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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의 북한요지경

북한의 물(水) 사정

‌수세식 변기에 쓸 물 없어 오물은 창밖으로 투척

글 : 장원재  배나TV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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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의 고층아파트에서도 매일 아침 3~4차례씩 물지게를 지고 20층까지 오르내려
⊙ ‘물 한 컵으로 모든 일 다하기’… 한 모금으로 양치, 남은 물로 손발 씻고, 걸레를 빤 후 용변 내리는 데 사용
평양 ‘미래과학자의 거리’에 들어선 고층아파트. 북한의 고층아파트들 가운데는 상수도 시설이 미비해 직접 물지게를 지고 올라가야 하는 곳이 많다. 사진=공동취재단
  ‘물과 공기만 있으면 살 수 있다. 간고분투하자.’
 
  미북(美北)정상회담 결렬 후 북한 당국이 주민들에게 강조하는 말이다. 이 말을 듣고 주민들은 속으로 욕을 한다. 공기는 몰라도 ‘물’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에는 세 ‘리을(ㄹ)’이 없다. 물·불·쌀이다.
 
  남한에 와서 ‘물’에 관한 동사가 ‘긷다’에서 ‘받다’로 바뀌었다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자기 물은 자기가 길어 와야 한다. 고층아파트라고 물긷기에서 예외가 아니다. 문수거리에는 러시아가 건설해준 20층짜리 아파트가 있다. 월드뱅크에서 일하는 재미교포가 친해진 북한 공무원에게 “당에서 배려해줘서 평양 한가운데 고층아파트에서 사니 얼마나 좋으냐”라고 농담 삼아 물었더니, “매일 아침 3~4차례씩 물지게를 지고 20층까지 오르내려 보라. 그런 소리가 나오나” 했다는 일화가 저간의 사정을 대변한다. ‘고난의 행군’ 이전만 해도 물·불 사정이 요즘처럼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빠데미장’
 
  평양 낙랑구역에는 5만 가구가 산다. 물탱크는 10만 가구 기준으로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수도시설이 있어도 불(전기)이 없으면 펌프를 돌리지 못한다. 불이 와야 물이 온다. 불이 없으니 물이 없고, 물이 없으니 각자 자력갱생해야 한다. 일단 어쩌다 물이 나오는 시간에 대비해 인테리어를 한다. 욕조를 없애고 화장실 한쪽에 벽을 쌓아 물탱크를 만든다. 이것을 ‘빠데미장’이라고 한다. 쌓은 벽 중간에 수도꼭지를 다는 것은 필수다. 문제는 수질이다. 쇳밥이 많이 섞여 나오기에 청소를 자주 해줘야 한다. 그래서 식수는 부엌에 따로 받아 사용한다. 독 안에 담아놓으면 물이 맑아진다. 일종의 정수기인 셈이다.
 
  만성적인 물 부족 문제가 중앙당 강연 주제가 된 적도 있다. 내용은 ‘물 한 컵으로 모든 일 다하기’다. 일단 물 한 모금으로 양치한 후 다른 컵에 뱉는다. 남은 물로 손과 발을 씻고 마지막으로 걸레를 빤다. 걸레 빤 물과 처음 양치한 물은 버림 없이 모아 용변 내리는 용도로 쓴다. 행정기관이 진지하게 제작해서 배포한 내용이다. ‘알뜰한 조선 여성의 기본’이라는 부제(副題)도 붙어 있다.
 
  식수 상황이 이러한데 용변 볼 물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러다 보니 오물을 창문 밖으로 투척하는 경우도 많다. 버리는 사람이 있으면 맞는 사람도 있는 법. 길 가다 난데없는 오물 벼락을 맞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북한의 아파트 주변을 지날 때는 머리 위를 주도면밀하게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오물을 투척할 때는 요령이 있다. 북한 아파트 창문은 밖이 아니라 안으로 열린다. 일단 창문을 열고 1~2m 뒤에서 오물을 투척한다. 여유가 있는 집은 비닐에 담아서 버리고, 여유가 없는 집은 대야에 담아 밖으로 던진다. 그러고 나서 얼른 창문을 닫아 어느 집에서 던졌는지 알지 못하게 한다. 그래야 큰 싸움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인분은 북한에서 귀중한 비료다. 학교 다니는 모든 학생은 ‘꼬마과제’로 인분 몇백kg을 바쳐야 한다. 그래서 창밖으로 투척된 오물은 밤 사이 누군가가 수거해 간다. 하지만 오물은 사라져도 냄새는 남는다.
 
 
  ‘물빨기’
 
  상수도뿐 아니라 하수도도 문제다. 2000년대 중반 평양에서 밀착 고무마개가 날개 돋친 듯 팔린 적이 있다. 집 화장실 하수구를 막는 용도다. 겨우내 얼어 있던 하수관이 녹으면 오물이 올라온다. 밀착 고무마개는 다른 집 하수가 ‘우리 집’으로 역류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다. 수압이 증가하면서 고무마개를 막지 않은 집으로 오물이 분수처럼 솟구쳤다고 한다.
 
  지방은 물 사정이 더 열악하다. 북한의 주택단지는 산을 깎아 짓는 경우가 많다. 아래쪽 집은 낡아도 값이 비싸다. 그나마 물이 잘 나오기 때문이다. 언제 물이 나올지 모르기에, 북한에서는 24시간 수도꼭지를 열어놓고 사는 것이 일상이다. 모든 집이 수도를 틀면 ‘압력이 샌다’. 그래서 인민반장이 주민들에게 말한다. “윗집들은 수도꼭지를 잠그자. 그러면 아랫집들은 물을 받을 수 있으니, 나눠 쓰면 되지 않느냐.” 주민들은 그 앞에서는 그러겠다고 약속하지만 돌아서면 여전히 24시간 수도꼭지를 틀어놓는 물 쟁탈전을 벌인다.
 
