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수로만 5년, (사)물망초(이사장 박선영)와 8명의 변호인(김현·구충서·송수현·심재왕·윤동욱·엄태섭·이재원·이정엽)이 만든 이정표적인 판결… “아무도 가지 않은 길, 사법부를 설득하는 과정이었다”
⊙ 법원, ‘김일성·김정일의 불법행위, 김정은에 상속’ 인정
⊙ 서울중앙지법이 김정은에 대한 재판관할권 보유
⊙ 한 변호인, “북한·김정은과 법리 다퉈보고 싶었는데…”
⊙ 김정은에 책임 묻기 위해 민법의 상속 원리 동원
⊙ 원고 측 변호인단, 국내 북한 자산에 대한 추심으로 원고에 손해배상 예정
⊙ 법원, ‘김일성·김정일의 불법행위, 김정은에 상속’ 인정
⊙ 서울중앙지법이 김정은에 대한 재판관할권 보유
⊙ 한 변호인, “북한·김정은과 법리 다퉈보고 싶었는데…”
⊙ 김정은에 책임 묻기 위해 민법의 상속 원리 동원
⊙ 원고 측 변호인단, 국내 북한 자산에 대한 추심으로 원고에 손해배상 예정
- 북송되는 국군포로들.
〈피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피고 김정은은 공동하여 원고들에게 각 2100만원을 지급하라. … 원고들은 민법상 비법인 사단인 피고 북한의 대표자인 김일성과 김정일의 불법행위로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 피고 김정은은 불법행위자인 김일성과 김정일의 상속인으로서 원고들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한다.〉
지난 7월 7일 오후 2시, 서울 서초구의 서울중앙지방법원 360호 법정에선 역사적인 판결이 내려졌다. 두 명의 국군포로가 북한과 김정은을 상대로 2016년 10월 11일부터 벌인 1366일간의 소송에서 마침내 원고 승소 판결을 받아낸 것이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김영아 판사는 국군포로 노사홍(91)·한재복(86)씨가 북한과 김정은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사건번호 2016가단 5235506)에서 “피고(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김정은)는 원고들에게 각각 2100만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47년 만에 귀환한 노 일병
1930년 전남 무안에서 출생한 노사홍씨는 대한민국에 14번째로 귀환한 국군포로이다. 두 살배기 딸과 아내를 둔 채 1952년 4월 자원입대했다. 수도사단 1연대 1대대 2중대 위생소대 소속의 일병이었던 노씨는, 정전을 앞둔 1953년 7월 14일 한국전쟁의 마지막 전투인 금성지구(현재 강원도 철원) 전투에서 중공군의 포로가 됐다.
노씨가 포로가 되기 하루 전인 7월 13일, 이승만 대통령은 반공포로의 석방을 지시한다. 이에 자극을 받은 중공(中共)이 중공군 15개 사단, 25만의 병력으로 철원 일대에서 마지막 총공세를 퍼부은 것이 금성 전투이다. 당시 노 일병은 중공군의 폭격으로 척추가 골절되고 왼손 중지(中肢)는 절단됐다. 포로가 된 노씨는 평북의 천마수용소로 옮겨졌다. 국방부는 이틀 뒤인 7월 16일, 노 일병을 ‘머리에 포탄 파편이 박혀 사망’이라는 허위사실을 기재해놓고는 전사 처리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됐음에도 그는 한국으로 송환되지 못했다. 노 일병은 국군포로를 한데 모아놓은 ‘내무성 건설대 1709부대’에 편입돼 탄광에서 강제 노역을 해야만 했다. 그는 다친 허리를 치료받지 못해 늘 요통에 시달렸다. 가죽과 철판으로 만든 조끼를 입은 채 탄광에서 고된 노동을 이어갔다.
1956년 6월 13일, 노씨는 ‘내각 결정 143호(일명 43호)’에 따라 공민증(公民證·우리나라의 주민등록증에 해당)을 발급받고는 북한 사회로 강제 편입됐다. 그 뒤로도 탄광 노동은 계속됐다.
노씨에겐 5남 1녀가 있었지만 국군포로, ‘43호’의 자녀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차별 속에 살아갔다. 자녀 중 아들 넷은 정신병원에서 맞아 죽거나 험한 일을 하다 죽었다.
생지옥에서 47년을 버틴 노씨는 2000년 6월 18일 탈북해 한국으로 돌아와 7월 28일 퇴역식을 갖고 제대했다. 노씨는 고향에서 폐지를 줍는 공공근로(20만원)와 노령연금(10만원), 사단법인 물망초가 지원하는 월 50만원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지금은 고령으로 인한 건강 악화로 서울에 사는 딸의 집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내무성 건설대 1709부대 편입시켜
한재복(귀환국군용사회 2기 회장)씨는 1934년 전북 정읍에서 6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공산군이 침략했는데 청년들이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 1951년 4월 동네 청년 10명과 동반 자원입대했다. 그때 나이가 17세였다. 6개월간 모형으로 된 총으로 훈련을 받고는 1951년 9월 7사단 5연대에 배속됐다. 한씨는 그해 12월 강원도 양구에서 고지탈환 전투를 치르다 중공군에게 붙잡혀 북으로 끌려갔다. 황해도 수용소, 자강도 수용소 등지를 거친 한씨는 전쟁이 끝나면 곧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정전협정이 맺어졌음에도 그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1953년 9월, 700여 명의 국군포로와 함께 평남 강동으로 옮겨졌고, ‘내무성 건설대 1709부대’에 편입됐다. 한씨는 곧 평남의 신창 탄광으로 보내졌다.
한씨는 매일 갱도에 들어가 12시간 이상의 강제 노역을 했다. 그는 이를 ‘노예의 삶’이라고 표현했다. 함북 경원의 탄광으로 옮겨져 고된 노동을 이어갔다. 한씨도 노씨처럼 1956년 6월 13일 내각 결정 143호에 따라 공민증을 발급받고 북한 사회로 배출됐다. 광부의 삶은 계속됐다. 한씨는 물론 그의 가족도 ‘43호’라는 차별 속에 감시와 박해를 받으며 살았다. 한씨의 자녀들은 아버지의 출신 성분 때문에 탄광에서 일하며 불이익을 받았다.
‘고난의 행군’을 겪으며 탈북을 결심한 한씨는 2001년 11월 3일 한국으로 귀환했다. 그해 12월 26일 퇴역식을 가진 뒤 제대했다.
국군포로 송환을 위한 노력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먼저 시작됐다. 2004년 재미(在美) 정용봉 박사가 국군포로송환위원회를 설립해 포로 송환 노력을 펼쳤다. 2013년 5월에는 (사)물망초(이사장 박선영)에도 국군포로신고센터(센터장 김현 변호사·법무법인 세창)가 개설됐다. 정용봉 박사가 고령으로 활동이 힘들어지자 국군포로신고센터가 미국 국군포로송환위원회를 인수했고, 그해 9월 24일 (사)물망초 국군포로송환위원회로 확대 출범했다. 초대 위원장은 김현(전 대한변협 회장) 변호사가 맡았고, 현재는 울산대 정수한 교수(예비역 준장)가 위원회를 이끌고 있다.
