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본 한국 외교사 ④ 공민왕 : 월간조선

공민왕(恭愍王,1342-1374)은 고려 충숙왕(忠肅王)과 명덕태후(明德太后) 사이에 태어난 충혜왕(忠惠王)의 동생이다. 1341년(충혜왕 2) 원(元)에서 숙위(宿衛·원나라에 가서 유학하며 견문을 넓히는 동시에 인질로 잡히는 일)했다. 20세인 1349년 원에서 위(魏)왕의 딸 노국공주(魯國公主)와 결혼하고 2년 후 원의 간신과 외척의 전횡으로 국정을 문란케 한 충정왕이 폐위되자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공민왕 시대는 100여 년 동안 세계를 지배하던 몽고제국이 쇠퇴하고 한족(漢族)이 명(明)을 건국하는 교체기로서 국제정세의 일대 변화기에 해당한다. 공민왕은 원에서의 숙위 시절에 고려의 국권회복을 다짐했던 것으로 보인다. 왕위에 오르자, 국내적으로는 친원(親元) 세력을 척결하고 원의 정방(政房)을 혁파한 후 고려의 관제를 복고하고, 대외적으로는 고려의 자주독립을 추진하였다.

대외정책에 있어 공민왕의 성과는 괄목할 만한 것이었다. 우선, 원(몽고)의 연호(年號)를 철폐하고 원의 행성 이문소(理問所)와 체복사(體覆使)를 폐지하여 몽고의 영향에서 벗어나 고려의 국권을 복원시켰다. 그리고 원의 쇠퇴를 이용해 잃었던 동북면의 쌍성(雙城)·삼살(三撒) 지방을 탈환하여 북방으로 고려의 영토를 확장하고, 서북면으로는 요동의 심양과 요양(遼陽)까지 공략하여 영토를 넓히기 위해 노력하였다.

또한 원의 영향하에 있었던 탐라를 정벌하여 고려의 영토임을 분명히 하고 변방에 침입하여 가옥을 불사르고 조미선(租米船·국가가 쌀을 조세로 거두어 이를 운반하는 배)을 탈취하는 왜구의 침범을 방어한 것도 업적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공민왕은 원-명 교체기에 탈몽(脫蒙)·친명(親明)의 실용외교를 구사하면서 화전(和戰) 양면전략으로 몽고의 지배에서 벗어나 고려의 국권을 회복하고 영토를 넓혀 고려를 중흥시킨 업적을 남겼다(공민왕의 대외정책을 우리 역사에서 일반적으로 반원(反元)정책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공민왕은 몽고의 지배에서 벗어나 고려의 자주성 회복을 위해 탈몽·배원(排元)정책을 추진했으나 원과 대립하는 반원의 입장에 서지는 않았다. 다만, 고려의 국내정치 차원에서는 친원 세력과 반원 세력으로 구분하여 기술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공민왕 시기의 대외정책을 탈몽·배원정책으로 기술하기로 한다).

공민왕 시대의 麗-蒙관계

1231년(고종 18) 몽고의 1차 고려 침략 때 몽고군은 고려의 국경 군사구역인 북계 여러 성을 공략한 후 이들 지역에 다루가치(達魯花赤)를 설치하여 고려의 대항능력을 마비시키고 아울러 지배를 항구화하는 장치를 설정했다. 다루가치는 몽고의 관직으로 두 종류가 있었는데, 하나는 점령한 지역의 백성을 직접 다스리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국사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하고 간섭하는 경우이다. 1231년 고려에 배치된 다루가치는 전자(前者)의 경우이고 1270년(원종 11) 고려가 원에 항복한 후에 배치된 다루가치는 후자(後者)에 해당한다.

고려는 계속된 대몽 항전과 그 후 몽고의 일본 정벌에 동원되면서 국력이 극진하게 소모됐다. 몽고는 1287년(충렬왕 13)부터는 정동행성(征東行省)이라는 관제기구를 설립하여 정치적 압력을 강화시켜 나갔다. 정동행성은 처음에는 원의 일본원정을 위해 설치하였지만, 일본원정 중단 이후에도 고려의 자주적 지위를 통제하는 기관으로서 고려 말까지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원은 다루가치와 행성(行省)을 통해 왕위계승은 물론, 심지어 고려의 내정문제까지 허가를 받도록 하는 등 고려의 주권은 크게 제약을 받아 왔다.

