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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이한영 사건을 막아라!

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woosuk@chosun.com

취재지원 : 박건영  월간조선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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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당국, 주요 탈북인사 8명(강명도, 박상학, 홍순경, 최주활, 안찬일, 유인덕, 최정훈, 김성민) 암살 지령 첩보 입수

⊙ 북, 한충렬 목사 살해를 시작으로 주요 탈북자에 대한 테러 강도 높일 듯
⊙ “치안강국인 대한민국에서 제2의 이한영 사건이 일어나겠느냐”
    (북이 테러 대상으로 지목한 탈북자)
⊙ 신상 비공개 고위급 탈북자 몇 명과 사각지대에 놓인 해외 공관 근무자들에 대한 경호 강화
⊙ 최근 정찰총국 제5국 내 테러·암살 전문으로 하는 특수공작과 신설
  최근 정보 당국은 북한이 공작원을 침투시켜 주요 탈북 인사 8명을 암살하라는 지령을 내렸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정보 당국에 따르면 북한은 4월 30일 조선족 한충렬 목사 살해를 시작으로 탈북 인사에 대한 테러 강도를 더욱 높일 계획이다. 숨진 한 목사는 1993년 북·중 접경지역인 압록강변 중국 지린(吉林)성 바이산(白山)시 창바이(長白)현에 장백교회를 설립, 탈북자들을 도우면서 북한 선교 및 구호활동을 벌여 왔다.
 
  창바이현은 한 목사가 거주하는 북한 혜산시와 압록강 하나를 사이에 둔 국경도시로, 북한 주민들의 탈북이나 무역 루트 등으로 이용되는 곳이다. 납북자가족모임 최성용 대표는 중국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 공안이 한 목사의 휴대전화 통화기록을 확인한 결과, 한 목사가 피살 직전 북한 혜산시에 거주하는 27세 여성 김씨의 전화를 받고 나간 것으로 파악됐다”며 “사건 현장 주변 CCTV를 확인한 결과 김씨와 북한 보위부 반탐조 요원으로 추정되는 인물 3명의 모습도 포착됐다”고 전했다. 한 목사가 북한에서 급파된 국가안전보위부(우리의 국정원에 해당) 반탐(反探·간첩색출) 요원 3명에게 피살됐다는 것이다.
 
  정보 당국이 파악한 테러 대상자는 강명도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 홍순경 북한민주화위원회 명예회장, 최주활 탈북자동지회 회장,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회장, 유인덕 숭의동지회장, 최정훈 북한인민해방전선 사령관,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다.
 
  정보 당국 관계자는 “북한이 이들에게 독극물 공격을 가하거나 납치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들 중 몇몇 인사들에 대해서는 북한 공작원의 테러 가능성에 대비해 경호 인력을 늘리고 24시간 밀착 경호를 하고 있다”고 했다. 제2의 이한영 사건을 막겠다는 의지다. 이한영 사건은 김정일 전처 성혜림의 조카였던 탈북자(1982년 스위스에서 한국대사관을 통해 귀순) 이한영이 1997년 북이 보낸 공작원에 저격당해 숨진 것이다.
 
  올해 초 정보 당국은 북한 외교관 출신으로 1991년 탈북한 고영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에 대한 테러 첩보를 입수, 경호를 강화한 바 있다. 경찰 관계자는 “평소 2명이던 경호 인력을 8명으로 늘렸다”고 했다. 고 부원장은 “당시 경찰로부터 구체적인 첩보가 입수됐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고 부원장은 1988년 부르키나파소의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김일성 통역을 맡는 등, 그를 가까이서 보조한 인물이다. 콩고 주재 북한대사관 1등 서기관으로 근무했을 때 돈벌이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미움을 산 뒤 망명을 선택했다.
 
