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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요지경

변화하는 北 MZ 세대의 결혼관

“우리, 동거해볼래요?”

글 : 정광성  월간조선 기자  jgws89@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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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급제 와해, 복잡한 이혼 절차, 한국 드라마의 영향 등으로 결혼관 변화
⊙ 1등 신랑감, 과거에는 평양시민·보위원 등이었으나, 최근에는 ‘탈북자 가족 있는 남성’
⊙ 독거노인이 사는 집, 여관 등에서 동거… 돈 번 여자가 집을 사기도
⊙ 생계나 가사노동에 대한 부담 때문에 非婚 택하는 여성 늘어
연인으로 보이는 북한 남녀가 손을 잡고 거리를 거닐고 있다. 사진=인터넷 화면 캡처
  북한에 이런 말이 있다. ‘남자는 나이 들수록 금값이지만, 여자는 어릴수록 금값이다.’ 과거 북한 남성들은 군(軍) 복무 이후 좋은 곳으로 직장을 배치(配置)받고 제대하면 누구나 원하는 일등신랑감이었다. 여기에 대학을 추천받거나 졸업해서 오면 더할 나위 없는 특등 남편감이었다. 이런 이유로 남자는 ‘나이 들수록 금값’이라는 얘기다.
 
  북한은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결혼 적령기가 여자 20~25세, 남자 27~30세 정도였다. 결혼 적령기 여성들은 25세만 되면 부모와 주변 지인들에게 ‘언제 결혼하느냐’는 질문 세례를 받는다. 북한 사회 통념상 25세가 지나면 여자들은 ‘노처녀’로 분류된다. 하지만 최근 들어 결혼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결혼 적령기가 높아지고 있다. 또 결혼에 대한 근본적인 가치관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다수의 탈북민은 북한의 젊은 세대의 인식 변화에는 경제문제와 외부에서 들어오는 영상물 등이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입을 모은다.
 
 
  배급제 와해도 혼전 동거 증가 원인
 
  북한의 경제난, 일명 ‘고난의 행군’은 먹고사는 문제뿐만 아니라 남녀의 연애, 결혼에 대한 생각도 바꾸어놓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최근 몇 년 전부터 결혼하지 않고 일정 기간 동거를 하거나 결혼식을 한 후에도 자녀를 낳기 전까지 법적으로 결혼 등록을 하지 않고 사는 동거 연인이 증가했다. 굳이 결혼 등록을 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배급제가 와해되면서 여성이 결혼해서 남편의 부양가족으로 등록된다고 해도 실질적인 혜택을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동거할 경우에는 같이 살다가 헤어지더라도 복잡한 이혼 절차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법적으로는 이혼이 허용되지만, 그 과정에서 여성의 의사가 충분히 존중받기 어렵고 절차도 복잡하다. 이 때문에 젊은 여성 중에서 살아보고 결혼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동거를 택하는 여성들이 증가하는 것이다.
 

  2019년에 탈북한 A씨는 “북한 젊은 사람들이 결혼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고 있고, 결혼 전 동거를 하는 연인들도 늘어나고 있다”면서 “과거에는 동거 자체가 사회에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지금은 인식이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이 혼전(婚前) 동거를 하는 이유에 대해선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여성들의 생각”이라면서 “어머니 세대와 달리 가족에 대한 희생보다 자신의 삶과 미래가 더 소중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고 했다.
 
  실제 북한에서 동거 경험이 있는 B씨는 “과거에는 연애만 해도 무조건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2010년 이후에는 많이 달라졌다”면서 “평생을 함께 살 사람인데 결혼 전 나와 맞는지도 봐야 알 것 아니냐”고 말했다.
 
  특히 혼전 동거는 결혼 적령기인 20대 후반 연인들 사이에서 주로 나타났는데 최근에는 이보다 훨씬 어린 20대 초반으로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들이 동거를 선택하는 이유로는 일단 점차 개방되어가는 ‘성(性) 문화’가 이유다.
 
  20대 초반 연인들의 경우 단속이나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하고자 동거 사실을 숨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너무 어린 나이에 동거하는 모습은 아직 북한 사회에서 용납하는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탈북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20대 초반 연인들은 대부분 자신의 부모들과 지인들 눈을 피해 고향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그곳에서 동거한다고 한다.
 
