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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갑식의 발로 쓴 한국인 年代記 WHO IS WHO 〈3〉

세계 최고의 화장품 기업을 일군 아모레퍼시픽 徐成煥–徐慶培 2대

“개성상인 어머니는 화장품 사업의 문을 활짝 열었으며 그 아들 서성환은 화장품업계의 황제가 된 후 우리 茶를 되살렸고 손자 서경배는 세계의 여성들을 매혹시켰다”

글 : 문갑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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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와 전남 월출산 차밭은 프랑스 와인로드에 못지않은 名勝
⊙ ‘女中君子’ 윤독정은 화장품 자가 제조로 개성 상권 장악
⊙ 소년 시절부터 어머니 도운 서성환은 강제 징집과 6·25 거치면서도 태평양을 장악하겠다는 雄志를 잃지 않았다
⊙ 임원들의 반대에도 끊어진 한국 차문화의 명맥 되살린 진정한 농업왕
⊙ 공장에 제 집처럼 지낸 아들 서경배는 ‘현장 중시 경영’
⊙ 미술·음악·건축에 조예 깊은 ‘다빈치 형’ 기업가
⊙ 손에서 책 놓지 않고 직원들에게도 일일이 책 선물… “모든 것은 책 속에 있다”
⊙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는 말 가장 좋아해… “세계 여성의 핸드백 속에 우리 립스틱을 넣자”는 포부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 사진=조선일보DB
  차(茶)가 처음 들어온 곳은 경상남도 하동이다. 하동 쌍계사 입구에 ‘차 시배지(始培地)라는 표지가 있다. 가수 조영남의 노래로 알려진 화개장터에서 쌍계사 가는 길이 온통 차밭이다. 지리산 산비탈에 융단처럼 깔린 차밭을 한 줄기 산상(山上) 도로에서 바라보는 광경이 장관(壯觀)이다. 프랑스 보르드의 ‘와인로드’ 못지않은 ‘티(Tea) 로드’가 여기 숨어 있다.
 
  전라남도에도 초대형 차밭이 두 군데 있다. 보성(寶城)과 다산 정약용 선생의 유배지 강진(康津) 가는 월출산 아래다. 강진 근처 영암에 가면 근육질의 울퉁불퉁한 월출산(月出山)이 떡 버티고 있다. 월출산 오르는 길은 천황사 코스가 유명하며 일본에 논어를 전했다는 백제 왕인 박사의 고향인 도갑사 코스가 있으며 경포대 코스라는 곳도 있다.
 
  경포대(鏡布臺)는 강원도 강릉의 경포대(鏡浦臺)와 발음이 같지만 한자는 다르다. 월출산에서 흐르는 물줄기의 모습이 무명 베를 길게 늘어뜨려 놓은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인 이름인데 여름철에는 천혜의 피서지다. 이 경포대 쪽 매표소 왼편을 바라보노라면 ‘와!’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올 것이다. 주변이 온통 차밭이고 초대형 선풍기가 윙윙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다.
 
젊은 시절의 아모레퍼시픽 창업주 故 서성환 회장.
  이 월출산 경포대 차밭은 한국 현대사에 위대한 족적을 남긴 거인(巨人)이 직접 그린 거대한 스케치다. 고 서성환(徐成煥·1924~2003) 아모레퍼시픽 창업주다. 그는 1924년 황해도 평산에서 태어나 개성에서 성장했다. 초창기 한국 기업사에 굵은 족적을 남긴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데 하필이면 개성(開城)에서 성장해 한국 기업사에 유명한 ‘개성상인’의 대표라 하겠다.
 
  그의 호가 ‘장원(粧源)’이다. ‘장’은 꾸민다는 뜻이다. ‘원’은 근본이라는 뜻이다. 호의 뜻만 봐도 그가 이제는 세계 최고의 반열에 오른 화장품 재벌 아모레퍼시픽의 창업자임을 알 수 있겠다. 서성환 창업주는 1924년 7월 황해도 평산군 적암면에서 부친 서대근(1890〜1973)씨와 모친 윤독정(1891〜1959)씨의 3남3녀 가운데 차남으로 태어났다.
 
