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동행취재

민간 對北풍선 원조 이민복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 대표

“對北 풍선은 레이더에 안 잡히고 소리도 없어. 조용히 날리면 아무 문제 없다”

글 : 이경훈  월간조선 기자  liberty@chosun.com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대북 풍선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
⊙ 콘돔보다 얇은 0.03mm 두께 풍선에 전단 13만 장 매달아 5000m 상공서 살포
⊙ 北, 자존심 때문에 값비싼 수소에 오물 담아 보내… 南에 사상적으로 진 것
⊙ 백령도서 풍선 날리면 편서풍 타고 평양 거쳐 나진·선봉까지 날아가
⊙ 이재명의 경기도, 2020년 6월 이씨 거주 시·군 위험 구역 설정 후 차량·풍선 장비 영치
⊙ 임영웅, K-POP보단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가 더 北에 효과적
⊙ 강원 철원 출장 왔다가 전단 보고 6·25에 대해 의문 갖고는 脫北
⊙ 1996년 결혼했으나 풍선 때문에 이혼, 2013년 재혼했으나 또 이혼 위기
⊙ ‘탈북자’란 용어 만든 1호 유엔 難民… 이중건이라는 가명으로 《월간조선》 1994년 4월호에 등장
  북한이 지난 5월 28~29일(약 260개) 수소가스를 채운 고무풍선에 오물과 쓰레기를 매달아 북풍(北風)에 실어 남한으로 날려보냈다. 6월 1~2일(약 720개), 9일(약 330개)에도 오물 풍선이 날아왔다.
 
  지난 5월 29일 경남 거창군 한 논두렁에서는 북한이 날린 것으로 추정되는 오물 풍선이 원형 그대로 발견됐다. 중부 전선에서 거창까지는 직선거리로 약 280km. 발견된 고무풍선의 지름은 3~4m였는데 풍선에는 오물과 쓰레기가 담긴 비닐이 매달려 있었다. 타이머와 함께 비닐을 녹이기 위한 열선(熱線)이 비닐을 감싸고 있었다. 미리 설정된 시각에 맞춰 열선이 작동하면 비닐이 녹아 오물과 쓰레기가 공중에 흩날리도록 만든 것이다.
 
 
  “오물 풍선, 北이 지고 들어온 것”
 

  북한이 오물 풍선을 날린 의도와 풍선의 수준을 알고자 같은 날 오후 민간인 대북(對北) 풍선 원조 이민복(李民馥·66)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 대표(대북풍선단장)에게 연락했다. 이 대표는 2004년부터 민간 차원에서 대북 전단을 담은 풍선(이하 풍선)을 보내는 운동을 처음 시작했다.
 
  이 대표는 “풍선에 담긴 내용물이 공중에서 퍼지지 않고 ‘덩어리’째 추락했다. 이는 실패한 것”이라며 두 가지를 지적했다.
 
  “오물과 쓰레기는 공짜지만 북한에서 수소는 쉽게 구할 수 없는 값비싼 자원입니다. 일종의 자존심을 앞세워 오물을 보냈지만, 이는 북한이 사상적으로 남한에 완전히 지고 들어온 것입니다.”
 
  우리는 원유 정제 과정에서 수소가스가 부산물로 생겨 수소 확보가 비교적 쉽다. 하지만 북한은 관련 기반 산업이 빈약해 물을 전기분해하는 방식으로 수소를 생산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큰 비용이 들어 수소를 대량으로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이민복 대표는 “풍선은 남에서 보내든 북에서 보내든 원리는 같다”며 “원리를 모르면 실패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에게 ‘풍선을 언제 또 보낼 계획이냐’고 물었다. 그는 “(정해진 건 없다.) 바람만 맞으면 언제든 보낸다”고 했다.
 
  앞서 이 대표는 지난 4월 23일 대북 풍선 활동을 재개해 전단 50만 장을 날렸다. 지난 5월 15일과 30일에는 각각 풍선 16개(약 48만 장), 22개(약 66만 장)를 보냈다.
 
 
  6년 동안 풍선 보내지 못해
 
  이 대표는 2018년 ‘4·27 판문점 선언’ 이후 6년 가까이 대북 풍선을 보내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가 남북 간 긴장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이 대표의 풍선 운동을 막았기 때문이다.
 
  2020년 12월에는 ‘김여정 하명법’이라는 멸칭(蔑稱)이 붙은 ‘대북전단금지법(남북관계발전법 일부 개정 법률[24조 1항 3호])’까지 생겼다. 2023년 9월 26일 헌법재판소는 대북전단금지법이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한다”며 위헌(재판관 7:2) 결정을 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 5월 20일 출간한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에서 “수준이 저열한 대북 전단은 우리 자신을 부끄럽게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지난 6월 1~2일에도 오물 풍선을 날렸다. 다음 날(3일) 이 대표에게 연락해 ‘풍선을 언제 날릴 예정이냐’고 또 물었다. 그는 “바람이 맞지 않다. 일단 지켜보자”고 했다. 이틀 뒤에 다시 연락해 ‘내일(6일)은 날릴 것이냐’고 물었지만 “풍속이 약하다”는 답을 들었다.
 
  이 대표에게 ‘전화 인터뷰라도 하자’고 했다. 그는 “그간 인터뷰는 할 만큼 했다. 뻔한 인터뷰는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 인터뷰를 하고 싶으면 ‘풍선기지’로 와 풍선의 원리를 먼저 이해하고 취재를 해라”고 했다.
 
