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렁탕집까지 둘러보고 정보보고서 쓰는 日 정보기관
⊙ ‘퍼즐 팰리스’라 불리는 CIA 과학국, 베일에 싸여 있는 공작국
⊙ CIA 공작국장, “정보기관이 정치에 관여하면 처벌한다는 규정은 절대 넣지 마라”
⊙ FBI에서 청취한 엘빈 토플러 강연 “일본, 핵무기보다 무섭다”
嚴相益
1954년생. 경기고, 고려대 법대 졸업 / 사법고시 24회, 사법연수원 15기 수료 / 前 국가안전기획부 정책연구관, 법무법인 정현 변호사. 現 엄상익법률사무소 변호사
⊙ ‘퍼즐 팰리스’라 불리는 CIA 과학국, 베일에 싸여 있는 공작국
⊙ CIA 공작국장, “정보기관이 정치에 관여하면 처벌한다는 규정은 절대 넣지 마라”
⊙ FBI에서 청취한 엘빈 토플러 강연 “일본, 핵무기보다 무섭다”
嚴相益
1954년생. 경기고, 고려대 법대 졸업 / 사법고시 24회, 사법연수원 15기 수료 / 前 국가안전기획부 정책연구관, 법무법인 정현 변호사. 現 엄상익법률사무소 변호사
정보기관을 이해하기 위해 일본의 내각정보조사실과 미국의 중앙정보국(CIA), 그리고 FBI를 연구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주일(駐日) 한국대사관에 파견된 안전기획부 요원을 통해 내각정보조사실의 협조를 구했다.
도쿄에 있는 내각정보조사실로 갔다. 내각정보조사실은 방마다 번호키가 달려 있었고, 인가(認可)를 받은 사람만이 드나들 수 있었다. 그곳에서 정보관들이 각자 자기 분야의 정보보고서를 쓰고 있었다. 그 정보보고서의 품질을 알고 싶어 몇 가지 지나간 정보보고서를 얻어 보았다.
내가 본 보고서는 일본 내 적군파와 북한의 동향(動向)을 적은 보고서였다. 보고서의 위쪽 귀퉁이에 붉은 글씨로 ‘秘’자 도장이 찍혀 있었다. 정보보고서는 정성을 들여 쓴 소논문(小論文)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일반 언론의 기획 보도와는 깊이가 다른 것 같았다.
일본 내각정보조사실에서는 한일(韓日) 정보협력의 차원에서 정중하게 대해주었다. 내각정보조사실 소회의실에는 흰 테이블 보를 덮은 정방형의 회의 탁자가 있었고, 그 위에는 한일 양국의 작은 국기가 엇갈려 놓여 있었다. 내각정보조사실 소속의 정보관이 맞아주었다. 서울에 있는 일본대사관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다가 돌아간 일본인이 통역을 담당했다.
“일본 내각정보조사실의 정보활동에 대해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내가 말했다. 그들이 어디까지 말해줄지 궁금했다. 담당 정보관이 입을 열었다.
뿌리 깊은 일본의 정보활동
“일본의 정보활동은 명치(明治) 시대 이후 군국주의(軍國主義) 시대부터로 뿌리가 깊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일본의 정보활동은 전 세계에 나가 있는 상사(商社)를 통해 많이 하고 있습니다. 상사 주재원들이 일본의 정보원이라고 보셔도 무리가 없을 겁니다. 예전에는 상사원뿐 아니라 군인들도 외교관 신분으로 세계 각국의 대사관에 가서 첩보공작 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저 같은 내각정보조사실 정보관들은 각국에 있는 일본대사관에 가서 근무하면서 정보활동을 하기도 합니다. 제 경우를 말씀드리면 주한 일본대사관에 외교관 신분으로 나가 있으면서 한국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말을 들어보니 정보 수집 장소는 비단 대사관만이 아니었다.
“한국에 있을 때 이태원의 설렁탕집을 가기도 하고, 타워호텔 나이트클럽에 가서 춤을 추면서 한국 사람들이 정부에 대해 비판하는 것을 듣고 정보보고서를 쓰기도 했습니다. 저 같은 일본 정보관보다 서울에 있는 미국 CIA 정보관들은 한층 더 깊고 넓게 한국에 대한 정보활동을 하는 걸 봤습니다. 제가 서울에 있을 때 CIA 소속 정보관은 50대 중반쯤으로 나이가 들어 보이는 할아버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저보다 매운 김치를 훨씬 잘 먹었죠. 그 사람은 청계천이나 서울 상계동의 빈민촌을 돌아다니면서 개개인들에게 한국의 상황에 대해 물었습니다. 아마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아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한국에 대한 정보는 CIA뿐만 아니라 FBI에서도 별도로 수집하는 것 같았습니다. 도쿄에 거점을 두고 서울과 홍콩을 커버하는 미국 연방수사국의 책임자와도 인사를 나누고 얘기를 했으니까요.”
미국서 검토한 ‘코리아 게이트’ 사건 자료
미국과 일본의 정보활동은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도쿄에서 며칠 묵은 후 나는 미국으로 출발했다. 해외여행이 제한된 그 시절, 처음 가보는 미국이었다. 미국행 노스웨스트 보잉기를 탔다. 알래스카의 앵커리지에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이륙해 캐나다 북부의 동토(凍土) 지대를 지날 때였다. 만년설로 덮인 산이 영원한 적막 속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비행기 창밖으로 보이는 팽팽한 푸른 하늘이 눈에서 떠나지 않았다.
