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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Q의 시 읽기 〈41〉 도연명의 ‘귀거래사’

“천명을 즐길 뿐 무엇을 의심하리”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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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연명이 41세 때 고향으로 가는 소회를 운문으로 쓴 작품
⊙ 농암 이현보의 ‘효빈가(效嚬歌)’, 박목월의 ‘산이 날 에워싸고’, 김수영의 ‘新귀거래’
중국의 시인 도연명.
  귀거래사
  도연명
 
  정원을 날로 거닐며 아취를 이루어가고, 문은 달아놓았지만 늘 닫혀 있노라.
  지팡이에 늙은 몸 의지하여 거닐다가 쉬며 때로 고개 들어 멀리 바라보니,
  구름은 무심히 산골짝 굴헝에서 솟아나오고 새는 날다 지치면 다시 돌아올 줄을 아는도다.
  일광은 뉘엿뉘엿 장차 저물어가니 외로운 소나무 어루만지며 주저주저하는도다.
  돌아와야지. 모든 사귐 그쳐 어울리지 않으리라.
  세상과 내가 서로 가는 길 다르니 어찌 다시 벼슬길 구하겠는가.
  친척들과 정겨운 대화를 기뻐하고 금서를 즐기며 시름을 삭이노라.
  농부 와서 봄이 왔음을 알리니 이제 서편의 밭에 할 일이 있구나.
  수레를 타고 혹은 배를 저어 그윽한 골짜기를 찾아가고 높고 낮은 언덕을 지나가노라.
  나무들은 기뻐 우거지려 하고 샘은 졸졸 흘러 물줄기를 이루는도다.
  이렇게 만물은 때를 얻어가는데, 내 삶은 끝나가는구나.
 
  끝났구나. 내 몸 이 땅에 머무는 것이 그 얼마일 것인가.
  어찌 가고 머무름을 마음에 맡기지 않겠는가. 황황히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것인가.
  부귀는 내 원하는 바가 아니요, 신선은 기약할 수가 없네.
  이 좋은 시절 즐기며 혼자서 가며 혹은 지팡이를 세워 김매고 북돋우노라.
  동쪽 언덕에 올라 노래 부르고, 맑은 물에 가서 시를 지으며
  자연의 조화 따라 돌아가려 하니 천명을 즐길 뿐 무엇을 의심할 것인가.
 
 
  歸去來辭
  陶淵明
 
  園日涉以成趣 門雖設而常關
  策扶老以流憩 時矯首而遐觀
  雲無心以出岫 鳥倦飛而知還
  景翳翳以將入 撫孤松而盤桓
  歸去來兮 請息交以絶遊
  世與我而相違 復駕言兮焉求
  悅親戚之情話 樂琴書以消憂
  農人告余以春及 將有事於西疇
  或命巾車 或棹孤舟
  旣窈窕以尋壑 亦崎嶇而經丘
  木欣欣以向榮 泉涓涓而始流
  善萬物之得時 感吾生之行休
 
  已矣乎 寓形宇內復幾時
  曷不委心任去留 胡爲乎遑遑欲何之
  富貴非吾願 帝鄕不可期
  懷良辰以孤往 或植杖而耘耔
  登東皐以舒嘯 臨淸流而賦詩
  聊乘化以歸盡 樂夫天命復奚疑
 
 
무릉도원은 중국 진나라의 도연명이 지은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등장하는 장소다. 사진은 중국 무릉도원의 도원경 전경.
  2020년은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의 맏형 세대인 1955년생 70만명이 65세에 진입하는 해다. 정년 60세와 노년기에 본격 접어드는 65세는 심리적 체감이 다르다. 65세야말로 ‘귀거래사(歸去來辭)’를 떠올릴 나이일지 모른다. 2019년 말 현재 65세 이상 인구는 800만명쯤(전체 인구의 15.4%)이다.
 
