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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Q의 시 읽기 〈21〉 알렉산더 포프의 〈엘로이즈가 아벨라르에게(Eloisa to Abelard)〉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순결한 정신의 영원한 햇빛”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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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세기 영국 신고전주의 시인 포프… 〈엘로이즈가 아벨라르에게〉는 중세의 비극적 사랑이야기
⊙ 시어(詩語) ‘이터널 션샤인(eternal sunshine·영원한 햇빛)’은 많은 독자에게 영감… 2004년 거장 ‘미셸 공드리’에 의해 영화로 제작
알렉산더 포프의 시 〈엘로이즈가 아벨라르에게(Eloisa to Abelard)〉는 중세의 사랑 이야기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했으나 이뤄지지 못했고 아벨라르는 수도승, 엘로이즈는 수녀가 되었다.
  결점 없는 수녀의 삶은 얼마나 행복한가!
  세상을 잊고, 세상으로부터 잊히니.
  순결한 정신의 영원한 햇빛!
  모든 기도를 받아들이고, 모든 바람을 체념하니.
 
  How happy is the blameless vestal’s lot!
  The world forgetting, by the world forgot.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Each pray’r accepted, and each wish resign’d
  -
  〈엘로이즈가 아벨라르에게〉,김옥수 옮김, 207~210행

 
알렉산더 포프의 국내 번역 시선집.
  알렉산더 포프(Alexander Pope·1688~1744)는 영국의 17세기 위대한 시인이다. 열두 살 때 결핵 합병증으로 곱사등이 되었고 다리를 절었으며 평생 편두통에 시달렸다. 신체적 불구와 병약함 속에서도 문학적 재능을 꽃피웠다. 〈엘로이즈가 아벨라르에게(Eloisa to Abelard)〉는 중세의 사랑 이야기다. 1717년 쓰였다. 피에르 아벨라르(Pierre Abelard·1079~1142)는 프랑스의 저명한 신학자이자 철학자였다. 아벨라르는 파리 대성당 성직자의 조카딸인 엘로이즈(Heloise・1101~1164)의 가정교사가 되었다. 두 사람은 사랑에 빠져 아들을 낳았고 비밀 결혼을 계획했다. 하지만 엘로이즈는 아벨라르의 성공에 방해가 될까 봐 그의 곁을 떠났다. 그런데 아벨라르가 엘로이즈를 버린 것으로 오해한 엘로이즈의 숙부는 불한당을 고용해 아벨라르의 성기를 자르게 했다. 이후 아벨라르는 수도승이 되고 엘로이즈는 수녀가 됐다. (참조 《The Poems of Alexander Pope 포프 시선》, 지식을만드는지식 刊)
 
  엘로이즈와 아벨라르는 12세기를 밝힌 인물이다. 학식과 아름다움에서 당대 두 사람을 뛰어넘는 이가 없었다. 하지만 어떤 이도 둘의 ‘불행한 열정’보다 비극적인 경우가 없었다. 고통의 시간이 흐른 뒤 그들은 엄격한 수도회에서 여생을 보냈다. 훗날 둘은 순수한 친구로서 편지를 주고받았고 역사는 둘의 불행했던, 비극적 상처를 기록으로 남겼다.
 
  3행의 ‘순결한 정신의 영원한 햇빛’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는데 대표적인 예가 2004년작 영화 〈이터널 션샤인(eternal sunshine)〉(국내 개봉 2005년)이다. 거장(巨匠) 미셸 공드리 감독이 포프의 이 시를 읽고 영감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이터널 선샤인’을 번역하면 ‘영원한 햇빛(햇살)’이다. 변치 않는 따스한 기억을 은유하는 표현일지 모른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아무리 꼭꼭 닫힌 봉쇄 수도원에 살지라도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는 동인(動因) 같은 기억이랄까. 포프가 라틴어에서 영어로 번역된 엘로이즈의 편지 3통을 읽어 본 것이 시 〈엘로이즈가 아벨라르에게〉를 쓰게 된 동기로 알려져 있다. 이 시는 이렇게 이어진다. 세속을 등진 이의 정신적 초월을 노래한다.
 
