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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가의 조경 이야기 〈5〉 고층아파트와 수공간(水空間)

글·사진 : 정정수  정정수환경조형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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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양의 정서에는 중력을 거스르는 분수보다 폭포가 어울려
⊙ 수직적인 고층아파트 단지에는 폭포를 조성하고 물이 구불구불 낮게 흐르다가 연못으로 모이는
    수평적 수공간 조성

정정수
홍익대 및 동교육대학원 졸 / 개인전 14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운영위원 및 심사위원,
2008 세계조경가대회(IFLA) 최우수상 수상(인도개최), 2008 올해의 신한국인 대상 수상(문화부문) /
기전대학교 예술조경과 교수, 고도원아침편지 명상센터 옹달샘 예술총감독,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예술총감독, 서울시 시민청예술축제 전시총감독,
현 정정수환경조형연구원장
  근래 건축물에 석재를 많이 이용하면서 유럽의 중심지에서나 볼 수 있는 묵직한 건축 양식을 닮은 건물군(群)을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1970~1980년대만 해도 건물의 외형은 생각할 여유도 없이 건물을 짓는 일에만 급급했었으나 지금은 건물의 가치를 높이려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특히 2000년대 초부터는 아파트 단지를 시작으로 단지의 인지도와 가치를 높이기 위해 수공간(水空間)을 조성하는 일에 노력해 왔다. 그러나 아파트가 서양 건축의 구조적 형식을 따르다 보니 수공간의 대부분이 정형화·규격화됐다. 특별한 조경철학 없이 크고 작은 분수만을 천편일률적으로 시공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 이런 분수가 있는 수공간은 여름에 시원한 맛을 주기는 한다. 그러나 한겨울에는 쓸모없이 방치되어 애물단지로 전락한다는 단점이 있다.
 
 
  분수와 폭포
 
아름다움을 만들기 위해 새벽을 여는 조경인들의 모습에서 경건함이 보인다. 이들은 호수에 물을 채우기 전에 호수 안의 작은 섬을 정리하고 있다. (천수마을 2015)
  한국의 아파트에는 어떤 수공간이 어울릴까? 분수와 폭포가 서로 상반되는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양정신이 추구하는 폭포는 중력을 거스르지 않고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니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형태다. 서양의 분수는 중력을 거스르며 자연의 순리에 역행하는 것이어서 동양인은 물론, 특히 우리나라의 정서와 환경에는 맞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분수는 수직적 형태를 갖는다. 이 수직적 형태가 수평적 형태와 함께 배치될 때 비로소 조화를 이룬다. 이는 미술적 안목(아름다운 조화)이 있어야만 찾아낼 수 있다. 조경을 미술이 주도하고 시작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미술이 가미되어 수평과 수직의 조화를 만들어 낸 조경의 예로는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을 들 수 있다.
 
물이 채워진 호수는 하늘의 모습까지 담아 낸다. (천수마을 2016)
  동서를 막론하고 절대권력자가 기거하는 궁전의 정원에는 어린아이보다도 작은 높이의 나무들이 다듬어져 있다. 큰키나무가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적이 침투를 시도할 경우 큰키나무가 적을 가려내는 데 방해가 되거나 은신의 장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궁전은 삼엄한 경호가 필요하기에 정원에 큰키나무를 조성하지 않고 낮은 크기로 조경을 한 것이다.
 
  베르사유 궁전의 경우에는 키작은나무가 만들어 내는 수평적 평면 위에 수직으로 높이 올라가는 분수가 평면의 밋밋함을 없애 주고 조화로움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아파트라는 건축물은 이미 수십 층 높이의 수직의 집합체로 형성되어 있다. 이렇게 수직이 연속된 주변에 또 수직적 형태인 분수가 덧붙여지는 것은 공감을 이끌어 내기 어려운 디자인이다.
 
 
  폭포가 있는 아파트
 
생태공원으로서의 기능을 갖고 있는 초심원은 입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공간이 됐으며, 인근 주민들은 물론이고 학생들이 수업을 마치고 자연스레 찾아와 산책하는 공간이 됐다. 한여름에 아이들이 계류에 발 담그고 뛰어다니며 물놀이를 즐기는 모습은 조경공간을 넘어 사람과 자연이 함께 어울리는 공간이 만들어졌음을 증명하고 있다. (래미안 금광 아파트 초심원 2007년)
  이 같은 문제점은 어떻게 해결하는 게 좋을까? 수직적인 고층 아파트에는 폭포를 조성하고 거기서 떨어지는 물이 계류로 구불구불 낮게 흐르다가 연못으로 모이는 수평적 수공간을 조성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필자는 2007년 ‘래미안 금광’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현장 소장과 의견을 모아 위의 방법을 적용해 보았다. 그렇게 특화조경의 일환으로 만든 것이 자연생태공원으로 불리는 래미안 금광 ‘초심원(初心園)’이다.
 
