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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도의 역사읽기 〈1〉 한국의 창업자들은 치열한 애국심으로 글로벌 기업들을 키워 냈다

글 : 유광호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초빙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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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주의 바탕으로 ‘추격(Catch up)’에 성공한 것이 경제성장 요인
⊙ 이병철·정주영 등 한국 대기업 창업주들의 공통 이념은 ‘사업보국’
⊙ 좌익·낭만적 민족주의로는 ‘모방적 경쟁’ 근간으로 하는 ‘경제적 내셔널리즘’ 수행 못해

유광호
1958년생, 서울대 역사교육과 졸업, 연세대 대학원 사회학과 박사 /
연세대 강사, 이승만연구원 연구원 역임.
현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원,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초빙 연구위원
  혁명가 이승만 대통령의 주도로 자유민주주의 국민국가로 건국되고 혁명가 박정희 대통령의 지휘하에 경제개발에 집중한 대한민국은 후발 국가로서 자본주의 산업화에 성공한 대표적인 나라다. 그 과정에서 기업을 일으키고 글로벌 일류기업으로 키워 낸 기업인들의 역할이 없었다면 한국의 성공은 있을 수 없었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말처럼 사람의 모든 행위에는 심리적, 문화적 동기가 있게 마련이다. 한국의 유수한 기업들의 창업자들은 어떤 정신적 동기를 가지고 기업의 성공을 이뤄 냈을까?
 
  현대그룹의 창업자 고 정주영 회장은 자서전에서 ‘자본주의 정신은 개신교 윤리’라고 지나가면서 언급한 바 있다. 그 어구는 베버의 유명한 테제로 식자연하는 사람들의 세계적인 상식이 된 상태다. 정주영 회장은 정작 교회와는 인연이 없는 사람으로서 그는 그 말을 하면서 근검, 절약, 정직 등의 덕목 정도를 떠올렸던 것은 아닐까?
 
  오히려 정 회장을 비롯해 이병철 회장, 구인회 회장 등 굴지의 창업자들은 일제시대에 많은 소년이 그랬듯이 소학교 입학 전 만 2년 이상 서당에서 한문을 논어, 맹자까지 배운 상당한 유교 교양인인 경우가 많았다. 동아시아를 연구한 서양학자들은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일본, 홍콩, 싱가포르, 한국)이 유교 문화 덕분에 산업화에 성공했다고 주장하기도 해 왔다.
 
민족주의와 서구 경제발전과의 상관관계를 밝힌 학자들. 왼쪽부터 리아 그린펠드, 잭 골드스톤, 에릭 라이너트.
  한국의 창업자들의 자본주의 정신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서구에서 자본주의를 발생시키고 발전시킨 정신 내지 동기는 앞에서 언급된 베버의 종교사회학적 연구 결과인 ‘개신교 윤리’ 테제가 1905년에 발표된 이후 비판과 반론도 많았지만 백 년 가까이 가장 유명하고 학계와 지식사회에서 지배적인 영향력을 가져왔다.
 
  그러나 1970년대 찰머스 존슨(Chalmers Johnson) 같은 정치경제학자를 비롯해 최근의 리아 그린펠드(Liah Greenfeld)나 잭 골드스톤(Jack Goldstone) 같은 역사사회학자, 이스트반 혼트(Istvan Hont) 같은 정치경제사상사가 및 에릭 라이너트(Erik Reinert) 같은 발전경제학자 등에 의하면 16세기 이후 민족주의(nationalism)가 지금의 서구 선진국들을 자본주의화로 이끈 정신적, 문화적 동력 즉 서구의 자본주의 정신이었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이 주장은 서양의 역사학에서 축적된 정치사, 경제사, 사회사, 사상사 등에서의 성과들과 무리 없이 조응한다.
 
 
  내셔널리즘과 경제발전
 
  18세기 서구에서 ‘내셔널리즘’ (nationalism)이란 말은 경멸적인 의미로 주로 쓰였는데 국가적·민족적 적대감 같은 뜻을 가졌다. 서구의 16~18세기 절대주의 시대에는 무역에서의 시기·질투가 정당한 전쟁 선포의 사유로 이어지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영국과 프랑스의 일군의 계몽주의 사상가들과 정치경제학자들은 주어진 비교우위에 상관 않고 선진국의 우월한 점을 모방하여 배워 그 선진국과 동등하게 되거나 능가하려는 ‘모방적 경쟁’(Emulation)과 위의 시기·질투(Envy·Jealousy)를 구별했다.
 
