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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계올림픽의 후유증 - 선진국에서 배워 예방한다 〈2〉

그르노블 동계올림픽 경기장은 왜 폐쇄됐나

“폐허 속 방치돼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스키점프대 주변에는 노숙자(露宿者)들만 보였다”

글 :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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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많은 스키 활강로 놔두고 올림픽 위해 알프스 산기슭 30만m³ 폭파
⊙ 올림픽 끝난 뒤 스키점프대 등 모든 시설 철조망으로 봉인(封印)
⊙ 전문가들 한 목소리 “동계올림픽은 경기뿐 아니라 ‘그 후’를 대비해야”
⊙ 공사판으로 변한 대관령면, 올림픽 이후에도 살아남을까 의문
⊙ 그르노블은 비록 환경 파괴했지만 변신(變身)에 성공
⊙ 평창엔 다양한 볼거리·먹거리 있지만 그것을 활용할 플랜이 없어
⊙ 주한 프랑스 대사 “올림픽 기간에 ‘프랑스의 날’ 준비 중”

[편집자 주]
《월간조선》은 8월호부터 내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평창동계올림픽의 후유증-선진국에서 배워서 예방한다’라는 주제의 기획연재를 시작했습니다. 이 기획은 앞서 동계올림픽을 치렀던 노르웨이, 스위스, 오스트리아, 프랑스, 이탈리아의 현지를 답사하면서 평창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사후에 효율적으로 시설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연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기획취재지원사업’ 지원을 받아 진행됩니다. 이번 달은 8월호의 노르웨이 릴레함메르 편에 이어 두번째로 1968년 프랑스 그르노블 올림픽의 공과(功過)를 되짚어 봅니다.
스키점프대가 철조망에 둘러싸인 채 방치돼 있다.
  
   프랑스 그르노블은 ‘프랑스 알프스’의 중심지다. 가까운 거리에 샤모니, 그르노블, 알베르빌, 안시가 있다. 이 가운데 안시를 제외한 세 곳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렸다. 그중에서 샤모니는 1924년 최초의 동계올림픽이 열린 도시로, 동계올림픽의 선구(先驅) 혹은 메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르노블 동계올림픽은 ‘실패한 올림픽’으로 유명하다. 그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 있다. 50년 전에는 웅장했을 스키점프대가 방치돼 폐허처럼 변한 사진이다. 그 스키점프대는 시내 중심가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생 니치르 두 무슈롯데(Saint-Nizier-du-Moucherotte)에 있다.
 
  아침 일찍 생 니치르로 향했다. 생 니치르는 해발 1250m의 고지다. 산으로 올라갈수록 바다에서 푹 솟아나온 것 같은 알프스의 연봉(連峰)들의 바위 근육질 자태와 산을 모태(母胎) 삼아 웅크리고 있는 그르노블 시가지의 모습이 한눈에 조망된다. 생 니치르는 인구가 몇 백뿐인 작은 마을이다.
 
  프랑스 마을 초입마다 있는 관광안내소는 문이 닫혀 있었다. 카페 주인에게 외신에 보도된 그 처참한 스키점프대의 모습을 보여주자 어느 지점을 가리켰다. “차를 끝까지 몰고 올라가다 마지막에 5분 정도 걸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가 가리키는 지점으로 올라갔으나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내려오는 길에 산악자전거를 타고 정상으로 향하는 중년 남자를 만났다. 그는 기자가 헤매던 곳을 가리키며 “5분 정도 걸어가면 보인다”고 했다. 그쪽으로 들어가자 스키점프대의 모습이 나타났다. 스키점프대에 접근하는데 인기척이 들렸다. 새벽에 나는 소리는 더 크게 들리는 법이다.
 
  스키점프대 바로 앞 풀밭에 침낭을 뒤집어쓴 남자였다. 주위에 다른 장비가 없는 것으로 보아 캠핑족은 아닌 것 같았다. 부스스 일어서는데 벌거벗은 온몸이 문신투성이였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혼자가 아니었다. 옆에서 역시 비닐 같은 것을 뒤집어쓴 중년 남성이 누런 이를 드러내며 일어났다.
 
  그들은 “담배 없냐” “먹을 게 없느냐”며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낭패였다. 스키점프대는 눈앞인데 철조망으로 가로막혀 있었고 스키점프 선수가 도약하는 부분으로 내려가려면 노숙자(露宿者) 두 명을 뚫고 지나가야 했다. 주변에 누구라도 있으면 용기를 냈겠지만 이른 시각 산은 조용했다.
 
