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대한민국 대표문학상 수상 작가를 찾아서 ⑤ 趙星基 : 월간조선

관악산 자락 아래 자리 잡은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 서울대는 구름도 바람도 등산객도 한번쯤은 쳐다보며 지나가야 하는 곳이다. 대표문학상 수상작가와의 다섯 번째 만남은 작가의 모교에서 이루어졌다. 우리시대의 소설가 조성기.

웅장한 캠퍼스에 이념을 상징하는 현수막은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경시대회에서 상을 받은 학생들의 이름이 눈높이에 있을 뿐이다. 산은 헐벗은 나무들로 생기를 잃은 듯 보였지만 학교는 영원히 늙지 않을 것처럼 생동감이 넘친다. ‘서울대에 가면 학교만 있고 학생은 없지 않나.’ 그러나 학교는 저 멀리 섬처럼 보이고 학생들은 파도처럼 밀려 왔다. 커피를 마시러 들어간 투썸플레이스 카페도 젊은 학생들로 넘쳐났다.

조성기 작가는 글을 쓰다가 머리를 식히러 이곳에 자주 온다고 한다. 넓고 푸른 모교 캠퍼스를 거닐며 무슨 생각을 할까. 그의 집은 이곳에서 멀지 않은 신림동이다. 《우리시대의 무당》을 비롯한 그의 여러 소설들을 탄생시킨 공간도 신림동이다. 대학 다닐 때부터 살던 곳이 정이 들어 지금까지 산다고 한다.

우리시대 소설가는 도심 한복판에 산다. 그 곁에 무당을 아우르는 관악산 산신도 있다. 하지만 어떠랴! 글을 쓰기 위해 전원주택을 짓지 않아도 그에게는 이곳이 저택이나 다름없다. 맑은 산공기로 정신을 정화시키고, 피로한 영혼의 질서를 가다듬을 때, 그는 이곳에서 백만장자도 부럽지 않을 것이다.

‘한 사람에 대해 미움의 말을 뱉기 시작하면 연이어 미움의 말을 뱉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내 마음이 점점 비뚤어질 대로 비뚤어지고 관계도 뒤틀어진다. 그와 관련된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도 뒤틀려 버린다. 처음부터 한 사람에 대해 마음이 비뚤어져 미움의 말을 시작하지 않도록 주의할 일이다.’

위 내용은 최근 출간하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조성기 작가의 《미움극복》 책에 나오는 말이다. 미움은 인간이 가진 감정 중에서도 최악이다. 상대를 찌르는 것 같지만 실상은 자신을 찌르는 것이기에 우리들이 미움이라는 못된 감정에 휘둘리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조성기 작가의 생의 초점은 좌와 우를 가르는 혼돈의 이념 골짜기가 아니다. 높은 곳을 바라보는 구도자의 모습 속에서 상처와 미움의 골짜기를 헤매는 나약한 인간을 구원하고 싶어한다. 또한 자신도 그러한 인간의 본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욕망과 갈등, 탐구와 자각을 문학 속에 뒤틀어 유머 있게 진술하는 것도 그가 가진 강점이다.

고흐는 그림을 통하여 자신의 자화상을 그렸지만 조성기 작가는 문학을 통하여 자신의 자화상을 그렸다고 하면 최상의 비교가 될까. 왜냐하면 조성기 작가의 소설을 읽다 보면 인간의 내면 풍경이 고흐의 그림만큼이나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1991년 제15회 이상문학상 수상작 《우리시대의 소설가》는 사회와 인간에 대한 풍자소설이다. 작중 화자인 만우씨는 직업이 ‘소설가’인데 어느 날 독자가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책값을 환불해 달라고 한다. 만우씨의 소설을 읽고 시간만 낭비했다며 일종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전화였다. 막무가내 독자의 ‘책임을 느끼라’는 말 앞에서 만우씨는 그건 양심의 문제이지 환불하는 문제와는 상관이 없다고 대거리를 한다.

치사한 트집 앞에서 만우씨는 당장이라도 환불을 해 주고 싶지만, 그렇게 하면 지금껏 쌓아 온 소설가의 자부심마저 무너질까 봐 두려워한다. 한편은 그 독자가 자기 같은 작가를 찾아다니며 그런 식으로 책값 환불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의심도 해 본다.