고려 무인(武人)정권 시대에는 대몽 항전으로 국가 독립의 상태는 견고하였으나 삼별초의 무인세력이 무너진 이후에는 나약하고 사치에 기울어져 국왕들은 주권을 보전하지 못하고 몽고의 간섭을 받아들이고 복속하면서 그 현실에 안주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로 고려의 왕위는 매우 불안정하였다. 고려는 몽고의 간섭에 의하여 충렬왕의 양위와 충선왕의 즉위(1298년 정월)-충렬왕의 복위(동년 8월)와 충숙왕의 즉위(1314, 재위 17년)- 충숙왕의 양위와 충혜왕의 즉위(1330년)-충숙왕의 복위(1332년, 8년)와 충혜왕의 복위(1340년, 5년)-충목왕의 즉위(1344년, 8세에 등극하여 4년)와 충정왕의 즉위(1348년) 등 공민왕의 즉위(1351년)까지 모두 단명했다.

한편 몽고에서도 14세기에 들어서 국세가 기울어지면서 말기적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공민왕의 脫蒙정책과 親元세력의 척결

공민왕은 왕위에 오르자 국내적으로는 원의 치세에서 어지러워진 고려의 기강을 바로 세워 고려의 중흥을 꾀하고, 대외적으로는 원의 지배에서 벗어나 고려의 자주독립을 추진하였다. 특히 몽고의 영향에서 벗어나려는 공민왕의 탈몽·배원 사고는 공민왕이 태조 왕건의 훈요 10조(태조 26년)를 강조한 데서 알 수 있다. 훈요 10조 제4항은 ‘수방위토(다른 外國)의 사람들은 문물 예악이 같지 않고 금수의 나라로서 그 풍속과 의관제도도 다르니 이를 본받지 말도록 하라’는 내용의 모화배번(慕華排蕃)사상이다. 공민왕의 뜻은 몽고의 문화 즉, 몽고식 변발(辮髮)과 호복(胡服)을 버리고 고려의 전통문화를 따르겠다는 것이었다.

또한 공민왕은 고려가 몽고의 치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선 몽고에 의지하여 발호하고 있는 국내 친원 세력을 제거하여 몽고의 정치적 간섭을 배제하는 것이었다. 공민왕은 몽고에 원군으로 갔다 돌아온 류탁·최영 등이 직접 관찰한 정보에 따라 중국에서의 변란과 원의 쇠퇴를 확인하고 탈원(脫元)의지를 더욱 공고히 하였다. 공민왕의 첫째 과제는 친원 세력 기씨(奇氏) 일당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기씨의 득세는 고려 출신으로 몽고의 제2황후가 된 기황후(奇皇后)의 후광 때문이었다.

고려 중흥의 원대한 구상을 가진 공민왕에게는 이들을 그대로 두고서는 국권을 회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우선적으로 기씨 일파부터 소탕하였다. 그리고 몽고의 연호인 지정(至正)을 폐기하는 결단을 내렸다. 이어서 강요된 몽고의 관제를 개혁해 나가기 시작했다. 즉, 원의 관제를 퇴출시키고 문종시대의 고려 독자적인 삼사(三師)·삼공(三公)·상서성(尙書省)제도를 환원시켰다.

元에 빼앗긴 북방영토의 수복

공민왕이 수복한 영토.

친원 핵심세력인 기씨 일당을 참살한 공민왕으로서는 원의 추궁과 함께 요동(遼東)병력의 내침도 각오해야 했지만 공민왕은 수세적이 아니라 오히려 공세적 입장을 취했다. 원이 남방의 병란으로 인하여 요양 방면의 수비가 허술할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정동행성을 폐지함과 동시에 북방영토 수복의 길에 나섰다.

우선 몽고가 점령하고 있던 동북계의 쌍성(雙城)을 공략했다. 원래 쌍성은 고려의 동북면 화주(영흥)를 말하는데, 화주 이북의 15주를 그 관할 아래 두고 있었다. 동북면의 쌍성은 1258년 몽고의 대군이 침입하여 점령한 후, 쌍성총관부를 설치하여 고려의 동북면 주민들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다.

1356년 동북면 병마사 류인우(柳仁雨)와 조돈(趙暾)은 서북면과 보조를 같이하면서 쌍성으로 진군하였다. 류인우의 군대는 이자춘(李子春・이성계의 부)의 내응을 받아 쌍성총관부를 공격하였다. 이에 쌍성의 조소생(趙小生)과 탁도경(卓都卿)은 북쪽으로 도주하였다. 고려는 원에 빼앗긴 지 99년 만에 북방지역을 수복하게 된 것이다.

