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陰地의 戰士들

엄상익 변호사가 경험한 정보기관 〈18〉 목숨 걸고 쓴 박철언 ‘非理 보고서’

글 :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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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삼 ‘대항마’ 박태준과 박철언의 약점
⊙ “박철언 장관이 노발대발하며 당신 자르라고…”
⊙ 최태민과 박근혜 만나게 해준 어느 판사 이야기

嚴相益
1954년생. 경기고·고려대 법대 졸업 / 사법고시 24회, 사법연수원 15기 수료 / 국가안전기획부 정책연구관, 법무법인 ‘정현’ 변호사 역임. 現 엄상익법률사무소 변호사
1992년 대선을 앞두고 김영삼의 대항마로 떠오른 민정계 차기 주자 박태준(왼쪽)과 박철언. 사진=조선DB
  3당 합당으로 ‘거대 여당’ 민주자유당이 탄생했다. 정보기관은 3당 합당의 본질을 노태우 대통령이 집권을 미끼로 김영삼에게 낚싯바늘을 던진 것이라고 봤다.
 
  김영삼은 다음 번 대선의 판세가 불리하다고 생각해 낚싯바늘을 물었다. 김영삼은 대통령이 되고 싶었고, 노태우 대통령은 내각제 개헌을 통해 정치적 지분(持分)을 유지하면서 임기 후 안전을 도모하고 싶은 것 같았다.
 

  노태우 대통령은 ‘전두환의 사당(私黨)’이라는 인식으로 민정계를 믿지 않는 것 같았다. 대통령 후보 시절 박철언을 시켜 ‘월계수회’를 만들고, 동생 노재우를 시켜 ‘태림회’를 만들었다. 태림회는 노재우가 대통령 선거를 전후해 만든 사조직이었다.
 
 
  “김영삼은 안 돼” vs “노태우, 김영삼 이길 수 없어”
 
1987년 9월 2일,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와 노태우 민주정의당 총재가 회담을 갖고 있다. 사진=조선DB
  나는 박철언과 김영삼의 대결이 궁금했다. 정국 상황을 살펴 의견서를 올리는 것도 당시 내 업무 중 하나였다. 그 무렵 남산체육관에 가서 김영삼을 멀리서 관찰했다. 그가 오랫동안 다니며 운동하는 곳이었다. 민정계의 한 중진 의원을 만나 얘기를 들어보았다.
 
  “김영삼은 안 돼요. 앞뒤 말이 맞지 않고 신뢰성이 없어 함께하지 못하겠다는 게 우리 민정계 의원들의 여론이죠. 김영삼은 김종필과도 불편한 사이예요. 김종필은 내각제 개헌을 전제로 합당했는데 그게 아니니까 이제 김영삼에게 협조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거죠.”
 
  그 무렵 내각제 개헌 합의 각서가 폭로됐다. 김영삼은 그 각서를 박철언의 공작에 의한 TK(대구·경북)의 영구집권 음모로 거꾸로 몰아붙였다. 그 의원이 말을 계속했다.
 
  “지금 당내에서 실질적인 싸움은 노 대통령과 김영삼이 하는 거죠. 노 대통령은 3당 합당 시 김영삼을 대통령 후보로 추대할 듯한 태도를 취하다가 적절한 시기에 차버릴 속셈을 가지고 있었을 거예요. 박철언을 내세워 김영삼을 꺾는 거였죠. 김영삼은 이제 막가는 것 같아요. 노 대통령과 만날 때 예의를 지키지 않는다고 그래요. 3당 합당 시 사진 찍을 때 노 대통령의 부하같이 보인 데 대해 감정도 있죠. 김영삼은 신문 사진에 특히 신경 쓰는 사람이니까요.
 
  요즈음 노태우 대통령이 김영삼에게 밀리고 있어요. 민정계도 노 대통령에 대해 회의적이에요. 노태우 대통령은 사적인 모임이나 의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도 누가 써준 메모지를 보고 읽어 분위기를 경직시키고 있어요. 그런 자료가 없으면 어떤 정치적 식견도 나타내지 못하고 공자님 말씀만 하는 겁니다. 우리 민정계의 생각은 김영삼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 나와도 경쟁 상대인 김대중에게 이길 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 박태준이나 이종찬을 차기 대통령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김영삼의 자질 부족 얘기도 떠돌고 있었다. 정보조직의 대북(對北) 전문가가 김영삼에게 가서 브리핑을 하고 돌아온 후 내게 “머릿속에 입력을 시키려면 몇 번이나 반복해서 보고해야 하는지 몰라. 나 원 참”이라고 불평 비슷한 말을 했다. 나는 김영삼의 측근인 정치부 기자를 만나 반론을 들어보았다.
 
