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국가의 대통령이든 국가를 이끄는 자들이 검사 공격에 가담하고 독설을 내뱉고, 정의를 추구하는 자들을 악마로 몰아붙이면, 정의는 위태로워지고 정의에 대한 신념도 파괴된다”
⊙ “누군가가 정치적으로 적이냐 동지냐에 따라, 정의의 개념도 달라지고 있는 듯”
⊙ “절차상 허용된 권한을 무조건 최대로 행사하는 리더는 독재자가 될 것”
⊙ “부패한 권력자를 법정에 세우는 것은, 국민에게 정의에 대한 신념 심어줘”
⊙ “검사들은 대중이 희망이나 미움을 쏟아붓는 빈 그릇 같은 존재”
⊙ “누군가가 정치적으로 적이냐 동지냐에 따라, 정의의 개념도 달라지고 있는 듯”
⊙ “절차상 허용된 권한을 무조건 최대로 행사하는 리더는 독재자가 될 것”
⊙ “부패한 권력자를 법정에 세우는 것은, 국민에게 정의에 대한 신념 심어줘”
⊙ “검사들은 대중이 희망이나 미움을 쏟아붓는 빈 그릇 같은 존재”
문재인(文在寅) 정권과 오랫동안 갈등을 빚어온 윤석열(尹錫悅) 검찰총장이 결국 지난 3월 4일 그 직(職)을 던졌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검찰의 수사권과 공소권을 분리함으로써 사실상 검찰 수사권을 박탈하는 입법을 추진한 것이 그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경찰에게 수사권을 주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만들더니, 그나마 남아 있던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것을 두고 혹자는 ‘검찰개혁’이라고 부른다. 그 ‘검찰개혁’을 열성적으로 추진하거나 지지하는 자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검찰 수사 대상이었거나, 지금도 수사 대상이라는 사실은 차라리 코미디다. ‘검찰개혁’을 주장하는 자들은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검찰이 수사하지 않는다”는 둥 해가며 그 정당성을 강변하고 있는데, 견강부회(牽强附會)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 빈축을 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생각나는 책이 있다. 작년 말에 읽었던 프릿 바라라의 《정의는 어떻게 실현되는가(원제: Doing Justice)》라는 책이다. 제목만 보면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처럼 정의(正義)에 대해 탐구하는 철학서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솔직히 말해 그런 책이었다면, 이 책에 손이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표지 위에 적힌 ‘사회정의와 공정함의 실천에 관한 한 검사의 고뇌’라는 문구가 눈길을 끌었다. 추미애(秋美愛) 전 법무부 장관의 ‘윤석열 찍어내기’의 여진(餘震)이 계속되고 있을 때였기 때문일 것이다.
‘황태자 지검ʼ
저자는 2009~2017년 미국 뉴욕남부지검장을 지낸 프릿 바라라다. 미국 건국과 함께 설립된 뉴욕남부지검은 미국의 92개 연방검찰청(뉴욕주 검찰청이 아니다!) 가운데서도 ‘황태자 지검(地檢·Sovereign District)’이라고 불릴 정도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곳이다. 헨리 스팀슨(1867~1950년, 국무장관·육군장관 역임) 같은 쟁쟁한 인물들이 뉴욕남부지검장 자리를 거쳐간 것만 보아도 그 무게감을 느낄 수 있다. 프릿 바라라는 2009년부터 뉴욕남부지검장을 맡아 테러, 마약 및 무기 밀매, 금융·의료보험사기, 공직자 부패, 조직폭력, 마피아, 시민권 침해 사건 등 수많은 사건을 지휘해 이름을 떨쳤다. 2012년 《타임》은 그를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했다. 《뉴욕타임스》는 그를 ‘미국에서 가장 저돌적이고 거침없는 검사’라고 평했다. 2016년 11월 대통령에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는 당선인 시절 프릿 바라라에게 그 자리에 좀 더 머물러 달라고 요청했지만, 이듬해 3월 돌연 “오바마의 검사들은 모두 짐을 싸라”며 그를 해임했다. 이후 프릿 바라라는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에 칼럼을 기고하는 한편, 브레넌정의센터가 조직한 ‘법치와 민주주의에 관한 특별위원회’ 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正義ʼ의 개념이 뒤집힌 시대
서문을 펼치는 순간, 다음과 같은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법치지배’ ‘적법절차’ ‘무죄추정’과 같은 표현 및 개념은 요즘 시대에 기본원칙보다는 정치 슬로건으로 쓰이는 듯하다. 또한 다른 훌륭한 원칙들도 본래 의미와는 다르게 쓰이는 것 같다. 요즘에는 경쟁자와 교류하기보다 그들을 악마로 만드는 것을, 그리고 비판자들을 설득하기보다 때려눕히는 것을 선호하는 것 같다. 또 진실과 전문성을 점점 경멸하는 분위기다. 우리는 거짓에 둘러싸여 있고, 절대로 거짓을 바로잡지 않는다. 또 정의의 개념도 뒤집힌 것 같다. 누군가가 정치적으로 적이냐 동지냐에 따라, 정의의 개념도 달라지고 있는 듯하다.”
‘어라, 이거 지금 우리나라에서 실시간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얘기하고 있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릿 바라라의 말은 이렇게 이어진다.
“특정 규범들은 분명 중요한 가치를 담고 있다. 우리의 경쟁상대는 적이 아니라는 것, 법은 정치적 무기가 아니라는 것, 객관적 진실은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 공정한 절차는 문명사회의 필수라는 것 등이다.
결국 우리는 법을 통해 진실과 존엄과 정의를 배운다. 또한 의견충돌과 논쟁을 해결하되, 조롱과 인신공격이 아닌 이성과 근거로 해결하는 방법을 배운다. 요즘 대중 사이에서 논쟁으로 통하는 것들 중에는 법정에 가면 제대로 된 주장으로 취급받지 못할 만한 것이 많다. 또 정치인과 TV 논평가들의 의견도 법정에서라면 진실을 왜곡하고 노골적인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할 만한 것이 적지 않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연방법정은 트위터가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이런 현실에 우려를 표한다. 당연히 위기감도 존재한다. 이런 위기의식 속에서 우리는 숨을 한번 깊이 내쉬고 한 발 뒤로 물러나, 정의를 어떤 식으로 실현해야 하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과장되고 분노 섞인 발언과 차분한 사고에서 나온 주장이 어떻게 다른지도 비교해봐야 한다. 참된 학습은 이러한 비교 위에서 이뤄진다.”
美 검찰도 수사를 한다
책의 첫 두세 페이지를 읽었을 뿐인데도 ‘아, 이 책은 지금 내가 읽어야 할 책이구나’ 하는 느낌이 팍 왔다. 이후 며칠 동안은 그야말로 이 책에 푹 빠져서 보냈다.
이 책은 ‘수사-기소-판결-처벌’이라는 사법(司法) 절차의 순서에 따라 서술되어 있다. 저자는 매 단계에서 어떤 형태로 정의가 이루어지는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검사와 수사관, 판사, 배심원들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다양한 체험을 들어가면서 상술(詳述)한다. 이 책의 구성만 봐도 미국 검찰이 수사와 기소를 모두 담당하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근래 우리나라에서는 “미국 검찰은 수사는 하지 않는다”는 식의 괴담(怪談)이 횡행하고 있는데, 저자 프릿 바라라가 그런 소리를 들으면 뭐라고 할지 궁금해진다.