  서 창업주의 가족은 1930년에 개성으로 이사갔다. 서성환이 소학교에 다니던 시절이다. 그가 살던 곳은 개성시 동현동으로 서울 가는 길목이었다. 여기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것은 어머니 윤독정씨였다. 윤씨는 잡화를 취급하다 화장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개성은 인삼의 고장이었다. 당연히 주민들의 소득이 높았으니 여성들이 몸단장에 남달리 신경을 썼다.
 
  비상한 머리와 남다른 사업감각을 갖춰 ‘여중군자(女中君子)’라 불렸던 윤씨는 직접 동백기름을 짜서 만든 머릿기름을 팔아 재미를 보자 1932년부터 민간에서 내려오던 미안수(美顔水)를 손수 만들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구리무(크림), 가루분(백분) 등으로 화장품 제조의 종류와 품목을 넓혔는데 여기 소년 서성환은 ‘심부름꾼’으로 가세했다.
 
  윤씨는 아예 창성상점(昌盛商店)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사업이 본격화되자 서성환도 바빠졌다. 그는 아침에 도시락 세 개를 자전거에 싣고 일을 시작했다. 해 뜨기 전에 개성에서 출발해 화장품 제조에 필요한 물건을 사 오는 일을 한 것이다. 중경보통학교를 졸업한 1939년부터는 예성강 20리를 따라 형성된 상로(商路)를 따라 자전거로 화장품을 팔았다.
 
  판매를 하며 그는 유통에 눈을 떴다. 10대 소년 서성환은 개성에서 자전거로 서울 남대문시장까지 와 글리세린과 향료, 빈 병을 사서 다시 개성으로 가져갔다. 창성상점의 제품은 1941년 개성 최초의 백화점인 3층 양옥의 ‘김재현 백화점’에 입점했다. 백화점에 코너를 개설해 자기 화장품뿐 아니라 다른 회사 제품까지 위탁판매했다.
 
  심부름부터 시작해 판매, 유통까지 익힌 서성환은 마침내 화장품 제조법까지 어머니로부터 배웠다. 물과 기름의 혼합비율, 가열 정도, 가성소다의 비율에 따른 미묘한 차이까지 익힌 것이다. 그러던 그에게 위기가 닥쳤다. 스물한 살이던 1944년 강제징용된 것이다. 천운(天運)이 있었는지, 일제가 망하면서 서성환은 1년 반 만에 기적적으로 생환했다.
 
  개성으로 돌아온 서성환은 ‘창성상점’을 ‘태평양상회’로 바꿨다. 태평양만큼 큰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웅지(雄志)가 그 이름 속에 숨어 있다. 서성환은 1947년 서울 회현동으로 이사왔다. 모조품과 위조품이 판치던 시절이었으나 서성환은 “남보다 월등한 제품을 만들어야 제값에 팔 수 있다”며 품질을 강조했다. 이때 내놓은 메로디크림이 태평양 1호 제품이다.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는 듯하던 차에 6·25가 터졌다. 그는 피란하면서 원료를 싣고 부산으로 갔다. 화장품업계는 ‘원료확보=고급제품’이란 등식이 성립할 때여서 원료만 있으면 무서울 것이 없었다. 전쟁은 누구에겐 기회가 된다는 말이 있다. 광복 직후와 달리 미군이 들어오면서 질 좋은 원료를 손쉽게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음 관건은 판매조직이었는데 서성환은 생산과 판매를 분리했다. 이러면 생산파트는 연구개발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되는데 마침 ‘대박제품’이 탄생했다. ‘ABC포마드’다. ABC포마드는, 돼지기름이 원료여서 바르면 뻣뻣하고 광택도 안 날 뿐 아니라 머리를 감아도 끈적거리는 다른 제품과 달리 식물성 피마자기름을 써 광택도 뛰어나고 세척도 편했다.
 