  경찰은 주요 탈북인사를 암살당할 수 있는 가능성 정도에 따라 등급을 나눠 관리하고 있다. 등급은 가·나·다로 분류되는데 북한에서 고위층에 있었거나 안보상 보호 필요성이 큰 탈북자들을 가·나 급으로 분류한다. 북한이 수많은 탈북자 중 8명을 테러 대상자로 콕 집어 지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면면을 보면 이해가 간다.
 
 
  강명도·박상학·홍순경
 
강명도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 홍순경 북한민주화위원회 명예회장, 최주활 탈북자동지회 회장,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회장, 최정훈 북한인민해방전선 사령관,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 유인덕 숭의동지회장(왼쪽 위부터).
  강명도 교수는 북한 김일성의 10촌인 강성산 전 총리의 사위로 북한 인민무력부 보위대학 연구실장을 지냈다. 그는 1994년 탈북했다. 최상위 계층의 강 교수가 북한을 떠난 것은 1993년 중국 출장 도중, 어이없는 허위보고로 인해 계획적인 망명자로 낙인 찍혔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150명의 체포조를 파견해 강 교수를 죽여서라도 데려오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그는 30여 년 동안 목숨 바쳐 충성한 대가가 고작 죽음뿐이라는 사실에 배신감을 느꼈고, 한국에 망명을 신청했다.
 
  강 교수는 우리나라로 망명한 이듬해 6월 《평양은 망명을 꿈꾼다》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책은 북한지도층을 수발하는 임명직 성(性) 노리개 제도, 김일성 맨과 김정일 맨의 암투 등 평양 로열패밀리의 사생활과 파워게임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그는 최근에도 각종 방송에 출연, 북한의 실상을 폭로하고 있다.
 
  박상학 대표는 1968년 북한 양강도 혜산에서 태어나 영재교육기관인 제1고등학교와 김책공업종학대학 체신과(무선공학 초단파 전공)를 졸업했다. 부모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북송교포 출신이다. 대학 졸업 이후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산하 속도전 지도국 선전지도원으로 근무하는 등 나름 북한 엘리트 코스도 밟은 박 대표는 1997년 황장엽 망명 사태에 충격을 받고 탈북을 결심한 아버지에 이끌려 선택의 여지 없이 1999년 여름 탈북했다.
 
  2000년 2월 한국에 정착한 박 대표는 처음엔 ‘조용히’ 살았다. 전공을 살려 서울대 모바일연구소에서 일했고, 통일 전문 매체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북한에 남은 가족들과 약혼자에게 가해진 보복 소식을 들었다. 북한 국가안전보위부는 박 대표의 숙부를 숙청하고, 그의 약혼자를 두 달 동안 잔인하게 고문했다.
 
  분노한 박 대표는 2003년 ‘북한정치범수용소해체운동본부’라는 단체를 만들어 북한인권운동을 시작했고 2004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대북 전단 살포에 나섰다. 이후 그는 남북한 정부에 공히 요주의 인물로 분류됐다. 2011년 북한에서 보낸 공작원으로부터 독침 테러 위협까지 받았다. 기자는 2013년 한국에 침투했다가 구속된 북한 공작원을 취재한 적이 있다. 그는 당시 기자에게 이같이 말했다.
 
  “북한 보위부로부터 한국에 침투하면 북한인권운동을 펼치는 탈북자 박상학에게 접근하고,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 중 생활고를 겪는 자들을 다시 귀북(歸北)시켜 기자회견 등을 통해 인권 문제를 제기, 남한이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을 상황을 만들라는 지시를 받았다.”
 
  2013년 미국 인권재단으로부터 국제 인권상 하벨상을 수상한 박 대표는 여전히 대북 전단 살포를 주도하고 있다. 대북 전단 살포는 북한이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안이다. 북한은 2014년 10월 경기 연천 지역에서 북한 인권 단체가 날린 대북 전단 풍선에 고사포 10여 발을 발사했다.
 