저자가 책 앞머리에서부터 일관되게 강조하는 것은 “올바른 일을, 올바른 방법으로, 올바른 이유를 위해 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사람들은 결과에 이르는 과정이 공정하고, 그 과정을 책임진 자들의 태도가 공정하다고 여길 때, 그 결과도 정당하다고 믿는다”고 역설한다.
오늘날 우리는 ‘정권이 올바르다고 주장하는 일을, 올바르지 못한 방법으로, 올바르지 못한 이유를 위해’ 하는 모습을 거의 매일같이 보고 있다. 검찰과 법무부 간부들이 위조서류까지 동원해가면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출국을 막기 위해 법석을 떤 것이 그 좋은 예이다.
문재인 정권이 180여 석이라는 절대다수 의석만 믿고 ‘법의 탈을 쓴’ 반(反)법치적 법률들을 양산(量産)해내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역사왜곡금지법, 공수처법을 만들더니, 이제는 ‘가짜 뉴스’를 잡겠다는 명분으로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입법을 강행하고 있다.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여당이 급히 통과시킨, 예타(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내용으로 하는 가덕도공항특별법 역시 정의나 공정과는 거리가 먼 법이다. 저자는 “훌륭한 조리법이 맛있는 음식을 보장하지 못하듯, 현명한 법도 정의를 장담하지는 못한다”고 말하는데, 앞에서 거론한 법들은 아예 ‘어리석고 사악한 법’들이다. 당연히 정의와는 거리가 먼 법들이다.
“주장으로부터 사실을 끌어내면 안 된다”
이 책을 특히 재미있게 읽었던 이유 중 하나는 실체적(實體的) 진실을 찾아가는 검사와 수사관들의 모습이 기자들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예컨대 저자는 수사의 첫 번째 원칙으로 ‘열린 자세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언제나 사실로부터 주장을 끌어내는 것이지, 주장으로부터 사실을 이끌어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월간조선》 기자들이 조갑제 전 편집장으로부터 귀에 못이 박이게 들었던, “기자는 사실(팩트)과 이념이 충돌할 때에는, 사실의 편에 서야 한다”는 말과 통한다.
저자는 “일단 어떤 의견이나 주장에 사로잡히면, 거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각을 하기가 힘들다”면서 “몸에서 나는 열이 신체를 약하게 만들 듯, 증명되지 않은 최초의 믿음은 생각을 약하게 만들고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고 경고한다.
수사에 있어서 선입견에 사로잡히지 말라고 강조하는 말이지만, 이 말은 기자는 물론 위정자(爲政者)들, 정치인들도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많은 혼란은 대부분 ‘주장으로부터 사실을 이끌어내려는’ 문재인 정권의 행태, ‘증명되지 않는 최초의 믿음’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소위 소주성(소득주도성장), 25회에 달하는 실패한 부동산정책, 굴종적인 대북(對北)정책,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하는 대일(對日)외교 등….
‘호기심과 질문’에 대해 강조하는 대목 역시 기자에게도 유용하다.
“형벌의 세계에서는 한 사건에 대해 수많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 낭패와 실수, 오심(誤審)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된다. 사건은 증거를 배제할 때보다 질문을 배제하는 경우 더욱 손상되기 쉽다. 이는 진실 추구와 관련해 대단히 중요한 노력에 해당된다.”
“많은 질문들을 최소 두 번은 물어야 하고 경우에 따라 세 번까지도 물어야 하며, 상대방이 질문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그리고 내가 답변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매번 표현을 바꿔가며 물어야 한다.”
기자가 초년병 시절 선배로부터 “좋은 질문이 좋은 대답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배웠던 것과 상통한다. 사실 기사와 관련해 기자가 나중에 낭패에 처하게 되는 것은, 대개는 ‘질문을 배제’한 데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저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똑똑한 질문은 좋다. 멍청한 질문은 더욱 좋다”고 말한다.
“소위 말하는 멍청한 질문은 보통 기초적인 질문이다. 그런 질문은 기본과 핵심을 건드린다. 멍청한 질문은 논리의 피상적 측면을 드러내고 조악한 논리를 들춰내며 거짓 전문가를 폭로한다.”
사기꾼과 포퓰리스트
‘열린 자세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저자는 하산 네마지, 버나드 매도프 등 정·관계 각계각층에 거대한 커넥션을 갖고 있던 금융계 거물들의 사기사건을 예로 들며 이렇게 말한다.
“씁쓸한 진실이지만, 똑똑하고 세련되며 부유한 전문가들이 (일종의 역차별로) 외모, 자질, 인맥을 보고 누군가에 대한 안이한(그리고 큰 대가를 치르는) 판단을 내린다는 점이다. 사실 아주 간단한 조사만으로도 사기꾼의 정체는 쉽게 드러나는 데도 말이다.”
이 점에서도 기자는 수사관들과 통한다. 기자도 사람인지라 번지르르한 외모나 언변에 속아 넘어갈 때도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사기꾼에게 속지 않는 방법도 조언한다.
“이러한 교묘한 사기꾼들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그들이 접근했을 때 모두가 질문을 던지고 증거를 요구하고 그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것과 같이 경계심을 늦추지 않아야 한다. 이런 경계심이 때론 불쾌한 상황을 낳겠지만, 사기 행각을 막으려면 이런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너무 뻔한 조언 같지만, 사기꾼들은 적절한 질문을 하지 않는 ‘매우 세련된’ 사람들에게 매일같이 사기를 친다는 것을 기억하자.”
이 대목에서 기자는 정치적 사기꾼들, 즉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코로나 지원금이라는 이름으로, 기본소득이라는 이름으로 수십조, 수백조 원을 기꺼이 풀겠다고 호언하는 자들에게 우리는 “그 많은 돈은 어디서 나오느냐”고 질문을 던져야 한다. 하루아침에 예타 면제까지 해가면서 바닷바람 거센 섬 주변을 메워서 국제공항을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하는 자들에게 그 공항이 안전하다는 증거를 요구해야 한다. 좋은 게 좋다고 웃는 얼굴로 넘어갈 때, 우리는 그들에게 사기를 당하는 것이다.
‘열린 자세’로 再考할 줄 알아야
수사 과정에서 ‘열린 자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연장선상에서 저자는 “오류에 빠지기 쉬운 인간이 불완전한 시스템에서 일하다 보면, 초반에 잘못된 판단을 하기 쉽다. 이러한 초기의 오판(誤判)은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도 “다행인 것은, 많은 경우 그 경로를 다시 되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단, 여기에는 조건이 하나 있다. ‘충분한 재고(再考)’가 그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그 ‘재고’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도 인정한다.
“일단 어떤 의견이 형성되면 단념하기가 어렵다. 또한 어떤 결론이 널리 알려지면 철회하기가 힘들다. 한 연구에 따르면 사건의 목격자들은 처음에 인지(認知)한 것을, 의사들은 처음에 진단한 것을, 변호사들은 소송사건에 대한 첫 번째 평가를 바꾸지 않고 고수한다고 한다.”
