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체사상’은 소련·중공의 ‘괴뢰’ 김일성이 만든 ‘사이비 교리’
⊙ ‘주체’ 운운하면서도 “혁명은 수령의 지도 받을 때만 성공”이라고 ‘궤변’
⊙ “한국 자본주의는 ‘기형적 식민지 자본주의’… 북한은 ‘정치적 자주성’ 갖고 ‘자립 경제’ 추구”
⊙ “북한이 2010년대 들어 경제개발로 남한과의 격차 줄이고 있다”는 사실 왜곡
⊙ “한반도 전쟁 원인 제거할 대담한 자주국방 체계”라고 북한의 핵 보유 정당화
⊙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관련 활동을 “지식경제에 기반을 둔 국방산업” 이라고 옹호
⊙ “체제경쟁 승리했다면서 왜 북한 두려워하나?”라며 ‘위헌’인 ‘연방제 통일’ 주장
⊙ ‘사회정치적 생명체론’ ‘혁명적 수령관’ 내세워 북한의 ‘3대 세습’ 당위성 강조
⊙ ‘주체’ 운운하면서도 “혁명은 수령의 지도 받을 때만 성공”이라고 ‘궤변’
⊙ “한국 자본주의는 ‘기형적 식민지 자본주의’… 북한은 ‘정치적 자주성’ 갖고 ‘자립 경제’ 추구”
⊙ “북한이 2010년대 들어 경제개발로 남한과의 격차 줄이고 있다”는 사실 왜곡
⊙ “한반도 전쟁 원인 제거할 대담한 자주국방 체계”라고 북한의 핵 보유 정당화
⊙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관련 활동을 “지식경제에 기반을 둔 국방산업” 이라고 옹호
⊙ “체제경쟁 승리했다면서 왜 북한 두려워하나?”라며 ‘위헌’인 ‘연방제 통일’ 주장
⊙ ‘사회정치적 생명체론’ ‘혁명적 수령관’ 내세워 북한의 ‘3대 세습’ 당위성 강조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6월 24일, 국내에 잠입한 북한 공작원과 만나고 수차례 통신한 혐의를 받는 소위 ‘4·27시대연구원’의 연구위원 이정훈씨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공안 당국에 따르면 이씨는 2017년 4월, 일본계 페루 국적으로 위장하고 국내에 잠입한 북한 공작원을 4회에 걸쳐 만나서 국내 좌파 진영 동향 등을 보고했다. 그는 암호화된 지령문과 보고문을 송수신하는 방법도 배웠다.
이씨는 2018년부터 2019년까지 북한 대남공작기구가 해외 웹하드에 올려놓은 암호화된 지령문을 내려받고 나서, 보고문 14개를 5회에 걸쳐 발송했다. 이씨는 또 이적성이 있는 책 2권을 출판한 혐의(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 제작·판매)도 받고 있다. 당국은 지난 5월 14일 그를 체포해 구속 수사한 뒤 기소했다. 4·27시대연구원 측에서 밝힌 내용에 따르면, 문제가 된 이적표현물은 이씨의 저서 《87, 6월 세대의 주체사상 에세이》(2019년)와 《北 바로 알기 100문 100답》(2019년)이다.
이씨를 옹호하는 측에서는 《北 바로 알기 100문 100답》은 이씨를 포함해 공동저자가 13명인데, 어떻게 ‘이적표현물’이 될 수 있느냐는 식으로 반문한다. 그 논리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 그들의 주장을 수용하더라도, 이씨 혼자 저술한 《87, 6월 세대의 주체사상 에세이》(이하 《주체사상 에세이》)는 ‘이적성’ 여부를 놓고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실제 이 책엔 우리의 ‘상식’과 거리가 먼 ▲주체사상 ▲독재 세습 ▲선군정치 ▲북한의 핵무기 개발·보유의 정당성 등을 강변하는 대목이 다수 있다. 지금도 이런 책이 ‘학문의 자유’란 보호막 아래 버젓이 시중에 유통되는 현실에 많은 이가 황당해했다.
美문화원 점거·일심회 사건 등 ‘화려한’ 이력
《주체사상 에세이》에 기술된 저자 이력에 따르면 ‘서울 출생’인 이정훈씨는 1985년 고려대 민족통일민주쟁취민중해방투쟁위원회(삼민투위) 위원장 노릇을 하면서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농성’을 주도했다. 이후 정치권에 들어와 민주노동당 중앙위원으로 활동하던 중 ‘일심회 사건’(2006년)으로 인해 구속됐다. 일심회 사건은 이씨 등 당시 민주노동당 인사 5명이 북한 공작원에게 남한 내부 동향을 보고한 사실이 국정원에 적발된 사건이다. 이씨는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 반국가단체의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와 회합·통신 기타의 방법으로 연락을 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국가보안법’ 제8조 1항을 위반한 죄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이씨는 《주체사상 에세이》의 ‘머리글’에서 자신을 “전형적인 민주화 세대의 일원”이라고 자처하면서 “이 책은 일심회에 연루돼 옥중에서 썼던 노트(2008년)를 최근 다시 정리한 것”이라고 했다. 이씨는 또 “맑스(기자 주: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다룬 상당수 서적은 합법 출판되고 있는데 유독 주체사상에 대한 족쇄는 여전히 풀리지 않아 외려 궁금증을 자극하고 있다”며 “맑스주의와 주체사상의 차이에 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최소한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알려줘야 할 의무감 같은 걸 갖게 됐다”고 ‘집필 동기’를 밝혔다.
이씨가 쓴 《주체사상 에세이》의 내용에 앞서 ‘주체사상’에 대해 먼저 짚어봐야 한다. 주체사상의 연원은 과거 김일성이 연안파(친중), 소련파(친소) 등 정적을 숙청하고, 북한 통치 체제를 ‘일당 독재’에서 ‘수령 독재’로 바꾸는 과정에서 내놓은 ‘궤변’에서 비롯된다.
중국공산당의 지시를 받는 빨치산 활동을 하다가 소련으로 도망간 뒤에는 소련공산당 명령을 수행했고, 해방 후 소련 점령군과 함께 평양에 들어와 그들의 ‘꼭두각시’ 노릇을 했던 김일성과 ‘주체’란 표현은 애초부터 어울리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김일성은 1958년, 소련과 중국이 서로 ‘교조주의’ ‘수정주의’란 식으로 비난하며 공산 진영의 주도권을 놓고 충돌하는 틈을 타서 ‘수령 독재 체제’를 강화했다. 이오시프 스탈린(1879~1953년) 사후 니키타 흐루쇼프(1894~1971년)가 집권한 후 소련에서는 수령의 독점적 역할을 강조했던 스탈린에 대한 격하 운동이 진행됐다. 이런 기류가 북한에 유입돼 통치 기반이 위태로워질 것을 걱정한 김일성은 “중국과 소련 외세의 영향력을 거부하고 어디까지나 우리의 관점으로 주체적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며 느닷없이 ‘주체’를 내세웠다. 1997년 귀순해 2010년 사망한 황장엽씨는 1960년대에 김일성대 총장 시절 이를 체계화해 ‘주체사상’을 만들었다. 김정일의 ‘주체사상 개인 강사’ 역할도 했다. 북한은 1972년, 이른바 사회주의헌법에 통치이념으로 ‘주체사상’을 명기했다. 이후 북한은 신격화된 김일성이 통치하는 사실상의 ‘신정(神政) 체제’가 됐다.
북한은 ‘주체사상’의 근본 원리로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면서도 “인민대중에 의한 혁명은 그 자체가 고도의 의식적·조직적 운동이며 심각한 계급투쟁을 동반하기 때문에 반드시 최고영도자인 ‘수령’의 지도를 받을 때만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김정일은 이를 바탕으로 “인민대중은 당의 영도 밑에 수령을 중심으로 조직 사상적으로 결속함으로써 하나의 사회정치적 생명체를 이룰 때 역사의 자주적인 주체가 된다”며 소위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을 내놨다. 즉 ‘주체’ 또는 ‘자주’ 운운하지만, 결론적으로 ‘주체사상’은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의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하지만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욱 평등하다”란 식의 ‘말장난’에 불과하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수령 독재’와 북한 주민 착취를 정당화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남조선은 미제 식민지”란 식으로 주장하면서 대남 적화의 당위성을 강변하는 ‘이론적 토대’이기도 하다. 요약하면, 주체사상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남한 사회의 남남갈등과 반(反)체제 전복 활동을 부추기고, 최종적으로는 한반도에 대한 김일성 일가의 ‘사유화’를 목적으로 하는 북한 독재 정권의 ‘기만·선동 수단’에 불과하다.