  “김영삼의 자질 부족을 떠들고 있지만 천만의 말씀이죠. 김영삼이 여태까지 버텨온 건 지속적인 언론 관리와 언론의 배후 지원 덕분입니다. 김영삼을 보면 어떤 문제가 생겼을 경우, 새벽부터 관련되는 정치부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진지하게 그 문제를 의논하면서 대책을 물어요. 수십 년에 걸친 김영삼의 언론 관리는 결국 기자들이 뒤통수칠 수 없는 그런 인간관계의 두꺼운 벽을 형성해놓은 거죠. 김영삼이 노 대통령과 싸우는 행동 이면(裏面)에는 언론과의 협조가 있어요. 언론과 비밀리에 상의해 그들의 제안을 따른 겁니다. 소위 메이저 언론이 김영삼을 돕는 건 자연스러운 거죠. 김영삼을 취재하는 기자들은 기자가 아니라, 이미 그와 뜻을 같이하는 투사(鬪士)들입니다. 김영삼과 오랫동안 막역한 관계로 있던 각 신문사의 부장·차장들과의 인간적인 벽을 노 대통령이 깨기는 불가능할걸요. 노 대통령은 (김영삼을) 이길 수 없어요.”
 
 
  김영삼의 ‘대항마’ 박태준·박철언·이종찬
 
  노태우 대통령의 힘은 계속 빠지고 있었다. 3당 합당 직후 실시한 14대 총선(1992년)에서 노 대통령이 직접 불러 공천을 보장한 중진(重鎭)이 지역구 활동을 하다가 공천 탈락을 통보받기도 했다. 야당도 권력 누수에 시달리는 노태우 대통령을 제대로 대접해줄 리 만무였다. 김대중 총재 측근이 내게 해준 말이다.
 
  “김대중 총재는 노태우 대통령을 불신하죠. 노 대통령을 만날 때마다 일단 국가원수로 최대한 예의를 취했는데 만남 이후엔 항상 뒤통수를 얻어맞았다는 거죠. 이제는 어떤 일이 있어도 노태우 대통령을 믿지 않겠다는 겁니다. 내각제 개헌 문제도 본질은 신뢰성이라고 합니다. 내각제 각서 공개 파문도 경위야 어떻든 배신이죠. 지금 노 대통령은 퇴임 후 안전을 위해 여러 복안(腹案)을 가지고 있지만, 책임을 의식해 누구에게도 구체적인 지시를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참모들도 노 대통령의 의중을 읽고 있지만 누구도 총대를 메려고 하지 않습니다.”
 
  김영삼과 대결할 수 있는 당내 후보가 거론되고 있었다. 박태준, 박철언, 이종찬이 그 대상이었다. 박태준이 대통령 후보로 유력했다. 박태준은 산업화의 상징이었다. 화려한 인맥과 포항제철을 배경으로 하는 정치조직도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철언은 월계수회를 기반으로, 세대교체론을 무기로 삼았다. 그는 노태우를 대통령으로 만든 사람이었다. 한소(韓蘇) 수교의 견인차 역할과 남북관계 특사, 그리고 한중(韓中) 관계의 막후 역할로 북방(北方) 외교를 성공시킨 공로자였다. 한소정상회담도 그의 공로였다. 그는 구체화된 대안과 적극적인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이종찬과 박태준
 
  이종찬은 ‘정치 1번지’인 서울 종로구에서 내리 3선(選)을 한 인물이다. 활발한 지역 활동으로 국민 사이에 탄탄한 인지도를 쌓은 유망한 대권 주자였다.
 
  그들은 3김(金) 청산을 주장하고 나왔다. 대통령이 공정한 경선을 밀 것인지 아니면 김영삼의 손을 들어줄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 무렵 박태준의 대변인을 하는 고교 선배와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박태준이 정말 당내 경선에서 대권 후보로 나가도 괜찮은지 확인하고 싶어 했다. 박태준이 노태우 대통령을 찾아가 의중을 물었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거꾸로 그의 당선 가능성을 물었다고 한다. “대통령 후보로 나서는 걸 그만둘까요”라고 묻자, 노태우 대통령은 “그러시면 안 되죠” 했다고 한다. 박태준이 “제가 나가도 되는 자유 경선은 맞는 겁니까?”라고 확인하자, 노 대통령은 “자유 경선이죠” 했다는 것이다.
 
