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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관 출신 우동집 주인장의 일본 物語 〈16〉 ‘황금의 나라’ 지팡구

글 : 신상목  (주)기리야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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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도 시대 서양과 접촉하기 훨씬 전부터 ‘일본’의 존재가 서양에 알려져
⊙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치팡구(Chipangu)는 카타이(중국)의 동쪽 1500 마일에 위치한 위대한 섬나라’
⊙ ‘Japan’은 ‘일본국(日本國)’이라는 한자의 남중국(오(吳)나라 계통) 방언 발음인 ‘Jih-pen-kuo’에서 유래

신상목
1970년생. 연세대 법대 졸업, 외시 30회 합격 / 주일대사관 1등서기관, 외교부 G20정상회의 행사기획과장, 핵안보정상회의 준비기획단 의전과장 역임. 현 기리야마 대표 / 저서 《일본은 악어다》
1561년에 제작된 제바스티안 뮌스터의 지도. 일본이 ‘지팡구니(Zipangni)’라는 이름으로 남북아메리카대륙의 왼쪽에 있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다.
  일본의 근대화는 서구화를 본질적 요소로 내포하고 있다. 메이지(明治)유신 이후 서구(西歐)의 사상과 관념을 수용하고 내재화하면서 급격한 서구화의 압력에 성공적으로 대응한 것이 일본의 근대화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같은 시기의 청(淸), 조선과 일본이 가장 대별되는 사회발전 양상이기도 하다.
 
  그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일본의 서구에 대한 이해도가 그만큼 타국(他國)에 비해 높았기 때문일 것이다. 서구에 대한 높은 이해도는 그에 상응하는 교류의 역사를 전제로 한다. 한국에서도 센고쿠(戰國) 시대 포르투갈로부터의 철포(鐵砲)나 천주교의 전래 등으로부터 시작된 유럽과 일본의 교류 역사가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일본의 유럽 교류사는 생각보다 역사의 연원도 깊고, 내용도 알차고, 교류의 방향도 일방적이지만은 않았다. 따라서 일본 근대화의 성공 요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본과 유럽 간의 교류 역사를 되짚어 보는 것이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이번 호부터 수회에 걸쳐 일본 근대화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일본과 유럽 간 교류사의 하이라이트 몇 장면을 소개한다.
 
 
  ‘카탈루냐 지도’
 
아브라함 크레스케스가 1375년에 제작한 ‘카탈루냐 지도’.
  1375년, 중세 유럽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한 편의 지도책이 ‘나침반의 달인’으로 알려진 유대인 지도제작가 아브라함 크레스케스(Abraham Cresques)에 의해 발간된다. 최초의 근대적 지도로 알려진 ‘카탈루냐 지도(Catalan Atlas)’이다. 카탈루냐는 최근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 문제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바로 그 지역이다.
 
  카탈루냐는 1714년 스페인에 복속되기 전까지 고유의 언어를 가진 독립국으로 존속했으며, 중세에는 지중해 무역의 주역으로 크게 번성했던 유서 깊은 지역이다. 카탈루냐에서는 아랍인들과 유대인들에 의한 상업 활동이 활발했던 탓에 일찍부터 항해술과 지도제작 기술이 발달하였다.
 
  후세에 ‘마요르카 지도학파’(Majorcan cartographic school)로 불리며 기존의 고대(古代) 지도보다 실제성과 실용성 면에서 진일보한 지도를 제작하던 크레스케스와 그 문하생들이 발간한 ‘카탈루냐 지도’에는 그때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지역과 지명이 다수 등장한다.
 
  카탈루냐 지도는 세계전도(Mappa Mundi)의 형식으로 총 8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 4장이 오리엔트, 즉 동방의 지리에 할애되어 있다. 기존에는 막연한 상상의 영역으로 표기되어 있던 동방 지역이 새로운 지명과 함께 세밀하게 묘사될 수 있었던 것은 마르코 폴로(Marco Polo)의 《동방견문록》 발간의 영향이 컸다.
 
  베니스 출신의 이탈리아 상인이자 여행가인 마르코 폴로는 1271년 베니스를 떠나 페르시아, 중앙아시아를 거쳐 몽골로 향했으며, 1274년 몽골의 샨두(商都)에 입성하여 무려 17년 동안 원(元)나라에 머무르다가 자바, 말레이 반도, 스리랑카, 인도 등을 거쳐 1295년 베네치아로 귀향한다.
 
  마르코 폴로는 1298년 베네치아와 제노바 간의 전쟁에 참가했다가 제노바의 포로가 되어 투옥되는데, 그곳에서 만난 피사 출신의 작가 루스티켈로(Rustichello)에게 자신의 세계 여행 경험을 구술하여 《세계의 서술(Divisament dou Monde)》이라는 제목의 기록을 남긴다. 《동방견문록》으로 알려진 바로 그 책이다.
 
