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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의 북한요지경

“처음부터 끝까지 남조선을 깔아뭉개려고 대놓고 나온 것”

글 : 장원재  (사)배우고나누는무지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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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 수 있는 일은 이번에 다해서 남조선에 본때를 보이자고 작정한 것”
⊙ “남쪽 유명한 선수들이 실물로 돌아다니는 걸 눈앞에서 보고 왔다면 북한 전역에 무슨 말이 얼마나 돌아다닐지, 짐작도 할 수 없어”
⊙ 김정은의 금강산 시설 철거 지시에 ‘야, 우리가 금강산 통해서 정말 돈을 벌고 싶은 모양’이라는 반응

張源宰
1967년생. 고려대 국문학과 졸업, 영국 런던대학 연극학 박사 / 前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경기파주영어마을 사무총장, TV조선 〈돌아온 저격수다〉 진행. 現 (사)배우고나누는무지개 대표 / 저서 《끝나지 않은 축구 이야기》 《오태석 연극: 실험과 도전의 40년》 《배우란 무엇인가》 등
지난 10월 15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카타르월드컵 2차 예선에서 공을 다투는 손흥민(왼쪽) 선수와 북한의 한광성. 경기는 치열했지만 관중은 없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최근 들어 북한이 보인 특이행태가 있다. 지난 10월 15일 월드컵 2차 예선 축구경기와 “금강산 남쪽 시설을 싹 들어내라”고 한 10월23일자 김정은의 발언이다.
 
  2010년 월드컵 3차 예선, 최종 예선 때 한국과 북한은 같은 조(組)에 편성되었다. 북한은 두 번의 홈 경기를 모두 상하이(上海)에서 개최했다. 이번 경기는 그래서 평양에서 처음으로 열린 남북 간의 A매치였다. FIFA(국제축구연맹) 규정에 따라 국기 게양, 국가(國歌) 연주가 필수였다는 뜻이다. 지아니 인판티노 FIFA 회장까지 평양으로 날아갈 만큼 관심을 모았던 경기지만 결과는 괴이했다. 무(無)관중·무중계에 격투기와 다름없는 거친 플레이가 난무했기 때문이다.
 
  금강산과 관련된 김정은의 느닷없는 분노도 연구대상이다. 황당하고 해괴한 일일수록 이른바 내재적(內在的) 접근법으로 살펴보아야 하는 법. 북한 내외 소식통과 전화 연결을 한 이들로부터 취합한 내용을 정리한다.
 
 
  “남조선을 깔본 것”
 
  ― 월드컵 예선 경기가 열린다는 것은 북한 주민이 알고 있었나.
 
  “북한 주민은 모른다. 관계자만 알았다. 아예 모르는 주민이 절반 이상이고, 그 나머지도 소문만 들어서 어렴풋이 아는 것이다.”
 
  ― 이번에는 예전과 달리 그래도 평양에서 경기를 개최했다.
 
  “남조선을 깔본 거다. 2010년 월드컵 때는 그래도 남쪽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도 이유도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예전 여자축구 때처럼 4~5개국이 모여서 대회 하면 다른 나라 때문에라도 함부로 굴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번에는 북·남 둘이서만 만난 경기 아닌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번에 다해서 남조선에 본때를 보이자고 작정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여자축구 경기란 2017년 4월 7일, 아시안컵 본선 진출권을 놓고 평양 김일성경기장(이번에 무관중 경기가 열린 곳)에서 치른 경기를 말한다. 결과는 1대 1 무승부. 남·북한, 우즈베키스탄, 홍콩, 인도 등 5개국이 풀리그를 벌여 1위 팀만 본선에 진출했는데, 한국은 3승1무로 북한과 동률을 이뤘지만 골득실에서 앞서 북한을 제치고 본선에 진출했다.
 
  ― 무슨 뜻인가.
 