  박태준 측은 극히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박태준이 젊은 시절 저지른 모종의 비리를 노 대통령이 알고 있다는 소리가 들렸다. 박태준이 대권 경쟁을 포기하지 않으면 대통령이 직접 그 무기를 사용해 주저앉힐 것이라는 소리도 들렸다. 그즈음 나와 친하게 된 안전기획부 수사국의 한 간부급 요원을 만났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그가 이런 정보를 흘려주었다.
 
  “수사국에서는 은밀하게 박철언의 비리를 조사하고 있어요. 금전(金錢) 문제도 있고 여자 문제도 있는 것 같아요. 상당히 쌓여가는 것 같던데.”
 
  박철언이 만든 월계수회가 해체될 것이라는 말이 돌고 있었다.
 
  “그 내용을 내게 좀 더 상세히 알려줄 수 있어요?”
 
  박철언의 비리가 조사되고 있다는 건 그가 무너지기 시작한다는 징조일 수 있었다. 수사국 요원이 내게 박철언의 비리 자료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려주었다. 나는 수사국 요원이 전해준 자료 중 몇 가지를 확인해보았다. 근거가 있는 것 같았다. 터무니없는 모략(謀略)은 아니었다. 노 대통령은 겉으로는 공정한 경선을 표방하고 있지만 정보기관의 물밑 움직임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박 장관이 자네를 당장 잘라버리라고…”
 
  나는 책상 위에 원고지를 놓고 자리에 앉았다. 박철언 장관에게 위험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직원을 시켜 타이프를 치면 비밀이 누설될 우려가 있었다. 육필(肉筆)로 쓰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굳이 ‘이럴 필요가 있을까’ 또한 잠시 생각해보았다. 그는 직접적인 상관(上官)도 아니었다. 양심에 대고 다시 물어보았다. 당 태종의 《정관정요(貞觀政要)》를 보면 측근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시중에 도는 소리라도 가감 없이 그대로 알려주는 게 바른 도리라고 했다.
 
  나는 펜을 들고 내가 듣고 확인한 사실들을 직접 써 내려갔다. 그렇게 쓴 보고서를 박철언 장관의 심복이라고 알려진 상급자의 책상에 올려놓았다. 그가 보고서 내용을 보고 올릴지 말지 결정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다음 날이었다. 박철언의 심복인 상급자가 나를 불렀다.
 
  “박 장관께서 노발대발하며 자네를 당장 잘라버리라고 하시던데.”
 
  그 말은 해고 통고였다. 나는 그곳에서의 생활이 끝났음을 직감했다. 내가 그에게 되물었다.
 
  “내가 그 보고서를 왜 올렸을 것 같습니까? 목이 잘리려고 그랬겠습니까? 리더는 쓴소리를 즐기고 부하는 직(職)을 걸고 쓴소리를 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순간 그의 표정이 변했다. 그의 검고 어두운 눈동자는 ‘이놈을 어떻게 내보내지?’ 하고 한 단계 더 나아가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표정을 누그러뜨리고 말투도 바꾸며 되물었다.
 
  “자네는 그 보고서 안의 박 장관님에 대한 내용들이 사실이라고 믿나?”
 
  그는 내가 헛소리를 들은 것으로 만들려는 것 같았다. 수사국의 검증을 거친 정보였다. 또 내가 직접 당사자에게 확인한 것도 있었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박 장관님이 자네를 잘라버리라고 한 것은 그런 모략적인 말을 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었으면 자네 선에서 ‘박 장관님은 절대 그럴 분이 아니다’고 해명하고 시정하게 했어야 한다는 취지셨어.”
 
 
  “정치공작 하지 마십시오”
 
  그가 내게 말장난을 한다고 느껴졌다. 나는 그에게 정보 출처까지 말해주지는 않았다. 수사국에서도 몇몇만 다루는 극비사항이었다. 며칠 후 박 장관 심복 위에 있는 책임자가 나를 불렀다. 그의 방으로 갔다.
 