어디 목격자, 의사, 변호사들만 그런가? 위정자,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대통령만 해도, 소주성(소득주도성장)이 실패로 돌아갔지만 장하성-김수현-김상조로 이어지는 ‘그 밥에 그 나물’ 인사를 되풀이하고 있지 않은가? 국토교통부가 25회나 부동산대책을 내놓아도 실패를 거듭한 것은 ‘부동산을 시장에 맡기지 않겠다’는 잘못된 기조(基調)를 바탕으로 하면서 이를 ‘재고’하기를 한사코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재고는 어려운 반면, 확증은 쉽다. 어떤 사람이 믿을 만하다 싶은 결론을 내놓았거나 이미 내린 결론이 있는 경우, 열린 자세를 유지하기란 훨씬 어렵다”면서 “특히나 그것이 전문가나 윗사람의 견해라면, 이를 거스르면서까지 입장을 바꾸는 경우는 흔치 않다”고 말한다. 이 역시 잘못된 정책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의 아집(我執) 때문에 정책 전환은 꿈도 꿀 수 없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상황에 대한 묘사처럼 보인다. 저자는 말한다.
“그렇지만 법과 질서를 놓고 판단할 때, 또는 이것이 생사가 걸린 판단일 때, 우리는 맨 처음 내린 판단을 넘어설 수 있는 열린 자세를 갖춰야 한다. 언제나 모든 결론을 의심하고 수정할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이 바로 그런 지도자였다. 박 전 대통령은 5·16혁명으로 집권한 후 한동안 수입대체산업 육성을 통한 내포적(內包的) 산업화 노선을 추구했다. 당시 민족적·진보적 지식인들도 대부분 같은 생각이었다. 1962년 화폐개혁도 그러한 노선의 산물이었다. 하지만 기대했던 성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1963년경부터 경공업 분야를 중심으로 수출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전 세계적 차원에서의 산업구조 개편 덕분에 예기치 않게 닥쳐온 행운이었다. 그 무렵 새로 임명된 장기영(張基榮)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이나 김정렴(金正濂) 같은 경제관료들이 이때를 놓치지 않고 수출주도성장이라는 새로운 정책을 건의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한강의 기적’은 대통령이 자신의 실패를 기꺼이 인정하고, 과감하게 정책을 전환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마피아 범죄 수사관의 힘의 원천
이 책에는 검사, 수사관, 교도관, 공무원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 때문에 직장이나 사회생활을 위한 가이드북, 혹은 리더십 교과서로 읽을 수 있는 대목도 적지 않다. 이 책에는 마피아 전문 수사관으로 이름을 떨친 케네스 매케이브라는 전설적 수사관의 이름이 여러 번 나온다. 저자는 그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
“그는 요령을 부리지 않았고, 허풍을 떨지 않았으며, 실패해도 남 탓을 하지 않았다. 그는 직분에 충실하다 보면 반드시 결실을 얻는다고 믿었다. 매일매일 힘들고 지루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내 일이 하찮아 보이고 또 나와 급이 안 맞거나 내 재능을 썩히는 일 같아 보여도 성실하게 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 케네스는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려 문제를 해결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런 소리를 하면 요즘 젊은이들은 ‘노오력’(‘노력’을 강조하는 기성세대의 충고에 대해 젊은이들이 비꼬는 말)이라며 반발하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사는 것이 왕도(王道)라는 것을 세상 살아본 이들은 안다.
저자의 전임자 중 한 사람인 데이비드 켈리 검사는 마피아도 케네스 매케이브를 존경했다면서 “마피아들은 원칙을 가장 중시해. 케네스는 거짓말을 하는 법이 없었지. 조직원들에게 늘 정직한 모습을 보였어. 그들을 체포할 때도 보란 듯이 정정당당하게 체포했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저자는 또 이렇게 말한다.
“케네스의 힘은 억센 팔뚝과 건장한 체격보다는 그의 강직한 성품에서 나왔다. 그는 강인함은 거친 행동이 아니라, 올곧은 태도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케네스는 자신이 강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사람은 사실 강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았다. 또 자신이 두려워할 만한 존재임을 드러내는 사람도 진짜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면서 저자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미국 대통령의 말을 소개한다.
“머리를 쥐어박는다고 사람들이 따라오지는 않는다. 그것은 폭행이지 리더십이 아니다.”
거짓말하는 대법원장, 빈말을 일삼다가 때때로 자기가 ‘진노(震怒)’했다고 흘리는 대통령, 법 같지 않은 법들을 양산하면서 자기들을 두려워하라고 국민들을 겁박하는 여당 국회의원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말 아닐까?
리더의 ‘자기의심’
리더십과 관련해 귀담아들을 만한 이야기가 또 있다. 저자는 “효과적인 질문 던지기에 따르는 고뇌는 직책이 올라간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면서 “관리자와 상급자가 질문을 피하면 조직은 훨씬 더 위험해진다”고 경고한다.
저자는 자기가 처음에 뉴욕남부지검장이 됐을 때 “매우 불안하고 두렵고 역량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뉴욕남부지검의 전통에 누(累)가 되고 지검장이라는 직책에 부적합하다는 것이 드러나고, 나를 응원해준 사람들을 실망시킬까 봐 겁이 났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그는 “지검장을 맡은 지 몇 년이 지나고, 모든 것이 꽤 순조롭게 굴러가고 있었지만 두려운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런 두려움을 잊어버리는 순간, 이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적절한 자기의심은 삶을 마비시키는 게 아니라 삶에 활력을 주고 의욕을 불어넣는다. 자기의심을 전혀 안 하는 리더들은 오랫동안 리더 자리를 지키지 못하며, 그 자리를 지키더라도 조직을 위험에 빠뜨리는 경우가 많다. 지검장으로서의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나는 자기의심이 진정 동지이고, 자만이 최고의 적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조직의 리더가 ‘자기의심’을 할 줄 모르면 조직을 위험에 빠뜨리겠지만, 국가의 최고 리더가 그렇다면 그는 나라를 위험에 빠뜨릴 것이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 저자는 말한다.
“남의 말을 경청한다면, 그리고 멍청한 질문이 문제의 핵심을 건드린다면 어떤 질문을 던져도 괜찮다. 그런 질문이 내 무지를 드러내더라도, 문제의 초점을 명확히 해주기 때문이다. 당신이 매우 기본적인 질문을 던졌는데, 주변에서는 당신이 당연히 그 답을 알고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어서 놀라워했다고 하더라도 그게 뭐 대수인가? 당신은 조직을 잘 이끌고 있는 것이다. 부족한 지식은 금세 채워진다. 내가 꼭 알아야 할 어떤 사실을 알고 싶어 하고, 알려고 신경 쓰는 한, 잘 모른다고 해도 상관없다. 호기심과 질문은 건전한 리더십을 떠받드는 매우 중요한 기둥 중 하나다.”
박근혜(朴槿惠) 전 대통령은, 자신의 무지(無知)가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해서 장관은 물론 국정원장, 심지어 비서실장이나 수석비서관들과 만나는 것도 꺼려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믿고 싶지 않은 얘기다. 박 전 대통령이 프릿 바라라의 이 책을 읽고 가슴에 새겼더라면 그를 위해서나 이 나라를 위해 얼마나 다행이었을까?
속죄양 찾기
이 책은 수사 이후의 단계, 즉 기소・판결・처벌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기소는 수사와는 ‘형사 절차에서 뚜렷이 구분되는 다음 단계’다. 그렇다고 해서 기소가 검찰의 손을 떠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기소 단계에서 저자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수사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의심’이다.
