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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제독의 Periscope(잠망경) 〈7〉 제주민군복합항 건설이 남긴 숙제

강정기지 관련 갈등, 이대로 두고 갈 수는 없다

글 : 유영식  전 예비역 해군 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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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9년부터 구상한 제주 해군기지, 2010년 공사 시작해 작년에 군항 건설 끝내
⊙ 사업단 관계자들, 군복 입지 않고 출퇴근할 정도로 숨죽이며 살아
⊙ 공사 방해자들에게 구상권 행사한 지 1년 지났지만, 아직 재판 시작도 안 해
⊙ 문재인, 구상권 철회 약속했지만 뾰족한 해법 안 보여

유영식
1962년생으로 해군사관학교를 39기로 졸업했다. 35년9개월간의 군 생활 가운데 17년간을 해군본부와 국방부 대변인실 등에서 정훈장교로 일했다. 2009년부터 5년 동안 해군 공보과장으로 재직하며, 최장수 해군공보과장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2014년 해군 준장으로 해군본부 정훈공보실장(해군 대변인)을 지냈다.
  2015년 1월 31일 제주 강정마을 해안가에는 차가운 바람이 매섭게 불었다. 이날 군(軍) 관사 공사 현장 출입구 전체를 가로막고 있던 장애물 철거를 위한 국방부 장관 명의의 행정대집행(行政代執行)이 이루어졌다. 공사 진입로를 막고 있는 시위자, 이들의 안전을 지키는 경찰, 제주민군(民軍)복합항 건설사업단 관계자들이 새벽부터 대치하고 있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과로로 순직한 고 장원준 대위.
  필자도 이날 온종일 그곳에서 이 현장을 지켜봤다. 이날 제주기지사업단 현장에 파견 나와 있던 27살의 정훈장교 장원준 대위는 행정집행이 종료되는 자정까지 줄곧 현장에서 임무를 마치고 피곤한 몸으로 새벽 1시경 복귀했다가 인근 숙소에서 사망했다. 제주기지 공사와 관련된 최초의 인명피해였다. 그가 사망한 다음 날 그의 부인은 첫째 아이를 출산했다. 아름다운 제주 바다의 올레길목에서 6년간의 길고 긴 여정의 길에서 사람을 잃었고, 부하를 잃었고, 가족을 잃었다. 당시 해군 내에서도 일부 관계자 외에는 이런 일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지나갔다. 장원준 대위는 대전현충원에 묻혔다.
 
  지금에 와서 제주민군복합항의 전략적 가치를 굳이 다시 얘기할 것은 없다. 이미 증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민군복합항은 서해를 마주하고 있는 중국을 비롯한 주변 해양강국에 맞설 유일한 전략기지이고, 무역을 기반으로 하는 나라의 제1의 해상교통로를 지키는 길목이며, 잠수함이 대기하고만 있어도 주변국에 억제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전략적 위치이고, 북한이 미사일을 쏠 경우 신속히 동·서·남해로 전개하여 탐지하는 이지스 구축함의 모항(母港)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제 제주민군복합항 이야기가 나오면 그 전략적 가치보다 고(故) 장원준 대위와 그가 남기고 간 젊은 부인과 3살이 된 아이는 잘 살고 있는가 라는 생각을 먼저 한다.
 
 
  기지 건설 방해자들에 대한 구상권 행사 문제
 
  필자는 8년 동안 제주민군복합항 건설사업 진행과정에 관여했다. 그러면서 느낀 점이 있다. 그것은 국군은 증오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국군의 존재이유는 국민이다. 국군은 박수 받고 싶어하고, 국민은 박수쳐 주고 싶다. 국군에는 우리 아들딸들이 복무하고 있다. 미국 어느 공항에서 전쟁터에서 돌아오는 군인들을 본 시민들이 모두 일어나 박수를 치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보면서 한숨과 부러움이 인 적이 있다.
 