  중국 시인 도연명(陶淵明·365~427)이 41세 때 마지막 관직을 사직하고 고향으로 가는 소회를 담은 작품이 ‘귀거래사’다. 자연의 풍광과 시인의 감회를 적절히 담고 있다. ‘날다 지치면 다시 돌아올 줄 아는 새’처럼 시적 화자가 ‘세상’의 ‘벼슬길’을 버리고 돌아가고자 하는 곳은 자연의 질서를 따라 살아가는 고향의 세계다. 첫째 장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심경을 읊었고, 둘째 장은 집에 도착한 기쁨을 노래하고 있다. 셋째 장은 고향에서의 생활과 그곳에서 느낀 철학을 담고 있다. 마지막 장은 자연 속에서 자연의 섭리에 몸을 맡겨 살아가려 한다는 자신의 다짐과 소감을 드러내고 있다.
 
  ‘귀거래사’는 18종 고교 문학 교과서 중 3곳에 실렸다. ‘귀거래사’ 번역은 여러 버전이 있는데 교과서에 실린 번역은 누구의 번역인지 알 수 없다. 기자는 우리나라 1세대 영문학자이자 시적 산문의 대가인 피천득(皮千得·1910~2007) 선생이 번역한 ‘귀거래사’를 일부 소개한다.
 
우리나라 1세대 영문학자인 피천득.
  매일 나는 정원을 산책한다
  사립문이 하나 있지만 언제나 닫혀 있다
  지팡이를 끌며 나는 걷다가 쉬고
  가끔 머리를 들어 멀리 바라다본다
  구름은 무심하게 산을 넘어가고
  새는 지쳐 둥지로 돌아온다
 
  고요히 해는 지고
  외로이 서 있는 소나무를 어루만지며
  나의 마음은 평온으로 돌아오다
 
  돌아가자
  사람들과 만남을 끊고
  세속과 나는 서로 다르거늘
  다시 수레를 타고 무엇을 구할 것인가
  고향에서 가족들과 소박한 이야기를 하고
 
  거문고와 책에서 위안을 얻으니
  농부들은 지금 봄이 왔다고
  서쪽 들판에 할 일이 많다고 한다
  나는 어떤 때는 작은 마차를 타고
  어떤 때는 외로운 배 한 척을 젓는다
 
  고요한 시냇물을 지나 깊은 계곡으로 가기도 하고
  거친 길로 언덕을 넘기도 한다
  나무들은 무성한 잎새를 터뜨리고
  시냇물은 조금씩 흐르기 시작한다
  나는 자연의 질서 있는 절기를 찬양하며
  내 생명의 끝을 생각한다
 
  모든 것이 끝난다
  우리 인간에게는
  그렇게도 적은 시간이 허용되어 있을 뿐
  그러니 마음 내키는 대로 살자
  애를 써서 어디로 갈 것인가?
  나는 재물에 욕심이 없다
  천국에 대한 기대도 없다
 
  청명한 날 혼자서 산책을 하고
  등나무로 만든 지팡이를 끌며
  동산에 올라 오랫동안 휘파람을 불고
  맑은 냇가에서 시를 짓고
  이렇게 나는 마지막 귀향할 때까지
 
  하늘의 명을 달게 받으며
  타고난 복을 누리리라
  거기에 무슨 의문이 있겠는가
 
  -피천득 번역 ‘귀거래사’ 일부

 
농암 이현보.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어부가’ 등 강호문학이란 장르를 개척한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1467~1555) 선생도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본뜬 작품 ‘효빈가(效嚬歌)’를 지었다. 이 작품은 《농암문집(聾巖文集)》에 수록되었다.
 
  1542년 호조참판 농암은 스스로 관복을 벗고 한강에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배를 탄다. 76세 때 일이다. 병을 핑계로 한 거듭된 은퇴 요청이 마침내 받아들여진 것이다. 퇴임식엔 임금이 배석했다. 중종은 금포와 금서대를 하사하고 동료들은 전별시를 지었다. 행차는 한강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조선의 천재 화가 장승업의 〈귀거래도(歸去來圖)〉.
  농암은 고향인 경북 예안(禮安·지금의 안동)으로 돌아와 집 옆에 명농당(明農堂)을 지어 벽에는 도연명의 〈귀거래도〉를 걸고, 강호로 돌아가기를 도모하며 ‘귀전록(歸田錄)’ 3수를 지었는데 그중 1수가 ‘효빈가’이다.
 