동북계의 쌍성을 공략하면서 동시에 공민왕은 요동의 심양로(瀋陽路)를 공략했다. 심양로는 원대에 만주지방에 설치된 ‘7로·1부’의 하나로 몽고에 투항한 고려 군민을 통솔하던 관부였다. 요동의 중심지였던 심양과 요양에는 고려인들이 많이 거주하였기 때문에 원은 이 지역에 심양로를 설치하고 고려의 왕족을 심양왕에 봉해 고려의 군민을 다스리게 하였다(요양과 심양을 줄여서 요·심지역이라고 통칭하기도 한다).

당시 고려 출신 기황후 일파는 공민왕을 폐하고 심양왕 독타불화(篤朶不花)를 고려왕으로 세우려 한 적이 있다. 이처럼 심양왕과 본국 고려 국왕과의 관계에서 볼 때 고려의 왕위쟁탈전을 전개하는 데 있어서 심양왕의 세력은 고려 왕권에 도전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1356년 드디어 고려의 인당(印璫)은 군사를 거느리고 압록강을 건너 파사부(婆娑府) 등을 공격하여 이를 격파하였다. 그리고 기씨 일족의 세력 근거지인 요양을 공격했다. 원은 고려 사절을 인질로 잡아 가두고 80만 대군을 동원해서 고려를 공략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러나 각지에서 병란이 일어나 국권이 흔들리고 있는 원으로서는 실제 고려에 대하여 군사를 동원하지는 못하고 강력한 외교적 압박을 가해 왔다. 고려의 판단이 적중한 것이다.

그러나 공민왕은 요양을 공격한 인당 장군을 참형에 처한 후 원에 해명서를 보내면서 “변민이 저지른 일이며 자신의 본의가 아니다”라고 했다. 인당은 함께 서북면 병마사가 된 강중경(姜仲卿)이 출정 업무에 충실하지 않자 강중경을 참살한 사건이 있었다. 공민왕은 북방의 실지를 이미 공략한 상태이므로 책임을 인당에게 씌워 원의 반발을 무마한 것이다. 아직도 원의 세력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원과 정면 대치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공민왕은 원과의 관계에서 전략적으로 화전 양면작전을 구사한 것으로 보인다.

元의 쇠퇴와 고려의 국권회복

공민왕은 원과의 관계에서 실지회복에 있어서는 단호한 군사조치로, 외교교섭에서는 전통적 유대관계를 유지하면서 충돌을 완화해 나가는 한편, 양광도·전라도에 거주하는 제주인 화척(禾尺)·재인(才人)을 모아 서북면에 파견하여 수복한 지역의 방비를 튼튼히 하는 안보태세를 강화했다. 그리고 이인복(李仁復)을 원으로 파견하여 기씨 세력 척결과 영토문제에 관해 분명한 뜻을 전달했다.

문서를 통해 고려는 ①정동행성 이문소를 폐지하여 고려의 재판에 간섭하지 말 것 ②원 세조가 설치한 중군·좌군·우군 중 일본 정벌에 필요한 3만호(萬戶)만 남기고 기타 5만호는 모두 폐지할 것 ③원 정부의 명령을 받아 오는 사신과 관리는 대개 고려 출신의 사람인데 이들은 원의 위세를 빌려 고려에 와서 저지르는 횡포가 극심하니 앞으로 고려 출신의 사신을 보내지 말 것 ④원의 여러 아문에서 자의로 관리를 고려에 파견하여 토산물을 거두어 가는 것을 금지할 것 ⑤원에 있는 덕흥군은 고려의 불순도당을 모아 고려 백성을 현혹케 하고 있으니 고려에 송환할 것 ⑥우리의 구토인 쌍성·삼살 이북 지역을 우리에게 반환할 것 등을 명기했다. 이미 실행한 조치들에 대해 원이 인정하도록 통보한 것이다.

이에 대해 원이 회답을 보내지 않아 결과적으로 묵인하는 형태를 취하게 되자 고려는 원의 굴레에서 벗어나 완전히 자주독립 국가가 되었다. 1357년 공민왕은 충렬(忠烈)·충선(忠宣)·충숙(忠肅)·충혜(忠惠)·충목(忠穆)왕을 각각 경효(景孝)·선효(宣孝)·의효(懿孝)·헌효대왕(獻孝大王)·현효대왕(顯孝大王)이라는 존호(尊號)를 더하였다. 고려가 충렬왕 이후의 여러 왕에게 존호(시호)를 추서한 것은 원으로부터의 자주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1359년 이후부터는 원에 파견하던 하정사(賀正使·신년을 축하하러 가는 사신)·절일사(節日使·명절에 따라 보내는 사신) 및 황후와 황태자의 천추절(千秋節·생일을 축하하러 가는 사신)의 파견도 중단했다.