어느새 내가 탄 보잉기는 뉴욕의 케네디공항 쪽을 향해 기수(機首)를 낮추고 있었다. 비행기 창 아래로 고층 건물의 드넓은 바다인 도시가 내려다보였다. 처음 와보는 뉴욕이었다. 공항 입구에 안전기획부 파견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의 차를 타고 뉴욕 시내로 향했다. 이른 봄인데도 진눈깨비 같은 눈이 내렸다. 차창으로 빙수 같은 눈이 척척 달라붙었다. 거리 곳곳에는 오래된 붉은 벽돌 건물이 보이고, 뒷골목은 동굴같이 검은 입을 벌리고 있었다. 차가 네거리 신호등 앞에서 잠시 멈출 때면 흑인들이 다가와 핏빛이 도는 눈을 번들거리며 돈을 달라고 큰 손을 벌렸다.
뉴욕의 한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CIA로 들어가기 전에 자료를 좀 더 보아 둘 필요가 있었다. 나는 가지고 온 자료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중앙정보부는 미국 의회나 여론이 한국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도록 하는 임무를 수행해왔다. 미국 지도층이 한국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갖도록 할 필요가 있었다.
중앙정보부는 미국 의회에 접근하기 위해 박동선과 김한조라는 인물을 활용했다. 조지타운대학을 나온 박동선은 뛰어난 인물이었다. 영어에 능통하고 백인 상류층 문화에 익숙했다. 그는 조지타운 클럽을 만들어 백악관을 자주 드나드는 변호사나 의원들과 어울렸다. 중앙정보부는 박동선에게 한국이 미국에서 수입하는 양곡 대리권을 주었다. 그 이윤 중 상당 부분이 미국 의회 의원들에게 정치헌금으로 제공됐다.
1954년 미국으로 건너가 고학(苦學)으로 대학을 마치고 화장품 회사를 일으킨 김한조도 많은 역할을 했다. 박동선과 김한조는 백악관 보좌관이나 의원, 학계·종교계·언론계 등에 다양한 인연을 맺으면서 뻗어 나갔다. 약소국가의 생존전략이자 발전에 필수적인 행동이었다. 미국의 경제원조가 필요했다. 한미동맹을 강화해 주한미군을 잡아둘 필요가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미국의 부정적인 여론도 희석시켜야 했다.
프레이저 청문회
도중에 예상치 못한 지뢰가 터졌다. 미국 대통령 부인 측근의 권총 자살사건이 있었다. 《워싱턴포스트》는 그 배경에 한국인 박동선이 있음을 보도했다. 박동선은 미국 언론의 추적을 받기 시작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한국 정보부의 박동선이라는 인물이 미국 하원의원들에게 뇌물을 제공한 사실을 폭로했다. 미국 언론들이 한국 중앙정보부의 활동을 적발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연방수사국은 박동선과 김한조, 이들을 조종하는 한국의 중앙정보부를 수사했다. 박동선에게서 돈을 받은 하원의원 등이 뇌물죄 등으로 기소됐다. 이것이 이른바 ‘코리아게이트’ 사건이다.
미국 하원에서 프레이저 청문회가 열렸다. 미국 내 한국 중앙정보부원의 활동 등 한미(韓美) 관계 전반을 조사하는 청문회였다. 전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이 프레이저 청문회의 증언석에 앉았다. 그는 한국 정보부의 미국 의회 정보활동을 모두 자백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정보부가 작성한 〈76년 대미(對美) 공작방안〉이란 문건이 미국 측에 넘어갔다. 정보활동 예산 70만 달러로 명기(明記)되어 있는 그 자료에는 공작 대상이 미국 의회, 행정부, 학계, 종교계 인사로 되어 있었다. 박동선은 36가지 죄목으로 기소됐다. 닷새 뒤 김한조도 기소됐다. 박정희 대통령은 당시 이 사건과 관련해 참모들에게 이런 의견을 말했다고 한다.
“미국의 압력에 절대 굽히지 않을 거야. 손톱도 안 들어간다는 걸 알면 미국도 버릇을 고치겠지. 나는 당대에 평가받으려는 게 아니야. 당대에 평가받으려면 일을 할 수가 없지.”
박정희 대통령의 고뇌와 위대성을 알 것 같았다.
2중, 3중의 보안 시스템 갖춘 CIA
다음날 오전 나는 뉴욕의 공항에서 오래된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고 워싱턴으로 향했다. 비행기가 구름 위로 올라가 상승과 하강을 반복했다. 흰 구름 속을 통과할 때는 비행기가 마치 자동차가 자갈밭을 가는 것같이 부르르 떨렸다. 이윽고 비행기 둥근 창으로 갈색의 대지 위에 구불구불 흘러가는 포토맥강이 보이기 시작했다. 비행기가 워싱턴공항에 착륙했다. 공항 앞 주차장에는 안전기획부 파견관이 밴을 가지고 나와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30분쯤 지나 우리가 탄 밴은 워싱턴 교외에 있는 CIA 본부에 도착했다. 철조망 뒤로 군부대 같은 드넓은 부지가 보이고 여기저기 장방형의 건물이 웅크리고 있었다. 철조망 사이사이에 군데군데 경비초소가 보이고 그 앞에는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샷건을 든 백인 경비원이 서 있었다. 첫 번째 통과 초소의 경비원이 우리 신분을 확인한 후 노란색과 빨간색 그리고 녹색의 종이를 건네주었다. 가는 건물마다 그날 정한 색깔의 종이를 주어야 통과가 된다고 했다. 2중, 3중의 보안 시스템이었다.
밴을 타고 한참을 가다 보니 두 번째 철책이 보였다. 노란 종이를 지정된 구멍에 넣으니까 앞을 가로막고 있던 철책 문이 한 바퀴 돌면서 열렸다. 다음 초소에서는 빨강, 그다음 초소에서는 녹색 종이를 구멍에 넣고 안으로 들어갔다. 사진으로 미리 보아둔 미국 중앙정보부 본부 건물이 시야에 나타났다. 중후한 건물이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바닥에 대리석을 깐 로비에 백인 남자의 흉상이 무표정한 얼굴로 앞을 보고 있었다. CIA의 전신인 OSS 부대를 만든 인물이었다. 변호사 출신인 그가 제2차 세계대전 때 군에 차출되어 미국의 정보조직을 만들었다.