“주체사상 최고 가치는 믿음·사랑 구현 사회”
이 같은 ‘주체사상’에 대해 이정훈씨는 《주체사상 에세이》에서 “맑스주의가 가진 시대적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차원에서 발전시킨 독창적 현대 유물론 사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씨는 또 책에서 이미 70년 동안의 지구적 실험 결과 폐기처분된 ‘시대착오적’ 마르크스·레닌주의와 과거 냉전 시절 공산권 국가들마저 비난했던 ‘주체사상’을 가리켜 ‘진리’라고 평가했다.
〈근로대중이 단결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사상처럼 그 사회 지배세력에게 두려운 진실은 없습니다. 그래서 지배세력은 근로민중이 새 사상을 갖고 단결해 투쟁하면 세상을 바꾼다는 진리를 탄압합니다. 역사적으로 맑스-레닌주의나 주체사상 같은 사상이 탄압받았던 근본 이유입니다. 하지만 근로대중의 사상을 아무리 탄압해도 세상의 진리 자체가 바뀌지는 않습니다. (중략) 인류가 만든 자주적 사상은 많지만 대표적인 자주사상은 근대 맑스주의와 현대 주체사상입니다. 자주적 사상의식이 무엇인지 이처럼 정의하는 것도 놀라운 발견이고 쉽지 않았지만, 사람이 자기 운명의 주인임을 자각하는 과정도 실은 말처럼 쉽지 않았죠. 근로대중이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란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선사시대를 제외하더라도 무려 반만년 이상이 걸렸으니까요.〉
이씨는 책에서 “주체사상의 최고의 가치는 ‘믿음과 사랑이 구현되는 사회’”라고 주장했다. 이는 북한 실상과 거리가 먼 얘기다. 단적인 예로 그토록 사랑을 중시하는 지도 이념을 강조하는 북한 독재정권은 ‘정권 안보’를 위해 1990년대 중반, 개혁·개방을 하지 않고, 대외에 문을 닫아걸었다. 이른바 ‘고난의 행군’을 하겠다고 하면서 최소 100만명에서 최다 300만명에 이르는 북한 주민을 굶겨 죽였다. 이게 바로 ‘믿음과 사랑이 구현되는 사회’를 구현하려는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북한의 실상이다. 다음은 이와 관련한 《주체사상 에세이》의 대목이다.
〈기독교 사상이나 맑스주의, 주체사상에서 얘기하는 최고의 가치는 사실 모두 비슷합니다. 믿음과 사랑이 구현되는 사회입니다. 다만 그를 구현하는 방법에 차이가 날 뿐입니다. 기독교는 선행과 기도가, 맑스주의는 계급투쟁이, 그리고 주체사상은 자주성 실현을 위한 노력과 투쟁이 사회를 구원하며 사람을 사랑하는 거라 말합니다. (중략) 사람을 이윤과 생산의 도구로 보는 게 아니라 우리네 어머니 마음처럼 그의 삶 자체를 세상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 이런 모두가 우리 시대의 새로운 인간관계와 사랑의 내용일 겁니다. 이렇게 세상의 가장 큰 행복과 힘이 바로 자기 운명을 개척하고 창조하는 인간 자신에게 있다는 게 주체사상이 정말 하고픈 얘기였다면 지금껏 여러분이 알고 있던 주체사상과 너무 다른가요?〉
이씨는 해당 책 중반부에서 북한 체제의 우수성과 함께 남한의 ‘대미(對美) 예속성’을 주장했다. 먼저 이씨는 지금의 대한민국을 가능케 한 우리의 시장경제와 관련해 한국의 자본주의는 ‘기형적인 식민지 자본주의’, 우리 체제를 정치·경제·문화적으로 선진국에 예속된 ‘신식민지’ 또는 ‘반식민지’라고 규정했다.
〈한국 사회를 얘기할 때 멀리 근대사부터 시작하는 이유는 현재 한국 자본주의의 뿌리와 원형이 기형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미 이때부터 조선은 유럽이나 일본의 자본주의와는 전혀 다른 유형인 식민지 자본주의의 길을 걷게 됩니다. (중략) 식민지 자본주의는 대부분 식민지 나라의 정치적 독립에도 불구하고, 선진자본주의 나라들에 의해 다시 새로운 형태의 정치, 경제, 문화적 예속상태에 처하게 됩니다. 이것을 사회과학 용어로 ‘구(舊)식민지’와 다른 ‘신(新)식민지’ 또는 ‘반(半)식민지’라 부릅니다. (중략) 한국 자본주의 역시 겉으로는 유럽처럼 고도화된 양상을 띠어도 한국 사회의 예속성과 기형성은 여전히 확대 재생산되는 종속형 자본주의입니다.〉
이씨는 대한민국의 역대 정권의 성격에 대해서도 ‘친미 예속 자본주의 정권’이라고 주장했다. 친미(親美)는 예속이고, 반미(反美)는 ‘자주’라는 식의 황당한 이분법이다. 참고로 이씨는 책 전체에 걸쳐 중국의 군사·경제적 지원이 없다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밖에 없는 북한 독재정권에 대해서는 ‘종속’ ‘예속’ ‘식민지’와 같은 표현을 쓴 일이 없다.
〈한국 사회를 전반적으로 규정하는 정권의 성격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친미 예속 자본주의 정권입니다. (중략) 미군이 주둔하고,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자치권을 주되 철저히 친미 예속 정권으로 만듭니다. (중략) 정권이 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조차 부정하고 예속적 자본주의를 유지하면 신식민지 예속자본주의가 지속되는 거지요. 미국과 한국 모두 자본주의 생산양식이란 동일한 사회구성체이지만 정권의 성격은 판이하게 다릅니다. 하나는 지배하는 자본주의(제국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종속된 자본주의입니다. 경제가 아무리 고도화되고 규모가 성장해도 자주적 정권이 되지 못하면 성장의 열매는 근로대중의 몫이 아니며 차별은 지속됩니다. 이런 종속관계를 단절하는 게 한국 사회의 미래를 위한 대수술이 되겠지요.〉
〈한국 경제정책의 기본 성격이 궁극적으로 미·일 외래자본과 재벌 대기업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지요. 이는 역대 정권의 성격과도 그대로 일치합니다. (중략) 수출 총액과 GDP(기자 주: 국내총생산)가 세계 10위권이라 해도 경제정책의 성격이 자국 근로대중과 자립적 민족경제를 위한 게 아니라면 그 혜택은 대자본과 외래자본에 주로 돌아가게 되지요. (중략) 경제정책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고위 공무원들의 국적은 모두 한국이지만, 머릿속의 소프트웨어는 미국산인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중략) 근로대중이 일만 열심히 하고 경제정책에 대해 무지하다면 영원히 자본이라는 주인에 묶여 ‘재주 부리는 곰’의 신세를 면치 못할 겁니다.〉
“미국에서 이탈해 북·중·러와 공조해야”
이정훈씨는 우리 경제가 대미(對美) 종속성을 끊고, 북한과 경제공동체를 구성하는 이른바 ‘자립적 민족경제 노선’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내용을 축약하면 미국의 수탈에 시달리는 한국에서 사회주의로 이행할 수 있는 정권이 등장해 ‘미국 중심 세계질서’에서 이탈한 뒤 북한과는 ‘민족공조’를 하고, 중국과 러시아와는 ‘동북아 공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공교롭게도 문재인(文在寅) 대통령이 집권 이래 줄곧 주장해온 이른바 ‘한반도 신(新)경제공동체(남·북·중·러)’와 유사하다.