  이 대표는 대북 풍선을 날리는 일부 단체와 자신을 단순히 비교하는 취재에는 응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20년간 사명감 하나로 묵묵히 조용하게 풍선을 날려왔지만, 정치적·경제적 목적을 갖고 풍선을 날리는 일부 단체 때문에 오히려 풍선 운동의 의미가 퇴색되고 사회적으로 ‘악마화’가 되었다.
 
  이 대표가 말하는 풍선기지는 그의 생활 공간이자 풍선을 날리는 데 필요한 장비·물자를 보관하는 곳이다. 수소가스를 담는 탱크로리와 이를 적재할 트럭, 전단, 타이머 등이 보관돼 있다.
 
  6월 11일 이 대표가 알려준 주소로 찾아갔으나 풍선기지를 찾는 건 쉽지 않았다.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확인했지만, 지도상에는 길이 나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포장 길을 따라 무작정 올라가니 CCTV 여러 대가 설치된 허름한 컨테이너 건물이 보였다. 풍선기지일 것 같다는 직감이 왔다. 기지에 도착하니 이 대표의 신변을 보호하는 경찰이 기자를 맞았다.
 
 
  백령도서 철수한 뒤 경기 북부로
 
이민복 대표는 풍선의 원리를 알기 위해선 우선 바람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백령도가 풍선을 날리기에 가장 좋은 곳이라고 했다.
  이민복 대표는 기자에게 컨테이너 건물 2층으로 올라가 있으라고 했다. 이 컨테이너는 2010년 천안함 폭침(2010년 3월 26일) 이후 이 대표가 백령도에 풍선기지를 만들었을 때 썼다. 대북 풍선 최고의 적지는 백령도이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2011년 일부 단체가 백령도에서 공개적으로 풍선 날리는 행사를 하는 바람에 현지 주민들이 반발했기 때문이다. 연평도 포격 도발(2011년 11월 23일) 이후 반년가량 지난 시점이었다. 주민 반대로 수소가스를 담은 차량이 섬에 들어갈 수 없게 되자 ‘조용히 풍선을 날렸던’ 이 대표는 평당 만원씩 주고 산 400평 백령도 풍선기지를 포기하고 이곳으로 옮겼다.
 
  이민복 대표는 “대면 인터뷰는 6년 만에 처음”이라고 했다. 인터뷰 중간중간에 여러 언론에서 이 대표에게 연락을 했다. 이들은 ‘풍선을 언제 날릴 것이냐’고 물었고 이 대표는 “바람이 맞아야 날린다”는 말만 반복했다. ‘다른 단체는 풍선을 날린다는데 왜 당신은 날리지 않느냐’는 식의 질문도 있었다. ‘풍선’과 ‘바람’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이 대표의 대답은 추상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었을 테다.
 
  — 다른 단체도 북한으로 풍선을 보냅니다. ‘이민복의 방식’과 ‘이민복 이외의 방식’이 다른 겁니까.
 
  “‘이민복 이외의 방식’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풍선은 과학 원리에 기초해 날아갑니다. 저는 시행착오를 거치며 과학적으로 풍선을 보낼 방법을 완성했어요. 원리를 알고 나면 어려울 게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대북 풍선 운동을 하는 단체는 얼마나 될까. 경찰에 따르면 약 50개에 이른다고 한다. 일부는 취미 삼아, 또 일부는 후원금을 목적으로 풍선을 날린다.
 
  이 대표는 “풍선은 금속이 아니기에 레이더에 잡히지 않고, 열을 내뿜지도 않는다. 소리도 없다. 곧장 하늘로 솟구쳐 대낮에도 5분만 지나면 맨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다”며 “조용히, 정확하게만 날리면 문제 될 게 없다. 자기 활동을 선전할 목적으로, 바람도 무시한 채 떠들썩하게 날리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바람 무시하고 날리면 남한, 일본으로 날아가
 
  그는 “풍선을 언제, 어디서 날렸는지 공개하지 않으면 북한이 풍선을 문제 삼기가 쉽지 않다”며 “공개적인 활동은 북한이 도발할 명분을 준다. 풍선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문제가 생기는 공개적이고 자극적인 풍선을 보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바람을 고려하지 않고 당 창건일이나 김일성·김정일 부자(父子) 생일에 맞춰 이벤트처럼 풍선을 날리면 자칫 이 풍선은 남한, 심지어 일본으로 날아갑니다. 대북 풍선은 북으로 가야 합니다.”
 
  — 풍선을 북한으로 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세 가지 조건이 모두 맞아야 합니다. ▲북한으로 향하는 바람(풍향, 풍속) ▲손상되지 않은 풍선 ▲정확한 타이머가 있어야 하죠.”
 
  — 자세히 설명해주십시오.
 
  “풍선의 동력은 바람입니다. 어디로 날아갈지는 풍향과 풍속이 결정하죠. 북풍이 불면 아무리 풍선을 북으로 보내고 싶어도 보낼 수 없어요. 그럼에도 보낸다면 남한 홍천강에서 발견된 풍선들처럼 남쪽에 떨어지겠죠.”
 
  이 대표는 스마트폰을 들고는 항공기상청 홈페이지로 들어가 풍향에 대해 설명했다.
 
