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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근의 전쟁과 평화

판문점 3차 美北 정상회담과 전망

김정은 좋아한다는 트럼프, 실은 北을 옥죄고 있어

글 : 이춘근  이춘근국제정치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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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 김정은 압도… 김정은은 심장병 걸린 사람처럼 쌕쌕거렸다”
⊙ 北, 비핵화와 마찬가지로 ‘모든’ 시설 신고하고 사찰 받아들여야 하는 핵동결 못 받아들여
⊙ 美, 北이 이스라엘의 적에게 핵무기 팔 수 있는 기회 주는 핵동결 수용 못 해
⊙ “트럼프가 독재자들과 사이좋게 노는 데도 불구하고 미국의 보수 인사들이 가만히 있는 이유는 트럼프가 말과는 달리 행동으로는 독재국가들을 끊임없이 못살게 굴고 있기 때문”(마크 티센)

이춘근
195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미 국 텍사스대학 정치학 박사 /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연구실장, 자유기업원 국제문제연구실장·부원장, 한국경제연구원 외교안보연구실장 역임. 現 국방부 정책자문위원 / 저서 《미·중 패권경쟁과 한국의 국가전략》 《격동하는 동북아시아》 《현실주의국제정치학》 등
지난 6월 29일 판문점에서 김정은과 만난 트럼프 美대통령. 美언론은 트럼프가 김정은을 압도했다고 보도했다. 사진=뉴시스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다면 미국은 단 하루도 심심한 날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 예언가가 있었다. 정말 트럼프가 당선된 이후로 미국은 물론 세상이 정신없을 정도로 변화무쌍하다. 트럼프의 현란한 외교는 그의 종잡을 수 없는 어법과 행동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세계 최강대국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은 국제정치의 험난한 파도를 힘겹게 헤쳐나가고 있는 수많은 나라의 정치가와 국민, 그리고 분석가들을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북핵(北核) 문제라는 국가의 사활적(死活的) 문제에 노심초사(勞心焦思)해야 하는 한국인들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은 불필요한 오해와 짜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6월 30일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트럼프와 김정은의 판문점 회동은 대한민국의 수많은 분석가로 하여금 그야말로 백가쟁명(百家爭鳴)식 해설을 양산케 하였다. 일부 사람은 ‘트럼프가 김정은을 만남으로써 북한의 비핵화(非核化)는 물 건너갔다’고 탄식하며, ‘이제 대한민국은 북한의 핵 위협 앞에서 처절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극단적인 비관론을 피력했다. 반면 ‘트럼프는 김정은을 가지고 놀았으며 이제 김정은 체제는 곧 끝나게 될 것’이라는 낙관론도 나왔다. 정말 다양한 견해가 한국 사회를 시끄럽게 만들고 있다. 시끄러운 정도가 아니라 해석을 달리하는 국민들 사이에 갈등마저 나타나고 있다.
 
  이번 판문점 회담을 극단적 비관론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트럼프를 한국인의 안정과 평화는 안중에 없는 배반자 같은 인간으로 치부한다. 작금 한국의 저명한 보수 논객 중 이런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이 놀라울 정도로 많다. 우리나라 대통령도 아닌데 트럼프를 감정적으로 미워하기도 하며 미국에서 말하는 TDS, 즉 트럼프발작증후군(Trump Derangement Syndrome) 같은 무조건적 반(反)트럼프주의자들도 있는 것 같다.
 
  반면 트럼프를 ‘기가 막힌 전략가’로 보는 일단의 평론가와 이들의 설명에 공감하는 국민들에게 트럼프는 마치 대한민국을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처럼 인식된다. 문재인(文在寅) 정부의 대북(對北)정책을 격렬하게 반대하는 국민 중 적잖은 사람은 오히려 트럼프가 대한민국 대통령의 역할을 해주는 것 같다고까지 말한다.
 