“범죄자에게 책임을 묻고,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시키며, 사회에 질서를 세우기 위해 우리는 액셀을 밟아야 한다. 그렇지만 때로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점검하고, 재고하고, 자신의 분석에 의문을 품어야 한다. 브레이크를 적절하게 밟으면 생명도 구하지 않는가.”
이는 기소에 대한 충고이기는 하지만, 이제 브레이크를 밟기 시작해야 할 임기 5년 차에 여전히 액셀을 밟고 있는 현 집권세력이 귀담아들어야 할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수사 및 기소와 관련해, 저자는 검찰 내외의 압력에 대해서도 경고한다.
“불미스런 사건이 터지면 정치인, 언론인, 대중은 모두 손쉽게 물어뜯을 속죄양(贖罪羊)을 찾는다. 이런 분위기는 전염성이 매우 강해서 공정한 수사도 여기에 감염될 수 있다.”
“외부의 압박 말고도 똑같이 위험하고 용납하면 안 되는 내부의 압박이 때로 존재한다. 그런 상황은 조직의 리더가 어떤 결과물을 내놓으라고 (무심코 한 말이더라도) 압박할 때 벌어진다.”
저자는 “분명 모든 범죄수사의 목적은 진상을 밝히고 진실을 찾는 것이다. 그렇지만 많은 경우 수사의 모든 단계와 국면이 도덕적 어젠다로 채색(彩色)된다. 즉 범법(犯法)행위나 유해(有害)행위에 대해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라면서 “궁극적으로 법률상 범죄로 인정되지 않거나 그 혐의를 입증(立證)할 수 없는 경우라도 사람들은 처벌을 원한다”고 개탄한다.
이 또한 많이 보아온 모습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적폐(積弊)수사’라는 것들이 바로 ‘물어뜯을 속죄양’을 찾는 정치인, 언론인, 대중의 선동(煽動)에 의한 것이었다. 하지만 검찰의 칼날이 ‘살아 있는 권력’을 향하자 정권과 그들의 홍위병(紅衛兵)들은 이제 검찰을 ‘적폐세력’으로 몰고 있다. 지금 검찰이 처한 위기는 어쩌면 업보(業報)일지도 모른다.
‘그놈을 잡아 가둬라!’
검사는 기소만 하는 게 아니라 불기소도 한다. 이는 저자가 말하듯이, 재량(裁量), 판단, 지혜, 절제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다. 여기서 저자는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한다.
“법률과 헌법에 보장된 권한은 논쟁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 직무상 권한은 그냥 휘두르는 게 아니라, 공정성과 비례성(比例性)의 원칙에 따라 발휘해야 한다. 이는 물론 모든 리더들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다. 그 이유는 절차상 허용된 권한을 무조건 최대로 행사하는 리더는 독재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코로나19 방역과 관련된 문재인 정권의 행정권이나 경찰권의 자의적(恣意的) 행사를 떠올리게 된다. 공정성과 비례성의 원칙은 실종되고, 절차상 허용된 권한을 무조건 최대로 행사하는 모습 … 그것을 저자는 ‘독재자’로 연결시키고 있는데, 틀린 말은 아니다.
저자는 “최근 들어 불기소를 둘러싼 비판들에 정치적 선입견(先入見)이 가득하다”면서 “‘그놈을 잡아 가둬라!’라는 외침은 증거와 법조문에 대한 냉정한 평가보다는 당파성(黨派性)을 띠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가 말하는 ‘외침’ 또한 ‘적폐수사’나 ‘재벌수사’ 등과 관련해 불기소나 불구속 결정, 집행유예나 보석(保釋) 등이 있을 때마다 흔히 터져 나오는 외침이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똑 부러지게 지적한다.
“권력과 자산이 있는 사람은 책임지는 경우가 드물고, 또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도 처벌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대중의 인식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보기 드문 사건들 때문에 기본적인 범죄 입증 기준을 변경한다면, 그러한 법률과 절차를 모든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해야 한다. 분통 터지는 특정한 사기행각 때문에 이제부터 고의성과 범행 의도를 입증할 필요가 없다고 법으로 정해버리면, 그리고 그 법을 세심하게 다듬지 않으면, 우리 자신부터 훨씬 견디기 힘든 법률제도에 놓일 위험이 있다.”
미국에도 ‘법관 사찰’이 있다?
기소 다음 단계는 당연히 재판이다. 재판에 대한 장(章)에서 저자가 제일 먼저 언급하는 것은 ‘판사’에 대한 것인데, 흥미로운 구절이 하나 있다.
“판사는 재판 절차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재판의 흐름을 좌우하며, 진실 발견과 정의 추구를 앞당기거나 훼방 놓을 수 있다. 판사의 존재감, 성품, 성향은 법정에서 펼쳐질 드라마에 녹아든다. 부주의하거나 무신경한 판사는 재판에 부당한 영향력을 손쉽게 행사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어떤 소송이 있을 때 검사들이 제일 궁금해하는 것은 ‘판사가 누구인가’이다. 판사의 정체성(正體性)이 중요하지 않다는 통념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합리적인 현직 법조인 (기소를 맡든 변호를 담당하든) 중에서 이와 다른 소리를 하는 사람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판사 개인의 특성과 성향을 고려하지 않는 재판 관련자는 일종의 법적 과실(過失)을 저지르는 것이다.”
지난해 11~12월 검찰이 《법조인대관》에 실린 수준의 법관 인적 사항, 재판 스타일, 공판 검사들의 평가 등을 담은 문건을 작성했다고 당시 법무부 장관과 일부 언론이 ‘법관 사찰(査察)’ 운운하면서 난리를 쳤던 것이 얼마나 코미디 같은 일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의는 깨지기 쉽다
미국도 트럼프 정권을 전후(前後)해서 정치적 양극화(兩極化)가 심해졌다. 이는 지난해 미국 대선(大選) 이후 그 결과에 불복하는 트럼프 지지세력에 의해 의회의사당이 점거되는 사태로까지 번졌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검사에 대한 정치적 공격도 나타났다. 인도계 미국인으로 다소 리버럴 성향을 띠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저자 역시 그런 공격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저자는 또 뉴욕남부지검이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측근인 제라 자라브를 기소한 사건 때문에 터키 정부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자라브는 2013년 에르도안 정권의 각료 및 그 아들들이 연루된 부패사건으로 터키에서도 기소된 적이 있는 자였다. 에르도안은 이들이 기소되자 ‘사법쿠데타’라고 비난하면서, 이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관과 검사, 유죄판결을 내렸던 판사들을 축출하거나 체포했다. 사법부와 검찰은 정권에 고분고분한 판검사들로 물갈이됐다. 저자는 자라브 사건과 관련된 교훈 두 가지를 이야기한다.