  “간부들은 남조선과 축구경기 하는 것을 다들 알았다. 자기 위신을 높일 기회인데, 그냥 넘어갈 김정은이 아니지. 북한에서는 남을 깔아뭉개야 위신이 올라간다고 생각한다. 특히 남조선과 관련된 일은 더더욱 그렇다. 우리가 깔봤을 때 저쪽이 별 반응을 안 보이면 우리가 남조선을 눌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공항이나 호텔에서 남쪽 선수들에게 함부로 군 것은 김정은이 간부들 보라고 일부러 시킨 것이다.”
 
  ― 그것이 이번 경기의 목적이었다는 말인가.
 
  “그렇다. 처음부터 끝까지 남조선을 깔아뭉개려고 대놓고 나온 것이다.”
 
  ― 왜 관중 없이 경기를 했을까.
 
  “경기에서 지기라도 하면 난리가 나니까. 여자축구는 우리가 이긴다는 자신감이 있어서 관람을 허용한 거다. 남자축구는 다르다. 축구는 북한의 자존심이다. 평양에서 열리는 국제경기는 이기면 당연, 비기면 진 것이나 진배없다고 여긴다. 그런데 남조선에 진다? 그걸 수만 명이 동시에 본다? 아무도 뒷감당할 수 없었을 거다. 무관중 경기였지만 한국이 이긴다면 이 경기에 관여한 북한 조직성원들 전부 어디로든 끌려갔을 거다.”
 
 
  “1990년 경평 축구 때 15만 관중 선별, 사전 교육”
 
  ― 경기에 졌다면 한국 선수들도 반나절 이상 출국을 막고 그랬을까.
 
  “아무리 북한이라도 그렇게까지는 못 한다. 이번처럼 몇 시간 잡아두는 건 가능하겠지만…. 다만 남조선이 이겼다면, 경기 막판에 다리를 부러뜨리는 날아차기가 들어갔을 거다. 경기에 지더라도, 그런 식으로 투쟁심을 보이면 위에서 용서해줄 테니까. 국제축구연맹에서 선수단이야 징계를 먹겠지만, 일단 감독과 선수가 살고 봐야 하지 않겠나. 물론 이겼다면 대대적으로 홍보했을 것이다.”
 
  김일성경기장은 해방 후 김일성이 북한에 들어가 처음 군중집회를 하고 연설을 했다고 알려진 곳이다. 북한이 나름대로 신성시하는 곳이다. 개칭 전 명칭은 모란봉경기장이다. 몇 번의 개축을 거치고 명칭을 김일성경기장으로 바꾸었다. 본래 명칭은 평양 기림리(箕林里)운동장이다. 조선총독부는 1926년 히로히토(裕仁)의 황태자 책봉을 기념해 남선(南鮮)에 한 곳, 북선(北鮮)에 한 곳, 국제규격의 운동장을 건설했다. 남쪽의 경기장은 경성운동장(옛 동대문운동장), 북쪽의 경기장이 바로 기림리운동장이다.
 
  ― 경기 결과 말고 두려웠던 것이 있을까.
 
  “있다. 사람 수만 명이 모였다 흩어지면 아무래도 말이 퍼지기 마련이다. 남조선 선수들 외모나 머리염색, 유럽에서 뛴다는 선수들 이야기들이 번지는 걸 통제할 방법이 없다. 다들 남조선 드라마를 보고 있고, 남조선 사람들이 잘산다는 걸 안다. 남조선 사람들에 대한 선망의 분위기가 특히 젊은 층 사이에서 널리 퍼져 있다. 일단 남쪽 말투를 흉내 내야 젊은 축 사이에서 제대로 된 사람 대접을 받으니까. 그런데 남쪽 유명한 선수들이 실물로 돌아다니는 걸 눈앞에서 보고 왔다면 북한 전역에 무슨 말이 얼마나 돌아다닐지, 짐작도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 평창 동계올림픽 때는 김여정도 내려오고, 유화적인 분위기 아니었나.
 
  “그거야 미국을 핵(核) 회담에 끌어들이기 위해 한 것이지.”
 