 
  트럼프의 호출에 응한 김정은
 
  트럼프와 김정은이 40~50분 정도 대화를 나눈 것으로 보아 이번 회담이 문자 그대로 트럼프의 트윗 한방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에 온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월 29일 오전 7시51분, 트윗 하나를 날린다. 이를 우리말로 번역한다면, ‘시진핑 주석과의 만남 등 중요한 모임을 마치고 나는 일본을 출발해 한국으로 갈 (문 대통령과 함께) 것이다. 그곳에 있는 동안, 만약 김 위원장이 이 글을 본다면 나는 그를 국경선, DMZ에서 만나 단지 악수하고 안녕(?)!이라고 말하려 한다’고 했다.
 
  이를 본 북한의 외무성 부상(副相·차관) 최선희가 ‘관심 있다’고 반응했다. 그러나 성사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6월 30일 아침 하얏트호텔에서 한국의 기업 총수들과 면담하고 청와대 오찬을 마친 트럼프는 용산 미군기지에 대기하고 있던 헬리콥터를 타고 판문점으로 향했다. 그때까지도 언론은 김정은이 나올 것이라고 보도하지 않았다. 김정은의 이동 시간이 2시간 이상인 것을 생각한다면 일반 언론에는 정보가 철저하게 차단된 것이 분명하다.
 
  김정은이 판문점에 오지 않더라도 트럼프의 판문점 방문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한국을 방문할 때면 모두 군용점퍼를 걸친 채 판문점을 방문해서, 망원경으로 북한 땅을 살펴보는 것이 관행이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김정은이 스스로 “많은 사람이 일찍부터 예정된 회담이라고 말하지만 나도 어제 비로소 알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는 점이다. 그렇게 말함으로써 김정은은 트럼프의 긴급호출에 응했음을 스스로 고백한 꼴이 되었다.
 
 
  미국의 對北 압박
 
미국이 억류한 북한 화물선 와이즈 어니스트호. 사진=뉴시스/AP
  김정은은 사실 2월 28일은 물론 5월 4일과 9일 단거리미사일 발사 실험을 한 후 트럼프에게 대단한 모욕을 당하는 중이었다.
 
  5월 9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실험이 있은 직후 10분이 채 되기도 전에 미국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대륙간탄도탄 발사 실험을 단행했다. 그날 미국의 폭스뉴스 TV는 인터넷 홈페이지 1면 톱기사로 김정은 사진을 올려놓고 사진 바로 아래 ‘그것 가져라 이 로켓맨아(Take That Rocket Man)’라 적은 모욕적 기사를 게재했다.
 
  그러고 나서 불과 몇 시간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 미국은 북한에서 두 번째로 큰 화물선인 ‘와이즈 어니스트호’(號)를 나포해, 300만 달러에 이르는 화물(석탄)을 압수한 뒤 빈 배를 수천km 넘는 곳에 있는 미국령 서(西)사모아섬의 파고파고항(港)까지 끌고 갔다.
 
  힘이 비슷한 나라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전쟁을 초래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사실 북한의 대형 선박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며칠을 끌려간 것이다. 이 정도 나포 사건이 트럼프 대통령 모르게 행해진 일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가(裁可)를 받고 이루어진 일이라고 보는 편이 더 좋을 것이다.
 
  그 다음 날 미국 시각으로 5월 9일 《월스트리트 저널》은 미국이 새로 발명한 신무기라며 표적으로 향해 날아간 후 칼이 튀어나와 표적을 문자 그대로 썰어버리는 잔인한 무기를 소개했다. 이미 2년 전 개발되어 중동(中東)지역에서 6명의 테러리스트를 살해한 경력이 있는 무기를 최신 무기라고 소개한 저의(底意)가 어디 있을까?
 
  미국 의회도 지난 6월에 북한을 향해 뼈아픈 제재 조치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6월 20일 시진핑(習近平)이 평양을 방문했다. 시진핑은 김정은에게 뒷심이 되어주리라 약속했을 것이다. 어차피 김정은과 시진핑은 미국을 향해 함께 싸울 수밖에 없는 운명공동체가 된 상태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김정은은 대한민국을 한껏 모독했다. “중재자랍시고 나대지 말라”고 했다. 그것도 국장급 인사의 언급을 통해서 말이다.
 