  “대북 풍선의 적정 고도는 3000~ 5000m인데 이것은 항공기상청의 슈퍼컴퓨터로 계산된 자료에만 있어요. 이걸 확인하지 않으면 전문가라고 할 수 없습니다. 보통 일기예보는 지상 10m 자료만 나오는데 이걸 보고 시도하는 아마추어들은 대부분 실패합니다. 북한이 아니라 남한과 일본에서까지 풍선이 발견되지요.”
 
  — 왜 3000~5000m에서 날아가도록 합니까.
 
  “풍선이 고도 5000m를 넘어가면 강한 제트기류에 휘말려 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
 
 
  초속 10m 바람이면 3시간 뒤 평양 도착
 
2009년 1월 이민복 대표의 아들이 강화도에서 풍선 날리는 것을 돕고 있다. 전단 뭉치에는 후원자의 이름과 번호가 적혀 있다. 사진=이민복 대표
  — 풍선을 날리는 데 필요한 최소 풍속이 있습니까.
 
  “초속 10m 이상이면 좋습니다. 이 속도면 1시간에 약 36km를 날아갑니다. 중부 전선에서 평양까지 약 120km인데, 3시간가량 비행하면 됩니다. 평양을 목표로 전단을 살포하려면 100km가량 날아간 후 평양을 약 20km 남긴 지점 상공에서 전단 뭉치가 터져야 합니다. 전단이 바람을 타고 대각선으로 흩날리며 평양에 떨어지죠. 풍속이 5m라면 풍향이 좋아도 풍선을 보내지 않습니다.”
 
  ‘한반도는 편서풍이 많이 불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이 대표가 벽에 걸린 한반도 전도(全圖) 앞에 섰다.
 
  “한반도는 서쪽에서 바람(편서풍)이 많이 불어와요. 이 때문에 백령도, 연평도가 풍선을 날리기엔 가장 좋죠. 백령도에서 풍선을 날리면 평양으로 곧장 들어갑니다. 바람만 좋으면 러시아 국경 바로 앞인 나진선봉지구까지 날아갑니다. 한 탈북자는 양강도에서 군 복무를 했는데 복무 시절 전단을 봤다고 했습니다. 백령도에서 철수한 게 두고두고 아쉽습니다.”
 
  — 풍선 날리기에 좋지 않은 곳도 있습니까.
 
  “서부 전선 일대, 임진각이 가장 안 좋죠. 이곳은 중부나 동부 전선보다 위도가 낮아 풍선이 남서풍을 타고 동북쪽으로 날아가더라도 휴전선을 넘지 못하고 포천·연천·철원 등지에 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임진각에서 풍선을 날리는 이유는 기자들이 쉽게 찾아올 수 있고 장소가 주는 상징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북풍에 풍선을 실어 보내기 위해 중국에도 풍선기지를 만들기 위해 수천만원을 들였으나 뜻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 바람이 알맞아 풍선을 날리고자 현장에 갔는데 기상이 변하면 허탈하지 않습니까.
 
  “허탈할 게 뭐 있나요. 하늘이 그런 걸 어떡하겠어요.”
 
 
  수소가스를 절반만 채우는 이유
 
  이민복 대표가 날리는 풍선과 다른 단체가 날리는 것을 비교하면 모양부터 다르다. 다른 풍선단체들은 팽팽하게 가스를 채우고 아래를 묶기도 한다. 하지만 이 대표 풍선은 너비둘레가 4m, 길이는 14m인데 절반쯤만 가스를 채우고 아래를 묶지 않는다.
 
  따라서 아랫단은 홀쭉하다.
 
  — 왜 수소가스를 다 채워 넣지 않습니까. 가득 채워야 부력이 커져 더 많은 전단을 보낼 수 있는 것 아닙니까.
 
  “풍선이 비행하는 고도(5000m)의 기압이 지상의 절반이기 때문입니다. 기압이 절반이라는 말은 지상에서 수소가스를 절반만 채워도 5000m에 이르면 기압이 낮아져 수소가스의 부피가 두 배로 팽창해 풍선을 가득 채운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사는 지상은 약 1기압(atm)이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공기 밀도가 낮아져 기압이 감소한다. 고도 3000m는 약 0.7기압, 고도 5000m는 약 0.5기압, 고도 1km는 약 0.3기압이다.
 
  — 왜 풍선 아랫단은 밀봉하지 않는 겁니까.
 
  “풍선 아랫부분을 꽉 묶지 않는 이유는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수소가스가 팽창할 때 풍선이 터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밀봉되지 않았기에 팽창된 수소 중 일부는 자연스럽게 아랫단을 통해 조금씩 대기로 배출됩니다. 수소를 가득 채운 채 아랫단까지 꽉 묶어 날리면 풍선은 목표 고도에 이르지도 못한 채 기압 차로 인해 곧장 부풀어 고도 1000m쯤에서 터져버립니다.”
 
  수소는 지구상에서 가장 가벼운 원소이다. 폭발 위험이 있지만 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기에 사용한다. 헬륨은 수소보다 안전하지만 무거운 기체로서 전단을 그만큼 많이 날릴 수 없고 또 수소보다 10배 이상 비싸다.
 
