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제실종 이유? 탈북 관련-연좌제-한국 등 외부 접촉-체제 비판 순
⊙ “패고픈 대로 패고, 때리고 싶은 대로 때려”(2019년 탈북민)
⊙ 체포·구금되면 가족들도 생사·행방 몰라
⊙ 주 제네바 북한 대표부에 포스터 광고… ‘한 명만 구속되면 수백만 명 해방’
⊙ “패고픈 대로 패고, 때리고 싶은 대로 때려”(2019년 탈북민)
⊙ 체포·구금되면 가족들도 생사·행방 몰라
⊙ 주 제네바 북한 대표부에 포스터 광고… ‘한 명만 구속되면 수백만 명 해방’
- 11월 6일 주 제네바 북한 대표부 철문에 부착된 광고 포스터. ‘ARREST ONE, SAVE MILLIONS(한 명만 구속되면 수백만 명이 해방될 수 있다)’라는 글귀가 보인다. 사진=이제석광고연구소
북한 강제실종자의 80% 이상이 북한의 비밀경찰·정보기관인 국가보위성 담당하에서 실종된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인권 조사기록 단체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이 지난 10월 31일 공개한 ‘북한 강제실종범죄 조사’ 보고서에 담긴 내용이다.
강제실종은 국가의 지원·묵인 등으로 개인을 납치·감금한 뒤 생사나 소재지를 은폐하는 것을 뜻한다. TJWG는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 62명을 3년 5개월간(2021년 1월~2024년 5월) 심층 면담한 뒤 113명의 강제실종 과정을 확인했다.
탈북민 62명 면담… 113명 강제실종 분석
이들의 강제실종 이유를 분류해 보면 ‘탈북 관련’(45명, 39.8%), ‘연좌제’(29명, 25.7%), ‘한국 등 외부 연락·접촉 혐의’(10명, 8.8%), ‘김정은 일가와 체제 비판 혐의’(8명, 7.1%), ‘종교적 혐의’(6명, 5.3%) 등이었다. 이 중 특히 김씨 일가와 체제 비판 혐의로 체포될 경우 처형이나 정치범수용소 수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서는 짚었다.
보고서는 강제실종이 김정은 시대에도 여전하다고 밝혔다. 보고서가 분석한 실종자 113명 중 35명(31.0%)은 김정은이 집권한 2011년 12월 이후 사라졌다. 김정은 집권 이전과 비교해 강제실종 범죄가 늘었는지 줄었는지 가늠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이 같은 반인권 범죄가 대를 이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은 확인된 셈이다.
실종자의 연령대는 20~30대 청년층이 38.9%(44명)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충격적인 것은 10세 미만 아동도 전체 실종자의 11.5%(13명)나 차지했다는 점이다. 진술인들은 이들 아동의 강제실종 이유로 ‘탈북 시도’ ‘탈북 준비’ ‘연좌제 처벌’ 등을 꼽았다. 보고서는 “부모와의 동반 탈북 시도나 부모와 함께 연좌 처벌돼 강제실종되는 아동들의 문제에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개질의, 명시적 비판, 강력한 행동이 특히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종자 성별은 남성 66명(58.4%), 여성 47명(41.6%)으로 나타났다. 여성 비율은 북한처럼 강제실종이 심각한 중남미(6〜30%)에 비해서도 높은 수치다. 여성 비중이 유독 크게 나타난 이유로는 ▲중국으로 탈북한 뒤 체포·송환된 사례 ▲가족 구성원 체포 당시 여성이 동반 수감되는 연좌제 ▲명시적인 기준 없는 무분별한 강제실종 등이 꼽혔다.
진술을 철회한 1명을 제외하고 면담에 응한 61명의 최종 탈북 연도는 김정은 시기(2012년~현재)가 36명, 김정일 시기(1994~2011년)가 25명이었다. 실종 전 주 거주 지역은 양강도(28명), 함경북도(16명), 평안남도(5명) 순이었으며, 평양 출신도 1명 있었다.