 
  ‘탈북자 가족 있는 남성’ 선호
 
결혼하는 북한 남녀가 지인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인터넷 화면 캡처
  코로나19 이후 북한 여성들이 신랑감으로 원하는 남성상이 바뀌었다. 과거에는 북한 여성이 가장 원하는 남편감은 평양에 거주하는 남성이었다. 그 뒤로 보위원이나 안전기관 일꾼들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다.
 
  최근에는 해외에 친인척이 있는 남성, 즉 한국에 가족이 있는 남성을 가장 선호한다고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심각한 경제난을 겪는 북한 주민들 가운데 탈북한 가족이 있는 주민들은 그나마 생활이 나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한국에서 정기적으로 돈을 보내주는 부모나 형제가 있는 남성이 일등 신랑감이다. 한국으로 탈북한 부모 형제들은 자신의 자식이나 형제를 북한에 남겨두고 온 것에 대한 미안함을 돈으로라도 대신해주려는 성향이 강하다. 이들은 최대한 수수료를 적게 내기 위해 한 번에 100만원에서 많게는 몇백만원까지 보내준다. 물론 이들도 풍족해서 보내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쓸 돈을 아꼈다가 보내주는 것이다. 이렇게 보내준 돈이면 북한에서 부자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굶지는 않는다.
 
 
  한국 드라마 등 보며 ‘낭만적 사랑’ 배워
 
2019년 12월에 방영한 〈사랑의 불시착〉 스틸컷. 사진=tvn
  결혼에 대한 북한 젊은이들의 생각을 바꾸어놓은 데에는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북한 여성들에게 ‘낭만적 사랑’을 전한 것은 바로 외부로부터 유입된 영화, 드라마, K 팝 등의 문화 콘텐츠들이다.
 
  특히 한국 영화와 드라마는 북한 매체에서는 보기 드문 남녀 간의 사랑과 낭만적 연인 관계를 북한 여성들에게 보여주었다. 이들은 영화와 드라마에 나타나는 한국 사람들의 행동 방식, 예를 들어 남자에게 맞서는 여성의 모습, 여성을 배려하는 남성의 모습에 주목하면서, 이를 북한 남성들의 행동양식과 비교하게 되었다.
 
  김정은 집권 이후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 대한 단속을 대폭 강화했지만, 젊은 여성들은 통제를 피해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믿을 만한 친구와 얘기를 나눈다. 그렇게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사랑의 정서는 젊은 북한 여성들의 정서에 반영됐다. 영화나 드라마가 보여주는 남녀 간의 의사소통과 인간관계의 방식은 기성세대와 다른 생각과 행동양식을 만들어냈다.
 
  외부 사회에서 흘러들어 온 신선한 문화는 연애 관계에서 여성이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섹슈얼리티(Sexuality)의 변화로도 연결됐다. 2010년 이후 접경 지역과 대도시를 중심으로 2030 세대 여성들 사이에서는 남녀 간의 자유로운 연애와 스킨십, 피임과 낙태, 혼전 동거 등 섹슈얼리티 측면의 새로운 실천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평양 같은 대도시나 중국과 인접한 접경 지역에서는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고 다니는 연인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농촌 지역에서는 아직도 이런 행위를 하면 따가운 눈총을 받거나 구설에 오르게 된다.
 
  북한에서 동거하는 연인들은 주택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여러 탈북민의 증언에 따르면 세 가지 정도의 방법이 있다.
 
  첫째, 집을 빌리는 것이다. 북한의 경우 과거에는 한국과 달리 월세(月貰)나 전세(傳貰)의 개념이 없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동거하는 연인들이 증가하며 월세의 개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동거하는 젊은 연인들은 주로 홀로 사는 노인의 집에 돈을 주고 그들과 함께 산다. 이들이 집주인에게 지불하는 월세는 매월 북한 화폐 3만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전문 매체 ‘데일리NK’에 따르면 2023년 1월 9일 기준 1달러당 북한 화폐는 8400원이다. 달러로 계산하면 약 3.4달러 정도이다. 원화로 하면 3744원이다.
 
