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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철의 교통법 why?

현행법상으로도 소방·구조 위해 차량 손괴할 수 있다

글 : 한문철  스스로닷컴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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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천 화재사건 당시 소방차가 신속하게 현장 진입 못한 것은 불법주차 차량들 때문
⊙ 형법상 긴급피난·정당행위 법리에 따라 소방·구조작업 위해 불법주차 차량 파손해도 형사책임 없어
⊙ 민사상으로 ‘급박한 위난을 피하기 위하여 부득이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에 해당해 손해배상책임 없어

한문철
1961년생. 서울대 법대 졸업 / TBS 〈교통시대〉 교통사고 법률상담, TV조선 〈뉴스와이드 활〉 앵커. 현 스스로닷컴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 《교통사고 현장대처부터 소송절차 마무리까지》 《(만화)굿바이 음주운전》 출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현장. 불법주차 차량들 때문에 초동 대처에 어려움이 많았다. 사진=조선일보DB
  ‘자, 이제부터 접시를 깨자. 접시 깬다고 세상이 깨어지나.’
 
  올해 만 70세인 가수 김국환씨의 노래 〈우리도 접시를 깨자〉의 후렴구이다. 한때 “온 국민이 접시를 깨자고 해서 접시 만드는 회사가 대박 났었다”는 우스개 이야기도 있었지만 실제로 접시가 많이 깨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 노래는 ‘아내를 가사노동에서 해방시키고 남편들이 아내 일을 도와주자. 설거지하다가 접시를 깨트릴 수도 있지만, 접시 깬다고 세상이 깨지는 건 아니니 이제부터 접시 깨더라도 아내를 위해 남편들도 앞치마 동여매고 부엌에서 놀아 보자’는 뜻이다. 고생하는 아내를 위해서는,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서는 접시를 깰 수 있다는 멋진 노래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접시가 깨지면 어떻게 될까? 별로 비싸지 않은 접시면 ‘조심하시지~’라고 하겠지만 아내가 아끼는 값비싼 접시를 깨면 ‘당신은 왜 쓸데없이 부엌에 들어와서~ 얼른 나가요~ 어이구 속상해’ 하면서 남편을 책망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된다. 접시는 얼마든지 다시 사면 된다.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남편이 팔을 걷고 나서는 건 흔치 않다. 마음먹고 나섰으면 제대로 해야 한다. 접시 한두 개 깨지더라도 남편의 아내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는 그 순간은 잊지 못할 것이고 거기서 부부의 사랑과 가정의 행복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접시 깨질까 봐 사랑을 표현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단지 고생하는 아내를 쉬게 해 주려는 정도가 아니라 아내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데도 접시 깨질까 봐 접근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제천 화재사건
 
  갑자기 무슨 뜬금없는 얘기일까 싶겠지만 지난 2017년 12월 21일 충북 제천의 한 스포츠센터에서 있었던 화재 사고 얘기다. 1층 주차장에서 일어난 불은 삽시간에 8층까지 번져 29명이 숨졌다. 그중 2층 여자 사우나에서만 20명이 사망했다. 비상구를 찾지 못해 유리창을 두드리고 긁다가 고통스럽게 죽어 간 것이다. 그때 소방관들이 2층 유리창만 빨리 깼더라도 20명 중 대부분은 대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방관들이 2층 아닌 지하층을 수색하느라 골든타임을 놓쳤다. 게다가 무전기마저 불통이어서 이미 상황 종료된 후에야 소방관들은 2층 유리를 깨고 진입할 수 있었다.
 
  이번 참사의 원인과 문제점들은 여러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세계 최고의 통신강국인 대한민국에서 무전기가 안 터졌다는 것 자체도 우스운 얘기다. 상황실에서 현장 지휘관에게 2층에 사람들이 여럿 있다고 휴대전화로 알렸는데도 구조대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도 문제다. 전체적인 상황을 판단하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것에만 신경 쓰며 우왕좌왕한 것도 문제다.
 