  서 창업주는 여기에 일본제 고급 향료까지 배합해 경쟁제품을 압도했다. 서성환은 1954년 환도(還都) 때 후암동으로 왔다가 1956년 한강로로 회사를 옮겼다. 우리 기업사에서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전자왕(電子王)’, 정주영 현대 창업주가 ‘건설왕(建設王)’이라면 서 창업주는 ‘농업왕(農業王)’ ‘미학(美學)의 제왕’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이 용산 구사옥에서 서 창업주는 일본 시세이도(資生堂)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구용섭을 초대 연구실장으로 기용했다. 그는 정부 파견 연구원으로 독일 유학을 한 뒤 프랑스 코티(Coty)사와 기술제휴를 해 그 유명한 ‘코티분’을 생산하는 것으로 회사에 보답한다. 코티사와 기술제휴를 할 때 서성환은 향수로 유명한 프로방스 남부 도시 그라스를 방문했다.
 
  이것은 그의 일생을 바꾼 여행이 됐다. 향수의 원료가 되는 식물을 재배하는 모습에 서성환은 감명받아 죽을 때까지 식물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것이 훗날 강진과 제주도에 초대형 차밭을 만든 계기가 됐다. 화장품산업의 기반을 다진 서성환이 차에 대한 관심을 가진 것은 제주도 농장에서 남국(南國)에서나 자란다는 바나나 재배에 성공한 무렵이라고 한다.
 
故 서성환 창업주가 다원을 개발할 때의 사진들이다.
  외국을 방문할 때마다 그 나라 고유의 전통과 문화가 담긴 차 대접을 받으면서 서성환의 머릿속에서는 “왜 우리에게는 그런 문화가 없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다. 중국에서 우리나라에 차가 전래한 것은 선덕왕 때인데 《삼국사기》 흥덕왕 3년, 즉 서기 828년에 이런 기록이 등장한다.
 
  〈이해 12월에 사신을 당에 보내 조공케 했더니 당의 문종은 일행을 인덕전으로 불러 잔치를 베풀었다. 사신으로 갔던 대렴(大廉)이 돌아오면서 차 씨를 가져오니 임금은 지리산에 심게 하였다. 차는 선덕왕 때 있었으나 이때 이르러 성행하게 됐다.〉
 
  차 문화는 고려시대 들어 더 융성해졌다. 안타깝게도 상류층이 즐겼던 고려의 차 문화는 농민들을 괴롭히는 몹쓸 식물이었다. 조선 건국 후 차 문화는 탄압받았다. 차나무가 송두리째 뽑혀 나갔고 불교와 관련 있던 차 문화가 공식 석상에서 사라졌다. 근대 이후 우리나라에서 녹차가 재배된 것은 오자키라는 일본인이 광주 무등산 자락에 만든 무등다원이 최초다.
 
  1940년 ㈜간사이페인트가 보성에 다원을 조성했는데 이것이 1957년 대한다업으로 바뀐다. 서성환이 차 재배를 시작한 것은 1977년 무렵이다. 그는 한국제다 서양원 대표를 만나 “차를 해 보고 싶은데 중역들이 싫어해서…”라며 “개인재산으로 해 보고 싶으니 아이디어를 달라”고 부탁했다. 훗날 서양원 대표는 “서성환 회장은 차 농가의 은인이고 희망이었다”고 회고했다.
 
월출산 경포대 국립공원 입구쪽에 있는 차밭이다. 설록차가 여기서 생산된다.
  서성환은 월출산 부근과 제주도 도순·서광지역을 사업 부지로 정했다. 1980년 제주도 서귀포 도순의 2만5000평 대지에서 개간이 시작됐다. 도순은 땅이 돌투성이로 소문난 악지(惡地)였지만 눈물겨운 노력 끝에 차밭을 일구는 데 성공한다. 서성환이 월출산을 택한 것은 다산과 초의선사의 숨결이 남아 있는 강진·해남이 차 문화의 본향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월출산 밑 월남리 백운동은 한국 최초로 제품명을 갖고 생산한 녹차 ‘백운 옥판차’와 ‘금릉 원산차’가 제조된 곳이다. 당시 일부 월출산 인근 주민들은 서성환의 차밭 개간을 땅 투기로 오해했지만 설득 끝에 이해를 받아 냈고 지금의 차밭이 만들어진 것이다. 서성환의 일생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18만평에 달하는 제주도 한남다원 개간사(開墾史)다.
 