  “풍선에서 중요한 것은 체공 기술입니다. 이론적으로 5000m에 체공된 풍선이어야 날아가면서 서서히 내려앉습니다. 타이어 바람이 빠지듯 0.03mm 풍선 비닐을 뚫고 가스가 새나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대표는 풍선에 달린 전단뭉치를 단거리용, 중거리용, 장거리용으로 분리하여 풍선이 내려올 만하면 차례로 터뜨려 고도를 유지하며 날아가게 하였다. 이는 나사(NASA)의 다단계 로켓추진체 원리와 비슷하다.
 
 
  단ㆍ중ㆍ장거리 전단
 
기계식 타이머의 모습. 설정된 시각이 되면 줄이 풀리면서 전단뭉치 아랫 부분이 개방돼 공중에서 전단이 살포된다.
  “단, 중, 장거리 전단 방출 기술은 풍선이 고도를 유지하며 골고루, 여러 곳에 전단이 퍼질 수 있도록 합니다.”
 
  이 기술은 정부의 풍선 기술보다도 획기적 발상이라고 한다.
 
  과거 우리 정부는 고농도 알코올을 활용해 풍선의 고도를 유지했다. 하지만 고농도 알코올은 비쌌고 알코올 그 자체의 무게 때문에 전단 탑재량에도 제한이 있었다. 이 대표의 방식이 정부가 풍선을 날렸던 방식보다 발전한 셈이다. 값싸면서도 스마트한 이 대표의 풍선은 민간인들도 쉽게 할 수 있게 한 혁명적인 기술이다.
 
  ― 타이머는 어떻게 작동합니까.
 
  “타이머는 크게 ▲화학식 ▲기계식 ▲전기식이 있습니다. 화학식은 화학 반응을 유도해 전단이 담긴 비닐을 감싼 머리칼같이 가는 강철선을 녹여 끊어지면서 전단 뭉치가 흩어져 날아게 하는 방식입니다.”
 
  이 대표는 화학식 타이머의 작동 원리를 규명하기 위해 한겨울 산속에 들어가 화학 반응 실험을 하기도 했다. 냉동고도 수천 번 여닫으며 모의실험을 했다.
 
  하지만 치명적 단점이 고공 5000m는 기온이 영하 20도 정도로 화학반응이 느려져 타임시간을 정확히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화학식의 단점을 개선하고자 6년 동안 고민한 끝에 발견한 게 기계식”이라고 했다. 기계식이 자동소총 성능이라면 화학식은 화승총이라고 할 수있다.
 
  — 기계식과 전기식은요.
 
  “기계식은 선풍기 타이머를 떠올리면 됩니다. 태엽 방식이죠. 단점은 시간을 3시간 이내에서만 조정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를 보완한 게 배터리를 활용한 전기식인데 10시간까지 설정할 수 있습니다.”
 
  이 대표는 타이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풍선이 온전한 상태를 유지한 채 북한 상공에 진입해도 타이머가 불량이면 전단을 살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타이머가 정상 작동하는지를 반복 시험한 뒤 풍선에 설치한다.
 
  — 풍선은 전단을 몇 장이나 들어 올립니까.
 
  “지름 40cm, 길이 7m인 원기둥꼴 풍선에 수소가스 압력 용기 한 통을 가득 채운 것을 ‘대형 풍선(기본 규격, 길이 7m)’이라고 부릅니다. 대형 풍선 한 개가 최고 3.5kg을 들어 올립니다.”
 
  ‘풍선의 길이가 7m는 더 되는 것 같다’고 하자 이 대표는 길이가 늘어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건 초대형 풍선(길이 14m)이에요. 풍선은 수소의 부력만을 이용하니 무게에 민감해요. 대형 풍선을 안정적으로 운용하고자 3kg만 실었어요. 풍선 크기를 두 배로 키우면 여유분이 생겨 전단을 500g가량 더 보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대형 풍선 2개를 각각 보내면 총 6kg을 보내지만 14m짜리 풍선(초대형 풍선)에는 6.5kg을 매달 수 있죠. 나중에는 14m짜리 풍선 두 개를 한데 묶어 ‘초초대형 풍선’이라고 이름 붙였어요. 대형 풍선 하나만 날릴 때는 3kg밖에 못 실었는데, 초초대형 풍선에는 13.5kg을 매달 수 있어요. 기본 규격 대비 규모를 4배 키우니 수반되는 작업량은 4분의 1로 줄고 전단은 1.5kg을 더 실을 수 있게 됐죠.”
 
 
  풍선 두께는 초박형 콘돔 수준인 0.03mm
 
  모텔에서 볼 수 있는 콘돔의 두께가 0.1mm인데 풍선의 두께는 0.03mm이다. 쉽게 흠집이 나기에 풍선을 절대 땅에 두지 않으며 손으로 함부로 만지지도 않는다. 흠집 때문에 구멍이 나면 수소가스가 새어 나와 하늘로 오르다가 곧 추락한다.
 
  이민복 대표가 풍선 날리는 사진과 영상을 보여줬는데, 하나같이 풍선 부위는 만지지 않았다.
 
  — 왜 하필 0.03mm입니까.
 
  “그보다 두꺼우면 풍선 그 자체의 무게가 무거워지고 그보다 얇으면 더 쉽게 찢어집니다. 여러 번 실험해 얻은 결론이죠.”
 
  — 전단 종류는 어떻게 분류합니까.
 