〈남북 경제가 함께 가야 할 미래 방향은 여전히 자립적 민족경제입니다. (중략) 미국식 세계화를 정면 부정하고 새로운 세계화를 주장하는 입장이 바로 자립적 민족경제 노선에 기반한 세계화입니다. 물론 정치적 자주성이 없으면 불가능한 노선이죠. (중략) 성공 사례도 드물어요. (중략) 사회주의를 선택한 몇몇 나라만이 자립적 경제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중국, 베트남, 북한, 쿠바 등이 그렇습니다.〉
〈남북 분리대결에 기초한 반쪽짜리 경제발전 노선은 현실적이지 않고 미래지향적일 수도 없어요. 제도를 초월한 통일적인 자립적 민족경제 관점에서 공존하는 전망을 가져야 남북이 상생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남한 진보개혁 정권에 대한 제국주의 경제봉쇄와 제재에 공동 대응하고 남북 경제공동체를 중심으로 중국과 러시아, 아세안 등을 아우르는 새 경제공동체를 만들 수 있습니다. (중략) 역사와 다른 나라 사례가 보여주는 건, 정치적 민주주의 없이 미국의 품 안에서만 진행하는 경제발전 전략은 경제자립이나 진정한 복지와는 아무 상관 없는 수탈경제의 연장일 뿐이란 겁니다. (중략) 복지와 자립적 민족경제로 나가면서도 제국주의 경제제재를 이겨내는 가장 빠른 길은, 정치 변화로 전면적 민족공조와 동북아 공조를 이뤄 새길을 만드는 겁니다.〉
이씨는 북한 경제체제를 ‘자립적 민족경제 노선’이라고 주장하면서 긍정적으로 기술했다. 그는 북한 경제와 관련해서 6·25 전후 눈부신 성장을 이뤘고, 1990년대 들어 공산권 붕괴 등 외부 요인에 따라 잠시 쇠퇴했지만 이내 회복해 우리와의 경제 격차를 줄이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는 식으로 주장했다. 이와 달리 우리 경제에 대해서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해 북한의 경제 규모를 앞질렀지만, 1990년대에 외환위기를 맞아 추락했고, 2000년대 들어서는 ‘저성장 시대’가 됐다고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북한의 경제개발 정책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사회주의에 기초한 자립적 민족경제 노선입니다. (중략) 전후 폐허 속에서 1980년대 초반까진 북이 빠른 속도로 남한 경제를 앞섰습니다. (중략) 1980년대 후반 이후 남한 경제 규모가 급속히 팽창하는 데 반해 북의 경제는 사회주의 진영의 붕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아 급격히 추락해 위기를 맞습니다. 1990년대는 격차가 더 확대되다가 남한도 IMF 구제금융을 거치고 2000년대 본격적인 저성장 시대에 접어듭니다. 반면 2000년 이후 북 경제는 체제위기를 극복하고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섰으며 2010년대 들어선 본격적인 경제개발로 남한과의 격차를 줄이고 있습니다. 북은 지난 2016년 7차 당대회에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발표했습니다. 통일 민족경제와 제2의 천리마(만리마) 기적을 만들자고 독려하며 새로운 경제도약을 준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북은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전형적인 발전모델에 충실했습니다. 자본주의 진영뿐 아니라 동유럽 사회주의와 비교해도 경이적인 경제발전 속도를 기록했지요. 특히 1960년대 말까지 전후 불과 15년이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사회주의 공업화를 완료하고 70년대 전력, 석탄, 강철, 비료, 시멘트 등 주요 공업생산물 1인당 생산량이 발전한 공업국 수준에 이릅니다. 물론 당시 남한의 박정희 정권에겐 엄청난 충격과 압력이었지요.〉
이와 같은 이씨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통계청과 한국은행 통계를 종합해 2010년대의 남북한의 국내총생산(GDP)을 비교하면 그렇다. 2010년 당시 북한의 GDP는 30조원에 불과했다. 우리는 북한의 44.2배에 달하는 1322조6112억원이다. 이후에 그 격차는 ▲2011년 43배 ▲2012년 42.8배 ▲2013년 44.6배 ▲2014년 46배 ▲2015년 48.6배 ▲2016년 50.9배 ▲2017년 50.4배 ▲2018년 53.2배 ▲2019년 54.5배 등으로 계속 벌어졌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격차 감소’는 없었다.
경제성장률 역시 마찬가지다. 같은 기간 경제성장률 통계를 보면, 2010년 당시 남한은 6.8%, 북한은 -0.5%다. 이후에는 ▲2011년 남한 3.7% / 북한 0.8% ▲2012년 남한 2.4% / 북한 1.3% ▲2013년 남한 3.2% / 북한 1.1% ▲2014년 남한 3.2% / 북한 1% ▲2015년 남한 2.8% / 북한 -1.1% ▲2016년 남한 2.9% / 북한 3.9% ▲2017년 남한 3.2% /북한 -3.5% ▲2018년 남한 2.9% / 북한 -4.1% ▲2019년 남한 2% / 북한 0.4% 등의 추이를 보였다. 결국 북한이 우리와 ‘격차’를 줄이고 있다고 얘기할 정도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일은 없다는 얘기다. 애초에 경제 규모 자체가 서울시 종로구(2019년 지역내총생산 기준)와 비슷한 북한과 우리의 경제성장률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기도 하다.
“박정희의 목표는 재벌 중심 반공 자본주의 경제”
이정훈씨는 책에서 북한 경제에 대해서는 호의적으로 기술한 반면,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 집권 때 이뤄진 경제성장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박정희 정부 당시 경제개발과 수출산업 육성 전략은 ‘자립 경제 노선’이 아닌 ‘종속적 자본주의’라고 깎아내렸다. 또 한국은 외환위기 이후 고용불안과 저임금이 만연한 ‘비정규직’의 나라가 됐다고 주장했다.
〈박정희 정권은 기업 규모를 키우고 성장속도를 낼 수 있는 수출주도형 경제개발 정책을 택했습니다. (중략) 값싼 노동력의 대량 공급이 가능하도록 1970년대 저곡가 정책을 유지하면서 수출주도형 대기업, 재벌을 육성했습니다. 조세와 수출금융에 특혜를 줘가면서 1960년대에 재벌경제의 기초를 마련했습니다. (중략) 미국·일본 차관 도입→군사정권 경제 주도권 장악→재벌 대기업 육성, 이런 삼박자에 따라 한국 경제의 기본 틀이 1960~80년대를 거치며 완성됩니다. 물론 개발정책은 처음부터 근로대중의 노동권과 국민복지와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박정희 정권의 목표는 재벌 중심의 반공 자본주의 경제의 완성이었습니다. 박정희 정권이 전쟁하듯 경제를 밀어붙인 건 실제 끝나지 않은 전쟁이 체제경쟁으로 비화된 때문이죠. 한국 근로대중은 어느 나라 노동자보다 근면하고 성실했으나 민주노조를 불법시하는 정치적 억압 아래 경제 운영 방식 역시 비민주적일 뿐이었습니다.〉
〈1990년대 초 사회주의 진영의 붕괴를 계기로 미국의 세계전략과 한국의 경제정책 및 운영방식이 크게 바뀝니다. 김영삼 정부 때부터 이른바 미국식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하기 시작합니다. 이 역시도 미국의 요구로 시작됩니다. 이후 1960년대부터 형성된 한국 경제구조가 일거에 새로운 구조로 변모됩니다. (중략) 미국은 서서히 한국 정부를 작은 정부, 시장 규제 없는 정부로 만들면서 미국 금융자본이 한국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확대해갑니다. IMF 프로그램을 이용해 한국 경제 기조를 충격요법식으로 해체하는 데도 성공합니다. (중략) 그러나 근로대중이 만든 이익과 국부는 대기업의 주주 구성이 외국인으로 바뀌면서 외국으로 줄줄이 대량 유출되기 시작합니다. 기업투자도 부진하고 경제성장률 역시 구조적으로 저하되기에 이릅니다. 한국 경제의 성장률 신화는 여기서 멈춥니다. (중략) 기업도 금융자본이 언제든 사고팔기 좋게 이른바 노동시장을 유연화합니다. 1980년대까지 한국 사회에 유지되던 일본식 평생직장 개념은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비정규직이 대량으로 구조화됩니다. (중략) 한마디로 대한민국은 고용불안과 저임금이 만연한 비정규직의 나라가 됐습니다.〉
‘자립 경제’ 이뤘는데 왜 ‘북한 경제난’은 지속될까?
이정훈씨는 책에서 북한의 경제 쇠퇴는 독재정권의 무능과 ‘체제의 모순’이 아니라 ▲소련 등 공산권 붕괴 ▲가뭄과 홍수 등 자연재해와 같은 외부 요인에 따른 것이라는 식으로 오해될 수 있는 주장도 했다.