 
  《동방견문록》
 
《동방견문록》을 지은 마르코 폴로.
  고(古)이탈리아어 방언의 영향이 강한 프랑스어로 쓰인 《동방견문록》은 원본 발간 이후 수많은 사본과 번역본이 제작되어 유럽 전역에 퍼졌고, 당시 유럽인들의 동방에 대한 관심과 동경을 불러일으키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였다. 마르코 폴로는 《동방견문록》에서 중국을 ‘카타이(Cathay)’라고 부르며, ‘그랑 칸’(大汗·‘위대한 군주’라는 뜻) 쿠빌라이의 지배하에 온갖 재화와 물산이 넘쳐나는 풍요로움의 땅으로 묘사한다.
 
  《동방견문록》은 현재의 시각으로 보면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황당무계한 내용들로 가득하다. 그것은 마르코 폴로가 거짓말을 했다기보다는 그가 직접 목격한 것 이외에 현지인들로부터 전해 들은 소문이나 전설 등을 주요 소재로 기술하였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이 당시 유럽인들의 세계관 또는 지적 인식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어찌 되었건, 마르코 폴로가 풍요와 신비함의 땅으로 묘사한 카타이를 비롯한 동방 일대는 이후 유럽 상인과 선교사들의 호기심과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당시 유럽인들의 동방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하여 동방 진출의 전초 작업으로 제작된 것이 ‘카탈루냐 지도’이다.
 
마르코 폴로가 ‘그랑 칸’이라고 표현한 몽골제국의 쿠빌라이 칸.
  유럽인으로 아메리카 대륙에 처음 도착한 콜럼버스는 마르코 폴로의 열렬한 팬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인도’로의 신항로 개척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마르코 폴로가 몽골의 그랑 칸이 지배하는 영역을 대인도, 중인도, 소인도 등 ‘세 개의 인도’로 기술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15세기 이후 대항해 시대를 거쳐 서양 세력이 동양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는(또는 본격적으로 동양을 탐하는) 역사의 시동을 건 것이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서구의 동방 진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동방견문록》에 일본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동방견문록》보다 앞서 10세기경 아랍의 지리지에 ‘와코쿠(倭國)’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는 ‘와쿠와쿠’라는 지명의 기록이 있다. 하지만 유럽인들은 아직까지 일본의 존재에 대해 알지 못했다.
 
 
  ‘Japan’의 어원이 된 ‘치팡구’
 
  《동방견문록》에서 일본은 ‘치팡구(Cipangu 또는 Chipangu)’라는 명칭으로 등장한다. 치팡구의 어원(語源)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다. 그중에서 ‘일본국(日本國)’이라는 한자의 남중국(오·吳나라 계통) 방언 발음인 Jih-pen-kuo에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동방견문록》이 워낙 다양한 언어로 기록되어 치팡구의 스펠링은 일률적이지 않다. 현재 일본에서는 ‘지팡구(ジパング)’로 표기되고(이의 영향으로 알파벳도 일반적으로 ‘Zipangu’ 또는 ‘Jipangu’로 표기), 나아가 일본의 영어권 명칭인 ‘Japan’을 비롯하여 독일어의 ‘Japon’, 프랑스어의 ‘Jap'on’, 이탈리어어의 ‘Giappone’ 등 유럽어 계통 명칭의 기원으로 알려져 있다.
 
  ‘Japan’의 기원은 보다 정확히 말하면 16세기 포르투갈인들이 자바나 말레이 반도 등 동남아시아에서 일본을 ‘Jepang’, ‘Jipang’ 등으로 부르던 것을 참고하여 유럽에 일본을 ‘Jap ̄ao(자퐁)’으로 소개한 것이 널리 퍼진 영향이 크다.
 
  그러나 ‘Jepang’, ‘Jipang’ 등 동남아 명칭 자체가 ‘일본(日本)’의 남중국어 발음을 음차용(音借用)한 것이므로, ‘Cipangu’와 ‘Japan’이 같은 뿌리를 갖고 있다고 보아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치팡구 - 황금의 나라
 
일본을 침공한 몽골군.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는 그랑 칸의 지팡구 원정 이야기가 나온다.
  이름이야 어찌 되었건, 마르코 폴로가 전하는 치팡구는 전설에나 나올 법한 ‘황금의 나라’이다. 《동방견문록》에서는 치팡구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치팡구(Chipangu)는 카타이(중국)의 동쪽 1500마일에 위치한 위대한 섬나라이다. 사람들은 희고, 문명화되어 있으며, 좋은 대접을 받는다. 이들은 우상숭배자(Idolaters·비기독교신자라는 의미)이며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는 독립국이다. 이들이 보유한 금의 양은 끝이 없다. 이 금들은 이 나라에서 생산된 것이며, 왕은 금의 유출을 금하고 있다. 대륙과 멀리 떨어져 있어 이곳을 방문하는 상인들은 드물며, 이에 따라 이들의 금은 측정할 수 없으리만치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내용을 필두로, 치팡구는 궁전의 지붕이 금으로 덮여 있고 마룻바닥은 금으로 깔려 있으며, 주민들은 장례 때 진주를 사자(死者)의 입에 올려놓고 제물로 바치는 풍습이 있다는 등 엄청난 보물이 널려 있는 나라로 묘사된다. 아울러 쿠빌라이 칸이 황금을 얻기 위해 원정군을 보냈으나 태풍으로 함대가 전멸하였고, 살아남은 일단의 병사들이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반란을 일으킨 끝에 화의(和議)를 맺고 현지에 거주하기로 했다는 등의 역사적 내용도 기술되어 있다.
 