1968년 올림픽이 열린 그르노블은 알프스 산맥에 둘러싸인 분지형 도시다.
  결국 다시 마을로 내려왔지만 스키점프대로 접근하는 루트는 그곳밖에 없었다. 다시 용기를 내 걸어 올라가는데 노숙자들이 머무는 곳으로 진입하기 전에 역시 폐허가 돼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방송중계센터 같은 건물 틈으로 사람 하나가 들어갈 만한 공간이 보였다. 처음에는 무심코 지나친 곳이었다.
 
  그곳으로 들어가 200m쯤 접근하자 위로는 스키점프대, 밑으로는 1968년 그르노블 올림픽 당시의 스키경기장과 각종 부대시설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버려진 모습이 역력했다. 스키점프대는 아예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들어갈 수 없었고 낙서투성이 콘크리트는 낡아 부서지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러고 보니 스키점프대로 들어오기 전에 방송중계센터 같은 건물 옆의 탑들도 스키슬로프로, 스키어들을 실어나르는 곤돌라 기둥들이었다. 그것들이 모두 폐쇄되거나 없어졌다는 것은 이제 그르노블 동계올림픽 경기장이 스키 시설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스키점프대야 그렇다 치고 올림픽 당시의 스키장과 각종 부대시설들까지 아예 재활용할 생각 없이 눈에 보이지 않는 지역에 접근할 수 없도록 봉인(封印)해 놓은 까닭이 궁금했다. 왜 그르노블 시민들은 이곳을 마치 상처받은 아이를 남의 눈에 띄지 않게 감추는 것처럼 여기는 것일까.
 
위에서부터 그르노블 올림픽은 환경파괴를 가져왔다. 자연적으로 치유가 안 되다 보니 이렇게 분리시켰다. 스키점프대는 낙서투성이다. 스키점프대를 앞에서 본 모습이다.
  1968년 프랑스가 동계올림픽을 개최하기 위해 그르노블에서 벌인 짓은 지금도 ‘횡포’에 가까웠다는 평가다. 스키 활강로를 만들기 위해 프랑스는 알프스 기슭 암석 30만m³를 폭파했다. 자연을 파괴한 것이다. 이 일에만 군인 1만명이 동원됐으니 환경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는 더구나 햇빛에 녹을 수 있는 봅슬레이 활주로 곡선 구간을 암모니아와 질소로 결빙시켰다. 90m의 거대한 스키점프대는 가끔 이용되다 1990년부터 이용 금지됐다. 앞서 기자가 살펴본, 노숙자들의 숙소처럼 변해 버린 그 스키점프대도 그르노블의 실패를 상징하고 있다.
 
  “올림픽의 모든 시설은 자연의 희생으로 만들어졌다. 지금은 모두 부서져 폐허가 되었다. 사업가들이 이렇게 만들어 놓고 나몰라라 하고 도망을 가 버렸다. 그르노블 지역의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1992년 전 프랑스 외교보좌관 장 자크 하디는 그르노블 동계올림픽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실 프랑스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200개가 넘는 스키장을 보유하고 있어 이럴 필요가 없었다. 알프스와 피레네 산맥 주변에 가장 많은 스키장이 밀집되어 있으며 알프스의 레 트루아발레(Les 3 Vallées) 스키장은 무려 600km나 되는 코스를 즐길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면적을 자랑한다
 
  크고 좋은 스키장을 많이 보유한 덕분에 1924년 샤모니(Chamonix) 동계올림픽을 치렀는데 굳이 자연을 망쳐 가면서까지 1968년 그르노블 동계올림픽을 치를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그 대가로 그르노블은 지금 깊은 상처를 감추고 있다. 웬만하면 자연치유되겠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다.
 
올림픽이 열린 오트랑 마을에 스키를 상징하는 구조물이 붙어 있다.
  나는 그르노블에 오기 전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리는 대관령면에 다녀온 바 있다. 원래 한가하던 마을은 온통 공사판이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게 개·폐회식이 열린다는 주경기장이었는데 이 경기장은 올림픽 개·폐회식과 올림픽 뒤 열리는 패럴림픽 개·폐회식만 치른 채 없어질 운명이라고 한다.
 