국가보위성, 체포영장 남발
강제실종 피해자를 최초로 체포·연행한 ‘가해 기관’으로는 국가보위성, 국경경비대, 인민군 보위국, 사회안전성, 비사회주의검열그루빠 등이 지목됐다. 실종자 113명 중 절반이 넘는 62명(54.9%)은 국가보위성에 의해 사라졌다. 체포·연행 이후 피해자에 대한 가해 주체를 추적한 결과까지 합산하면 국가보위성이 범죄에 개입한 사례는 92명(81.4%)까지 늘어났다. 국가보위성은 북한 국무위원장 직속 정보기관이자 비밀경찰기관이다. 내각의 통제도 받지 않는다. 무소불위의 권력집단이라 할 수 있다.
체포 이유와 피의사실의 고지를 받을 권리,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독립된 사법부의 통제 등 자유 박탈에 필요한 ‘적법절차’ 전반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2016년 황해북도 사리원시에서 패싸움에 연루된 한 남성이 임의동행으로 집을 나섰다가 실종된 사건이 발생했다. 한 진술인은 이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도(道)보위부와 시(市)보위부 사람, 동 담당 보위원이 연행하러 온 거예요. 와서 족쇄를 채우지는 않고, ‘그냥 알아볼 것이 있으니까 잠깐 가자, 옷 입고 나와라, 문을 다 잠그라’ 해가지고 차 태워서 갔는데 그게 마지막이었다는 거예요. 다시는 못 돌아왔다는 거예요.”
중국산 휴대전화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여러 번 조사를 받은 적 있다는 한 진술인은 국가보위성 관계자와 임의동행하고서 상황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이렇게 설명했다. 이 진술인은 2019년 양강도 혜산시에서 탈북했다고 밝혔다.
“(무엇 때문에 데리고 가는지) 이야기 안 해주죠. 집에 와서 ‘알아볼 게 있는데 같이 가자’ 하면, 저 같은 경우는 ‘어디서 잘못됐네’ 생각하죠. 그래서 무슨 일이냐고 물으면 ‘일단 확인할 게 있어서 그러니까 같이 가자’ 해서 들어가면 그제야 이야기를 하거든요. ‘너 중국 핸드폰 내놔라.’ 없다고 하면 그다음부터 패고픈 대로 패고, 때리고 싶은 대로 때리죠.”
진술처럼 북한에서는 체포·연행 단계에서부터 강제실종이 시작되는 경우가 흔하다. 북한의 형사소송법은 영장 없는 체포를 금지하고 있다. 다만, 영장은 사법부 재판관이 아니라 검사가 발급할 수 있게 했다. 수사기관이 법원 승인 없이 사람을 체포할 수 있다는 뜻이다. 더욱이 국가보위성은 자체적으로 검찰국을 보유하고 있어 국가보위성 소속 수사원이 신청만 한다면 얼마든지 체포영장을 남발할 수 있는 구조다. 그러나 김정은 말 한마디에 국가 조직 전체가 좌우되는 북한 현실에서 이마저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피구금자 생사·행방 몰라
국가보위성에 의해 체포·연행되면 피해자의 생사나 행방은 그야말로 오리무중(五里霧中)이 된다. 보고서에 따르면, 진술인들은 인맥을 동원하거나 뇌물을 바치는 등 불법 수단을 동원하지 않고는 면회는커녕 피구금자의 소재나 생사조차 알기 어렵다고 한다. 또 당국에 문제나 의문을 제기할 생각도 하기 어렵다고 한다. 문제를 제기했다가 본인들도 끌려가 강제실종될까 두렵기 때문이다.
북한 형사소송법은 ‘체포, 구속처분결정을 하였을 경우에는 피심자에게 알려주며 체포, 구속한 때부터 48시간 안으로 체포, 구속의 사유와 구속장소를 그의 가족과 소속단체, 해당 사회안전기관에 알려준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이 또한 유명무실이다.