  한남다원은 1995년 1차로 4만평, 1997년 2차로 9만평 등 단계적으로 개간됐는데 경영진이 오너에게 제동을 걸었다. “투자는 엄청난데 수익은 초라하다”는 논리를 앞세운 경영진은 “외국에서 원료를 들여오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창업주를 압박했다. 서성환이 “외국보다 우위에 있는 다원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아무리 오너라고 부하들의 의견을 무시할 순 없었다.
 
  결국 2년간 개간이 중단됐는데 서성환은 훗날 “경영진의 반대 때문에 사업을 중단한 게 천추의 한이 된다”고 한탄했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 서성환 전 회장이 만든 설록차는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됐고 세계 명차대회에서 이름을 날렸다. 서성환 전 회장은 2003년 1월 9일 타계했다. 그는 고향 개성에서 지척인 경기도 벽제에 잠들어 있다.
 
  고 서성환 창업주는 2남4녀를 남겼다. 네 딸은 경영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장남 서영배, 차남 서경배(徐慶培)가 경영권을 이어받았다. 서영배는 태평양개발 회장이며 서경배가 아모레퍼시픽 회장이다. 서경배 회장이 아모레퍼시픽을 물려받은 것은 IMF 직전 과감한 구조조정을 해 태평양그룹이 외환위기를 무탈하게 빠져나온 공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언론에는 서경배 회장이 이건희 회장을 능가하는 부자라는 등의 기사가 여러 차례 보도됐는데 의외로 언론과 본격 인터뷰를 한 적이 없다. 그의 인생과 경영철학을 엿볼 수 있는 책이 최근 출간되긴 했는데 채 1시간도 안 돼 독파했다. 다음은 서경배 회장의 삶을 15가지 에피소드로 정리해 본 것이다.
 
 
  # 서경배가 가장 좋아하는 말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
 
  이 말은 미국 소설가 리처드 바크가 쓴 《갈매기의 꿈》, 국내에서는 《갈매기 조나단》이라는 이름으로도 번역된 바 있는 작은 소설책에 나온다.
 
  順天休命(순리를 따라서 자신의 삶을 즐긴다.)
 
  美化人生(누군가 묻는다면 내가 받은 하늘의 명은 사람들의 인생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다.)
 
 
  # 레오나르도 다 빈치型 인간
 
서울 용산에 새로 지은 아모레퍼시픽 신사옥.
  그는 매우 다재다능하며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 인물이다.
 
  첫째, 그의 취미는 프라모델 만들기다. 둘째, 대단한 독서가이며 주변에 책 선물을 잘하기로 유명하다. 셋째, 음악과 미술과 건축에 대한 관심이 높다. 중학교 시절부터 LP판을 수집했으며 그래서인지 클래식 음악에 대한 안목이 높다. 뒷골목 헌책방 순례를 자주 했고 한때는 “경영인이 안 됐으면 미술평론가가 됐을 것”이라고 스스로 말한 바 있다. 용산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은 그런 그의 다방면에 걸친 관심의 소산이다.
 
 
  # 서경배의 소탈한 생활습관
 
  그의 삶을 다룬 책에는 중국 출장을 갔을 때 호텔 음식에 질린 일행을 보고 그가 거리의 싸구려 음식점에서 아침식사를 한 장면이나 집에서 손수 라면을 끓여 가족과 함께 담소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마 그의 소박한 단면을 보여주려는 에피소드였던 것 같다.
 
 
  # 서경배의 배움에 대한 집념
 
  서경배 회장은 출장갈 때마다 현지에 대한 역사를 철저하게 공부한다. 책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중국 출장가기 전) 점심식사 때 동양사학과 교수는 가방에서 논문집을 꺼내 모두에게 나눠줬다, 일반 책 두께 정도의 분량이었다. 제목은 ‘병자호란과 천연두’. 이들은 청나라를 공부하기 위해 칭다오로 여행을 가기로 계획되어 있었고 이 자리는 여행 전 예비 모임을 갖는 자리였다. “다 읽기 어려우시겠지만 저희가 이번에 가는 곳을 좀 더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몇몇은 혀를 내둘렀고 서경배와 몇몇은 반겼다.
 