  아마 이 무렵 미국과 북한 사이에는 판문점 정상(頂上)회담이 준비되고 있었을 것이다. 6월 10일 김정은은 트럼프 대통령의 생일 축하 겸 친서(親書)를 보냈다. 트럼프도 답장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는 중에 정상회담 이야기가 오갔을 것이다.
 
  이렇게 상황을 재(再)구성해보았을 때, 김정은은 트럼프를 애타게 찾아야 할 필요가 있음이 분명하다. 사실 김정은은 일반적인 지도자가 아니다. 그는 신격(神格)을 가진 지도자다. 그러니 열 살도 되기 전에 총도 쏘고 자동차와 보트를 운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신격인 인물이, 북한 영생교의 수령이, ‘미제(美帝) 원쑤’의 수괴(首魁)가 부른다고 비대한 몸집을 흔들며 달려 나간 것이다.
 
  이 사실을 북한의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해석할까? 북한은 판문점 회담의 비디오를 북한 주민들에게 상당히 자세하게 보여주었다. 이를 본 북한 보통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북한 정권은 김정은이 불러서 트럼프가 달려와서 항복했다고 알고 있을까?
 
 
  판문점을 지배한 미국의 파워
 
  6월 30일 오후, 김정은은 지난해 4월 27일 한국 대통령을 만날 때처럼 으스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김정은이 탄 벤츠 옆에서 검은 양복에 검은 안경을 낀 경호원들이 줄서서 달리는 모습은 없었다. 김정은의 옷에는 김일성·김정일 배지도 달려 있지 않았다. 북한 측 대표, 경호원, 취재진의 옷에는 (주로 왼편에) 동그란 모양의 비표가 부착되어 있었다. 아마 미국 측이 한국과 북한 사람들을 구분하기 위해 착용을 요구한 것 같다. 정상적인 외교 관례를 따른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물론 판문점을 군사적으로 통제할 권한은 유엔군사령부, 사실상 미군이 가지고 있지만 그날 판문점을 지배한 것은 미국의 파워였다. 묵직한 카메라를 짊어진 북한 기자가 의자 위에 올라서자마자 미국 경호원이 달려와서 “내려와, 내려와!(Down, Down!)”라고 소리치다가 아예 두 손으로 정강이를 밀어서 넘어뜨리는 모습도 보였다. 넘어지는 북한 기자를 미국 경호원이 부둥켜안아서 내동댕이쳐지지 않았지만, 이런 모습을 바로 옆에서 보고 있던 북한 경호원들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사진을 잘 찍으려고 의자 위에 올라선 북한 기자를 한국 경호원이 밀어 내렸다면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지 상상해보자.
 
  그날 트럼프와 동행한 미국 폭스뉴스 TV의 앵커맨 터커 칼슨(Tucker Carlson)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을 압도했다”면서 “김정은은 마치 심장병이 걸린 사람처럼 쌕쌕거렸다(wheeze)”고 보도했다. 일반인의 눈으로 보기에도 판문점에 나온 김정은은 35세 혈기 왕성한 젊은이로 보이지는 않았다. 트럼프는 넉살 좋게도 트윗을 통해 ‘김정은은 건강해 보였다’고 말했다.
 
 
  ‘핵동결’이 불가능한 이유
 
트럼프는 북한이 거부감을 보이는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美北실무회담 총책임자로 지명했다. 사진은 작년 9월 26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만난 폼페이오와 이용호 북한 외무상. 사진=뉴시스
  정치가들은 당연히 쇼맨십이 대단한 사람들이다. 트럼프 역시 탁월한 쇼맨이다. 40~50분 동안 무슨 말이 오갔는지를 모르는 우리는 이 회담을 보고 “비핵화는 끝났다” “핵폐기가 아니라 핵동결이 미국의 목표로 하향(下向) 조정되었다” 등의 말을 할 수는 없다.
 