  고(故) 황장엽 선생의 최측근인 홍순경 북한민주화위원회 명예회장은 한국 망명 북한 외교관 중 최고위급이다. 1938년 함경북도 성진시 출생으로 김일성종합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1983년부터1988년까지 파키스탄 주재 북한대사관 서기관, 1991년부터 1999년까지 태국 주재 북한대사관 무역참사, 과학기술참사(1급)로 근무했다.
 
  탈북을 결심한 것은 북한으로부터 긴급소환 명령이 떨어진 1999년 2월이었다. 국가안전보위부는 홍 명예회장이 태국에 갚아야 할 약 8337만 달러를 횡령했다는 혐의를 덮어씌웠다. 북한으로 들어갈 경우 큰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탈북 결정은 힘들었다. 첫째아들과 친척이 북한에 있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부인, 둘째아들과 탈북을 결심했다. 두 아들 중 하나라도 살리자는 마음에서였다.
 
  탈출 과정에서 홍 회장과 식구들은 북한 보위부 요원들에게 체포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태국정부의 노력으로 한국행에 성공했다. 홍 회장이 이끄는 북한민주화위원회는 탈북자단체 연합체다. ‘탈북자동지회’ ‘NK지식인연대’ ‘북한전략센터’ ‘자유북한연합’ 등 대부분의 탈북자 단체가 속해 있다. 2007년 4월 설립됐다. 초대회장은 황장엽 선생이었다. 황 선생 작고 이후 부위원장이었던 홍 회장이 위원회를 맡았다. 위원회는 ▲탈북자를 대표할 수 있는 정치·사회조직 구성 ▲북한의 실상 알리기 운동 전개 ▲북한 인권 개선과 종교의 자유를 위한 국제연대 강화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홍 회장은 대통령 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으로 통일 관련 활동도 하고 있다.
 
 
  최주활·안찬일·유인덕·최정훈·김성민
 
2015년 7월 13일 밤 10시 경 ‘자유북한운동연합’은 김정은의 살인공포통치를 비판하는 대북전단 50만장, 김정은 암살을 소재로 한 영화 〈디 인터뷰〉 동영상 USB 1000개, DVD 1000개, 1$ 지폐 2000장(2000달러)을 20개의 대형 애드벌룬에 실어 날리고 있다. / 자유북한운동 제공
  최주활 탈북자동지회 회장은 인민무력부 상좌(중령과 대령 사이) 출신이다. 1979년 체코 주재 북한대사관 부무관으로 파견돼 3년간 근무했다. 인민무력부 대외사업국 부국장으로 복귀해 인민무력부 수뇌부의 통역 업무를 10년 정도 맡았다. 1995년 인민무력부 후방총국 산하 륭성무역회사 합영부장에 임명됐으나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그해 귀순했다.
 
  최 회장의 직속상관이었던 대외사업국 김학산 국장을 비롯하여 모스크바 주재 북한대사관 무관 소장 김정찬, 유고 주재 북한 무관 조재형 등 해외 무관부(군사협력부서)에 나가 활동하던 무관, 부무관들은 인민무력부 보위사령부에 체포, 처형됐다. 현재 최 회장은 통일정책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탈북자단체인 탈북자동지회 회장을 맡고 있다. 탈북자동지회는 1만5000여 명의 탈북자 회원을 둔 단체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회장은 북한군 민경대대 부소대장(상사)으로 복무 중이던 1979년 철책선을 넘어 귀순한 후 건국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탈북자 출신 ‘1호 박사’다. 서울에 온 이래 전문 연구기관에서 20여 년을 재직하는 동안 북한의 당·정·군 관계와 지배체제에 관해 주목할 만한 학문적 성과를 일궜다. 안 회장은 종합편성채널의 단골 출연자로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유인덕 숭의동지회 회장은 2003년도에 북한에서 넘어왔다. 군 출신이다. 숭의동지회는 1980년 11월에 만들어진 최초의 탈북자 단체다. 월남 귀순자들을 중심으로 결성됐으며 경찰청이 관리하고 있다. 숭의동지회 관계자는 “탈북자들이 남한에 입국하면 의무적으로 가입되고, 연락처가 해당 경찰청으로부터 하달된다”며 “귀순자 상호 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복리증진을 도모하는 단체라고 이해하면 된다”고 했다.
 