  “자네 박 장관에 관한 여러 사항을 직접 본인에게 보고서로 써서 올렸다면서? 이 사람아, 보고를 해도 그걸 소화시킬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올려야지 자네 마음대로 하면 어떻게 하나? 어쨌든 내가 박 장관에게 자네를 변호하는 얘기를 했어. 어떤 악의(惡意)를 가지고 그런 글을 올릴 사람이 아니라고 말이야.”
 
  묘한 뉘앙스가 담겨 있는 말이었다. 박 장관은 대통령 그릇이 안 된다는 소리 같기도 했다. 그는 김영삼 정권 시절 민정수석 자리에 올랐다.
 
  “내가 자네를 데리고 있었고, 이 조직에 있었으니 제안을 하지. 자네, 부탁할 것 있으면 하게. 내가 들어주지.”
 
  적당히 구슬려 내보내려는 말로도 해석됐다.
 

  “제가 뭘 부탁드려야 하는 거죠?”
 
  내가 되물었다.
 
  “부탁할 내용까지 내가 챙겨서 들어줄 순 없지. 그건 앞으로 생각해보고 말하게.”
 
  “그렇다면 제가 이 자리에서 바로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뭔데?”
 
  “제가 그동안 이 조직에 와서 수많은 정치공작을 봤습니다. 이 정보조직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위치신데, 앞으로는 정치공작을 하지 마십시오. 언젠가는 세상에 알려지게 됩니다. 제가 직접 보고 느낀 것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제가 본 그런 불법은 비밀을 지킬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갑자기 다른 생각이 들었다. 조선 시대에도 임금의 흠을 말하는 불쾌한 상소(上疏)를 왕이 받아들였다. 내게 다른 의도가 있었다면 그런 사실을 외면하면 그만이었다. 민주국가에서 당장 잘릴 만큼 연약한 목이 아니었다.
 
  나는 계약직으로 고용된 변호사가 아니었다. 대통령의 임명장을 받은 고급공무원 자격이었다. 보고서를 올린 사실이 해고 사유도 아니었다. 해고가 되더라도 징계위원회에서 정식 절차를 밟아야 했다. 나는 당분간 사표를 쓰지 않고 버티기로 마음먹었다.
 
 
  박철언의 최후 예고하는 人事
 
1989년 10월 19일 김영삼 민주당, 김종필 공화당, 김대중 평민당 총재가 국회 귀빈식당에서 5공 청산 등 현안 정치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회동했다. 사진=조선DB
  갑자기 정국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노태우 대통령이 월계수회를 해산했다. 박철언의 정치적 기반이 없어진 것이다. 안전기획부의 수뇌부가 바뀌었다. 경호실장이 안전기획부장으로 오고 대통령의 심복이던 사람이 자금을 담당하는 기조실장으로 왔다. 기조실장인 그는 오래전부터 대통령을 ‘형’이라고 부르고 영부인을 ‘형수’라고 하는 인물이었다. 그가 조직의 실세였다. 그 두 사람은 돈에 관련됐다는 소리가 들렸다. 경호실장은 대통령의 비자금을 직접 받아 관리한다는 정보가 재벌들의 입을 통해 오가고 있었다. 기조실장은 안기부가 극비로 운용하는 거액의 특수자금을 장악한 사람이었다.
 
  한 변호사가 박철언 조직의 책임자가 됐다. 이상하게도 그는 박철언이 아닌 대통령의 심복인 기조실장이 추천했다는 소리가 들렸다. 그건 안기부 내 박철언 조직의 마지막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새로 온 안기부장은 틈틈이 청와대 경호실의 간부들을 불러 모종의 비밀회의를 한다는 소리가 비서실에서 흘러나왔다. 아마도 대통령의 자금관리에 대해 의논하는 것 같다는 게 주변의 추측이었다.
 
  박철언 조직의 새로운 책임자로 온 사람은 안면이 있는 고교 선배였다. 판사 출신인 그가 재판장을 할 때 변호사로 법정에서 그를 보았다. 변호사들은 판사들의 인품에 대해 예민하게 파악했다. 밥벌이를 위해 알아두어야 하는 사항이기 때문이다.
 
  30대 젊은 시절 그는 판사 중에서도 앞서가는 최고의 엘리트였다. 1986년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조직폭력배가 벌인 유혈극(流血劇) ‘서진 룸살롱 사건’ 재판을 맡은 판사였다.
 