〈지난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연이은 사회주의 경제권 해체는 빠른 속도로 발전하던 북한 경제에 결정적 타격을 가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과 대규모 가뭄과 홍수 등 자연재해는 북에겐 전후 최대의 위기이자 시련이었지요. (중략) 당시 북이 선택할 수 있는 정책 방향은 사회주의의 후퇴 아니면 미국과 전쟁을 불사한 맞대결뿐이었습니다. (중략) 그런데 북이 선택한 길은 외부의 일반적 예측과 달리 초강경 응수였습니다. 미국의 대북침략전쟁엔 전쟁으로, 경제난국엔 경제도약을 위한 새로운 경제전략으로 맞대응하며 1996년 ‘고난의 행군’을 선포합니다. 북의 표현을 빌리면 ‘피로써 지킨’ 자주권과 사회주의가 아니면 차라리 죽음을 택한다는 강경한 입장이었지요.〉
이씨 주장에 따르면 이미 ‘주체사상’에 의해 오래전부터 ‘자립 경제’를 이룬 북한이 공산권 붕괴 등 외부 충격에 따라 경제위기를 맞았다고 분석하는 것은 그야말로 ‘모순’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자연재해를 언급하는 것도 설득력이 부족하다. 김일성이 사망한 1994년 당시 남한 지역도 심각한 가뭄에 시달렸지만, 그로 인해 우리 경제가 휘청거리지는 않았다. 당시 북한의 경제위기가 자연재해로 인한 것이었다면, 이는 북한 독재정권이 조림, 치수조차 하지 못하는 무능한 집단이란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또 ‘주체’ ‘자주’ 운운하지만, 실제로는 그 대외 의존성과 종속성이 심각해 ‘자립’이 어려운 체제라는 점을 스스로 드러냈다.
이씨는 북한의 핵 개발·보유를 정당화하는 주장도 했다. 그는 “북은 대담하게도 한반도 전쟁의 원인을 제거할 자주국방 체계를 구상하는 동시에 사회주의 원칙에 기초한 자립적 민족경제 노선을 더 강력히 추구했다”면서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미국에 대한 수동적인 방어전이 아니라 앞으로 더는 전쟁을 일으키는 게 불가능한 환경을 만들려고 하지요. 본격적인 핵 개발이 그겁니다. (중략) 절체절명 위기의 순간에 미래를 내다보면서 그처럼 원칙적이고 공세적인 전략을 구사한다는 건 놀라운 일이죠. (중략) 북이 전쟁 재발을 막으려면 미국의 핵 선제공격 전략과 해·공군 중심의 기동전을 무력화해야 합니다. 북은 그 방법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핵무기 보유, 그리고 미사일방어시스템 구축을 택합니다. (중략) 이런 계획도 놀랍지만, 더 중요한 건 군사전략을 경제발전전략과 연동해 추진한 겁니다. 일반적으로 국방비가 늘면 민간경제 부문이 줄고, 그게 또 장기화되면 전반적인 경제침체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데, 북은 이런 약점과 한계를 극복하는 기발한 전략을 구사합니다. 애초 일반 중공업이 맡던 국가 경제의 선도 부문을 국방공업이 담당케 합니다. 그리고 국방공업의 중심고리를 첨단 로켓공업과 대륙간탄도미사일, 핵 프로그램 개발에 맞춥니다. (중략) 북한은 산업 전반을 지식경제에 기반한 국방산업으로 재건한 겁니다. 이런 기술 수준에 오른 나라는 선진국 중에서도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일본 정도입니다. 더욱이 이를 독자 역량으로 구축한 나라는 없습니다. 항공우주산업을 선도하는 나라가 다가올 새 세기 산업혁명을 이끌 미래 선진국이라고 합니다.
ICBM의 성공은 현대 과학기술의 종합적 성공을 의미합니다. 더욱이 외부 도움 없이 자력으로만 성공을 이룬 건 북의 과학 기술 수준과 잠재력이 어느 정도인지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중략) 북한이 주장하는 ‘단번 도약’ 경제발전전략은 기존 선진국을 따라가는 전략이 아니라, 단번에 선진국을 능가하는 최첨단 지식산업 기반의 과학기술로 자본주의 경쟁력을 뛰어넘는 야심 찬 전략입니다. (중략) 2000년대 후반 들어 북 경제가 재건의 토대와 여러 산업 부문에서 최첨단 과학기술에 기반한 새 성장동력을 확보한 걸로 보입니다.〉
대한민국 주권 포기하는 ‘위헌적’ 연방제 통일 주장
이정훈씨는 또 책에서 ‘연방제 통일’을 옹호했다. 그는 “보수학자들은 남북의 국력 차이가 10배가 넘고 국방비, 경제력 모든 분야에서 남한 승리로 끝났다고 주장하는데, 정작 외세 간섭 없이 미군을 철수하고 남북이 1대1로 연방제로 통일하는 방안에 반대하고 두려워하는 건 왜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어서 “사실상 남한의 수구보수 세력은 미국의 힘과 머리 없이는 독자생존이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라며 “만약 남한 수구보수 세력의 주장이 맞는다면 연방제는 거꾸로 북한이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의 소위 ‘6·15 선언’ 이후 우리 사회에서 공공연하게 북한식 연방제 통일을 주장하는 세력들도 같은 강변을 하지만, 이는 논리 전개 자체가 틀렸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연방제 통일을 용인할 수 없는 까닭은 대한민국의 최고 규범인 ‘헌법’에 배치될 뿐 아니라 실현 가능성도 없는 북한의 기만술이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은 자유민주주의와 사적 소유에 기초하는 자본주의를 구현하는 단일국가를 지향한다. 대한민국이 북한과 연방제 통일을 추진한다면, 이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란 ‘헌법’ 제1조 1항에 위배된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제1조 2항)는 우리 ‘헌법’과 달리 북한은 ▲노동자 ▲농민 ▲군인을 비롯한 소위 근로인민대중을 주권자로 간주한다. 서로 다른 주권자 개념을 절충하거나 북한 측 주장을 인정해 하나의 연방헌법에 담는다면, 이 역시 ‘위헌’이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 제3조에 따라 대한민국은 한반도의 유일 합법정부임을 천명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한은 우리 영토를 불법 점유하고, 정부를 참칭하는 ‘반국가단체’가 된다.
이런 집단과 서로 대등한 지위에서 ‘연방제 통일’을 추진하는 것 역시 대한민국의 정통성, 유일 합법성을 부정하는 것이므로 ‘헌법’과 배치된다. 대한민국을 초월하는 상위의 ‘단일주권’을 만드는 행위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대한민국 주권의 소멸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정당의 설립은 자유이며, 복수정당제는 보장된다”는 우리 ‘헌법’ 제8조 1항의 ‘복수정당제’와 달리 북한은 형식상 ‘일당 독재’, 실제로는 ‘수령 독재’ 체제다. 이 사이에서 북한과 타협하는 행위 역시 ‘위헌’이다. 결국 지금의 북한 체제와 연방제 통일을 하는 것은 헌법상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그 어떤 대통령이든 북한과 ‘연방제 통일’을 추진한다면, 이는 지금까지 언급한 조항은 물론 “대통령은 국가의 독립·영토의 보전·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는 제66조 2항의 의무에 반할 수밖에 없다. 또 이는 “헌법 또는 법률에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는 것(형법 제91조 1호)”이므로 ‘국헌 문란’에 해당한다.
또 신뢰 구축과 민족 동질성 회복 없이 ‘정치적 결정’에 따라 ‘통합’할 경우 내전 발발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법리 검토를 떠나 실익 자체가 없다. 지금껏 전 세계에서 연방제를 실시해 성공한 나라들의 경우 연방을 구성하는 각 주(州) 정부는 모두 같은 정치 이념을 공유하고 단일 경제 체제를 운영하고 있다. 이를 고려하면, 우리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포기하지 않는 한 지금의 북한과 ‘연방’을 구성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북한이 주장한 ‘연방제 통일’은 남북한이 각기 다른 헌법 체제를 인정하고, 두 개의 정부를 두자는 것이다. 즉 ‘1민족·1국가·2체제·2정부’ 형태로 ‘통일’하자는 얘기인데, 이는 ‘공통된 정치 이념하에 통합되어 공통된 대외정책을 갖고 종합적인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는 것’이란 의미의 ‘연방’의 개념과 괴리가 큰 주장이다.
북한의 ‘3대 세습 독재’ 옹호
이정훈씨는 김정일이 주장한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을 언급하면서 ‘3대 세습 독재’를 옹호했다. 이 대목은 앞서 지적한 것처럼 ‘주체사상’이 무슨 대단한 철학이 아니라 북한 김씨 일가의 독재와 권력 세습, 대남 적화를 정당화하는 ‘궤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방증한다고 할 수 있다.