만우씨는 그 무렵 칼뱅과 세르베투스의 교리 싸움에 관하여 소설을 쓰고 있었다. 세르베투스가 형용사 한마디만 바꾸면 살 수 있는데, 자신의 주장을 끝까지 철회하지 않고 화형에까지 이르게 되는 내용이다. 그런 세르베투스의 확고한 신념을 만우씨가 동경하는 듯하다. 또한 만우씨는 작중의 아내도 모르고 자신만 아는 자기의 또 다른 모습을 위트 있게 드러내고 있다.

만우씨의 위선이 위선이 아닌 채 묘하게 독자들의 웃음을 끌어내는 그 위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인간은 내가 아는 나, 남은 아는데 나는 모르는 나, 남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 신만 아는 나의 세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 조성기 작가가 그려내고 있는 화자는 신만 아는 나에게 가깝다고 할까. 그러면 그가 전지전능한 작가와 비슷하다는 말이 되겠지만, 실은 그런 통쾌함이 소설가의 특권이기도 하다. 자신의 자화상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지만, 세상 모든 인간의 다면적인 자화상인 셈이다.

서울대 법대를 가게 된 사연

—작품 이야기보다 더 궁금한 게 있어요. 남들 다 부러워하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어떻게 작가가 됐죠.

“사람들이 제 이력을 보고는 의아해하며 그런 질문들을 많이 해요. 일테면 장남의 운명이었다고 할까요. 법대를 간 건 아버지의 뜻이었어요. 20년 이상 사법고시에 연이어 응시하고 고배를 마신 아버지가 저를 통하여 그 꿈을 이루려고 했지요. 저는 국문학과나 독문학과로 가기를 소망했어요. 하지만 아버지의 뜻을 무시할 수 없었어요.”

—그럼 법대는 적성에 맞지 않았던 것입니까.

“네, 그런 셈이죠. 입학한 이후에 극심한 불면증과 두통에 시달렸어요. 문학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저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서울대학교 대학신문사에서 주최하는 ‘대학문학상’을 받기도 했어요. 그 당시 나는 법대 낙산문학회 회장으로 박두진 시인을 모시고 ‘시와 음악의 밤’을 개최하기도 했어요. 몸만 법대생이지 마음은 문과생과 다름없었죠.”

—고등고시를 본 적은요.

“한 번도 본 적이 없지요.”

—법대에 들어가서도 문학을 하는 바람에 아버지와 갈등이 심했겠네요.

“처음에는 무척 실망하시고 저를 설득도 많이 하셨어요. 제가 학교 문학상도 받고, 스무 살 최연소로 신춘문예에 당선도 하니까 아버지는 더 당황스러워했지요. 나중에 종교 문제로 갈등하며 내가 문학과 고시를 다 포기하려는 방향으로 나가자 그때서는 아버지가 ‘문학이라도 하라’며 말리기도 했지요.”

—이상문학상 수상작 《우리시대의 소설가》에서 우리시대를 굳이 쓴 이유라도.

“그 작품은 일종의 소설가 소설입니다. 그 당시 저는 ‘우리시대 시리즈’를 쓰고 있었어요. 일곱 가지 유형의 소설가 연작을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첫 번째가 《우리시대의 소설가-1》이었어요. 제1편에서는 현실과 작가의식 사이에서 갈등하는 우스꽝스러운 그런 소설가를 썼던 거고, 또 이청준 작가처럼 인터뷰 같은 것도 될 수 있는 한 거절하고 도 닦듯이 글을 쓰는 소설가도 쓰려고 했어요. 그 다음에는 순수문학으로 나갔다가 대중적으로 빠지는 작가 이야기와 대중물에 빠졌다가 다시 순수문학으로 돌아오는 소설가 이야기도 쓰려고 했는데, 딱 제1편에서 주요한 상을 받아 버리니까 끝까지 이어지지를 못했어요.”

—주인공 ‘만우’씨는 이름이 성격만큼이나 재밌어요. 이름 짓기에도 공을 들인 것 같아요.