2016년 10월 국군포로송환위원회는 한재복·노사홍씨의 북한과 김정은을 상대로 한 소송을 결정했다. 북한에서 고생한 국군포로의 명예를 회복하고, 북한과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독재자들의 불법행위를 역사에 남기려는 취지였다.
북한·김정은에 손해배상 청구
같은 해 10월 11일, 원고 노씨와 한씨는 서울중앙지법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대표자 국무위원장 김정은)과 김정은을 피고로 하는 소장을 제출했다. 소송대리인으로 김현·이재원·송수현·윤동욱 변호사가 참여했다. 사건번호는 민사39단독 ‘2016가단 5235506 손해배상’이었다.
소장에는 “원고가 정전협정 이후 본국으로 송환되지 않은 채 1956년 내각 결정 143호로 북한 사회로 편입될 때까지 내무성 건설대에 배속돼 33개월간 강제 억류돼 노역에 종사했다”며 “이는 노예제를 금지하는 국제관습법과 강제노동 폐지를 규정한 국제노동기구(ILO) 제29호 조약을 위반하고,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소 조례 및 당해 재판소의 판결로 승인된 국제법 위반(전쟁범죄 및 인도에 대한 죄)에 해당하여 불법행위를 구성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피고들의 행위는 우리 민법 제750조의 불법행위에 해당하며, 형사적으로 체포·감금·강요 등 범죄행위를 구성한다”고 명시했다.
원고들은 33개월의 강제 노역에서 받지 못한 임금 6849만9388원(9만4338원×22일×33개월)을 돌려달라고 했다. 이는 도시 일용근로자 노임인 9만4338원에 한 달 근무일을 22일로 계산한 값이다. 또 강제노동으로 인해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입었다면서 일부 청구로 재산적 손해에 대해 1100만원, 정신적 손해에 대해 위자료 1000만원도 청구했다. 한씨와 노씨 각각 2100만원씩 청구한 것이다.
원고는 “피고들은 공동하여(부진정연대채무) 원고들에게 손해배상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도 명시했다. 부진정연대채무란, 두 피고(북한·김정은) 중 어느 누가 됐든 원고가 청구한 손해배상액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청구 금액 전액을 북한이 내든, 북한과 김정은이 각각 절반을 원고에게 배상하든 손해배상의 책임을 피고가 공동으로 갖는다는 의미이다.
송달 문제로 재판이 열리기까지 2년8개월
2016년 10월 11일, 원고가 법원에 소송의 이유와 청구 금액이 적힌 소장을 제출했지만, 소송이 시작되기까지는 2년8개월이 걸렸다. 소장을 상대방(피고)에게 전달하는 문제 때문이었다. 민사소송법상 소장이 접수되면 법원은 그 부본(副本)을 즉시 상대방(피고)에게 송달하고 30일 이내에 피고의 답변서를 받아야 한다. 서울중앙지법도 원고들이 제출한 소장을 피고에게 전달해야 했다.
2017년 1월 19일 국정원은 법원의 사실조회에 대해 김정은의 주소가 ‘평양시 중구역 창광동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라고 회신했다. 곧이어 2월 3일 통일부도 김정은의 송달 주소가 ‘평양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로 판단된다고 법원에 밝혔다.
법원은 국정원과 통일부를 통해 피고의 주소를 확인했지만, 소장을 전달할 현실적인 방법이 없었다. 이 때문에 원고의 소장 접수가 알려지자 일부에서는 ‘북한에 소장을 누가,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나왔다. 중국 주재 북한대사관이나 유엔 주재 북한 대표부에 소장을 전달하는 방안이 나왔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2019년 3월, 김도한 재판장(서울중앙지법 민사39단독)은 원고 측에 “피고들에 대한 송달이 힘드니 적절한 방법을 제시하라”고 했다. 이에 원고 측은 “북한이 현실적으로 대한민국의 사법권이 미치지 않는 미수복 지구이므로 공시송달로 재판을 진행해달라”고 요청했다.
공시송달이라는 妙手
민사소송에서 당사자의 주거 불명 등으로 소송에 관한 서류를 전달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이때 공시송달이라는 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 공시송달은 소송의 원고와 피고, 관련 서류 등에 적힌 내용을 법원 게시판이나 홈페이지 등에 공지하고 2주가 지난 시점부터는 소장이 피고에게 전달된 것과 같은 효력을 갖도록 하는 제도이다.
김 재판장은 원고의 요청을 받아들여 소장을 공시송달한 후 2019년 6월 21일 첫 번째 변론준비기일을 열었다. 비공개로 진행된 첫 재판은 15분 만에 끝났다. 재판부는 사안의 민감성 등을 이유로 재판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원고 측 변호인단에 전했다고 한다. 이례적으로 총 네 차례의 변론준비기일을 가졌다. 북한과 김정은을 상대로 한 유례없는 손해배상청구 사건이기에 재판부도 따져볼 법적 쟁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최초의 공개 변론기일은 2020년 1월 21일 열렸다. 이후 재판부와 재판장이 민사47단독 김영아 판사로 변경됐다. 5월 19일, 6월 9일의 두 차례 추가 변론을 거쳐 7월 7일 선고기일이 잡혔다.
2020년 4월 원고들은 1인당 위자료 6억원을 피고에 청구하며 재산상 손해배상청구 부분을 철회하고, 정신적 손해배상 위자료 청구만 유지하기로 했다. 6억원이라는 금액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1억원) 사례와 북한에 강제 억류돼 사망한 피해자들(미국 영주권자인 김동식 목사, 미국인 오토 웜비어)의 사례를 참고했다. 변호인단은 이 6억원이라는 금액은 최소한의 산정치라고 밝혔다.
당초에는 원고가 입은 피해의 책임이 북한과 김정일 공동에 있다는 전제로, 김정은에게 김정일의 손해배상책임 중 상속분을 청구했다. 하지만 원고들을 북한에 억류한 당사자인 김일성의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해 김일성의 불법행위 책임에 대한 손자 김정은의 상속분도 청구하기로 한 것이다.
원고들은 1953년부터 억류돼 각각 2000년과 2001년 탈북하기 이전까지 북한에서 47년을 지냈다. 이 중 김일성의 재임 기간(1953~1994년·40년)과 김정일(1994~2000년·7년)의 집권 기간을 각각 계산해 김일성에게 5억1000만원(6억×40/47), 김정일에게 9000만원(6억×7/47)이라는 배상금액을 책정했다,
이 계산에 따르면 김일성에게 권력을 승계(상속)받은 김정일이 원고들에게 책임져야 할 손해배상채무액은 7846만1538원(5억1000만원×상속지분 2/13)이다. 2/13이라는 계산은 민법의 상속 지분 계산에 따른 것이다.