CIA 본부 건물 내부는 미로(迷路) 같은 복도를 가운데 두고 문이 굳게 잠긴 사무실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그곳이 세계를 움직이는 신경과 연결되는 미국의 수뇌부였다.
‘퍼즐 팰리스’
그중 한 구역에 있는 방으로 안내되었다. 방은 칸막이로 나뉘어 있었다. 한쪽은 원형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다른 쪽은 휴식 공간인 것 같았다. 탁자 위에 커피와 도넛이 준비되어 있었다. CIA 본부 요원이 들어와 교육계획표를 나누어주었다.
이윽고 강사들이 한 사람씩 들어와 자기 분야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쉴 틈이 없는 빡빡한 일정이었다. 미국의 ‘국가안전보장법’부터 공부가 시작됐다. 정보조직을 뒷받침하는 근거 법령이 엄청나게 많았다. 강사는 정보기관도 국회에서 만든 법에 근거해 존재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정보기관의 기능과 활동이 의회(議會)에서 항상 이해되고 지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를 무시하면, 어느 날 국회의원들이 관련 법령을 폐지하면 어떤 기관이든지 단번에 공중분해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보부에 대해 한(恨)이 서린 한국의 국회의원들이 떠올랐다.
한 타임이 끝나면 그 다음번 강사가 벌써 옆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CIA의 정보분석국은 세계적인 석학들을 모아 수집된 정보들을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하고 있었다. 그곳은 미국의 대학 졸업생들이 선망하는 최고의 직장이라고 했다.
CIA 정보국의 한국과장은 국무부의 한국 담당과 함께 한국 정세를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었다. 어떤 면에서는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아는 것 같았다.
그들 사이에서 ‘퍼즐 팰리스’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과학국은 최고의 자랑거리였다. 과학국은 첩보위성이나 첩보기 등을 통해 수집한 첩보를 분석해서 국가안전보장회의에 보낸다고 한다. 그들은 첩보위성뿐 아니라 핵폭탄을 탑재한 군사위성의 계획도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베일에 싸여 있는 공작국이 존재했다. 그들은 공작국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CIA는 여러 모습으로 위장해 전 세계에 퍼져 있다고 했다. 그곳에서 쓰는 자금도 자체적으로 보험회사나 여행사를 만들어 요원이 쓰는 돈이 노출되지 않도록 하고 있었다. 며칠에 걸친 교육을 통해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미국의 힘을 느꼈다. 그들의 첩보위성을 피할 수 있는 나라는 없었다. 군사 위성에 탑재한 핵폭탄을 정확히 투하한다면 살아남을 나라도 거의 없을 것 같았다. 미국은 ‘현대판 로마 제국’이었다.
“미국은 다른 나라에 대해 공작한 적 없다”
강의가 거의 끝나갈 무렵 CIA 교육 담당자가 “질문이 있으면 하시죠” 했다. 약한 나라에서 왔지만 나는 본질을 알고 싶어 이렇게 물었다.
“제가 알기로는 CIA는 전 세계의 여러 국가에 대해 정치공작이나 요인에 대한 테러, 핵 개발을 저지하는 활동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일부라도 진실을 묻고 싶습니다.”
통역을 하던 안전기획부 해외 공작국 요원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졌다. 그가 주저하면서 나를 보고 말했다.
“이 질문을 제가 꼭 통역해야겠습니까?”
그의 표정은 묻지 말라고 하고 있었다. 내가 통역 담당 요원에게 말했다.
“저 사람들이 짜놓은 교육 계획대로 껍데기만 보고 듣고 가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한마디라도 실질적인 것을 느끼고 싶습니다. 미국이 CIA를 통해 전 세계를 주무르는 현실에서 그 호랑이 굴까지 왔다면 말 한 마디라도 제대로 듣고 가야 하지 않을까요? 내 말대로 통역하세요.”
내가 고집을 부렸다. 약하다고 비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자존감이 있어야 했다. 고개를 숙여도 영혼을 잃으면 우리는 식민지 백성밖에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내 질문을 들은 CIA 교육 담당이 순간 불쾌한 표정으로 변하면서 내뱉었다.
“우리 미국은 다른 나라에 대해 공작을 한 바 없습니다.”
“공작한 바가 없어요? 제가 파악하기로는 미국이 쿠바의 피그만을 공격하고,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리기도 했잖아요? 이란에서 친미(親美)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왕비를 임신시키는 교활한 공작도 하고, 베트남 승려들의 반미(反美) 시위를 막기 위해 화학폭탄을 제공하기도 했잖아요? 그 화학탄은 시위 군중 사이에서 터지게 하면 심한 고통을 받는 거였죠. 왜 그렇게 했는지 한마디라도 직접 듣고 싶습니다.”
CIA 공작국장의 충고
당돌한 질문인 걸 알고 있었다. 미국은 친미 정권인 월남의 고 딘 디엠 정권을 무너뜨리기도 했다. 내 말을 듣고 있던 CIA 교육 담당의 얼굴이 점점 붉어지고 있었다. 민머리까지 차츰 붉어지고 있었다. 백인들의 독특한 정직성이 엿보였다.
“도대체 그런 사실들은 어떻게 알았습니까?”
그가 내게 되물었다.
“전직 미국 CIA 요원들이 쓴 회고록을 읽었어요. 법치 국가인 미국에서 정보기관이 어디까지 불법을 감행할 수 있는지 그 한계는 어디인지 알고 싶습니다.”
솔직히 나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특성을 직접 듣고 싶었다.
미국은 패권주의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고 메이저 석유 회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 가지 활동을 한 흔적도 자료에서 보았다. 내 진심이 통했는지 그 백인 요원은 잠시 침묵하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CIA의 공작(工作)들을 부인하지는 않겠지만 제가 대답할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뒤쪽에 그림자같이 소리 없이 나타나 지켜보는 50대쯤의 백인 남자가 있었다. 짙푸른 눈동자에서는 서늘한 빛이 흘러나오는 듯했다. 독특한 인상이었다. 그는 내가 본 CIA 사람들 중에서 가장 상급자인 것 같았다. 함께 있던 교육 담당자가 그를 보면서 소개했다.