당시 원의 쇠퇴상은 분명하지만 그 당시로서는 원의 멸망을 확신하기 어려웠고 다른 어떤 세력이 중국을 차지할지는 아직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려가 탈원(脫元)하여 국권회복을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은 공민왕의 정치적 역량과 화전 양면의 전략에 힘입은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후 장사성을 비롯하여 중국 강남의 군웅들이 사절을 보내와 제휴를 모색한 것도 고려의 이러한 역할을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親元세력의 반동과 제압

1359년부터 3년여에 걸친 홍건적의 침입을 물리치자 이번에는 국내에서 변고가 생겼다. 김용(金鏞)은 이번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것을 기회로 삼아 안우·이방실·김득배 등을 꾀어 정적(政敵)인 정세운을 술자리에 함께 초청하여 그 자리에서 격살했다. 김용이 이들 명장을 제거한 데는 원의 기황후파(派)인 최유(崔濡) 등의 국왕 폐위 음모와도 관련이 있다.

앞서 기씨 세력이 제거되자 원의 기황후는 공민왕에게 복수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심지어 기황후는 태자에게 “너의 나이 이미 장성하였는데 어찌 나의 원수를 갚지 않느냐”라고 하였다. 마침 이때 최유가 고려에서 죄를 짓고 원에 있었다. 그러하던 최유가 기황후의 공민왕에 대한 복수심이 강함을 알고 기황후를 움직여 공민왕을 폐하고 덕흥군을 왕위에 올리는 음모를 꾸몄다. 또한 최유는 김용이 안우 등 여러 장군을 죽였으므로 자기가 음모를 꾸미면 김용이 내응할 것으로 믿었다.

1363년(공민왕 12)에 최유 등이 요양성의 군을 동원하여 내침하자 공민왕은 청주로 피난하였다. 김용은 최유의 공민왕 폐위와 덕흥군 영립 음모에 내응하여 비밀리에 왕의 행궁인 흥왕사(興王寺)를 덮쳤다. 이때 최영(崔瑩)·김장수(金長壽) 등이 서울로부터 군사를 거느리고 행궁으로 가서 김용 일당을 모두 죽이고 난을 평정하였다.

1364년 마침내 최유는 원병(元兵)을 동원하여 덕흥군을 받들고 압록강을 건너와 의주(義州)를 포위하였다. 도지휘사 안유경은 패하여 안주(安州)로 퇴각하고 최유는 선주(宣州)로 쳐들어 왔다. 이때 최영이 흩어진 모든 군대를 정돈하여 반격에 나서자 결국 최유는 퇴각했다.

원으로 돌아간 최유는 고려에 재침할 것을 노리며, 원 순제에게 건의하기를, “만약 고려에 돌아가면 장정을 모두 징발하여 천자의 군대에 충당하고 또 군량과 여자를 바치는 것을 해마다 상례(常例)로 삼을 것이며, 경상·전라도에 왜인 만호수를 두고 왜인을 불러들여 금부(金符)를 주어 원의 도움이 되게 하겠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 감찰사 유린(紐隣) 등이 공민왕을 지지하고 최유의 부당함을 일일이 지적해서 최유의 모반은 실패했다.

1364년 장자온(張子溫)이 원에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전하기를 “원 순제가 (공민)왕의 복위를 명하고 최유를 압송한다”고 하였다. 원은 정식으로 한림학사 기전룡(奇田龍)을 고려에 파견하여 공민왕을 복위시킨다는 문서를 보냈다. 김용과 최유의 공민왕 제거 음모와 원이 덕흥군을 고려왕에 책봉하는 등의 우매한 처사는 그 진실이 밝혀짐에 따라, 공민왕을 복위시키는 한편 최유를 주살하고 덕흥군을 장형(杖刑)시킴으로써 일단락되었다.

元-明 교체기의 고려 외교

明太祖 주원장.

