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세계화, 代案은 없는가 <마지막회> : 월간조선

이제 “세계화, 대안은 없는가” 기획 시리즈를 마감할 시간이다. 거대한 담론, 추상적인 이론, 그리고 도덕적인 규범을 열거하는 것은 우리를 다시금 허탈하게 만들 것이다. 이것을 넘어서자는 것이 이 시리즈의 기본 목표였다. 그동안 11회에 걸쳐 다룬 내용들은 세계화의 대안을 찾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친(親)세계화 혹은 반(反)세계화라는 일방적 입장을 뛰어넘어 현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여러 유형의 위험과 위기들을 성찰적인 자세로 진단하고 이것을 지역 혹은 일상에서부터 실천할 수 있는 처방을 찾아 전 지구적 차원으로 확산시킬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보자는 것이었다.

물론 사안의 복잡성으로 인하여 명쾌한 진단과 처방을 내놓기보다는 정부, 기업, 시민사회 사이의 적극적인 상호협력을 통해 대안을 모색할 것을 주문하는 데 그치기도 하였다. 이제 연재를 마감하며 결국 대안세계화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다시금 강조하기 위해 각 주제별로 다루었던 핵심 주장과 구체적 대안을 10가지로 요약 정리하고자 한다. 이것이 대안세계화 논의에 제동기(trigger)가 되는 동시에 우리 사회에 편만해 있는 지역, 세대, 계층, 인종, 성별에 있어서 이른바 3불-불통(不通), 불의(不義), 불신(不信)-의 문제를 보다 정의롭고, 신뢰할 만하고, 서로 인정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성찰 과제가 되기를 기대한다.

1. 미시 실천과제에서 연결고리를 찾아야

3차원적 복합위기 사회-경제·생태계·자원위기-를 마주하고 있는 요즘 성장과 환경의 상생, 보전과 개발의 균형이라는 당위적인 주장만을 할 여유가 없는 상황이다. 원시상태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우리가 매일 목도하고 있는 사회적 양극화, 빈곤층의 증가, 환경생태계의 파괴, 에너지와 자원의 소멸, 이주민 증가로 인한 소수자 인권 및 문화충돌과 갈등의 문제에 대해서 바로 대응책을 만들어내야 하는 현실이다.

그동안 우리는 세계화에 대한 대립적인 입장을 소개하고, 세계화의 다양한 측면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적인 논의를 7가지 주제-위험, 투기금융, 빈곤, 자원과 에너지, 농업, 분쟁, 이주와 소수자 등-별로 살펴보았다. 나아가 대안세계화를 실천하기 위한 과제로 세계시민으로 거듭나며, 윤리적 소비자로서 행동하며, 그리고 바로 마을 공동체에서 실천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대안을 모색해야 할 주체로 국가와 국제기구, 기업과 시장, 시민사회와 NGO를 상정하고, 각각의 입장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입장들 사이에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호 경쟁 혹은 갈등의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때로는 협력해야 할 부분이 있음을 강조했다.

즉 시민사회는 당위적인 주장을 넘어 미시적 차원의 실천과제를 발굴하여 정부나 시장과의 협력을 통해 문제해결을 시도하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시민사회의 자발적 대안 찾기 운동이 아래로부터 확산되어 이것이 전 지구적인 연대활동으로 강화될 때 국제기구를 압박하고 초국적으로 활동하는 기업 및 시장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대안세계화에 대한 담론을 국제적 차원으로 묶어두는 데 있다.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개인들이 세계시민적 인식을 갖추고 지역의 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동시에 하나하나의 결정과 행위가 전 지구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 아래 일상의 경제활동에서부터 정치적 행위에 이르기까지 윤리적 관점을 견지하며 행동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특히 그러한 행동은 마을이라는 자그마한 공동체 안에서 시작해야 하며, 그 행동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를 위한 것이고 남을 배려하고 고려하여 사회적 행위를 전개한다는 의미에서 호혜적이며, 공동체를 지향하기 때문에 행동 하나하나가 궁극적으로는 상호 신뢰를 높일 수 있다. 풀뿌리 지역 공동체 구축활동도 하지 못하면서 국가를 넘어선 지역, 더 나아가 지구 민주주의를 구현하겠다는 것은 기계적 이상주의에 불과한 것이다.