  최정훈 북한인민해방전선 사령관은 북한군 234부대 중대정치지도원과 노동당 간부를 지내다 2007년 탈북해 자유북한방송 국장, 북한인민해방전선 부대표를 지낸 인물이다. 북한인민해방전선은 물리력을 포함한 북한 반(反)체제 활동 지원을 목적으로 남한에 나온 탈북자들이 중심이 돼 2010년 9월 결성한 단체다. 북한에서 군관(장교 출신), 군사대학 출신 등 군부에 몸담았던 사람들로 구성됐다.
 
  이 단체는 그동안 북한 군인 의식화, 전단 살포, 북한 군사정보 수집, 안보 강연 등 다양한 활동을 해 왔다. 북한 인권운동가인 수전 숄티 미국 디펜스포럼 대표는 “북한인민해방전선은 한국이 보유한 가장 효과적인 대북 압박용 무기”라고 했다. 군 내부로부터 개혁을 이끌어 내는 방법을 북한인민해방전선은 알고 있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최 사령관은 “북한 내부의 무장 게릴라 활동을 지원해 전 인민의 무장봉기를 주도하겠다”고 했다.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김형직사범대학 어문학부 졸업 후 군(軍)에서 작가로 활동하다 1996년 중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왔다. 중국에서 북한 보위부 대원에게 체포돼 평양으로 압송되다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려 공개 총살을 면했다. 한국에 들어온 뒤 중앙대학 예술대학에 입학, 동국대 북한학과 재학생들과 제휴해 ‘백두 한라회’라는 봉사단체를 만들었고 시집(詩集) 형태의 졸업논문을 제출해 ‘탈북자 출신 1호 시인’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후 대학교수였던 아버지와 친분이 있던 고 황장엽씨의 요청으로 탈북자동지회 사무국장 직을 맡은 뒤 ‘북한 민주화운동 투사’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남한 탈북자 사회에서 ‘마당발’로 통하며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그가 대표로 있는 자유북한방송은 탈북자들이 운영하는 민간 대북 방송이다. 2004년 4월 20일 첫 전파를 송출했다. 방송을 통해 북한 내부 소식과 북한의 객관적 실상 등을 북한 주민들에게 알리고 있다. 자유북한방송은 2008년 국제언론단체인 국경 없는 기자회(RSF)가 시상하는 올해의 매체상(Le pix du Media 2008)을 수상하기도 했다.
 
 
  테러 대상자는 신변 위협을 느꼈나?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동계훈련에 돌입한 북한군 정찰총국 산하 부대를 방문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014년 12월 5일 보도했다. 사진=조선중앙TV 캡처
  이들 8명은 북한이 본인들을 테러 대상으로 삼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을까. 8명 모두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유인덕 숭의동지회 회장을 제외한 7명이 응했다. ①북한이 본인을 테러 대상으로 삼았다는 사실을 알았나 ②경호인력이 늘었나 ③테러위협을 받은 적 있나 ④북한은 왜 본인을 암살하려 한다고 생각하는가의 네 가지 공통질문을 던졌다. 다음은 7명의 답변이다.
 
  ◆강명도
 
  ① 알고 있었다. 내가 듣기에는 나를 납치하기 위해 북한이 나의 지인들을 만나는 것으로 안다. 실제 나를 유인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② 경호 인력이 많이 늘어났다. (경호 인력이) 24시간 내내 붙어 있다.
 
  ③ 테러위협을 느낀 게 여러 차례다. 하지만 공개할 수는 없다. 사례를 공개할 경우 북한놈들이 ‘이래서 실패했구나’ 하고 다른 방안을 마련하기 때문이다.
 
