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한국해양과학기술원·월간조선 공동기획 - 마지막 블루오션, 태평양 도서국 14개국 르포 ①

좁아진 태평양… 未知의섬나라는 더 이상 없었다

글 : 김정우  월간조선 기자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대항해시대와 제국주의시대 지나며 급속도로 문명화… 동서양 문화 뒤섞인 ‘원초적 낙원’
⊙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 두고 新태평양전쟁 벌이는 미·일·유럽·호주 등 강대국들
⊙ 海洋屈起 전략 본격화한 중국, 막대한 자금력 앞세워 태평양 영향력 확장… 미국과 태평양 G2 구도
    형성
⊙ 일제강점기 역사 공유한 태평양의 富國 팔라우, 한국 관광객 급증에 對韓 교류·협력 증대 원해
⊙ “작은 나라들의 작은 문제들, 미래엔 지구 전체의 큰 문제 될 것… 한국과 기후변화 문제 긴밀히
    논의하고 싶다”(레멩게사우 팔라우 대통령)
마이크로네시아연방 축(Chuuk)주(州) 공항 전경(사진=박흥식)
  태평양은 넓지 않았다. 지구상에서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한 망망대해(茫茫大海)를 두고 좁다고 할 수 있는 시대다. 바다엔 약 2만5000개의 섬이 흩어져 있고, 900만여 명의 사람이 산다. 총 14개의 독립국은 이미 배타적경제수역(EEZ)으로 빈틈없이 대양(大洋)을 채웠다. 자연과학적으로 ‘푸른 대양(blue ocean)’이지만, 경제학적으론 ‘레드오션’인 셈이다.
 
  태평양은 결코 ‘태평(太平)한 바다’가 아니다. ‘태평양(Pacific)’이란 이름은 탐험가 마젤란(Magellan)이 순풍(順風)에 대양을 건너며 라틴어로 ‘평화로운 바다(Mare Pacificum)’라고 부른 데서 기원한다. 운이 좋아 순항한 마젤란의 생각과 달리, 실제 바다는 풍랑이 거세다. 제국의 ‘문명’과 ‘달러’는 바다와 섬과 사람을 더욱 거칠게 만들었다.
 
  미국과 일본은 70여 년 전 대양을 무대로 크게 전쟁을 벌였다. 적국(敵國)의 본토 타격을 위한 전진기지로 삼으려 대다수 섬에 공항과 항만을 세우고 도로를 닦았다. 환초섬(atoll)에선 수십 차례 핵(核)실험을 실시했다. 태평양전쟁은 작은 섬나라들을 급속도로 문명화시켰다. 세계대전 이전엔 독일, 영국, 프랑스 등이 바다와 섬을 나눠 가졌다. 그보다 앞서 스페인은 ‘서구(西歐)의 기준’으로 섬들을 최초로 ‘발견’하고 점령했다.
 
  태평양 섬들에 인류가 처음 발을 내디딘 시기는 수천 년 전으로 추정된다. 인도네시아에서 배를 띄우면 특별한 조작이 없어도 피지(Fiji), 타히티(Tahiti), 이스터(Easter)섬까지 떠내려간다. 해류(海流)와 바람 때문이다. 오래전 과거 누군가에게 쫓기거나 다른 부득이한 사정으로 배를 탈 수밖에 없었던 라피타(Lapita) 문명인들은 빗물과 생선으로 바다 한가운데서 꽤 오랜 기간을 버틸 수 있었다.
 
팔라우 코로르 지역에서 바라본 태평양.
  섬에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거나 공격의 대상이 된 이들은 또 배를 탔다. 거대한 바다의 흐름은 무풍지대를 지나 북쪽으로 이동한 그들을 서쪽으로 보냈다. 무역풍을 탄 이들은 캐롤라인제도(Caroline Islands)와 솔로몬제도(Solomon Islands) 등을 거쳐 다시 뉴기니(New Guinea)섬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
 
  섬은 그들에게 낙원이었다. 경작 없이도 빵나무(breadfruit)가 자랐고, 섬을 크게 두른 환초(環礁) 안 바다엔 먹을 만한 생선이 가득했다. 섬나라 사람들을 문명의 언어와 사고(思考)로 재단하기 어려운 큰 이유는 이들이 ‘먹고사는’ 문제와는 태생적으로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왜 열심히 일해 돈을 더 벌고 저축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왜(why)”란 질문이 돌아온다. 한국에선 수만 가지 사연이 나오겠지만, 열대 섬에선 마땅한 답을 찾기 어렵다.
 
  좁은 입지 탓에 불거진 근친혼(近親婚)은 지상낙원에 살던 그들이 서로 공격하고 전쟁했던 이유 중 하나다. 고립된 공간에서 유전 결함 확률이 높은 자손을 낳기보다는 섬 반대편이나 다른 섬을 공격해 여자 또는 남자를 납치했다. 대륙의 역사에 비하면 소소한 침투와 약탈에 불과해 보이는 그들만의 전쟁사(史)다. 15세기까지 전혀 문자로 기록되지 못했던 역사는 유럽 탐험가들의 정복이 시작되면서 덧입혀진 문명으로 채워졌다.
 
  제국주의 식민지 정복 전쟁, 제1·2차 세계대전, 태평양전쟁 등을 지나 지금 그들은 평화의 시기 한가운데에 있다. 공식적으론 평온하지만, 실상은 과거보다 더욱 치열하다. 광물·수산자원과 군사거점 확보를 두고 달러를 무기로 한 경제전쟁이 태평양 전체를 무대로 벌어지고 있다. ‘전쟁의 역사’는 그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월간조선》은 지난 4월 7일부터 총 2주간 한국해양과학기술원(원장 姜正極 박사) 연구팀과 함께 팔라우(Palau), 마이크로네시아연방(FSM·Federated States of Micronesia), 마셜제도(Marshall Islands) 등 적도태평양 국가를 횡단했다.
 
  본지는 총 4회에 걸쳐 14개 섬나라를 모두 심층취재할 계획이다. 한국 언론이 태평양 도서국(독립국) 전체를 현지 취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해외에서도 드문 사례다.
 
태평양 취재 뒷이야기
 
완행 비행기와 열대 독감

 
마이크로네시아 섬들을 차례로 운행하는 이른바 ‘완행비행기’. 이번 취재는 ‘섬 건너뛰기(Island hopper)’ 노선에 따라 진행됐다.
  취재 여정은 미국 유나이티드에어라인(UA) 항공사가 운항하는 ‘섬 건너뛰기(Island hopper)’ 노선 일정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괌에서 출발해 축(Chuuk), 폰페이(Pohnpei), 코스라이(Kosrae·이상 마이크로네시아연방)와 콰잘렌(Kwajalein), 마주로(Majuro·이상 마셜제도)를 경유, 하와이에 도착하는 이른바 ‘완행 비행기’다. 월, 수, 금요일엔 괌에서 하와이로, 화, 목, 토요일엔 하와이에서 괌으로 간다.
 