2. 좌우이념에 근거한 세계화 이해는 오해를 낳는다

그동안 세계화에 대한 이해는 경제활동에 초점을 맞춘 무한경쟁, 약육강식, 적자생존이라는 냉혹한 논리가 중심을 이루어 왔고, 점차 지구적 불균형, 불평등, 부정의 현상이 산업, 금융, 무역의 영역을 넘어 계층, 문화, 환경 등 사회 전 영역으로 확대되는 방식을 취해왔다. 이러한 신자유주의 경제세계화를 반대하기 위한 각개전투식 반세계화 운동이 ‘지구정의’(global justice)라는 마스터 프레임으로 수렴되면서 ‘보다 민주적이고, 정의로운 대안세계화’를 지향하는 지구정의 운동의 파고가 높아지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친(親)세계화는 보수, 반(反)세계화는 진보라는 이분법적 접근을 하면서 세계화를 선악의 하나로서 긍정이나 부정으로 바라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세계화는 지식과 권력 사이의 헤게모니가 만들어놓은 현실이자 이념이다. 이제는 이 두 가지 대립적인 이중운동(double movements)을 뛰어넘는 대안세계화로 나아가야 한다. 진보와 보수가 머리를 맞대고 전체 혹은 부문별 대안을 준비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사실 세계는 지역을 중심으로 나라들 사이에서 상호의존이 늘어나면서도 다른 한편 생존경쟁이 심화하는 모순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세계는 통합적일 뿐만 아니라 분열적인 상반되는 작동원리 아래 협력, 갈등, 타협, 반목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처럼 세계가 좁아지면서 지방적인 것과 세계적인 것 사이의 체계적 상호연결과 소통이 강화돼 이른바 ‘세계지방화’(glocalization)와 ‘지방세계화’(locabalization) 현상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반세계화론자들은 초국적 자본이 주도하는 세계화가 ‘20대 80’ 더 나아가 ‘1대 99’라는 빈부격차를 가져온다고 파악한다. 대안세계화론자들은 세계화 자체를 완전히 부정하기보다는 그것이 경제적인 측면에서 지니는 모순을 직시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인간적인 세계화’(humane globalization)를 위해 풀뿌리 시민의 힘 키우기와 정부의 적절한 개입과 규제정책을 강조한다. 우리는 세계화 그 자체가 국가발전을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 목적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견지에서 지역사회 맥락에 따라 기업의 사회적 책임성, 공유가치의 창출, 사회적 기업의 정착, 그리고 인간적 얼굴을 한 자본주의 세계화를 역설하는 ‘개혁자본주의’를 전략적으로 동원할 수도 있으며, 더 나아가 지역 생태주의 입장에서 시민 스스로가 연대하여 협력적인 살림살이를 모색하는 생활협동조합을 이루거나 국가경계를 넘어 다른 지역시민사회의 역능화를 돕기 위해 공정무역과 지역 생태계보호운동을 수행할 수도 있는 것이다.

3. 세계화로 인한 글로벌 위험 사회에 대한 성찰적 접근 절실

구호식량을 받아가는 소말리아 어린이들. ‘파탄국가’들에 대해서는 산발적 원조 프로그램이 아닌 체계적인 재건지원이 필요하다.

기후변화로 촉발된 해수면 상승, 가뭄, 그리고 식량부족을 겪고 있는 힘없는 국가는 일촉즉발의 물의 전쟁, 식량전쟁, 기후난민과의 전쟁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비극적 상황으로 치닫지 않도록 위험사회에 대한 예방적이고도 성찰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는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에너지 고갈 위기에도 불구하고 석유정점에 대해 안일한 생각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인류가 그동안 잘 대처해 왔던 것처럼 새로운 과학기술, 즉 나노기술과 같은 첨단 기술을 활용한다면 대체에너지는 쉽게 발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하고 있으며, 이런 기대감으로 인해 석유 소비에 의존한 ‘기름자본주의’ 삶의 양식은 결코 바뀌지 않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점증하는 전 지구적 위험이 공평하게 분담되기보다는 오히려 차별적으로 위험이 집중되고 있는 환경 불의(injustice) 현상이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기후변화, 에너지 고갈 피해에 가장 취약한 국가들은 소말리아, 차드, 수단, 콩고, 아이티와 같은 소위 ‘파탄국가’(failed state)들이다. 현실적으로 파탄국가는 외부의 도움 없이 자력으로 인구증가, 식량부족, 기후 및 전쟁난민 등의 복합적 위험을 극복할 수 없다. 이러한 이유에서 ODA와 같은 산발적인 원조 프로그램은 그 효과성이 부족하기에 보다 체계적인 재건 지원이 필요하다.