  박정희 대통령을 죽인 김재규 재판이 군법회의에서 열릴 때였다. 행정장교 출신의 군판사들이 재판 절차에서 노련한 인권 변호사들에게 끌려다녔다. 실력 부족이었다.
 
  신군부는 판사 중 가장 우수하다는 그에게 재판 절차에 대해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이미 사형이 예상되어 있는 재판이었다. 그는 사양했지만 시대 흐름은 그의 인생 궤도를 수정하게 했다.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자 그는 민정비서관으로 차출됐다. 전두환은 뛰어난 그를 신임했다. 그를 민정수석으로 활용하려 했지만 군 출신들의 반대로 뜻을 굽혔다. 전두환은 그를 정치권에서 키우려고 했다. 그는 사양하고 고향인 법원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때 법원에서 그를 보았다. 그 시절에는 판사실을 개방했다. 변호사가 판사를 찾아가 부탁하지 않으면 무능한 변호사로 찍히던 시절이다. 수많은 변호사의 비굴한 청탁은 판사들을 교만하게 만들었다. 오만하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였다.
 
  그때 그를 찾아가 만났다. 나 같은 병아리 변호사는 무시되는 초라한 존재였다. 그가 일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변호사가 그의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처음 보는 나를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그에게서 겸손을 보았다.
 
  노태우 정권에서 5공 청산이 있었다. 전두환 밑에 있던 사람들은 쓰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그가 다시 권력의 핵심부로 들어온 셈이었다. 어느 날 그가 나를 자신의 방으로 불렀다.
 
 
  노량진 수산시장 利權 사업 전말
 
  “이력서를 봤더니 화려합디다. 군 법무장교로도 오래 있었고, 변호사 생활도 했고 말이오. 내 고등학교 후배이기도 하던데. 잠시 같이 일하다가 나갈 때 함께 나갑시다. 내가 여기 들어와 보니 이곳은 부장이나 차장쯤은 몰라도 그 밑에 있으면 재미없을 것 같아. 당신이 계속 있을 데는 못 될 것 같은데.”
 
  그는 마음을 활짝 열어놓고 나를 살갑게 대해주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고 싶어 물었다.
 
  “신문에 났던 노량진 수산시장에 대한 직권남용 사건은 어떤 내용이었습니까?”
 
  5공 청산의 격류(激流)가 사회를 뒤엎을 때 그가 신문 1면의 머릿기사로 등장했다. 청와대 비서관 시절 권력을 남용해서 노량진 농수산시장의 이권에 관여했다는 내용이다. 전(全) 언론이 그를 두들겨 팼다. 고위 법관이 최초로 현직에서 바로 감옥으로 떨어질 거라는 소리가 돌았다.
 
  “뭐 별로 감출 것도 없으니까 다 털어놓지. 내가 민정비서관으로 있으면서 대통령의 친인척들을 관리하는 업무도 했었지. 그 일을 하는 민정비서관은 친인척들이 이권에 관여하지 못하게 하고 동시에 배려도 해야 하는 입장이었어. 그런데 전두환 대통령의 친인척들 사는 형편을 살펴봤더니 거의 다 비참할 정도로 못살더라고. 어느 날 전두환 대통령의 형이 나를 부르더니 ‘노량진 수산시장의 운영권을 주면 대통령의 친인척들이 먹고살 수 있을 텐데…’ 하면서 도와달라고 하더라고. 내가 이학봉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보고했더니 ‘절대 안 된다’는 거야. 하루에 수만 명이 드나드는 수산시장의 운영에 대통령의 친인척이 관여한다면 말썽이 나고 문제가 생긴다는 거야. 그러면서 네가 가서 대통령 친척들의 욕심을 포기시키라고 하더라고. 그런데 비서관을 하면서 보니까 대통령의 먼 친척은 민정비서관이 경고하면 겁을 먹고 말을 듣는데 가까운 친척은 말을 듣지 않더라고.”
 
  “노량진 수산시장의 운영권은 원래 누구에게 있었습니까?”
 
  “박정희 대통령 살았을 때 노량진 수산시장의 운영권을 일본 민단(民團) 계열의 노씨라는 사람에게 줬는데, 왜 그에게 줬는지는 몰라. 하여튼 그 무렵은 노씨라는 사람이 운영권을 맡기로 한 계약상 기간이 끝날 때였어. 새로운 운영권자를 결정해야 할 때였지. 직접적인 관할 관청의 수장인 서울시장이 그 운영권을 누구에게 줄 것인지를 청와대에 물어왔어. 그런 이권은 청와대에서 직접 관할했었지.”
 