“CIA 공작국장이십니다.”
그가 테이블의 빈자리에 앉아 나를 한참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런 목적으로 오셨다면 한 가지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말을 해줄게요. 앞으로 한국은 민주화가 진행될 겁니다. 그에 따라 정보기관법을 바꾸자는 여론이 형성될 겁니다.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정보기관이 정치에 관여하면 처벌한다는 규정은 절대 넣지 마십시오. 그렇게 되면 많은 희생이 따를 겁니다.”
의미가 담겨 있는 예언 같은 그의 말이었다. 그들이 동맹국의 내부 깊숙한 사정까지 파악하고 원격 조종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CIA에 비해 개방적인 FBI
워싱턴에서 차로 1시간쯤 되는 거리에 있는 콴티코시(市)에 FBI 아카데미가 있었다. 그곳에서 미국 및 세계 각국 정보관이나 수사관들의 콘퍼런스가 있었다. 그 콘퍼런스에 참석하기로 했다. 연락을 받은 여성 FBI요원이 훈련장 앞에 차를 대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FBI 아카데미로 들어갔다. 차창으로 보이는 넓은 초원에는 사슴과 노루가 떼지어 다니고 있었다. 자동차 운전대를 잡고 있던 FBI 요원이 거울로 뒤에 앉은 나를 보면서 물었다.
“한국에 우리 FBI 에이전트인 한국인들이 많은데 그거 알아요?”
그들이 심어놓은 한국인 스파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모르는데요, 어떤 사람들이죠?”
내가 되물었다.
“미스터 김(金)도 있고 박(朴)도 있고 여러 사람인데….”
그녀가 중얼거렸다. FBI는 CIA와는 달리 개방적이었다. 교육 책임자의 이름은 타포야 박사였다. 정보수사관 200명가량이 강당에 모여 있었다. 타포야 박사가 단(壇) 위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 후버 국장 시절부터 마피아와 싸우는 FBI 영화나 소설이 많을 겁니다. 우리 FBI는 홍보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영화나 소설을 통해 사람들의 머리에 FBI가 깊숙이 각인되게 했습니다. 국민에게 사랑받지 않으면 정보기관이나 수사기관이나 그 의미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한국의 정보기관은 어떤 것인가 생각해보았다. 중앙정보부 시절부터 검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FBI에서 청취한 엘빈 토플러 강연
콘퍼런스는 매일 강사들이 바뀌어 발표를 했다. 강사 중에는 《제3의 물결》이란 책의 저자인 엘빈 토플러가 있었다. 그가 정보수사관들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범인의 집에 들어가려면 수색영장도 있어야 하고 총에 맞을 위험도 있는데 힘들지 않습니까? 앞으로는 로봇 거미를 만들어 침투시키고 외부에서 모니터로 보면 어떨까요? 이 로봇 거미가 천장이고 벽장이고 다니면서 촬영을 하고 필요하면 범인에게 독침을 쏴서 잠시 마비시켜 체포하면 편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하면 정보 수사기관의 일들이 아주 줄어들 텐데 말이죠.”
사람들이 ‘와아’ 하며 웃었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우리가 보통 인식하고 있는 미국 경찰관의 모습은 권총과 경찰봉을 배에 차고 있는 뉴욕 거리의 뚱보 이미지였습니다. 갱들의 원색적인 근육의 힘에 대응하는 국가 공권력의 상징이었죠. 그러나 권총이나 방망이로 상징되는 그런 경찰관의 모습이 유물로 되는 세상입니다. GPS 시스템을 개발하면 어디에 있는 누구라도 추적할 수 있습니다. 인공위성에서 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셀룰러 폰의 건전지를 자극하면, 폭발하게 돼 범인들을 제압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정보화·과학화 되는 세계가 될 것입니다.”
그가 잠시 말을 쉬었다. 사람들은 그의 다음 말을 기다리며 시선을 그에게 집중했다.
“여러분 재미있는 얘기 한두 가지 더 해볼까요? 요즈음 핵폐기물을 처리하느라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 야단인데 그걸 값싸게 처리할 방법을 알려드릴까요? 이미 우리 미국에서 대기권 밖으로 로켓을 쏘아 올리는 건 그 비용이 얼마 되지 않는 단계에 와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그 가격이 파격적으로 줄어들 겁니다. 그렇게 되면 핵폐기물을 로켓으로 전부 대기권 밖으로 쏴 올려서 우주에다 버리는 겁니다. 나중에 우주인들이 우주의 공해 문제를 들고 항의하러 올 때까지는 안심 아닙니까? FBI 영화를 보면 사람들이 다쳐서 병원에서 수술하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앞으로는 얼마든지 인공장기들이 생산되어 나올 겁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같이 불편한 방탄조끼를 입지 않고 일을 보고 만약 장기가 다치면 바로 앰뷸런스로 들어가 장기를 갈아 끼우면 되지 않을까요?”
아이디어가 톡톡 튀던 엘빈 토플러
엘빈 토플러는 아이디어가 톡톡 튀는 미래를 보는 사람이었다. 그의 강연은 계속됐다.
“이번에는 문제를 넓혀 국제적으로 가봅시다. 얼마 전 도쿄에 간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느낀 점인데 일본은 우리 미국이 겁을 낼 정도로 새로운 병기(兵器)를 연구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반면에 우리 미국은 고루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우리 미국도 각성하고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점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맨 앞줄에 앉아 있던 작달막한 일본인이 손을 번쩍 들었다. 50대쯤으로 보이는 일본 외무성에서 왔다는 작달막한 남자였다. 엘빈 토플러가 말해보라고 했다. 일본인이 더듬거리는 영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 일본은 아무런 병기도 생산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그 말에 대해 해명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듣고 엘빈 토플러가 대답했다.