  보잉737-800 기종(총 155석)의 항공기에 탄 승객은 각 섬에 도착할 때마다 내릴 사람은 내리고, 다음 섬에 갈 사람은 테러 방지를 위해 자기 짐을 끌어안고 대기하면 된다. 목적지가 아니더라도 담배를 피우거나 스트레칭을 하기 위해 잠시 내렸다 탈 수 있다. 단 미국의 미사일 기지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콰잘렌에선 경유 승객 모두 기내에서 대기해야 한다.
 
  이 노선에 사는 주민들에게 비행기 탑승 시각은 고정적이다. 하루 한 번 오는 비행 계획은 일정하나, 연착이 비일비재하다. 원칙에 충실한 미국 기장이 운항시간을 초과했다며 내려버릴 경우, 예비 기장과 승무원을 태운 비행기가 괌에서 올 때까지 승객은 꼼짝없이 대기해야 한다. 한 번 운항이 취소될 경우엔 이틀 후 비행기 좌석을 보장할 수 없어 섬에 갇힐 수도 있다.
 
  열대 지방의 식수와 음식이 낯설어 배탈을 염려했던 기자가 취재 중 앓은 병은 다름 아닌 ‘독감’이었다. 태평양 섬 대다수는 서구에 발견되기 전까진 감기 바이러스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최근 섬을 방문하는 외지인은 에어컨을 세게 가동하는 호텔방과 더운 바깥의 기온 차 탓에 감기에 걸리기 십상이다. 적도의 열대기후에서도 살아남은 감기 바이러스여서인지, 강한 감기약을 먹어도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열대지방이라 비가 자주 오지만, 우산 쓴 현지인은 찾기 어렵다. 황사와 오염물질로 뒤섞인 한반도의 비와 달리, 대양을 건너며 ‘정화’된 공기와 물은 섬 곳곳에 깨끗한 비를 뿌린다. 젖은 몸은 다시 말리면 된다. 빨래도 마찬가지다. 마당에 세워둔 차량 보닛 위를 가득 채운 빨래는 날씨에 상관없이 어디서든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태평양에 대한 오해와 진실
 
연간 세 차례 열리는 빵나무(breadfruit) 열매와 이를 요리한 음식. 삶은 고구마 맛이 나는 이 열매는 생선과 함께 과거 섬나라 사람들의 주식이었다.
  한국인에게 ‘태평양’을 말하면 형형색색(形形色色) 산호초가 가득한 열대 바다와 지상낙원에서의 휴양을 떠올린다. 조금 더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원양어선이 잡는 참치, 새해 첫 일출, 높은 행복지수 등을 말한다. 고개를 돌리면 예전 화장품 브랜드나 조세피난처를 먼저 떠올릴 수도 있다. 알려진 게 별로 없는 마지막 블루오션, 지구상에서 가장 큰 바다를 목전(目前)에 두고 우리는 그만큼 무관심했다.
 
  태평양은 텅 빈 바다가 아니다. 태평양 도서국 전도(全圖)를 펼치면 외딴 섬나라들이 보유한 1800만km2에 달하는 광활한 수역(EEZ)이 대양을 빈틈없이 채운 것을 볼 수 있다. ‘해저의 보물창고’로 불리는 해저 열수광상(熱水鑛床, 금·은·구리·아연 등을 함유한 대규모 광물 덩어리)을 비롯한 광물자원과 참치 등 수산자원이 가득한 바다영토를 두고 강대국들은 이미 전쟁 아닌 전쟁을 벌이고 있다.
 
  도서국들의 국제무대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는 매력이다. 인구 1만명 내외의 투발루(Tuvalu)와 나우루(Nauru)도 UN 총회에서 각자 한 표씩을 행사한다. 총 14표에 이르는 이들의 투표권을 두고 미국, 중국, 일본, 호주 등 강대국들은 막대한 원조를 앞세워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에서 태평양 도서국이 얼마나 생소하게 여겨지는지는 국가명 표기에서부터 알 수 있다. 첫 취재 일정에 포함된 마이크로네시아연방은 출처불명 ‘미크로네시아연방’과 혼용되고 있으며, 마셜제도는 ‘마셜군도’와 ‘마샬제도’ 등으로도 불린다. 마셜제도와 마찬가지로 국명에 ‘제도(諸島·islands)’란 단어가 포함된 쿡제도(Cook Islands)는 지금도 많은 국내 언론이 ‘쿡 아일랜드’라고 쓴다.
 
  세계 3대 스쿠버다이빙 명소로 꼽히는 마이크로네시아연방의 축주(州)는 과거 독일식(式) 표현인 ‘트럭(Truk)’으로 불리거나 ‘추크’, ‘트룩’, ‘트루크’ 등 정체불명의 한글 명칭으로 알려졌다. 키리바시(Kiribati)는 ‘키리바티’로, 바누아투(Vanuatu)는 ‘비누아투’ 또는 ‘바누이투’로 오해를 받기도 한다. 태평양 도서국 중 가장 큰 면적과 인구를 자랑하는 파푸아뉴기니(Papua New Guinea)도 서부 아프리카의 적도기니(Equatorial Guinea)와 같은 곳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
 
 
  섬 이름의 기원, 제국의 흔적
 
마이크로네시아연방 축주의 태평양해양연구센터 앞 해변에 박혀 있는 태평양전쟁 잔해들. 축은 당시 미·일 양국의 최대 격전지였다.
  태평양 도서국의 상당수 국명과 지명은 유럽인들이 지었다. 사이판(Saipan)과 괌으로 이어지는 미국령 마리아나제도는 스페인 여왕의 이름을 땄다. 팔라우와 마이크로네시아연방 섬들을 통칭하는 캐롤라인제도는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2세를 의미한다. 독일인들은 파푸아뉴기니 동북부 섬들을 두고 ‘철혈재상’을 위한 ‘비스마르크제도(Bismarck Archipelago)’로 명명했다.
 
  영국의 제임스 쿡(Cook) 선장이 방문했다고 쿡제도란 이름을 붙였고, 길버트 선장이 지나갔다고 ‘길버트제도(Gilbert Islands)’로 불렀다. 길버트제도의 현재 정식국명인 키리바시는 ‘길버트’를 현지인들이 발음한 것이다. 《적도의 침묵》이란 태평양 문명연구서를 쓴 주강현(朱剛玄) 제주대 초빙교수는 “지도와 지명의 제국주의는 이 같은 임의 작명과 분할을 통해 완성됐고, 어디에도 원주민들이 쓰던 고유 명칭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남태평양’이란 용어도 지극히 주관적 단어다. 북반구에 자리 잡은 나라들이 ‘남쪽 바다’라고 불렀지만, 캐롤라인제도와 마리아나제도 등 섬들은 모두 적도 북쪽에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지금도 이 섬들과 바다를 ‘적도태평양’이란 말 대신 ‘남태평양’으로 통칭한다.
 