“현실과 작가의식 사이에서 이리저리 갈등하는 소설가 이름으로는 안성맞춤인 셈이었지요. ‘만우절’을 연상시키는 이름이기도 하고. 작중인물의 성격과 관련하여 이름 짓기에 좀 신경을 쓰는 편이지요.”

—이 소설이 대상작으로 선정된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나는 《우리시대 소설가》 시리즈를 다 완성하고 난 후에 받고 싶기도 했지만 그 작품만으로도 뭔가 줄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요.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을 참조하라는 말밖에 할 수 없군요.”

—《우리시대의 무당》은 무당집이 많은 관악산 자락에 살았던 산체험이라 할 수 있는 건가요.

“그렇죠. 관악산 자락에 아파트 단지를 지으면서 많은 나무들을 벌채했는데, 그러자 숲속에 자리 잡고 있던 무당촌이 드러나게 되고 동네 사람들은 새벽 무당굿 소리에 잠을 잘 이루지 못하여 신고를 하고 했지요.”

—《통도사 가는 길》은 여인과의 갈등 속에서 길 떠나는 남자의 이야기죠.

“그게 전체적인 스토리라인이지요. 이미 변심한 여자의 마음을 돌이켜 보려고 애면글면하다가 훌쩍 통도사라는 절을 찾아가지요. 가까운 거리에서 여인에게 전화를 걸면 냉대를 받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되도록 멀리 가서 전화를 걸면 혹시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요. 화자는 그마저도 헛된 기대인 걸 알고 있어요. 하지만 이 작품에 사실은 금기와 위반이라는 중요한 주제가 들어 있지요.”

—불교적인 색채가 강한데 불교를 공부했습니까.

“고등학교 때는 종교가 불교였지요. 친구와 조계사를 다니기도 했어요. 고3 때 수학 15점을 맞고 수학 빵점 맞은 친구하고 둘이 가서 …. (웃음) 그 빵점 받은 친구가 사실은 대단한 친구였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불교서적을 엄청나게 읽었어요. 학교 공부보다는 그런 것들을 주로 읽었죠. 한국 소설들도 엄청 많이 읽었어요. 제가 쓴 소설들을 딱 보더니만 ‘야, 너는 큰 소설가 되겠어’라는 예언도 해 주었지요.”

종교든 문학이든 내가 선택당한 느낌

—많은 분들이 조성기 하면 기독교 작가이면서 목사로도 알고 있어요. 목사라는 오해는 동명이인 목사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기독교 작가라는 말에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기독교 작가라고 규정하는 건 어떻게 보면 난센스지요. 기독교가 소재로 들어온 것뿐인데. 기독교 관련 논문에서 주로 다루는 작품들 목록에 내 작품들이 필수항목으로 들어가 있기도 하지요. 그 주요목록에 내 작품인 《야훼의 밤》《라하트 하헤렙》, 그리고 이청준의 《낮은 데로 임하소서》, 이승우의 《에리직톤의 초상》 등 몇 가지가 있지요. 기독교라는 건 사회를 비추는 빛인데 밑바닥까지 깊이 비춰 볼 수 있는 어떤 통찰력을 가질 수는 있습니다. 저는 기독교 작가라는 규정을 깨고 싶어 그 테두리를 벗어나는 작업을 많이 했지요. 앞으로도 창작 영역에서는 될 수 있으면 종교문제를 계속 조심스럽게 다루려고 합니다. 초기 작품들은 젊은 날의 갈등의 중심이 종교였으니까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쓴 거지요. 사회문제로 돌아왔을 때는 거의 종교를 안 다뤘어요. 주로 사회의 어두운 면을 부각하면서 질문을 던지는 형식으로 썼지요.”

—어느 글에서 ‘종교문제는 곧 성(性)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했어요. 종교와 성 사이에서 많은 갈등을 했다고 보이는데요.

“젊은 날 성적인 갈등 속에서 종교적인 체험을 한 셈이에요. 많은 사람이 그런 갈등 속에서 타락을 경험하고 거기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것인지 고민하는 중에 종교에 귀의하잖아요. 그러니까 종교와 성의 문제는 항상 관련이 있다고 여겨집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을 너무 일반화시키면 안 되겠지만요. 노드럽 프라이는 문학적 상상력 훈련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 성경의 스토리를 젊은 날에 익히는 것이라고 했지요. 신앙과는 별개의 문제이지요. 성경은 소설을 비롯한 문학적인 요소들이 풍부하게 들어 있고 인간의 감정들이 다양하게 담겨 있는 거대한 시뮬라시옹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지요.”