  “전단은 종이 또는 비닐로 인쇄된 아날로그 전단과 CD, USB 같은 디지털 전단으로 분류합니다. 디지털 전단은 아날로그 전단에 비해서 몇수천만 배의 용량을 가지기에 강력합니다. 하지만 장단점이 있습니다. 아날로그는 기구 없이 즉석에서 볼 수 있기에 그 나름의 장점이 있어 두 가지를 동시에 보냅니다. 민간 풍선은 재력이 약해 디지털 전단을 많이 못 보냅니다. 많이 보냈으면 하는 염원뿐입니다.”
 
 
  비닐 전단은 혁명
 
2022년 11월 풍선을 날리는 데 활용했던 5t 트럭이 방화로 전소됐다. 범인은 아직 잡지 못 했다. 사진=이민복 대표
  — 종이 전단은 없습니까.
 
  “과거에는 종이 전단을 날렸습니다만 2005년부터 보존성이 뛰어난 비닐 전단으로 바꿨습니다. 가격은 종이보다 좀 더 비싸지만 무게는 종이의 10분의 1 수준입니다. 비닐 전단은 혁명입니다.”
 
  — 한 번에 전단을 몇 장까지 보낼 수 있습니까.
 
  “2.5t, 3.5t 트럭을 갖고 있습니다. 2.5t은 수소가스 탱크로리 2개가 장착돼 있어 풍선 40개(길이 7m 기준)를 날릴 수 있습니다. 3.5t은 120개를 만들 수 있고요. 2대를 동시에 끌고 가면 풍선 160개, 전단 약 480만 장(손바닥 크기 기본 규격 기준) 이상 날릴 수 있습니다.”
 
  이 대표는 5t짜리 트럭도 있었지만 2022년 11월 전소됐다. CCTV를 확인해보니 방화로 추정되지만, 아직 범인은 잡지 못했다. 중고로 1000만원을 주고 사와 돈을 아끼고자 500만원 들여 직접 개조한 트럭이었다.
 
  이 대표는 한 시간 가까이 풍선의 원리를 설명하고는 기자를 1층으로 데려갔다. 그러곤 2006년에 시험 삼아 산에 뿌렸던 비닐 전단을 보여줬다. B4용지 크기였는데 약 4분의 1가량은 사라져 있었다. 이 대표는 “2006년 비닐 전단의 보존성을 시험하고자 산에 뿌려놓았다. 일부 훼손은 됐지만 형태가 유지된 부분은 글자가 여전히 선명하다. 북한 주민들이 이걸 돌려가며 읽는다고 생각해봐라. 종이 전단에 비해 수십, 수백배 오래 가는 효과”라고 했다.
 
  — 전단은 어떤 형태이고 그 내용은 무엇인가요.
 
  “전단 내용은 크게 일반용과 선교용이 있습니다. 내용은 저의 탈북스토리, 간증스토리를 적어놓았습니다. 사람들은 스토리를 잘 보고 기억한다고 하기에 그렇게 하였습니다. 한편 신뢰를 위해 저의 본명, 고향, 학력, 경력 심지어 남한의 휴대폰 번호와 이메일 주소도 그대로 적어 보냅니다. 일반용과 선교용 전단내용의 주제는 사상적 콘텐츠입니다. 장사꾼들을 통해 한류는 많이 퍼져있습니다. 장사꾼들이 무서워 못 하는 사상적 콘텐츠는 우리가 전단으로 보내야 합니다. 사상적 콘텐츠의 핵심은 백두혈통과 6·25 전쟁의 진실을 담아 보냅니다.”
 
  — USB에는 어떤 내용이 담겼습니까.
 
  “6·25 전쟁의 진실이 담긴 다큐멘터리와 태평양 전쟁을 다룬 영상입니다.”
 
  — 후원은 계속해서 들어옵니까.
 
  “2018년 문재인 정권의 4·27 판문점 선언을 계기로 강제로 못 날리게 해 중단되었음을 솔직히 말했지요. 못 날린다니 후원은 끊어지지요.
 
  그래도 정직이 최우선이라고 봅니다. 지금은 날리게 되었으니 그 정직함을 보고 후원에 참여하리라 믿습니다. (후원해) 주신 만큼 열심히 날리면 되지 욕심내가며 무리할 필요는 없어요.”
 
 
  신용이 곧 생명
 
이민복 대표는 언제, 어디서, 전단 몇 장, 풍선 몇 개를 날렸는지 기록한 수첩을 보여줬다. 이 수첩은 15년 전의 것이다.
  10만원(100달러) 정도면 3만 장의 전단을 북한에 뿌릴 수 있다.
 
  바람이 좋을 때 3만 장은 3개 군에 도포된다고 한다. 안전한 남한 땅에서 커피 마시며 라디오나 인터넷조차, 없는 폐쇄 땅에 진리를 보낼 수 있는 셈이다.
 
  타 단체와 달리 이대 표는 풍선을 자기 단체 이름으로 날리지 않는다.
 
  후원자 명의로 후원한 만큼 날리고 영상 찍어 보고한다.
 
  후원자가 왕이라는 것이다. 후원자 자신이 날린 것으로서 긍지를 가지게 해드린다. 자신은 그저 충직한 심부름 꾼이라는 뜻이다.
 
  이 대표는 후원자들의 이름과 풍선을 보낸 장소, 날린 풍선의 개수를 기록한 수첩도 보여줬다. 수첩 겉면에는 2006, 2008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남에게서 1000원 한 장 무상으로 받아도 감사한데 수만, 수십만원어치 풍선 후원금을 받았는데 정말 양심적으로 해야지요.”
 