  18세기 서구의 정치·경제 담론에서 ‘모방적 경쟁’은 긍정적인 마인드이자 적극적인 노력이었고 상대를 망하게 하기 위해 비열한 방법을 불사하는 부정적인 심성인 시기·질투와는 대조적인 것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애국주의(patriotism)가 국가라고 하는 정치체의 보전에 필요한 자기애(自己愛; amour de soi)적 이기심이라면, 민족주의(nationalism)는 경쟁적인 이기심, amour propre 즉 자부심·허영심 및 인정 욕구에 의해 이끌린 정념 같은 것이었다.
 
  민족주의는 나라들로 하여금 국가적 영광과 다른 나라들에 대한 국가적 우월성의 집단적 자화상을 추구하게 만들었다. 상인들은 군주와 국가의 영광과 위신의 이름 아래 무역과 제조업에 매진했고 국가는 수출 우수자에게 수여하는 상훈을 제정했으며 작위를 주는 등 신분상승을 허용했다. 이런 거국적인 방식으로 영국이 18세기에 드디어 돈벌이 기술에서 앞서 있던 네덜란드를 제치고 역사상 최초의 산업혁명을 이루는 나라가 되었다.
 
  오늘날 얘기하는 ‘추격’ 내지 ‘따라잡기’(Catch up) 전략이 이미 그때 성립됐던 것이다. 19세기 초 독일의 리스트는 이 현상을 ‘경제적 민족주의’(Economic nationalism)라고 표현했다. 이 경제적 내셔널리즘은 21세기 오늘날까지 선진 국민국가(Nation-state)들에서도 음으로 양으로 가동되고 있는 정신적 동기다.
 
  서구의 역사적 경험이 얘기하는 바와 같이 경제적 민족주의라는 동기하에 ‘추격’을 하려면 앞선 나라와 샅바를 잡고 부대껴야만 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1964년 한일수교 협상 특사로 박태준씨를 파견하면서 “지금 이 정도 수모를 견디지 못한다면 나중에 훨씬 더한 수모를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비장한 결의를 토로했다. 그때 정부가 감정적인 반대 여론을 선동하는 패배주의적 세력들의 연합에 굴복해 발을 뺐다면 한국은 경제도약에 필요한 마지막 국제적 조건을 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한국 경제발전의 아버지들
 
1986년 1월 미국 플로리다주 잭슨빌 항에 도착한 현대차 포니엑셀의 미국 수출 1호차. 사진=현대자동차 제공
  박 대통령은 당시 일본과 한국의 그 어마어마한 격차를 지금에라도 따라가 잡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마음을 어떻게 먹을 수 있었던 것일까? 그 당시 정치인이나 학자, 지식인 치고 언감생심 그런 생각을 품고 있은 사람은 없었다. 기업인 중 소수의 선구적인 인사들만이 그런 구상과 소망을 품고 있었을 뿐이다. 코오롱의 창업자인 고 이원경 회장, 한국 최초로 무역업을 개척한 천우사의 고 전택보 사장, 삼성의 고 이병철 회장, 금성사(현 LG)의 고 구인회 회장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일류 기업의 창업자들, 예를 들면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현대건설 등 세계 굴지의 중공업을 일궈 낸 고 정주영 회장, 삼성전자의 고 이병철 회장, 세계 최고 수준의 신동(伸銅)산업체인 (주)풍산의 고 류찬우 회장 등은 진짜 부가가치가 크고 선진강국으로서 조국이 갖추고 있어야 할 품목들은 반드시 한국인이 독자적으로 사업해야 한다는 신념을 늦추지 않았다.
 
  정주영은 “선진국들은 저희가 하고 남는 부분을 우리가 하길 바랐지만 남는 것이 없거나 있어도 별 볼일 없는 것들”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는 스나이더 주한 미국 대사를 앞세우고 현대자동차를 아시아 조립 기지화하려는 미국 포드 자동차의 협박을 일언지하에 거부하여 합작을 파기하는 엄청난 모험을 감행하면서 독자 모델을 개발하고 결국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로 키워 냈다.
 