  ― 1990년 경평 축구 때는 15만 관중이 평양 능라도경기장을 가득 채웠는데.
 
  “그때는 우리가 대남(對南)공작에 자신이 있던 때다. 그때도 15만 관중을 일일이 선별하고 사전 교육을 철저히 했다. 지금과는 사정이 다르다.”
 
  ― 당신은 이번 경기 정보를 어떻게 알았는가.
 
  “중국 쪽 대방(무역업자)이 알려줘서 알았다.”
 
 
  “남쪽에다 돈 내라는 얘기”
 
현대아산이 금강산에 지은 시설물들을 철거하라는 김정은의 지시를 북한 주민들은 ‘금강산 이용해 돈 벌고 싶은 모양’이라고 받아들인다고 한다. 사진=뉴시스/《로동신문》 캡처.
  ― 금강산 관광, 김정은은 왜 그런 이야기를 했다고 보는가.
 
  “남쪽에다 돈 내라고 하는 소리지. 현대아산이 진짜로 철수한다고 하면 말이 달라질 거다. 뭐는 가져가도 되고, 뭐는 절대 가져갈 수 없고…. 다르게 나올 거다. 국경 연선 소식통들은 ‘야, 우리가 금강산 통해서 정말 돈을 벌고 싶은 모양이다’라고들 한다.”
 
  ― 김정은 발언은 한국 정부에 실망했다는 뜻일까.
 
  “자기들 요구를 들어달라는 소리다. 간부들은 문재인 대통령을 미국에 매달린 사람으로 본다. 대한민국에 반공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고, 미국 때문에라도 우리 하자는 대로 하지 못할 것을 안다. 그래서 ‘연말까지 시간을 줄 테니 결단을 내려라’ 한 것이다. ‘불과 불’ 운운하며 협박도 하지 않았나.”
 
  ― 국제제재 해제가 어렵다는 걸 북한 당국도 모르지 않을 것 같은데.
 
  “알지. 그러니까 국제제재 무시하고 남조선보고 우리를 도우라고 하는 것이다.”
 
  ― 그러다가 한국도 국제제재 대상이 되면 남북이 같이 망할 수 있다.
 
  “그거야 우리가 알 바 아니라는 거겠지. 어차피 남조선은 우리에게 수복해야 할 대상일 뿐이라고 교양한다.”
 
  이번에 전화 통화한 대상들의 태도는, 전해 듣기로 친(親)대한민국도 친북한도 아니었다. 이들은 누구일까? 이들이 대표하는 흐름은 어떤 것일까? 다음은 북한에서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기자로 일하다 1997년 탈북해, 1999년 한국에 온 김길선 기자의 분석이다.
 
 
  김정일, “함북 버려도 북조선 유지할 수 있다”
 
  〈함경북도와 양강도 등 변경지역은 단속이 느슨하다. 남한 드라마를 보다 걸려도 ‘이렇게 대놓고 보면 어떻게 하나. 좀 숨어서 보라’고 넘어가고, ‘가족들이 남쪽에 갔더라도 너만은 가지 마라. 송금액도 우리가 단속 안 하겠으니 조금만 고여 달라’고 할 정도다. 여기서는 김정은이 밀리는 것 같다. 아무리 사상이 투철한 간부를 내려보내도 몇 개월이면 현지 지역사회 문물로 동화되고 만다. 중국 쪽에서 들어오는 문물과 정보, 소문을 막을 길이 없는 것이다. 오죽하면 김정일이 1996년 ‘함경북도를 버려도 북조선 유지할 수 있다’고 했겠는가. 제일 먼저 배급이 차단된 곳도 함경북도와 양강도고 탈북자도 80% 이상이 이 두 곳 출신이다. 여기서는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최고다. 다른 지역에 대한 통제는 아직까지는 살아 있다고 보아야 한다. 함경북도와 양강도 사정을 북한 전역의 사정이라고 판단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물론, 철권통제에서 벗어난 지역과 주민들이 생겼다는 것은 그 자체로 적지 않은 의미가 있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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