  대관령면은 또 자작나무 가로수를 심고 있었다. 동계올림픽의 상징이라고 추운 지방에서만 자라는 자작나무를 택했는지 모르겠으나 대회를 몇 달 안 남기고 심은 자작나무가 제대로 뿌리를 내릴지 의문이었다. 대관령면에서는 곳곳의 산을 깎아 낸 채 시멘트를 뿌리는 공사가 한창이다.
 
  올림픽이 끝나면 거대한 시멘트의 무덤으로 변할 대관령면이 예전의 정취를 찾을 수 있을까?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지을 때보다 몇 배의 돈을 들여야 하며 그렇더라도 회복을 장담할 수 없다. 불과 보름의 행사를 위해 우리는 그르노블이 저지른 잘못을 되풀이하고 있다.
 
스키점프대에서 본 올림픽 시설물들이 하나같이 파괴된 채 격리돼 있다.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내가 우려하는 부분은 올림픽 뒤에도 평창이 살아남을 수 있는 플랜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그르노블은 겨울에는 스키를 즐길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을, 여름이 되면 하이킹・자전거를 즐길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스키·하이킹·자전거는 프랑스인의 3대 스포츠다.
 
  매년 2월 스키 방학(vacances de ski)이라고도 불리는 겨울 방학(vacances d’hiver)과 4월 부활절 방학(vacances de Pâques)이 다가오면 프랑스인들은 스키장으로 떠날 채비를 한다. 프랑스 초등학교들은 학생들이 학기 중 다양한 체험학습을 즐길 수 있도록 여행을 보내준다.
 
  예를 들어 역사적 지역 및 옛 문화탐방여행인 ‘클라스 드 파트리무안느’(classe de patrimoine), 자연과 농촌체험을 즐길 수 있는 ‘클라스 나튀르’(classe nature), 바다와 어촌체험 여행인 ‘클라스 드 메르’(classe de mer)가 있다.
 
  겨울에는 ‘클라스 드 네주’(classe de neige)라는 스키여행을 보내주는데 스키장에서 공부도 하고 스키도 타며 다양한 체험학습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프랑스는 동계올림픽의 발상지이자 스키리조트 수가 세계 최고다. 가히 세계 최고의 겨울 여행지로 꼽힐 만하다. 때문에 프랑스에서만 1924년 제1회 샤모니, 1968년 제10회 그르노블, 1992년 제16회 알베르빌 등 세 차례의 동계올림픽이 열린 것이다.
 
오트랑마을 중심가에 있는 성화 안치대다.
  이런 역사 때문에 프랑스는 겨울스포츠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프랑스 내 350여개 스키장 연합체이자 컨설팅 전문그룹인 클라스터 몽타주(Cluster Montagne)의 브누아 로베르 대표는 과거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올림픽이 프랑스 관광산업의 혁신을 일으켰다”고 말한 바 있다.
 
  동계올림픽의 발상지인 샤모니는 원래 여름 휴양지이자 트레킹으로 유명했지만 올림픽을 개최한 이후 프랑스와 유럽에는 ‘겨울 스키관광’이라는 개념이 시작됐다. 산악 고(高)지대로 접근하기 위한 케이블카와 곤돌라, 리프트도 샤모니 올림픽 이후 처음 등장한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샤모니 올림픽 이후 프랑스 인구의 1%가 스키를 즐기기 시작했고 1968년 열린 그르노블 동계올림픽 이후에는 프랑스 스키인구가 10%까지 확산됐다. 1992년 그르노블에서 1시간 거리인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은 프랑스 겨울관광의 국제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알베르빌 올림픽 이전 프랑스 스키리조트의 외국인 관광객 점유율은 3% 수준이었으나 1992년 올림픽 이후 외국인 관광객 점유율은 35%다. 10배가 넘게 성장한 것이다. 프랑스에서 한 해 3일 이상 스키리조트에 체류하는 여행은 1000만 건 정도이며 외국인 관광객은 300만명 정도라는 것이다,
 
그르노블의 구시가지다.
  브누아 로베르 대표는 앞서 한국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올림픽을 개최한 후 산악지대로 접근할 수 있는 인프라가 생겼고 기차여행도 가능해졌다”며 “올림픽이 경제성장의 엔진 역할을 했고 올림픽 유산은 한 세기째 이어지고 있다. 15일간의 게임이 15년을 앞당긴 셈”이라고 말했다.
 