〈주체사상에서 민중에 대한 지도 문제는 민중에게 사상적 자각을 주고, 올바른 투쟁목표와 방도를 제시하는 겁니다. 민중의 정당이나 지도부가 직접 이끌어가는 과정입니다. 이를 정치적 지도자의 사상적 지도, 조직적 지도, 정책적 지도라고 해요. 즉 지도의 문제는 민중 속에서 나온 지도자와 함께 혁명을 이끌어가는 혁명적 당과 단체의 영도 문제입니다. 주체사상에서 지도자는 자본주의 나라에서 수년 단위 투표로 교체하는 대통령이나 총리와는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혁명이 한두 세대에 끝나는 게 아닌 만큼 지도자에게 임기를 몇 년 보장하는 차원이 아니라 혁명 계승이란 장기적이고 전략적 관점에서 봐요.
(중략) 주체사상은 지도자-당-대중을 하나의 유기체와 같은 민중의 실체로 파악합니다(기자 주: 사회정치적 생명체론). 지도자-당-대중의 관계를 하나의 사회정치적 생명체, 공동운명체라고 해요. 또 지도자는 민중의 수뇌부로서 결정적 역할을 수행한다고 봅니다(기자 주: 혁명적 수령관). 주체사상은 개별국가나 민족을 단위로 진행되는 혁명운동에서 정치 지도자가 어떤 사상으로 민중을 지도하는가를 혁명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 문제로 파악합니다. 왜냐면 역사를 보건대, 한 사회의 지도사상과 조직의 수준은 그 사회의 걸출한 정치적 지도자와 지도그룹의 수준을 크게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 지도자는 한 개인이라기보다 민중 내부의 중요한 핵심 구성 부분입니다. 정치운동에서 지도란 결국 지도자-당-대중의 관계가 낮고 부분적인 단계에서 높고 전면적인 수준으로 발전하면서 실현됩니다.〉
한편, 이씨는 《주체사상 에세이》의 ‘머리글’에서 “주체사상은 일반 국민이 있는 그대로의 날것으로 접해서는 절대 안 되는 여전히 ‘금지된 사상 1호’”라며 “음식을 먹어본 사람만이 그 맛을 알아 선택하듯 사상과 견해 역시 각자 경험과 판단에 맞으면 관심을 갖게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다시 찾는 일은 없다. 음식을 먹고 맛을 평가해야지 음식 자체도 보여주지 않은 채 ‘맛도 없고, 먹으면 식중독에 걸린다’고 겁주는 방식으로 사상 문제를 대하는 건 상식 이하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간략하게 살핀 내용을 고려하면, ‘주체사상’은 ‘음식’이 아니라 ‘독극물’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공안 당국에 따르면 이씨는 2017년 4월, 일본계 페루 국적으로 위장하고 국내에 잠입한 북한 공작원을 4회에 걸쳐 만나서 국내 좌파 진영 동향 등을 보고했다. 그는 암호화된 지령문과 보고문을 송수신하는 방법도 배웠다.
이씨는 2018년부터 2019년까지 북한 대남공작기구가 해외 웹하드에 올려놓은 암호화된 지령문을 내려받고 나서, 보고문 14개를 5회에 걸쳐 발송했다. 이씨는 또 이적성이 있는 책 2권을 출판한 혐의(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 제작·판매)도 받고 있다. 당국은 지난 5월 14일 그를 체포해 구속 수사한 뒤 기소했다. 4·27시대연구원 측에서 밝힌 내용에 따르면, 문제가 된 이적표현물은 이씨의 저서 《87, 6월 세대의 주체사상 에세이》(2019년)와 《北 바로 알기 100문 100답》(2019년)이다.
이씨를 옹호하는 측에서는 《北 바로 알기 100문 100답》은 이씨를 포함해 공동저자가 13명인데, 어떻게 ‘이적표현물’이 될 수 있느냐는 식으로 반문한다. 그 논리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 그들의 주장을 수용하더라도, 이씨 혼자 저술한 《87, 6월 세대의 주체사상 에세이》(이하 《주체사상 에세이》)는 ‘이적성’ 여부를 놓고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실제 이 책엔 우리의 ‘상식’과 거리가 먼 ▲주체사상 ▲독재 세습 ▲선군정치 ▲북한의 핵무기 개발·보유의 정당성 등을 강변하는 대목이 다수 있다. 지금도 이런 책이 ‘학문의 자유’란 보호막 아래 버젓이 시중에 유통되는 현실에 많은 이가 황당해했다.
美문화원 점거·일심회 사건 등 ‘화려한’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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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사상 에세이》의 저자 이정훈씨는 2006년 ‘일심회 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실형을 살았다. 민주노동당 내 소위 PD 계열은 일심회 관련자들을 제명하려고 했으나 부결됐다. 사진=뉴시스 |
이씨는 《주체사상 에세이》의 ‘머리글’에서 자신을 “전형적인 민주화 세대의 일원”이라고 자처하면서 “이 책은 일심회에 연루돼 옥중에서 썼던 노트(2008년)를 최근 다시 정리한 것”이라고 했다. 이씨는 또 “맑스(기자 주: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다룬 상당수 서적은 합법 출판되고 있는데 유독 주체사상에 대한 족쇄는 여전히 풀리지 않아 외려 궁금증을 자극하고 있다”며 “맑스주의와 주체사상의 차이에 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최소한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알려줘야 할 의무감 같은 걸 갖게 됐다”고 ‘집필 동기’를 밝혔다.
이씨가 쓴 《주체사상 에세이》의 내용에 앞서 ‘주체사상’에 대해 먼저 짚어봐야 한다. 주체사상의 연원은 과거 김일성이 연안파(친중), 소련파(친소) 등 정적을 숙청하고, 북한 통치 체제를 ‘일당 독재’에서 ‘수령 독재’로 바꾸는 과정에서 내놓은 ‘궤변’에서 비롯된다.
중국공산당의 지시를 받는 빨치산 활동을 하다가 소련으로 도망간 뒤에는 소련공산당 명령을 수행했고, 해방 후 소련 점령군과 함께 평양에 들어와 그들의 ‘꼭두각시’ 노릇을 했던 김일성과 ‘주체’란 표현은 애초부터 어울리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김일성은 1958년, 소련과 중국이 서로 ‘교조주의’ ‘수정주의’란 식으로 비난하며 공산 진영의 주도권을 놓고 충돌하는 틈을 타서 ‘수령 독재 체제’를 강화했다. 이오시프 스탈린(1879~1953년) 사후 니키타 흐루쇼프(1894~1971년)가 집권한 후 소련에서는 수령의 독점적 역할을 강조했던 스탈린에 대한 격하 운동이 진행됐다. 이런 기류가 북한에 유입돼 통치 기반이 위태로워질 것을 걱정한 김일성은 “중국과 소련 외세의 영향력을 거부하고 어디까지나 우리의 관점으로 주체적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며 느닷없이 ‘주체’를 내세웠다. 1997년 귀순해 2010년 사망한 황장엽씨는 1960년대에 김일성대 총장 시절 이를 체계화해 ‘주체사상’을 만들었다. 김정일의 ‘주체사상 개인 강사’ 역할도 했다. 북한은 1972년, 이른바 사회주의헌법에 통치이념으로 ‘주체사상’을 명기했다. 이후 북한은 신격화된 김일성이 통치하는 사실상의 ‘신정(神政) 체제’가 됐다.
북한은 ‘주체사상’의 근본 원리로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면서도 “인민대중에 의한 혁명은 그 자체가 고도의 의식적·조직적 운동이며 심각한 계급투쟁을 동반하기 때문에 반드시 최고영도자인 ‘수령’의 지도를 받을 때만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김정일은 이를 바탕으로 “인민대중은 당의 영도 밑에 수령을 중심으로 조직 사상적으로 결속함으로써 하나의 사회정치적 생명체를 이룰 때 역사의 자주적인 주체가 된다”며 소위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을 내놨다. 즉 ‘주체’ 또는 ‘자주’ 운운하지만, 결론적으로 ‘주체사상’은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의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하지만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욱 평등하다”란 식의 ‘말장난’에 불과하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수령 독재’와 북한 주민 착취를 정당화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남조선은 미제 식민지”란 식으로 주장하면서 대남 적화의 당위성을 강변하는 ‘이론적 토대’이기도 하다. 요약하면, 주체사상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남한 사회의 남남갈등과 반(反)체제 전복 활동을 부추기고, 최종적으로는 한반도에 대한 김일성 일가의 ‘사유화’를 목적으로 하는 북한 독재 정권의 ‘기만·선동 수단’에 불과하다.