2011년 함경북도 온성군에서 형부와 함께 체포됐다가 조사받고 혼자 풀려난 한 진술인은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자신이 체포돼 있었다는 사실을 가족들이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진술인의 말이다.
“(중국에 갔다가 돌아오기로 한 날짜가) 지나도 안 오니 집에선 속 타는 거죠. 5일 더 지나도 안 오니까 (우리 가족은) ‘분명 무슨 일이 생겼다’고만 생각했대요.”
2000년 양강도 혜산시에서는 중국으로 북한 서적을 넘겨 팔던 한 남성이 밤중에 끌려간 일이 있었다고 한다. 진술인에 따르면, 그의 친척 중 한 명이 보위지도원들을 잘 알고 있어서 부탁해 보니 그가 구금된 사실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2015년 중국에서 북송된 아들이 함경북도 청진시 도보위부에 구금된 것을 보위부에서 근무하는 지인을 통해 알게 된 한 진술인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도보위부는 면회 같은 거 없어요. (아들이) 결핵이 왔는데 서 있는 것도 힘들어한다는 거에요. 그 보위부에 있는 사람 통해서 돈 줘서 알아보니까 자기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거지. 그래서 ‘빼어만 달라, 요구하는 돈을 여기서 어떻게든 내보낼 테니까 빼어만 달라’ 사정해도 힘들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런데 몇 달 있다가 다시 알아보니까 완전히 다 죽어가는 사람을 정치범수용소로 보냈다고 그러는 거예요. 살 것 같지 못하다고 그러더라고요.”
국가보위성 담당하에 구금 중이던 사람이 사망한 것으로 진술인이 이해한 사례는 총 9건이었다. 이 중 2건만 사망 통보를 받고 나머지 7건은 사망 통보조차 받지 못했다. 그마저도 9건 중 8건은 당국이 가족에게 시신을 인도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고 시신 인도 사례는 1건에 그쳤다.
탈북주민 강제실종엔 러·중도 책임
보고서는 23명(20.4%)의 강제실종이 중국과 러시아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분석했다. 따라서 중국과 러시아 정부도 강제실종 범죄에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은 국제사회의 우려와 비판에도 1990년대 이후 한결같이 탈북 난민을 검거해 북송하는 정책을 유지해 왔다. 북한이 코로나–19로 2020년 1월 국경을 전면 봉쇄해 강제송환을 중단한 상황에서도 중국 당국은 중국 내 각지에 머물던 탈북민을 감시했고, 이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경우 검거하거나 구금해 왔다. 그리고 2023년 북한이 국경 일부를 다시 열자 이들의 강제송환을 재개했다. 2023년 10월경 중국은 탈북민 500~600명을 대거 북송했다.
러시아 정부는 북한 사람에게 난민 지위 인정심사 신청을 원천봉쇄하지는 않으며, 일부는 제3국을 통해 한국으로 보내지기도 한다. 하지만 러시아 인권단체 시민지원위원회에 따르면, 2011~19년 북한 사람 207명이 러시아에서 난민 지위 신청을 했으나 러시아 당국은 그중 2011년 1명에게만 난민 지위를 부여했다. 같은 기간 북한 사람 305명이 임시망명을 신청해 213명만 승인받았는데, 임시망명 신청 건수도 2011년 43건, 2012년 64건에서 2018년 23건, 2019년 20건으로 감소했다. 러시아 법원은 북한 사람에게 추방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러시아 내 북한 국가보위성 요원에게 인계해 북송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北 극단적 군사화로 기본 자유 억압”
우리 정부는 지난 11월 7일 스위스 유엔 제네바 사무소에서 열린 북한의 제4주기 ‘보편적 전례 인권검토(UPR)’ 에서 북한 인권 실태에 일침을 가했다. UPR은 유엔 회원국 193개국이 돌아가면서 자국의 인권 상황과 권고 이행 여부 등을 동료 회원국에 심의받는 제도다.
