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의우 교수의 기절초풍 법의학야화 〈2〉 선풍기를 틀고 자면 사망하나 : 월간조선

#사례 1

어느 해 여름 혼자 거주하는 56세 남자가 술을 마시고 선풍기를 틀고 문을 닫은 채 잠을 자다가 사망했다. 사망자는 전날 술을 마셨고, 발견 당시에 얼굴 쪽에 선풍기의 바람이 직접 닿고 있었다고 한다.

가족의 반대로 부검은 하지 않았으나 경찰은 범죄의 의심이 없다며 자연사로 추정했다. 가족은 사인이 될 만한 지병은 없었고 밀폐된 방에서 선풍기를 켜 놓은 채로 잠을 자다 사망했기 때문에 자연사는 아니고 선풍기 바람에 의한 질식사, 즉 사고사에 해당한다는 주장이었다. 사망자와 관련한 보험금과도 연결된 문제로서 과연 선풍기 바람이 사망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필자에게 자문을 구했다.

부검을 하지 않은 경우라서 정확한 사인을 규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일반적으로 흔히 ‘선풍기 사망(fan death)’이라고 부르는 죽음에 대해 살펴보자. 해마다 여름철만 되면 변사사건 중에 선풍기와 관련한 것 같다는 보도를 접하곤 한다. 이러한 식의 죽음은 과거 일본에서도 문제가 됐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는 우리나라에서만 문제가 되는 현상으로 알려져 있다.

선풍기 사망의 진실

왜 우리나라에서만 선풍기와 사망이 관련이 있다고 믿는 것일까. 설이 분분하지만, 그중 하나는 1970년대 중동전쟁으로 인한 석유파동으로 정부가 에너지 소비를 억제하기 위해 그런 소문을 전파했다는 음모론적 시각도 있었다.

실제 사망사건에서 사망자가 생존 시에 신체 내부에 어떠한 병적 변화가 있었는지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다. 외견상 특별히 사인이 될 만한 질병이 없는 사람이었다고 하는 것이 가족들 주장이었으며, 단지 상당 기간 습관적으로 술을 마셔 왔었다는 것뿐 문제가 될 만한 병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이 사망자의 얼굴에 선풍기 바람이 계속해서 작용한 것만으로는 직접적 사안으로 볼 만한 근거는 없다. 모종의 사인이 될 만한 신체 내부 상태의 음주와 선풍기의 바람이 사망에 관해 유인(誘因)으로 작용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세간에서 말하는 ‘질식’도 말이 안 된다. 방문이 닫혀 있는 상태에서 선풍기가 돌아간다고 해도 모터의 회전만으로 방안의 산소가 모두 소모되지 않기 때문에 산소결핍에 의한 질식은 나타나지 않는다. ‘저체온에 의한 사망’이라는 것도 단정적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으나 정상인은 선풍기 바람으로 저체온증에 걸려 죽지 않는다.

태어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신생아는 예외다. 스스로 몸을 움직이는 데 한계가 있어 선풍기 바람을 정면으로 쐬면 제대로 숨을 쉴 수 없기 때문이다. 갓난아이를 옷을 벗긴 채로 장시간 선풍기 바람을 쐬면 아이의 몸속에 있는 수분이 소실돼 탈수증상으로 사망할 수도 있다. 어린아이도 감기에 걸려 체력이 매우 약해져 있는 상태에서 장시간 선풍기 바람을 쐬면 체온이 떨어져 순환장애를 초래해 호흡곤란에 빠져 사망하는 일도 생길 수 있다.

심장기능에 이상이 있는 성인도 선풍기를 틀어놓고 잠을 자면 위험할 수도 있다. 갓난아이가 아닌 한, 대부분의 정상인은 잠을 자는 동안 몸을 뒤척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선풍기 바람을 얼굴에 쐬면서 자는 경우는 거의 없다. 과음을 하고 난 후 나체로 선풍기 바람을 쐬면서 잠을 자는 것은 드물게 위험할 수도 있다. 건강한 사람이라도 밤새 선풍기를 틀고 바람을 쐬면서 잠을 자는 것은 건강에 좋지 않다.

따라서 잠을 자는 동안 선풍기를 좌우로 자동 회전시키면서 타이머를 이용해 한두 시간 후에는 작동이 중지되도록 하는 것이 안전하다.

물속에 시체를 던지면 ‘물고기밥’이 될까

2015년 9월 2일 터키 남서부 해변에 시리아 난민인 세 살짜리 아기 아일란 쿠르디가 숨진 채 엎어져 있다. 터키 해안 경찰은 이날 “쿠르디와 그의 부모 등 시리아인 23명이 탄 난민선이 지중해를 건너 그리스 코스섬으로 가려다 전복돼 최소 12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사진=조선일보

#사례 2

2007년 7월 어느날 아침 남한강변에서 낚시는 하던 사람이 작은 교량 밑에서 물위에 떠오른 시체를 발견했다. 얼굴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했고, 대략 20대 여성으로 추정됐다. 겨울옷을 입고 있었고, 검정색 부츠까지 신고 있었다. 발에서부터 허리까지 노란색 마대자루에 무릎을 꿇은 채로 들어 있었고, 허리는 철사로 묶여 있었다.