한국사회가 파탄국가들이 지닌 위험을 극복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압축적, 돌진적 근대화의 과정을 겪으면서 사회조정의 실패, 무모한 정책집행 경향, 그리고 전 사회적으로 배태된 부패행태 등이 결합되어 수많은 위험을 경험했고 지금도 위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한국정부는 물론 기업, 시민사회 모두가 위험요인에 대한 무지와 왜곡된 가치 및 정책지향에 대해 성찰적이고도 예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것이 우리 사회에 착근되지 않으면 점증하는 글로벌 위험과 위기 가능성으로 인해 우리에게 붙여진 불명예 딱지-사고사회, 토건사회, 투기사회, 학벌사회, 무한경쟁사회, 초고속사회 등-를 떼는 데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성장과 공급 중심 에너지 정책의 구조적 변환이 전제되어야 하며 에너지의 절약과 필요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유인체계를 바꾸어야 한다. 위험을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자연재난과 전쟁을 넘어선 보다 큰 차원의 위험, 즉 기후변화로 인한 위험, 식량위기, 에너지 위기 등을 통합적으로 대응관리할 수 있는 위험관리 기본 정책이 필요하다. 이제 위험은 지역에서 세계로, 즉 수직적이거나 수평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각인해야 한다. 이러한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물질적인 욕구나 자국의 성장만을 추구하려는 사고체계에서 벗어나서 공동체와 사회적 약자의 삶의 질을 고민하는 성찰적 사고가 필요하다.

4. 금융세계화에 대한 분노가 경제민주화 불러

‘자본주의 4.0’을 주장한 아나톨 칼레츠키.

2011년 가을 뉴욕 월가 점령시위가 전 지구적으로 확산된 현상은 1%에 해당하는 부자들의 부도덕과 탐욕에 대한 99% 일반 시민의 분노가 단순한 감정적 저항을 넘어 금융세계화가 야기한 정책과 제도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까지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분노가 2012년 세계적으로 리더십이 교체되는 해를 맞이하여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해 일대 수술을 요구하는 ‘경제민주화’를 최대의 관심사로 만들고 있다. 아직까지 경제민주화를 강조하는 정치인의 구호와 정책이 유권자의 표를 의식한 나머지 근본적인 수술이라기보다는 겉옷과 스타일만 바꾸는 것에 머문 공허한 메아리일까 봐 사실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경제민주화는 그동안에 가졌던 철학과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칼레츠키(Anatole Kaletsky)의 ‘자본주의 4.0’ 주장은 유연성을 고려하며 단순히 정부기구를 확대하기보다는 정부의 역할과 규제 강화를 강조한다는 측면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국가개입을 강조한다고 해서 중국식 국가자본주의가 모범답안일 수는 없다. 대신에 혼합경제, 즉 제도적 적응력을 키우기 위해 이데올로기적 유연성을 견지해야 한다는 칼레츠키의 주장은 정부와 기업이 대립관계가 아니라 동반자 관계를 설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현실적인 대안임에는 틀림없다. 예컨대, 석유에너지 사용에 오염비용, 즉 탄소세금을 부과하여 이를 토대로 대체 혹은 재생 에너지 개발에 적극적으로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은 타당한 대안이다.

어느 한 가지 산업이 아무리 유망해 보여도 그것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글로벌 무역시스템의 올인 정책은 매우 위험하며, 또한 다양한 산업구조를 보유해야 하는 지역경제에도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국제적으로도 금융세계화가 촉발한 전 지구적 경제위기에 대한 대안이 계속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예를 들어 ‘녹색뉴딜’ 개념은 전 지구적으로 마주하고 있는 금융-기후-에너지의 복합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정책대안으로 탄소세 부과, 재생가능에너지 개발, 녹색산업 투자 등을 강조한다.

또한 아탁(ATTAC)을 중심으로 한 시민운동단체는 초국적 투기금융거래에 세금을 부과하자는 ‘토빈세’(Tobin tax)를 제안하였고, 이것보다 조금은 약한 규제이지만 IMF는 ‘금융안정분담금’ 혹은 ‘금융활동세’를 통해 투기금융거래를 제약하자는 주장을 내놓았다. 물론 이 제도들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많은 난제를 극복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의 차기정부는 어떤 경제민주화 정책을 추진해야 할까?