1994년 7월 김일성 사망 시, 배우자 김성애(3/13·배우자 1.5배), 아들 김정일(2/13), 딸 김경희(2/13), 딸 김경진, 아들 김평일, 아들 김영일에게 공동 상속이 이뤄졌고, 김정일이 김일성을 대신해 책임질 손해배상채무도 상속 비율에 따라 2/13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김정일 본인의 책임 비율인 9000만원을 더하면 1억6846만1538원(7846만1538원+9000만원)이 된다. 이 금액을 다시 김정일의 사망에 따른 김정은의 손해배상 채무 상속으로 계산하면 2246만1538원(1억6846만1538원×상속지분 2/15)이 된다. 다만 원고는 2100만원을 청구했기 때문에 재판부는 손해배상청구액을 전액 인정한 것이다.
서울중앙지법이 김정은에 대한 재판관할 법원
이번 재판의 쟁점은 크게 3가지였다. ▲서울중앙지법이 이 사건에 대한 토지관할이 있는지 ▲반국가단체인 피고(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가 소송당사자(당사자능력과 당사자적격)가 될 수 있는지 ▲상속 관계를 포함해 김정은이 어떠한 사유로 원고에 손해배상책임을 지는지 등이었다.
‘토지관할’ 문제는 민사소송법이 규정한 ‘피고의 보통재판적이 있는 곳의 법원이 관할한다’는 내용과 민사소송규칙 제6조 ‘보통재판적을 정할 수 없을 때는 대법원이 있는 곳을 보통재판적으로 한다’는 규정에 근거했다. 보통재판적이란, 피고가 근거하는 곳의 관할 법원을 의미한다.
원고 측은 “피고들의 보통재판적은 북한의 평양이지만, 헌법상 북한 지역도 대한민국 영토이고, 북한에서는 실질적으로 재판을 할 수 없으므로, 우리 대법원의 소재지가 있는 서울중앙지법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사소송의 당사자가 되기 위해선 ‘당사자능력’을 가져야 한다. 민사소송법상 당사자능력을 갖는 범주는 자연인과 법인, 법인 아닌 사단(비법인사단-종중·교회·학회·동창회 등)이다.
원고 측의 구충서 변호사는 “북한이 단순한 반국가단체가 아니라 통일을 위한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의 지위를 갖는 실체가 있는 비법인 사단”이라고 주장했다. 민법 35조(법인의 불법행위 능력)에 따르면, 법인의 불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할 때는 그 의결을 집행한 자 또는 대표자가 연대해 배상해야 한다. 우리 법원은 법인이 아닌 단체에도 본조가 유추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 이어 변호인단은 “북한은 비법인 사단이므로, 우리 법원에서 당사자능력이 있고, 그 대표자는 국무위원장 김정은”이라고 주장했다.
변호인단은 “불법 단체도 당사자능력을 갖는다”면서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사건을 예로 들었다. 적법성만 따질 것이 아니라 그 단체가 실제로 성립해 단체의 기능을 갖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원고 측은 북한의 당사자능력과 책임을 인정한 해외의 판결 사례로 ①김동식 목사 사건 ②오토 웜비어 사건 ③푸에블로호 사건 ④와이즈 어네스트호 몰수 판결 등을 들었다.
변호인단은 또 “북한과 김정은이 당사자적격도 갖췄다”고 주장했다. 당사자적격이란, 소송당사자(원고 또는 피고)로 유효하게 소송을 수행하고 판결을 받기 위해 필요한 자격이다. 소송수행권이라고도 한다. 이번 사건처럼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이행 청구권을 주장하는 자(원고)’는 ‘원고적격’이 있고, ‘이행 의무자로 주장된 자(피고)’는 피고적격이 있다. 원고와 피고 모두 당사자적격이 성립돼 이번 재판도 이뤄진 것이다.
피고 북한·김정은, 군사정전협정 등 위반
원고 측은 피고의 불법행위 사례로 군사정전협정과 제네바협약, 국제노동기구 협약, 우리 민법 등의 위반을 들었다. 피고들이 원고들을 포로송환 절차에 따라 한국으로 송환하지 않은 것은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군사정전협정 위반이라는 것이다. 또 제네바협약 위반에 대해 변호인은 “제네바협약은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다”면서 “대한민국은 1966년에, 북한은 1957년에 가입했다. 피고들의 포로송환 거부와 강제노역 및 강제억류는 제네바협약에 정면으로 위반되며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주장했다. 노예제를 금지하는 국제관습법, 국제노동기구가 결의한 제29호 협약(강제노동 폐지)도 위배한다고 들었다. 여기에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인한 민법 제750조의 불법행위 구성에 해당한다는 내용까지 추가했다.
김영아 재판장은 원고 전부 승소(2100만원 전액 인정) 판결을 내리며 소송비용도 피고들이 부담한다고 선고했다. 또 원고들이 청구한 금액에 대해 가집행할 수 있다고 밝혔다.
김 재판장은 판결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1) 원고들은 민법상 비법인 사단인 피고 북한의 대표자인 김일성과 김정일의 불법행위로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2) 법인은 대표자가 그 직무에 관하여 타인에게 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고(민법 제35조 제1항), 이는 비법인 사단에도 준용된다. 따라서 피고 북한은 대표자인 김일성과 김정일이 직무로 인해 원고들에게 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3) 피고 김정은은 불법행위자인 김일성과 김정일의 상속인으로서 원고들에게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
(4) 불법행위가 이루어진 기간, 불법행위의 내용, 이로 인해 원고들이 겪었을 고통의 정도를 종합해보면, 피고들이 부담할 위자료의 금액은 원고들이 주장하는 6억원은 된다고 봄이 상당하다.〉
이번 판결로 법원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법원이 북한을 국가로 보았다면 이번 손해배상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국제법상 ‘주권면제 이론’에 따라 타 국가를 상대로는 외국 법원이 재판할 수 없다. 북한을 국가로 취급하면, 남과 북은 별개의 국가가 돼 대한민국의 법원이 북한(외국)에 대한 재판관할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법원은 대신 ‘북한이 주권면제에 해당하지 않고, 법적으로 지방단체와 유사한 비법인 사단이므로 피고가 될 수 있다’는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변호인단도 “소장 제출 후 3년9개월 만에 판결이 내려진 것은 법원의 고뇌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라고 했다.
이번 소송을 이끈 김현 변호사는 원고 승소 판결 후 법원을 나오며 “재판장들이 참 고맙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지난번 (김도현 재판장은) 공시송달을 해줘서 재판이 급격히 진전됐고, 이번 재판장도 국제법에 대한 이해가 높아 긍정적으로 원고의 주장을 받아줬다. 정말 감사드린다”고 했다.
박선영 이사장은 한재복씨의 손을 잡고 법원을 나오며 “우리가 이겼습니다”라고 외쳤다. 박 이사장은 “두 어르신(원고)의 주장을 100% 인정해준 재판부에 감사드린다”고 했다.
한씨는 승소 소감을 밝히며 북한에 있는 자신의 가족을 제일 먼저 걱정했다. 그는 “국군포로에 대해선 물망초를 제외하곤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이게 참 섭섭하다”면서도 물망초와 원고를 대리해 재판을 이끈 변호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물망초 인권연구소장을 맡은 법무법인 을지의 이재원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대한민국이 국군포로를 송환하기 위한 최초의 노력”이라며 “국군포로 이외에도 10만의 전시 납북가족, 민간인 납치 등 각종 악행을 저지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교두보의 역할을 한 판결”이라고 했다.
