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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의 북한요지경

공포의 ‘전기검열’

‘전기검열’에서 가장 많이 단속에 걸리는 품목은 전기밥솥

글 : 장원재  배나TV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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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기검열’은 쓰지 말아야 하는 가전제품을 사용하는, ‘국가 전기를 도둑질하는 반역도당’ 색출 작업
⊙ TV·라디오·냉장고·녹음기·세탁기·다리미 등 公的 생활과 관련되는 가전제품은 허용
⊙ 전기담요·냉온풍기는 ‘이기적인 반동분자들의 비사회주의의 극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제품’
⊙ 단속 걸리면 운이 좋아야 6개월 무보수 노동, 심하면 벽지로 추방당할 수도

張源宰
1967년생. 고려대 국문학과 졸업, 영국 런던대학 연극학 박사 / 前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경기파주영어마을 사무총장, TV조선 〈돌아온 저격수다〉 진행 / 現 배나TV대표 / 저서 《끝나지 않은 축구 이야기》 《오태석 연극: 실험과 도전의 40년》 《배우란 무엇인가》 등
지난 2013년 《조선일보》 취재진과 갈렙선교회가 입수한, 북한 가정집에서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를 몰래 보는 영상. 사진제공=갈렙선교회
  북한 주민들을 옥죄는 5대 검열이 있다. 지난 호 다룬 숙박검열 외에 전기, 녹음기, 도서, 초상화 검열이다. 이 중 걸렸을 때 가장 처벌이 엄중한 것이 전기검열이다.
 
  ‘고난의 행군’ 이전까지는 북한의 전기 사정이 지금처럼 엉망은 아니었다. 1995년, 24시간 불을 밝히던 주체사상탑 봉화를 밤 10시에 소등(消燈)하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주민들 사이에서 ‘이러다가 좋아지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지금은 아니다. 전기 사정은 나날이 악화 일로다. 2006~2007년 무렵까지는 하루에 1시간, 최근에는 사정이 좋은 날에 하루 5시간 전기를 준다. 오전 6~7시 반, 저녁 8~10시, 잘하면 11시까지가 ‘불이 오는 시간’이다. 같은 평양이라도, 핵심계층이 거주하는 중구역만은 24시간 전기를 줬다. ‘사회주의의 수도 평양의 얼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불이 들어오는 시간’
 
  그래서 매우 자본주의적인 현상이 벌어진다. 중구역의 집값이 평양 다른 지역에 비해 10배 이상 비싸게 거래되는 것이다. 명절에는 전국적으로 전기를 좀 더 많이 보내준다. ‘배려전기’라고 한다. 배려전기가 오는 날이 또 있다. 미북회담이나 북중회담 등, 선전해야 할 프로그램을 방송하는 날이다. 이때는 인민반장이 집집을 다니며 ‘오늘은 밤 몇 시까지 전기를 더 주는 날’이라고 알려준다. 이런 날에는 당연히 TV나 라디오를 의무적으로 듣고, 다음 날 학습 전투를 준비해야 한다.
 
  ‘불이 오는 시간’에는 모든 식구가 전투하듯 집안일을 해치워야 한다. 새벽에 미리 일어나 대기하고 있다가 전기밥솥·세탁기·청소기·다리미를 돌리고, 저녁에도 각자 방으로 뿔뿔이 흩어져 ‘전기가 끊어지기 전’까지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다 해 놓는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냉장고보다는 극동기가 인기다. 음식을 최대로 얼리는 기계다. 냉장 보관을 하루에 5시간밖에 할 수 없으니, 아예 얼려서 저장하는 것이다. 여름철에 극동기나 냉장고 문을 자주 여닫는 것은 그래서 엄청난 잔소리를 부르는 행동이다. 평양의 경우, 퇴근한 고층아파트 거주자들은 저녁 8시까지 1층에서 대기한다. 불이 와서 엘리베이터가 운행을 시작하는 시간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가전제품 보유 목록’
 