무엇보다도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과 증세 정책은 필연적인 선택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농업과 같은 1차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장려하지 않으면 우리의 지역경제, 산업, 경제활동은 전 지구적 경제위기에 더욱 취약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부자증세를 주도하면서 ‘부자 때리기’ 정책으로만 일관한다면 오히려 성숙지 못한 시민과 기업의 저항을 마주할 수도 있다. 물론 재벌빵집, 대기업의 골목상권 장악은 반드시 비판받아야 하고 법적규제를 통해 제한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단순한 부자 때리기 구호만을 남발하기보다는 대기업-중소기업이 상생할 수 있는 대안, 즉 경제민주화를 위해 대기업이 책임 있는 자세로 참여할 수 있는 정책대안이 필요하다.

‘처벌성 세금’ 부과보다는 ‘사회적 책임성 부담금’(social responsible sharing tax)을 낼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바람직해 보인다. 어쨌든 우리는 과거의 ‘큰 시장, 작은 정부’에서 ‘강한 정부’로 전환의 경로를 선택한 상황이다. 경로의존성이라는 개념이 있듯이 경제민주화의 길은 단순히 분노만으로 해결되는 단거리 경주가 아니며 우리 모두의 공동 노력이 필요한 장거리 경기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실질적인 수준의 경제민주화의 길을 일관되게 걸어갈 수 있는 ‘강하지만 선한 정부’를 선택할 시기인 것이다.

5. 사회적 기업은 빈곤 탈출구로서의 새로운 시험 무대

한국의 중산층이 무너지면서 빈곤이 확산되고 있다. 최근에는 가계 빚이 1000조를 넘으면서 ‘하우스 푸어’가 급증하고 우리 모두 채무의 노예가 되어 가고 있는 상황이다. 빈곤 수준은 실업률보다 고용률을 통해 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데, 한국의 고용률은 2011년 9월 현재 59.1%로 OECD 기준 63.6%보다 낮다. 2010년의 미국(66.8%), 일본(70.6%), 호주(73%)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난다.

빈곤의 원인은 복합적인 사회문제이기에 빈곤의 다차원성을 고려해야 한다. 1990년대 말 IMF 구제금융 시기를 맞으면서 ‘사회적 배제’ 개념이 빈곤의 구조화와 재생산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주목받았고, 대안으로 사회적 포용, 통합, 참여 등이 동원되었다. 이러한 견지에서 빈곤층이 겪는 사회적 배제와 차별의 문제를 심각히 고려해야 한다.

일례로 비정규직이 임금 이외에 겪는 각종 사회적 차별 관행과 제도를 들 수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구분하기 위한 ‘통근버스 좌석 지정제’는 지금 우리가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지 헷갈리게 만든다. 또한 농민과 영세상인의 빈곤수준은 임계점을 넘어 위험수준에 다다르고 있다. 가계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기혼여성의 취업이 증가하고 있지만 이것이 빈곤 감소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가정 해체위기를 낳기도 한다. 더 나아가 집값과 전셋값의 상승은 무주택자들을 더욱더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있다.

이를 사회적 차원에서 극복하고자 시도되고 있는 것이 바로 사회적 기업이다. 사회적 기업은 시혜적 차원의 지원금을 지양하고 노동 가능한 집단에 유급 노동의 기회를 제공해 줌으로써 참여자가 사회구성원으로서 자기 역할을 재발견한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이 사회적 기업은 궁극적으로 사회적 안전망과 연결망의 확대를 통해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강화된 빈곤층의 확대 속도를 조금이나마 완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기업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는 것이 사실이다. 생산적 복지모델로 주목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한계가 존재한다. 사회적 기업이 고용창출 효과가 있지만 취약계층을 고용하는 것을 넘어서 그들이 더 나은 일자리로 나아갈 수 있는 단계적 일자리로서 기능할 수 있는가의 과제가 존재한다. 또한 사회적 기업을 통해 참여자는 사회적 자본을 축적할 수 있다. 즉 사회적 기업을 통해 사회적으로 배제되고 소외받던 빈곤층이 사회 속으로 포용 및 통합되어 궁극적으로 지역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순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정부나 지자체의 꾸준한 지원과 협력, 그리고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결합이라는 사회적 합의와 연대경험이 축적되지 않는다면 먼 미래의 이상에 불과한 것이다.