  《동방견문록》의 치팡구가 일본을 지칭하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는 이론(異論)도 없지 않지만, 일본의 역사학자들은 당시 시대상과 정황 등을 들어 치팡구=일본설을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다. 일본에서는 8세기경부터 사금(砂金)이 채취되었는데, 이 사금을 이용하여 당시 수도인 나라(奈良)에 황금으로 도금된 15m 높이의 대불(大佛)이 세워졌다는 기록이 있다. 일본을 방문한 신라, 당(唐)나라, 인도의 승려 등에게 일본의 황금 대불은 인상적인 존재였을 것이다.
 
  또한 9세기 이후 수백 명 규모로 파견되기 시작한 견당사(遣唐使)들에게 1인당 수 킬로그램(kg)씩 사금으로 제조한 황금이 지급되었다. 이들이 중국에서 이 황금을 경비로 사용함에 따라 중국인들에게 일본은 ‘황금의 나라’로 알려지게 된다.
 
  당시 당나라에서 활동하던 이슬람 상인들에게 이 소문이 전해졌고, 이러한 상인들의 전언(傳言)을 이슬람 지리학자인 이븐 후르다드-비(Ibn Khurd^adh-Bih)가 자신의 지리서에 “개와 원숭이의 목줄이 황금으로 만들어지는 나라 ‘와쿠와쿠’”로 소개하였다(와쿠와쿠에 대해서는 일본이 아니라 묘사의 내용상 열대 지방, 즉 동남아 지역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치팡구는 일본인가?
 
  송(宋)나라 시대에 들어 일본의 대(對)중국 교역은 더욱 활발해졌고, 일본은 동전, 비단, 도자기 등을 수입하는 대가로 중국 상인들에게 사금을 지불하였다. 1124년 사금의 주산지인 오슈(奧州·일본의 동북부 지방, 현재의 이와테·岩手현에 해당)에 소재한 주손지(中尊寺)라는 사찰 내에 건물 전면(全面)에 금박을 입힌 ‘곤지키도(金色堂)’라는 법당이 건축된다.
 
  오슈의 호족인 안도우지(安東氏)는 당시 독자적으로 중국과 교역을 하고 있었는데, 주손지가 위치한 오슈의 히라이즈미(平泉)는 수도인 교토에 이은 제2의 도시로 크게 번성하였으며, 중국 상인들도 이곳을 빈번하게 출입하였다. 이들 중국 상인이 곤지키도를 목격하고 전한 황금 전당(殿堂)의 이야기가 중국인들 사이에 퍼져 황금의 나라 일본에 대한 환상을 더욱 부풀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12세기 이후 몽골 제국의 성립과 함께 몽골에는 이슬람 상인을 비롯한 서역인이 왕래하며 유라시아를 아우르는 무역이 전개된다. 당시 유라시아 무역의 동방 중심이 된 국제무역항 사이퉁(지금의 푸젠성 취안저우·泉州시)에는 수만 명의 이슬람 상인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기존의 와쿠와쿠 전설에 중국 상인들의 곤지키도 목격담 등이 더해져 황금의 나라 일본에 대한 인식이 이들 서역인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고, 마르코 폴로는 중국 여행 중 방문한 사이퉁에서 이들을 통해 치팡구에 대한 정보를 얻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한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동방견문록》에는 쿠빌라이 칸의 치팡구 원정군 파견 스토리가 기술되어 있다. 여몽(麗蒙) 연합군의 일본 원정이 1274년과 1281년으로 마르코 폴로가 원나라에 체재하던 시기와 일치한다는 것도 치팡구가 일본임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꼽히고 있다.
 
 
  환상의 나라 일본
 
콜럼버스(왼쪽)는 여백에 메모를 해 가면서 《동방견문록》을 열심히 읽었다.
  마르코 폴로가 말한 치팡구가 일본이건 아니건, 《동방견문록》에 수록된 치팡구는 유럽인들에게 동방의 신비롭고 진기한 보물섬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콜럼버스가 인도로 가는 신항로를 찾겠다고 동쪽이 아닌 서쪽 항로를 고집한 것도 (지구가 둥글다는 확신을 바탕으로) 치팡구에 먼저 도달하기 위한 동기가 작용하였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견해도 있다. 이처럼 일본은 생각보다 일찍부터 유럽인들의 마음속에 동경을 부르는 환상의 나라로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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