외교부·통일부·법무부 북한인권기록보존소 관계자로 이루어진 정부 대표단은 이 자리에서 “북한이 극단적 군사화로 기본적 자유를 억압하고 부족한 자원을 북한 주민의 민생이 아닌 불법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탕진하고 있을 뿐 아니라 노동 착취마저 이뤄지고 있다”고 직격했다.
이어 억류자와 강제송환 탈북민 문제에 대해서도 따져 물었다. 정부 대표단은 “북한은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이산가족 문제를 즉각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라며 북한에 10년 넘게 억류된 김정욱·김국기·최춘길 선교사 등 우리 국민 6명의 신속한 석방을 촉구했다. 여성과 여아를 포함한 강제송환 탈북민들이 고문과 같은 비인도적 대우를 받지 않도록 할 것도 권고했다.
반면 북한은 이를 전면 부인했다. 북한 대표단 수석대표인 조철수 주 제네바 북한 대표부 대사가 ‘중앙재판소 디렉터’라고 소개한 박광호 국장은 이날 사법 분야 답변에서 “공화국에는 정치범도, 정치범수용소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에서 이른바 정치범수용소를 운운하는데 우리 형법과 형사소송법에는 정치범이나 정치범수용소라는 표현이 없으며 반국가범죄자와 교화소만 있을 뿐”이라고 했다. 또 정치범수용소나 교화소에서 온갖 고문·학대를 겪은 경험을 국제사회에 알린 다수 탈북자에 대해서는 “비법적으로 국경을 넘는 이들 중 대다수는 훈계하고 다시 안착할 수 있게 돌봤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악행을 일삼다가 쫓겨난 자들과 조국을 배반하다 못해 전복하려는 ‘인간쓰레기’들도 있다. 이들은 준엄한 심판을 결코 면할 수 없다”고 했다.
‘철창 속 김정은’ 공익 포스터
한편 UPR을 하루 앞둔 6일, 수의(囚衣)를 입고 철창 속에 갇힌 김정은의 모습이 담긴 광고 포스터가 제네바 북한 대표부 건물 문에 부착됐다. 북한인권 전문 민간단체 PSCORE와 이제석광고연구소가 공동으로 북한의 인권 탄압에 항의하고 그 실태를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한 공익광고 포스터를 제작해 주 제네바 북한 대표부 철문에 부착하는 공익 캠페인을 벌인 것이다.
포스터에는 수의 차림의 철창 속 김정은 모습 옆에 ‘한 명만 구속되면 수백만 명이 해방될 수 있다(ARREST ONE, SAVE MILLIONS)’라고 영어로 썼다.
앞서 10월 29일에는 제네바 북한 대표부 앞에서 우리 측 북한인권 단체들의 피켓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국제탈북민연대, 징검다리, 보이스오브노스코리안유스(Voice of North Korean Youth), 국군포로가족회,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등은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의 점검 허용 ▲국제사회의 구호물자 반입 및 국제기구 실사 허용 ▲정치범수용소·성분제 폐지 ▲반동사상문화배격법·청년교양보장법·평양문화어보호법 등 3대 악법 폐지 등을 북한에 촉구했다.⊙
강제실종은 국가의 지원·묵인 등으로 개인을 납치·감금한 뒤 생사나 소재지를 은폐하는 것을 뜻한다. TJWG는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 62명을 3년 5개월간(2021년 1월~2024년 5월) 심층 면담한 뒤 113명의 강제실종 과정을 확인했다.
탈북민 62명 면담… 113명 강제실종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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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관련’ 혐의가 강제실종의 가장 주된 이유로 지목됐다. 사진=《존재할 수 없는 존재》 |
보고서는 강제실종이 김정은 시대에도 여전하다고 밝혔다. 보고서가 분석한 실종자 113명 중 35명(31.0%)은 김정은이 집권한 2011년 12월 이후 사라졌다. 김정은 집권 이전과 비교해 강제실종 범죄가 늘었는지 줄었는지 가늠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이 같은 반인권 범죄가 대를 이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은 확인된 셈이다.