  외국의 재난영화를 보면 소방대원들이 출동 시 건물의 설계도면을 보고 어느 곳에 사람이 많이 있는지, 비상구는 어느 쪽인지, 어느 쪽으로 탈출로를 만들어야 하는지 미리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긴다. 우리는 일단 출동해서 불꽃이 보이는 곳에 물 뿌리고, 사람이 보이는 곳에 매트리스 깔고 하는 게 보통인 듯하다.
 
  처음에 출동한 선발대는 LPG 저장 탱크가 폭발할 위험이 있어 불길 잡는 게 우선이었다고 한다. 그건 맞는 얘기로 들린다. 왜냐면 소방대원은 진화조(組), 구조조, 구급조 등으로 역할이 분담되어 있디. 진화조는 불을 끄고, 구조조는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구급조는 구급차로 환자를 병원으로 옮기는 역할을 할 것이다. 이번 사고의 가장 큰 문제는 구조대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불법주차 차량들이 소방차 진입 가로막아
 
  그러나 구조대가 체계적으로 움직일 수 없게 만든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다. 구조대가 출동해서 건물로 진입하려 할 때 불길이 세고 연기가 자욱해 2층 진입이 어려워 지하층으로 내려갔다는 발표가 있었다. 만일 초기에 불길을 잡았더라면 강한 불길과 연기 때문에 2층 진입을 포기하는 일 없이 유리창을 깨고 사람들을 탈출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왜 진화작업이 늦어졌고, 왜 초기에 구조대가 건물로 투입되지 못했을까? 불타고 있는 스포츠센터 진입로와 부근에 불법주차된 자동차들 때문이었다. 좁은 길에 불법주차된 차들 때문에 소방차가 들어갈 수 없어서 후진으로 나와 먼 길을 돌아 현장으로 가느라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다. 건물은 화염에 불타고 사람들은 죽어 가고 있는 그 시간에 소방차는 현장을 목전에서 보면서도 들어가지 못하고 후진하느라 시간 걸리고, 먼 길 도느라 시간 걸리고, 주차된 차 한 대씩 치우느라 시간 보내고, 그러다가 모든 게 끝난 것이다. 불법주차된 차들만 없었다면, 어쩌면 2층에서 희생당한 20명 중 상당수는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일 미국이나 영국에서였다면 어떠했을까?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아예 좁은 골목길에 불법주차를 하지 않겠지만 만일 소방차 출동 시 불법주차된 차가 있다면 그들은 불도저로 밀어내듯이 주차된 차들을 밀어내거나 탱크가 밀어붙이듯이 차량들을 타고 넘어 현장에 접근했을 것이다. 그들은 하는데 우리는 왜 못할까?
 
  그건 소방대원들이 접시값(=차값)을 물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불 끄러 가기 위해, 사람 구하러 가기 위해 주차된 차를 밀어내다가 망가뜨리면 소방대원이 그 차값을 물어내야 한다. 월급이 얼마 안 되는 소방대원으로서는 주차된 차를 밀어붙일 용기를 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접시 깨질까 봐 겁내다가 수십 명의 생명을 잃은 것이다.
 
  이 사건에서 소방차가 주차된 차를 밀어붙이고 타고 넘어 불을 끄고 사람들을 구했다면 불법주차했던 차 주인들이 어떻게 나왔을까? “왜 내 차를 망가트렸느냐”며 재물손괴죄(財物損壞罪)로 형사고소하고 차값을 물어 달라고 손해배상을 청구했을 것이다.
 