이 변호사는 미국의 오토 웜비어 사건과 이번 판결을 비교하며 “북한이라는 국가 또는 단체의 반인도범죄를 사법적으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데는 공통적”이라면서도 미국은 북한의 (숨겨진) 재산을 압류하고 집행하기 용이하나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법무법인 (유)한별의 송수현 변호사는 “북한이 적극적으로 이번 재판에 대응해 사실관계를 (양측이) 따지며 다퉈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송 변호사는 “국군포로를 송환하지 않은 것은 단순 범죄가 아닌 전쟁범죄”라면서 “북한과 김정은의 전쟁범죄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권 실세 모인 ‘경문협’이 공탁한 돈으로 손해배상 추진
재판에서 승소한 원고들은 피고에게 어떻게 손해배상금을 받아낼 수 있을까.
두 원고가 북한 또는 김정은에게 2100만원을 직접 배상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이에 원고 측 변호인단은 국내에 있는 북한 자산을 찾아내 추심하는 계획을 세웠다. 그 창구로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경문협·이사장 임종석)이 법원에 공탁한 공탁금을 원고의 손해배상금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택했다.
경문협은 문재인 정부에서 초대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임종석 외교안보특별보좌관이 2004년 1월 남북 민간교류 협력을 명목으로 세운 법인이다. 여기에는 송영길·우상호 의원과 2018년부터 해외 도피 중인 옵티머스자산운용 설립자 이혁진 전 대표 등이 참여했다. 각각 부이사장, 등기이사, 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임종석 이사장의 지역구(서울 중구성동구갑)를 물려받은 홍익표 의원도 경문협 이사 출신이다.
2005년 12월 31일, 경문협은 북한 내각 산하 저작권사무국과 협약을 맺고 국내 방송사가 사용하는 북한 조선중앙TV의 영상 등 북한에서 만들어진 출판·방송물의 국내 저작권을 위임받았다. KBS 등 지상파는 매년 약 3000만원의 저작권료를 경문협이 개설한 단체에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협약 체결 직후 2007년까지 경문협은 약 7억9000만원을 거둔 후 이를 달러로 환전해 통일부의 승인을 받고는 북한에 송금했다.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가 피살된 이후에는 대북제재로 인해 저작권료 송금이 금지되자 2009년 5월부터는 저작권료를 법원에 공탁해왔다. 2013년부터 2020년까지 여러 차례 서울동부지법에 저작권료를 공탁했고, 2020년 5월을 기준으로 이 공탁금은 2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변호인단은 “한국 내 북한 자산을 찾아 추심하는 게 어려워지면, 북한의 해외 자산에 대한 압류 등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소송에 참여한 법무법인 오킴스의 엄태섭 변호사는 “공시송달까지 이르는 과정과 북한의 당사자적격 여부(피고 자격)를 인정받는 과정이 힘들었다”고 했다. 송달 집행이 안 돼 2년8개월이라는 시간을 보내야 했고, 북한과 김정은이 당사자적격에 해당하지 않으면 소송 자체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 국군포로가 겪었던 생활상, 탄광 노역의 증거들을 얻기 위해 군(국방부)과 국정원 등에 정보공개 청구, 사실조회 회신 등을 요청했으나 협조를 얻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김정은, 김일성-김정일의 수령 지위 단독 상속
2019년부터 소송에 참여한 법무법인 제이앤씨의 구충서 변호사는 원고의 주장에 아쉬움이 남는 점도 있다고 했다. 김정은의 책임을 상속분에 따라 계산해 김정은에게 100% 책임을 묻지 못했기 때문이다. 구 변호사는 “불법행위를 저지른 수령 김일성의 지위를 김정일이 단독 승계하였고, 수령 김정일의 지위를 다시 김정은이 단독 승계하였으므로, ‘김일성의 단독 상속인으로서의 김정일의 손해배상책임’과 ‘김정일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수령 김정은이 모두 단독으로 상속 내지 승계하였다고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3대 세습으로 수령의 지위를 물려받은 김정은이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과 이에 따른 위자료(6억원) 지급의 책임을 전적으로 져야 한다”는 주장이 더 타당하였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그는 “민법의 상속분에 근거해 책임을 따지다 보니 균분 상속 비율에 따른 결과(2246만1538원)만 김정은에게 적용됐다”며 “앞으로 북한과 김정은의 책임을 묻는 다른 소송에서는 수령의 지위를 단독으로 승계한 김정은에게 100% 책임을 묻는 법리를 구상해내겠다”고 밝혔다.
이번 소송에서 원고 측은 민법의 상속 원리를 바탕으로 김일성·김정일의 불법행위에 따른 위자료를 상속자인 김정은에게 청구했다. 만약 김일성의 생존 자녀인 김평일, 김경희 등에 소송을 제기했다면, 이들이 김일성에게 상속받은 지분이 2대(代)를 거친 김정은보다 더 클 것이므로 원고들은 더 많은 배상금을 받아낼 수 있지 않았을까.
이에 대해 소송에 참여한 한 변호사는 “김정은에게 책임을 묻기 위한 고육책으로 민법의 상속 지분 개념을 도입한 것에 불과할 뿐이며, 원고 피해의 가장 큰 책임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상속되는 것으로 보는 게 맞다”고 했다.
다만, 김현 변호사는 “민법의 상속 원리에 따라 김일성·김정일의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김정은에게 물었지만, 형법상으로는 김정은이 김일성·김정일의 책임을 상속받는다고 볼 순 없다”고 했다. 이는 연좌제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연좌제란, 범죄인과 특정한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연대책임을 지게 하고 처벌하는 제도이다. 우리 헌법(제13조 3항)은 연좌제를 금지한다.
징벌적 손해배상청구는 왜 못 했나
원고는 왜 오토 웜비어 재판처럼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현재 법 체계로는 징벌적 손해배상청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이란, 민사재판에서 가해자의 행위가 악의적이고 반사회적일 경우 실제 손해액보다 훨씬 더 많은 손해배상을 부과하는 제도이다. 현재 우리 법에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규정한 조항이 없다. 또한 판결을 통해서도 징벌적 손해배상에 해당하는 판결을 내릴 수 없다. 다만 위자료 액수를 높여 그 취지를 반영하는 정도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이 이뤄지기 위해선 입법(立法)이 우선 필요하다.
북한의 불법행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청구 사례는 오토 웜비어 사건이 있다. 오토 웜비어는 북한을 여행하던 중 북한 당국 고문을 받은 후 그 후유증으로 사망한 미국의 대학생이다. 웜비어 유족은 2018년 4월에 북한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8개월간의 소송 끝에 2018년 12월 24일 워싱턴DC 연방법원은 “북한은 웜비어 유족에게 5억113만4683달러(약 5900억원)를 배상하라”고 판시했다.
이번 국군포로의 소송에 참여한 변호인 8인은 모두 무료로 원고의 변론을 맡았다. 들어간 비용은 인지대 정도뿐이다.