 
  # 서경배가 보는 와인과 녹차
 
우리나라의 차밭은 가꾸기에 따라 프랑스의 와인로드 못지않은 관광상품이 될 수 있다.
  “아버지(서성환 창업주)께서 녹차 사업 때문에 고민이 많으시길래 와인을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녹차를 공부해 보니까 와인산업하고 비슷하더라고요. 그래서 공부하고 공부하고 공부하다 보니 (와인에 대한 지식이)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차 문화는 아버지께서 반드시 복원하고 싶어하신 격조 있는 문화였어요. 일본의 차 문화가 사실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건데 그들은 다듬고 가꿔서 문화로 만들었잖아요. 아버지께서는 우리나라 차 문화를 잘 가꿔서 보급하고 전파해야겠다고 생각하셨어요. 우리나라 차 문화와 부흥이 그분의 숙제였죠.”
 
  “녹차사업을 시작한 지 스무 해쯤 지난 1997년에야 사업이 흑자로 전환되었어요. 4년 뒤에는 오설록 티 뮤지엄을 오픈했고 제주 서광다원에 차 전시관이 완공되었을 때는 아버지도 저도 뭉클했어요. 대중들에게 자연스럽게 차 문화를 접하게 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이 많았는데 그곳이 바로 그 역할을 해 줄 수 있을 거라고 믿었어요. 프랑스 보르도처럼 그렇게 차 산업도 자연스럽게 확장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프랑스 보르도가 와인을 제조하고 와이너리 관광을 통해 서비스 산업도 육성해 시너지를 내고 있어요. 우리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죠.”
 
 
  # 서경배의 空間과 예술에 대한 어록
 
미국 샌디에이고 솔크연구소.
  “공간이 생각을 지배한다는 생각 아래 연구원들이 조금 더 창의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공간을 짓고 싶었습니다. 이 공간에서 뜻밖의 발견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경기도 용인시 기흥 아모레퍼시픽 제2연구동 ‘미지움’ 완공식에서)
 
  “(미국에 안식년 휴가를 떠나는 지인 교수에게 샌디에이고 솔크연구소를 꼭 방문하라고 권하며) 네 맞아요. 그 솔크박사 연구소요. 연구소라고 해서 놀라셨죠? 하하. 수도원처럼 사색하기 좋은 곳이에요. 거기 가면 물길이 하나 있을 거예요. 해질 무렵에 그 물길이 시작하는 곳에 앉아 보세요. 앉으면 바로 바다가 보일 거예요. 노을이 드리워지는 바다야 어디서든 볼 수 있지만 그곳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모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벅찬 감동 그 자체예요. 저는 여러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할 때 그곳에 갔었어요. 처음에는 그 풍광에 감동했는데 이내 마음의 고요가 생기더라고요. 그 순간에 그 모습을 보려고 반나절 내내 그곳에 있었는데 참 잘했다 싶었지요. 공간이 사람에게 얼마나 깊은 감동과 평온을 주던지. 아직도 가끔 생각이 납니다.”
 
  “단순히 작품을 모아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드는 공간이 되어야 해. 조금 더 살아 있는 공간, 작가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창조한 동양의 아름다움과 새로운 아름다움을 함께 보여주는 그런 미술관이면 어떨까? 일반 미술관처럼 매번 전시 주제를 바꾸자. 그럼 사람들이 한 번 들러 관람하고서 다시 안 가는 곳이 아니라 매번 기대하는 곳이 될 거야. 그러려면 언제나 쉽게 왔다 갔다 할 수 있으면 좋겠지. 마치 광장처럼! 예술이라는 게 살아온 시간을 목격하는 일이잖아. 사람들이 건조한 일상에 감성적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아모레퍼시픽 신사옥 지하1층 미술관을 건립하면서)
 
  “우리는 사람이 주인이 되는 건물, 공간 안에 머무르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그런 건물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용산 신사옥 건설 때 임원회의에서. 서 회장은 법적으로 30층까지 지을 수 있었지만 설계 응모작 가운데 가장 낮은 21층 사옥안을 택했다. 많은 임원들은 이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고층 빌딩을 지어 임대 등으로 돈을 벌 기회를 내던졌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 서경배의 현장 철학
 