  클라스터 몽타주의 브누아 로베르 대표와 장 마르크 실바 프랑스 산악협회 대표 역시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와 유산 창출을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 장기적인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특히 로베르 대표는 “올림픽이 끝나면 모든 시설을 유지하고 수익을 내는 것은 어려울 수 있고 지역의 부채도 늘어날 수 있다”며 “올림픽 시설에 대해서는 끊임없는 고민과 고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평창이 사계절 산악관광지로 변신할 수 있느냐는 것이 아시아 스키 허브로 살아남을 수 있는 관건이라고 했다. 실바 대표는 “스키를 탈 수 있는 날은 정해져 있다. 트레킹과 수상스포츠, 자전거 등 사철 즐길 거리와 음식, 쇼핑, 웰빙 등 스키장이 도전할 수 있는 영역은 많다”고 했다.
 
  로베르 대표도 이런 조언을 남겼다. “아시아에서 동계올림픽이 연이어(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열리는 것은 큰 기회다. 전 세계 스키 인구는 1억2500만명으로 잠재력이 큰 시장이다. 평창이 아시아의 스키 허브가 될 수 있으려면 유럽과의 스키교류가 필요하다.”
 
  평창이 동계올림픽 뒤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더 있다. 지역특산품을 세계적으로 알리는 것이다. 그르노블 동계올림픽은 비록 환경 파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지만 여러가지 지역 특산품을 동계올림픽 기간 동안에 알려 지역 주민들의 소득증대에 도움을 줬다.
 
오트랑마을에는 여름에도 봅슬레이를 즐길 수 있는 놀이시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망드렝 맥주(Biere Mandrin)’다. 망드렝 맥주는 그르노블의 대표 특산물인 ‘호두’를 이용해 전통 수제 방식으로 생산하는 것이다. 망드렝 맥주의 이름은 과거 프랑스의 루이 망드렝 선장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고 한다. 루이 망드렝에 대해서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는 원래 그르노블 일대를 지칭하는 ‘도피네’ 지역의 밀수업자지만 가난한 백성들을 보호하며 부유한 농작인들과 세리들을 약탈하는 의적(義賊) 같은 사람이었다. 비교하자면 영국의 로빈 후드와 비슷한 인물이었다. 그는 해적 무리의 머리에서 권위자들에게 도전하는 통쾌함을 만끽하곤 했다.
 
  망드렝 맥주는 대형 공장에서 수개월에 걸친 자연공법으로만 생산한다. 전통방법으로 양조하고 맥주 자체가 갖고 있는 비타민과 영양분을 유지할 수 있도록 인공적인 저온살균과 여과과정을 생략한다. 망드렝 맥주가 맛있는 것은 미네랄이 풍부한 그르노블의 물이라는 천혜의 조건 때문이다.
 
  맥주의 종류는 다양해 가장 도수가 낮은 3.3도에서부터 5.8도, 6.5도, 18도 등 여러 도수의 제품을 생산한다. 또 백맥주(샤르트러즈에 포함된 7가지 풀잎 첨가), 소나무향 맥주, 유기농 맥주, 황갈색 맥주, 특급 홉맥주, 삼(대마) 맥주, 꿀맥주 등 기타 계절과 이벤트 맥주 등도 생산하고 있다.
 
  ‘망드렝 정신’(제품이름)은 43도의 말트(맥아) 맥주로 코냑과 높은 도수의 증류주들을 포함하고 있다. 한 가지 공통적인 점은 보리양이 공장용 맥주의 3배가량 되며 보리를 끓이고 낮추는 전통 방식으로 자연 발효시킨다는 점이다. 따라서 제품이 나오기까지 한 달에서 한 달 반 이상이 걸린다.
 
  평창은 이런 그르노블의 전통을 이어갈 수 있을까? 가능성은 충분하다. 강원도 평창은 쾌적한 청정지대로 볼거리, 먹을거리가 많다. 조금 더 범위를 넓히면 횡성·강릉·삼척·태백까지도 동계올림픽 범주로 들어온다. 그런데도 아직 그런 플랜에 대한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가 유념해야 할 부분이다.⊙
 
  〈후원=한국언론진흥재단〉
 
그르노블은 어떤 도시?
 
  그르노블은 이제르(Isere)주의 주청(州廳) 소재지다. 인구는 16만명쯤인데 그중 6만명이 학생인 교육도시이다. 도심에 위치한 여러 대학들이 인기를 끌면서 많은 한국 학생은 물론 전 세계 유학생들이 몰려들고 있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이곳에서 유학을 한 적이 있다.
 