공민왕의 탈몽 자주정책은 강남지방에 할거하고 있던 군웅과의 빈번한 교빙과도 관련이 있다. 남방군웅과의 해상교통은 평화적 통상무역이었으나, 이들이 모두 한인이라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고려는 그들의 내빙을 기꺼이 받아들였고, 이를 통하여 원의 실정을 정탐할 수 있는 디딤돌을 마련할 수 있었다. 또 그들과의 다원적 외교관계를 통하여 외압을 해소하려는 의미도 갖고 있었다.

남방의 군웅 가운데 가장 먼저 고려와 교빙한 세력은 장사성(張士誠)이었다. 그는 공민왕 6년 처음 내왕을 시작한 이래 8년간 13회에 걸쳐 사절을 교환했다. 공민왕은 장사성 이외에도 강남에서 일어난 군웅과 자주 교빙하였다. 그러나 중국대륙에 아직 원을 제압할 만한 강대한 세력이 나타나지 못한 데다가 원의 세력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원에 대해서는 화전 양면전략을 구사했다. 결과적으로 고려는 압록강 서쪽과 영흥 이북의 땅을 수복하는 실리를 얻었다.

이때 빈농 출신인 주원장(朱元璋)이 홍건적에 가담하여 양자강 유역을 정복하고 금릉(金陵)을 근거지로 하여 하나의 세력권을 형성하면서 가장 두드러진 반원세력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1364년(공민왕 13)에 주원장은 군웅을 평정하고 마침내 1368년 등극하여 명(明)을 세웠다.

고려는 새로이 명이 일어나고, 원이 북쪽으로 후퇴하는 시점에서, 한편으로 문천식(文天式)을 원에 파견하여 천추절을 축하하고 다른 한편으로 장자온을 명에 파견하여 명과의 수교를 청했다. 명 태조는 고려 사신을 후히 대접했다. 여-명관계가 정상화되려고 하자 원은 사신을 자주 고려에 파견해 명을 견제하고 고려를 감시했다. 이에 고려는 원 사신에게 잔치를 베푸는 한편, 이성서(李成瑞)를 원에 파견하여 신년을 축하하였다. 원은 고려와의 밀착을 견지하기 위하여 1369년(공민왕 18)에 요양성의 납합출(納哈出)을 고려에 보내어 양국관계를 돈독히 하고 공민왕의 관직을 우승상(右丞相)으로 높였다.

명의 군대가 원 순제를 계속 추격하여 상도는 함락되고 순제는 북으로 도망쳤다(이때부터 북원으로 불림). 이러한 가운데 고려는 명과의 관계를 더욱 다져 나갔다. 홍상재(洪尙載)를 명에 파견하여 명 태조의 즉위를 축하하고 사은(謝恩)을 표하는 문서를 전하였다. 북원에서는 순제가 1370년(공민왕 19)에 죽고 그 태자 애유식리달랍이 그 뒤를 이었으나 수도 응창도 명군에게 함락되자 몽고 초기의 도읍지인 화림(和林)으로 피하여 원의 명맥을 부지했다.

이러한 가운에 여-명 양국관계는 더욱 깊어져 갔다. 명 태조는 설사(楔斯)를 파견하여 공민왕에게 친서를 전달하였다. ‘고려의 왕실은 고려를 잘 다스려 왔을 뿐만 아니라 충성의 뜻을 표하였으므로 공민왕을 고려 국왕으로 삼는다’는 내용이다. 이로써 명과 고려는 전통적인 사대관계를 확립하였다. 그리고 “모든 의제복용은 고려의 본래 풍속에 따라도 좋다”고 해서 고려의 자주권을 인정하는 불개토풍(不改土風)을 용인했다.

공민왕의 요동 再공략

공민왕은 원-명 교체기의 불확실한 국제정세 속에서 여-명, 여-몽 관계를 전략적으로 접근하여 우선 고려의 안정을 도모하는 한편, 또다시 요동지역 공략을 구상했다. 공민왕은 잃었던 북방영토의 수복에 그치지 않고 요양의 동녕부를 점령한 후, 이미 세력을 상실한 북원(北元)과는 외교관계를 끊을 각오를 하였다. 공민왕의 요동 수복 전략은 원이 쇠퇴하고 명이 아직 고구려 구토인 요·심지역을 점유하지 못한 틈새를 이용한 것이다.

공민왕은 1369년(공민왕 18) 동·서북면의 서경(西京)·정주(靜州) 등지에 만호(萬戶)와 천호(千戶)를 두어 북방 정벌을 준비한 후, 1369년(공민왕 18) 이성계를 동북면 원수로, 지용수(池龍壽)를 서북면 원수로, 이인임을 서북면 도통사(都統使)로 하여 재차 요동 공략에 나섰다.