  태평양은 지리와 문화에 따라 크게 멜라네시아(Melanesia), 마이크로네시아(Micronesia), 폴리네시아(Polynesia)로 구분된다. 태평양 14개국 중 서남쪽에 자리 잡은 파푸아뉴기니, 솔로몬제도, 피지, 바누아투가 멜라네시아다. 적도를 중심으로 동서 방향에 널리 퍼진 팔라우, 마이크로네시아연방, 나우루, 마셜제도, 키리바시는 마이크로네시아로 불린다. 동남쪽에 펼쳐진 투발루, 사모아, 통가, 니누에, 쿡제도에는 폴리네시아란 이름이 붙여졌다.
 
  주강현 교수는 “검은 사람들이 산다 하여 멜라네시아, 작은 섬들이 모였다 하여 마이크로네시아, 섬이 많다 하여 폴리네시아로 정했다”며 태평양의 문화권 구분을 “변덕스럽기도 하고 애매모호한 ‘서구의 발명품’”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한번 정해진 ‘태평양 삼분법’은 세월이 흐르면서 이제 서구와 아시아는 물론, 태평양 현지에 사는 사람들도 받아들인 구분법이 됐다.
 
 
  바다의 열대우림 산호초
 
마이크로네시아연방 축주를 크게 두른 환초.
  태평양을 이해하려면 ‘산호’를 알아야 한다. 깊은 바다에서 화산이 폭발하면 얕은 공간이 생긴다. 플랑크톤으로 떠돌던 산호 유생이 이 공간에 안착하면, 산호는 ‘온 힘을 다해’ 번성하며 영역을 확대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산호의 반복된 생사(生死)는 산호초와 모래를 만든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떠내려 온 야자열매가 이곳에 박혀 싹을 틔우고 나무로 자란다. 작은 섬이 만들어지고, 야자나무가 숲을 이루면 번듯한 섬이 완성된다. 그늘이 만들어지고 바다동물이 쉬어갈 때쯤 사람이 찾아온다.
 
  취재 전(全) 일정을 동행한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의 박흥식(朴興植) 태평양해양연구센터 센터장은 “태평양과 산호초는 따로 떼어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밀접한 관계”라며 “산호가 결국 섬을 만들고, 해양 생물을 모으며, 아름다운 바다를 완성한다”고 했다. 그의 말이다.
 
  “산호초 지역은 지상의 열대우림 지역과 비슷한 수준의 ‘생물 생산량’을 내는 곳입니다. 다만 바닷속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지금까지 인간의 관심을 끌지 못했을 뿐이죠. 거대한 산호 덩어리는 바닷속 물고기와 각종 생물의 터전이 됩니다. 대양에서 살아가는 대다수 해양 생물은 생존 기간 중 일부 또는 전 생애를 산호초 주변에서 보내죠. 참치, 거북이, 심지어 고래까지도 산호초 지역 주변에서 서식합니다.”
 
  박 센터장에 따르면 인간의 해양 생태계 평가 기준은 수산업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산호초 지역은 어장이 있는 연안에 비해 그 가치가 높지 않지만, 관광이나 생물다양성 등 보다 넓은 범위에서 계산한다면 높은 경제적 가치를 지닌다.
 
  4000여 종의 어류와 3만 종 이상의 무척추동물 및 해조류가 산호초에 의지해 살아간다. 생태경제학자인 코스탄자(Costanza)는 산호초를 ‘바다의 열대우림’이라고 칭했으며, 연간 3750억 달러의 경제적·생태학적 가치를 제공한다고 했다.
 
 
  多事多難 태평양
 
태평양은 텅 빈 바다가 아니다. 태평양 도서국 전도(全圖)를 펼치면 외딴 섬나라들이 보유한 1800만㎢에 달하는 광활한 수역(EEZ)이 대양을 빈틈없이 채운 것을 볼 수 있다.(지도출처: kiritours.com)
  태평양 섬나라에선 대다수 주민이 해변의 야자수 그늘에 누워 쉬다가 배고프면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아먹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기 쉽다. 오판이다. 한적한 듯한 섬에도 사건과 사고는 끊이지 않으며, 엘리트 정치인들은 치열한 외교전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말 한 인권 운동가가 미국 ABC 방송에 출연해 키리바시 정부가 북한에 자국 여권을 판매한 적이 있다고 폭로했다. 아노테 통(Tong) 대통령은 지난 3월 이에 대해 당혹감을 표한 바 있다. 태평양 ‘최대 도서국’ 파푸아뉴기니에선 “20세 여성이 소년을 마법으로 죽게 했다”며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여성을 공개 화형에 처했다. 파푸아뉴기니에선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으로 의문사가 발생했을 때 마법을 사용한 사람, 주로 여성을 지목해 처형하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오스카 테마루(Temaru) 대통령은 뉴욕 UN 본부를 방문해 자국의 독립국 승인을 공식 요청했다. 사모아 대법원은 아동 성범죄자 신원공개를 추진하고 있다. 솔로몬제도는 지난 1월 릴로(Lilo) 총리가 혼외정사 파문으로 사임위기에 처한 바 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 나우루를 보면 ‘태평양의 비극(悲劇)’이 보인다. 여의도의 약 7배 크기 면적에 약 1만명이 사는 이 섬나라는 19세기 말부터 발견된 인광석(燐鑛石) 덕에 큰 부를 누렸다. 독립국이 된 후 고급 비료 원료인 인광석을 팔았고, 세금 없이 교육, 의료, 주택을 국민들에 공짜로 제공했다. ‘전국’ 일주에 20분 걸리는 섬에서 집마다 고급 승용차를 들였다. 하지만 이 부귀영화(富貴榮華)는 2000년대 들어 인광석이 고갈되면서 반전(反轉)됐다. 1인당 국민소득이 2500달러 수준으로 전락했지만, 이미 게을러진 국민은 성인 비만율 90%를 넘는 세계 최고의 ‘뚱뚱한 나라’가 됐다. 경제난에 기후변화로 해수면까지 상승해 국가존망(存亡)의 위기까지 닥쳤다.
 
  나우루는 지난해 말 열린 제18차 UN 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 총회에서 지구온난화를 늦추는 합의안을 하루빨리 도출해 달라고 호소했다. 나우루의 경우, 섬에서 가장 높은 지점의 고도가 약 61m 정도다.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수몰 위기’는 나우루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주간지 《이코노믹리뷰》에 따르면, 최근 온실가스 최대 배출국인 미국에서 기후 소송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으며, 수몰 위기에 놓인 태평양 도서국의 국가재건 요구까지 포함하면 손해배상액이 수조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해수면 상승으로 수몰 위기에 몰린 나라
 
  제주도보다 작은 섬에 약 10만명이 사는 키리바시는 최근 해수면 상승으로 국토보전에 심각한 위협을 느끼고 있다. 키리바시 정부는 이를 대비해 피지 사부사부 지방의 토지 6000에이커(약 24km2)를 구입하기로 했다. 마셜제도는 UN 안전보장이사회에 기후변화를 국제평화 및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해 달라고 호소했다. 저지대 도서국에는 기후변화가 주민의 생존을 위협하는 중요한 안보문제라는 입장이다.
 