“주체사상 최고 가치는 믿음·사랑 구현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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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주체사상’은 한반도에 대한 김일성 일가의 ‘사유화’를 목적으로 하는 북한 독재정권의 ‘기만·선동 수단’에 불과하다. 사진=뉴시스 |
〈근로대중이 단결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사상처럼 그 사회 지배세력에게 두려운 진실은 없습니다. 그래서 지배세력은 근로민중이 새 사상을 갖고 단결해 투쟁하면 세상을 바꾼다는 진리를 탄압합니다. 역사적으로 맑스-레닌주의나 주체사상 같은 사상이 탄압받았던 근본 이유입니다. 하지만 근로대중의 사상을 아무리 탄압해도 세상의 진리 자체가 바뀌지는 않습니다. (중략) 인류가 만든 자주적 사상은 많지만 대표적인 자주사상은 근대 맑스주의와 현대 주체사상입니다. 자주적 사상의식이 무엇인지 이처럼 정의하는 것도 놀라운 발견이고 쉽지 않았지만, 사람이 자기 운명의 주인임을 자각하는 과정도 실은 말처럼 쉽지 않았죠. 근로대중이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란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선사시대를 제외하더라도 무려 반만년 이상이 걸렸으니까요.〉
이씨는 책에서 “주체사상의 최고의 가치는 ‘믿음과 사랑이 구현되는 사회’”라고 주장했다. 이는 북한 실상과 거리가 먼 얘기다. 단적인 예로 그토록 사랑을 중시하는 지도 이념을 강조하는 북한 독재정권은 ‘정권 안보’를 위해 1990년대 중반, 개혁·개방을 하지 않고, 대외에 문을 닫아걸었다. 이른바 ‘고난의 행군’을 하겠다고 하면서 최소 100만명에서 최다 300만명에 이르는 북한 주민을 굶겨 죽였다. 이게 바로 ‘믿음과 사랑이 구현되는 사회’를 구현하려는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북한의 실상이다. 다음은 이와 관련한 《주체사상 에세이》의 대목이다.
〈기독교 사상이나 맑스주의, 주체사상에서 얘기하는 최고의 가치는 사실 모두 비슷합니다. 믿음과 사랑이 구현되는 사회입니다. 다만 그를 구현하는 방법에 차이가 날 뿐입니다. 기독교는 선행과 기도가, 맑스주의는 계급투쟁이, 그리고 주체사상은 자주성 실현을 위한 노력과 투쟁이 사회를 구원하며 사람을 사랑하는 거라 말합니다. (중략) 사람을 이윤과 생산의 도구로 보는 게 아니라 우리네 어머니 마음처럼 그의 삶 자체를 세상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 이런 모두가 우리 시대의 새로운 인간관계와 사랑의 내용일 겁니다. 이렇게 세상의 가장 큰 행복과 힘이 바로 자기 운명을 개척하고 창조하는 인간 자신에게 있다는 게 주체사상이 정말 하고픈 얘기였다면 지금껏 여러분이 알고 있던 주체사상과 너무 다른가요?〉
이씨는 해당 책 중반부에서 북한 체제의 우수성과 함께 남한의 ‘대미(對美) 예속성’을 주장했다. 먼저 이씨는 지금의 대한민국을 가능케 한 우리의 시장경제와 관련해 한국의 자본주의는 ‘기형적인 식민지 자본주의’, 우리 체제를 정치·경제·문화적으로 선진국에 예속된 ‘신식민지’ 또는 ‘반식민지’라고 규정했다.
〈한국 사회를 얘기할 때 멀리 근대사부터 시작하는 이유는 현재 한국 자본주의의 뿌리와 원형이 기형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미 이때부터 조선은 유럽이나 일본의 자본주의와는 전혀 다른 유형인 식민지 자본주의의 길을 걷게 됩니다. (중략) 식민지 자본주의는 대부분 식민지 나라의 정치적 독립에도 불구하고, 선진자본주의 나라들에 의해 다시 새로운 형태의 정치, 경제, 문화적 예속상태에 처하게 됩니다. 이것을 사회과학 용어로 ‘구(舊)식민지’와 다른 ‘신(新)식민지’ 또는 ‘반(半)식민지’라 부릅니다. (중략) 한국 자본주의 역시 겉으로는 유럽처럼 고도화된 양상을 띠어도 한국 사회의 예속성과 기형성은 여전히 확대 재생산되는 종속형 자본주의입니다.〉
이씨는 대한민국의 역대 정권의 성격에 대해서도 ‘친미 예속 자본주의 정권’이라고 주장했다. 친미(親美)는 예속이고, 반미(反美)는 ‘자주’라는 식의 황당한 이분법이다. 참고로 이씨는 책 전체에 걸쳐 중국의 군사·경제적 지원이 없다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밖에 없는 북한 독재정권에 대해서는 ‘종속’ ‘예속’ ‘식민지’와 같은 표현을 쓴 일이 없다.
〈한국 사회를 전반적으로 규정하는 정권의 성격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친미 예속 자본주의 정권입니다. (중략) 미군이 주둔하고,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자치권을 주되 철저히 친미 예속 정권으로 만듭니다. (중략) 정권이 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조차 부정하고 예속적 자본주의를 유지하면 신식민지 예속자본주의가 지속되는 거지요. 미국과 한국 모두 자본주의 생산양식이란 동일한 사회구성체이지만 정권의 성격은 판이하게 다릅니다. 하나는 지배하는 자본주의(제국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종속된 자본주의입니다. 경제가 아무리 고도화되고 규모가 성장해도 자주적 정권이 되지 못하면 성장의 열매는 근로대중의 몫이 아니며 차별은 지속됩니다. 이런 종속관계를 단절하는 게 한국 사회의 미래를 위한 대수술이 되겠지요.〉
〈한국 경제정책의 기본 성격이 궁극적으로 미·일 외래자본과 재벌 대기업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지요. 이는 역대 정권의 성격과도 그대로 일치합니다. (중략) 수출 총액과 GDP(기자 주: 국내총생산)가 세계 10위권이라 해도 경제정책의 성격이 자국 근로대중과 자립적 민족경제를 위한 게 아니라면 그 혜택은 대자본과 외래자본에 주로 돌아가게 되지요. (중략) 경제정책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고위 공무원들의 국적은 모두 한국이지만, 머릿속의 소프트웨어는 미국산인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중략) 근로대중이 일만 열심히 하고 경제정책에 대해 무지하다면 영원히 자본이라는 주인에 묶여 ‘재주 부리는 곰’의 신세를 면치 못할 겁니다.〉
“미국에서 이탈해 북·중·러와 공조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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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씨는 2000년대 이후 북한의 본격적인 핵ㆍ미사일 개발에 대해 “한반도 전쟁의 원인을 제거할 자주국방 체계를 구상했다”고 주장했다. 사진=뉴시스 |
〈남북 경제가 함께 가야 할 미래 방향은 여전히 자립적 민족경제입니다. (중략) 미국식 세계화를 정면 부정하고 새로운 세계화를 주장하는 입장이 바로 자립적 민족경제 노선에 기반한 세계화입니다. 물론 정치적 자주성이 없으면 불가능한 노선이죠. (중략) 성공 사례도 드물어요. (중략) 사회주의를 선택한 몇몇 나라만이 자립적 경제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중국, 베트남, 북한, 쿠바 등이 그렇습니다.〉
〈남북 분리대결에 기초한 반쪽짜리 경제발전 노선은 현실적이지 않고 미래지향적일 수도 없어요. 제도를 초월한 통일적인 자립적 민족경제 관점에서 공존하는 전망을 가져야 남북이 상생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남한 진보개혁 정권에 대한 제국주의 경제봉쇄와 제재에 공동 대응하고 남북 경제공동체를 중심으로 중국과 러시아, 아세안 등을 아우르는 새 경제공동체를 만들 수 있습니다. (중략) 역사와 다른 나라 사례가 보여주는 건, 정치적 민주주의 없이 미국의 품 안에서만 진행하는 경제발전 전략은 경제자립이나 진정한 복지와는 아무 상관 없는 수탈경제의 연장일 뿐이란 겁니다. (중략) 복지와 자립적 민족경제로 나가면서도 제국주의 경제제재를 이겨내는 가장 빠른 길은, 정치 변화로 전면적 민족공조와 동북아 공조를 이뤄 새길을 만드는 겁니다.〉
이씨는 북한 경제체제를 ‘자립적 민족경제 노선’이라고 주장하면서 긍정적으로 기술했다. 그는 북한 경제와 관련해서 6·25 전후 눈부신 성장을 이뤘고, 1990년대 들어 공산권 붕괴 등 외부 요인에 따라 잠시 쇠퇴했지만 이내 회복해 우리와의 경제 격차를 줄이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는 식으로 주장했다. 이와 달리 우리 경제에 대해서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해 북한의 경제 규모를 앞질렀지만, 1990년대에 외환위기를 맞아 추락했고, 2000년대 들어서는 ‘저성장 시대’가 됐다고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북한의 경제개발 정책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사회주의에 기초한 자립적 민족경제 노선입니다. (중략) 전후 폐허 속에서 1980년대 초반까진 북이 빠른 속도로 남한 경제를 앞섰습니다. (중략) 1980년대 후반 이후 남한 경제 규모가 급속히 팽창하는 데 반해 북의 경제는 사회주의 진영의 붕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아 급격히 추락해 위기를 맞습니다. 1990년대는 격차가 더 확대되다가 남한도 IMF 구제금융을 거치고 2000년대 본격적인 저성장 시대에 접어듭니다. 반면 2000년 이후 북 경제는 체제위기를 극복하고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섰으며 2010년대 들어선 본격적인 경제개발로 남한과의 격차를 줄이고 있습니다. 북은 지난 2016년 7차 당대회에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발표했습니다. 통일 민족경제와 제2의 천리마(만리마) 기적을 만들자고 독려하며 새로운 경제도약을 준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북은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전형적인 발전모델에 충실했습니다. 자본주의 진영뿐 아니라 동유럽 사회주의와 비교해도 경이적인 경제발전 속도를 기록했지요. 특히 1960년대 말까지 전후 불과 15년이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사회주의 공업화를 완료하고 70년대 전력, 석탄, 강철, 비료, 시멘트 등 주요 공업생산물 1인당 생산량이 발전한 공업국 수준에 이릅니다. 물론 당시 남한의 박정희 정권에겐 엄청난 충격과 압력이었지요.〉
이와 같은 이씨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통계청과 한국은행 통계를 종합해 2010년대의 남북한의 국내총생산(GDP)을 비교하면 그렇다. 2010년 당시 북한의 GDP는 30조원에 불과했다. 우리는 북한의 44.2배에 달하는 1322조6112억원이다. 이후에 그 격차는 ▲2011년 43배 ▲2012년 42.8배 ▲2013년 44.6배 ▲2014년 46배 ▲2015년 48.6배 ▲2016년 50.9배 ▲2017년 50.4배 ▲2018년 53.2배 ▲2019년 54.5배 등으로 계속 벌어졌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격차 감소’는 없었다.
