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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사이다 〈2〉 연극 〈곰의 아내〉와 영화 〈화양연화〉 〈은교〉

성적 욕망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그 순간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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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곰의 아내〉… 신화의 장막 걷으면 무엇이 불륜이고 본성인지 헷갈려
⊙ 영화 〈화양연화〉… 불륜의 욕망 거셀수록 겉으로 드러난 표현은 절제돼
⊙ 영화 〈은교〉… 노인의 성적 욕망은 인간이면 지닐 수 있는 본성의 하나
극공작소 마방진의 신작 연극 〈곰의 아내〉 한 장면.
  불륜은 인간의 원형(본능)일까 아닐까. 포유류의 유전자에 디자인된 성적 욕망은 집요하게 불륜과 사랑 사이를 넘나들지만 비극(悲劇)이란 장르는 언제나 도덕적 잣대로만 결론나지 않는다. 어쩌면 다수의 문학작품과 공연예술 테마는 불륜과 사랑, 혹은 사랑을 빙자한 불륜의 다중해석과 관련 있는지 모른다.
 
  지난 7월 1일부터 17일까지 서울 남산예술센터에 올려진 연극 〈곰의 아내〉는 삼국유사의 웅녀 신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지만 그 실상은 인간 욕망을 거칠게 더듬고 있다.
 
  ‘곰의 아내’인 여자는 딱 짐승과 인간 사이에 서 있다. 여자는 곰을 만나 아내가 되어 새끼를 낳는다. 그녀는 인간이면서 짐승의 존재다. 그런 여자가 자살을 하려던 한 남자(인간)를 구한다. 사냥꾼에 쫓긴 곰(남편)을 찾아 헤매던 어느 날, 여자는 남자와 관계(불륜)를 맺고 둘은 숲을 떠나 도시로 향한다.
 
  여자(곰의 아내)에게 곰이 아닌 남자와의 사랑은 분명 불륜이다. 하지만 여자와 곰의 수간(獸姦)은 비루하고 민망한 인간 본성이다. 신화의 장막을 약간만 걷어도 무엇이 불륜이고 본성인지 헷갈리고 만다.
 
  연극은 곰의 아내가 겪는 인간 문명의 삶을 비극적으로 그린다. 곰과 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로 “너는 짐승이 아닌 인간이 돼야 해!”라는 말을 듣는 여자. 그런데 짐승에서 벗어난 여자가 겪는 문명의 삶은 행복하지 않다. 오히려 비인간적, 반문명적이다. 그렇다면 숲(원형, 본능)에서 짐승(곰)과 느끼던 감정이 인간적이고 문명적인가?
 
  그런 와중에 남자는 여자를 점점 멀리하고, 어느 날 “첫사랑을 찾겠다”며 남자는 원형의 공간(숲)으로 떠나 버린다. 황당한 여자. 남자는 왜 첫사랑을 숲에서 찾으려 할까. 첫사랑의 공간이 숲이라는 설정이 혼란스럽다.
 
  다시 혼자 남겨진 여자. 그녀는 그제야 생각한다. 곰 남편은 살았을까 죽었을까.
 
  여자는 곰 남편을 찾겠다며 숲으로 향한다. 여자는 숲에서 곰 남편을 만나게 되고 둘이 재회하는 순간, 총성이 울린다. 그리고 곰 아내인 여자가 외치는 대사.
 
  “나는 도망치지 않아. 그 다음은 그 다음에 생각해.”
 
 
  왜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불륜으로 설정했을까
 
왕자웨이 감독의 영화 〈화양연화〉. 이 영화는 ‘21세기 최고의 외국어영화 50선’에서 5위를 차지했다.
  2000년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인 왕자웨이의 영화 〈화양연화〉(2000년)는 잘 만들어진 불륜영화다. 화양연화(花樣年華)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뜻한다. 불륜의 순간을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니….
 
  이성의 눈으로 본다면 이 작품은 비극으로 끝날 수밖에 없지만, 한순간이나마 이성을 탐하는 본능에 솔직하다는 점에서 이해(?)를 구한다.
 