  태평양 도서국들이 기후변화에 의한 해수면 상승을 이유로 미국 등 선진국에 막대한 배상금을 요구한 것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비판적 견해를 보였다. 팔라우에서 만난 한 과학자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환경파괴는 분명 잘못됐지만, 지구온난화로 인해 해수면이 높아져 섬이 수몰된다는 것은 어느 정도 과장된 측면도 있다”며 “환경오염과 해수면 상승의 정확한 인과관계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선진국에 ‘조(兆)’ 단위(달러)의 배상금을 요구하는 행태는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수몰’과 함께 태평양의 큰 이슈는 ‘높아진 중국의 위상’이다. 유럽, 일본, 미국이 지배했던 대양을 두고 막강한 경제력을 앞세운 중국이 최근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시대를 맞이해 ‘해양굴기(海洋屈起)’ 전략을 본격화한 중국은 태평양 도서국들에 대한 군사·경제 원조에 자금을 아끼지 않는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의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2005년부터 약 6억 달러의 차관을 태평양 도서국들에 제공했고, 2009년엔 원조 및 차관 총액이 23억2000만 달러까지 급증했다. 2011년부터는 환경보호 등을 위한 추가 지원 사업을 하고 있다. 작년 8월 쿡제도에서 열린 ‘태평양 도서국포럼(PIF)’에서 힐러리 클린턴(Clinton) 미 국무장관은 중국을 겨냥한 듯 “태평양 지역이 하나의 강대국에 의해 주도되지 않고 균형이 이뤄지도록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海洋屈起’ 본격화한 중국
 
  중국이 지원한 막대한 자금은 어떤 형식으로 활용될까. 지난 1월 《조선일보》와 중국 동방망(東方網)은, 중국이 피지에 군사·경제 원조를 확대하기 위해 국방부 첸리화(錢利華) 소장과 군사대표단이 피지를 직접 방문, 바이니마라마(Bainimarama) 총리를 접견하고 군사훈련, 차량, 군복, 사무용품과 전국적 규모의 사회기반시설(SOC) 건설 등의 원조에 대해 논의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지난 2월 중국 정부는 기반시설 발전을 위해 380만 달러의 기금을 쿡제도에 전달했다. 비슷한 시기 중국 군부는 파푸아뉴기니 국방부에 200만 달러의 군사 원조금을 지원했다. 파푸아뉴기니는 이를 장갑차, 군용수송기, 군복 구매 등에 사용할 예정이다. 인구 통계가 정확하지 않은 파푸아뉴기니에 최근 1억1000만 달러 규모의 전자주민카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중국의 몫이다. 총 예산 중 7600만 달러는 중국 수출입은행의 차관을 도입했으며, 시스템 구축은 중국 정보통신 기업이 맡는다.
 
  2012년 마리아나 해구 해저 7000m까지 내려간 중국의 유인 해저탐사 심해잠수정 자오룽호(蛟龍號)는 오는 6월부터 동태평양 해역에 투입돼 생물다양성과 광물자원을 탐사하게 된다. 사모아는 관광객 유치를 위해 중국 자본을 끌어들여 카지노를 조성하기로 했으며, 바누아투는 최근 1400여 명의 중국 부호에게 영주권을 판매해 약 430만 달러의 국고 수입을 올렸다.
 
  미국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가운데 유럽, 일본, 타이완, 호주, 뉴질랜드 등이 경쟁하던 기존 구도에 중국이 새롭게 진입하면서 ‘태평양 패권’을 두고 ‘G2’ 양국이 경쟁하는 모양새가 됐다. 일본, 괌, 하와이 등 미군의 주요 주둔 지역이 있는 태평양에 중국이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최근 미국에 큰 골칫거리가 됐다는 분석이다. 미국은 지난 2월 하와이에 자리한 태평양사령부의 육군사령관을 3성(星)급에서 4성급으로 격상했다.
 
 
  복합성으로 얽힌 바다와 섬
 
  태평양은 지구에서 가장 큰 바다다. 단 3대만 있으면 지구 전체를 감당한다는 인공위성도 한번에 전체를 촬영할 수 없을 정도로 넓다. 평균 4000m 수심에 최대 1만1034m 깊이의 해구가 존재한다. 대항해시대 스페인의 탐험가 발보아(Balboa)가 1513년 태평양을 ‘발견’했을 때, 그를 안내한 파나마 원주민들은 ‘위대한 남쪽 바다’라고 설명했다.
 
  ‘위대한 바다’는 지금 인류의 공동자산이자 전쟁의 상흔(傷痕)을 가진 곳이다. 핵실험을 위해 원주민은 집단이주를 해야 했고, 대형전함 수십 척이 침몰한 곳은 스쿠버다이빙의 명소가 됐다. ‘최빈국’에 살면서 ‘행복지수’가 가장 높다는 섬 주민들은 기후변화와 패권경쟁의 직접적 피해와 수혜를 동시에 받는다. 복합성과 복잡성으로 얽힌 섬나라들을 둘러보고 무위자연(無爲自然)과 반(反)자본으로 단순화한다면, 그것만큼 무책임한 결론이 있을 수 없다. 소설가 김훈(金薰)은 지난해 2월 마이크로네시아연방의 섬들을 여행한 후 이렇게 썼다.
 
  “돌아와서 책상 앞에 앉았다. 연필을 들면 열대의 숲과 바다가 마음속에 펼쳐진다. 숲을 향하여 할 말이 쌓인 것 같아도 말은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들끓는 말들은 내 마음의 변방으로 몰려가서 저문다. 숲 속으로 들어가면 숲을 향하여 말을 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태어나지 못한 말들은 여전히 내 속에서 우글거린다. 열대의 숲은 ‘사납고 강력하다’라고 써봐도 숲과는 사소한 관련도 없다. 열대의 숲은 사납거나 강력하지 않고 본래 스스로 그러할 뿐이다.”
 
  이번 기행(紀行)은 ‘본래 스스로 그러한 곳’을 두고 인문, 사회, 경제, 외교란 이름의 잣대를 들이대 인위적으로 재단한 결과에 불과하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바다와 섬을 누볐지만, 돌아온 것은 이질적인 질문의 연속이었다.
 
 
  급성장하는 태평양의 新富國, 팔라우
 
  “팔라우 국기는 왜 원이 왼쪽으로 치우쳤을까?”
 
  에메랄드빛 바다와 행복지수의 낙원을 체감하기도 전에 엉뚱한 물음이 떠올랐다. 팔라우 코로르(Koror) 공항에서 긴 여정을 막 시작할 때였다. 눈앞에 보이는 바다색 바탕의 노란색 원은 일장기를 닮은 듯 보였다. 1980년에 소개된 국기를 두고 한 연구자는 “일본 일장기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자 중심에서 어긋나게 했다는 설이 있다”고 했다.
 