  ④ 김씨 일가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누구겠나. 친척밖에 없지 않으냐. 내가 김일성의 10촌인 강성산 전 총리의 사위 아닌가. 1994년도에 탈북해서 김일성, 김정일 가계도를 완벽하게 공개한 것이 나다. 김영숙(김정일의 둘째 부인), 고영희(김정일의 셋째 부인)의 존재를 가장 처음 대한민국 정부에 알린 것이 나다. 김정은이 고영희의 아들인데, 고영희가 재일교포다. 그런 이야기를 내가 계속 하고 있다. 어떻게 해서라도 나를 북한으로 데려가고 싶을 것이다.
 
1997년 2월 16일 이한영피격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벨기에제 브라우닝 권총탄피.
  ◆박상학
 
  ① 북한의 위협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여전히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고 일전과 다를 바 없이 강연도 잘 다니고 있다.
 
  ② 따로 경호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그러진 않았다. (경찰청에 따르면 박 대표의 경호는 경찰관 6명이 하고 있다.)
 
  ③ 위협을 받은 적 있다. 작년 4월 서울 중구 태평로 코리아나호텔 1층 화장실에서 발견된 가짜 폭발물에서 나와 가족을 협박하는 쪽지가 발견됐다. 집으로 죽은 새나, 작은 짐승 사체를 보내 협박하는 경우도 많았다. 2011년도에는 독침테러를 당할 뻔했다. 다행히 나에게 테러를 가하려는 안모씨가 만나자는 전화를 하기 열흘 전쯤에 국정원 관계자의 경고전화를 받았다. 곧 안씨가 만나자고 연락할 텐데 독극물 암살을 계획한 간첩이니 절대 만나러 나가지 말라는 경고를 받아 약속장소에 나가지 않아 화를 면했다.
 
  ④ ‘김정은이 북한 인민의 주적’이라는 내용의 강연을 하고, 대북 전단 살포를 주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홍순경
 
  ① 몰랐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생활하고 있다.
 
  ② 경호 인력이 늘어나지 않았다.
 
  ③ 공갈·협박은 많이 받아 봤다. 그거야 걔들(북한)이 통상적으로 하는 수작이니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신체적인 위해를 받은 적은 없다. 대한민국 치안이 잘돼 있는데, (북한이) 뭘 할 수 있겠느냐.
 
  ④ 북한 독재체제의 약점을 대한민국에 알려서 표적이 됐다고 본다. 내부 정보가 여기저기 나가는 게 김정은은 두려울 것이다.
 
  ◆최주활
 
  ①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
 
  ② 경호 인력은 그대로다.
 
  ③ 단 한 번도 협박을 받아 본 적이 없다.
 
  ④ 협박을 받아 본 적이 없는 만큼 4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김정일의 본처였던 성혜림씨의 조카 이한영(본명 이일남). 그는 1997년 북이 보낸 공작원에 저격당해 사망했다.
  ◆안찬일
 
  ① 알고 있었다.
 
  ② 경호 인력은 늘지 않았는데, 24시간 경호로 바뀌었다.
 
  ③ 한 달 전에 있었던 일이다. 서울시청에 탈북자 행사가 있어서 참석했다. A 목사님이 옆에 앉았는데, 30대의 건장한 청년이 다가와 목사님께 인사를 하고 나한테도 인사를 했다. 목사님 지인인가 보다 생각하고, 물어보니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때 아차 싶었다. 생김새부터가 공작원 같았다. 이 일을 경호하는 경찰에게 이야기했더니, 행사 참석을 자제하라고 했다. 이와 비슷한 일이 몇 번 있었다.
 
  ④ 올 4월 29일에 세계탈북자대회가 서울에서 처음으로 열렸다. 내가 대표로 있는 세계북한연구센터가 주관했다. 국내외 탈북자들은 이 대회를 계기로 북한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기 위해 앞으로 ‘북한 망명정부’ 설립도 추진하기로 했는데, ‘망명정부’라는 이야기에 북한이 분노했다고 하더라.
 