  확실한 것은 트럼프의 소망은 ‘완전한 비핵화’이고, 김정은의 소망은 ‘완전한 핵무장’이다. 김정은이 말하는 완전한 핵무장은 ‘미국의 표적들을 공격할 수 있는 장거리 핵미사일을 보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김정은이 원하는 또 다른 하나는 자신과 트럼프의 담판을 통해 무언가 해보려는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이 모르는 것은 미국과 북한은 체제가 다르다는 점이다. 북한과 달리 미국의 관리들은 트럼프의 명령을 따르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래서 트럼프와 김정은이 결정한 것은 며칠 있다가 실무회담하자는 것뿐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직후 “실무회담의 총책임자는 폼페이오 국무장관”이라고 말함으로써 북한 관리들의 염장을 질렀다. 북한이 “폼페이오를 빼달라”고 몇 달 동안 소리쳤기 때문이다.
 
  7월 중순경 미북(美北) 실무자 회담이 열리면 의제는 다시 원점(原點)으로 돌아갈 것이다. 아무것도 스스로 결정할 능력이 없는 북한의 협상팀과 전문성을 가지고 북한 핵폐기를 집요하게 추구하는 미국의 실무진이 만나서 타협점을 찾는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미국과 북한이 원하는 바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많은 한국 평론가는 “미국의 목표가 완전한 비핵화가 아니라 핵동결로 하향 조정되었다”고 개탄하고 있다. 허무한 논리가 아닐 수 없다.
 
  우선 미국이 아니라 북한이 핵동결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분석해보아야 한다. 핵동결과 완전 비핵화는 결과는 다르지만 과정은 똑같다. 우선 두 경우 모두 ‘모든’ 시설을 신고해야 하고, 그 시설을 미국 혹은 유엔의 사찰관들이 들어가서 사찰해야만 한다. 핵시설을 하나라도 누락시킨다거나 동결된 시설을 가동시키는 경우 미국은 어떻게 할까? 북한이 핵동결을 받아들인다면 그때 얼마나 많은 미국인 사찰관이 북한에 들어가게 될 것인지 여부가 미북 간에 타협될 수 있을까?
 
  미국이 동결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은 곧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이며, 일본의 핵무장을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며, 북한이 핵을 이란 등 이스라엘의 적국(敵國)에 팔 수 있는 기회를 터주는 것이 된다. 도무지 미국이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인 것이다.
 
 
  美의 對北압박은 현재진행형
 
  마크 티센(Marc A. Thiessen)이라는 미국 학자는 “트럼프가 독재자들과 사이좋게 노는 데도 불구하고 미국의 보수 인사들이 가만히 있는 이유는 트럼프가 말과는 달리 행동으로는 독재국가들을 끊임없이 못살게 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국 역대 대통령 중 ‘김정은을 좋아한다’고 제일 많이 말한 대통령이 트럼프지만, 북한을 가장 옥죄고 있는 인물 역시 트럼프임을 부정할 수 없다.
 
  미국 국무부는 이미 북한을 사실상의 표적으로 삼는 인권위원회를 설치했다. 미국 정부는 북한에 대한 유엔 제재를 더욱 물 샐 틈 없이 해야 한다고 독려하고 있다. 북한을 방문했다가 뇌사(腦死)상태가 되어 미국으로 돌아온 지 일주일 만에 사망한 오토 웜비어의 부모는 ‘며칠 전 나포된 북한 선박을 웜비어 사망 보상비를 보전(補塡)하는 용도로 쓰겠다’며 양도를 요구했다. 이상 판문점 회담 이후 진행되고 있는 여러 가지 일은 거의 모두가 북한의 목을 더욱 강력하게 조이는 것들이다. 트럼프가 김정은의 어깨를 툭툭 치며 친한 척하는 모습을 보고 ‘비핵화는 물 건너갔다’고 개탄하고, 트럼프를 ‘한국 국민을 배반한 인간’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옮은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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