경제성장률 역시 마찬가지다. 같은 기간 경제성장률 통계를 보면, 2010년 당시 남한은 6.8%, 북한은 -0.5%다. 이후에는 ▲2011년 남한 3.7% / 북한 0.8% ▲2012년 남한 2.4% / 북한 1.3% ▲2013년 남한 3.2% / 북한 1.1% ▲2014년 남한 3.2% / 북한 1% ▲2015년 남한 2.8% / 북한 -1.1% ▲2016년 남한 2.9% / 북한 3.9% ▲2017년 남한 3.2% /북한 -3.5% ▲2018년 남한 2.9% / 북한 -4.1% ▲2019년 남한 2% / 북한 0.4% 등의 추이를 보였다. 결국 북한이 우리와 ‘격차’를 줄이고 있다고 얘기할 정도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일은 없다는 얘기다. 애초에 경제 규모 자체가 서울시 종로구(2019년 지역내총생산 기준)와 비슷한 북한과 우리의 경제성장률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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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5월,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포항제철 제2고로에 점화하고 있다. 《주체사상 에세이》의 저자는 박정희 정부 이후 한국 경제를 “미국 제국주의에 의한 신식민지”라는 식으로 규정했다. 사진=조선DB |
〈박정희 정권은 기업 규모를 키우고 성장속도를 낼 수 있는 수출주도형 경제개발 정책을 택했습니다. (중략) 값싼 노동력의 대량 공급이 가능하도록 1970년대 저곡가 정책을 유지하면서 수출주도형 대기업, 재벌을 육성했습니다. 조세와 수출금융에 특혜를 줘가면서 1960년대에 재벌경제의 기초를 마련했습니다. (중략) 미국·일본 차관 도입→군사정권 경제 주도권 장악→재벌 대기업 육성, 이런 삼박자에 따라 한국 경제의 기본 틀이 1960~80년대를 거치며 완성됩니다. 물론 개발정책은 처음부터 근로대중의 노동권과 국민복지와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박정희 정권의 목표는 재벌 중심의 반공 자본주의 경제의 완성이었습니다. 박정희 정권이 전쟁하듯 경제를 밀어붙인 건 실제 끝나지 않은 전쟁이 체제경쟁으로 비화된 때문이죠. 한국 근로대중은 어느 나라 노동자보다 근면하고 성실했으나 민주노조를 불법시하는 정치적 억압 아래 경제 운영 방식 역시 비민주적일 뿐이었습니다.〉
〈1990년대 초 사회주의 진영의 붕괴를 계기로 미국의 세계전략과 한국의 경제정책 및 운영방식이 크게 바뀝니다. 김영삼 정부 때부터 이른바 미국식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하기 시작합니다. 이 역시도 미국의 요구로 시작됩니다. 이후 1960년대부터 형성된 한국 경제구조가 일거에 새로운 구조로 변모됩니다. (중략) 미국은 서서히 한국 정부를 작은 정부, 시장 규제 없는 정부로 만들면서 미국 금융자본이 한국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확대해갑니다. IMF 프로그램을 이용해 한국 경제 기조를 충격요법식으로 해체하는 데도 성공합니다. (중략) 그러나 근로대중이 만든 이익과 국부는 대기업의 주주 구성이 외국인으로 바뀌면서 외국으로 줄줄이 대량 유출되기 시작합니다. 기업투자도 부진하고 경제성장률 역시 구조적으로 저하되기에 이릅니다. 한국 경제의 성장률 신화는 여기서 멈춥니다. (중략) 기업도 금융자본이 언제든 사고팔기 좋게 이른바 노동시장을 유연화합니다. 1980년대까지 한국 사회에 유지되던 일본식 평생직장 개념은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비정규직이 대량으로 구조화됩니다. (중략) 한마디로 대한민국은 고용불안과 저임금이 만연한 비정규직의 나라가 됐습니다.〉
‘자립 경제’ 이뤘는데 왜 ‘북한 경제난’은 지속될까?
이정훈씨는 책에서 북한의 경제 쇠퇴는 독재정권의 무능과 ‘체제의 모순’이 아니라 ▲소련 등 공산권 붕괴 ▲가뭄과 홍수 등 자연재해와 같은 외부 요인에 따른 것이라는 식으로 오해될 수 있는 주장도 했다.
〈지난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연이은 사회주의 경제권 해체는 빠른 속도로 발전하던 북한 경제에 결정적 타격을 가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과 대규모 가뭄과 홍수 등 자연재해는 북에겐 전후 최대의 위기이자 시련이었지요. (중략) 당시 북이 선택할 수 있는 정책 방향은 사회주의의 후퇴 아니면 미국과 전쟁을 불사한 맞대결뿐이었습니다. (중략) 그런데 북이 선택한 길은 외부의 일반적 예측과 달리 초강경 응수였습니다. 미국의 대북침략전쟁엔 전쟁으로, 경제난국엔 경제도약을 위한 새로운 경제전략으로 맞대응하며 1996년 ‘고난의 행군’을 선포합니다. 북의 표현을 빌리면 ‘피로써 지킨’ 자주권과 사회주의가 아니면 차라리 죽음을 택한다는 강경한 입장이었지요.〉
이씨 주장에 따르면 이미 ‘주체사상’에 의해 오래전부터 ‘자립 경제’를 이룬 북한이 공산권 붕괴 등 외부 충격에 따라 경제위기를 맞았다고 분석하는 것은 그야말로 ‘모순’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자연재해를 언급하는 것도 설득력이 부족하다. 김일성이 사망한 1994년 당시 남한 지역도 심각한 가뭄에 시달렸지만, 그로 인해 우리 경제가 휘청거리지는 않았다. 당시 북한의 경제위기가 자연재해로 인한 것이었다면, 이는 북한 독재정권이 조림, 치수조차 하지 못하는 무능한 집단이란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또 ‘주체’ ‘자주’ 운운하지만, 실제로는 그 대외 의존성과 종속성이 심각해 ‘자립’이 어려운 체제라는 점을 스스로 드러냈다.