  귀거래(歸去來) 귀거래 하되 말뿐이오, 갈 이 없네.
  전원(田園)이 장무(將蕪)하니 아니 가고 어찌할꼬.
  ‌초당(草堂)에 청풍명월(淸風明月)이 나명들명 기다리노니.
 
  -농암의 ‘효빈가’ 전문

 
  풀이하자면 ‘돌아가리라, 돌아가리라 하며 말만 할 뿐 갈 사람은 없네. 잡초가 우거져버린 들판에 아니 가면 어이할꼬. 초가에 걸린 청풍명월이 나가며 들어가며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이다.
 
청록파 시인 박목월.
  현대시 중에서는 박목월(朴木月·1915~1978)의 ‘산이 날 에워싸고’가 ‘귀거래사’와 유사하다. 이 시는 1946년에 발간된 6인 시집 《청록집》에 수록되었다. 해방 공간에 간행되었으나 작품은 일제강점기 쓰인 것으로 보인다.
 
  일제 치하, 암울한 현실에서 시인이 의지할 곳은 어디였을까. 숨어 지낼 수 있는 자연이 아니었을까. 도연명식(式) 노장(老壯) 사상에 깃든 자연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빼앗긴 ‘새로운 고향’의 의미를 갖는 자연이다. 다시 말해 빼앗긴 ‘고향’에 대한 체념이 담겨 있다. 산속에 들어가 씨나 뿌리고 밭이나 갈다가 그믐달처럼 사위어 가는 목숨을 숙명처럼 받아들인다.
 
  산이 날 에워싸고
  씨나 뿌리며 살아라 한다.
  밭이나 갈며 살아라 한다.
 
  어느 짧은 산자락에 집을 모아
  아들 낳고 딸을 낳고
  흙담 안팎에 호박 심고
  들찔레처럼 살아라 한다.
  쑥대밭처럼 살아라 한다.
 
  산이 날 에워싸고
  그믐달처럼 사위어지는 목숨
  구름처럼 살아라 한다.
  바람처럼 살아라 한다.
 
  -박목월의 ‘산이 날 에워싸고’ 전문

 
 
  막차를 기다리는 ‘사평역에서’와 제주로 귀향한 ‘귀거래’
 
시 ‘사평역에서’를 쓴 곽재구.
  시집 《사평역에서》(1983)에 실린 동명의 시는 귀향하기 위해, 혹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막차를 기다리는 간이역을 배경으로 쓰였다. 언제 올지 모르는 막차, ‘눈 시린 유리창’ ‘청색의 손바닥’ 같은 이미지는 쓸쓸하고 외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며 이 시를 우수의 정서로 끌어간다.
 
  시적 화자는 밤늦게 막차를 기다리며 겨울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삶의 고단을 발견한다. 피곤에 지쳐 조는 모습, 감기에 걸려 쿨룩거리는 모습, 침묵하는 모습은 따스하지만 슬프다. 그러나 삶의 무게가 무겁고, 산다는 것이 고통스러울지라도 (막차를 타고)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행복하다. 그래서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할 수 있고,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질 수 있다.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곽재구의 ‘사평역에서’ 전문

 
강영은의 시집 《마고의 항아리》.
  강영은 시인이 펴낸 시집 《마고의 항아리》(2015)에 은유로 빚은 귀소(歸巢) 의식이 담겨 있다. 그의 시 ‘귀거래’에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인 제주로 돌아가는 사연이 담겨 있다.
 
  돌아온 고향집에는 아무도 없다. 빈집뿐이다. 그러나 옛집에 돌아와 잡초 무성한 밭을 일군다. 밤바다에 가서 어망을 던진다. 정신을 육체의 노예로 만들었던 서울을 도망치듯 벗어난 일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살기 위한 선택이었을 뿐이다.
 