  믿기 어려운 설이라 3일간의 팔라우 일정 중 섬 곳곳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이유를 물었다. 한쪽으로 치우친 사실은 모두 알고 있었지만, 그 이유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었다. ‘대통령 인터뷰 때 직접 물어봐야 하나’ 생각할 때쯤, 뜻밖의 장소에서 답이 나왔다. 벨라우(Belau) 국립 박물관 한편에 국기에 대한 정보가 있었다. 답은 허무했다. 바람에 휘날릴 때 가운데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함이었다.
 
  ‘말도 안 되는’ 답 속에 태평양 섬나라의 본질이 담겨 있다. 대양 한가운데 사는 그네들의 이해는 이른바 문명과 자본의 논리 속에 교육받고 성장한 ‘우리의 상식’과 많이 달랐다. 그들이 사회주의적 공동체로 산다든가 그들의 삶이 우리보다 우월하다는 뜻은 아니다. 팔라우부터 시작한 태평양 여정은 가까우면서도 먼 문명의 간극(間隙)을 채워나가는 과정이었다.
 
  팔라우는 적도 부근인 북위 7도에 자리 잡은 작은 섬나라다. 8개의 주요 섬과 250여 개의 작은 섬으로 구성된 국가의 면적은 약 459km2로, 강화도보다 조금 더 크고 제주도의 4분의 1쯤 된다. 세계에서 196번째 크기의 ‘땅’에 약 2만명이 살고 있다. 위키피디아(Wikipedia) 기준으로 세계 242개국 중 224번째 인구 규모다. 팔라우의 뒤를 잇는 18개 국가 중 독립국은 투발루, 나우루, 바티칸 3개국이 전부다.
 
  2만명 중 6000명은 외국인들이며, 1만4000명이 현지 출신 국민이다. 한국인을 비롯한 외국인은 3개월 이상 체류하거나 현지사업을 하려면 상당히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미국 또는 일본 출신은 팔라우 국민과 거의 비슷한 조건으로 체류할 수 있다.
 
 
  우연히 만난 대통령 부인
 
팔라우 중심가 도로는 3차선인데, 가운데 차선은 좌회전이나 유턴 시 이용하는 차선이다. 흰색 건물은 태평양 도서국 최고층(7층)을 자랑하는 팔라시아호텔.
  팔라우의 국민소득은 약 9000달러에 이른다. 태평양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다. 주수입원은 미국·일본의 원조와 관광수입이다. 연간 10만명이 넘는 외국인이 팔라우를 방문하며, 그중 1만5000명(2011년 기준) 이상이 한국인이다. 매년 급증해 최근엔 2만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약 3만7000여 명을 보내는 일본과 타이완 다음으로 많은 수치다. 기자 일행이 탄 국적기 승객 대부분은 주말에 결혼식을 올린 신혼부부들이었다.
 
  공항에 내려서는 순간부터 소국(小國) 체험이 시작된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팔라우 공항은 인천공항에 익숙한 한국인에겐 시골 버스정류장 수준이지만, 다른 마이크로네시아 섬들에 비해 상당히 큰 편이다. 한국인 신혼부부와 인천을 경유한 유럽인들이 입국 심사를 위해 외국인 심사대 앞에 줄을 길게 섰다. 내국인 심사대를 통과한 이는 단 한 명이었다. 그는 심사관들과 잘 아는 사이인 듯 가벼운 인사와 함께 곧바로 통과했다. 인구 2만명인 나라에서 해외를 다니는 사람이 천여 명에 불과한 데다 대부분 공무원 신분인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기자 일행이 묵은 호텔은 타이완인이 운영하는 ‘팔라시아’였다. 마이크로네시아 전체에서 최고층인 7층 높이를 자랑하는 곳이다. 호텔 앞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10분 정도 운전하면 관공서, 학교, 상점 등이 즐비한 코로르 중심가를 통과할 수 있다. 팔라우의 도로는 대부분 왕복 2차선이지만, 중심가는 3차선이다. 가운데 차선은 좌회전이나 유턴이 필요한 차량이 양쪽에서 모두 이용할 수 있다. 섬사람들의 융통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팔라우 여정은 우연의 연속이었다. 취재 첫날 팔라우 국제산호초센터로 찾아가던 중 길을 잃었다. 멀리 건물은 보이는데 들어가는 길을 못 찾아 헤매다 마침 집에서 나와 차를 타려던 여성에게 길을 물었다. 그녀는 차를 타며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다. 알고 보니 우리가 찾아가려던 센터의 직원이었다.
 
  저녁에 찾은 인도 식당에서는 작년 12월 임기를 마친 존슨 토리비옹(Toribiong) 전(前) 대통령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건너편 테이블엔 태평양 도서국의 현지 방송국인 OTV의 수석 프로듀서가 일행과 함께 식사 중이었다.
 
  인터뷰를 요청하기 위해 캐시 버그(Berg) 프로듀서와 대화를 나누던 중 옆에 앉은 여성이 주(駐)UN 대사 스튜어트 벡(Beck) 씨의 부인임을 알게 됐다. 버그 프로듀서와 마주앉은 이는 자신을 평범한 주부(housewife)라고 소개했지만, 알고 보니 현재 대통령 부인이었다. 영부인 데비 레멩게사우(Remengesau) 씨에게 다음 날 오전에 대통령 인터뷰가 있다고 하자, 그는 ‘환경’에 대해 질문하면 좋겠다고 ‘힌트’를 줬다.
 
[인터뷰] 캐시 버그 OTV 수석프로듀서
 
  “마이크로네시아에 언론자유를”
 
   OTV는 마이크로네시아를 비롯한 태평양 27개국을 상대로 한 현지 방송국이다. 미국 변호사인 캐시 버그와 영화감독 제프리 바라브(Barabe)에 의해 2006년 설립됐다. 주로 각 지역의 이슈를 다루며, 현재 20여 명의 스태프가 24시간 방송을 송출하고 있다.
 
  미국 정부 파견 변호사로 처음 섬을 밟은 버그는 “태평양의 아름다움과 역동적인 삶을 도서국들과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방송국을 설립했다”고 밝혔다.
 
  “원래 본업은 법률이고 영화 쪽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섬에 와서 보니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공유할 방법이 없었어요. 도서국 주민들은 서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제대로 된 섬나라를 세상에 보여주고자 방송국을 설립하게 됐습니다.”
 
  그는 미국 또는 전 세계인이 마이크로네시아와 태평양 도서국에 대해 “작은 섬에 사는 사람들은 상당히 자유롭고 심심한 삶을 살 것”이란 오해를 갖고 있다고 했다. 소규모 도서국에도 분명 정치적 이슈가 있고 사건과 사고가 빈번하다는 것이다.
 
  “해변에 누워서 책만 보는 곳이 아닙니다. 미국이나 한국에서 열정에 비해 큰 기회를 얻지 못했다면, 태평양에 와 보시길 권합니다. 이곳은 능력과 열정만 있다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이니까요.”
 