  그래서인지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가 대표적 대북풍선단체 4곳을 횡령 혐의로 고발하였으나 이 대표만 유일하게 무혐의가 내려졌다. ‘신용이 곧 생명’이란 지조를 행동으로 지킨 것이다.
 
  ― 풍선 날릴 때 인원이 얼마나 필요한가요.
 
  “북으로 가는 바람이 언제 불지 몰라요. 새벽에 맞으면 나가야 하는데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남을 부르기 어렵지요. 하여 풍선 작업을 자동화, 단순화하여 가족과 함께 하거나 단독으로 합니다.”
 
  ― GPS를 달면 풍선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미국제 상용 등산용 GPS 추적기를 달아 확인한 적이 있어요. 실제로 북한으로 들어간다는 걸 입증했죠. GPS가 너무 비싸 모든 풍선에 달아 보내진 못해요. 가입비가 300달러, 1개 구입비가 200달러입니다.”
 
  ― 생수병에 쌀을 담거나 비닐봉지에 약품을 담아 물에 띄워 보내는 방법도 있지 않습니까.
 
  “요즘 알려진 대북 풍선과 물에 띄우는 방법은 최초에 제가 시작한 것들입니다. 선교사로서 찬송가 507장에 저 동토의 땅에 바람 따라, 물결 따라 진리를 보내라는 것대로 한 것입니다. 하지만 북한 해안은 철조망으로 봉쇄되고 경비대가 살핍니다. 적지물자가 발견되면 특수 소각조가 현장에서 없애버립니다. 이런 가혹한 폐쇄 조건의 북한 실정을 보아 바람 따라 가는 풍선만 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행동원칙인데 이 점을 역이용하여 요란스러운 단체들이 공개적으로 하고 있는 실태입니다.”
 
  그러기에 전 체코무역사장 김태산 탈북인사는 강화도에서 물에 띄워 보내는 것은 유용성이 없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한다.
 
 
  “《월간조선》은 탈북자들을 살린 언론”
 
  이 대표는 전단과 타이머를 보관한 창고로 기자를 안내했다. 창고는 어지러웠다. 바닥에는 정리되지 않은 물건들이 나뒹굴었다. 그럼에도 눈에 띄는 게 있었다. 선반에 놓인 1990년대 발행된 《월간조선》이었다. 이 대표와 《월간조선》의 인연은 올해로 30년째다.
 
  이 대표는 《월간조선》 1994년 4월호에 러시아에서 유랑하는 탈북(脫北) 벌목공을 주제로 한 기사에서 ‘이중건’이라는 가명으로 등장한다.
 
  당시 그의 신분은 전 북한과학원 연구원이었지만 탈북 벌목공 문제의 주인공 역할을 했다.
 
  ‘벌목공 기사’는 조갑제 당시 《월간조선》 편집장의 지시로 상트페테르부르크대 강사로 있던 황성준 전 《문화일보》 논설위원이 썼다.
 
  학자들은 이때부터 북한인권운동이 시작되었다고 평가한다. 특종 보도 이후 한국 사회에는 북한 인권이 화제가 됐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탈북자를 받지 않는다는 당시 김영삼 정부는 이 기사가 터진 후 전원 수용정책으로 전환하였다.
 

  이 대표는 벌목공 기사에서 ‘탈북자’라는 용어를 처음 조어(造語)한 사람이다.
 
  황성준 기자와의 인터뷰시 이 대표는 자신들을 ‘귀순자’라고 하는데 심한 거부감을 표시하였다. 어감도 귀신같은 이미지가 있어 좋지 않다고 하니 그럼 어떻게 불렀으면 좋을까에 즉석에서 ‘탈북자’라고 답했다고 한다.
 
  “북한을 탈북한 자이니 탈북자라는 말에 거 참 좋겠네요”해서 이때부터 이렇게 불러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기자와 인터뷰하면서도 여러 번 “조갑제”라는 이름을 언급했는데, 여기에는 약간의 존경심도 묻어나왔다. 그러면서 《월간조선》은 탈북자를 살린 언론”이라고 했다.
 
 
  “오물 풍선은 주먹구구식”
 
  이 대표는 “북한 오물 풍선은 고무 재질이라 신축성은 좋을지 몰라도 비행 고도 유지는 쉽지 않다”고 했다. 이 때문에 풍선을 어디로 날릴지는 풍선에 매단 오물·쓰레기의 양으로 조절돼 주먹구구라고 했다. 오물 무게가 무거우면 수도권 일대에, 가벼우면 영남까지 날아가는 식이다.
 
  “대북 풍선은 미사일이 아니기에 초 단위까지 정확할 필요는 없어요. 공중에서 산탄총처럼 퍼져나가기만 하면 됩니다. 오물 풍선은 전기 배터리를 이용해 오물·쓰레기를 담은 비닐이 녹아내리도록 했더라고요. 배터리 방식은 고도가 높아지면 전력이 급격하게 떨어져 쉽게 방전돼 효과적이지 않죠. 그래서 원형 그대로 추락한 겁니다.”
 
  — 전단을 날리면 이를 보고 연락도 옵니까.
 