“제가 도쿄 시내를 다니면서 여러 서점을 둘러봤습니다. 서가(書架)에서 일본의 10년 앞부터 시작해서 ‘100년 후의 일본’ 등 엄청난 미래 연구 서적들을 발견했습니다. 앞을 내다보면서 대비하자는 내용들이었죠. 반면에 미국은 뉴욕부터 시작해서 여러 주의 서점들을 보면 몇백 년도 되지 않은 미국 역사책만 쌓여 있더라고요. 과거에 잡혀 있는 미국과 미래를 연구하는 일본은 다르다는 생각을 했어요. 미래를 미리 내다보면서 대책을 강구하는 일본의 그런 행동은 핵무기보다 무섭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일본에 우리가 모르는 비밀병기가 있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청중 사이에서 박수가 쏟아져나왔다. 미래를 보는 미국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미국에서 돌아오자 정보기관을 개혁하려던 박세직 안기부장이 자리에서 물러나고 없었다. 후임 안전기획부장은 정보기관 개혁에 흥미가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개혁은 흐지부지됐다.
미국과 일본의 정보기관과 한국 정보기관은 정말 큰 차이가 있었다. 정보기관 사람들은 뼛속까지 정치로 물들어 있었고, 신분증만 내밀면 사람들이 그 앞에서 무릎을 꿇는 권력의 맛에 젖어 있는 것 같았다. 젊은 엘리트층으로 조직이 대폭 바뀌어야 건강해질 것 같았다.
미국에서 돌아온 후 나는 정말 특수한 부서로 발령을 받았다.⊙
도쿄에 있는 내각정보조사실로 갔다. 내각정보조사실은 방마다 번호키가 달려 있었고, 인가(認可)를 받은 사람만이 드나들 수 있었다. 그곳에서 정보관들이 각자 자기 분야의 정보보고서를 쓰고 있었다. 그 정보보고서의 품질을 알고 싶어 몇 가지 지나간 정보보고서를 얻어 보았다.
내가 본 보고서는 일본 내 적군파와 북한의 동향(動向)을 적은 보고서였다. 보고서의 위쪽 귀퉁이에 붉은 글씨로 ‘秘’자 도장이 찍혀 있었다. 정보보고서는 정성을 들여 쓴 소논문(小論文)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일반 언론의 기획 보도와는 깊이가 다른 것 같았다.
일본 내각정보조사실에서는 한일(韓日) 정보협력의 차원에서 정중하게 대해주었다. 내각정보조사실 소회의실에는 흰 테이블 보를 덮은 정방형의 회의 탁자가 있었고, 그 위에는 한일 양국의 작은 국기가 엇갈려 놓여 있었다. 내각정보조사실 소속의 정보관이 맞아주었다. 서울에 있는 일본대사관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다가 돌아간 일본인이 통역을 담당했다.
“일본 내각정보조사실의 정보활동에 대해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내가 말했다. 그들이 어디까지 말해줄지 궁금했다. 담당 정보관이 입을 열었다.
뿌리 깊은 일본의 정보활동
“일본의 정보활동은 명치(明治) 시대 이후 군국주의(軍國主義) 시대부터로 뿌리가 깊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일본의 정보활동은 전 세계에 나가 있는 상사(商社)를 통해 많이 하고 있습니다. 상사 주재원들이 일본의 정보원이라고 보셔도 무리가 없을 겁니다. 예전에는 상사원뿐 아니라 군인들도 외교관 신분으로 세계 각국의 대사관에 가서 첩보공작 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저 같은 내각정보조사실 정보관들은 각국에 있는 일본대사관에 가서 근무하면서 정보활동을 하기도 합니다. 제 경우를 말씀드리면 주한 일본대사관에 외교관 신분으로 나가 있으면서 한국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말을 들어보니 정보 수집 장소는 비단 대사관만이 아니었다.
“한국에 있을 때 이태원의 설렁탕집을 가기도 하고, 타워호텔 나이트클럽에 가서 춤을 추면서 한국 사람들이 정부에 대해 비판하는 것을 듣고 정보보고서를 쓰기도 했습니다. 저 같은 일본 정보관보다 서울에 있는 미국 CIA 정보관들은 한층 더 깊고 넓게 한국에 대한 정보활동을 하는 걸 봤습니다. 제가 서울에 있을 때 CIA 소속 정보관은 50대 중반쯤으로 나이가 들어 보이는 할아버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저보다 매운 김치를 훨씬 잘 먹었죠. 그 사람은 청계천이나 서울 상계동의 빈민촌을 돌아다니면서 개개인들에게 한국의 상황에 대해 물었습니다. 아마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아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한국에 대한 정보는 CIA뿐만 아니라 FBI에서도 별도로 수집하는 것 같았습니다. 도쿄에 거점을 두고 서울과 홍콩을 커버하는 미국 연방수사국의 책임자와도 인사를 나누고 얘기를 했으니까요.”
미국서 검토한 ‘코리아 게이트’ 사건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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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게이트 사건의 주인공 박동선씨. |
어느새 내가 탄 보잉기는 뉴욕의 케네디공항 쪽을 향해 기수(機首)를 낮추고 있었다. 비행기 창 아래로 고층 건물의 드넓은 바다인 도시가 내려다보였다. 처음 와보는 뉴욕이었다. 공항 입구에 안전기획부 파견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의 차를 타고 뉴욕 시내로 향했다. 이른 봄인데도 진눈깨비 같은 눈이 내렸다. 차창으로 빙수 같은 눈이 척척 달라붙었다. 거리 곳곳에는 오래된 붉은 벽돌 건물이 보이고, 뒷골목은 동굴같이 검은 입을 벌리고 있었다. 차가 네거리 신호등 앞에서 잠시 멈출 때면 흑인들이 다가와 핏빛이 도는 눈을 번들거리며 돈을 달라고 큰 손을 벌렸다.