—종교문제와 성의 문제가 문학에도 깊은 영향이 있었나요.

“사람에 따라서는 종교적인 체험을 하고 나서 김승옥 선생처럼 작품을 못 쓰는 사람도 있지요. 반면에 그것이 새로운 경험이니까 표현하려는 사람도 있고요. 파울루 코엘류는 인생을 다 포기했다가 ‘산티아고 가는 길’(스페인의 순례길이며 거의 1000km에 달함)을 걸음으로써 작가로서 살아야겠다는 영감을 얻었잖아요. 근데 최근에 어느 소설가는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걷고는 ‘이제 더 이상 소설을 안 쓰겠다’는 선언을 했어요. 나는 그것을 다 경험했지요. 15년 동안 안 쓰겠다고 했다가 다시 쓰고자 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지요. 종교든 문학이든 내가 선택한 것이라는 느낌보다 내가 선택당한 느낌이 강하지요. 《성서 속의 성》이라는 그 작품은 어찌 보면 앞으로 내 문학이 나아갈 어떤 청사진 같은 건데요. 종교를 다룰 때는 종교적으로 치우치는 거 같고 성을 다룰 때는 또 성적으로 치우치기도 하는데 그 둘을 종합하는 작업을 하게 되면 대작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은데요.(웃음) 그 작업을 하는 사람이 외국에는 좀 있지만 한국에는 거의 없는 거 같고요.”

—작품 중에 《욕망의 오감도》는 성폭력의 양상을 담은 책으로 출간 당시 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주의 조치를 받았다면서요.

“그 책은 성폭력의 상황뿐만 아니라 성폭력을 당한 자의 심정을 세세하게 그렸지요. 우리시대 성폭력의 여러 양상을 담았으니까요. 장편 다섯 권에 말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구성애씨가 ‘아우성’이라는 MBC 프로그램에선가 몇 주에 걸쳐 계속 강의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유일하게 추천한 책이 《욕망의 오감도》예요. 어떤 여자가 형부와의 관계 속에서 성적인 요구를 받고 괴로워하는 내용의 상담이 있었는데 ‘형부에게 편지를 써라. 그리고 《욕망의 오감도》를 편지와 함께 보내라’고 권했다는 겁니다. 내가 그 작품을 썼을 때의 의도를 잘 간파하신 거 같아요. 그 당시 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는 주의 조치를 내리고 그랬거든요. 몇 페이지 어느 구절이 문제가 있다면서 관련 서류가 두툼하더라고요.”(웃음)

—1985년에 《라하트 하헤렙》으로 ‘오늘의 작가상’도 받았는데 신춘문예로 등단 후 15년 만의 재데뷔라고 하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습니까.

“그 무렵 군대 제대하고 선교단체 스탭으로 일을 하느냐 마느냐 그런 문제로 갈등이 심했어요. 또 그 선교단체에서 나오게 되고 이런저런 과정이 있었는데 그때 시인 정호승씨를 우연히 영등포 쪽에서 만났어요. 정호승씨는 제 군대 사수입니다. 그분에게 ‘선배님, 어떻게 하면 문단에 재데뷔를 할 수 있나요?’ 하니까 그분이 ‘오늘의 작가상’ 같은 것이 있다고 추천을 해 주더라고요. 그래서 서점에 가 보니 오늘의 작가상을 받은 작품이 쭉 있는 겁니다.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도 있고 한수산의 《부초》도 있었어요. 서점에서 선 채로 그 책들을 훑어봤어요. 그러고는 ‘나도 써야겠다’ 생각하고 바로 고시원 독서실에 들어간 거 아니겠어요. 그곳에 틀어박혀 한 달 동안 그 작품을 쓴 거지요.”

소설을 쓰기 위해 갈등을 가장 많이 생각

—《라하트 하헤렙》은 에덴동산의 화염검을 상징하는 히브리어인데, 이 밖에도 몇 가지 상징이 더 있죠.