이씨는 북한의 핵 개발·보유를 정당화하는 주장도 했다. 그는 “북은 대담하게도 한반도 전쟁의 원인을 제거할 자주국방 체계를 구상하는 동시에 사회주의 원칙에 기초한 자립적 민족경제 노선을 더 강력히 추구했다”면서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미국에 대한 수동적인 방어전이 아니라 앞으로 더는 전쟁을 일으키는 게 불가능한 환경을 만들려고 하지요. 본격적인 핵 개발이 그겁니다. (중략) 절체절명 위기의 순간에 미래를 내다보면서 그처럼 원칙적이고 공세적인 전략을 구사한다는 건 놀라운 일이죠. (중략) 북이 전쟁 재발을 막으려면 미국의 핵 선제공격 전략과 해·공군 중심의 기동전을 무력화해야 합니다. 북은 그 방법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핵무기 보유, 그리고 미사일방어시스템 구축을 택합니다. (중략) 이런 계획도 놀랍지만, 더 중요한 건 군사전략을 경제발전전략과 연동해 추진한 겁니다. 일반적으로 국방비가 늘면 민간경제 부문이 줄고, 그게 또 장기화되면 전반적인 경제침체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데, 북은 이런 약점과 한계를 극복하는 기발한 전략을 구사합니다. 애초 일반 중공업이 맡던 국가 경제의 선도 부문을 국방공업이 담당케 합니다. 그리고 국방공업의 중심고리를 첨단 로켓공업과 대륙간탄도미사일, 핵 프로그램 개발에 맞춥니다. (중략) 북한은 산업 전반을 지식경제에 기반한 국방산업으로 재건한 겁니다. 이런 기술 수준에 오른 나라는 선진국 중에서도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일본 정도입니다. 더욱이 이를 독자 역량으로 구축한 나라는 없습니다. 항공우주산업을 선도하는 나라가 다가올 새 세기 산업혁명을 이끌 미래 선진국이라고 합니다.
ICBM의 성공은 현대 과학기술의 종합적 성공을 의미합니다. 더욱이 외부 도움 없이 자력으로만 성공을 이룬 건 북의 과학 기술 수준과 잠재력이 어느 정도인지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중략) 북한이 주장하는 ‘단번 도약’ 경제발전전략은 기존 선진국을 따라가는 전략이 아니라, 단번에 선진국을 능가하는 최첨단 지식산업 기반의 과학기술로 자본주의 경쟁력을 뛰어넘는 야심 찬 전략입니다. (중략) 2000년대 후반 들어 북 경제가 재건의 토대와 여러 산업 부문에서 최첨단 과학기술에 기반한 새 성장동력을 확보한 걸로 보입니다.〉
대한민국 주권 포기하는 ‘위헌적’ 연방제 통일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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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의 소위 ‘6ㆍ15선언’ 이후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공공연하게 ‘연방제 통일’을 주장하지만, 이는 어느 모로 보나 ‘위헌’이다. 사진=조선DB |
우리 ‘헌법’은 자유민주주의와 사적 소유에 기초하는 자본주의를 구현하는 단일국가를 지향한다. 대한민국이 북한과 연방제 통일을 추진한다면, 이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란 ‘헌법’ 제1조 1항에 위배된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제1조 2항)는 우리 ‘헌법’과 달리 북한은 ▲노동자 ▲농민 ▲군인을 비롯한 소위 근로인민대중을 주권자로 간주한다. 서로 다른 주권자 개념을 절충하거나 북한 측 주장을 인정해 하나의 연방헌법에 담는다면, 이 역시 ‘위헌’이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 제3조에 따라 대한민국은 한반도의 유일 합법정부임을 천명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한은 우리 영토를 불법 점유하고, 정부를 참칭하는 ‘반국가단체’가 된다.
이런 집단과 서로 대등한 지위에서 ‘연방제 통일’을 추진하는 것 역시 대한민국의 정통성, 유일 합법성을 부정하는 것이므로 ‘헌법’과 배치된다. 대한민국을 초월하는 상위의 ‘단일주권’을 만드는 행위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대한민국 주권의 소멸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정당의 설립은 자유이며, 복수정당제는 보장된다”는 우리 ‘헌법’ 제8조 1항의 ‘복수정당제’와 달리 북한은 형식상 ‘일당 독재’, 실제로는 ‘수령 독재’ 체제다. 이 사이에서 북한과 타협하는 행위 역시 ‘위헌’이다. 결국 지금의 북한 체제와 연방제 통일을 하는 것은 헌법상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그 어떤 대통령이든 북한과 ‘연방제 통일’을 추진한다면, 이는 지금까지 언급한 조항은 물론 “대통령은 국가의 독립·영토의 보전·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는 제66조 2항의 의무에 반할 수밖에 없다. 또 이는 “헌법 또는 법률에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는 것(형법 제91조 1호)”이므로 ‘국헌 문란’에 해당한다.
또 신뢰 구축과 민족 동질성 회복 없이 ‘정치적 결정’에 따라 ‘통합’할 경우 내전 발발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법리 검토를 떠나 실익 자체가 없다. 지금껏 전 세계에서 연방제를 실시해 성공한 나라들의 경우 연방을 구성하는 각 주(州) 정부는 모두 같은 정치 이념을 공유하고 단일 경제 체제를 운영하고 있다. 이를 고려하면, 우리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포기하지 않는 한 지금의 북한과 ‘연방’을 구성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북한이 주장한 ‘연방제 통일’은 남북한이 각기 다른 헌법 체제를 인정하고, 두 개의 정부를 두자는 것이다. 즉 ‘1민족·1국가·2체제·2정부’ 형태로 ‘통일’하자는 얘기인데, 이는 ‘공통된 정치 이념하에 통합되어 공통된 대외정책을 갖고 종합적인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는 것’이란 의미의 ‘연방’의 개념과 괴리가 큰 주장이다.
이정훈씨는 김정일이 주장한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을 언급하면서 ‘3대 세습 독재’를 옹호했다. 이 대목은 앞서 지적한 것처럼 ‘주체사상’이 무슨 대단한 철학이 아니라 북한 김씨 일가의 독재와 권력 세습, 대남 적화를 정당화하는 ‘궤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방증한다고 할 수 있다.
〈주체사상에서 민중에 대한 지도 문제는 민중에게 사상적 자각을 주고, 올바른 투쟁목표와 방도를 제시하는 겁니다. 민중의 정당이나 지도부가 직접 이끌어가는 과정입니다. 이를 정치적 지도자의 사상적 지도, 조직적 지도, 정책적 지도라고 해요. 즉 지도의 문제는 민중 속에서 나온 지도자와 함께 혁명을 이끌어가는 혁명적 당과 단체의 영도 문제입니다. 주체사상에서 지도자는 자본주의 나라에서 수년 단위 투표로 교체하는 대통령이나 총리와는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혁명이 한두 세대에 끝나는 게 아닌 만큼 지도자에게 임기를 몇 년 보장하는 차원이 아니라 혁명 계승이란 장기적이고 전략적 관점에서 봐요.
(중략) 주체사상은 지도자-당-대중을 하나의 유기체와 같은 민중의 실체로 파악합니다(기자 주: 사회정치적 생명체론). 지도자-당-대중의 관계를 하나의 사회정치적 생명체, 공동운명체라고 해요. 또 지도자는 민중의 수뇌부로서 결정적 역할을 수행한다고 봅니다(기자 주: 혁명적 수령관). 주체사상은 개별국가나 민족을 단위로 진행되는 혁명운동에서 정치 지도자가 어떤 사상으로 민중을 지도하는가를 혁명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 문제로 파악합니다. 왜냐면 역사를 보건대, 한 사회의 지도사상과 조직의 수준은 그 사회의 걸출한 정치적 지도자와 지도그룹의 수준을 크게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 지도자는 한 개인이라기보다 민중 내부의 중요한 핵심 구성 부분입니다. 정치운동에서 지도란 결국 지도자-당-대중의 관계가 낮고 부분적인 단계에서 높고 전면적인 수준으로 발전하면서 실현됩니다.〉
한편, 이씨는 《주체사상 에세이》의 ‘머리글’에서 “주체사상은 일반 국민이 있는 그대로의 날것으로 접해서는 절대 안 되는 여전히 ‘금지된 사상 1호’”라며 “음식을 먹어본 사람만이 그 맛을 알아 선택하듯 사상과 견해 역시 각자 경험과 판단에 맞으면 관심을 갖게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다시 찾는 일은 없다. 음식을 먹고 맛을 평가해야지 음식 자체도 보여주지 않은 채 ‘맛도 없고, 먹으면 식중독에 걸린다’고 겁주는 방식으로 사상 문제를 대하는 건 상식 이하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간략하게 살핀 내용을 고려하면, ‘주체사상’은 ‘음식’이 아니라 ‘독극물’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