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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박한 남북-미북정상회담

사회학도의 역사읽기 〈16〉 ‘민주’ 대통령들의 통일 업적 욕심이 반체제 세력을 키웠다

글 : 유광호  자유민주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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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의 햇볕정책, 대한민국의 ‘해양문명권으로부터 이탈’ 우려 낳아
⊙ 노무현 정권, ‘민중주의적 민주주의론에 입각한 대중독재’ 가능성 보여줘
⊙ 좌파의 ‘통일운동’이란 대한민국의 주체세력, 즉 자유민주적 문명세력을 소멸시키겠다는 것

유광호
1958년생, 서울대 역사교육과 졸업, 연세대 대학원 사회학과 박사 / 연세대 강사, 이승만연구원 연구원,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원,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초빙 연구위원. 현 자유민주연구원 연구위원
2000년 6·15정상회담을 비롯해 ‘통일’이라는 업적을 남기려는 역대 대통령들의 조급증은 친북세력의 득세를 가져왔다.
  문재인(文在寅) 정부가 대북(對北) 저자세 정책으로 성사시킨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에 대해서 20, 30대 청년세대가 반발하고 있다고 한다. 대한민국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에서 태극기를 들지 못하고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하는 것에 대해 다수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국가’를 지우고 ‘민족’을 띄우려던 문 정부의 낭만적 민족주의 무리수는 상당한 역풍(逆風)을 맞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보면서 1987년 ‘민주화’ 이후 대통령들은 남북관계 내지 통일문제에서 어떤 이벤트나 업적을 내려고 하는 욕심이 있었음을 상기하게 된다.
 
  1993년 2월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 없다”고 선언했다. 주변의 좌경(左傾)인사가 그 문구를 넣었다고 많이 알려져 왔으나 김일성이 일본 기자를 통해서 부탁했다는 설(說)도 있다.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 직후 비전향 장기수를 북한으로 송환해 줬다. 이러한 행위는 북한과 남북문제, 나아가 통일문제를 다루어 보자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통일문제가 체제통일 문제라는 것을 잘 알지 못하는 김영삼 대통령으로서는 북한 정권의 통일전선 수행의 장(場)을 마련해 주는 게 되었다. 당시 통일원 장관 한완상씨의 사상을 볼 때 헌법이 명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노선에 심대한 훼손을 가져올 것이었다.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은 ‘전쟁상태’를 극복하기 위해서 경제개발을 했다. 경제개발이 본궤도에 오르자 “이제 체제경쟁 하자”고 북한에 대하여 선언했다. 그런데 경제적 후진성이 해결되고 나자 정치인들은 이제 ‘통일문제’가 과제라고 생각하고 매달리게 됐다. 이것은 김영삼 대통령 때부터 시작됐다. 박정희 노선을 계속해서 갔더라면 남한의 승리로 해결됐을 것을 망쳐 버린 것이다.
 
 
  ‘민족’에 대한 환상
 
김영삼 정권은 비전향장기수 이인모를 북으로 송환해 주면서 남북관계 개선을 희망했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민주화 이후 통치력이 왜 그리 빈곤하게 됐을까? 정치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민주화 이후 몇몇 대통령이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의 국가창건 업적이나 박정희 대통령의 국가기반 확보 등에 맞먹는 역사적인 업적을 이루려던 야심이 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업적을 이룰 수 있는 국가적 과업이 바로 통일이라고 보았다.
 