“그런 셈이죠. 화염검, 즉 불칼은 여호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이브를 에덴에서 추방하고 다시 들어오지 못하도록 세운 방어막 같은 거죠. 태양은 아폴로 눈병과 관련되고 페치카 불은 전쟁을 상징하기도 했지요. 화재는 신의 분노의 불길 또는 정화하는 불의 상징이고, 촛불은 성욕의 상징이기도 했지요.”

—성욕의 상징 하니까 《중앙일보》에 《反금병매》란 작품을 연재했던 일이 생각나네요. 조심스런 작업이 아니었나요.

“‘反’ 자를 붙일 만큼 조심스러웠지요. 《금병매》를 내가 번역, 연재한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데 사실은 완전히 재구성한 새로운 작품이지요. 《금병매》는 16세기 무렵의 중국 고전이면서도 현대소설의 모든 구성요소를 다 갖추고 있는, 그 시기 서양작품들보다도 어찌 보면 문학적으로 앞선 작품이라고 할 수 있어요. 외국에서는 중국 4대 기서 중에서 다른 것들은 문학작품 취급도 하지 않는데 《금병매》는 미국이나 프랑스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문학고전 시리즈에 들어 있어요. 그 작업을 하면서 ‘대단하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금병매》 안에 있는 현대소설적인 요소들을 눈여겨보게 됐어요. 그런데 원작은 원래 좀 지루하게 이어지니까 새로운 각도에서 현대소설 구성법을 활용해 보았지요. 무엇보다 전족의 사회사를 연구하여 작품에 어우러지게 한 것이 보람이었지요.”

—전족으로 여자의 발을 자라지 못하게 하는 것을 중국 사람들의 성적 취향으로만 봐야 하나요. 건강에는 문제가 없습니까.

“여러 학설이 있지만 성적 취향과 관련된 것만은 확실해요. 발이 제일 작은 여자를 가리켜 금련이라고 하는데 금련이 남자들의 이상형이었지요. 혼인식에서도 사람들이 여자의 발을 제일 주목해서 보았지요. 전족은 결국 여자의 신체를 불구로 만들어 중국 노동력이 수백년 동안 반으로 줄어들었죠. 여자 무용도 사라져 경극 같은 데서는 남자들이 여장 분장을 하고 나와서 연기를 해야만 했지요.”

—삼국지도 쓰셨지요.

“저는 동양 사람인데 심리학자 카를 융을 공부하다 보니 그분이 저보다 더 동양적인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가치를 부여한다고 여겨졌어요. 동양고전에 대해 연구할 기회가 있을 때 《굴원의 노래》《전국시대》 같은 작품들을 쓰게 됐어요. 중국 고전들을 재해석하는 작업도 많이 한 셈이지요. 제자백가들을 다루었고 《삼국지》(10권, 2001년 열림원)를 정역했습니다. 한자를 일부러 쓰지 않고 속도감 있고 편한 문장이 되도록 했지요. 그리고 다른 만연체의 삼국지들과는 달리 《삼국지》 원본의 문체를 그대로 살린 충실한 번역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 한국학 교수 로스 킹에게 주목을 받았다면서요.

“로스 킹 교수, 그분 생애도 참 재미있어요. 미국에는 120여 개의 언어 마을이 있는 모양이에요. 그 사람 아버지가 그 마을들에 가서 언어를 배우도록 했나 봐요. 믿기지 않지만 그렇게 해서 로스 킹 교수가 25개 언어를 조금씩 습득했다고 합니다. 러시아어가 굉장히 어렵다는 말을 듣고 아예 러시아에 가서 살기도 하고 말이에요. 그렇게 러시아어를 정복했는데 러시아어보다 조금 더 어렵다고 하는 한국어도 정복하려고 도전하던 중에 한국 여자와 결혼도 했답니다. 하버드대 박사논문을, 카자흐스탄 고려인들의 언어를 연구해서 썼다고도 합니다. 직접 만나 보니까 영화배우처럼 잘생기고 한국말을 아주 잘했어요. 그런데 어느 인터뷰에서 한국문학 번역에 대해서 관심이 있느냐 물으니까 고전 중에서 하나, 현대작가 중에서 하나를 각각 찜해 두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고전 중 하나가 《변강쇠전》이에요. 그리고 조성기 작가를 생각하고 있다는 인터뷰 기사를 읽고 나는 의외다 싶었어요. 그분이 말하기를 그 작가의 작품이 세계적인 보편성이 있고, 외국에 번역해 놓아도 호응이 있을 것 같다는 거예요. 자기 나름대로 평가한 것이지요.”