가슴 부위는 전깃줄로 묶여 있었는데, 거기에는 17.5kg의 시멘트 블록이 달려 있었다. 변사자의 머리, 얼굴과 목 등 노출된 부위는 부분적인 파괴와 결손 등이 생겼고, 파괴되지 않은 부위에서도 시랍(屍蠟, 비누화 현상)이 현저하게 형성돼 있었다. 의복으로 가려진 대부분의 부위에서는 비록 시랍화 현상은 진행됐으나 특별히 형태학적인 파괴는 없었기 때문에, 주요 소견의 관찰이 불가능한 상태는 아니었다.

목의 앞부분에는 좌우로 길게 형성돼 있는 절창(切創, 벤상처)이 발견됐는데, 그 상처는 경추(목의 척추)까지 도달한 것으로 보아 치명상임을 알 수 있었고, 살해된 후에 강에 던져진 것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왼손 손목 부위에는 주저흔으로 해석되는 여러 개의 흉터가 발견됐다. 변사자의 신원확인은 당시 방영되고 있던 ‘사건 25시’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통해 실종자 가족의 제보를 받게 됐다.

변사체의 신원이 밝혀짐으로써 경찰의 수사는 급진전해 며칠 만에 범인을 검거할 수 있었다. 범행 사실에 의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범인이 변사자를 살해한 것은 1999년 12월이었다. 그렇다면 약 8개월 동안이나 물속에 있었던 시체는 예상보다 보존상태가 매우 좋았던 것이다. 이유는 무엇이고, 어떻게 시체가 물위로 떠오른 것일까.

시체가 물속 또는 습기가 많은 흙속에서는 공기의 유통이 나쁘기 때문에 시체 내의 지방성분이 변화돼 회백색 내지 황갈색의 부드러운 치즈 같은 것에서부터 석고처럼 딱딱한 것으로 변한다. 이것을 ‘시랍화’라고 부른다.

물속에서 사망 후 약 1~2개월이 지나면 피하 지방조직의 시랍화가 진행되며, 약 2~4개월에는 시랍화가 완성된다. 피하지방에서부터 근육과 심부조직으로 퍼져 나간다. 전신적인 시랍화가 이뤄지는 데는 물속에서는 대략 반년에서 1년 정도 걸리며, 흙속에서는 2~3년이 걸린다.

시랍화는 어떤 특수한 환경하에서 진행되는 특수한 변화이기 때문에 시체에서 흔히 진행되는 부패와 붕괴현상이 일어나지 않아 시체의 모양을 반영구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이처럼 시랍화가 진행되기 위해서는 비교적 긴 시간이 필요하다. 이 사례에서는 왜 그 사이 시체의 부패와 분해가 진행되지 않았던 것일까.

사건의 내용이 밝혀진 후 알 수 있었던 것은, 사망자가 살해당한 후 시체가 물 위로 떠오르지 못하게 하기 위해 시체에 시멘트 블록을 묶어서 남한강에 던져 넣었다. 1999년 12월이었기 때문에 기온은 물론이고 수온이 매우 낮아 시체의 부패가 시작되지 않은 상태였다. 시체의 부패는 적당한 습도하에서는 섭씨 20~30도에서 가장 빨리 진행된다. 물속에 가라앉아 있던 시체는 이듬해 봄까지 부패가 억제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2000년 6월부터는 예년에 비해 무더위가 심했다. 그 시기부터는 수온이 서서히 상승하기 시작해 마침내 시체 내의 내장에서부터 세균이 증식해 부패가스로 인해 상당한 부력이 발생함으로써 강 위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그런데 부패가스가 시체의 내부에서 다량 생겼다고 해도 겨울옷을 입은 상태에서 17.5kg이나 되는 시멘트 블록에 묶여 있는 시체를 물 위로 떠오르게 할 정도의 부력이 생길까.

부패가스에 의한 부양력(浮揚力, 떠오르는 힘)은 의외로 세다. 25kg, 30kg의 추가 달려 있는 수중시체가 부양된 케이스가 있었고, 최고 68kg의 경우도 있었다. 만약 물속에 던져진 시체의 피부가 많이 노출된 상태였다고 해도 물고기 등 각종 생물들이 시체를 손괴하는 경우, 시체가 부패하기 이전에 주로 피부의 얕은 층을 파괴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에 전신이 사라지는 일은 없다. 따라서 물속에 던져 넣은 시체가 ‘물고기 밥’이 돼 완전히 사라지는 ‘완전범죄’를 기대하는 것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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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의우 교수의 기절초풍 법의학야화 〈2〉 선풍기를 틀고 자면 사망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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