  통일문제에 관한 업적에 대하여 집착하는 것을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문제는 접근방법과 수단이 잘못됐다는 데 있었다. 특히 21세기적 발전책을 추구하는 것과 통일을 별개의 것인 양 착각한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 결과 우리 사회의 다양한 내부 문제를 해결하고 닥쳐올 미래를 개척하는 노력보다는 통일문제, 혹은 남북관계에서 어떤 ‘진전’만 확보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던 것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의 통일우선 정책은 민족에 대한 맹목적 환상을 낳았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분단이라는 희생으로 민족이 둘로 갈라졌고, 통일이 되기 전까지의 한국현대사는 전부 잠정적일 뿐이라는 통일지상주의에 빠지게 되었다. 이러한 국가적 분위기 속에서 시대착오적인 좌익사관이 분출했고, 이것이 한국사회를 역사의 전쟁터로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김정일 살리기’가 된 햇볕정책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2000년 6월 김정일과 ‘남북정상회담’을 하고 헌법 위반이 농후한 ‘6·15공동선언’을 남겼다. 김대중의 대북(對北) 유화정책은 내각제 개헌문제와 함께 자민련과의 불화를 가져왔고 DJP(김대중·김종필)의 공조는 끝이 났다. 김대중은 임기 말까지도 북한에 저자세로 일관했다. 결국 북핵문제의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사실상 포기하고 말았다. 김대중 정권이 추진한 ‘햇볕정책’은 위기에 빠진 김정일 체제의 강화를 가져왔다. 이는 남한 내 친북(親北)좌익 세력의 강화로 이어져 체제불안이 가중되고 있는 한편 북한의 개혁은 점점 요원하게 되었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 유화정책은 이른바 ‘남남(南南)갈등’을 불러일으켰다. 이 정책을 둘러싼 살벌한 대립은 대한민국의 존립기반을 뒤흔들 수 있는 위험요인이 되고 있다.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 것은 국내에 우후죽순처럼 등장한 여러 친북단체들이 김대중의 평양방문 이후 통일운동을 빙자해 공공연하게 친북활동을 전개한 점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2001년 평양에서 열린 광복절 공동행사였다. 이 행사에 참석한 남측 대표 일부는 정부와의 약속을 어기고 당초 참석지 않기로 한 평양 교외의 통일탑 앞에서 열린 평양축전 개·폐회식에 참가했다.
 
  또한 일부 인사들은 김일성을 찬양하기까지 하였다. 강정구 전 동국대 교수는 방명록에 ‘만경대 정신 이어 받아 통일위업 이룩하자’는 내용의 문구를 적었다. 국내에서 말썽이 크게 일어났다. 그 분란의 와중에 통일연대(정식명칭 ‘6·15남북공동선언 실현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통일연대’)는 “연방제 통일을 왜 불온시하느냐”라는 항의 성명을 발표하고 “남측 당국이 사법처리 운운하는 것에 분노한다”고 정부를 역공했다. 통일연대는 6·15공동선언의 통일조항을 근거로 “찬반을 떠나 연방제 통일방안이 과거처럼 불온시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강정구를 비롯한 7명이 귀경 후 국가보안법상의 찬양·고무 혐의 등으로 검찰에 구속되었다.
 
  김대중은 관련 분야에 비전문적인 인물들을 기용하고 주변의 부정부패를 방관함으로써 국가 능력의 저하를 면치 못했다. 그가 한 것은 김정일 살리기와 남한 내 친북좌익 세력의 조장, 안보세력의 직무유기와 직업공무원의 정치적 타락 강요, 그리고 자유민주 보수세력에 대한 핍박 등 국가정체성의 해체뿐이었다. 대외적으로는 김대중 정부의 방조하에 좌파세력이 반미(反美)운동을 확산시키는 가운데 중국에 대해서는 호의적이고 때로는 저자세가 만연해 갔다. 이 경향이 한국 문명화의 토양이 됐던 해양문화권으로부터의 철수를 초래할까 봐 우려를 낳았다.
 
 
  노무현과 386의 ‘민중민족주의’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盧武鉉) 후보의 승리를 결정적으로 만든 것은 변화를 바라는 국민들의 정서를 좌파적 흐름으로 이끌어 간 좌경 민중주의 사상이었다.
 