  버그는 태평양 패권을 두고 벌어지고 있는 미·중 양국의 경쟁구도에 대해 “현재 태평양 도서국들의 정치적 입장이 상당히 중요하다”며 “껄끄러운 주제가 될 수 있지만, 그만큼 자금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만약 미국이 작은 섬나라에 연간 2억 달러를 원조하면서 국제기구에서 자신의 편에 서 달라고 하면 이를 거절할 나라가 얼마나 될까요. 이곳은 기본적으로 자국의 이익을 다른 국가에서 찾을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한국과 일본같이 경제적으로 독립적이지 못하죠. 돈을 얼마나 주느냐에 따라 입장이 바뀝니다. 이른바 ‘수표외교(checkbook diplomacy)’라고 하죠.”
 
  중국과 수교한 마이크로네시아연방과 달리, 팔라우는 타이완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버그는 “팔라우는 상대적으로 중국의 영향을 크게 받지는 않아 미·중 양국의 대립을 직접 느낄 일은 없다”며 “패권에 대한 생각과 느낌은 태평양 도서국마다 온도차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을 하면서 가장 기쁜 것은 마이크로네시아와 태평양 도서국 사람들이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죠. 태평양에 사는 모두가 진정한 ‘언론자유’를 누리는 그날까지 이 일을 멈추지 않을 계획입니다.”
 
  14개국 연대로 국제기구에서 영향력 행사
 
팔라우의 현지 신문. 북한 핵위협에 대한 기사가 보인다.
  ‘섬나라의 우연’은 팔라우를 떠나 마이크로네시아연방과 마셜제도에서도 이어졌다. 축에서 태평양해양연구센터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주 상원의원 알란소 촐리메이(Cholymay)는 다음 날 폰페이에서 만날 예정이었던 마이크로네시아연방 모리(Mori) 대통령이 현재 건강에 문제가 있어 하와이에 갔다고 알려줬다. 그는 축 출신인 대통령과 전날 같은 비행기를 타 이 사실을 알 수 있었다고 했다. 촐리메이 의원은 대신 부통령과 외교장관 인터뷰를 직접 주선했다.
 
  폰페이에선 일요일 점심을 먹기 위해 찾은 중식당에서 ‘일’이 벌어졌다. 기자 일행 외엔 현지인으로 보이는 부부가 유일한 손님이었는데, 식당 종업원과 대화 중 그들이 부통령 부부란 사실을 알게 됐다. 부통령 알릭(Alik) 씨는 기자 일행을 환영하며 월요일 인터뷰 때 보자고 인사했다.
 
  폰페이공항에선 마셜제도의 에너지 전문가 알란 러셀(Russell) 씨와 마주쳤다. 그는 기자 일행 중 한 명인 김선욱(金善郁) 연구원이 일주일 전 팔라우 호텔 로비에서 우연히 인사한 사람이었다. ‘완행 비행기’에 동승한 그는 마주로(Majuro)섬에서 다시 보자며 헤어졌다. 따로 만날 시각과 장소를 정하지 않았지만, 2일 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우연이었다.
 
  좁은 섬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무시해선 안 된다. 우리와 동등하게 국제기구에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엘리트 정치인들의 자부심이 높은 편이다. 각자의 1표는 큰 힘이 없지만, 14표가 동시에 영향력을 행사할 경우 중요한 의제의 방향이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UN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진출과 제18차 UN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유치 과정에서 태평양 14개 도서국 전체의 지지를 확보한 바 있다. 지난해 열린 여수세계박람회(EXPO) 유치에도 이들 도서국의 지지가 한몫했다.
 
  현재 팔라우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는 미국이다. 팔라우는 1994년부터 2009년까지 자유연합협정(Compact of Free Association)에 따라 15년간 총 8억 달러의 직접 원조를 미국으로부터 받았다. GDP의 20%가 미국 원조금인 팔라우는 대미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현재 GDP의 절반을 차지하는 관광산업과 여러 산업기반을 재구축해 국가재정기반 확대를 시도하고 있다.
 
 
  ‘아이고 다리’와 징용의 상흔
 
  팔라우에서의 영향력을 비교하려면 상주공관을 보면 된다. 팔라우에 대사관을 설치한 국가는 미국, 일본, 타이완, 필리핀 총 4개국이다. 필리핀의 경우 자국 출신 주민이 많고 지리적으로 가까워 대사관을 설치했다. 미국, 일본, 타이완은 경제원조와 외교적 협력을 통해 팔라우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한국은 현재 주(駐)필리핀대사관에서 관할 업무를 수행한다.
 
  교민 100여 명에 연간 2만명이 방문하는 급성장 관광지임에도 영사관의 관광객 보호 시스템이 없어 교민들의 불만이 높은 편이다. 한국인의 경우 미국인이나 일본인과 달리 장기체류가 쉽지 않고 교민끼리의 사기사건도 빈번해 불법체류자가 속출하고 있다. 현지에서 레저사업을 하는 교민 제임스 정(Jung) 씨는 “최근 팔라우를 비롯한 태평양 도서국에 한국인의 방문이 급증하고 있는데, 각종 사건·사고가 발생해도 해결할 방법이 없다”며 “국가의 위상이 높아진 만큼, 관광객과 교민에 대한 체계적인 보호 시스템이 시급하다”고 했다.
 
  팔라우는 한국과 비슷한 식민지 역사를 가졌지만, 독립 스토리는 완전히 다르다. 1922년 일제는 당시 팔라우의 수도 코로르에 해군기지와 남양청(南洋廳)을 설치하고 이른바 ‘남양군도(南洋群島)’로 불린 태평양 도서국의 군사, 행정, 사법업무를 총괄했다.
 
  일본의 지배를 받자 한인들의 이주도 시작됐다. 1936년경 10대의 어린 위안부를 시작으로, 강제징용된 노무자와 군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들은 진지구축이나 기반시설 공사에 투입됐다. 코로르 동쪽 요로(要路)에 자리한 ‘아이고 다리’는 혹독한 노동에 시달린 징용자들이 ‘아이고, 아이고’를 연발해 원주민이 지은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전쟁 후 2만5000여 명의 한인이 남양군도에서 한국으로 귀환했으며, 그중 팔라우 귀환자가 3000여 명에 이르렀다. 전쟁 당시 얼마나 많은 사람이 현장에서 실종·사망했는지는 정확한 통계가 남아 있지 않다.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이 패망하면서 1946년부터 1985년까지 미국의 신탁통치를 받았다. 1986년 그들의 독립은 ‘숭고한 투쟁’의 결과가 아니라, 미국의 전략적 결정 때문이었다. 팔라우와 마셜제도는 독립 당시 모두 마이크로네시아연방에 속해 있었다. 현지에서 만난 팔라우 주민들은 ‘독립’에 대한 자부심, 또는 ‘식민지배’에 대한 치욕을 잘 알지 못했다. 1000년 이상을 가족과 부족 중심으로 살아온 그들에게 ‘국가’의 지위는 큰 관심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외적으론 정부의 외교적 활동이 중요하지만, 국내에선 섬 또는 주로 구성된 지역의 리더나 부족장 중심으로 움직인다.
 