  그들이 돈벌이에만 흥미가 있었다면 대단히 위험할 뿐만 아니라 비합리적인 처신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정주영이 비판했듯이 “단지 돈벌이가 목적이었다면 번 돈으로 돈놀이나 하면서 인생을 즐기는 게 영리한 것”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훨씬 더 높은 것을 원하고 있었다. 국민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면서 국격을 높이는 것이었다. 정주영은 한국의 브랜드 국산화 노선과 대만의 일본 하청 노선을 항상 분명하게 구별했다. 정주영의 목표 중 하나는 일본이 차지하고 있는 세계시장을 우리 시장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병철이 반도체산업에 도전한 것을 상기해 보자. 경제대국 일본이 석권하고 있던 반도체시장에 도전장을 내밀고 결국 일본을 구축(驅逐)하고 세계시장을 전부 빼앗았다. 세계 반도체 업계와 학계 관계자들은 삼성 성공의 제일의 이유로 ‘경제적 타산이나 위험을 초월하여 국가적 견지에서 첨단기술에 도전한 삼성의 확고한 기업정신’의 존재를 들었다.
 
  총포탄을 제조하는 최초의 방위산업체를 창업한 류찬우는 일본에서 무역업에 크게 성공하여 사업자금을 마련해 귀국해서 신동산업을 시작했다. 그런 그가 일본 기업으로부터 민수 부문 품목의 기술도입을 시도하다가 거절당한 경험이 있었다. 그 후 각고의 노력으로 반도체 부품인 리드프레임을 세계 최고의 품질로 개발해 낸 그는 “앞으로도 일본에는 제품 수출만 하지 기술수출이나 라이선스 판매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류찬우의 기업철학은 “한 기업이 열심히 한 우물만 파서 세계 수준의 제품을 만드는 세계적인 기업이 될 수 있을 때 비로소 ‘민족산업’이 된다”는 것이었다. 동시에 창업자들은 공통적으로 한국인들의 자질이 우수하기는 지구상의 수많은 민족들 중에서 최고 수준에 속한다고 믿고 있었고, 그런 우수한 ‘국민의 힘’에 의거해 산업화를 이룩해 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와 같이 한국의 선구적 기업인들의 경제적 민족주의 동기야말로 몇몇 선진 강대국만이 가진 중공업과 첨단산업을 가난하고 빈약한 나라에서 시작해 성공으로 이끄는 가장 근본적인 동력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대다수 국민들은 그런 사상과 실천을 열렬히 지지했고 기꺼이 참여했다.
 
 
  사업보국
 
  한국 유수의 창업자들은 ‘사업보국’(事業報國)이라는 사상을 공유했었다. 의식적으로 구분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민족’이 아니라 ‘국가’를 보답해야 할 대상으로 들고 있다. 주민들의 정치공동체인 국가가 혈연적·문화적 민족에 우선한다는 자유민주적 국민국가와 조응한다. 대한민국이 한민족 전체를 대표하는 국민국가로 존재한다. 그래서 북한의 주민은 한국에 오게 되면 바로 주민등록증을 발급받는다. 북한의 동족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반란 집단에 강점당해 있는 상태일 뿐이다. 민족을 대표하는 자유민주국가 대한민국에 대한 애국과 충성은 옳은 내셔널리즘이다. 기업인은 물론 한민족 구성원 그 누구도 대한민국의 안전과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민족 전체에게 공헌하는 것이 된다.
 
  내셔널리즘이 세계의 근현대사를 만들어 온 핵심적 동력의 하나라는 점은 분명하다. 게다가 국민국가 형태의 인류의 삶이 지속되고 있는 한 국민국가의 시민종교라고 할 수 있는 내셔널리즘은 결코 사라질 수 없는 운명이다. 더욱이 경제성장에 대한 유일한 위협은 동기 부여에 있어서의 변화다. 다시 말해 민족주의적 열정이 식어 가는 결과로, 경제로부터 다른 목표로 방향을 바꾼다거나 또는 성장이라는 목표를 그냥 철회하는 방향 재설정을 하는 것은 경제발전에 대한 가장 중대한 위협이다. 왜냐하면 근대 경제의 특징인 지속적 성장이라는 것은 자기 지속적인 것이 아니라 민족주의에 의해 자극되고 지속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박정희 대통령과 주요 기업 창업주들의 모방적 경쟁(Emulation) 내지 경제적 민족주의가 사실 제대로 겨루는 민족주의였다고 하겠다.
 