  노무현의 당선으로 그의 지지층인 386세대와 475세대의 젊은 세대로의 권력이동이 일어났다. 청와대 비서실은 이들 386세대가 장악했다. 노무현이 취임하기에 앞서 임명한 청와대 1, 2급 비서관 37명 중 31명이 386세대였다. 그들 대부분은 노무현의 개인적 지지자들이며 당시만 해도 직업 관료는 한 사람도 없었다. 이들 중 10명은 친북좌익 사상문제로 투옥된 경력을 지녔다. 권력지향적이고 이념편향적인 386세대식 사고를 가진 사람들을 권력핵심에 앉히는 바람에 국가 정체성(正體性)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친북좌익의 입장에서 사회주류 교체를 지향하고 대한민국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보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남북관계만 잘되면 다른 것은 깽판쳐도 된다”고 말함으로써 이른바 ‘자주민족주의’ 노선을 뚜렷이 밝혔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보완적으로 계승할 뜻을 밝힌 노무현은 북측의 연방제안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인 입장이다.
 
  노무현의 이러한 굴종적인 대북 자세는 북한을 더욱 고압적으로 만들었다. 북한이 남한의 지원을 받아 주는 것이 한국 정부에 대한 하나의 협상 지렛대가 되어 버렸다. 상호주의에 입각해 대북 유화정책을 비판하는 의견에 대해서, 노무현 정부는 “그럼 전쟁하자는 것이냐”는 식의 으름장으로 되받았다. 그것은 ‘수구(守舊)냉전 세력’과 ‘반전(反戰)평화 세력’으로 나누는 북한의 대남(對南) 선동과 비슷한 논리였다.
 
  노무현은 북한의 일관된 바람과 일치하는 한미(韓美)동맹 해체에도 전력을 기울였다. 한미연합사령부의 전시(戰時)작전통제권 문제는 한국의 안보국익을 위한 합의제의 합리적인 장치이지 주권침해 사항이 전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주냐, 의존이냐’는 식의 ‘민족’과 ‘반민족’ 문제로 단순화하여 그것의 해소를 밀어붙였다. 그 결과 평화를 담보하는 전쟁 억지력은 점점 약화돼 갔다.
 
  2004년 좌경 386세대의 무더기 진입으로 17대 국회는 좌익운동권 출신 의원 수가 과거 1970년대의 민청학련 출신 및 ‘80년 봄’ 세대들을 합쳐 총의석의 45%에 이르러 제16대의 두 배 이상이나 되었다. 이 때문에 제17대 국회는 좌경세력이 우익세력보다 우세한 구도가 형성되었다.
 
  노무현이 국보법 폐지를 본격적으로 추진하자 내각의 법무부 장관도 폐지에 반대입장을 피력했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도 8월과 9월 각각 보안법 지지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노무현은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마자 “국보법은 위헌(違憲)이든 아니든 악법(惡法)”이며 이 문제는 “법리(法理)가 아닌, 역사적 결단에서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치주의 파괴
 
노무현 정권은 평택 미군기지 건설 반대 시위 등 좌파의 폭력시위를 방관했다.
  또한 노무현 정부는 각종 과거사 관련 위원회를 통해 반국가 행위자를 애국자로 만드는 등 국가이념을 바꿔치기하여 사법부의 권위와 국가정체성을 파괴했다. 이렇게 노무현 정부는 입헌주의와 법치주의에 정면 도전하는 한편, 불법적인 집회와 폭력적인 의사표시에 대해서는 관대했다. 2006년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시위에서의 폭력적인 행동이나 교원평가제에 반대하는 전교조의 불법 연가(年暇)투쟁,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불법적인 집단행동에 대해서는 별로 문제 삼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의 중추세력인 386운동권세력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국가의 공권력과 정면으로 투쟁하고 대결하는 것을 통해 성장했다. 때문에 권력의 요직에 진출해서도 불법과 준법을 분별하지 않았다. 폭력·불법 시위가 만연해도 강자에 대한 약자의 정당한 투쟁 정도로 여겼다. 그 결과 무질서에 가까운 무법 상태가 조성됐고, 그 피해는 선량한 국민들에게 돌아갔다.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과격주의는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요소인 법치주의와 입헌주의를 넘어서려는 전략을 보여주었다. 노무현은 국민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로 양분하고 다수 국민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증오심을 유발, 선동하는 발언들을 전략적으로 구사했다. 노무현의 이러한 입장과 행태는 토크빌이 경고한 민중주의적 민주주의론에 입각한 대중독재(democratic despotism)로 나아갈 위험성도 있었다.
 