 
  다리 벌린 여성 조각상
 
팔라우 섬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다리 벌린 여성 조각상. 신성화한 여자의 성(性)과 다산(多産), 그리고 엄격한 모계사회를 상징한다.
  팔라우 에피슨(Etpison) 박물관에 들어서면 다리를 180도 각도로 벌린 여성 조각상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신성화한 여자의 성(性)과 다산(多産)을 상징하는 것으로, 비슷한 모양의 조각상과 그림을 팔라우의 전통가옥, 관공서, 상점, 박물관 등 섬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팔라우는 전통적으로 엄격한 모계사회다. 부족의 우두머리를 정할 때 여자들이 의사결정권을 갖고 있다. 장녀의 장남이 족장이 되는 식인데, 이러한 후계자들을 ‘왕자’ 또는 ‘공주’라고 칭하기도 한다. 여성이 토지, 자금, 추장선택권 등을 보유하고 교육, 가문보전 등에 대한 책임을 진다.
 
  팔라우의 사회적 조직 구조는 다른 지역보다 상당히 복잡하고 고차원적 구조로 돼 있다. 어머니의 남자형제들은 자식을 보호하고 혈육의 아버지와 비슷한 역할을 수행한다. 남자들이 추장으로서 마을을 지배한다고 하지만, 추장을 선택하고 폐지하는 것은 여성의 몫이다. 모계혈통을 기반으로 한 마을공동체는 2개의 정치적 그룹으로 나뉘는데, 남자들로 이뤄진 10계급의 부족대표모임(council of chiefs)과 토지와 돈에 대한 제어(control) 역할을 하는 여성 모임이다. 이러한 구조는 장례식, 결혼, 상속, 계급 계승 등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이러한 사회구조의 기원은 초기 정착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환초 안에서 대부분 식량을 충당할 수 있었던 이들의 조상은 먼 바다로 나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외양(外洋) 항해 기술은 퇴화했으며, 남자들은 근해(近海)에 충실한 어부(漁夫) 또는 해군(海軍)이 됐다.
 
  섬에서 땅을 일구는 것은 여성의 몫이었다. 이들의 농경 활동은 식량의 규칙적인 공급을 확고하게 다졌고, 부족사회에서 정치적 입장을 높였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여성이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는 모계사회가 형성됐다.
 
  모계사회의 특성은 5대 대통령을 역임한 쿠니오 나카무라(Nakamura) 씨의 삶에서도 투영된다. 팔라우인 추장 딸과 일본인 사이에서 출생한 그는 일본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했다. 그의 일가족은 그가 두 살 때 일본의 패망으로 도일(渡日)했다가 얼마 후 다시 팔라우로 복귀했다. 모계사회 중심제 때문에 자녀의 귀향은 허가됐지만, 그의 아버지는 거주허가를 받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가 일본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이유다. 1970년 그는 아이멜리크(Aimeliik)주의 유력 부족장의 딸과 결혼하는데, 훗날 강력한 정치적 배경이 됐다.
 
 
  ‘식민’에서 ‘원조’로
 
팔라우 국회의사당 전경. 정면에 타이완이 청사 건설을 지원했다는 기념비가 보인다.
  팔라우는 총 16개 주로 구성돼 있다. 인구의 절반 이상인 약 1만2000명의 주민이 팔라우 중심지인 코로르주에 산다. 수도 응게룰무드(Ngerulmud)는 2006년경 코로르주에서 멜레케오크(Melekeok)주로 이전했다. 코로르 도심에서 자동차로 40분 정도 가면 미국 국회의사당과 비슷한 모습의 국회의사당과 대통령궁 신청사를 볼 수 있다.
 
  코로르와 2700여 명이 거주하는 아이라이(Airai)주를 제외한 14개 주의 인구는 대부분 수백 명 정도다. 팔라우 남쪽 끝에 자리 잡은 하토호베이(Hatohobei)주는 총 인구가 44명이다. 이 섬의 경우 전력은 개별 발전기와 태양광을 활용하며, 교육은 유치원부터 9학년(중3)까지 가르치는 작은 학교와 도서관이 전부다. 물품은 하나뿐인 상점에서 구매할 수 있으며, 대부분 생계는 바다와 섬에서 스스로 해결한다.
 
  서구 문명이 들어오기 전까지, 팔라우 사람들은 재화 축적의 개념이 없었다. 연중(年中) 28도가 넘는 기후에 사실상 무한한 열매와 생선이 있어 작물을 재배하거나 모아 놓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 피를 이어받아서인지 현지인 대부분에겐 현대적 경제개념이 쉽게 읽히지 않는다.
 
  문명과 함께 시작된 ‘식민(植民)의 역사’는 전쟁이 끝난 지금도 ‘원조’와 ‘협력’이란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태평양 도서국에선 원조 자금을 쏟아붓는 만큼 상대국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높아진다. 패망 후 섬을 떠났던 일본은 어느새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완벽하게 복귀했다.
 
  일본은 1990년대부터 정부 차원에서 은퇴 후 팔라우 등 태평양 도서국으로의 이민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적극 개발해 인적자원 및 경제적 원조를 추진했다. 그 결과 현재 320명의 일본인이 팔라우에 거주하고 있으며,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 장기간 지속됐던 일본 경기 침체로 현재 타이완과 중국계 자본이 대거 팔라우에 투자됐다.
 
  팔라우는 전통적으로 타이완의 투자가 많은 곳이나 최근 중국계 투자가들이 진출 기미를 보인다는 소문이 교민사회 등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 또 아베(安倍) 정권 들어 일본 경기가 회복하고 있다는 뉴스가 전해지면서, 팔라우의 일본·타이완·중국과의 관계에 새로운 전환점이 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팔라우를 비롯한 마이크로네시아 섬나라들은 미국과의 자유연합협정에 따라 미국 내 취업 및 교육 지원을 받는다. 특히 섬나라 고등학교에서 미국 대학에 진학할 경우 다양한 혜택을 받게 되는데, 눈치 빠른 한국 학부모들은 이미 자녀들을 팔라우에 유학 보냈다. 현재 약 30명의 한국인 고교생이 유학 중이다. ‘국가의 정보력’보다 ‘엄마의 교육열’이 앞선 사례다.
 
 
  新태평양 교두보
 
팔라우국제산호초센터의 임낭 골부 대표(오른쪽)와 태평양해양연구센터의 박흥식 센터장이 해양연구 프로젝트에 대해 논의 중이다.
  한국은 현재 다양한 분야에서 팔라우에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팔라우 최대 건설공사로 꼽히는 바벨다오브(Babeldaob)섬 순환도로는 대우건설이 2007년 완공했다. 미국 자본으로 1999년 시작된 이 공사로 총연장 85km의 왕복 2차선 도로가 깔렸다. 정부 차원에서는 외빈용 의전차량 지원과 연수생 초청 행사 등을 실시하고 있지만,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선 상당히 적은 규모다.
 
  인기 관광지로 부각되면서 현지 관광산업이 크게 성장하고 있으며, 각종 연구 프로젝트도 진행되고 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은 팔라우국제산호초센터(PICRC)와 연계해 인근 해역에서 연구 프로젝트를 8월 중 실시할 계획이다.
 