1370년 이성계의 고려군이 압록강을 넘자 동녕부 이오로티무르(고려명은 李原景)는 응전을 포기하고 “나는 본래 고려 사람이니 원컨대 고려의 신복이 되게 해 달라”고 하면서 투항하고 이름도 이원경으로 개칭했다. 그러나 추장 고안위(高安慰)는 군사를 거느리고 성을 굳게 수비하였지만 고려군의 공격에 무너졌다. 고안위는 도주하고, 그 다음 날 고안위의 부하 장수들은 모두 항복하였다.

이때 명 태조는 공민왕을 고려 국왕에 책봉하면서 친서를 보냈는데, ‘명의 군대가 아직 요양과 심양에 이르지 않은 사이에 혹시 광포한 자가 나와서 중국의 환란을 만들고 고려를 소란하게 할까 염려되니 만약 이를 굳이 막고자 하면 장수와 군사를 동원하라’는 요지였다. 이것은 요양·심양지방의 혼란을 고려가 수습하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으나 명이 요양을 고려 땅으로 인정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려군은 요양성(遼陽城) 인근에 이르러 “요양과 심양은 고려의 경역이요, 백성은 고려 백성이므로 이제 의병을 일으켜 어루만져 편안케 하려 하니 모두 나와 실정을 고하라”고 하였다. 고려군의 공격이 시작되자 드디어 항복하였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고려는 동녕부에 문서를 보내 “요·심 지역은 원래 고려의 영토였다”고 통고하고 요·심 지방민에게 고려 백성이 되도록 화유하기도 했다.(《고려사》)

1371년 북원의 요양성 평장 유익(誘益)·왕우승(王右丞) 등은 명에 항복하면서 ‘요양은 본래 고려 영토였다’는 것을 내세워 고려로 하여금 명에 교섭하여 이 지방의 백성이 명으로 가는 것을 막도록 요청하여 왔다. 이것은 북원이 요동을 명이 차지하지 못하도록 이 지역을 고려 영토로 기정사실화하라고 종용한 것이다. 이때 고려가 요양을 군사 점령한 후 명과 외교협상을 하는 것이 요동을 영토화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던 것으로 보인다.

불과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명나라가 북원을 압박하여 요동에 세력을 미치게 되자 사정은 달라졌다. 명의 중서성에서는 “유익 등이 이미 명에 귀순한 사실과 이곳을 군대의 지휘소로 삼았다”고 고려에 통보해 왔다. 고려는 요양에서 손을 떼라는 통고에 다름없다.

그러나 1372년 고려는 요·심 지방에 관한 영토 의사를 다시 표시했다. 명에 보낸 문서에서 “상고하건대 동녕과 요양은 일찍이 명에 귀속한 바가 없는, 곧 교화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고 하물며 고려와 틈을 만드니 마땅히 고려가 방비하여야 하겠기에 이 요새지를 파수하여 사변이 일어나면 모두 체포하게 하였다. 만약 명이 기철의 아들 기새인티무르를 잡으면 먼저 고려에 보내 주기 바란다”고 하였다. 이것은 요·심 지역이 명과는 연고가 없으니 고려 땅이라는 것을 통고한 것이지만 명은 인정하지 않았다.

麗-明관계의 간극과 외교마찰

명이 원을 몽고지방으로 추방한 이래, 여-명관계는 급속히 밀착되고 있었다. 고려는 ①원의 연호를 버리고 명의 연호를 쓰고 ②신이라 칭하면서 내치는 자주적으로 하고 ③명의 대통력(大統曆)을 받아 시행하며 ④왕·왕후·배신(陪臣)의 관복을 받고 ⑤하정사를 보내는 등 대명 친선외교를 수행하면서, 한편 원과의 사신 내왕도 유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명 간에 문제가 발생했다. 1372년 명의 사신으로 온 손내시(孫內侍)가 고려에 온 지 10일이 되는 날에 불은사(佛恩寺)의 소나무에 목을 매고 죽은 사건이 일어났다. 손내시가 자살한 것은 그 이유가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여-명관계에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하게 되었다.