실종자의 연령대는 20~30대 청년층이 38.9%(44명)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충격적인 것은 10세 미만 아동도 전체 실종자의 11.5%(13명)나 차지했다는 점이다. 진술인들은 이들 아동의 강제실종 이유로 ‘탈북 시도’ ‘탈북 준비’ ‘연좌제 처벌’ 등을 꼽았다. 보고서는 “부모와의 동반 탈북 시도나 부모와 함께 연좌 처벌돼 강제실종되는 아동들의 문제에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개질의, 명시적 비판, 강력한 행동이 특히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종자 성별은 남성 66명(58.4%), 여성 47명(41.6%)으로 나타났다. 여성 비율은 북한처럼 강제실종이 심각한 중남미(6〜30%)에 비해서도 높은 수치다. 여성 비중이 유독 크게 나타난 이유로는 ▲중국으로 탈북한 뒤 체포·송환된 사례 ▲가족 구성원 체포 당시 여성이 동반 수감되는 연좌제 ▲명시적인 기준 없는 무분별한 강제실종 등이 꼽혔다.
진술을 철회한 1명을 제외하고 면담에 응한 61명의 최종 탈북 연도는 김정은 시기(2012년~현재)가 36명, 김정일 시기(1994~2011년)가 25명이었다. 실종 전 주 거주 지역은 양강도(28명), 함경북도(16명), 평안남도(5명) 순이었으며, 평양 출신도 1명 있었다.
국가보위성, 체포영장 남발
강제실종 피해자를 최초로 체포·연행한 ‘가해 기관’으로는 국가보위성, 국경경비대, 인민군 보위국, 사회안전성, 비사회주의검열그루빠 등이 지목됐다. 실종자 113명 중 절반이 넘는 62명(54.9%)은 국가보위성에 의해 사라졌다. 체포·연행 이후 피해자에 대한 가해 주체를 추적한 결과까지 합산하면 국가보위성이 범죄에 개입한 사례는 92명(81.4%)까지 늘어났다. 국가보위성은 북한 국무위원장 직속 정보기관이자 비밀경찰기관이다. 내각의 통제도 받지 않는다. 무소불위의 권력집단이라 할 수 있다.
체포 이유와 피의사실의 고지를 받을 권리,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독립된 사법부의 통제 등 자유 박탈에 필요한 ‘적법절차’ 전반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2016년 황해북도 사리원시에서 패싸움에 연루된 한 남성이 임의동행으로 집을 나섰다가 실종된 사건이 발생했다. 한 진술인은 이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도(道)보위부와 시(市)보위부 사람, 동 담당 보위원이 연행하러 온 거예요. 와서 족쇄를 채우지는 않고, ‘그냥 알아볼 것이 있으니까 잠깐 가자, 옷 입고 나와라, 문을 다 잠그라’ 해가지고 차 태워서 갔는데 그게 마지막이었다는 거예요. 다시는 못 돌아왔다는 거예요.”
중국산 휴대전화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여러 번 조사를 받은 적 있다는 한 진술인은 국가보위성 관계자와 임의동행하고서 상황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이렇게 설명했다. 이 진술인은 2019년 양강도 혜산시에서 탈북했다고 밝혔다.
“(무엇 때문에 데리고 가는지) 이야기 안 해주죠. 집에 와서 ‘알아볼 게 있는데 같이 가자’ 하면, 저 같은 경우는 ‘어디서 잘못됐네’ 생각하죠. 그래서 무슨 일이냐고 물으면 ‘일단 확인할 게 있어서 그러니까 같이 가자’ 해서 들어가면 그제야 이야기를 하거든요. ‘너 중국 핸드폰 내놔라.’ 없다고 하면 그다음부터 패고픈 대로 패고, 때리고 싶은 대로 때리죠.”