뉴욕의 한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CIA로 들어가기 전에 자료를 좀 더 보아 둘 필요가 있었다. 나는 가지고 온 자료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중앙정보부는 미국 의회나 여론이 한국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도록 하는 임무를 수행해왔다. 미국 지도층이 한국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갖도록 할 필요가 있었다.
중앙정보부는 미국 의회에 접근하기 위해 박동선과 김한조라는 인물을 활용했다. 조지타운대학을 나온 박동선은 뛰어난 인물이었다. 영어에 능통하고 백인 상류층 문화에 익숙했다. 그는 조지타운 클럽을 만들어 백악관을 자주 드나드는 변호사나 의원들과 어울렸다. 중앙정보부는 박동선에게 한국이 미국에서 수입하는 양곡 대리권을 주었다. 그 이윤 중 상당 부분이 미국 의회 의원들에게 정치헌금으로 제공됐다.
1954년 미국으로 건너가 고학(苦學)으로 대학을 마치고 화장품 회사를 일으킨 김한조도 많은 역할을 했다. 박동선과 김한조는 백악관 보좌관이나 의원, 학계·종교계·언론계 등에 다양한 인연을 맺으면서 뻗어 나갔다. 약소국가의 생존전략이자 발전에 필수적인 행동이었다. 미국의 경제원조가 필요했다. 한미동맹을 강화해 주한미군을 잡아둘 필요가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미국의 부정적인 여론도 희석시켜야 했다.
프레이저 청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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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은 미국 의회 프레이저 청문회에 출석해 박정희 정권의 치부를 폭로했다. |
미국 하원에서 프레이저 청문회가 열렸다. 미국 내 한국 중앙정보부원의 활동 등 한미(韓美) 관계 전반을 조사하는 청문회였다. 전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이 프레이저 청문회의 증언석에 앉았다. 그는 한국 정보부의 미국 의회 정보활동을 모두 자백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정보부가 작성한 〈76년 대미(對美) 공작방안〉이란 문건이 미국 측에 넘어갔다. 정보활동 예산 70만 달러로 명기(明記)되어 있는 그 자료에는 공작 대상이 미국 의회, 행정부, 학계, 종교계 인사로 되어 있었다. 박동선은 36가지 죄목으로 기소됐다. 닷새 뒤 김한조도 기소됐다. 박정희 대통령은 당시 이 사건과 관련해 참모들에게 이런 의견을 말했다고 한다.
“미국의 압력에 절대 굽히지 않을 거야. 손톱도 안 들어간다는 걸 알면 미국도 버릇을 고치겠지. 나는 당대에 평가받으려는 게 아니야. 당대에 평가받으려면 일을 할 수가 없지.”
박정희 대통령의 고뇌와 위대성을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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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A의 전신인 OSS(전략사무국) 창설자 윌리엄 도노반. |
30분쯤 지나 우리가 탄 밴은 워싱턴 교외에 있는 CIA 본부에 도착했다. 철조망 뒤로 군부대 같은 드넓은 부지가 보이고 여기저기 장방형의 건물이 웅크리고 있었다. 철조망 사이사이에 군데군데 경비초소가 보이고 그 앞에는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샷건을 든 백인 경비원이 서 있었다. 첫 번째 통과 초소의 경비원이 우리 신분을 확인한 후 노란색과 빨간색 그리고 녹색의 종이를 건네주었다. 가는 건물마다 그날 정한 색깔의 종이를 주어야 통과가 된다고 했다. 2중, 3중의 보안 시스템이었다.
밴을 타고 한참을 가다 보니 두 번째 철책이 보였다. 노란 종이를 지정된 구멍에 넣으니까 앞을 가로막고 있던 철책 문이 한 바퀴 돌면서 열렸다. 다음 초소에서는 빨강, 그다음 초소에서는 녹색 종이를 구멍에 넣고 안으로 들어갔다. 사진으로 미리 보아둔 미국 중앙정보부 본부 건물이 시야에 나타났다. 중후한 건물이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바닥에 대리석을 깐 로비에 백인 남자의 흉상이 무표정한 얼굴로 앞을 보고 있었다. CIA의 전신인 OSS 부대를 만든 인물이었다. 변호사 출신인 그가 제2차 세계대전 때 군에 차출되어 미국의 정보조직을 만들었다.
CIA 본부 건물 내부는 미로(迷路) 같은 복도를 가운데 두고 문이 굳게 잠긴 사무실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그곳이 세계를 움직이는 신경과 연결되는 미국의 수뇌부였다.
‘퍼즐 팰리스’
그중 한 구역에 있는 방으로 안내되었다. 방은 칸막이로 나뉘어 있었다. 한쪽은 원형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다른 쪽은 휴식 공간인 것 같았다. 탁자 위에 커피와 도넛이 준비되어 있었다. CIA 본부 요원이 들어와 교육계획표를 나누어주었다.
이윽고 강사들이 한 사람씩 들어와 자기 분야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쉴 틈이 없는 빡빡한 일정이었다. 미국의 ‘국가안전보장법’부터 공부가 시작됐다. 정보조직을 뒷받침하는 근거 법령이 엄청나게 많았다. 강사는 정보기관도 국회에서 만든 법에 근거해 존재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정보기관의 기능과 활동이 의회(議會)에서 항상 이해되고 지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를 무시하면, 어느 날 국회의원들이 관련 법령을 폐지하면 어떤 기관이든지 단번에 공중분해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보부에 대해 한(恨)이 서린 한국의 국회의원들이 떠올랐다.
한 타임이 끝나면 그 다음번 강사가 벌써 옆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CIA의 정보분석국은 세계적인 석학들을 모아 수집된 정보들을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하고 있었다. 그곳은 미국의 대학 졸업생들이 선망하는 최고의 직장이라고 했다.