  “네! 전단에는 제 전화번호나 이메일이 그대로 적혀있습니다. 이것을 보았는지 북한 대표단으로 외국에 나가 도움을 청하는 전화나 이메일이 옵니다. 그러면 저는 정보기관에 넘기죠.
 
  전단을 보고 배를 타고 백령도에 넘어온 인민군 장교가족도 있습니다. 이들은 전단을 마을 어귀에다 펴놓고 왔다고 해요. 다른 이들도 보라고. 북한민주화위원회 손정훈 전 사무국장이 알려준 정보입니다. 또한 미국교포 한 분이 북한 평성에 갔다가 냇가에서 제 이름이 적힌 전단을 봤다고 국제농업개발연구원 이병화 원장이 직접 전해주었죠.
 
  샘의료재단(박새록 대표)으로 북한에 들어갔던 황해도 책임자는 북한 간부들과 식사자리에서 ‘배시때기 고파도 무섭지 않은데 삐라 때문에 죽을 맛’이라고 한 소리를 들었다고 해요.”
 
  — 일부에선 ‘전단이 북한으로 들어가는 게 맞느냐’ ‘과연 몇 명이나 전단을 읽어 보겠느냐’며 효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합니다.
 
  “대북 풍선의 성과는 어떤 숫자로 나타낼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남북이 통일될 때까지, 북한 주민이 노예 상태에서 해방될 때까지 해야만 하는 ‘원초적 인도주의 인권 운동’입니다. 그리고 대북 전단이 효과가 없다면 왜 북한이 풍선에 저렇게 민감하게 반응할까요?”
 
  — 공개든 비공개든 풍선이 북한을 자극하는 것은 사실 아닙니까.
 
  “풍선을 두고 ‘김정은의 골치를 아프게 하니 좋다’는 의견과 ‘북한이 도발할까 봐 불안하다’는 입장이 있어요. 저는 두 입장 모두 이해하고 동의합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 재산입니다. 국민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조용히 날려야죠. ‘성경에도 천하보다 귀한 것이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풍선을 시끄럽게 날리면 날릴수록 표현의 자유를 자기들 스스로 위축시키는 거예요. 민주당이 대북전단금지법을 다시 만들면 어떻게 하려고 합니까.”
 
  — 대북전단금지법을 두고 위헌 결정이 나왔습니다. 예상했습니까.
 
  “위헌이라고 믿었지만, 결정이 나오기 전까지는 불안불안했죠. 워낙 이상한 판결이 많이 나오니까요.”
 
 
  ‘이재명의 경기도’ 시절에도 고초 겪어
 
이민복 대표가 수소가스 탱크로리 앞에 서 있다.
  이민복 대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경기도지사를 지냈을 때도 고초를 겪었다. 2020년에는 이 대표가 사는 지역을 위험 지역으로 설정해 감시하고 통제했다. 이민복 대표의 이야기다.
 
  “2018년 4·27 판문점 선언 이후에는 풍선을 날리지 않고 가만히 있었어요. 그럼에도 2020년 6월 17일 경기도는 이재강 경기도 평화부지사를 앞세워 제 트럭과 수소가스 탱크로리, 각종 장비를 영치해갔죠. 또 대북 풍선 관련 행위 금지 행정명령도 내렸어요.”
 
  이재강 전 평화부지사는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경기 의정부시 을에 출마해 당선됐다. 이재강 의원은 지난 6월 13일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대북 전단 살포 시 ‘사전 신고’를 의무화하고, 경찰서장이 ‘살포 금지 통고’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 영치해간 이유는 뭔가요.
 
  “저보고 ‘가스 안전 자격증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또 수소가스를 적재한 트럭이 국가 인증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어요. 여기에 임시 소화기를 갖추지 않아 위험하다고 억지를 부렸습니다.”
 
  — 경기도 측의 주장은 사실인가요.
 
  “모두 사실과 다릅니다. 저는 2013년에 가스 안전 자격증을 취득했어요. 풍선 날리는 사람 중 아마 저만 이 자격증을 갖고 있을 겁니다. 또 제 트럭은 국가 인증을 받은 트럭입니다. 트럭 뒷면에 ‘위험’ 표시가 없다는 핑계를 댔지만 ‘위험’ 표시가 명확히 돼 있습니다. 물론 소화기도 설치해두었고요. 대북 풍선을 막기 위한 핑계일 뿐이죠. 너무 분해서 경찰에 이재강 평화부지사를 고소했는데 경찰은 무혐의 결정을 하더라고요.”
 
  풍선 장비 영치로만 끝나지 않았다. 경찰은 이민복 대표를 비롯해 풍선 운동 단체를 대상으로 후원금 횡령이 의심된다며 자금도 문제 삼았다. 경찰은 2015년부터 2021년 전반기까지의 후원금 내역을 조사했으나 횡령은 없었다. 이 대표는 대면 조사만 7번을 받고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아까 보여드린 풍선 수첩을 갖고 조사받으러 나갔어요. 경찰이 이를 보더니 ‘우리도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거니 이해해달라. 백신 맞았다고 생각하시라’라고 하더군요.”
 
  — 우리 정부가 지난 6월 9일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한다고 했으나 하루 만에 잠정 중단했습니다.
 
  “대북 확성기 방송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거죠. 확성기 방송은 북한이 개방할 때까지 일관되게 해야죠. 북한이 우리 말을 듣지 않을 때 꺼내는 최후의 수단 중 하나로만 대북 확성기 방송을 활용하고 있죠. 저는 이게 불만입니다.”
 