  ‘태평양종합산업’, 지금의 ‘퍼시픽글라스’의 장항공장 건설 프로젝트가 서성환 창업주가 서경배에게 처음으로 맡긴 프로젝트였다. 그는 공장이 준공되기까지 1년8개월 동안 하루도 쉬지 못했다. 현장이 곧 숙소였다. 인부들과 함께 주말 밤에도 불을 켜 놓고 이 공장을 지었다. 공장이 준공된 후에는 까만 머리가 새치로 빼곡해졌을 만큼 그는 프로젝트 내내 긴장했고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서성환 회장도 무리하는 아들을 보며 너무 힘든 일을 맡겼나 생각했을 정도였다.
 
  회사가 힘들던 시기에 입사한 서경배의 시작은 다른 2세 경영자처럼 로맨틱하지 않았다. 서경배는 장항공장에서 시작해 경영관리실, 기획조정실, 재경본부 등 회사의 곳곳에서 업무를 하면서 자칫하면 망하겠다는 얘기가 오가던 시기였기 때문에 온갖 궂은 일, 힘든 일을 몸소 겪었다. 그 덕에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쌓고 큰 그림을 보는 눈을 가질 수 있었다.
 
 
  # 서경배의 꿈
 
  “전 세계 사람들 핸드백 속에 우리 립스틱이 하나씩 있다면 진짜 좋을 것 같지 않아요?”(경기도 용인 신갈연구소 방문 자리에서 임원들과 환담하며)
 
 
  # 서경배의 화장품에 대한 定義
 
  “화장품은 문화제품이라고 할 수 있어요. 화장품은 경제적 여유가 있을 때 가장 쉽게 누릴 수 있는 ‘스몰 럭셔리’입니다. 우리는 먼저 그 나라의 경제력이 어떤 단계에 있는지 봐야 합니다. 직접 부딪치면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이 보일 거예요. 세계를 향해 마음을 열어 봅시다. 우리가 마음을 열면 길도 활짝 열립니다.”
 
 
  # 서경배의 ‘이니스프리’와 제주도
 
  이니스프리(Innisfree)는 아모레퍼시픽에서 출시된 화장품 브랜드다. 상호명은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이니스프리의 호수 섬’이라는 시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 브랜드 리뉴얼 작업을 할 때 직원들은 그리스 산토리니 섬을 염두에 뒀다. ‘휴식의 섬’이라는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것인데 서경배 회장이 이런 말을 했다.
 
  “신비롭고 동경할 만한 곳, 이니스프리처럼 깨끗한 이미지를 담은 곳으로는 그리스 산토리니가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긴 합니다. 그렇지만 오히려 그렇게 상상 속의 섬, 휴식의 섬일수록 가까이 있는 우리나라의 섬으로 이야기를 풀어 보면 어떨까요? 상상 속의 섬이 지상으로 떨어진 게 제주도가 되는 거죠. 이니스프리도 브랜드가 되고 제주도도 브랜드가 되는 겁니다. 제주도에서 나오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자연 원료들이 신비로운 섬에서 나오는 신비로운 원료가 되는 거고요. 제주도의 좋은 이야기를 하면 이니스프리가 좋아지고 이니스프리가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에도 잘 알려지면 제주도도 전 세계에 더 많이 알려지는 거죠. 모두에게 특별한 섬이 되는 거예요.”
 
 
  # 서경배와 無窮花
 
  “무궁화를 연구해 봅시다. 힘이 있는 꽃이니 분명 뭔가 있을 거예요.”
 
  “사람들한테 어떤 꽃을 좋아하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장미나 프리지어, 튤립을 말하죠. 벚꽃은 말할 것도 없고요. 무궁화가 우리나라 국화인데 국화다운 대접을 너무 못 받는 것 같아 안타까웠어요. 사람들은 무궁화에 벌레가 많이 있다고 싫어하는데 무궁화를 잘 몰라서 그런 거예요. 한여름에도 100일 동안 5000송이는 거뜬히 피워 낸대요. 역시 그런 강인한 생명력이 있어서인지 화장품으로도 제격이더라고요.”
 