  ◆최정훈
 
  ① 2015년 4월 28일 헤리티지재단이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한 북한인권토론회에 참석했다. 그때 북한에서 죽인다고 했었다.
 
  ② 경호 인력이 늘어나지 않았다. 24시간 경호도 안 한다.
 
  ③ 암살 위협이 있는 게 사실이다. 북한의 국가안전보위부에서 보위사령부하고 협력해서 내가 탈북하기 전 북한에 있던 지인을 섭외, 나를 중국으로 납치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섬뜩하지만 내가 정신을 차리고 있으면 된다. 이런 걸 두려워한다면 북한인민해방전선을 이끌겠나. 대한민국 안에서 제2의 이한영 사건은 절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④ 우리 단체는 접경지역에 나가서 방북 활동을 한다. 또 내가 북한이 주적으로 꼽는 박상학 대표와 가깝다. 그래서 (북한이) 눈엣가시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김성민
 
  ① 북한 대남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에 나를 살해하겠다는 글이 많이 올라오는 만큼 예상하고 있었다. (정보당국이)중국에는 절대 나가지 말라고 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② 경호 인력은 그대로다. 4명이 24시간 경호를 하고 있다.
 
  ③ 살해 위협은 여러 번 받아 왔다. 자유북한방송을 시작했을 때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자로부터 “배신자 몸조심하라” “가만두지 않겠다”는 내용의 협박전화에 시달렸다. 소포가 와서 열어 보면 피묻은 도끼, 죽은 쥐가 들어 있었다. 황장엽 암살조도 기회가 되면 나도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검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고 있다.
 
  ④ 북한이 가장 아파하는 것이 대북방송이다. 북한 내부 소식과 북한의 객관적 실상 등을 북한 주민들에게 알리고 있는데 죽이고 싶지 않겠나.
 
  여권 핵심 관계자는 “이들 외에도 신상 비공개 고위급 탈북자 몇 명과 테러 사각지대에 놓인 해외 공관 근무자들도 테러 대상”이라며 “이들에 대한 경호를 대폭 강화한 상태”라고 전했다.
 
 
 
암살 전문 특수공작과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그는 정찰총국장도 겸하고 있다.
  국정원에 따르면 북한은 최근 정찰총국 제5국 내에 테러와 암살을 전문으로 하는 특수공작과를 신설했다. 탈북자 암살에 투입할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은 지난해 6월 이곳을 방문해 “정찰 일꾼은 자폭 정신, 자결 정신을 인생관화(人生觀化)해야 한다. 죽음도 하나의 투쟁무기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찰총국은 대남·해외 공작을 총괄한다. 정보 당국에 따르면 북한 정찰총국장은 지난해 말 김양건 사망 후 통일전선부장에 오른 군부 강경파 김영철이 겸직하고 있다. 1990년 남북 고위급회담 당시 북측 대표였던 김영철을 상대한 김희상 전 청와대 국방보좌관(현 한국안보문제연구소 이사장)은 “김영철은 요인 테러나 국가 주요 시설 파괴, 사이버 공격 등을 동시다발로 펼치는 ‘복합 도발’을 구사할 수 있는 북한 내 몇 안 되는 인물 중 한 명”이라고 했다.
 
  정찰총국은 2009년 초 북한이 3대 세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군 소속의 정찰국, 노동당 소속의 작전부·35호실 등 대남 공작부서 6개를 통·폐합해 만든 조직이다. 각국에는 1국에서 7국까지 번호가 붙는데 ‘죽을 사(死)’ 자와 발음이 같은 4국은 없다고 한다. 1국은 작전국, 2국은 정찰국, 3국은 해외정보국, 5국은 대화조정국, 6국은 기술국, 7국은 지원국이다.
 