구 변호사는 “(처음에는) 황당한 소송, 이벤트성 재판으로 많은 사람이 생각했는데, 법리적으로 살펴보니 이길 수 있는 소송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물망초의 박선영 이사장과 이재준 팀장 등 임직원도 많은 수고를 했다. 김현 변호사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북한이 악행을 저지르기에 앞서 그에 대한 책임이 반드시 따른다는 것을 알게 되길 바란다고 했다.
변호인단은 “그동안 북한이 저지른 수많은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소송들이 속속 제기될 것”이라면서 “생존해 있는 국군포로 22명은 물론 사망한 58명의 국군포로 유족, 천안함 폭침·연평도 포격 사건의 피해 유족, 2008년 금강산에서 피살된 박왕자씨의 유족, 개성공단 폐쇄로 피해를 입은 기업 등이 북한과 김정은을 상대로 우리 법원에 제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7월 7일 오후 2시, 서울 서초구의 서울중앙지방법원 360호 법정에선 역사적인 판결이 내려졌다. 두 명의 국군포로가 북한과 김정은을 상대로 2016년 10월 11일부터 벌인 1366일간의 소송에서 마침내 원고 승소 판결을 받아낸 것이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김영아 판사는 국군포로 노사홍(91)·한재복(86)씨가 북한과 김정은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사건번호 2016가단 5235506)에서 “피고(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김정은)는 원고들에게 각각 2100만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47년 만에 귀환한 노 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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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소 판결 직후 법원 앞에서 원고와 물망초, 변호인단이 가진 기자회견. 사진=뉴시스 |
노씨가 포로가 되기 하루 전인 7월 13일, 이승만 대통령은 반공포로의 석방을 지시한다. 이에 자극을 받은 중공(中共)이 중공군 15개 사단, 25만의 병력으로 철원 일대에서 마지막 총공세를 퍼부은 것이 금성 전투이다. 당시 노 일병은 중공군의 폭격으로 척추가 골절되고 왼손 중지(中肢)는 절단됐다. 포로가 된 노씨는 평북의 천마수용소로 옮겨졌다. 국방부는 이틀 뒤인 7월 16일, 노 일병을 ‘머리에 포탄 파편이 박혀 사망’이라는 허위사실을 기재해놓고는 전사 처리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됐음에도 그는 한국으로 송환되지 못했다. 노 일병은 국군포로를 한데 모아놓은 ‘내무성 건설대 1709부대’에 편입돼 탄광에서 강제 노역을 해야만 했다. 그는 다친 허리를 치료받지 못해 늘 요통에 시달렸다. 가죽과 철판으로 만든 조끼를 입은 채 탄광에서 고된 노동을 이어갔다.
1956년 6월 13일, 노씨는 ‘내각 결정 143호(일명 43호)’에 따라 공민증(公民證·우리나라의 주민등록증에 해당)을 발급받고는 북한 사회로 강제 편입됐다. 그 뒤로도 탄광 노동은 계속됐다.
노씨에겐 5남 1녀가 있었지만 국군포로, ‘43호’의 자녀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차별 속에 살아갔다. 자녀 중 아들 넷은 정신병원에서 맞아 죽거나 험한 일을 하다 죽었다.
생지옥에서 47년을 버틴 노씨는 2000년 6월 18일 탈북해 한국으로 돌아와 7월 28일 퇴역식을 갖고 제대했다. 노씨는 고향에서 폐지를 줍는 공공근로(20만원)와 노령연금(10만원), 사단법인 물망초가 지원하는 월 50만원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지금은 고령으로 인한 건강 악화로 서울에 사는 딸의 집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내무성 건설대 1709부대 편입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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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소한 뒤 법원 문을 나서는 (왼쪽부터) 박선영 이사장, 한재복씨, 김현 변호사, 구충서 변호사. 사진=물망초 |
한씨는 매일 갱도에 들어가 12시간 이상의 강제 노역을 했다. 그는 이를 ‘노예의 삶’이라고 표현했다. 함북 경원의 탄광으로 옮겨져 고된 노동을 이어갔다. 한씨도 노씨처럼 1956년 6월 13일 내각 결정 143호에 따라 공민증을 발급받고 북한 사회로 배출됐다. 광부의 삶은 계속됐다. 한씨는 물론 그의 가족도 ‘43호’라는 차별 속에 감시와 박해를 받으며 살았다. 한씨의 자녀들은 아버지의 출신 성분 때문에 탄광에서 일하며 불이익을 받았다.
‘고난의 행군’을 겪으며 탈북을 결심한 한씨는 2001년 11월 3일 한국으로 귀환했다. 그해 12월 26일 퇴역식을 가진 뒤 제대했다.
국군포로 송환을 위한 노력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먼저 시작됐다. 2004년 재미(在美) 정용봉 박사가 국군포로송환위원회를 설립해 포로 송환 노력을 펼쳤다. 2013년 5월에는 (사)물망초(이사장 박선영)에도 국군포로신고센터(센터장 김현 변호사·법무법인 세창)가 개설됐다. 정용봉 박사가 고령으로 활동이 힘들어지자 국군포로신고센터가 미국 국군포로송환위원회를 인수했고, 그해 9월 24일 (사)물망초 국군포로송환위원회로 확대 출범했다. 초대 위원장은 김현(전 대한변협 회장) 변호사가 맡았고, 현재는 울산대 정수한 교수(예비역 준장)가 위원회를 이끌고 있다.
2016년 10월 국군포로송환위원회는 한재복·노사홍씨의 북한과 김정은을 상대로 한 소송을 결정했다. 북한에서 고생한 국군포로의 명예를 회복하고, 북한과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독재자들의 불법행위를 역사에 남기려는 취지였다.
북한·김정은에 손해배상 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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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1월 26일 육사에서 6·25 당시 국군 소위로 복무 중 포로로 붙잡혀 북한에 억류되었다가 중국을 경유, 귀환한 조창호씨가 전역식을 갖고 중위로 예편했다. 사진은 전역신고를 하고 있는 조씨다. |
소장에는 “원고가 정전협정 이후 본국으로 송환되지 않은 채 1956년 내각 결정 143호로 북한 사회로 편입될 때까지 내무성 건설대에 배속돼 33개월간 강제 억류돼 노역에 종사했다”며 “이는 노예제를 금지하는 국제관습법과 강제노동 폐지를 규정한 국제노동기구(ILO) 제29호 조약을 위반하고,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소 조례 및 당해 재판소의 판결로 승인된 국제법 위반(전쟁범죄 및 인도에 대한 죄)에 해당하여 불법행위를 구성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피고들의 행위는 우리 민법 제750조의 불법행위에 해당하며, 형사적으로 체포·감금·강요 등 범죄행위를 구성한다”고 명시했다.
원고들은 33개월의 강제 노역에서 받지 못한 임금 6849만9388원(9만4338원×22일×33개월)을 돌려달라고 했다. 이는 도시 일용근로자 노임인 9만4338원에 한 달 근무일을 22일로 계산한 값이다. 또 강제노동으로 인해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입었다면서 일부 청구로 재산적 손해에 대해 1100만원, 정신적 손해에 대해 위자료 1000만원도 청구했다. 한씨와 노씨 각각 2100만원씩 청구한 것이다.