—《변강쇠전》과 조성기라니 어쩐지 그분 혹시 에로티시즘적인 소설을 좋아하는 것은 아닐까요.

“글쎄요.”(웃음)

—소설을 쓰기 위해 무엇을 가장 많이 생각하나요.

“저는 갈등입니다. 갈등의 종류를 크게 네 가지로 나누자면 종교적인 갈등, 프로이트와 카를 융적인 인간 내면의 갈등, 특히 성(性)적인, 그런 섹슈얼적인 측면에서의 갈등, 사회문제로 인한 갈등 그렇게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겠지요. 저의 관심은 결국 인간의 내적인 갈등과 사회를 연관시키는 작업입니다.”

예수의 생애를 소설로 쓰고 싶어

—작품을 보면 여행에 관한 주제가 빈번하게 등장합니다. 작가에게 여행은 창작 혹은 영감의 원천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까.

“교수 되기 전에는 항상 일 년에 한두 번 꼭 외국여행을 가서 메모하고 취재하는 그런 느낌으로 다녔던 거 같아요. 돈황(敦煌·둔황) 가서도 그랬고요. 그게 별로 안 좋은데, 메모에 대해 광적인 그런 게 있는 거 같아요. 그때도 빽빽하게 메모를 하고 왔어요. 한번은 윤후명 선생하고 돈황을 갔는데 나를 딱 보더니 ‘작가는 그렇게 메모하는 게 아니야’라고 하더라고요. 그분은 진짜 하나도 메모를 안 해요. 사진으로 따지면 그 사람은 마음 자체가 감광판 같아요. 사진도 하나 안 찍는 사람이고요. 술 취한 가운데 다니면서도 탁탁 다 마음에 찍히는 모양이에요. 그런데 나중에 돈황 소재 소설들을 보면 메모 잔뜩 하고 와서 쓴 나보다도 그분의 기억력이 더 좋아요. 그런데 그분도 딱 한 번 메모하는 걸 봤어요. 돈황 갔을 때 신기루 현상이 있었어요. 파도가 치는 거지요. 사막에서 말입니다. 봉고차를 세워서 그 광경을 구경하고 그랬는데, 그럴 즈음에 딱 한 번 메모를 하더라고요. 어디다 메모를 하는지 알아요? 담뱃갑에다가 ….(웃음) 난 비디오 같은 거 볼 때도 항상 메모를 해요. 그게 안 좋은 건데요. 그래서 지금 천 몇 편 넘게 메모한 게 있는데 《조선일보》에서 찍어 간 적이 있어요. 메모노트를 찍어 갔지요. 그래서 문화면 전면에다가 ‘조성기 비디오광’이라는 기사를 냈더라고요. 비디오광이 아니라 그냥 보고 지나가면 시간이 아까울 것 같아 몇 자 적어 놓은 것뿐인데. 지금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같은 것을 봐도 메모를 해요. 텔레비전 노트가 이만큼, 비디오 노트가 이만큼 있어요. 《우리는 완전히 만나지 않았다》라는 단편집이 여행 소설집이지요. 여행에서 얻은 것들을 썼던 책입니다. 《달리가 시계를 녹인 이유》는 베니스 체험들이고, 《돈황의 춤》은 돈황에서 겪었던 느낌들을 쓴 것이고, 《모젤강가의 마르크스》는 마르크스 생가가 있는 독일 트리어를 배경으로 쓴 작품이지요.”

—현재 숭실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 강의하시죠. 글쓰기와 강의를 병행하는 것이 힘들지 않나요.