 
  풍선 바라보는 시선은 左右가 50보 100보
 
  — 정권 성향에 따라 풍선에 대한 태도가 다르지 않습니까.
 
  “풍선을 바라보는 시각, 대하는 태도는 보수나 진보 모두 똑같아요. 제가 2003년부터 풍선을 날리기 시작했습니다. 노무현 정부에서도 풍선 날리는 걸 막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2013년 6월에 남북당국회담을 이유로 박근혜 정부가 풍선 날리는 걸 막더라고요. 차량 길목을 막아 원천 봉쇄했습니다. 그때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는 플래카드를 차에 달고 여기저기서 시위했습니다.”
 
  — 정부가 확성기 방송을 할 때 주의할 점은 없습니까.
 
  “지나친 서구식 표현은 삼가야 합니다. 북한 주민 사이에서 ‘남조선이 괜히 미 제국의 괴뢰가 아니구나’라는 말이 나옵니다. 과거 북한에 있을 때 우리 정부가 보낸 전단을 봤는데 영어식 표기를 남발했더라고요. 이는 북한 주민에게 ‘남한이 미제의 식민지’라는 북한의 주장을 믿게 할 뿐입니다.”
 
  이 대표는 “남한에선 ‘헝가리’ ‘폴란드’라고 표기하지만 북한에서는 ‘웽그리아’ ‘뽈스카’라고 한다. 월드컵도 ‘세계축구선수권대회’라고 쓴다”며 북한 주민이 이해할 수 있도록 북한식으로 전단이나 방송의 내용을 구성해야 한다고 했다.
 
  — 보따리상을 통해 한국의 발전된 문화가 북한에 흘러들어 가면 북한이 변화할 수도 있다고 주장합니다.
 
  “보따리상은 돈을 버는 게 목적입니다. 북한을 변화시키는 건 관심사가 아니죠. 보따리상은 상업적 문화를 다룰 뿐 북한 정권에 치명적인 역사적 사실이나 이념은 다루지 않습니다. 한계가 있죠.”
 
  — 일부 단체는 풍선에 K-pop이나 임영웅의 노래를 담아 보냅니다.
 
  “북한은 문화 수준이 발전하지 못해 애써 보내더라도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차라리 대북 확성기 방송으로 김광석이 부른 ‘이등병의 편지’를 트는 게 효과적일 겁니다.”
 
  — 대북 전단에는 무엇을 담아야 합니까.
 
  “북한의 백두혈통 우상화를 허물 수 있는 내용과 6·25의 진실을 담은 역사입니다. 수령독재체제는 바로 김씨 일가에 대한 우상화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북한 주민이 남한과 미국에 적대감을 갖는 이유는 6·25를 일으킨 주범으로 잘못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씨는 2006년에 제작한 ‘기본형 전단’을 꺼내 기자에게 보여줬다. 기자는 14년 전에 이 전단을 본 적이 있다. 북한 주민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역사적인 내용을 짧은 구절(句節)로 정리해 나열했다.
 
  〈이상한 것은 먼저 쳤다는 쪽이 거꾸로 3일 만에 서울 먹힌 것/ 진실을 알기 위해 전쟁 초기 참전자에게 조용히 물어봐/ … 허세 떨던 국군은 전투 경험 풍부한 팔로군 주축의 인민군과 105땅크에 3일 만에 수도 먹힌 전쟁은 6·25밖에 없어/ 〈조국해방전쟁〉 말 자체가 침공했다는 증거/ 하바롭스크에서 김정일 낳아(1941년)/ 그러니 백두산 고향집은 거짓〉
 
  전단 마지막에는 전자우편 주소와 휴대전화 번호도 적어놓았다.
 
 
  헌 양복, 짝짝이 양말
 
  이 대표는 풍선 때문에 가정도 온전히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말했다. 지금 현재 ‘이혼 위기’라고 한다.
 
  “1996년 미 대사관에서 일하던 여성과 결혼해 아들 하나를 뒀습니다. 2010년쯤에 북한이 살해 협박을 해왔어요. 아내는 ‘더는 이렇게는 같이 못 산다’며 이혼하자고 했죠. 풍선 날리느라 컨테이너 생활을 해야 했고 주변에선 뱀도 나오니 오죽했겠습니까. 2011년 아내는 아들과 함께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2013년에 재혼을 했어요. 딸이 하나 있는데 또 이혼 위기입니다.”
 
  이 대표의 컨테이너 건물에는 아궁이가 있었다. 난방비를 아끼려고 화목(火木)을 하는데, 필요한 나무는 근처 공사장에서 일 도와주고 좀 얻어온다고 했다. 풍선기지에서 기자에게 한참을 설명한 이민복 대표는 경기 성남 분당에서 열린 한 강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기지를 떠났다. 차에 올라 양말을 확인해보니 양말이 짝짝이였다. 그는 지금 입고 있는 양복도 누가 입다가 준 것이라며 남한에 있으면 굶어 죽을 일은 없으니 걱정은 하나도 없다고 했다.
 
  기자는 분당까지 함께 타며 이 대표의 남한 생활 30년을 압축적으로 들었다. 그는 “지난 세월 동안 미처 다하지 못한 이야기를 속 시원하게 정리해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며 책을 꼭 쓰고 싶다고 했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

Lo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