진술처럼 북한에서는 체포·연행 단계에서부터 강제실종이 시작되는 경우가 흔하다. 북한의 형사소송법은 영장 없는 체포를 금지하고 있다. 다만, 영장은 사법부 재판관이 아니라 검사가 발급할 수 있게 했다. 수사기관이 법원 승인 없이 사람을 체포할 수 있다는 뜻이다. 더욱이 국가보위성은 자체적으로 검찰국을 보유하고 있어 국가보위성 소속 수사원이 신청만 한다면 얼마든지 체포영장을 남발할 수 있는 구조다. 그러나 김정은 말 한마디에 국가 조직 전체가 좌우되는 북한 현실에서 이마저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피구금자 생사·행방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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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1일 발간된 《존재할 수 없는 존재》 보고서. 사진=전환기정의워킹그룹 |
북한 형사소송법은 ‘체포, 구속처분결정을 하였을 경우에는 피심자에게 알려주며 체포, 구속한 때부터 48시간 안으로 체포, 구속의 사유와 구속장소를 그의 가족과 소속단체, 해당 사회안전기관에 알려준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이 또한 유명무실이다.
2011년 함경북도 온성군에서 형부와 함께 체포됐다가 조사받고 혼자 풀려난 한 진술인은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자신이 체포돼 있었다는 사실을 가족들이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진술인의 말이다.
“(중국에 갔다가 돌아오기로 한 날짜가) 지나도 안 오니 집에선 속 타는 거죠. 5일 더 지나도 안 오니까 (우리 가족은) ‘분명 무슨 일이 생겼다’고만 생각했대요.”
2000년 양강도 혜산시에서는 중국으로 북한 서적을 넘겨 팔던 한 남성이 밤중에 끌려간 일이 있었다고 한다. 진술인에 따르면, 그의 친척 중 한 명이 보위지도원들을 잘 알고 있어서 부탁해 보니 그가 구금된 사실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2015년 중국에서 북송된 아들이 함경북도 청진시 도보위부에 구금된 것을 보위부에서 근무하는 지인을 통해 알게 된 한 진술인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도보위부는 면회 같은 거 없어요. (아들이) 결핵이 왔는데 서 있는 것도 힘들어한다는 거에요. 그 보위부에 있는 사람 통해서 돈 줘서 알아보니까 자기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거지. 그래서 ‘빼어만 달라, 요구하는 돈을 여기서 어떻게든 내보낼 테니까 빼어만 달라’ 사정해도 힘들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런데 몇 달 있다가 다시 알아보니까 완전히 다 죽어가는 사람을 정치범수용소로 보냈다고 그러는 거예요. 살 것 같지 못하다고 그러더라고요.”
국가보위성 담당하에 구금 중이던 사람이 사망한 것으로 진술인이 이해한 사례는 총 9건이었다. 이 중 2건만 사망 통보를 받고 나머지 7건은 사망 통보조차 받지 못했다. 그마저도 9건 중 8건은 당국이 가족에게 시신을 인도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고 시신 인도 사례는 1건에 그쳤다.
탈북주민 강제실종엔 러·중도 책임
보고서는 23명(20.4%)의 강제실종이 중국과 러시아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분석했다. 따라서 중국과 러시아 정부도 강제실종 범죄에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은 국제사회의 우려와 비판에도 1990년대 이후 한결같이 탈북 난민을 검거해 북송하는 정책을 유지해 왔다. 북한이 코로나–19로 2020년 1월 국경을 전면 봉쇄해 강제송환을 중단한 상황에서도 중국 당국은 중국 내 각지에 머물던 탈북민을 감시했고, 이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경우 검거하거나 구금해 왔다. 그리고 2023년 북한이 국경 일부를 다시 열자 이들의 강제송환을 재개했다. 2023년 10월경 중국은 탈북민 500~600명을 대거 북송했다.