 
  긴급피난과 정당행위
 
화재 이후에도 제천 스포츠센터 인근의 불법주차는 여전했다. 현행법상으로도 소방작업을 위해 불법주차 차량을 손괴할 수 있다. 사진=조선일보DB
  그러면 소방이나 구조작업을 위해 불법주차 차량들을 파손한 소방관들이 형사처벌을 받거나 손해배상을 해 줘야 할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제천 화재사건 이후 여러 언론에서 다루었다. 대부분의 언론에서는 마치 우리나라의 법률이 미비해 이런 경우 소방관들이 형사처벌을 받거나 민사상 손해배상을 해 줘야 하는 것처럼 보도했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현행법상으로도 소방이나 구조작업을 위해 차량을 손괴한 소방관들은 처벌대상도 아니고 손해배상을 해 줄 의무도 없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서는 접시를 깨야 하듯이 불을 끄고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는 접시보다 더 큰 자동차를 깨야 한다. 그 자동차를 깨는 건 당연한 일이다. 당연한 일을 한 사람을 처벌할 수 없고 그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지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형사처벌을 하고 손해배상 책임을 물으려면 잘못한 게 있어야 한다. 불을 끄기 위해, 사람을 살리기 위해 불법주차된 차를 깨부수는 건 잘못이 아니다. 더 소중한 걸 지키기 위해서는 그보다 못한 건 포기해야 하듯이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자동차를 깨트려야만 한다.
 
  형법 제22조는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法益)에 대한 현재의 위난(危難)을 피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긴급피난’이라고 한다.
 
  죽어 가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불법주차된 차를 부수는 것은 처벌 대상이 아니다. 게다가 형법 제20조는 ‘법령에 의한 행위 또는 업무로 인한 행위 기타 사회상규(常規)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라고 ‘정당행위’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소방대원들이 사람 구하고 불 끄기 위해 불법주차 차량을 깨는 건 긴급피난이면서 정당행위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소방공무원들이 형사고소와 민사소송을 당할까 봐 정당행위를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소방공무원에게 특별한 권한이 주어져 있어서 출동 시 불법주차 차량을 밀어붙일 수 있지만, 우리나라 공무원들에게는 그런 권한이 없어서 못하는 게 아니다. 우리도 (아주 당연한) 법이 있다. 그런데 그 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뿐이다.
 
 
  불법주차 차량 아니어도 처리할 수 있어야
 
  요즘 한참 소방기본법을 개정작업 중이다. 도로교통법상 주정차금지 장소에 주차한 차량은 이동과정에서 파손돼도 보상 받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한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도로교통법상 주정차금지 구역이 아닌 곳이어도, 주차 차량 때문에 소방차가 못 들어가는 곳도 많다, 주차금지구역선이 그어지지 않은 곳이지만 양쪽으로 들쭉날쭉 주차되어 있으면 덩치 큰 소방차가 못 들어갈 수 있다. 도로교통법상 주정차금지구역이 아닌 곳이더라도 소방차의 진입에 방해된다면 그 차량을 강제로 제거하고 이동시켜야 한다. 그래야 사람을 살릴 수 있고 불을 끌 수 있다(사람이 없는 건물에 난 불이더라도 그 불이 옆 건물로 옮겨 붙으면 다른 사람들이 위험해질 수 있다).
 
  사람을 살리고 불을 끄기 위해 긴급출동한 소방차는 주정차금지구역이냐 아니냐를 따지지 말고 진입에 방해되는 차들은 밀어붙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을 살릴 수 있다. 불법주차 차량은 보상을 해 주지 않되, 불법주정차 구역이 아닌 곳에 주차했던 차량에 대해서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손실보상을 해 주면 된다. 물론 이와 관련해 소방공무원에게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
 
  죽어 가는 그 사람이 주차된 차 주인의 아내일 수도 있다. 차값은 나중이다. 사람을 먼저 살려야 한다. 접시(자동차)는 아무리 비싸더라도 나중에 다시 사면 된다. 그리고 불법주차 아닌 경우에도 소방공무원에게는 형사책임뿐 아니라 민사책임도 물어서는 안 된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긴급한 상황이었기에 긴급피난과 정당행위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민법 제761조 제2항에서도 ‘급박한 위난을 피하기 위하여 부득이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엔 손해배상책임이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자, 이제부터 접시를 깨자. 접시 깬다고 세상이 깨어지나. 자, 이제부터 접시를 깨트리자, 접시를 깨트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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