원고는 “피고들은 공동하여(부진정연대채무) 원고들에게 손해배상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도 명시했다. 부진정연대채무란, 두 피고(북한·김정은) 중 어느 누가 됐든 원고가 청구한 손해배상액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청구 금액 전액을 북한이 내든, 북한과 김정은이 각각 절반을 원고에게 배상하든 손해배상의 책임을 피고가 공동으로 갖는다는 의미이다.
1953년 8월 유엔군사령부는 6·25전쟁 중 북한군·중공군에 포로가 되거나 실종된 국군이 8만2318명이라고 발표했다. 이 중 포로 교환을 통해 귀환한 국군포로는 8343명에 불과하다. 7만여 명의 국군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7만여의 국군 중 약 5만~7만명은 국군포로로 추산되며, 미처 유해를 수습하지 못한 전사자의 수도 상당할 것으로 추정한다. 포로의 대다수는 자신 의사와는 무관하게 북한에 억류돼 강제 노역을 해야만 했다. 북한은 지금도 “국군포로가 없다”고 주장한다. 국군포로를 모두 ‘내무성 건설대’에 편입해 ‘전향’시켰기에 ‘명목상의 국군포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1994년 조창호 소위(귀환 후 중위 진급)가 생환하기 전까지 국군포로의 존재는 잊혀왔다. 정부는 ‘비전향 장기수를 북송하라’는 북한의 요구를 수용했으나, 단 한 명의 국군포로도 돌려받지 못했다. 지난 7월 14일에는 91세의 귀환 국군포로가 생을 마감했다. 탄광에서 40년 넘게 일한 그는 진폐증과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정부는 약 500명의 국군포로가 북한에 생존해 있다고 추정하지만, 이는 10년 전의 통계를 검증 없이 받아쓴 자료에 불과하다. 국군포로 송환 활동을 펼치는 단체는 현재 북한에 70~200명의 국군포로만이 생존할 것으로 추정한다. 지금까지 고(故) 조창호 중위를 시작으로 총 80명의 국군용사가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2011년부터는 귀환 행렬도 끊어졌다. 올해 8월 10일을 기준으로 단 22명만이 생존해 있다. 현재 국군포로들의 평균 연령은 약 90세에 이른다. |
송달 문제로 재판이 열리기까지 2년8개월
2016년 10월 11일, 원고가 법원에 소송의 이유와 청구 금액이 적힌 소장을 제출했지만, 소송이 시작되기까지는 2년8개월이 걸렸다. 소장을 상대방(피고)에게 전달하는 문제 때문이었다. 민사소송법상 소장이 접수되면 법원은 그 부본(副本)을 즉시 상대방(피고)에게 송달하고 30일 이내에 피고의 답변서를 받아야 한다. 서울중앙지법도 원고들이 제출한 소장을 피고에게 전달해야 했다.
2017년 1월 19일 국정원은 법원의 사실조회에 대해 김정은의 주소가 ‘평양시 중구역 창광동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라고 회신했다. 곧이어 2월 3일 통일부도 김정은의 송달 주소가 ‘평양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로 판단된다고 법원에 밝혔다.
법원은 국정원과 통일부를 통해 피고의 주소를 확인했지만, 소장을 전달할 현실적인 방법이 없었다. 이 때문에 원고의 소장 접수가 알려지자 일부에서는 ‘북한에 소장을 누가,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나왔다. 중국 주재 북한대사관이나 유엔 주재 북한 대표부에 소장을 전달하는 방안이 나왔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2019년 3월, 김도한 재판장(서울중앙지법 민사39단독)은 원고 측에 “피고들에 대한 송달이 힘드니 적절한 방법을 제시하라”고 했다. 이에 원고 측은 “북한이 현실적으로 대한민국의 사법권이 미치지 않는 미수복 지구이므로 공시송달로 재판을 진행해달라”고 요청했다.
민사소송에서 당사자의 주거 불명 등으로 소송에 관한 서류를 전달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이때 공시송달이라는 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 공시송달은 소송의 원고와 피고, 관련 서류 등에 적힌 내용을 법원 게시판이나 홈페이지 등에 공지하고 2주가 지난 시점부터는 소장이 피고에게 전달된 것과 같은 효력을 갖도록 하는 제도이다.
김 재판장은 원고의 요청을 받아들여 소장을 공시송달한 후 2019년 6월 21일 첫 번째 변론준비기일을 열었다. 비공개로 진행된 첫 재판은 15분 만에 끝났다. 재판부는 사안의 민감성 등을 이유로 재판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원고 측 변호인단에 전했다고 한다. 이례적으로 총 네 차례의 변론준비기일을 가졌다. 북한과 김정은을 상대로 한 유례없는 손해배상청구 사건이기에 재판부도 따져볼 법적 쟁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최초의 공개 변론기일은 2020년 1월 21일 열렸다. 이후 재판부와 재판장이 민사47단독 김영아 판사로 변경됐다. 5월 19일, 6월 9일의 두 차례 추가 변론을 거쳐 7월 7일 선고기일이 잡혔다.
2020년 4월 원고들은 1인당 위자료 6억원을 피고에 청구하며 재산상 손해배상청구 부분을 철회하고, 정신적 손해배상 위자료 청구만 유지하기로 했다. 6억원이라는 금액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1억원) 사례와 북한에 강제 억류돼 사망한 피해자들(미국 영주권자인 김동식 목사, 미국인 오토 웜비어)의 사례를 참고했다. 변호인단은 이 6억원이라는 금액은 최소한의 산정치라고 밝혔다.
당초에는 원고가 입은 피해의 책임이 북한과 김정일 공동에 있다는 전제로, 김정은에게 김정일의 손해배상책임 중 상속분을 청구했다. 하지만 원고들을 북한에 억류한 당사자인 김일성의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해 김일성의 불법행위 책임에 대한 손자 김정은의 상속분도 청구하기로 한 것이다.
원고들은 1953년부터 억류돼 각각 2000년과 2001년 탈북하기 이전까지 북한에서 47년을 지냈다. 이 중 김일성의 재임 기간(1953~1994년·40년)과 김정일(1994~2000년·7년)의 집권 기간을 각각 계산해 김일성에게 5억1000만원(6억×40/47), 김정일에게 9000만원(6억×7/47)이라는 배상금액을 책정했다,
이 계산에 따르면 김일성에게 권력을 승계(상속)받은 김정일이 원고들에게 책임져야 할 손해배상채무액은 7846만1538원(5억1000만원×상속지분 2/13)이다. 2/13이라는 계산은 민법의 상속 지분 계산에 따른 것이다.
1994년 7월 김일성 사망 시, 배우자 김성애(3/13·배우자 1.5배), 아들 김정일(2/13), 딸 김경희(2/13), 딸 김경진, 아들 김평일, 아들 김영일에게 공동 상속이 이뤄졌고, 김정일이 김일성을 대신해 책임질 손해배상채무도 상속 비율에 따라 2/13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김정일 본인의 책임 비율인 9000만원을 더하면 1억6846만1538원(7846만1538원+9000만원)이 된다. 이 금액을 다시 김정일의 사망에 따른 김정은의 손해배상 채무 상속으로 계산하면 2246만1538원(1억6846만1538원×상속지분 2/15)이 된다. 다만 원고는 2100만원을 청구했기 때문에 재판부는 손해배상청구액을 전액 인정한 것이다.