 
  # 서경배와 장떡
 
  아모레퍼시픽 구내식당에서는 매년 1월 장떡을 내놓는다고 한다. 서성환 창업주가 기업을 일굴 때의 초심(初心)을 이 장떡을 먹으며 직원들이 되새긴다.
 
 
  # 서경배의 해외수출전략
 
  1994년 서성환 창업주가 서경배를 불러 이야기했다. “프랑스 사업이 계속 적자다. 네가 한번 맡아서 해결해 봐라.”
 
  엉겁결에 사업을 넘겨받은 그는 바로 프랑스로 갔다. 가장 먼저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판매처를 방문했다. 그리고 약국 귀퉁이 선반에 내팽개치듯 쌓여 있는 태평양화학의 제품 ‘SOON’을 보았다.
 
  “아니 왜?”
 
  서경배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수입상의 말에 따라 피부가 민감한 프랑스인에게 맞게 저자극성 화장품을 수출했고 그들이 발음하기 쉽게 제품명도 순정에서 ‘SOON’으로 바꾸었다. 하지만 제품 위에 뽀얗게 쌓인 먼지가 모든 걸 말해 주고 있었다. 그는 ‘SOON’의 프랑스 사업을 전면 철수했다. 모든 제품을 회수하고 반품처리까지 깨끗하게 마쳤다. 총 50억원의 손해를 봤다. 하지만 그는 분명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다른 나라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진짜 제대로 된 조사가 필요해. 그들의 삶과 마음부터 제대로 이해해야 돼.”
 
  프랑스 사업에서 잃은 50억원은 더 큰 값어치로 돌아왔다. 그날의 일은 뿌리 깊은 교훈이 되었고 10년 뒤 중국이라는 거대한 대륙에 ‘라네즈’라는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정착하게 하였다. ‘더 철저히, 더 열심히 시장조사를 해야 해. 문화, 제도, 경제수준 등 모든 것을 다각도로 보고 직접 현장에 나가서 몸소 느껴야 돼.’
 
 
  # 서경배의 ‘사람論’
 
  “거북선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 분이 나대용 장군이에요. 그분이 태종 때 만들었던 거북선을 다시 만들자고 제안했고 이순신은 그를 조선 최고의 선박기술자로 크게 아껴서 거북선을 만드는 데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해 줬다고 합니다. ‘사람’이 해낸 거죠. 회사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결국 회사의 경쟁력은 사람에게 있더라고요.”
 
  “(서성환) 선대 회장님 때 코티분 개발한 이야기를 아세요? 당시 굉장히 혁신적인 제품이었잖아요. 제품 개발이 가능했던 것이 화장품을 제분하는 에어스푼을 도입했기 때문이거든요. 당시에 화장품 선진국인 유럽의 생산시설이나 원료 정보 등을 파악할 수 있었던 것도 아버지께서 연구실장님을 독일로 유학 보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인 거죠. 좋은 인재를 뽑는 것도 중요하지만 끊임없이 배움의 기회를 주어야 해요. 그래야 함께 성장하는 거죠.”
 
  “(신사옥 2층에 어린이집을 만들기로 결정한 후) 결혼한 직장인의 최대 고민이 육아잖아요. 육아 때문에 항상 전전긍긍하고 결국 경력이 단절되고 심지어 아이 갖는 걸 피하고. 우리 직원들만큼은 편하게 마음 놓고 일했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발전하려면 여성인력 활용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서경배 회장은 스키를 타다 다쳐 병원에 1주일간 입원했을 때 직원들의 인사카드 600장을 통째로 암기했다고 한다. 퇴원 후 그가 회의 자리에서 만난 직원의 이름을 부르자 모두가 깜짝 놀랐다.
 
 
  # 서경배의 독서論
 
  “모든 것은 책 속에 있어요. 많은 사람이 책 속에 있는 이야기는 누구나 하는 이야기, 뻔한 이야기라며 책 밖에 있는 것을 하려고 해요. 그런데 책 속에 있는 대로만 해도 참 잘할 수 있거든요. 딴거 보지 말고 책을 보면 돼요. 책을 보면서 생각하고 질문을 해서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고요. 가장 큰 지혜와 답은 책 속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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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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