  이와 같이 ‘민주정부’ 15년 동안 ‘민중민족주의’ 세력의 발호는 87년 체제가 마련한 자유민주주의의 안착을 위한 기회를 무참히 유린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자유민주주의 대 ‘민중민족주의’의 대결구도가 더욱 선명해졌다. 그것은 대한민국 건국의 정신과 민족민주주의혁명전략(NDR)의 대결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국민’주의와 ‘민족’주의의 대결이 된다. 이 투쟁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투쟁과 정치력을 보여주지 못함으로써 체제변환의 위기에 몰려 있는 상황인 것이다.
 
 
  ‘주류세력의 교체’
 
  남북 단일팀에 부정적인 젊은 세대의 목소리에 대해 여당 고위 관계자는 “젊은 층이 보수 정권 10년간 제대로 된 통일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힐난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아니 북한에서도 이른바 ‘통일운동’이란 것이 무엇인가? 갈라져 있으니까 단순히 합치자는 감성과 열망의 소산인가? 아니지 않은가!
 
  그것은 대한민국이 친일(親日)세력, 반공(反共) 반북(反北)세력과 친미(親美)세력이 만들어 지배하고 있는 사회이기 때문에 이 세력들을 청산하고 ‘민족자주적’인 북한의 지도와 지원을 받아 합쳐야 되는 혁명투쟁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민족적으로 순결해질 것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통일운동’이란 대한민국의 주체세력, 즉 자유민주적 문명세력을 소멸시키겠다는 것이다.
 
  이 ‘통일운동’ 세력은 대한민국을 미국 제국주의의 식민지 내지 종속국으로 보고 있다. 북한의 대남관도 같다. 따라서 이른바 ‘통일운동’이라는 것은 대한민국 청산소멸 통일운동, 즉 북한 정권의 대남선동 구호인 ‘조국통일투쟁’이다. 이에 반대하여 대한민국 헌법이 명하고 있는 통일은 ‘북한해방통일’이다. 다시 말해 자유민주주의적 북한해방, 즉 자유민주주의적 흡수통일일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문재인은 대통령 후보 시 대통령이 되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대한민국 주류세력의 교체’라고 말했다고 한다. 여권의 장로 이해찬 전 총리는 “좌파 20년 집권으로 보수세력을 궤멸시켜야 한다”고 호언했다. 문 정권은 ‘국가’를 어디로 끌고가는 중인가?⊙
조회 : 12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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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달기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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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경    (2018-04-17)     수정   삭제 찬성 : 2   반대 : 1
와 서울대나 나왔으면서 이런 끔직한 글을 쓰다니..한심하다
  박혜연    (2018-04-03)     수정   삭제 찬성 : 4   반대 : 7
대신 북괴는 점점 자본주의화 되어가고있으니....!!!!
  박혜연    (2018-04-03)     수정   삭제 찬성 : 0   반대 : 1
니들이 싫어하는 문죄인덕택에 대한민국도 점점 자본주의를 청산할지도 모른다!!!! ㅡㅡ 북의 실상과 허상은 이미 유튜브를 통해서 다 알고있는판에 아직도 1950년대에서 1980년대식 컈컈묵은 안보강연이나 해대고 물론 애국보수들 지금도 종북세력을 척결하려고 애쓰시지만 이미 종북세력들에게 밀려 토요일만 되면 태극기집회에 참석하는 신세로 전락될것이다.

20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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