서울중앙지법이 김정은에 대한 재판관할 법원
이번 재판의 쟁점은 크게 3가지였다. ▲서울중앙지법이 이 사건에 대한 토지관할이 있는지 ▲반국가단체인 피고(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가 소송당사자(당사자능력과 당사자적격)가 될 수 있는지 ▲상속 관계를 포함해 김정은이 어떠한 사유로 원고에 손해배상책임을 지는지 등이었다.
‘토지관할’ 문제는 민사소송법이 규정한 ‘피고의 보통재판적이 있는 곳의 법원이 관할한다’는 내용과 민사소송규칙 제6조 ‘보통재판적을 정할 수 없을 때는 대법원이 있는 곳을 보통재판적으로 한다’는 규정에 근거했다. 보통재판적이란, 피고가 근거하는 곳의 관할 법원을 의미한다.
원고 측은 “피고들의 보통재판적은 북한의 평양이지만, 헌법상 북한 지역도 대한민국 영토이고, 북한에서는 실질적으로 재판을 할 수 없으므로, 우리 대법원의 소재지가 있는 서울중앙지법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사소송의 당사자가 되기 위해선 ‘당사자능력’을 가져야 한다. 민사소송법상 당사자능력을 갖는 범주는 자연인과 법인, 법인 아닌 사단(비법인사단-종중·교회·학회·동창회 등)이다.
원고 측의 구충서 변호사는 “북한이 단순한 반국가단체가 아니라 통일을 위한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의 지위를 갖는 실체가 있는 비법인 사단”이라고 주장했다. 민법 35조(법인의 불법행위 능력)에 따르면, 법인의 불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할 때는 그 의결을 집행한 자 또는 대표자가 연대해 배상해야 한다. 우리 법원은 법인이 아닌 단체에도 본조가 유추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 이어 변호인단은 “북한은 비법인 사단이므로, 우리 법원에서 당사자능력이 있고, 그 대표자는 국무위원장 김정은”이라고 주장했다.
변호인단은 “불법 단체도 당사자능력을 갖는다”면서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사건을 예로 들었다. 적법성만 따질 것이 아니라 그 단체가 실제로 성립해 단체의 기능을 갖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원고 측은 북한의 당사자능력과 책임을 인정한 해외의 판결 사례로 ①김동식 목사 사건 ②오토 웜비어 사건 ③푸에블로호 사건 ④와이즈 어네스트호 몰수 판결 등을 들었다.
변호인단은 또 “북한과 김정은이 당사자적격도 갖췄다”고 주장했다. 당사자적격이란, 소송당사자(원고 또는 피고)로 유효하게 소송을 수행하고 판결을 받기 위해 필요한 자격이다. 소송수행권이라고도 한다. 이번 사건처럼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이행 청구권을 주장하는 자(원고)’는 ‘원고적격’이 있고, ‘이행 의무자로 주장된 자(피고)’는 피고적격이 있다. 원고와 피고 모두 당사자적격이 성립돼 이번 재판도 이뤄진 것이다.
피고 북한·김정은, 군사정전협정 등 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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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국군포로들. 사진=조선DB |
김영아 재판장은 원고 전부 승소(2100만원 전액 인정) 판결을 내리며 소송비용도 피고들이 부담한다고 선고했다. 또 원고들이 청구한 금액에 대해 가집행할 수 있다고 밝혔다.
김 재판장은 판결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1) 원고들은 민법상 비법인 사단인 피고 북한의 대표자인 김일성과 김정일의 불법행위로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2) 법인은 대표자가 그 직무에 관하여 타인에게 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고(민법 제35조 제1항), 이는 비법인 사단에도 준용된다. 따라서 피고 북한은 대표자인 김일성과 김정일이 직무로 인해 원고들에게 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3) 피고 김정은은 불법행위자인 김일성과 김정일의 상속인으로서 원고들에게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
(4) 불법행위가 이루어진 기간, 불법행위의 내용, 이로 인해 원고들이 겪었을 고통의 정도를 종합해보면, 피고들이 부담할 위자료의 금액은 원고들이 주장하는 6억원은 된다고 봄이 상당하다.〉
이번 판결로 법원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법원이 북한을 국가로 보았다면 이번 손해배상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국제법상 ‘주권면제 이론’에 따라 타 국가를 상대로는 외국 법원이 재판할 수 없다. 북한을 국가로 취급하면, 남과 북은 별개의 국가가 돼 대한민국의 법원이 북한(외국)에 대한 재판관할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법원은 대신 ‘북한이 주권면제에 해당하지 않고, 법적으로 지방단체와 유사한 비법인 사단이므로 피고가 될 수 있다’는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변호인단도 “소장 제출 후 3년9개월 만에 판결이 내려진 것은 법원의 고뇌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라고 했다.
이번 소송을 이끈 김현 변호사는 원고 승소 판결 후 법원을 나오며 “재판장들이 참 고맙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지난번 (김도현 재판장은) 공시송달을 해줘서 재판이 급격히 진전됐고, 이번 재판장도 국제법에 대한 이해가 높아 긍정적으로 원고의 주장을 받아줬다. 정말 감사드린다”고 했다.
박선영 이사장은 한재복씨의 손을 잡고 법원을 나오며 “우리가 이겼습니다”라고 외쳤다. 박 이사장은 “두 어르신(원고)의 주장을 100% 인정해준 재판부에 감사드린다”고 했다.
한씨는 승소 소감을 밝히며 북한에 있는 자신의 가족을 제일 먼저 걱정했다. 그는 “국군포로에 대해선 물망초를 제외하곤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이게 참 섭섭하다”면서도 물망초와 원고를 대리해 재판을 이끈 변호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물망초 인권연구소장을 맡은 법무법인 을지의 이재원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대한민국이 국군포로를 송환하기 위한 최초의 노력”이라며 “국군포로 이외에도 10만의 전시 납북가족, 민간인 납치 등 각종 악행을 저지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교두보의 역할을 한 판결”이라고 했다.
이 변호사는 미국의 오토 웜비어 사건과 이번 판결을 비교하며 “북한이라는 국가 또는 단체의 반인도범죄를 사법적으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데는 공통적”이라면서도 미국은 북한의 (숨겨진) 재산을 압류하고 집행하기 용이하나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법무법인 (유)한별의 송수현 변호사는 “북한이 적극적으로 이번 재판에 대응해 사실관계를 (양측이) 따지며 다퉈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송 변호사는 “국군포로를 송환하지 않은 것은 단순 범죄가 아닌 전쟁범죄”라면서 “북한과 김정은의 전쟁범죄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권 실세 모인 ‘경문협’이 공탁한 돈으로 손해배상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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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엄태섭 변호사, 구충서 변호사, 정수한 교수, 박선영 이사장, 송수현 변호사, 한재복씨, 김현 변호사, 이재원 변호사. 사진=물망초 |
두 원고가 북한 또는 김정은에게 2100만원을 직접 배상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이에 원고 측 변호인단은 국내에 있는 북한 자산을 찾아내 추심하는 계획을 세웠다. 그 창구로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경문협·이사장 임종석)이 법원에 공탁한 공탁금을 원고의 손해배상금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택했다.