“숭실대학교에 2000년도에 부임했으니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원래 제 성격이 완벽주의자인가 봐요. 강의와 글쓰기 두 가지 일 모두 잘하려고 하니까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예를 들면 작가로서 작업을 할 때와 교수로서 강의할 때 집중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습니다. 강의에 힘을 쏟다 보니까 머리를 회전하기가 힘든 점이 있더라고요. 그래도 문창과 교수의 실적은 논문이 아니라 결국 창작이니까 늘 긴장하고 그 끈을 놓지 않으려고 애를 많이 쓰는 셈이죠. 1995년도에 건강이 매우 안 좋아져서 죽음의 문턱까지 간 적도 있지요. 소설시라는 새로운 장르로 써 본 《내 영혼의 백야》(1998년 민음사)는 그때 죽었다가 살아난 경험을 쓴 작품입니다. 그 이후 건강이 많이 회복되어 교수 생활과 작가의 삶을 같이 할 만큼 강건해졌어요.”

—전국 문창과에서 숭실대 문창과 경쟁률이 가장 높다면서요. 그 이유가 교수님의 명성 때문인가요.

“내 명성이라기보다 다른 교수들의 명성이 더 많이 작용했겠지요. 지방대에서 문창과가 많이 사라지고 있기도 하고 학교의 입지조건도 좋고 해서. 하긴 이번 응시에서도 경쟁률이 60대 1이나 되었지요.”

—요즘 작품 활동은 어떤가요.

“저는 나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어요. 얼마 전에 《좌옹의 길》이라는 장편소설도 발표했어요. 그 소설은 윤치호의 일기가 모티브가 되었지요. 엄청난 분량의 윤치호 일기를 읽어 보니, 그가 친일파라고 매도당하고 있기는 하지만 일제시대 때의 섬세한 숨결 같은 것들을 느낄 수 있었고 그 사람 나름대로의 고민들이 느껴져 연작소설로 써서 출간했지요. 또한 꾸준히 문학잡지에 소설들을 발표해 왔는데 사람들이 워낙 문학잡지를 읽지 않다 보니 활동이 뜸한 것으로 오해하기도 하지요.”

—앞으로 인물평전도 계속 쓸 생각입니까.

“본래는 평전 작업을 세 사람만 하기로 독자들과 약속했어요. 하나는 기독교계의 거장인 한경직 목사 작업을 했고, 또 경제적으로 모범을 보인 유한양행 유일한 선생, 그리고 윤치호 평전 작업을 했지요. 윤치호는 이제 《좌옹의 길》이라는 소설 형식으로 작업을 끝냈으니 독자들과의 약속을 지킨 셈입니다. 최근에는 나이도 이만큼 되고 하니까 예수의 생애를 독특한 시각에서 그려 보려는 작업을 숙제로 안고 있어요.”

—예수의 생애를 소설 형식으로 쓴다고요.

“네. 소설 형식입니다. 저를 포함하여 다들 말년이 되면 도전해 보고 싶은 영역인 것 같아요. 어떤 관점을 가지고 해야 하나 아직은 구상 중에 있어요.”

—얼마 전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이라는 방송 프로에 출연하여 《미움극복》에 대해 강연하셨죠. 짧은 시간 안에 책의 전체 주제를 담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어땠나요.

“하긴 시간 조절이 쉽지 않더라고요. 워낙 청중의 호응이 뜨거워서 다행히 무사히 넘어갔어요. 미움의 문제는 누구에게나 항상 있는 법이고 인생의 진지한 과제이니까요.”

—인간에게 ‘미움’은 왜 생기는 걸까요.

“《미움극복》에서 다양한 이유들을 말해 보았지만 우선 인간 본성이 그렇게 생겨먹었겠지요. 신화나 성경에서도 신들과 인류의 역사가 미움으로부터 시작되고 있지요.”

—《월간조선》 1월호가 나올 무렵이면 새 대통령이 선출되고 어쩌면 우리나라 첫 여성대통령이 탄생할지도 모르는데 그분들에게나 독자들에게 권유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요.

“요즘 20세기 명저로 추천되고 있는 《배제와 포용》(미로슬라브 볼프)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저자가 세르비아인들에 의해 인종청소를 당한 크로아티아 출신이라서 더욱 설득력이 있는 것 같아요. 대통합, 대통합 하는데 포용의 정치를 위해서 꼭 읽어 보아야 하는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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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표문학상 수상 작가를 찾아서 ⑤ 趙星基

다면적인 인간의 자화상을 그려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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