  욕망은 가라앉히고, 감정은 언제나 변화 없고,
  눈물은 즐거움을 주고 탄식은 천국으로 가네.
  은총이 그녀 주변에 가장 평온한 빛으로 빛나고,
  속삭이는 천사들은 그녀의 황금빛 꿈을 불러일으킨다.
  그녀를 위해 에덴의 시들지 않는 장미가 꽃을 피우고,
  천사들의 날개가 신성한 향수를 뿌리며,
  그녀를 위해 예수가 신부의 반지를 준비하고,
  그녀를 위해 흰옷 입은 처녀들이 결혼식 축가를 부르네.
  천상의 하프 소리에 그녀는 잠잠해지고,
  영원한 낮의 전망에 마음이 누그러지네. (211~222행)

 
  그러나 세상 밖 봉쇄 수도원에 살지라도 속세의 기억을 완전히 떨쳐버릴 수 없다. 그 기억은 원치 않게 사랑하는 이를 등져야 했던 아픈 기억이다. 아무리 아파도 버릴 수는 없다. 나무의 나이테가 세월을 기억하듯 흘러간 세월의 옹이다.
 
프랑스에 있는 엘로이즈와 아벨라르의 무덤. 둘은 비극적인 생을 마감했으나 죽어서 나란히 묻혔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은 지울 수 없는 사랑의 기억에 대한 이야기다. 짐 캐리가 조엘 역으로, 케이트 윈슬릿이 클레멘타인 역으로 각각 출연했다. 자유분방하고 솔직한 클레멘타인과 소심하고 진지한 성격의 조엘은 서로 다른 성격의 소유자다. 부족한 부분을 서로에게 채워 넣을 수 있다는 사실에 둘은 사랑에 빠져든다. 그러나 대립적인 성격은 둘을 충돌하게 만든다. 두 사람의 이별이 누구의 책임이건 간에 말이다. 조엘이 클레멘타인에게 말한다.
 
  “너 딴 놈과 잤지. 사람들이 널 좋아하게 만들려고 항상 하는 짓이잖아.”
 
  클레멘타인은 기가 막히다며 얼어붙는다. 그날로 짐을 챙겨 조엘의 집을 떠난다. 클레멘타인은 조엘을 잊기 위해 기억을 지워 주는 회사를 찾아간다. 이 회사는 ‘선택적 기억삭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그리고 조엘에 대한 기억을 깡그리 지워 버린다.
 
  여기서 다시 포프의 시로 돌아가 보자.
 
17세기 영국의 시인 알렉산더 포프.
  내 실수하는 영혼은 훨씬 다른 꿈들,
  경건하지 않은 즐거움의 훨씬 다른 황홀함을 좇네.
  슬픈, 비탄에 빠진 하루가 끝나고,
  상상력이 복수심이 빼앗아 간 것을 복원할 때,
  양심은 잠이 들고, 본성을 자유롭게 놔두어,
  모든 나의 자유로운 정신은 통제되지 않은 채 그대에게 달려가네.
  모든 것을 아는 밤의 저주받은 끔찍한 공포들이여!
  강렬한 죄의식이 짜릿한 즐거움을 얼마나 자극하는가!
  도발하는 악마들은 모든 억제를 제거하고,
  내 안에 사랑의 모든 원천을 일깨운다.
  나는 그대를 듣고, 그대를 보고, 그대의 모든 매력을 응시한다,
  그리고 그대의 환영을 내 팔로 껴안는다.
  나는 깨어나지만, 더 이상 듣지 못한다, 더 이상 보지도 못한다,
  환영은 당신처럼 불친절하게 나에게서 달아나 버린다.
  나는 큰 소리로 외치지만, 환영은 내 소리를 듣지 못한다,
  나는 내 팔을 공허하게 내뻗지만, 환영은 사라진다.
  나는 다시 한 번 꿈을 꾸기 위해 눈을 감는다,
  너희 부드러운 환상들, 소중한 기만들이여, 일어나라!
  아아, 더 이상은 아니다! 내 생각에 우리는
  황량한 황무지를 배회하고, 서로의 고통에 대해 울고 있다.
  여기에 어떤 곰팡내 나는 탑 주변에 창백한 담쟁이가 기어 오르고,
  튀어나온 바위가 바다 위에 고개를 끄덕이며 걸쳐 있다.
  홀연히 그대는 오른다! 그대는 하늘에서 손짓을 보낸다,
  구름들이 끼어들고 파도가 일렁이고, 바람이 인다.
  나는 비명을 지르고, 놀라며, 똑같은 슬픈 광경을 발견하게 되고,
  내가 남겨 놓은 모든 비애를 깨닫는다. (223~248행)