러시아 정부는 북한 사람에게 난민 지위 인정심사 신청을 원천봉쇄하지는 않으며, 일부는 제3국을 통해 한국으로 보내지기도 한다. 하지만 러시아 인권단체 시민지원위원회에 따르면, 2011~19년 북한 사람 207명이 러시아에서 난민 지위 신청을 했으나 러시아 당국은 그중 2011년 1명에게만 난민 지위를 부여했다. 같은 기간 북한 사람 305명이 임시망명을 신청해 213명만 승인받았는데, 임시망명 신청 건수도 2011년 43건, 2012년 64건에서 2018년 23건, 2019년 20건으로 감소했다. 러시아 법원은 북한 사람에게 추방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러시아 내 북한 국가보위성 요원에게 인계해 북송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北 극단적 군사화로 기본 자유 억압”
우리 정부는 지난 11월 7일 스위스 유엔 제네바 사무소에서 열린 북한의 제4주기 ‘보편적 전례 인권검토(UPR)’ 에서 북한 인권 실태에 일침을 가했다. UPR은 유엔 회원국 193개국이 돌아가면서 자국의 인권 상황과 권고 이행 여부 등을 동료 회원국에 심의받는 제도다.
외교부·통일부·법무부 북한인권기록보존소 관계자로 이루어진 정부 대표단은 이 자리에서 “북한이 극단적 군사화로 기본적 자유를 억압하고 부족한 자원을 북한 주민의 민생이 아닌 불법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탕진하고 있을 뿐 아니라 노동 착취마저 이뤄지고 있다”고 직격했다.
이어 억류자와 강제송환 탈북민 문제에 대해서도 따져 물었다. 정부 대표단은 “북한은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이산가족 문제를 즉각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라며 북한에 10년 넘게 억류된 김정욱·김국기·최춘길 선교사 등 우리 국민 6명의 신속한 석방을 촉구했다. 여성과 여아를 포함한 강제송환 탈북민들이 고문과 같은 비인도적 대우를 받지 않도록 할 것도 권고했다.
반면 북한은 이를 전면 부인했다. 북한 대표단 수석대표인 조철수 주 제네바 북한 대표부 대사가 ‘중앙재판소 디렉터’라고 소개한 박광호 국장은 이날 사법 분야 답변에서 “공화국에는 정치범도, 정치범수용소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에서 이른바 정치범수용소를 운운하는데 우리 형법과 형사소송법에는 정치범이나 정치범수용소라는 표현이 없으며 반국가범죄자와 교화소만 있을 뿐”이라고 했다. 또 정치범수용소나 교화소에서 온갖 고문·학대를 겪은 경험을 국제사회에 알린 다수 탈북자에 대해서는 “비법적으로 국경을 넘는 이들 중 대다수는 훈계하고 다시 안착할 수 있게 돌봤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악행을 일삼다가 쫓겨난 자들과 조국을 배반하다 못해 전복하려는 ‘인간쓰레기’들도 있다. 이들은 준엄한 심판을 결코 면할 수 없다”고 했다.
‘철창 속 김정은’ 공익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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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6일 유엔 제네바 사무국 앞에 걸린 김정은 광고 포스터. 사진 속 인물은 우크라이나 출신 모델 마리아 첼노주코바(서울 락스퍼국제영화제 홍보대사·오른쪽)씨. 사진=허은도 감독 |
포스터에는 수의 차림의 철창 속 김정은 모습 옆에 ‘한 명만 구속되면 수백만 명이 해방될 수 있다(ARREST ONE, SAVE MILLIONS)’라고 영어로 썼다.
앞서 10월 29일에는 제네바 북한 대표부 앞에서 우리 측 북한인권 단체들의 피켓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국제탈북민연대, 징검다리, 보이스오브노스코리안유스(Voice of North Korean Youth), 국군포로가족회,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등은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의 점검 허용 ▲국제사회의 구호물자 반입 및 국제기구 실사 허용 ▲정치범수용소·성분제 폐지 ▲반동사상문화배격법·청년교양보장법·평양문화어보호법 등 3대 악법 폐지 등을 북한에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