미국은 확실히 대중문화 콘텐츠 속 역사왜곡에 상당 부분 너그러운 편이다. 논란이 이는 경우도 거의 없고, 최소한도 그런 문제 탓에 부정적 여론이 크게 일어 흥행에 찬물이 끼얹어지는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역사왜곡 문제 탓에 콘텐츠에 대한 비평적 평가가 떨어지는 경우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아카데미상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들 중에도 〈아마데우스〉나 〈브레이브하트〉 〈아르고〉 등 수많은 사실왜곡 사례들이 존재하고, 작품상 후보에 지명된 영화들까지 따지면 〈엘리자베스〉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등등 끝도 없다. 그리고 이들은 수상은 물론 후보 지명만으로도 큰 홍보가 되는 아카데미상 효과 덕택에 대부분 흥행에도 성공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변화가 감지(感知)된다. ‘그러던 미국’도 이제는 점차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엄밀히, 시간이 지날수록 사실상 한국과 비슷한 분위기가 돼가고 있다. 다시 말해, 좌파 성향 콘텐츠는 지독한 사실왜곡 사례가 발생해도 민주당 좌파 세력이 장악한 미국 대중문화계와 대중문화 미디어들로부터 철저히 옹호되지만, 우파 성향 콘텐츠는 엄청난 비난을 뒤집어쓰고 비평과 흥행 모두 망쳐버리는 일이 잦아지는 분위기다.
 
  근래에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2019년 영화 〈리차드 쥬얼〉 건이 있었다. 1996년 애틀랜타의 한 공원에서 벌어진 폭탄 테러 사건 당시 폭발물을 사전에 발견해 시민들을 대피시킴으로써 인명 피해를 줄인 한 시민영웅의 실화를 다뤘다. 그러나 사건 사흘 뒤 자극적인 뉴스를 좇는 한 언론에서 테러 사건은 해당 시민영웅의 자작극(自作劇)이라는 의혹을 제기하며 한순간에 영웅에서 테러범으로 몰아버린다.
 
  그리고 이 실화를 다룬 〈리차드 쥬얼〉은 이내 미국 언론미디어로부터의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악의적 오보(誤報)를 낸 여기자가 정보를 얻기 위해 FBI 요원과 소위 ‘섹스 거래’를 한다는 영화 속 설정은 아무런 근거도 없는 허구라는 이유에서다. 엄밀히 ‘그 정도 왜곡’은 각종 전기 영화에서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던 게 기존 할리우드 풍경이었는데도 말이다.
 

  이처럼 이례적 광경이 펼쳐진 데 대해 미국 인터넷 커뮤니티들에선 일단 감독이 유명한 우파 영화인이라는 점, 영화 속 대사를 통해 우파 리버테리언(libertarian) 세계관이 읊어진다는 점, 무엇보다 영화 주제인 광포한 매스미디어 비판이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내세우던 ‘가짜뉴스와의 전쟁’ 기조(基調)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점 등 탓에 할리우드 민주당 좌파 세력에 밉보여 꼬투리를 잡힌 것이라 해석한다.
 
  물론 명확한 진위(眞僞)야 알 수 없겠지만, 바로 전년도에 조지 W. 부시 정권 부통령 딕 체니를 풍자한 영화 〈바이스〉가 수많은 사실왜곡 문제에도 비평적 찬사를 받고 아카데미상 8개 부문 후보에 올라 그 홍보 효과로 흥행에서도 호조를 보인 상황과 너무나도 다른 풍경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상황이 여기까지 이르니 이제 서구 언론미디어들도 조금씩 태도를 바꾸고 있다. 아직 미국까지 분위기가 전달되진 않았지만, 미국 언론 논조(論調)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 영국 《가디언》지(誌)만 해도 2019년 1월 26일 자로 칼럼 ‘〈바이스〉 등 가짜 역사 영화들과 비문명적 전쟁은 진실에 대한 새로운 위협’을 내보내 사실왜곡 대중문화 콘텐츠의 위험성을 우려하는 등 마냥 예술적 표현의 자유를 부르짖던 과거와는 사뭇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과연 한국까지 온전히 도달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안기부원’을 ‘인간’으로 그린 게 문제?
 