“첫째는 정의가 깨지기 쉽다는 것이다. … 어느 국가의 대통령이든 국가를 이끄는 자들이 검사 공격에 가담하고 독설을 내뱉고, 정의를 추구하는 자들을 악마로 몰아붙이면, 정의는 위태로워지고 정의에 대한 신념도 파괴된다. 또 그렇게 선을 넘으면, 단지 비난에서 벗어나 권력을 남용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 된다. 에르도안이 2013년에 자신의 동지들에 대한 수사를 무마하려고 한 이래로, 터키는 점점 더 독재국가로 전락했다. 터키 정부가 언론을 탄압하면서 언론의 자유는 더욱 축소됐다. … 터키가 독재국가로 전락하는 안타까운 과정에서 결정적이었던 사건은, 정당하게 제기된 형사소송에 개인적으로 개입하려 한 에르도안의 결정이 있었다는 점이다.”
정의에 대한 갈망
꼭 대한민국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진다. 하지만 저자는 희망도 이야기한다.
“두 번째 교훈은 사람들이 정의를 갈망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의가 실현되기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 즉 권력과 특권이 있다고 해서 책임과 처벌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인식, 부패에 맞서 싸울 수 있다는 기대, 그리고 불의에 맞서 용감히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는 희망이다. 이는 정직한 정부와 법치주의에 대한 갈망이 보편적이라는 것임을 보여준다.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은 정부, 취임선서를 소중히 여기는 정직한 공직자는 시민의식이 있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국가에 기대하는 바이기 때문이다. 부패한 권력자를 법정에 세우는 것은, 크고 작은 모든 사건을 막론하고 국민에게 정의에 대한 신념을 심어준다.”
그러면서 저자는 말한다. “검사들은 때로 대중이 그 희망이나 미움을 쏟아붓는 빈 그릇 같은 존재”라고….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한 국민의 환호나 비난 역시 그런 것이 아닐까?⊙
이런 상황에서 생각나는 책이 있다. 작년 말에 읽었던 프릿 바라라의 《정의는 어떻게 실현되는가(원제: Doing Justice)》라는 책이다. 제목만 보면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처럼 정의(正義)에 대해 탐구하는 철학서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솔직히 말해 그런 책이었다면, 이 책에 손이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표지 위에 적힌 ‘사회정의와 공정함의 실천에 관한 한 검사의 고뇌’라는 문구가 눈길을 끌었다. 추미애(秋美愛) 전 법무부 장관의 ‘윤석열 찍어내기’의 여진(餘震)이 계속되고 있을 때였기 때문일 것이다.
‘황태자 지검ʼ
저자는 2009~2017년 미국 뉴욕남부지검장을 지낸 프릿 바라라다. 미국 건국과 함께 설립된 뉴욕남부지검은 미국의 92개 연방검찰청(뉴욕주 검찰청이 아니다!) 가운데서도 ‘황태자 지검(地檢·Sovereign District)’이라고 불릴 정도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곳이다. 헨리 스팀슨(1867~1950년, 국무장관·육군장관 역임) 같은 쟁쟁한 인물들이 뉴욕남부지검장 자리를 거쳐간 것만 보아도 그 무게감을 느낄 수 있다. 프릿 바라라는 2009년부터 뉴욕남부지검장을 맡아 테러, 마약 및 무기 밀매, 금융·의료보험사기, 공직자 부패, 조직폭력, 마피아, 시민권 침해 사건 등 수많은 사건을 지휘해 이름을 떨쳤다. 2012년 《타임》은 그를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했다. 《뉴욕타임스》는 그를 ‘미국에서 가장 저돌적이고 거침없는 검사’라고 평했다. 2016년 11월 대통령에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는 당선인 시절 프릿 바라라에게 그 자리에 좀 더 머물러 달라고 요청했지만, 이듬해 3월 돌연 “오바마의 검사들은 모두 짐을 싸라”며 그를 해임했다. 이후 프릿 바라라는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에 칼럼을 기고하는 한편, 브레넌정의센터가 조직한 ‘법치와 민주주의에 관한 특별위원회’ 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正義ʼ의 개념이 뒤집힌 시대
![]() |
프릿 바라라 전 뉴욕남부지검장. |
“‘법치지배’ ‘적법절차’ ‘무죄추정’과 같은 표현 및 개념은 요즘 시대에 기본원칙보다는 정치 슬로건으로 쓰이는 듯하다. 또한 다른 훌륭한 원칙들도 본래 의미와는 다르게 쓰이는 것 같다. 요즘에는 경쟁자와 교류하기보다 그들을 악마로 만드는 것을, 그리고 비판자들을 설득하기보다 때려눕히는 것을 선호하는 것 같다. 또 진실과 전문성을 점점 경멸하는 분위기다. 우리는 거짓에 둘러싸여 있고, 절대로 거짓을 바로잡지 않는다. 또 정의의 개념도 뒤집힌 것 같다. 누군가가 정치적으로 적이냐 동지냐에 따라, 정의의 개념도 달라지고 있는 듯하다.”
‘어라, 이거 지금 우리나라에서 실시간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얘기하고 있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릿 바라라의 말은 이렇게 이어진다.
“특정 규범들은 분명 중요한 가치를 담고 있다. 우리의 경쟁상대는 적이 아니라는 것, 법은 정치적 무기가 아니라는 것, 객관적 진실은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 공정한 절차는 문명사회의 필수라는 것 등이다.
결국 우리는 법을 통해 진실과 존엄과 정의를 배운다. 또한 의견충돌과 논쟁을 해결하되, 조롱과 인신공격이 아닌 이성과 근거로 해결하는 방법을 배운다. 요즘 대중 사이에서 논쟁으로 통하는 것들 중에는 법정에 가면 제대로 된 주장으로 취급받지 못할 만한 것이 많다. 또 정치인과 TV 논평가들의 의견도 법정에서라면 진실을 왜곡하고 노골적인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할 만한 것이 적지 않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연방법정은 트위터가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이런 현실에 우려를 표한다. 당연히 위기감도 존재한다. 이런 위기의식 속에서 우리는 숨을 한번 깊이 내쉬고 한 발 뒤로 물러나, 정의를 어떤 식으로 실현해야 하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과장되고 분노 섞인 발언과 차분한 사고에서 나온 주장이 어떻게 다른지도 비교해봐야 한다. 참된 학습은 이러한 비교 위에서 이뤄진다.”
美 검찰도 수사를 한다
책의 첫 두세 페이지를 읽었을 뿐인데도 ‘아, 이 책은 지금 내가 읽어야 할 책이구나’ 하는 느낌이 팍 왔다. 이후 며칠 동안은 그야말로 이 책에 푹 빠져서 보냈다.
이 책은 ‘수사-기소-판결-처벌’이라는 사법(司法) 절차의 순서에 따라 서술되어 있다. 저자는 매 단계에서 어떤 형태로 정의가 이루어지는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검사와 수사관, 판사, 배심원들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다양한 체험을 들어가면서 상술(詳述)한다. 이 책의 구성만 봐도 미국 검찰이 수사와 기소를 모두 담당하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근래 우리나라에서는 “미국 검찰은 수사는 하지 않는다”는 식의 괴담(怪談)이 횡행하고 있는데, 저자 프릿 바라라가 그런 소리를 들으면 뭐라고 할지 궁금해진다.
저자가 책 앞머리에서부터 일관되게 강조하는 것은 “올바른 일을, 올바른 방법으로, 올바른 이유를 위해 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사람들은 결과에 이르는 과정이 공정하고, 그 과정을 책임진 자들의 태도가 공정하다고 여길 때, 그 결과도 정당하다고 믿는다”고 역설한다.