  2015년 해군은 제주민군복합항 공사를 적극적으로 방해한 이들을 대상으로 구상권(求償權)을 청구했다. 당시 공사업체인 삼성건설은 공사지연으로 인한 손실금 중 일부인 127억원을 되돌려 받았다. 관계 법률에 따르면 이로 인한 예산의 추가 집행, 즉 국고 손실에 대해서는 구상권을 행사해야 한다. 해군은 일부 공사지연 원인은 시민단체 등의 방해활동에 기인하고 있다고 보고 그 증거를 확보한 후, 121명에게 35억원가량을 청구하는 소장(訴狀)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출했다.
 
  하지만 구상권 청구는 항구가 다 지어지고 시간이 지나면 갈등의 골은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에 반하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해군에 대한 반감이 더 생길 우려도 있었다. 제주민군복합항 완공이 다 되어 가는 시점에 구상권 청구를 한 것을 강정마을 주민들은 국가와 군대의 보복이라고 생각할 소지가 있었다. 강정마을 주민은 “이미 마을은 찬성자와 반대자들 간에 갈등의 골이 깊이 팬 상황에서 구상권 청구는 주민들이 다시 둘로 갈라지는 장벽을 만들었다”고 이야기한다. 기지 건설에 찬성해 온 주민들은 그동안 ‘마을을 팔아먹은 사람들’이라고 비난 받아 왔다면서 “주홍글씨 달고 살아 온 시간이 너무나도 아팠다”고 말한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제주민군복합항 준공 몇 달 후 제주기지에 정박한 함상에서 열린 해군 해양력 심포지엄 기조연설에서 정호섭 해군참모총장 등에게 구상권 청구 철회를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5월 10일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기간 중 구상권 철회를 언급했다. 이로써 이 문제는 국방부와 해군의 현안이 됐다.
 
  구상권 청구는 본질적으로 두 가지 면을 내포하고 있었다. 하나는 법률적 절차의 연속이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화합의 저해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해군에 그 정서적 문제와 법적인 문제를 동시에 충족할 선택은 없었다. 필자도 해군에 근무할 당시 국회의 자료 요구와 언론의 질의에 대하여 구상권의 청구는 해군과 정부의 입장에서 법적인 절차의 연속이라고 답변했다.
 
 
  1989년부터 제주기지 구상
 
  지금 당사자인 해군의 입장은 무엇일까? 대통령의 후보 시절 언급은 이제 하나의 방침이 되었다. 이는 갈등의 치유와 화합이라는 점에 근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또한 해법의 동력이 될 수 있다. 과거를 통해서 이 문제에 대한 미래의 답을 구한다는 점에서 제주기지 건설과정을 간략히 돌아보자.
 
  해군이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건설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은 1989년이었다. 4년 후인 1993년 12월 합동참모회의를 거쳐 이에 대한 군사적 필요성을 인정받고 계획소요를 반영했다. 이후 제주기지 사업은 매번 예산반영의 우선순위에서 뒤처지다가 14년 만에 사업을 시작했다. 2007년에 들어서야 제주도청 주관으로 제주도민과 후보지 주민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것이다. 가능한 한 제주도와 주민들의 의견을 존중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해군은 제주도 한라산에 케이블카를 놓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논의가 100년여 동안 지속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모르고 있었다. 법률상 제주도의 행정적 협조 없이는 한 발자국도 내디딜 수 없었으나, 군은 상황을 낙관했다. 국방예산으로 민군복합항을 건설하니 제주도는 힘 안 들이고 상당한 규모의 국제항을 하나 더 갖게 되며,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면서 강정지역도 발전하게 될 것이니 반대할 이유가 없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2007년 5월 제주도는 제주도 강정마을에 군항을 건설하기로 하고 이를 국방부에 통보했다. 국방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이 항구가 군항 역할만 하고 국제항으로서의 기능은 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해소하기 2008년 9월 국가정책조정회의는 ‘민군복합형 관광미항(美港)’ 추진을 결정했다.
 