  홍콩의 신문사 국장인 초모완(양조위 扮)과 같은 건물 다른 층에서 일하는 수리첸(장만옥 분). 둘은 모두 가정이 있는 몸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각자의 배우자는 집을 떠나는 날이 많다. 외로운 두 사람은 서로를 갈망하고 탐하지만 그런 욕망이 거셀수록 겉으로 드러난 표현은 절제돼 있다.
 
  감독은 이들의 시적 사랑이 불륜의 파국으로 미끄러지지 않게 하려고 그 흔한 ‘러브 신(scene)’조차 넣지 않았다. 그저 서로를 응시하는 눈길, 스치듯 포개진 손, 외로운 뒷모습, 피어오르는 담배연기를 통해 관객은 어느 순간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낀다.
 
  둘의 감정 선은 본능과 이성 사이를 교묘하게 넘나든다. 외줄 아래로 떨어지지 않으려는 곡예사처럼. 감독 왕자웨이는 서로의 감정을 구태여 설명하지 않는다. ‘마스터 숏(master shot·장면 전체를 보여줘 관객이 사건이나 인물의 실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하는 촬영기법)’을 최대한 절제시킨 장면이 대부분이다. 대사도 없다. 머리에서 가슴까지 보여주는 ‘바스트 숏’이나 클로즈업 이미지만 계속 보여준다.
 
  영상이 절제돼 있고 아름답지만 때론 지루하고 답답하게 느껴진다. ‘섹스를 하는 거야, 안 하는 거야’라며 답답해질 무렵 둘의 사랑은 끝이 난다. 어떻게?
 
  지난 6월 미국의 유명 영화TV 전문지 《더 플레이리스트》가 ‘21세기 최고의 외국어영화 50선’을 선정했다. 봉준호 감독의 2003년작 〈살인의 추억〉이 3위를 차지했다. 이창동 감독의 〈시(詩)〉(2010년)가 14위,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2003년)는 25위에 올랐다. 1위와 2위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귀향〉(2006)과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히든〉(2005). 〈화양연화〉는 5위였다.
 
 
  해맑은 표정엔 죄가 없다
 
정지우 감독의 영화 〈은교〉 포스터.
  정지우 감독의 영화 〈은교〉(2012년)는 두 남자(70대와 20대)의 성적 욕망을 그린 작품이다. 관능적인 열일곱의 소녀를 클로즈업하고 성을 탐닉하는 희열을 ‘풀 쇼트(full shot·전신이 나오게 잡는 촬영기법)’로 보여준다. 10대와의 섹스, 체모노출 논란으로 일찌감치 입소문이 났었다.
 
  그러나 영화는 노(老)시인 이적요(박해일 분)의 시각에서 전개된다. 그가 겪는 내면적 본능이 결코 비루한 탐욕이 아님을 그린다. 비약해서 설명하자면, 노인의 성적 욕망은 인간이면 지닐 수 있는 본성이란 점을 말하려 한다.
 
  이 점이 〈은교〉가 포르노그래피로 빠져드는 것을 막는다. 어쩌면 한 여고생을 둘러싼 두 남자의 경쟁구도가 ‘언제 (섹스를) 하느냐’를 기대하는 관객들을 절묘하게 배신한다.
 
  그 영화의 압권은 ‘나 잡아 봐라’ 신(scene)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녀 사랑에는 그런 장면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70대 노인과 10대 소녀의 술래잡기 장면은 간단하지(?) 않다.
 
  정지우 감독은 “‘나 잡아 봐라’ 장면을 가장 아름답게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장면에서 박해일의 얼굴이 감독 마음에 쏙 들었다고 한다. “박해일의 얼굴이 해맑은 표정이었다”는 것이다. 주름진 늙은 얼굴이 한순간 젊은 시절의 해맑음으로 돌아간 것이다.
 
  혹자는 “그 표정이 결국엔 10대의 성을 탐닉하고 있다”고 비난해도, 젊은 시절 해맑던 표정을 떠올린 그 순간만큼은 죄가 없을지 모른다. 노시인의 대사가 여운에 남는다.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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