  마지막 행, ‘그 바닷가에서 섬이 된 사람들을 오래 기다렸다’는 표현이 긴 여운을 남긴다.
 
  돌무더기 가슴 답답한 날이면 제주행 비행기를 탄다 바닷가 빈 집으로 돌아간다 잡초 무성한 밭을 일구고 밤바다에 어망을 던져 두니 물 밖으로 나온 밤낙지처럼 눈이 맑아진다 정신을 육체의 노예로 만들었던 서울을 도망치듯 벗어난 일이 그대 탓인가, 물결은 한결같은 문장에 밑줄을 칠 뿐 별빛에도 눈동자에도 가없는 밀물
 
  사람을 꽃이라 부르는 일도 사람을 흘기라 여기는 일도 그때는 솔깃했으나 모든 비유는 낡아지는 법 내 스스로 산을 그대라 불렀고 바다를 그녀라 불렀으나 지금 나에게 그대도 없고 그녀도 없으니 스스로 젖은 적 없는 저, 산과 바다를 무슨 비유로 노래할 것인가
 
  죽은 귀를 깨우는 파도소리에 나는 다만 혀로 쓰는 붓질과 귀가 잣는 소음과 멀어지고 싶을 뿐 물결과 거래하는 나의 귀거래는 오늘을 말없이 건너는 일, 파랑이는 나를 견디는 일일 것이다 물결이 빠져나간 여는 이미 마른 슬픔, 썰물을 불러들이는 두 다리가 몇 척(尺) 길어진다 언제 올지 모르는 썰물
 
  그 바닷가에서 섬이 된 사람들을 오래 기다렸다
 
  -강영은의 ‘귀거래’ 전문

 
 
  저항시인, 金洙暎이 5·16 때 쓴 ‘新귀거래’
 
자유와 저항의 시인 김수영.
  저항시인 김수영(金洙暎·1921~1968)은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신귀거래 연작’을 9편이나 썼다. 김수영의 평전에는 5·16 직후 친구인 소설가 김이석의 집에 피신한 이야기가 나온다. 군인들은 시인 서정주(徐廷柱)와 조지훈(趙芝薰)마저 연행해갔다. ‘반공을 국시’로 내건 군사정부가 김수영을 데려가지 말라는 법이 없다.
 
  5·16 이후 쓴 첫 작품은 ‘여편네의 방에 와서: 신귀거래1’이다. 전집에는 1961년 6월 3일에 썼다고 되어 있다. 1연의 ‘네가 성을 내지 않게 해주마’와 2연의 ‘이제 성을 내지 않는 법을 배워주마’는 서로 조응하면서 ‘소년’과 ‘어린 놈’ ‘어린애’를 반복한다. 마치 거세된 어른 같은 느낌을 준다고 할까. 4연에 가서 불안한 ‘소년’은 ‘너를 더 사랑하고’ ‘오히려 너를 더 사랑하겠다’며 반전을 꾀한다. 무시무시한 현실을 직시하겠다는 의미로 들린다.
 
  여편네의 방에 와서 기거를 같이해도
  나는 이렇듯 소년처럼 되었다
  흥분해도 소년
  계산해도 소년
  애무해도 소년
  어린 놈 너야
  네가 성을 내지 않게 해주마
  네가 무어라 보채더라도
  나는 너와 함께 성을 내지 않는 소년
 
  바다의 물결 작년의 나무의 체취
  그래 우리 이 성하(盛夏)에
  온갖 나무의 추억과
  물의 체취라도
  다해서
  어린 놈 너야
  죽음이 오더라도
  이제 성을 내지 않는 법을 배워주마
 
  여편네의 방에 와서 기거를 같이해도
  나는 점점 어린애
  나는 점점 어린애
  태양 아래의 단 하나의 어린애
  죽음 아래의 단 하나의 어린애
  언덕 아래의 단 하나의 어린애
  애정 아래의 단 하나의 어린애
  사유 아래의 단 하나의 어린애
  간단(間斷) 아래의 단 하나의 어린애
  간단 아래의 단 하나의 어린애
  점(點)의 어린애
  베개의 어린애
  고민의 어린애
 