사회적 기업이 빈곤의 탈출구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숙제를 풀어야 한다. 크게는 사회적 기업이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사회적 자본을 확대하는 데 기여하는 공공적 기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만약 사회적 기업이 정부라는 온실 속에서 안주하는 것에 만족한다면 사회적 기업의 더 큰 가치, 즉 사회적 자본을 확장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작게는 사회적 기업과 관련해서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 행정안전부의 중첩되는 업무를 통일하는 것, 직접적인 인건비 지원에서 기금 조성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 인증과정에서 지역사회의 평가를 반영하는 것, 그리고 사회적 기업을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는 것 등의 과제가 우선적으로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다. 누가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며, 어떤 가치와 원칙을 가지고 운영해야 하는지가 중요하다. 지역 발전 패러다임의 변화를 고민하는 사람, 사회적 가치와 원칙하에 지역의 필요와 전 지구적 환경의 변화를 간파할 수 있는 사회적 기업가가 없다면 이 새로운 실험은 곧 실패를 마주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 사회적 기업가의 자질을 갖추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지역에 뿌리를 두고 지역의 문제와 필요를 인지하고 있으며, 그 문제를 지역주민들이 민주적인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혁신적인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능력, 세계관, 품성을 갖춘 사회적 기업가의 수가 많을수록 바로 빈곤 탈출구로서 사회적 기업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6. 자원위기 대안은 지역 중심의 분산형 재생에너지 시스템 구축

독일정부는 작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계속된 반핵(反核) 시위에 굴복해 2022년 이전까지 핵발전소 폐기를 규정하는 탈핵(脫核)선언을 했다.

자본주의 세계경제체제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초국적 자본가(transnational capitalist class)에게 국가, 지역, 마을 공동체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이들은 지구적 책임을 외면한 채 세계화의 열매만을 즐기는 소위 ‘유목자본가’(nomadic capitalist)적 삶을 추구하기 때문에 위험하다. 이들은 지구시민으로서 책임을 다하며 서로 연대하고자 하는 시민들의 ‘세계시민의식’(global citizenship)을 약화시킨다. 특히 피크오일을 경험하고 에너지 및 자원 위기라는 장기 비상시대의 도래라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화석연료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기후변화 방지를 위한 전 지구적 노력을 그저 멀찍이서 바라만 보는 형국이다.

탈핵을 선언한 독일의 경험은 자원위기 상황 아래 대안 에너지를 찾고자 하는 한국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독일 핵 정책 전환의 원동력은 무엇보다도 독일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반핵운동과 대안 에너지 실천운동에서 찾는 것이 타당하다.

독일은 1986년 4월 26일 체르노빌 사고 이후 계속해 온 반핵운동으로 마침내 2022년 이전까지 핵발전소 폐기를 규정하는 ‘원자력법’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또한 2011년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대재앙은 독일시민들의 반핵시위 규모를 역사상 최대 규모로 이끌면서 “후쿠시마를 기억하라, 모든 핵발전소를 폐쇄하라”로 번졌다. 후쿠시마 사고 이전까지 핵 발전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과거로 돌아가려 했던 메르켈 총리도 탈핵(脫核)으로 돌아섰다. 그녀는 그 이유를 “후쿠시마 사고가 지금까지의 내 생각을 바꾸었다. 우리에겐 안전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없다”라고 밝혔다. 독일정부의 정책결정은 대안 에너지로의 전환을 모색할 때 미래세대의 안전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정립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독일의 탈핵선언이 주목받는 더 큰 이유는 대안 에너지로의 전환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은 지역을 중심으로 한 ‘분산형 재생가능에너지 체계’를 구축하였고, 이것이 시장 경쟁을 통해서도 핵에너지 체계를 극복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독일정부는 지역주민의 에너지 최소소비 정신을 토대로 기술 혁신을 통해 100% 재생가능에너지 자립 공동체를 건설하고 있다.

안타까운 사실은 서울이 현재 1.5%에도 못 미치는 에너지 자립률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에너지 자립 실천 노력을 하지 않은 채 무조건 탈핵을 선언하는 것은 자원위기의 대안으로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설득하는 데 한계를 보여준다. 이러한 맥락에서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대의명분만을 강조하면서 해당지역 주민에 대한 배려가 부족할 경우도 있음을 또한 주의해야 한다. 선진적인 독일사회도 이런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들은 재생에너지 개발을 위해 삼림과 갯벌을 훼손하면서까지 대규모로 태양광 발전설비를 설치하거나 풍력발전 터빈을 설치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심지어 발전소 건립으로 피해를 볼 수 있는 주민들이 의사결정에서 배제되는 비민주적 모습도 보였다.

이처럼 자원위기의 극복은 정부의 노력이나 기업의 기술혁신만으로 달성할 수 없는 것이다. 지역의 민주적 거버넌스와 더불어 시민들의 자발적인 에너지 소비절약이 결합되어야 한다. 우리 스스로 미시적 차원에서 ‘탄소다이어트’와 에너지 절약 노력을 실천하는 가운데서 자원위기에 대한 대안 에너지를 모색해야 한다.