  2010년 1월 드디어 공사가 시작됐다. 아쉽게도 제주도의 정서와 주민여론, 제주도청의 요청에 따라 기공식은 갖지 못했다. 그러나 해군은 이제 순탄하게 공사가 진행될 것으로 기대했다.
 
 
  라스트 라운드 없는 권투경기
 
제주 해군기지 건설방침이 정해진 후 격렬한 반대운동이 벌어졌다.
  2011년 초부터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해 반대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 주장은 강정마을의 아름다운 해안선과 연동되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반대운동에 참여했다. 2011년 9월에는 놈 촘스키와 마이클 호이 등 외국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공동명의로 모 언론사 영문판에 ‘제주를 구하자’는 기고를 했다.
 
  그러는 와중에 제주기지 건설공사를 막기 위한 행위는 계속됐다. 이 과정에서 군은 일부 국민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구럼비 바위 발파는 TV에 생중계되기도 했다. 그러면서 제주기지 건설이 중앙정부와 국회에서 다루어야 하는 이슈가 되었다. 급기야 2011년 후반기에는 제주기지 건설 예산이 모두 이월(移越)되고, 다음해 공사예산이 일부 줄어드는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다. 당시 안보 수장 중 한 인사는 연일 언론에 보도되는 반대론을 접하고 굳이 제주도에 군항을 건설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 회의(懷疑)를 표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해군은 필사적으로 이 사업의 당위성을 각계에 설명했다. 이 과정은 마치 라스트 라운드가 없는 권투경기 같았다. 제주기지 건설사업이 참여정부 시절 시작되었다는 근거를 찾기 위해 고(故)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도에서 했던 말씀자료를 찾으려 노력했다. 러시아 출장 중이던 문정인 교수에게 본 사업의 국가적·전략적 의미를 언론을 통해서 이해시켜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문정인 교수는 이를 받아들여 관련 글을 모 신문에 기고했다. 5년간 20여 회에 걸쳐 언론사 논·해설위원들이 제주기지 공사현장을 돌아보았다.
 
  제주기지 건설을 결정하고, 지역을 선정한 것은 김태환 지사 시절이었다. 그 후임인 우근민 지사는 기지 건설에 대한 반대여론을 보면서 사실상 속도 조절에 나섰다. 우 지사는 2011년 11월 군에 건설될 항만의 능력을 제시했다. 15만t급 크루즈 2척이 동시 계류하고, 30노트의 바람에도 접안이 가능한 항구를 건설해 달라는 것이었다. 사실 15만t급 크루즈 선박이 동시에 계류하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았다. 우 지사의 주문은 그만큼 까다로운 것이었다. 우 지사는 이러한 주문을 제주도 의회와 도민들을 설득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해군은 이러한 조건을 받아들이면 공사가 지연된다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임종률 국무조정실장은 이러한 요구를 수용했다. 이를 위한 항만 시뮬레이션을 하면서 8개월이 지체됐다.
 
  그러는 과정에 제주도는 해군을 상대로 한 청문을 요청했다. 지방자치단체가 군을 상대로 청문을 실시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이즈음 제주기지 건설 반대 세력이 해군을 ‘해적’이라고 표현하는 일이 발생했다. 예비역 단체들은 피켓 시위를 했다. 해군 간부들 가운데서도 머리띠를 두르고 구호를 외치자는 논의가 나왔다.
 
  제주도 의회에서 청문회가 열렸다.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제주도청에 마련된 청문회에 출석해 질문에 답변하고, 제주도 의회 의원들이 제기하는 문제를 경청했다. 제주특별자치도의 법적 권한은 그야말로 특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군항 공사는 끝났지만 …
 
제주도의 요구에 따라 제주 해군기지는 15만t급 크루즈선이 동시에 계류할 수 있는 민군복합항으로 건설되었다.
  이후에도 기지 건설은 몇 번의 속도조절이 있었다. 지역구 의원의 요구와 제주도의 정서를 중앙정부가 수용하고 예산 집행과 관련된 부수 조건을 추가로 이행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그러는 사이에 6명이 제주민군복합항 건설사업단장 자리를 거쳐 갔다.
 