  여편네의 방에 와서 기거를 같이해도
  나는 점점 어린애
  너를 더 사랑하고
  오히려 너를 더 사랑하고
  너는 내 눈을 알고
  어린 놈도 내 눈을 안다 (1961. 6. 3)
 
  -김수영의 ‘여편네의 방에 와서-신귀거래1’ 전문

 
  ‘여편네의 방에 와서’를 쓰고 9일 후에 쓴 ‘격문(檄文)-신귀거래2’도 흥미롭다. ‘격문’의 뜻은 널리 사람들을 알려 부추기는 글이다. ‘마지막의 몸부림’ ‘방대한’ ‘막대한’ ‘깨끗이 버리고’ 등 다양한 시어와 시구를 수없이 반복하는데, 도시에서 시골로 돌아간 자신을 향해 그의 시를 읽는 사람들을 향해 격문을 쓰고 있다.
 
  농부의 차림으로 석경(저녁때의 경치)을 보니, ‘땅이 편편’하고 ‘집이 편편’하고 ‘하늘이 편편’하다. 모든 사물이 다 ‘편편하게’ 보인다. 욕망과 관련된 모든 것을 버리니 만사가 편편하게 느껴진다. 편편함은 시원함으로 이어져 ‘진짜 시인이 될 수 있으니 시원하다’고 노래한다. 시인은 도시를 떠나 편편함과 시원함을 느끼며 ‘자유’를 만끽한다.
 
  마지막의 몸부림도
  마지막의 양복(洋服)도
  마지막의 신경질(神經質)도
  마지막의 다방(茶房)도
  기나긴 골목길의 순례(巡禮)도
  ‘어깨’도
  허세(虛勢)도
  방대한
  방대한
  방대한
  모조품(模造品)도
  막대한
  막대한
  막대한
  막대한
  모방(模倣)도
  아아 그리고 저 도봉산(道峰山)보다도
  더 큰 증오(憎惡)도
  굴욕(屈辱)도
  계집애 종아리에만
  눈이 가던 치기(稚氣)도
  그밖의 무수한 잡동사니 잡념(雜念)까지도
  깨끗이 버리고
  깨끗이 버리고
  깨끗이 버리고
  깨끗이 버리고
  깨끗이 버리고
  깨끗이 버리고
  깨끗이 버리고
  농부(農夫)의 몸차림으로 갈아입고
  석경을 보니
  땅이 편편하고
  집이 편편하고
  하늘이 편편하고
  물이 편편하고
  앉아도 편편하고
  서도 편편하고
  누워도 편편하고
  도회(都會)와 시골이 편편하고
  시골과 도회(都會)가 편편하고
  신문(新聞)이 편편하고
  시원하고
  뻐쓰가 편편하고
  시원하고
  하수도(下水道)가 편편하고
  시원하고
  뽐프의 물이 시원하게 쏟아져나온다고
  어머니가 감탄하니 과연 시원하고
  무엇보다도
  내가 정말 시인(詩人)이 됐으니 시원하고
  인제 정말
  진짜 시인이 될 수 있으니 시원하고
  시원하다고 말하지 않아도 되니
  이건 진짜 시원하고
  이 시원함은 진짜이고
  자유(自由)다 (1961. 6. 12)
 
  -김수영의 ‘檄文-신귀거래2’ 전문(뻐쓰-버스, 뽐프-펌프)

 
  “김수영의 시적 주제는 자유다.”(평론가 김현) 그의 시에서 ‘자유’를 빼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는 자유를 시적 이상(理想)으로 생각하고, 자유의 실현을 불가능케 하는 여건들에 대해 노래했다, 아니 절규했다. 노래와 절규의 방법은 특징을 지닌다. 대개 대립적 시상 구조로 주제를 강화한다. 또한 반복과 대구, 점층적인 구조를 통해 리듬감과 함께 친근함을 주고, 의미의 폭을 확장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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