 
  노량진 수산시장 운영권 청탁한 노태우
 
  “다른 곳에서 부탁은 없었나요?”
 
  “이권이니까 당연히 있었지. 당시 노태우 내무부 장관이 청탁을 하더라고. 노량진 수산시장 운영권을 계속 노씨 집안에서 맡게 해달라고 말이야. 그래서 내가 노 장관에게 ‘모른 체하십시오’ 하면서 단념하게 했지.”
 
  “비서관 입장에서 일을 바르게 한 건데 왜 언론의 직격탄을 맞은 겁니까?”
 
  “검찰에서 다른 사건을 수사하다가 담당검사가 우연히 그 사실을 얼치기로 안 거야. 담당검사의 허영과 공명심이 팩트를 만들어냈지. 민정비서관이던 내가 직권을 남용해 노량진 수산시장 토지와 건물을 가지려고 했다고 과장해서 기자들에게 떠벌린 거야. 그 검사는 나를 잡아넣으면 뜬다는 생각을 했겠지.”
 
  그 사건을 계기로 그는 판사의 꿈을 접고 변호사가 되었다.
 
  “민정비서관 시절 박근혜도 담당하셨다죠?”
 
  내가 물었다. 그는 박근혜와 최태민 목사의 관계를 확인한 담당 비서관이었다.
 
  “담당했었지.”
 
  “전두환 대통령은 최태민 목사를 어떻게 처리했나요?”
 
  “전두환 대통령은 박근혜의 영혼을 흔들어버린 최태민이라는 자를 몹시 나쁘게 봤지. 그래서 최태민을 강원도 최전방 부대 영창에 처넣어버렸어. 사실 법적 근거도 없는 거였지. 민간인을 그렇게 했으니까 박근혜 측에서 한 번 면회라도 하게 해달라고 난리가 난 거야. 내가 보니까 안됐더라고. 그래서 조치를 취했는데, 그렇다고 박근혜를 전방부대 영창에 가게 하기는 그렇더라고. 그래서 강원도 원주에 있는 한 병원 입원실에서 최태민과 박근혜를 만나게 해줬지. 둘이서 몇 시간 방에 있게 했는데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까지는 관여하지 않았어.”
 
  그의 말에 진정성이 있어 보였다. 사석(私席)에서 둘만의 얘기였다. 부하인 내게 사실을 왜곡하거나 과장할 필요도 없었다. 그가 잠시 침묵하다가 내게 이렇게 제의했다.
 
 
  정권교체기의 정보기관 보고 싶었다
 
  “내가 여기 있는 동안 당신이 나를 보좌해주지 않겠소? 와서 보니까 박철언 부하들은 너무 정치에 오염되어 있어. 그리고 여기 안전기획부의 요원들은 아무래도 신뢰가 가지 않는단 말이야. 있을 때는 철저히 복종하겠지만 여기서 나간 후에는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
 
  “저는 쫓겨나가야 하는 입장에서 대기상태입니다. 보좌한다는 것은 맞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나를 수행하거나 정보를 취급하는 그런 일들을 하는 다른 사람들은 여기에 얼마든지 다 있네. 자네는 다만 소리 없이 내 주변을 살피다가 내게 전해줄 말이 있으면 그것만 정직하게 해주면 될 것 같아. 겉으로 잘하는 사람보다 내가 신뢰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소리야.”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그는 나를 잠정적으로 선택한 것 같았다. 나갈 때 같이 나가자고 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겠습니다.”
 
  정보기관 일을 그만둘 생각은 했지만 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나는 다음 날부터 얼마간 그를 살폈다. 그는 새벽에 출근하면 사무실 구석에 있는 조그만 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십자가 앞에서 기도하고 업무를 시작했다. 안전기획부장이던 박세직도 그랬다.
 
  내가 왜 그를 보좌해야 하는지 나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보좌를 하면 대개 어떤 자리가 그 대가(代價)였다. 그런 욕망은 없었다. 굳이 있다면 정보기관에서 정권이 교체되는 이면의 모습을 더 보고 싶은 호기심 정도라고 할까. 박철언 조직에 대한 영향력이 사라졌다. 새로 온 판사 출신인 그에게 정보기관 전체의 힘이 몰리고 있었다. 나는 그가 개별적으로 주는 임무를 수행하는 보좌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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