CIA 정보국의 한국과장은 국무부의 한국 담당과 함께 한국 정세를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었다. 어떤 면에서는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아는 것 같았다.
그들 사이에서 ‘퍼즐 팰리스’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과학국은 최고의 자랑거리였다. 과학국은 첩보위성이나 첩보기 등을 통해 수집한 첩보를 분석해서 국가안전보장회의에 보낸다고 한다. 그들은 첩보위성뿐 아니라 핵폭탄을 탑재한 군사위성의 계획도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베일에 싸여 있는 공작국이 존재했다. 그들은 공작국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CIA는 여러 모습으로 위장해 전 세계에 퍼져 있다고 했다. 그곳에서 쓰는 자금도 자체적으로 보험회사나 여행사를 만들어 요원이 쓰는 돈이 노출되지 않도록 하고 있었다. 며칠에 걸친 교육을 통해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미국의 힘을 느꼈다. 그들의 첩보위성을 피할 수 있는 나라는 없었다. 군사 위성에 탑재한 핵폭탄을 정확히 투하한다면 살아남을 나라도 거의 없을 것 같았다. 미국은 ‘현대판 로마 제국’이었다.
“미국은 다른 나라에 대해 공작한 적 없다”
강의가 거의 끝나갈 무렵 CIA 교육 담당자가 “질문이 있으면 하시죠” 했다. 약한 나라에서 왔지만 나는 본질을 알고 싶어 이렇게 물었다.
“제가 알기로는 CIA는 전 세계의 여러 국가에 대해 정치공작이나 요인에 대한 테러, 핵 개발을 저지하는 활동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일부라도 진실을 묻고 싶습니다.”
통역을 하던 안전기획부 해외 공작국 요원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졌다. 그가 주저하면서 나를 보고 말했다.
“이 질문을 제가 꼭 통역해야겠습니까?”
그의 표정은 묻지 말라고 하고 있었다. 내가 통역 담당 요원에게 말했다.
“저 사람들이 짜놓은 교육 계획대로 껍데기만 보고 듣고 가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한마디라도 실질적인 것을 느끼고 싶습니다. 미국이 CIA를 통해 전 세계를 주무르는 현실에서 그 호랑이 굴까지 왔다면 말 한 마디라도 제대로 듣고 가야 하지 않을까요? 내 말대로 통역하세요.”
내가 고집을 부렸다. 약하다고 비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자존감이 있어야 했다. 고개를 숙여도 영혼을 잃으면 우리는 식민지 백성밖에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내 질문을 들은 CIA 교육 담당이 순간 불쾌한 표정으로 변하면서 내뱉었다.
“우리 미국은 다른 나라에 대해 공작을 한 바 없습니다.”
“공작한 바가 없어요? 제가 파악하기로는 미국이 쿠바의 피그만을 공격하고,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리기도 했잖아요? 이란에서 친미(親美)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왕비를 임신시키는 교활한 공작도 하고, 베트남 승려들의 반미(反美) 시위를 막기 위해 화학폭탄을 제공하기도 했잖아요? 그 화학탄은 시위 군중 사이에서 터지게 하면 심한 고통을 받는 거였죠. 왜 그렇게 했는지 한마디라도 직접 듣고 싶습니다.”
CIA 공작국장의 충고
당돌한 질문인 걸 알고 있었다. 미국은 친미 정권인 월남의 고 딘 디엠 정권을 무너뜨리기도 했다. 내 말을 듣고 있던 CIA 교육 담당의 얼굴이 점점 붉어지고 있었다. 민머리까지 차츰 붉어지고 있었다. 백인들의 독특한 정직성이 엿보였다.
“도대체 그런 사실들은 어떻게 알았습니까?”
그가 내게 되물었다.
“전직 미국 CIA 요원들이 쓴 회고록을 읽었어요. 법치 국가인 미국에서 정보기관이 어디까지 불법을 감행할 수 있는지 그 한계는 어디인지 알고 싶습니다.”
솔직히 나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특성을 직접 듣고 싶었다.
미국은 패권주의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고 메이저 석유 회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 가지 활동을 한 흔적도 자료에서 보았다. 내 진심이 통했는지 그 백인 요원은 잠시 침묵하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CIA의 공작(工作)들을 부인하지는 않겠지만 제가 대답할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뒤쪽에 그림자같이 소리 없이 나타나 지켜보는 50대쯤의 백인 남자가 있었다. 짙푸른 눈동자에서는 서늘한 빛이 흘러나오는 듯했다. 독특한 인상이었다. 그는 내가 본 CIA 사람들 중에서 가장 상급자인 것 같았다. 함께 있던 교육 담당자가 그를 보면서 소개했다.
“CIA 공작국장이십니다.”
그가 테이블의 빈자리에 앉아 나를 한참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런 목적으로 오셨다면 한 가지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말을 해줄게요. 앞으로 한국은 민주화가 진행될 겁니다. 그에 따라 정보기관법을 바꾸자는 여론이 형성될 겁니다.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정보기관이 정치에 관여하면 처벌한다는 규정은 절대 넣지 마십시오. 그렇게 되면 많은 희생이 따를 겁니다.”
의미가 담겨 있는 예언 같은 그의 말이었다. 그들이 동맹국의 내부 깊숙한 사정까지 파악하고 원격 조종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워싱턴에서 차로 1시간쯤 되는 거리에 있는 콴티코시(市)에 FBI 아카데미가 있었다. 그곳에서 미국 및 세계 각국 정보관이나 수사관들의 콘퍼런스가 있었다. 그 콘퍼런스에 참석하기로 했다. 연락을 받은 여성 FBI요원이 훈련장 앞에 차를 대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FBI 아카데미로 들어갔다. 차창으로 보이는 넓은 초원에는 사슴과 노루가 떼지어 다니고 있었다. 자동차 운전대를 잡고 있던 FBI 요원이 거울로 뒤에 앉은 나를 보면서 물었다.