  정찰국은 무장공비 양성·남파, 요인 암살·납치, 테러 등을 담당한다. 1983년 미얀마 아웅산 테러, 1996년 강릉 잠수함 침투, 2010년 황장엽 전 비서 암살조 남파 등의 배후로 지목된다. 해외정보국은 당 35호실(대외정보조사부)을 흡수한 것으로 해외에서 대남 정보 수집, 간첩 공작 등을 전담한다. 1978년 신상옥·최은희 부부 납치, 1987년 칼(KAL) 858기 공중 폭파 등을 일으켰다.
 
  미국 정부가 공개한 ‘인권 제재 리스트’를 보면 정찰총국 1국장은 오종국, 5국장은 조일우다. 6개 국(局)으로 구성돼 있다는 사실만 알려졌을 뿐 각국의 장(長)이 누구인지는 지금까지 공개된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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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혜연    (2018-02-17) 찬성 : 40   반대 : 11
슬프지만 이한영과 김정남은 그렇게 갔다오!!!! ㅡㅡ
  박혜연    (2017-12-10) 찬성 : 23   반대 : 77
성혜림과 성혜랑의 친오빠인 빨치산출신 성일기 어르신이 이렇게 예언했지. 그러니까 거기에 대해서 말하지마라, 만약에 폭로하면 너희들은 죽는다.라고!!!! ㅡㅡ
  김성    (2016-07-22) 찬성 : 18   반대 : 23
대한민국에서 북한 김정은 정권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 애국활동하는 8명에 대한 제가 조금 조언이 가치가 있을런지 모르겠는데 제가 오랫동안 경험으로는 아파트 살 때 보니 살인조직이 바로 옆집과 위층에 살면서 방생활과 컴퓨터 화면을 도감청하는 것 같고(컴퓨터에 도감청 해킹 프로그램 안깔고 도감청을 알수 있는 방법을 저는 알아 홈뱅킹 홈쇼핑 절대 안합니다), 휴대폰도 지금까지 잘 사용을 안합니다. 심지어 가스점검(과거에 한달에 한번,지금은 6개월에 한번)과 아파트 경비원도 조심해야 하고,밤에 아파트 주차장 차도 조심해야 합니다,겨울에도 차안에 사람이 있습니다. 아파트 앞에 상가도 조심해야 합니다. 단독주택으로 이사와도 집앞 가게뿐만 아니라 집주위도 항상 경계하고 길가다가도 승합차 탑차 스포렉스 카니발같은 suv가 있으면 주의 경계해서 다른 길로 갑니다. 김현희는 배달신문을 안 보고 가판대에서 신문을 사서 본다고 하는데 저도 배달신문 보다가 큰 일날뻔 했습니다, 이사해서도 조선 동아를 보다가 한달만에 끊었습니다. 동아를 신문값 주고 끊었는데 보름 후 토요일 밤에 젊은 남자가 신문값 달라고와서 큰 일 날뻔했습니다, 외출하면 가판대에서 조선을 사서 봅니다, 이한영은 북한에 남파한 간첩이 살해보다는 종북인간 또는 김대중 노무현 추종자들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한영 휴대폰 도청뿐만 아니라 동선을 정확하게 살인자한테 제공한 큰 조직이 이한영 옆에 분명히 있었습니다. 살인조직이 정말 어마어마한 조직입니다. 지금까지 전국 어디를 가든 감시에서 벗어난적이 없는데(감시해서 기회되면 장소불문 시간불문 살해 노림) 특정지역 경찰과 조폭과 향우회가 이런 짓을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도 친구 여자 지인을 안 만나는데 과거에 친구가 유인을 해서 큰 일 당할뻔 했는데 협박 또는 매수도 있겠지만 입에 담지 못할 인간 쓰레기짓을 한것처럼 소문 세뇌시켜 꼬두키는 것 같은데 사람 수준을 보고 특정지역 경찰도 이짓을 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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