  ‘전기검열’은 북한 당국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일 가운데 하나다. 그들 표현으로, 쓰지 말아야 하는 가전제품을 사용하는, ‘국가 전기를 도둑질하는 반역도당’을 색출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단속이 이뤄지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인민반장이 분기별로 집마다 다니며 어떤 제품을 보유하고 있는지, 연식과 전력 소모량은 어느 정도인지를 빠짐없이 기록한 ‘가전제품 보유 목록’을 만든다. TV·라디오·냉장고·녹음기·세탁기·다리미는 사용 가능한 품목이다. 공적(公的) 생활과 관련이 있다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사적(私的) 이익을 추구하는 제품은 보유와 사용이 모두 금지다. 밥솥·히터·구이로(오븐)·전기주전자·전기프라이팬·전기담요·냉온풍기(에어컨) 등이다. 밥 짓기, 물 끓이기는 석유곤로로 해결하라는 뜻이다. 그래도 선풍기는 집마다 한 대 정도는 사용을 허락해준다. 가족 모두가 선풍기를 밤새 서로 자기 쪽으로 돌려놓는 일은 평양·청진·원산·개성의 공통적인 여름 풍경이다. 수건을 물에 적셔 몸에 얹고 잠을 청해도 보지만, 그래도 선풍기 바람만큼 시원하지는 않다.
 
  ‘전기밥솥’은 단속에 가장 많이 걸리는 품목이다. 수입 쌀, 원조 쌀의 유통이 많은 북한에서 전기밥솥은 차지고 기름진 밥맛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물건이다. 한국제 쿠쿠(Cuckoo) 밥솥은 그래서 북한 전역 어디에서나 최고의 인기상품이었다. 제품의 압도적인 품질 외에, 전기밥솥에서 흘러나오는 ‘조리를 시작합니다’ ‘뜸 들입니다’ ‘맛있는 밥을 완성하였습니다’라는 여성의 목소리가 신기해서 화제가 될 정도였다. 같은 쿠쿠 브랜드가 붙어 있더라도 중국산은 미화 100~200달러, 한국산은 250~350달러에 거래된다. 농촌에서는 집 1채 값, 옥수수 기준 4인 가족의 2년 치 식량을 살 수 있는 금액이다.
 
  단속반은 밥솥의 전력 사용량이 다른 가전제품에 비해 많다고 호통친다. 그리고 여성들이 일하기 싫어 밥가마 대신 전기밥솥을 사용하며 편하게 살려는 풍조가 번지는 것을 개탄한다. 주민들은 ‘그럴 거면 국내산(북한산) 밥솥은 뭐 하러 만드나?’며 따지고 싶지만, 물론 마음속으로만 생각하고 말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는다.
 
 
  급하면 집 밖으로 가전제품 던져버려
 
북한 가정집에 주파수가 고정된 붙박이 라디오가 설치되어 있는 모습. 이 라디오는 볼륨만 조절할수 있게 되어 있다.
  북한에서 전기담요와 냉온풍기는 개인의 안락함만을 추구하는 가전제품으로 꼽힌다. 전력소모량도 가장 많기에, ‘이기적인 반동분자들의 비사회주의의 극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제품’이라고 선전한다. 다른 제품은 몰라도, 전기담요와 냉온풍기를 쓰다가 걸리면 상당한 처벌을 각오해야 한다. 그래서 냉온풍기와 담요를 사용 중에 단속반이 들이닥치면, 물건을 감출 시간이 없을 경우 아예 베란다 밖으로 던져버린다. 엄청난 고가품이기는 하지만, 단속에 걸리느니 부숴버리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단속에 걸릴 경우 재수가 좋아야 6개월 무보수 노동으로 끝난다. 무보수 노동이야 크게 두렵지 않다. 어차피 공식 직장은 허울일 뿐, 생계를 위한 수입의 대부분은 장마당에서 해결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추방령이 떨어지는 경우다. 하루아침에 연고자도 없는 산간벽지로 가족 전체가 쫓겨날 수도 있다. 가전제품을 주저 없이 집 밖으로 던져버리는 이유다. 걸리면 삶이 바뀐다. 그래서 전기 검열자들은 공포의 존재다.
 