이런 가운데 1373년 북원이 사절을 고려에 파견해 왔다. 손내시의 자살로 여-명관계가 암초를 만난 상황에서 북원의 사신 방문은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고려 조정은 이들 사신을 구류할 것이냐, 접수를 거부하여 돌아가게 할 것이냐, 명에 인도할 것이냐 하는 세 가지 방안을 놓고 논의한 결과 밤에 원의 사신을 접견하기로 하였다. 이 자리에서 공민왕은 “내가 눈병이 있어 낮에 해를 보면 눈이 몹시 아파 밤에 여러분을 대하는 것이다”고 변명하였다.(《고려사》) 공민왕이 밤에 이들을 접견한 것은 명이 이 사실을 알까 염려한 까닭이었다. 또한 아직도 국내에 남아 있는 친원 세력을 무마하면서 친명외교를 전개하기 위한 공민왕의 고심에 찬 선택인 것으로 보인다.

이 당시 여-명관계에서 대두된 현안은, 첫째 명 사신의 죽음, 둘째 고려와 북원과의 외교관계 유지, 셋째 사절왕래 통행로를 해로 이외에 육로로도 개방하는 문제 등이었다. 이러한 문제들을 중심으로 하여 여-명 간에는 외교적 알력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명 태조는 고려 사신에게 이르기를 “고려가 명에 대하여 의심을 가지려면 군마를 준비하여 전쟁을 해 오라”고 하였다. 또한 명 태조는 “나는 정벌을 한다면 정정당당히 정벌할 것이며 만약 정벌한다면 3개월 안에 군대를 동원할 것이다”고 압박했다. 명은 고려에 대하여 여러 가지 현안을 열거하면서 고려가 명을 정탐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으니 믿을 수 없으므로 앞으로 사신의 내왕도 끊고 나아가서 전쟁이라도 하려면 하자고 강경한 자세를 보였다. 여-명관계는 파탄 일보 직전에까지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고려는 명에 사신을 파견하여 양국관계 악화를 진정시키기 위한 해명과 충성의 맹세를 다시 하고 “왜적이 침범한 지 이미 20년이다. 자래로 본국의 연안에 군사를 배치하여 수비만 하고 바다에까지 나가 추격·체포하지는 않았다. 근년에 적세가 맹렬해졌으므로 앞으로 바다에 나가 적을 추격·체포하여 백성들의 우환을 없애고자 한다. 왜선을 나포할 배는 만들었으나 그 배에 비치해야 할 기계·화약·유황·염초 등을 마련할 수 없으니 도와 달라”고 요청하였다.(《고려사》) 고려가 명에 대한 왜적 방어의 전초기지임을 강조하고 명의 지원을 요청한 것이다. 대명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우회적 교섭이기도 하다.

또한 고려는 1374년 정비(鄭庇)와 우인렬(禹仁烈)을 명에 파견하여 앞으로 고려 사신이 육로를 통할 수 있게 청하고, 토산물을 3년 1공(三年一貢)이 아니라 과거의 예에 따라 1년 1공할 수 있게 청하는 한편, 고려 사신의 내왕하는 길을 육로로도 할 수 있도록 허가해 줄 것을 요구하는 문서를 보냈다.

명은 정비 등이 갖고 온 예물이 지나칠 정도로 많다는 점과 고려에서 앞서 청구한 화약·유황·염초 등은 중국에 많기는 하나 중국에도 쓰일 곳이 많다고 하면서, 고려가 초와 유황을 생산하면 거기에 섞어 쓸 다른 약품을 배합해서 주기로 하겠다고 하였고, 고려 사신이 내왕하는 길은 해로를 이용하도록 하고 육로는 인정하지 않았다. 요동에 대한 고려의 관심을 배제시키고 북원과의 관계를 차단하려는 명의 조치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명의 응답은 과거의 문제들을 더 이상 거론치 않겠다는 것과 양국관계를 정상화하겠다는 의사표시로 볼 수 있다. 고려는 위기를 맞은 대명관계를 외교교섭을 통해 정상화시켜 나갔다.

고려의 국권과 북방영토를 수복한 공민왕

공민왕이 원의 지배와 영향에서 벗어나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친원 세력인 권문세족을 척결해야 했다. 이를 위해 공민왕은 1363년 무명의 승려 신돈을 발탁했다. 신돈은 권문세족의 토지와 노비를 환원하여 권문세족의 경제기반을 약화시키고 왕권을 강화했다. 그리고 원의 정방을 폐지한 후에는 신진사대부를 대거 등용해서 개혁정치를 주도했다. 이들이 이제현(李齊賢)·이색(李穡) 등을 주축으로 한 유자계열로, 이들 중에는 과거 합격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이 고려의 신진사대부를 형성하게 되는데 여기에 정몽주(鄭夢周), 정도전(鄭道傳) 등도 포함된다.