  그르노블은 알프스 산맥 기슭, 이제르 강 연안에 위치한 오래된 도시로서 19세기 후반부터 알프스 산맥의 수력을 이용한 각종 공업이 발달하면서 크게 성장했다. 동계 스포츠의 명소로 주변 산에는 스키장이 많으며, 1968년 제10회 동계올림픽이 열려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적과 흑》을 쓴 작가 스탕달의 고향으로도 유명한데 스탕달 기념관도 있다. 파리 중심부로부터 그르노블까지의 거리는 약 580km다. 초고속 열차인 TGV를 타면 약 3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주한 프랑스 대사가 보는 평창동계올림픽
 
  “평창동계올림픽 기간 중 ‘프랑스의 날’ 행사 기획하고 있다”
 
  김동연 기자
 
  파비앙 페논(Fabien Penone) 주한 프랑스 대사는 《월간조선》에 프랑스 올림픽의 우수성과 평창올림픽에 바라는 점을 전해 왔다. 일문일답이다.
 
 
   프랑스는 동계올림픽의 발상지로 남다른 철학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의 동계올림픽 철학은 무엇인가요.

 
  “프랑스는 1924년 샤모니(Chamo-nix)에서 동계올림픽을 개최했다는 사실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또 같은 해 우리는 파리에서 하계올림픽을 열기도 했지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프랑스는 올림픽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올림픽 이후에도 프랑스는 1968년 그르노블(Grenoble) 동계올림픽과 1992년 알베르빌(Albertville) 동계올림픽을 개최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2024년 하계올림픽이 파리에서 열리기를 희망합니다. 크게는 스포츠, 특정하자면 올림픽은 프랑스의 정체성과 문화를 대변합니다.
 
  제 생각에 하계와 동계 올림픽은 서로 다르지 않아요. 그 (올림픽)정신은 일맥상통합니다. 둘 다 열정, 평화, 그리고 페어 플레이(fair-play) 가치가 들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가치들이 바로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국제올림픽위원회 창설자)인 피에르 드 쿠베르탱(Pierre de Coubertin)이 말하는 올림픽의 모토 ‘Citius, Altius, Fortius’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라틴어인 이 표현은 ‘더 빠르게, 더 높이, 더 강하게’를 의미하지요. 이 가치들이 분명 올림픽에는 담겨 있어야 합니다.”
 
  다가오는 2018평창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에 바라는 점이 있으시다면요.
  또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저는 개인적으로 평창올림픽을 빨리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 가족과 함께 올림픽기간 중 일부 경기를 관람할 예정입니다. 이미 저는 평창과 강릉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분명 (평창은) 성공적인 올림픽이 될 것입니다. 프랑스의 입장에서 이번 올림픽은 스포츠를 통해 한·불 양국의 친목을 다지는 데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프랑스는 한국측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POCOG)와 〈프랑스의 날(Day of France)〉 행사 준비를 위해 긴밀히 협조하고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올림픽 기간 내내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프랑스의 집(프랑스관, House of France)〉도 설치할 예정입니다. 뿐만 아니라, 한불상공회의소(FKCCI)는 〈프랑스의 버스(Bus of France)〉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버스는 인천에서부터 평창과 강릉까지 직행으로 연결합니다. 이런 이유에서 한국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올림픽 시기에 프랑스 대사로 일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경기 기간 동안 한국에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될 것입니다. 올림픽을 개최한다는 것은 개최국이 전세계와 함께 최고의 순간을 공유하는 값진 기회입니다. 역으로는 세계 각국의 외국인들이 개최국과 연결되는 기회이기도 하죠. 일례로 프랑코포니(Francophonie)가 한국에 더 잘 알려지는 기회로 작용할 겁니다. 프랑코포니란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국가들을 의미합니다. 이 국가들의 참여로 한국에도 더 많이 알려지는 기회가 될 겁니다. 아시다시피 올림픽에서는 불어를 영어와 함께 공용어로 정하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대사님께서 《월간조선》의 독자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그럼요,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월간조선》 독자 여러분, 동계스포츠를 좋아하신다면 프랑스를 방문해 볼 것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프랑스에는 동계스포츠를 하기에 최적화된 여섯 개의 산맥(mountains)이 펼쳐져 있습니다. 프랑스는 수천km에 달하는 슬로프(언덕·slopes)로 하여금 스키인들의 성지(聖地)와 같은 곳(Paradise for ski-lovers)입니다. 평창올림픽 이후 한층 고조될 동계스포츠에 대한 여러분들의 지대한 관심과 경험을 프랑스로 이어 나가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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