경문협은 문재인 정부에서 초대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임종석 외교안보특별보좌관이 2004년 1월 남북 민간교류 협력을 명목으로 세운 법인이다. 여기에는 송영길·우상호 의원과 2018년부터 해외 도피 중인 옵티머스자산운용 설립자 이혁진 전 대표 등이 참여했다. 각각 부이사장, 등기이사, 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임종석 이사장의 지역구(서울 중구성동구갑)를 물려받은 홍익표 의원도 경문협 이사 출신이다.
2005년 12월 31일, 경문협은 북한 내각 산하 저작권사무국과 협약을 맺고 국내 방송사가 사용하는 북한 조선중앙TV의 영상 등 북한에서 만들어진 출판·방송물의 국내 저작권을 위임받았다. KBS 등 지상파는 매년 약 3000만원의 저작권료를 경문협이 개설한 단체에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협약 체결 직후 2007년까지 경문협은 약 7억9000만원을 거둔 후 이를 달러로 환전해 통일부의 승인을 받고는 북한에 송금했다.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가 피살된 이후에는 대북제재로 인해 저작권료 송금이 금지되자 2009년 5월부터는 저작권료를 법원에 공탁해왔다. 2013년부터 2020년까지 여러 차례 서울동부지법에 저작권료를 공탁했고, 2020년 5월을 기준으로 이 공탁금은 2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변호인단은 “한국 내 북한 자산을 찾아 추심하는 게 어려워지면, 북한의 해외 자산에 대한 압류 등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소송에 참여한 법무법인 오킴스의 엄태섭 변호사는 “공시송달까지 이르는 과정과 북한의 당사자적격 여부(피고 자격)를 인정받는 과정이 힘들었다”고 했다. 송달 집행이 안 돼 2년8개월이라는 시간을 보내야 했고, 북한과 김정은이 당사자적격에 해당하지 않으면 소송 자체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 국군포로가 겪었던 생활상, 탄광 노역의 증거들을 얻기 위해 군(국방부)과 국정원 등에 정보공개 청구, 사실조회 회신 등을 요청했으나 협조를 얻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김정은, 김일성-김정일의 수령 지위 단독 상속
2019년부터 소송에 참여한 법무법인 제이앤씨의 구충서 변호사는 원고의 주장에 아쉬움이 남는 점도 있다고 했다. 김정은의 책임을 상속분에 따라 계산해 김정은에게 100% 책임을 묻지 못했기 때문이다. 구 변호사는 “불법행위를 저지른 수령 김일성의 지위를 김정일이 단독 승계하였고, 수령 김정일의 지위를 다시 김정은이 단독 승계하였으므로, ‘김일성의 단독 상속인으로서의 김정일의 손해배상책임’과 ‘김정일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수령 김정은이 모두 단독으로 상속 내지 승계하였다고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3대 세습으로 수령의 지위를 물려받은 김정은이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과 이에 따른 위자료(6억원) 지급의 책임을 전적으로 져야 한다”는 주장이 더 타당하였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그는 “민법의 상속분에 근거해 책임을 따지다 보니 균분 상속 비율에 따른 결과(2246만1538원)만 김정은에게 적용됐다”며 “앞으로 북한과 김정은의 책임을 묻는 다른 소송에서는 수령의 지위를 단독으로 승계한 김정은에게 100% 책임을 묻는 법리를 구상해내겠다”고 밝혔다.
이번 소송에서 원고 측은 민법의 상속 원리를 바탕으로 김일성·김정일의 불법행위에 따른 위자료를 상속자인 김정은에게 청구했다. 만약 김일성의 생존 자녀인 김평일, 김경희 등에 소송을 제기했다면, 이들이 김일성에게 상속받은 지분이 2대(代)를 거친 김정은보다 더 클 것이므로 원고들은 더 많은 배상금을 받아낼 수 있지 않았을까.
이에 대해 소송에 참여한 한 변호사는 “김정은에게 책임을 묻기 위한 고육책으로 민법의 상속 지분 개념을 도입한 것에 불과할 뿐이며, 원고 피해의 가장 큰 책임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상속되는 것으로 보는 게 맞다”고 했다.
다만, 김현 변호사는 “민법의 상속 원리에 따라 김일성·김정일의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김정은에게 물었지만, 형법상으로는 김정은이 김일성·김정일의 책임을 상속받는다고 볼 순 없다”고 했다. 이는 연좌제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연좌제란, 범죄인과 특정한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연대책임을 지게 하고 처벌하는 제도이다. 우리 헌법(제13조 3항)은 연좌제를 금지한다.
징벌적 손해배상청구는 왜 못 했나
원고는 왜 오토 웜비어 재판처럼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현재 법 체계로는 징벌적 손해배상청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이란, 민사재판에서 가해자의 행위가 악의적이고 반사회적일 경우 실제 손해액보다 훨씬 더 많은 손해배상을 부과하는 제도이다. 현재 우리 법에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규정한 조항이 없다. 또한 판결을 통해서도 징벌적 손해배상에 해당하는 판결을 내릴 수 없다. 다만 위자료 액수를 높여 그 취지를 반영하는 정도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이 이뤄지기 위해선 입법(立法)이 우선 필요하다.
북한의 불법행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청구 사례는 오토 웜비어 사건이 있다. 오토 웜비어는 북한을 여행하던 중 북한 당국 고문을 받은 후 그 후유증으로 사망한 미국의 대학생이다. 웜비어 유족은 2018년 4월에 북한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8개월간의 소송 끝에 2018년 12월 24일 워싱턴DC 연방법원은 “북한은 웜비어 유족에게 5억113만4683달러(약 5900억원)를 배상하라”고 판시했다.
이번 국군포로의 소송에 참여한 변호인 8인은 모두 무료로 원고의 변론을 맡았다. 들어간 비용은 인지대 정도뿐이다.
구 변호사는 “(처음에는) 황당한 소송, 이벤트성 재판으로 많은 사람이 생각했는데, 법리적으로 살펴보니 이길 수 있는 소송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물망초의 박선영 이사장과 이재준 팀장 등 임직원도 많은 수고를 했다. 김현 변호사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북한이 악행을 저지르기에 앞서 그에 대한 책임이 반드시 따른다는 것을 알게 되길 바란다고 했다.
변호인단은 “그동안 북한이 저지른 수많은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소송들이 속속 제기될 것”이라면서 “생존해 있는 국군포로 22명은 물론 사망한 58명의 국군포로 유족, 천안함 폭침·연평도 포격 사건의 피해 유족, 2008년 금강산에서 피살된 박왕자씨의 유족, 개성공단 폐쇄로 피해를 입은 기업 등이 북한과 김정은을 상대로 우리 법원에 제소할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