오늘날 우리는 ‘정권이 올바르다고 주장하는 일을, 올바르지 못한 방법으로, 올바르지 못한 이유를 위해’ 하는 모습을 거의 매일같이 보고 있다. 검찰과 법무부 간부들이 위조서류까지 동원해가면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출국을 막기 위해 법석을 떤 것이 그 좋은 예이다.
문재인 정권이 180여 석이라는 절대다수 의석만 믿고 ‘법의 탈을 쓴’ 반(反)법치적 법률들을 양산(量産)해내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역사왜곡금지법, 공수처법을 만들더니, 이제는 ‘가짜 뉴스’를 잡겠다는 명분으로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입법을 강행하고 있다.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여당이 급히 통과시킨, 예타(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내용으로 하는 가덕도공항특별법 역시 정의나 공정과는 거리가 먼 법이다. 저자는 “훌륭한 조리법이 맛있는 음식을 보장하지 못하듯, 현명한 법도 정의를 장담하지는 못한다”고 말하는데, 앞에서 거론한 법들은 아예 ‘어리석고 사악한 법’들이다. 당연히 정의와는 거리가 먼 법들이다.
이 책을 특히 재미있게 읽었던 이유 중 하나는 실체적(實體的) 진실을 찾아가는 검사와 수사관들의 모습이 기자들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예컨대 저자는 수사의 첫 번째 원칙으로 ‘열린 자세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언제나 사실로부터 주장을 끌어내는 것이지, 주장으로부터 사실을 이끌어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월간조선》 기자들이 조갑제 전 편집장으로부터 귀에 못이 박이게 들었던, “기자는 사실(팩트)과 이념이 충돌할 때에는, 사실의 편에 서야 한다”는 말과 통한다.
저자는 “일단 어떤 의견이나 주장에 사로잡히면, 거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각을 하기가 힘들다”면서 “몸에서 나는 열이 신체를 약하게 만들 듯, 증명되지 않은 최초의 믿음은 생각을 약하게 만들고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고 경고한다.
수사에 있어서 선입견에 사로잡히지 말라고 강조하는 말이지만, 이 말은 기자는 물론 위정자(爲政者)들, 정치인들도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많은 혼란은 대부분 ‘주장으로부터 사실을 이끌어내려는’ 문재인 정권의 행태, ‘증명되지 않는 최초의 믿음’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소위 소주성(소득주도성장), 25회에 달하는 실패한 부동산정책, 굴종적인 대북(對北)정책,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하는 대일(對日)외교 등….
‘호기심과 질문’에 대해 강조하는 대목 역시 기자에게도 유용하다.
“형벌의 세계에서는 한 사건에 대해 수많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 낭패와 실수, 오심(誤審)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된다. 사건은 증거를 배제할 때보다 질문을 배제하는 경우 더욱 손상되기 쉽다. 이는 진실 추구와 관련해 대단히 중요한 노력에 해당된다.”
“많은 질문들을 최소 두 번은 물어야 하고 경우에 따라 세 번까지도 물어야 하며, 상대방이 질문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그리고 내가 답변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매번 표현을 바꿔가며 물어야 한다.”
기자가 초년병 시절 선배로부터 “좋은 질문이 좋은 대답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배웠던 것과 상통한다. 사실 기사와 관련해 기자가 나중에 낭패에 처하게 되는 것은, 대개는 ‘질문을 배제’한 데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저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똑똑한 질문은 좋다. 멍청한 질문은 더욱 좋다”고 말한다.
“소위 말하는 멍청한 질문은 보통 기초적인 질문이다. 그런 질문은 기본과 핵심을 건드린다. 멍청한 질문은 논리의 피상적 측면을 드러내고 조악한 논리를 들춰내며 거짓 전문가를 폭로한다.”
사기꾼과 포퓰리스트
![]() |
버나드 매도프 전 나스닥 회장. 사진=AP/뉴시스 |
“씁쓸한 진실이지만, 똑똑하고 세련되며 부유한 전문가들이 (일종의 역차별로) 외모, 자질, 인맥을 보고 누군가에 대한 안이한(그리고 큰 대가를 치르는) 판단을 내린다는 점이다. 사실 아주 간단한 조사만으로도 사기꾼의 정체는 쉽게 드러나는 데도 말이다.”
이 점에서도 기자는 수사관들과 통한다. 기자도 사람인지라 번지르르한 외모나 언변에 속아 넘어갈 때도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사기꾼에게 속지 않는 방법도 조언한다.
“이러한 교묘한 사기꾼들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그들이 접근했을 때 모두가 질문을 던지고 증거를 요구하고 그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것과 같이 경계심을 늦추지 않아야 한다. 이런 경계심이 때론 불쾌한 상황을 낳겠지만, 사기 행각을 막으려면 이런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너무 뻔한 조언 같지만, 사기꾼들은 적절한 질문을 하지 않는 ‘매우 세련된’ 사람들에게 매일같이 사기를 친다는 것을 기억하자.”
이 대목에서 기자는 정치적 사기꾼들, 즉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코로나 지원금이라는 이름으로, 기본소득이라는 이름으로 수십조, 수백조 원을 기꺼이 풀겠다고 호언하는 자들에게 우리는 “그 많은 돈은 어디서 나오느냐”고 질문을 던져야 한다. 하루아침에 예타 면제까지 해가면서 바닷바람 거센 섬 주변을 메워서 국제공항을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하는 자들에게 그 공항이 안전하다는 증거를 요구해야 한다. 좋은 게 좋다고 웃는 얼굴로 넘어갈 때, 우리는 그들에게 사기를 당하는 것이다.
‘열린 자세’로 再考할 줄 알아야
수사 과정에서 ‘열린 자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연장선상에서 저자는 “오류에 빠지기 쉬운 인간이 불완전한 시스템에서 일하다 보면, 초반에 잘못된 판단을 하기 쉽다. 이러한 초기의 오판(誤判)은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도 “다행인 것은, 많은 경우 그 경로를 다시 되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단, 여기에는 조건이 하나 있다. ‘충분한 재고(再考)’가 그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그 ‘재고’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도 인정한다.
“일단 어떤 의견이 형성되면 단념하기가 어렵다. 또한 어떤 결론이 널리 알려지면 철회하기가 힘들다. 한 연구에 따르면 사건의 목격자들은 처음에 인지(認知)한 것을, 의사들은 처음에 진단한 것을, 변호사들은 소송사건에 대한 첫 번째 평가를 바꾸지 않고 고수한다고 한다.”
어디 목격자, 의사, 변호사들만 그런가? 위정자,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대통령만 해도, 소주성(소득주도성장)이 실패로 돌아갔지만 장하성-김수현-김상조로 이어지는 ‘그 밥에 그 나물’ 인사를 되풀이하고 있지 않은가? 국토교통부가 25회나 부동산대책을 내놓아도 실패를 거듭한 것은 ‘부동산을 시장에 맡기지 않겠다’는 잘못된 기조(基調)를 바탕으로 하면서 이를 ‘재고’하기를 한사코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재고는 어려운 반면, 확증은 쉽다. 어떤 사람이 믿을 만하다 싶은 결론을 내놓았거나 이미 내린 결론이 있는 경우, 열린 자세를 유지하기란 훨씬 어렵다”면서 “특히나 그것이 전문가나 윗사람의 견해라면, 이를 거스르면서까지 입장을 바꾸는 경우는 흔치 않다”고 말한다. 이 역시 잘못된 정책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의 아집(我執) 때문에 정책 전환은 꿈도 꿀 수 없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상황에 대한 묘사처럼 보인다. 저자는 말한다.