 
 
  알렉산더 포프의 시와 영화 〈이터널 선샤인〉
 
알렉산더 포프의 시 〈엘로이즈가 아벨라르에게〉에 영감받아 제작된 영화 〈이터널 선샤인〉(2004년작). 짐 캐리와 케이트 윈슬릿이 주연을 맡았다.
  영화 속 조엘은 클레멘타인을 잊지 못한다. 그녀가 일하는 곳을 찾아가지만 조엘을 낯선 이 취급을 한다. 그리고 새로운 연인과 키스를 주고받는다. 충격에 빠진 조엘은 잠시 후 이런 편지를 받는다.
 
  “댁은 클레멘타인 씨의 기억에서 삭제됐습니다. 다시 둘 사이 관계에 대해 말하지 마세요.”(Clementine has had Joel erased from her memory. Please never mention their relationship to her again.)
 
  기억을 지워 주는 회사가 조엘에게 보낸 것이다.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던 조엘은 결심한다. 자신의 기억 속에 담긴, 클레멘타인에 대한 기억을 모두 지우기로.
 
  조엘은 기억 속 클레멘타인과의 만남을 하나하나 불러낸다. 가까운 기억은 대부분 싸운 기억밖에 없다. 삭제하기 편하다. 그러나 점점 이전 기억을 들출수록 지우기 어렵다. 그녀와의 추억(기억)이 너무 아름답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삭제를 거부하는 기억이 하나둘씩 늘어난다. 조엘은 괴로워하며 소리친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만할래!”
 
조엘(짐 캐리)은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릿)에 대한 기억을 지우려 한다. 그러나 아름다웠던 사랑을 지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결국 조엘은 클레멘타인과의 기억을 지키기로 결심한다. 어쩌면 클레멘타인의 기억은 조엘에게 ‘영원한 햇살’과 같다.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순수함의 상징이다.
 
  조엘은 더는 클레멘타인에 대한 기억을 억지로 끌어내거나 지우려 하지 않는다. 자기 기억 속에 그대로 저장한 채 필요한 경우(사랑이 그리울 때) 꺼내 보리라. 사실, 사람의 기억은 불완전하고 망각할 수 있지만 원하는 기억을 남겨둘 수 있다. 기억은 의지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만약 기억의 의지가 순수하다면, 세상이 완전 소멸하기까지 자신의 몫으로 영원할 것이다. 기억 속 ‘영원한 햇살’처럼.
 
  알렉산더 포프는 당대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많은 비문(碑文)을 썼다. 압축적이고 단아한 글이 일품이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영국의 과학자 아이작 뉴턴이 사망하자 포프는 이런 비문을 바쳤다.
 
  자연과 자연의 법칙이 어둠 속에 숨겨져 있었다.
  신이 말씀하셨다, 뉴턴이 있으라! 그리고 모든 게 빛이었다.

 
  포프가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어느 부인이 사망하자 이런 비문을 썼다. 이 비문은 포프의 걸작 중 최고로 불린다.
 
  여기 한 여성이 쉬고 있네, 꾸밈없이 선하고,
  명료한 이성과 건전한 양식으로 축복받아,
  어떤 정복도 바라지 않고, 자신에 대한 극기만을 바랐던 여성이.
  어떤 꾸밈도 시도하지 않아, 찬탄을 받지 않았네.
  열정과 교만함은 그녀 영혼에 낯설었고,
  덕목만이 우리 것임을 확신했네.
  그렇게 영향을 받지 않고, 그렇게 차분하고,
  그렇게 굳건하나 부드럽고, 그렇게 강하나 세련된 마음을,
  하늘은 가장 순수한 금처럼 고통으로 시험했고,
  그녀는 성자로서 이를 견뎠으나, 여성으로서는 죽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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