  이웃들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직접 맞대결을 펼치는 경우도 있다. 물이 돌면 수도에 연결해놓은 호스를 입으로 빠는 것이다. 빨리 빨아야 물길이 우리 쪽으로 온다. 빠는 힘이 약하면 저쪽으로 우리 물이 빨려가는 느낌이 온다. 그래서 ‘물빨기’ 할 때는 식구 많은 집이 유리하다. 숨이 차면 다음 사람에게 호스를 넘기고 릴레이하듯 돌아가며 필사적으로 호스를 빤다. 마침내 아기 소변 줄기 정도라도 물이 나오면 식구 모두가 환호성을 지른다. 해방이 되더라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라 한다.
 
  물빨기가 쉬운 작업은 아니지만, 그래도 압록강이나 두만강에서 물을 긷는 것보다는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강에서 물을 길을 때는 ‘퉁제’라는 물통을 쓴다. 물 14L가 들어가는 쇠로 만든 물통이다. 물을 채우면 20kg 정도 무게가 된다. 일단 무릎에 올려놓은 뒤 2차 동작으로 머리에 이는 것이 요령이다. 역도의 용상(聳上) 동작과 흡사하다. 따바리(똬리)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고정하는 것도 요령이다. 따바리 가운데 끈을 잇고 다른 한쪽을 입에다 물면 따바리가 떨어지지 않는다.
 
 
  물배달
 
  아랫집 가운데 인심 좋은 집은 이웃이 물을 퍼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집도 있다. 집 안 수도꼭지에서 문 밖까지 길게 호스를 연결해두는 것이다. 명절 때면 이웃들이 음식이며 술이며 인사를 한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수요가 생기고,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따른다.
 
  첫 번째 해결책은 입주민들이 돈을 모아 아파트 단지별로 우물을 파고 펌프를 다는 것이다. 우물 파기 사업은 한때 ‘꽃제비’들의 아르바이트였다. 펌프에는 자물쇠를 달아 주민 이외에는 사용을 막는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우물을 파지 않고 물을 사 먹는다. 오전 6~7시에 강물을 길어다 주는 사람이 있다. 새벽물이 깨끗하기에 그 시간에 배달하는 것이 품질과 신용을 지키는 길이다.
 
  평양 문수원 봉사총국은 물탱크 차 5대를 보유하고 있다. 봉사총국 전체가 외화벌이에 나서면서, 아예 물탱크 차에다 약수를 싣고 아파트 고층까지 배달해주기도 한다. 단 이때는 외화로만 물값을 받는다.
 
  그래서 북한 주민들은 비를 사랑한다. 비가 오면 물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이란 그릇은 모두, 심지어 간장종지까지 모두 밖에 내다 놓는다. 처음 받은 빗물은 흙탕물이지만, 가라앉혀서 쓰면 별문제가 없다. 비가 오면 통빨래를 하기도 한다. 옷 입은 채로 비누칠하고 비를 맞는 것이다. 빗물이 흘러내리는 지붕 네 귀퉁이는 자연 샤워를 할 수 있는 명당이기도 하다.
 
 
  개인목욕탕도 등장
 
  물이 없으니 목욕은 사치다. 단 탄광 지역은 예외다. 더운물이 매일 나오는 목욕탕이 있다. 직원 외에는 사용 불가지만, 아는 사람에게 부탁해 도둑목욕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한국식 목욕탕을 생각하면 오산이다. 일단 타일이 없고 콘크리트 욕조만 있다. 비누, 물바가지 등 각종 도구도 본인이 다 챙겨야 한다.
 
  타일 목욕탕이 있기도 하다. 2005년 이후 평양의 각 기관기업소들이 만든 목욕탕이다. 각 기관들이 외화벌이에 나서면서 100~150명을 수용하는 소규모 목욕탕을 경쟁적으로 만들었다. 개인들이 만든 목욕탕도 있다. “국가계획 좀 하게 해달라”고 청을 넣으면, 당국에서는 엄격한 실사 후 “매달 얼마씩 바치라”며 허가를 내준다.
 
  계획보다 더 벌면 나머지는 다 자기 것이 되기에, 개인목욕탕들은 필사적으로 영업한다. 서비스도 좋고 시설도 깔끔하다. 남탕과 여탕 구분은 있지만, 물 데우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 욕조가 거의 붙어 있다는 것이 옥의 티다. 벽으로 막아놓기는 했지만 벽 건너편에서 하는 이야기가 다 들릴 정도다. 그래도 겨울에는 한증막 밖이 곧 영하인 국영 목욕탕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장마당 상인 가운데는 집에서 목욕을 하는 사람도 있다. 술 뽑는 날은 가마뚜껑을 엎어놓고 더운물을 계속 갈아줘야 한다. 술 뽑고 난 뒤 더운물을 재활용해 목욕하는 것이다. 함지에 물을 받고 비닐방막을 두르면 그런대로 목욕하는 분위기가 난다. 문제는, 하도 오랜만에 하는 목욕이라 ‘때도 말을 안 듣는다’는 점이다. 30분 이상 불려야 비로소 때가 말을 듣는다. 그래서 북한 당국자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물과 공기만 있으면 살 수 있다고 선전하기 전에, 일단 물부터 주고 나서 그런 얘기를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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