“그렇지만 법과 질서를 놓고 판단할 때, 또는 이것이 생사가 걸린 판단일 때, 우리는 맨 처음 내린 판단을 넘어설 수 있는 열린 자세를 갖춰야 한다. 언제나 모든 결론을 의심하고 수정할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이 바로 그런 지도자였다. 박 전 대통령은 5·16혁명으로 집권한 후 한동안 수입대체산업 육성을 통한 내포적(內包的) 산업화 노선을 추구했다. 당시 민족적·진보적 지식인들도 대부분 같은 생각이었다. 1962년 화폐개혁도 그러한 노선의 산물이었다. 하지만 기대했던 성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1963년경부터 경공업 분야를 중심으로 수출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전 세계적 차원에서의 산업구조 개편 덕분에 예기치 않게 닥쳐온 행운이었다. 그 무렵 새로 임명된 장기영(張基榮)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이나 김정렴(金正濂) 같은 경제관료들이 이때를 놓치지 않고 수출주도성장이라는 새로운 정책을 건의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한강의 기적’은 대통령이 자신의 실패를 기꺼이 인정하고, 과감하게 정책을 전환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마피아 범죄 수사관의 힘의 원천
![]() |
뉴욕남부지검 로고. 뉴욕남부지검은 92개 연방검찰청 가운데 하나이다. |
“그는 요령을 부리지 않았고, 허풍을 떨지 않았으며, 실패해도 남 탓을 하지 않았다. 그는 직분에 충실하다 보면 반드시 결실을 얻는다고 믿었다. 매일매일 힘들고 지루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내 일이 하찮아 보이고 또 나와 급이 안 맞거나 내 재능을 썩히는 일 같아 보여도 성실하게 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 케네스는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려 문제를 해결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런 소리를 하면 요즘 젊은이들은 ‘노오력’(‘노력’을 강조하는 기성세대의 충고에 대해 젊은이들이 비꼬는 말)이라며 반발하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사는 것이 왕도(王道)라는 것을 세상 살아본 이들은 안다.
저자의 전임자 중 한 사람인 데이비드 켈리 검사는 마피아도 케네스 매케이브를 존경했다면서 “마피아들은 원칙을 가장 중시해. 케네스는 거짓말을 하는 법이 없었지. 조직원들에게 늘 정직한 모습을 보였어. 그들을 체포할 때도 보란 듯이 정정당당하게 체포했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저자는 또 이렇게 말한다.
“케네스의 힘은 억센 팔뚝과 건장한 체격보다는 그의 강직한 성품에서 나왔다. 그는 강인함은 거친 행동이 아니라, 올곧은 태도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케네스는 자신이 강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사람은 사실 강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았다. 또 자신이 두려워할 만한 존재임을 드러내는 사람도 진짜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면서 저자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미국 대통령의 말을 소개한다.
“머리를 쥐어박는다고 사람들이 따라오지는 않는다. 그것은 폭행이지 리더십이 아니다.”
거짓말하는 대법원장, 빈말을 일삼다가 때때로 자기가 ‘진노(震怒)’했다고 흘리는 대통령, 법 같지 않은 법들을 양산하면서 자기들을 두려워하라고 국민들을 겁박하는 여당 국회의원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말 아닐까?
리더십과 관련해 귀담아들을 만한 이야기가 또 있다. 저자는 “효과적인 질문 던지기에 따르는 고뇌는 직책이 올라간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면서 “관리자와 상급자가 질문을 피하면 조직은 훨씬 더 위험해진다”고 경고한다.
저자는 자기가 처음에 뉴욕남부지검장이 됐을 때 “매우 불안하고 두렵고 역량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뉴욕남부지검의 전통에 누(累)가 되고 지검장이라는 직책에 부적합하다는 것이 드러나고, 나를 응원해준 사람들을 실망시킬까 봐 겁이 났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그는 “지검장을 맡은 지 몇 년이 지나고, 모든 것이 꽤 순조롭게 굴러가고 있었지만 두려운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런 두려움을 잊어버리는 순간, 이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적절한 자기의심은 삶을 마비시키는 게 아니라 삶에 활력을 주고 의욕을 불어넣는다. 자기의심을 전혀 안 하는 리더들은 오랫동안 리더 자리를 지키지 못하며, 그 자리를 지키더라도 조직을 위험에 빠뜨리는 경우가 많다. 지검장으로서의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나는 자기의심이 진정 동지이고, 자만이 최고의 적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조직의 리더가 ‘자기의심’을 할 줄 모르면 조직을 위험에 빠뜨리겠지만, 국가의 최고 리더가 그렇다면 그는 나라를 위험에 빠뜨릴 것이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 저자는 말한다.
“남의 말을 경청한다면, 그리고 멍청한 질문이 문제의 핵심을 건드린다면 어떤 질문을 던져도 괜찮다. 그런 질문이 내 무지를 드러내더라도, 문제의 초점을 명확히 해주기 때문이다. 당신이 매우 기본적인 질문을 던졌는데, 주변에서는 당신이 당연히 그 답을 알고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어서 놀라워했다고 하더라도 그게 뭐 대수인가? 당신은 조직을 잘 이끌고 있는 것이다. 부족한 지식은 금세 채워진다. 내가 꼭 알아야 할 어떤 사실을 알고 싶어 하고, 알려고 신경 쓰는 한, 잘 모른다고 해도 상관없다. 호기심과 질문은 건전한 리더십을 떠받드는 매우 중요한 기둥 중 하나다.”
박근혜(朴槿惠) 전 대통령은, 자신의 무지(無知)가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해서 장관은 물론 국정원장, 심지어 비서실장이나 수석비서관들과 만나는 것도 꺼려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믿고 싶지 않은 얘기다. 박 전 대통령이 프릿 바라라의 이 책을 읽고 가슴에 새겼더라면 그를 위해서나 이 나라를 위해 얼마나 다행이었을까?
속죄양 찾기
![]() |
2017년 3월 21일 박근혜 전 대통령 검찰 출석 시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 회원들은 검찰청사 인근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 주장 시위를 벌였다. 사진=조선DB |
기소 단계에서 저자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수사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의심’이다.
“범죄자에게 책임을 묻고,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시키며, 사회에 질서를 세우기 위해 우리는 액셀을 밟아야 한다. 그렇지만 때로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점검하고, 재고하고, 자신의 분석에 의문을 품어야 한다. 브레이크를 적절하게 밟으면 생명도 구하지 않는가.”
이는 기소에 대한 충고이기는 하지만, 이제 브레이크를 밟기 시작해야 할 임기 5년 차에 여전히 액셀을 밟고 있는 현 집권세력이 귀담아들어야 할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수사 및 기소와 관련해, 저자는 검찰 내외의 압력에 대해서도 경고한다.
“불미스런 사건이 터지면 정치인, 언론인, 대중은 모두 손쉽게 물어뜯을 속죄양(贖罪羊)을 찾는다. 이런 분위기는 전염성이 매우 강해서 공정한 수사도 여기에 감염될 수 있다.”