  래미안 금광아파트에는 높고 가파른 법면(法面・경사면)이 있다. ‘초심원’에는 이 지형적 특성에 약간의 평지를 빌려 방지(方池)를 만들고 ‘ㄱ’ 자 정자를 세워서 주민들에게 쉼터를 제공했다. 절벽 주변의 안전을 위해 설치된 가담 밑으로 흐르는 물은 두 개 층으로 나누어진 폭포로 조성했다. 이렇게 떨어진 물은 연못에 고였다가 어린이 물놀이터로 사용되고 계류를 150m 거리까지 흘러가서 조그만 연못에 머물렀다가 다시 방지로 올려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초심원’은 폭포를 중심으로 계곡을 따라 물이 순환하는 구조의 자연을 닮았다. 많은 조경인들이 이곳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2008년 IFLA(세계조경가대회·인도 개최) 최우수상을 시작으로 국내의 디자인상을 여러 개 수상했다.
 
 
  한길 물속도 알아보자
 
완성된 연못을 보여주면 “여기 이 연못은 원래 있었던 연못이냐?”는 질문을 받는다. 최고의 찬사로 받아들이고 싶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물을 채우기 전에 각종 기능에 적합한 시설을 만든 후 물을 채우고 수변식물과 수생식물들로 주변을 정리한다. 그런 다음 물고기도 넣어 준다. 만남이라는 아름다운 관계를 서로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만든다면 조화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 탄생한 수공간이다. (천수마을 2016년)
  자연은 인간의 상처 난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눈에 보이는 상처보다는 보이지 않는 상처가 더 심각한 법이다. 예를 들어 종합병원에서 만나는 환자들 중에서 정형외과 환자들은 보조기구에 의존해서 움직이거나, 붕대를 감고 있어서 보기에는 고통이 크게 느껴진다. 하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원래 상태로 회복될 가능성이 높다. 이들에 비해 내과 병동의 환자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고통이 덜 느껴지지만 이들의 병은 오랫동안 지속된 잘못된 습관이나 환경에서 기인했기에 대부분 회복이 쉽지 않다.
 
  자연은 이와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심각성까지도 상당 부분 치유하는 기능이 있다. 현대인의 삶에 자연을 닮은 조경공간을 제공하는 것은 삶의 과정에서 만들어진 상처를 보듬어 주는 장소를 갖는다는 의미다. 자연을 닮은 조경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술성과 기능을 겸비한 조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연으로부터 얻은 미술적 표현인 직선과 곡선, 수평과 수직으로 이루어지는 변화와 통일의 문제들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
 
물속의 관계를 읽는 눈을 갖는다는 것은 시각적 감각에 논리적 사고를 얹어 줄 수 있으므로 폭넓은 시야를 갖게 한다. 좀 더 나은 감각의 완성을 위해 물속 관계를 관찰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벽초지 2003)
  ‘열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의 한길 마음속은 모른다’고 했다. 연못 속 1m 깊이도 눈에 보이지 않을 테니 그 속을 아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도 자연 상태의 연못은 자연스럽게 물이 정화되면서 그곳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인공 연못은 인위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것이 인위적이되 작위적이지 않은, 그래서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추구하는 조경이 할 일이다.
 
  즉 연못이 위치하는 지역과 기능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식생(植生)의 조절을 위한 물속 기능이 반드시 필요하다. 예를 들어 연못에 연(蓮)을 식재해 놓고 그냥 놔두면 수년 만에 연이 연못을 점령해 버린다. 다른 수생식물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통 수생식물을 화분에 심어서 물속에 가라앉히는 방법을 선택한다. 이것은 부자연스럽고 소극적인 방법일 뿐 아니라, 관리하는 시간과 공을 더 많이 필요로 한다.
 
  필자는 연을 심는 곳에 원하는 크기만큼의 면적을 계획해서 물밑 흙 속에 연뿌리가 넘지 못할 만큼의 담장을 설치한다. 화분 대신 연못 바닥에 담을 만드는 것이다. 연못의 규모가 조금 크다면 물속 흙 높이를 조절하여 다양한 식생이 서식하는 구조를 만들 수도 있다. 수심 2m가 넘는 곳부터 50cm 전후 깊이까지 흙 높이를 조절하면 한 종(種)의 일방적 잠식 없이 다양한 종이 어우러지는 자연스러운 생태연못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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