  유수의 창업자들의 민족주의는 이승만 대통령의 지도하에 공산주의, 즉 전체주의 세력과 혈투를 벌이면서 세운 대한민국의 건국 및 헌법 정신과 기본적으로 같았다고 하겠다. 즉 자유민주적 민족주의였다. 자유로운 도덕적 주체로서의 개인들의 결집에 기초한 국가라는 사상이다. 그래서 정주영은 ‘우리가 잘되는 것이 나라가 잘되는 것이고, 나라가 잘되는 것이 우리가 잘될 수 있는 길이다’라는 사훈을 제시할 수 있었다. 이것은 또한 박정희 대통령이 1968년 말에 선포한 국민교육헌장의 내용과 일치한다. ‘우리의 창의와 협력을 바탕으로 나라가 발전하며,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스스로 국가 건설에 참여하고 봉사하는 국민 정신을 드높인다.’ 사실 근대 국민국가의 공민 윤리를 서구까지 포함하여 이 이상 적절하게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좌익과 낭만적 민족주의의 한계
 
  그러나 한국에는 위와 같은 자유민주적 민족주의와는 다른 부류가 또 있다. ‘민족’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있지만 국제사회에서 외국과 샅바를 잡고 당당히 겨뤄 보려는 것은 극구 피하는 부류다. 그러면서 선진국들에서 배울 만한 것들을 폄하하거나 질시(envy)하고 저주하는 앙심(ressentiment)을 품고 있다. 이런 부류도 얼핏 보면 민족주의, 즉 내셔널리즘의 한 갈래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적 민족주의를 ‘우파’ 민족주의라 하고 이들을 ‘좌파’ 민족주의로 갈래를 지어 주기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엄정하게 보면 이들에게 ‘민족주의’라는 개념을 부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근대적 국민국가를 성립시켜 보지 못하고 국가가 없는 상태에서 민족주의를 형성하게 됐던 우리의 역사적 사정 때문에 혈연적·문화적·낭만적 민족주의 성향도 우리에게는 상당하다. 1917년 볼셰비키 공산혁명 후에 레닌과 스탈린은 자유민주 진영을 타도하는 세계 공산혁명을 위한 통일전선전술의 일환으로 ‘피압박 민족들이여! 단결하라!’는 기치 아래 당시 식민지와 반식민지 상태에 있는 민족들을 선동했다. 한반도에서는 1945년 해방과 함께 소련의 괴뢰로 들어온 공산주의 세력과 소련 공산당에 충성하는 남로당 세력이 낭만적 민족주의자들을 주 대상으로 통일전선전술 공작을 지금까지 줄기차게 벌여 오고 있다. 그리고 지금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있다. 혈연적·낭만적 민족주의는 그 속성상 정치의 체제를 가리지 않는다. 공산전체주의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괴물이 되어 갔다. 우리 현대사에서는 좌우합작론과 남북협상론, 분단체제론과 분단사학론 및 통일지상주의와 통일사학이 그런 부류들이다. 민주주의도 ‘인민’민주주의니 ‘진보적’민주주의니 ‘좌파’민주주의니 하면서 아무리 꾸며 대도 오직 자유민주주의만이 진정한 민주주의듯이, 민족주의 문제에 있어서도 ‘민중’민족주의니 ‘인민’민족주의니 ‘진보적’민족주의니 ‘좌파’민족주의로 가장하려 해도 그것은 좌익혁명론이지 민족주의는 아닌 것이다.
 
  이런 좌익과 혈연적·낭만적 민족주의에서는 결국 경제적 근대화도 나올 수 없다. ‘모방적 경쟁’을 근간으로 하는 ‘경제적 내셔널리즘’을 수행할 마인드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있는 어려운 상대와 샅바를 잡고 당당하게 배우면서 겨루어 따라잡거나 능가하겠다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를 결코 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렇게 퇴영적이고 수구적이며 폐쇄적이다. 그것은 바로 성실한 인간의 길이 아닌 까닭에 패배주의가 그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반일’과 ‘반미’로 연명하며, 아니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전복할 혁명에 연합해 오고 있다. 한민족을 대표하고 있는 정통성 있는 국민국가인 대한민국이 당당하게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실 ‘통일’이라는 말은 가당치 않다. 통일이라는 말은 등가의 존재들을 합치는 것이다. 대한민국과 북한 정권은 결코 동등할 수 없다. 대한민국의 존재이유와 헌법정신이 반역세력인 북한의 정권을 해체하고 억류돼 있는 2000여 만 명의 휴전선 이북의 대한민국 국민을 해방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 민족주의의 이러한 대내적인 구도와 의미를 다시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민족’이 아니라 국가가 중요하다. ‘한민족’은 대한민국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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