“외부의 압박 말고도 똑같이 위험하고 용납하면 안 되는 내부의 압박이 때로 존재한다. 그런 상황은 조직의 리더가 어떤 결과물을 내놓으라고 (무심코 한 말이더라도) 압박할 때 벌어진다.”
저자는 “분명 모든 범죄수사의 목적은 진상을 밝히고 진실을 찾는 것이다. 그렇지만 많은 경우 수사의 모든 단계와 국면이 도덕적 어젠다로 채색(彩色)된다. 즉 범법(犯法)행위나 유해(有害)행위에 대해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라면서 “궁극적으로 법률상 범죄로 인정되지 않거나 그 혐의를 입증(立證)할 수 없는 경우라도 사람들은 처벌을 원한다”고 개탄한다.
이 또한 많이 보아온 모습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적폐(積弊)수사’라는 것들이 바로 ‘물어뜯을 속죄양’을 찾는 정치인, 언론인, 대중의 선동(煽動)에 의한 것이었다. 하지만 검찰의 칼날이 ‘살아 있는 권력’을 향하자 정권과 그들의 홍위병(紅衛兵)들은 이제 검찰을 ‘적폐세력’으로 몰고 있다. 지금 검찰이 처한 위기는 어쩌면 업보(業報)일지도 모른다.
‘그놈을 잡아 가둬라!’
검사는 기소만 하는 게 아니라 불기소도 한다. 이는 저자가 말하듯이, 재량(裁量), 판단, 지혜, 절제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다. 여기서 저자는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한다.
“법률과 헌법에 보장된 권한은 논쟁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 직무상 권한은 그냥 휘두르는 게 아니라, 공정성과 비례성(比例性)의 원칙에 따라 발휘해야 한다. 이는 물론 모든 리더들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다. 그 이유는 절차상 허용된 권한을 무조건 최대로 행사하는 리더는 독재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코로나19 방역과 관련된 문재인 정권의 행정권이나 경찰권의 자의적(恣意的) 행사를 떠올리게 된다. 공정성과 비례성의 원칙은 실종되고, 절차상 허용된 권한을 무조건 최대로 행사하는 모습 … 그것을 저자는 ‘독재자’로 연결시키고 있는데, 틀린 말은 아니다.
저자는 “최근 들어 불기소를 둘러싼 비판들에 정치적 선입견(先入見)이 가득하다”면서 “‘그놈을 잡아 가둬라!’라는 외침은 증거와 법조문에 대한 냉정한 평가보다는 당파성(黨派性)을 띠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가 말하는 ‘외침’ 또한 ‘적폐수사’나 ‘재벌수사’ 등과 관련해 불기소나 불구속 결정, 집행유예나 보석(保釋) 등이 있을 때마다 흔히 터져 나오는 외침이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똑 부러지게 지적한다.
“권력과 자산이 있는 사람은 책임지는 경우가 드물고, 또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도 처벌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대중의 인식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보기 드문 사건들 때문에 기본적인 범죄 입증 기준을 변경한다면, 그러한 법률과 절차를 모든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해야 한다. 분통 터지는 특정한 사기행각 때문에 이제부터 고의성과 범행 의도를 입증할 필요가 없다고 법으로 정해버리면, 그리고 그 법을 세심하게 다듬지 않으면, 우리 자신부터 훨씬 견디기 힘든 법률제도에 놓일 위험이 있다.”
미국에도 ‘법관 사찰’이 있다?
기소 다음 단계는 당연히 재판이다. 재판에 대한 장(章)에서 저자가 제일 먼저 언급하는 것은 ‘판사’에 대한 것인데, 흥미로운 구절이 하나 있다.
“판사는 재판 절차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재판의 흐름을 좌우하며, 진실 발견과 정의 추구를 앞당기거나 훼방 놓을 수 있다. 판사의 존재감, 성품, 성향은 법정에서 펼쳐질 드라마에 녹아든다. 부주의하거나 무신경한 판사는 재판에 부당한 영향력을 손쉽게 행사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어떤 소송이 있을 때 검사들이 제일 궁금해하는 것은 ‘판사가 누구인가’이다. 판사의 정체성(正體性)이 중요하지 않다는 통념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합리적인 현직 법조인 (기소를 맡든 변호를 담당하든) 중에서 이와 다른 소리를 하는 사람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판사 개인의 특성과 성향을 고려하지 않는 재판 관련자는 일종의 법적 과실(過失)을 저지르는 것이다.”
지난해 11~12월 검찰이 《법조인대관》에 실린 수준의 법관 인적 사항, 재판 스타일, 공판 검사들의 평가 등을 담은 문건을 작성했다고 당시 법무부 장관과 일부 언론이 ‘법관 사찰(査察)’ 운운하면서 난리를 쳤던 것이 얼마나 코미디 같은 일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의는 깨지기 쉽다
![]() |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사진=퍼블릭도메인 |
저자는 또 뉴욕남부지검이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측근인 제라 자라브를 기소한 사건 때문에 터키 정부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자라브는 2013년 에르도안 정권의 각료 및 그 아들들이 연루된 부패사건으로 터키에서도 기소된 적이 있는 자였다. 에르도안은 이들이 기소되자 ‘사법쿠데타’라고 비난하면서, 이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관과 검사, 유죄판결을 내렸던 판사들을 축출하거나 체포했다. 사법부와 검찰은 정권에 고분고분한 판검사들로 물갈이됐다. 저자는 자라브 사건과 관련된 교훈 두 가지를 이야기한다.
“첫째는 정의가 깨지기 쉽다는 것이다. … 어느 국가의 대통령이든 국가를 이끄는 자들이 검사 공격에 가담하고 독설을 내뱉고, 정의를 추구하는 자들을 악마로 몰아붙이면, 정의는 위태로워지고 정의에 대한 신념도 파괴된다. 또 그렇게 선을 넘으면, 단지 비난에서 벗어나 권력을 남용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 된다. 에르도안이 2013년에 자신의 동지들에 대한 수사를 무마하려고 한 이래로, 터키는 점점 더 독재국가로 전락했다. 터키 정부가 언론을 탄압하면서 언론의 자유는 더욱 축소됐다. … 터키가 독재국가로 전락하는 안타까운 과정에서 결정적이었던 사건은, 정당하게 제기된 형사소송에 개인적으로 개입하려 한 에르도안의 결정이 있었다는 점이다.”
정의에 대한 갈망
꼭 대한민국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진다. 하지만 저자는 희망도 이야기한다.
“두 번째 교훈은 사람들이 정의를 갈망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의가 실현되기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 즉 권력과 특권이 있다고 해서 책임과 처벌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인식, 부패에 맞서 싸울 수 있다는 기대, 그리고 불의에 맞서 용감히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는 희망이다. 이는 정직한 정부와 법치주의에 대한 갈망이 보편적이라는 것임을 보여준다.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은 정부, 취임선서를 소중히 여기는 정직한 공직자는 시민의식이 있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국가에 기대하는 바이기 때문이다. 부패한 권력자를 법정에 세우는 것은, 크고 작은 모든 사건을 막론하고 국민에게 정의에 대한 신념을 심어준다.”
그러면서 저자는 말한다. “검사들은 때로 대중이 그 희망이나 미움을 쏟아붓는 빈 그릇 같은 존재”라고….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한 국민의 환호나 비난 역시 그런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