  끝으로, 특별한 정치적 목적이 없더라도 대중문화 콘텐츠에선 꾸준히 역사왜곡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논리에 대해서도 짚어보자. 앞선 《월간조선》 2007년 10월호 기사는 〈화려한 휴가〉에 대해 “이 영화에선 공수부대원들이 야수 같지도 않고 기계처럼 보인다. 야수는 감정이라도 있는데 이 영화에 나오는 공수부대원들에게선 인간적 감정 반응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감상을 남겼다. 그러고 보면 〈설강화〉 속 안기부 요원들 묘사를 놓고 일부 대중과 언론미디어를 ‘가장 화나게 했던’ 대목은 한 언론을 통해 소개된 〈설강화〉 제작 관계자의 변(辯), 즉 “안기부 사람들도 보통의 사람이라는 인식을 갖고 만든 작품”이라는 설명이었다.
 
  흔히 이런 부분을 상업 문화콘텐츠 속성이자 한계라고들 지적한다. 상업 문화콘텐츠 등장인물들은 명확한 선(善)과 악(惡)으로 나뉘어야 대중의 호응을 얻을 수 있고, 이를 어길 시 오히려 불쾌감을 자아내게 된다는 속설에 근거한다. 그러니 살아 숨 쉬는 인간으로서 입체적이고 다층적인 면면(面面) 자체를 저버린 인물 묘사, 이게 과연 ‘인간’을 묘사한 건 맞는지조차 의심스러워질 정도로 순수한 악(惡)과 순수한 선(善)으로서의 도식(圖式)만 남겨져야 한다는 것. 실존인물이나 실제 상황에 대한 대중문화 콘텐츠의 왜곡은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필연적으로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善惡 대립이 뚜렷해야 성공한다?
 
  언뜻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그와는 또 다른 예들을 돌아보면 그리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 같은 속설(俗說)도 아니다. 가령 전 세계적으로 대히트한 1957년 영화 〈콰이강의 다리〉는 어떤가 말이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이 남방작전의 일환으로 버마(현 미얀마)에 다리를 놓는 과정에서, 다리 건설에 동원된 영국군 포로 수장 니콜슨 중령과 포로수용소에서 탈출한 뒤 다리를 폭파하기 위해 같은 장소에 재투입된 미(美) 해군 수병 쉬어즈는 각기 다른 철학으로 서로 맞부딪힌다. 다리 건설을 지키려는 쪽과 다리를 폭파하려는 쪽으로 ‘의지의 대립’이 이뤄진다. 어느 쪽도 순수한 악과 순수한 선으로 그려지진 않는다. 더 가깝게는, ‘악인(惡人) 없는 비극’을 담아 화제를 모았던, 한국 영화 사상 국제적으로 가장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둔 영화 〈기생충〉 사례도 존재한다. 순수한 악도 순수한 선도 없는 설정으로 국내에서도 1031만 관객을 모으며 ‘국민영화’ 자리에 올랐다.
 
  결국 ‘입체적 인물들은 평론가들이나 좋아할 뿐 상업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선 오히려 그를 지양(止揚)해야 한다’는 논리는 너무나도 반박 사례가 많아 사실상 하나의 방침으로서 통용(通用)되기도 어려운 수준이라는 얘기다. 혹 그런 고정관념 탓에 당연한 듯 사실왜곡 콘텐츠를 기획하려는 측이라면 한 번쯤 이 같은 측면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다큐멘터리 장르마저 선과 악의 대립을 뚜렷이 묘사하려 슬금슬금 사실왜곡에 나서는 작금(昨今)의 현실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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