7. 식량위기는 농민과 소비자가 먹거리 기본권에서 대안 찾아야

보통 식량자급률로 활용되는 곡물자급률의 경우 한국은 2010년 26.7%로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다. 호주(275%), 캐나다(174%), 프랑스(168%), 미국(133%)은 식량자급 국가이다. 이런 나라의 경우 농업이 우선이 아니라 농촌과 농민을 지원하는 것이 우선이다. 식량자급을 이루지 못하고 현재 300만명에도 채 이르지 않는 농민과 농촌을 지원해야 하는 한국의 상황은 식량위기의 심각성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알려준다.

식량위기의 원인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지속적인 인구증가, 에너지 위기로 인한 바이오 연료 사용의 급격한 증가, 예측할 수 없는 기후변화와 그로 인한 자연재해 증가, 그리고 초국적 ‘농식품복합체’(agri-food complex)의 독점과 곡물 투기가 그것이다. 특히 심각한 문제는 곡물거래의 8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곡물메이저들이 종자, 비료, 농약, 농산물 유통, 식품가공 등의 거의 전 분야를 조종할 수 있는 글로벌 식량체계를 구축했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한국정부의 대안은 무엇인가? 그동안 무역을 통해 식량안보 혹은 확보를 달성하겠다는 해외조달 계획은 세계 식량위기 국면에서 그 취약성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거리가 점차 멀어지게 되어 소비자에 대한 고려 없이 생산자가 오직 생산량을 높이는 데만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식품안전성이 위험에 쉽게 노출된다.

인간의 통제와 관리를 넘어서서 농산품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주창한 식량 안보론은 수많은 조건을 괄호 속에 넣고 출발하기 때문에 우리는 하루속히 인권에 근거한 식량주권(food sovereignty) 개념을 활용해야 한다.

한국 농업, 농촌, 농민이 점증하는 식량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은 바로 식량주권 프레임 위에 굳건히 서서 지역식량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는 소규모 가족농이 중심이 되어 영농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을 전제로 한다.

농업정책을 단순히 경제정책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한 단계 더 높은 사회정책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대안으로서 로컬푸드를 주목할 때 지역먹거리 체계를 이루어야 한다. 지역먹거리 체계는 가급적 지역 내에서 생산하고 소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직접적인 연결망을 구축하여, 가격상한 제도와 같은 규칙 아래 이 둘 사이의 신뢰를 더욱 굳건히 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이러한 관계는 결국 농민, 소비자 모두의 복지 증진으로 귀결된다. 구체적 정부 지원사업으로 공공급식의 확대, 기초생활수급자 및 차상위 계층 먹거리 지원, 여성·유아·어린이를 위한 모자 영양공급 프로그램, 푸드뱅크 등을 들 수 있다. 이를 통해 지역의 생산자는 수입을 얻고, 소비자는 안전하고 적정가격의 농산물을 보장받음으로써 지역의 사회적 서비스의 한 축을 이루게 된다.

이제 농민은 ‘밥도 인권이다’라는 슬로건을 높이 들고 시민, 특히 주부와의 연대활동을 강화해야 한다. 주부는 가족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소비의 결정권자이자, 자녀세대의 건강권을 가장 많이 고민하는 주체이다. 결국 소비자의 핵심인 주부와 지역농민의 강력한 파트너십은 지역먹거리 체계를 지키는 중심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8. 분쟁을 막기 위한 시민사회의 초국적 캠페인 절실

소년병을 동원하는 군벌 코니 등에 대한 처벌 못지않게, 소년병들의 사회복귀를 돕는 프로그램 또한 필요하다.