  강정마을에 있는 사업단에는 수많은 정치인들이 다녀갔다. 이들은 사업의 중지를 요구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사업단장과 관계자들은 강정사업단에서 군복을 입지 않고 출퇴근하는 근무지침을 시행할 정도로 숨죽이며 살았다.
 
  강정마을 주민들의 고통도 컸다. 함께 소주를 나누던 마을사람들이 입장을 달리하면서 불편한 관계가 됐다.
 
  2016년 2월 8년간의 길고 긴 사업이 마침내 종료됐다. 2016년 2월 군은 주민들의 상처를 생각해 요란하지 않은 준공식을 가졌다. 이제 제주민군복합항은 군항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는 민항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후속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도로건설, 출입국사무소, 항만센터 등 크루즈 기항을 위한 시설공사가 진행 중이다. 이미 크루즈 기항 일정을 받는 여객선사가 있다고 한다.
 
 
  구상권 문제, 어떻게 풀어야 하나?
 
해군의 구상권 행사 방침에 대해 통합진보당 등 제주기지건설 반대 세력은 2012년 3월 12일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사업단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의했다.
  이제 남은 과제는 그간의 갈등을 어떻게 치유하느냐 하는 것이다. 기지 건설 방해자들에 대한 구상권 청구 문제는 그 출발점 가운데 하나다. 최근 확인한 결과, 2016년 해군이 구상권을 청구했지만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아직 이에 대한 재판을 시작하지 않고 있다. 소송 당사자에 대한 소환이나, 관련 절차를 진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미 시간은 1년 넘게 지나고 있다.
 
  가장 간단한 것은 해군이 소송을 철회하는 것이다. 하지만 구상권 집행이 합당하다는 관점에서 보면 이는 담당자들이 직무상 배임죄를 저지르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구상권 행사를 했던 과거와 현재 무엇이 달라졌는가?’라는 질문에 합당한 답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법원이 중재에 나서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1차 구상의 대상으로 선정된 121명에게 소장이 전달되지도 않고 있으며, 재판 기일도 예상키 어려운 상태에서 아직 이런 해법을 논의하기는 어렵다. 중재라고 해야 구상권 청구 액수를 줄여주는 것인데 이것이 수용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고 본다.
 
  또 현재 삼성물산과의 중재 확정금액이 275억원인데, 현재 진행 중인 대림산업과의 중재금액이 비슷한 액수로 확정될 경우 청구금액은 크게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중재를 하더라도 단번에 확정할 수 없다는 얘기다.
 
준공식을 하루 앞둔 2016년 2월 25일 제주 해군기지(제주민군복합항)의 모습. 접안시설에 4400t급 구축함인 문무대왕함(아래부터 시계방향), 7600t급 이지스구축함 서애류성룡함, 4400t급 구축함 왕건함, 2500t급 신형 호위함 전북함, 1만4500t급 대형 수송함 독도함이 정박해 있다.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국가는 안보를 위해 정책을 집행했고, 국민의 세금으로 이를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세력의 방해 행위로 세금이 손실됐다. 국가는 법에 의거하여 구상권을 행사했다. 구상의 대상이 된 국민은 국가정책에 반대했던 이들이다.
 
  국가는 개인보다 우월적 지위에 있는가? 개인은 국가정책을 반대하면서 저지른 위법행위에 대해 면책(免責)받을 지위에 있는가? 국가정책에 반대하면서 국고에 손실을 끼친 국민들에게 국가가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합당한 것인가? 기지 건설을 추진했던 국가와 해군, 이에 반대한 일부 주민들 가운데 누가 맞고 누가 틀렸는가? 이에 대한 논의를 통해 미래를 위한 교훈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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