“한국에 우리 FBI 에이전트인 한국인들이 많은데 그거 알아요?”
그들이 심어놓은 한국인 스파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모르는데요, 어떤 사람들이죠?”
내가 되물었다.
“미스터 김(金)도 있고 박(朴)도 있고 여러 사람인데….”
그녀가 중얼거렸다. FBI는 CIA와는 달리 개방적이었다. 교육 책임자의 이름은 타포야 박사였다. 정보수사관 200명가량이 강당에 모여 있었다. 타포야 박사가 단(壇) 위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 후버 국장 시절부터 마피아와 싸우는 FBI 영화나 소설이 많을 겁니다. 우리 FBI는 홍보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영화나 소설을 통해 사람들의 머리에 FBI가 깊숙이 각인되게 했습니다. 국민에게 사랑받지 않으면 정보기관이나 수사기관이나 그 의미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한국의 정보기관은 어떤 것인가 생각해보았다. 중앙정보부 시절부터 검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FBI에서 청취한 엘빈 토플러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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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빈 토플러. |
“여러분 범인의 집에 들어가려면 수색영장도 있어야 하고 총에 맞을 위험도 있는데 힘들지 않습니까? 앞으로는 로봇 거미를 만들어 침투시키고 외부에서 모니터로 보면 어떨까요? 이 로봇 거미가 천장이고 벽장이고 다니면서 촬영을 하고 필요하면 범인에게 독침을 쏴서 잠시 마비시켜 체포하면 편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하면 정보 수사기관의 일들이 아주 줄어들 텐데 말이죠.”
사람들이 ‘와아’ 하며 웃었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우리가 보통 인식하고 있는 미국 경찰관의 모습은 권총과 경찰봉을 배에 차고 있는 뉴욕 거리의 뚱보 이미지였습니다. 갱들의 원색적인 근육의 힘에 대응하는 국가 공권력의 상징이었죠. 그러나 권총이나 방망이로 상징되는 그런 경찰관의 모습이 유물로 되는 세상입니다. GPS 시스템을 개발하면 어디에 있는 누구라도 추적할 수 있습니다. 인공위성에서 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셀룰러 폰의 건전지를 자극하면, 폭발하게 돼 범인들을 제압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정보화·과학화 되는 세계가 될 것입니다.”
그가 잠시 말을 쉬었다. 사람들은 그의 다음 말을 기다리며 시선을 그에게 집중했다.
“여러분 재미있는 얘기 한두 가지 더 해볼까요? 요즈음 핵폐기물을 처리하느라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 야단인데 그걸 값싸게 처리할 방법을 알려드릴까요? 이미 우리 미국에서 대기권 밖으로 로켓을 쏘아 올리는 건 그 비용이 얼마 되지 않는 단계에 와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그 가격이 파격적으로 줄어들 겁니다. 그렇게 되면 핵폐기물을 로켓으로 전부 대기권 밖으로 쏴 올려서 우주에다 버리는 겁니다. 나중에 우주인들이 우주의 공해 문제를 들고 항의하러 올 때까지는 안심 아닙니까? FBI 영화를 보면 사람들이 다쳐서 병원에서 수술하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앞으로는 얼마든지 인공장기들이 생산되어 나올 겁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같이 불편한 방탄조끼를 입지 않고 일을 보고 만약 장기가 다치면 바로 앰뷸런스로 들어가 장기를 갈아 끼우면 되지 않을까요?”
아이디어가 톡톡 튀던 엘빈 토플러
엘빈 토플러는 아이디어가 톡톡 튀는 미래를 보는 사람이었다. 그의 강연은 계속됐다.
“이번에는 문제를 넓혀 국제적으로 가봅시다. 얼마 전 도쿄에 간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느낀 점인데 일본은 우리 미국이 겁을 낼 정도로 새로운 병기(兵器)를 연구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반면에 우리 미국은 고루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우리 미국도 각성하고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점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맨 앞줄에 앉아 있던 작달막한 일본인이 손을 번쩍 들었다. 50대쯤으로 보이는 일본 외무성에서 왔다는 작달막한 남자였다. 엘빈 토플러가 말해보라고 했다. 일본인이 더듬거리는 영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 일본은 아무런 병기도 생산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그 말에 대해 해명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듣고 엘빈 토플러가 대답했다.
“제가 도쿄 시내를 다니면서 여러 서점을 둘러봤습니다. 서가(書架)에서 일본의 10년 앞부터 시작해서 ‘100년 후의 일본’ 등 엄청난 미래 연구 서적들을 발견했습니다. 앞을 내다보면서 대비하자는 내용들이었죠. 반면에 미국은 뉴욕부터 시작해서 여러 주의 서점들을 보면 몇백 년도 되지 않은 미국 역사책만 쌓여 있더라고요. 과거에 잡혀 있는 미국과 미래를 연구하는 일본은 다르다는 생각을 했어요. 미래를 미리 내다보면서 대책을 강구하는 일본의 그런 행동은 핵무기보다 무섭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일본에 우리가 모르는 비밀병기가 있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청중 사이에서 박수가 쏟아져나왔다. 미래를 보는 미국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미국에서 돌아오자 정보기관을 개혁하려던 박세직 안기부장이 자리에서 물러나고 없었다. 후임 안전기획부장은 정보기관 개혁에 흥미가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개혁은 흐지부지됐다.
미국과 일본의 정보기관과 한국 정보기관은 정말 큰 차이가 있었다. 정보기관 사람들은 뼛속까지 정치로 물들어 있었고, 신분증만 내밀면 사람들이 그 앞에서 무릎을 꿇는 권력의 맛에 젖어 있는 것 같았다. 젊은 엘리트층으로 조직이 대폭 바뀌어야 건강해질 것 같았다.
미국에서 돌아온 후 나는 정말 특수한 부서로 발령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