21세기는 결코 평화의 시대가 아닌 전쟁 시대로 시작되었다. 전쟁 원인이 과거에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있었다면, 이제는 경제적 이해관계를 넘어 언어, 혈연, 종교, 심지어 정서적 미움으로까지 다양해졌다. 국가안보를 넘어선 ‘인간안보’(human security) 개념은 경제, 식량, 건강, 환경, 개인의 신체, 공동체 안보, 그리고 정치적 안보까지를 포함한다. 인간안보는 인권증진, 인간개발, 그리고 국가안보가 서로 연결된 개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테러와의 전쟁시대가 이어지면서 인간안보는 군사적 위협에 대한 국가안보만을 강조하는 전통적 안보개념에 발목이 잡혀 있다. 이로 인해 테러와 대테러 전쟁의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분쟁의 세계화를 막고자 시작된 초국적 캠페인 ‘KONY 2012’는 지구시민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었지만 한계도 존재한다. 지나치게 코니 개인 고발과 체포 작전에 초점을 맞춘 나머지 더욱 중요한 내용, 즉 납치된 소년병이 평범한 아이들로 돌아온 후에 어떻게 그들의 안전을 확보하며 지역 공동체에 적응할 수 있게 하는지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눈에 보이는 원인, 즉 반군 지도자 코니를 없애는 것으로는 그 지역 아이들의 인간안보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 오히려 제2, 제3의 코니가 나올 수밖에 없는 분쟁지역의 열악한 상황을 근본부터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함께 모색하고자 국제사회의 지원을 호소하는 전략이 더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분쟁이 끝나면 인간안보가 자연스럽게 달성된다는 순진한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예를 들어, 탈레반 반군의 주 무대인 아프가니스탄의 농민들은 양귀비를 재배하여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국가 정책적으로 보면 아편을 무조건 금지하는 것이 당장 필요해 보인다. 양귀비 재배 이외에 대안이 없는 농민에게 아편 금지 조치는 농민을 죽이는 정책과 같다. 농민에게 대출기회를 늘려 다른 작물을 재배할 수 있게 해주는 동시에 테러와의 전쟁 종결을 선언함으로써 농부들이 치안 걱정 없이 작물재배와 판매에 전념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어야 한다. 분쟁지역의 인간안보를 위해 서구 선진국이 내린 위로부터의 정책결정이 때로는 그들의 안보를 위협하는 역효과를 낳기도 한다.

이제는 그 지역주민들의 목소리에 먼저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전쟁과 분쟁은 인간안보를 파괴시킬 수밖에 없다는 시민사회의 합의와 공통된 가치관의 정립이 필수적이다. 현재 이라크 상황을 볼 때도 민주주의 달성이 아닌 전쟁의 상처로 파괴와 약탈이 반복되고 있어 어느 누구도 승리하였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군사주의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합작품인 분쟁의 세계화를 반대하는 초국적 시민사회 네트워크가 강화되어야 하며, 이것은 반드시 아래로부터의 세계화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또한 이 캠페인은 전쟁 종결이 궁극적 목적이 되어서도 안 되며, 인간안보의 차원에서 분쟁지역의 회복에 필요한 대안을 발굴하고 제시하는 캠페인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연스럽게 지역주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전제로 공적개발원조, 인도주의적 지원, 그리고 공정무역 캠페인 등과 같은 방법을 활용하여야 할 것이다.

9. 이주 시대의 대안 프레임은 이주자 인권

세계화 시대에 국가들 사이의 이주는 매우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현상이다. 20세기 후반부터는 국제 이주의 중심축이 아시아로 옮겨졌으며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고 개방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1990년대 초 이후 20여 년 만에 이주민 150만 시대를 맞게 되었다. 전체 인구 3% 수준에 이르는 이주자들이 한국사회에서 과연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보장받고 있는가? 단순한 포섭 혹은 동화인지 아니면 스스로 인권 프레임을 견지하며 권리를 찾아가고 있는지 살펴볼 때다. 한국정부는 아직까지 유엔 7대 국제인권협약 중의 하나인 ‘모든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보호에 관한 국제협약’에 가입 및 비준조차 하지 않고 있다.

특히 이주여성은 남성들보다 이중 삼중의 차별과 침해를 경험하고 있다. 이주자를 단순히 소수자에 대한 연민의 눈으로 바라만 보고 있지 않은가? 소수자는 구성원의 수가 적음을 의미하기보다는 편견과 차별여부에 달려 있는 개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의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권담론은 2006년 들어 정부가 다문화주의를 공식 정책기조로 선언, 이주노동자의 인권개선보다는 결혼이주 여성과 다문화가정에 대한 지원활동으로 초점을 바꾸면서 담론 역시 인권보다 다문화 담론이 지배하게 되었다.