  팔라우국제산호초센터의 임낭 골부(Golbuu) 대표는 “팔라우는 각종 연구에 대한 기반이 약해 직접 연구를 수행하기 어렵다”며 “미국, 일본, 호주, 타이완 등 주요국에서 온 많은 연구진이 의미 있는 연구성과를 올리고 있으며, 한국의 연구 활동도 적극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이상훈 박사.
  골부 대표와 연구장비 및 선박에 대해 논의한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의 이상훈(李相勳) 박사는 “한국은 그동안 팔라우와 같은 섬나라에 큰 관심을 갖지 못했다”며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해양 연구의 전진기지로서 태평양 도서국은 큰 기회의 땅”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태평양 도서국들과 달리, 팔라우는 현재 빠른 속도로 성장·발전하고 있다. 박흥식 태평양해양연구센터 센터장은 “2년 전 방문했던 모습과 지금의 팔라우는 완전히 달라 보인다”며 “어느 정도 과성장한 모습도 보이지만, 관광객이 급증하는 등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지금이야말로 한국이 신(新) 태평양 교두보를 세울 절호의 기회”라고 분석했다.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은 여고 시절인 1968년 부모와 함께 사모아를 방문해 우리나라 원양어선단을 직접 둘러본 바 있다. 당시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자신과 가족을 영접하러 공항에 나온 사모아 총독에게 딸을 소개하는 사진이 최근 공개됐다.
 
  지난 노무현(盧武鉉)·이명박(李明博) 정부 시절 남미와 아프리카에 집중됐던 현장외교가 이제 태평양으로 향해야 한다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지금, 박 대통령의 태평양 도서국과의 각별한 인연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인터뷰] 토머스 에상 레멩게사우 팔라우 대통령
 
  “팔라우는 낙원이 아니다”
 
   토머스 에상 레멩게사우(Remen-gesau) 대통령은 팔라우의 대표적 정치 엘리트다. 미국 미시간(Michigan)주에서 유학했으며, 1984년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아버지도 과거 대통령을 두 차례 지냈다. 2000년과 2004년 대선에서 승리해 2001년부터 2009년까지 대통령을 연임한 바 있다. 지난해 11월 대선에서 다시 이겨 올해 초 세 번째 대통령 임기를 시작했다.
 
  —국가의 대표로서 팔라우를 간단하게 소개한다면.
 
  “우리 선조는 별과 바람에 카누를 맡겨 거대한 바다를 건너 이 섬까지 왔습니다. 그들의 탐험 기술을 지금도 유지하고 있죠. 팔라우는 자유민주주의와 인권 등 현재적 가치와 우리 문화와 같은 전통적 가치 모두 중요하게 여깁니다. 민주주의가 발달하면서 전통적 가치도 잘 보존된 한국은 우리에게 아주 좋은 모델입니다.”
 
  —한국에 몇 차례 방문했던 것으로 아는데, 어떤 점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까.
 
  “한국인 모두가 열심히, 그리고 빨리 일하는 모습에 감명을 많이 받았습니다. 특히 다른 나라보다 IT기술과 교육 측면에서 발달한 부분이 인상에 남았죠. 경제발전을 이뤄 국민이 나라에 대한 애국심과 성취감을 갖게 되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팔라우는 일제강점기를 겪은 한국과 공통된 역사적 기록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 사람들은 우리와는 조금 다른 역사적 인식을 가진 듯합니다.
 
  “역사적 가치는 과거 실수에서 배우고 극복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한국과 팔라우는 2차 세계대전 중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은 아픔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좋은 점과 나쁜 점이 공존한다고 봅니다. 징용자들이 와서 건설 기반을 닦은 것은 좋은 영향을 줬지만, 전반적으론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전쟁을 통해 충격적인 기억을 많이 가지게 된 것은 분명 악영향이 됐죠. 과거가 그대로 현재가 되라는 법은 없습니다. 미국과 일본은 전쟁까지 했지만, 지금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죠.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과거와 현재는 분명 다르죠.”
 
 
  “후손 위한 지속가능 환경보전”
 
토머스 에상 레멩게사우 팔라우 대통령(오른쪽)과의 인터뷰 모습. 가운데 말하는 이는 한국해양과학기술원 김선욱 연구원.
  —해외 순방 중 경험한 팔라우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무엇입니까.
 
  “좋은 오해와 나쁜 오해가 있는데, 좋은 오해는 이곳이 낙원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웃음). 열대 태평양에 자리한 국민 모두가 행복할 거라 생각하지만, 이 작은 나라에서도 정치적, 경제적 문제는 항상 존재합니다. 큰 나라 입장에선 작은 나라의 문제가 그리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겠지만, 지금 우리가 겪는 ‘작은 문제들’이 언젠간 큰 나라는 물론 지구 전체에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죠. 지구온난화와 환경 문제가 그 대표적 사례입니다. 지금은 작은 문제로 보이겠지만, 언젠간 큰 문제가 될 겁니다.”
 
  —이른바 ‘태평양 패권’을 두고 미·중 G2의 대립이 심화된다는 보도가 외신을 통해 자주 등장합니다.
 
  “국가의 수장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생존과 안전입니다. 나라의 자유와 안보가 먼저 고려돼야 합니다. 두 대국이 제한된 자원을 가지고 경쟁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 구도는 팔라우뿐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모든 국가가 경험하는 현실이죠. 21세기는 모든 국가가 서로 도움을 주고 교류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좋은 관계가 지속되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겠죠.”
 
  —팔라우에 환경이란 어떤 의미입니까.
 
  “환경은 경제이고, 경제는 환경입니다. 또 문화와도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죠. 이곳에서 가장 큰 딜레마는 경제발전과 환경보호를 어떻게 조절하느냐는 것입니다. 현재 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지속가능성’인데, 환경을 이용하면서도 파괴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그래서 한국과 일본 등 인접국들과 함께 지구온난화, 해수면 상승, 해양자원 고갈 등의 주제에 대해 깊이 있는 논의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팔라우는 분명 자원에 한계가 있는 국가입니다. 환경에 대한 실수는 바로잡기 어렵죠.”
 
  —대통령으로서 이번에 시작한 새 임기의 비전은 무엇입니까.
 
  “가장 큰 비전은 지속가능한 환경을 후손을 위해 보존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이 자연은 과거 조상에게 그저 물려받은 것이 아닙니다. 미래지향적 시각으로 후손에게 보전해 줘야 하죠. 경제적, 기술적인 발전도 중요하지만, 환경보호와 균형을 맞춰야 합니다. 이를 두고 국가 간 다양한 협력이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환경에 있어서 세계는 한 가족이죠.”
 
  레멩게사우 대통령은 인터뷰 중 ‘김치’, ‘아리랑’ 등 한국어를 언급하며 “수준 높은 여행자이자 방문객인 한국인을 팔라우는 언제든 환영한다”고 강조했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