또 다른 변화는 친원 세력의 척결과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을 격퇴하는 과정에서 최영, 이성계 등의 무장(武將) 세력이 대거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고려 내부는 권문세족, 신진사대부, 무장 세력 간의 갈등관계가 자리 잡게 되었다. 공민왕은 이러한 국내정치적 갈등관계와 함께 대외적으로는 저무는 원과 떠오르는 명의 틈바구니에서 국권회복과 함께 북방영토를 수복하는 큰 업적을 남겼다.

여기에서 공민왕의 자주독립의 국권회복 정책과 북방영토 수복이 성공한 이유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당시 원의 쇠퇴상은 원이 장사성을 공격하기 위해 고려에 군대를 요구한 데서 찾아볼 수 있지만, 그 당시로서는 원의 멸망을 확신하기 어려웠던 것 또한 사실이다. 또 원의 쇠퇴가 분명하다고 해도 다른 어떤 세력이 중국을 차지할지는 아직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고려 국내의 사정도 반원정책을 일사불란하게 단행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뿌리 깊은 권문세족의 존재뿐만 아니라 당시 신흥 유신들도 고려의 급진적인 태도 변화에 대해서는 심정적으로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명의 교체기에 원의 지배하에 있던 부마국 고려의 반원·친명 외교정책에 대해 18세기의 조선 학자였던 이익과 안정복도 논의한 기록이 있다. 안정복이 스승 이익에게 “고려는 오랫동안 원을 섬겼던 나라이고, 그들의 병력은 고려를 공격하기에 충분한데 이런 외교는 괜찮은 것일까요?”라고 질문하자 이익은 “고려는 충렬왕 이후 원나라의 은혜가 컸으므로 원이 쇠퇴했다고 고려가 배반할 수는 없다”며 신생국을 택한 공민왕의 외교정책을 비판했다.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외교관을 대변해 주고 있다.

공민왕이 왕위에 오르면서 고려 안팎으로 처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국권회복과 북방영토를 수복한 것은 공민왕의 정치적 역량과 화전양면의 전략적 사고에 힘입은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공민왕이 탈몽에 성공한 것은 결과적으로 몽고제국 질서의 붕괴에도 일정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공민왕은 400년 후의 조선 사대부보다 앞선 외교적 안목과 역량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공민왕 시해와 《고려사》

공민왕은 지배세력 사이에 도사리고 있던 여러 모순을 극복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1373년 내우외환(內憂外患)의 시기에 공민왕이 갑자기 시해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고려사》에 의하면, ‘공민왕은 1365년 노국공주의 사망 후 실의에 빠져 모든 국사를 신돈에게 위임하고, 영전을 지나치게 호화롭게 조영하여 재정을 어렵게 하였으며, 말년에는 자제위(子弟衛)를 만들어 미소년을 소속시켜 변태성욕을 즐겼다’며 그의 실정(失政)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공민왕이 후사가 없자 홍륜(洪倫) 등을 여러 왕비와 사통시켜 아이를 잉태케 한 후 그의 입을 막기 위해 그들을 죽이려다 이를 먼저 알게 된 홍륜 등이 공민왕을 시해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유의해야 할 점은 《고려사》가 공민왕의 시해 사건을 전후해서 지나치게 편파적인 측면을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고려사》 편찬자들이 여러 차례 바뀌면서 신돈의 영향력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신돈을 우왕·창왕과 관련시킴으로써 조선 건국의 합리적 명분을 찾으려는 조선 초기 사관들의 부정적인 기술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고려사》의 기술이 공민왕의 국권회복과 북방영토 수복 등 고구려를 계승한 공민왕의 업적을 희석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오늘날 중국이 부상하면서 한국의 외교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새로운 미-중시대(G2)의 도래를 예견하면서 차이메리카(Chimerica)라는 용어도 생겨났다. 당장은 아니지만 앞으로 가시화할 가능성이 높다. 10여 년 후에는 러시아도 부활하고 일본의 우경화가 계속되면 한국은 다시 주변 강대국의 틈새에서 안보를 걱정하게 된다. 원-명 교체기의 20여 년 동안 공민왕이 구사한 외교와 전략을 다시 음미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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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로 본 한국 외교사 ④ 공민왕

和戰 양면전략으로 북방영토를 수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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