  그럼 이들이 왜 이 방법을 택할까. 무엇보다도 수시로 행해지는 숙박 검열을 피하기 위해서다. 숙박 검열에 걸리게 되면 노인들의 손녀나 친척이라고 둘러대면 비교적 쉽게 넘어갈 수 있다. 검열에 걸리는 경우도 대개는 뇌물을 주면 해결이 가능하다.
 
  둘째, 여관을 빌려 생활하는 경우다. 북한에서는 지역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대부분 지역에 여관이 한두 개씩은 존재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다른 지역에서 왔다가 잘 곳이 없을 경우나 기차를 놓쳐 갈 곳이 없이 하룻밤 묵어야 할 경우를 대비한 것이다. 그래서 북한에서 대부분의 여관은 기차역 인근에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은 숙박료 때문에 여관을 잘 이용하지 않는다. 대부분 장사꾼과 이동객들은 기차를 놓치면 역전에서 잠을 자거나 개인 집을 빌려 그곳에서 하룻밤을 지낸다. 그렇다 보니 대부분 지역의 여관들은 비어 있는 상태다. 여관을 관리하는 곳에서는 돈을 벌기 위해 사람들에게 한 달씩 임대를 해준다. 물론 불법이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질서가 무너지면서 불법도 합법이 된 지 오래다. 여관을 한 달 빌리는 비용은 북한 화폐로 2만원 정도라고 한다.
 
 
  빈집에서 사랑 나누는 경우 늘어
 
  셋째, 집을 매입하는 것이다. 북한 장마당이 본격 활성화되면서 과거와 달리 미혼의 젊은 여성들도 장사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수완이 좋을 경우 많은 부(富)를 축적하게 된다. 돈을 번 여성들은 자기 스스로 남자를 선택해 동거를 한다. 이 경우 집을 구입하는 것은 여자 쪽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가 많은 것은 아니라고 한다. 집값이 비싸다 보니 집을 살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북한의 젊은 연인들은 주로 어디서 데이트를 하고 사랑을 나눌까. 지역에 따라 편차가 있다. 평양의 경우 그나마 젊은 남녀가 데이트할 장소가 비교적 많은 편이다. 이들은 놀이공원이나 유희오락장 등을 옮겨 다니며 데이트를 할 수 있다.
 

  평양 이외 지역의 경우 그렇지 못하다 보니 주로 밤에 데이트를 많이 한다. 일과가 모두 끝난 저녁에 함께 나와 공원 의자에 앉아 얘기를 나누거나 잔디밭에 앉아 데이트를 즐긴다. 이렇게 밤에 으슥한 곳에서 데이트하다 아무도 몰래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도 있다.
 
  근래에는 북한 연인들이 사랑을 나누는 장소가 많이 바뀌었다. 가장 선호하는 장소는 집이다. 물론 본인들의 집에서 사랑을 나누는 경우도 있지만, 낮 시간을 이용해 비어 있는 친구나 지인의 집을 이용한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낮에는 집에 사람이 없는 경우가 많다. 먹고살기 위해 장사를 하거나 다른 일자리를 찾아다니다 보니 집에 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 여기에 부모가 함께 다른 지역으로 며칠 또는 몇 달씩 장사를 떠나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해서 빈집은 갈 곳 없는 연인들에게 최적의 장소다. 물론 형제나 자매가 집에 있을 경우 모른 척 눈감아 주는 대가로 얼마간의 돈을 주기도 한다.
 
 
  ‘비혼’ 선택하는 남성보다 여성 비율 더 높아
 
  최근 들어 북한에서도 한국처럼 ‘비혼(非婚)’을 택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 북한 남성들은 여전히 결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여성들은 출세에 대한 관심이나 경제적인 능력이 있다면 굳이 결혼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 비혼을 택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다른 이유로는 결혼 후 여성들에게 부과되는 노동 부담을 더 이상 운명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에서는 결혼 후 남성들을 대신해 여성들이 시장 활동을 통해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아직 가사노동도 여성들이 주로 담당하고 있는데, 그런 삶을 거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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