우리는 아직도 다문화사회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하지 못한 채 이중적 태도를 갖고 있다. 머리로는 다문화를 생각하고 있지만, 몸과 마음은 타문화로 그들과의 거리 두기를 하고 있다. 좀 더 심하게 얘기하면 한국의 다문화정책은 ‘동화주의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한국사회의 다문화는 껍데기만 다문화라고 비판받기도 한다. 정부 주도하에 모든 정책이 진행되었기에 이주민의 목소리가 정책 내에 녹아들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이주자 및 다문화 운동은 빠른 시간 안에 제도화의 길을 걸으면서 운동의 성격이 퇴색되고 결혼이주자 또는 다문화가정에 대한 정부 지원활동을 위탁받은 사업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정부의 이주노동자 정책도 그들의 인권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이기보다는 제도에 순응하고 자신의 권리가 어느 정도 침해되는 것을 잘 인내하는 소위 ‘성실한 노동자’를 양산하는 온정주의 정책으로 후퇴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무늬만 다문화사회를 지향하는 현실에 대한 대안은 무엇인가? 획일적인 문화 보편주의나 상대주의에서 벗어나 ‘인정의 정치학’ 혹은 ‘차이의 정치학’을 구현하는 것, 즉 다문화 담론을 넘어선 보편적 인권 프레임을 우리가 먼저 학습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다. 경제, 사회적 권리가 확보되지 않은 채 단순히 문화에만 초점을 맞춘 사회적응 프로그램이나 지원정책은 그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음을 직시하고 정부의 온정주의적 정책 변화를 촉구해야 한다. 이주자 스스로 먼저 조직화를 이루어야 한다. 시민사회 단체도 관 주도의 제도화 혹은 온정주의적 시혜정책을 대행하는 것이 아니라 이주자 스스로 조직하는 노력들-이주자 노동조합과 국가별 이주자 커뮤니티 형성-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며 그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긴밀한 네트워크를 이루어야 한다.

10. 세계시민으로서의 현장 참여를 윤리적 소비와 마을 공동체에서 찾자

세계시민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일상생활 속에서 다양한 자원봉사활동에 참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특히 어려서부터 참여한 자원봉사활동은 단순히 미션을 수행하는 것을 넘어 능동적인 자세로 사회적 공공선과 윤리적 행위를 실천하는 습관을 갖추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지구시민사회를 책임질 세계시민이 계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는 물론 국가, 학교, 기업, 국제기구가 자원봉사자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이를 제도화해야 한다.

세계시민의 진면목은 국제무대에서 연대와 협력을 견인하는 전문가로 성장하는 것이다. 이들은 청년세대와 기성세대 간의 간극을 넘어설 수 있는 공감의 연대 프로그램을 개발하게 되며, 이념갈등을 넘어설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지역주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지역과 세계 간의 지속가능한 연결망을 구축하게 된다.

현장이라는 미시적 차원으로 눈을 돌려 세계시민의 실천과제를 살펴보자. 2012년 협동조합의 해를 맞이하여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대안경제 모델로 사회적 경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협동조합의 핵심가치는 시장의 순기능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신뢰, 호혜, 공평, 민주주의 등의 가치를 강조한다. 협동조합은 자본주의 기업의 적대자가 아니라 시장의 한계를 보완하는 대안으로서 접근하는 것이다.

그러나 신뢰와 호혜관계 속에서 생산, 유통, 그리고 소비 활동을 지속할 수 있기 위해서는 문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문화는 역사의 산물이며, 장기적으로 체득한 경험과 교육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 소비가 생산을 견인할 수 있음을 주목하면서 소비자 스스로 세계시민 의식을 갖고 사회적 책임, 즉 윤리적 소비자로서의 책임을 감당해야 할 때이다.

사회적 경제의 무대는 우선 지역 혹은 마을 공동체에서 출발해야 한다. 대안세계화를 실천할 때 특별히 마을 공동체를 이루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해진다. 이들은 사회적 가치를 먹고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자발적인 협력활동을 통해 작지만 평화롭고 협력적인 마을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인 것이다.

유럽의 경우, 100년 가까운 협동조합 경험과 역사를 통해 이러한 사람들이 풍성히 자라나고 있다. 이제 유럽의 상황을 그저 부러워하기보다는 우리 사회에서도 그 토양과 자원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우리는 그것을 민주화운동을 견인한 시민사회 경험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사회의 대안을 모색하고자 노력하는 이 헌신적인 활동가들을 사회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음은 참으로 다행이다.

앞으로 사회적 기업 혹은 협동조합이라는 새로운 공간 속에서 헌신에 기초한 혁신의 기나긴 여정을 떠나는 이들의 열정에 박수를 보내며 우리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것이다.

지역 공동체의 경험은 짧지만 이제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 마을기업 등을 통해 마을 공동체 실험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비록 지역에 머물고 있지만 항시 세계시민적 자세를 견지하고 있으며,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대안들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낼 것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희망의 불씨를 계속 살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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