  단속반은 24시간 아무 때고 문을 두드린다. 인민반장이 그 옆에서 ‘가전제품 보유 목록’을 들고 단속반과 함께 가택을 수색한다. 전기검열자는 그 자체가 공포의 대상이다. 나름대로 자기들끼리 교육을 하는지, 문 두드리는 소리만 가지고도 사람들을 다급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알고 왔으니 꺼내놓는 것이 좋으실 것”이라는 협박도 한다. 이 경우 빠져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개 이웃의 신고로 들이닥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TV와 라디오는 사용 가능한 품목이라고 했지만, 그렇다고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물건도 아니다. 북한이 자체 생산한 TV와 라디오는 통로(채널)가 하나밖에 없다. 러시아나 중국산, 일제 중고품인 경우는 당국에서 리모컨을 압수한다. 그러고 나서 본체를 들고 가 채널조절 박스를 봉인해서 돌려준다.
 
  북한 TV는 밤 10시면 방송 종료다. 10시 넘어 TV를 보는 것은 어떤 경우든 불법이다. 중국 TV를 보는 것도 불법이다. 밤늦도록 TV 불빛이 창문에 어른거리면 누군가는 반드시 신고하는 사람이 있다. 창문마다 담요로 불빛을 가리고 최대로 조심을 하지만, 이웃들의 생활밀착형 감시를 피할 길은 없다.
 
 
 
도서검열과 녹음기검열

 
  전기검열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도서검열과 녹음기(녹화기)검열이다.
 
  도서검열은 보유해서는 안 되는 서적이 있는지를 따진다. 외국 서적이나 잡지가 있는지, 외국 소설 등 금서(禁書)가 있는지를 살핀다. 특수한 직업군의 사람들만 돌려보기 위해 100권 한정으로 도서를 만드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서적이 개인 집에서 발견되는 것도 처벌 대상이다. 이 경우, 이 책이 어떤 경로로 어떻게 전해졌는지를 추적해 관련자 모두를 처벌한다.
 
  녹음기검열은 녹음기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카세트든 CD든 비디오테이프든, 어떤 내용이 들어 있는 어떤 물품인지 사전(事前) 허가를 받아야 한다. 사전허가를 받지 않은 제품을 보유하고 있는 것, 듣거나 보다 걸리는 것 모두 문제가 커진다.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 걸리면, 정치범으로 몰려 일가족 모두가 수용소로 쫓겨나기도 한다. 한국 드라마 CD를 대량으로 유통하는 것은 공개사형을 당할 만큼 중범죄다. 그래도 일단 한류(韓流)에 맛을 들이고 나면, 도저히 끊으려야 끊을 수가 없다.
 
  오죽하면 중국에서 만든 ‘노트텔’이라는 저용량 노트북이 한류 CD나 USB 전용 재생 기기로 북한 전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겠는가. 노트텔을 전략적 차원에서 2대 보유한 집도 부지기수다. 단속반이 기기의 잔열(殘熱)을 체크하기 때문이다. 단속반이 들이닥치면 나머지 한 대를 들이밀며 ‘열이 안 나지 않느냐, 안 봤다’고 우기는 것이다.
 
  그래서 단속반은 아파트 두꺼비집을 한꺼번에 내려버리고, CD알판이 담겨 있는 그대로 기기를 압수해간다. 한류를 보고 싶은 욕망은 증가하고 단속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니, 대책이 진화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단속반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최근에 유행하고 있는 스마트칩이다. 걸린 사람들이 칩을 삼켜버리는 탓에 증거를 확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행해지는 검열은 엄청난 인원과 조직이 전국적으로 1년 내내 동원되는 제도다. 생산을 장려하거나 사회의 활력을 높이는 활동도 아니다. 주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수단이다. 그런 일에 이만한 비용과 시간을 이토록 비효율적으로 집행하는 사회가 21세기에도 남아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전기밥솥과 에어컨, 전기담요를 쓰다가 반역자로 몰려 하루아침에 가족 전체가 산간벽지로 추방당하는 삶. 고함과 더불어 우당탕탕 문을 두드리는 공포의 음성은 오늘도 북한 주민의 새벽잠을 해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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