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의 영상물, 노래 등 금지 항목 세목별로 제시… 남한 가수 평양 공연 후 내부적으로는 더욱 통제 강화 지시
⊙ 삼성 이재용 부회장 환영한 김정은… 뒤로는 ‘SAMSUNG’을 괴뢰상표로 지정
⊙ 김정일 부인(고용희)과 내연녀(홍영희)의 영화 삭제
⊙ 北 한류 확산 막기 위해 109상무 문건 작성
⊙ “자기는 남한 공연 보면서 우리는 왜 통제하나”(北 주민)
⊙ 세상 빛을 보지 못한 김정일 관련 영화 ‘조선의 장군’은 무슨 내용?
⊙ 北 주민들, YS 비판하려 만든 노래 개사해 김씨 3부자 욕해
⊙ 삼성 이재용 부회장 환영한 김정은… 뒤로는 ‘SAMSUNG’을 괴뢰상표로 지정
⊙ 김정일 부인(고용희)과 내연녀(홍영희)의 영화 삭제
⊙ 北 한류 확산 막기 위해 109상무 문건 작성
⊙ “자기는 남한 공연 보면서 우리는 왜 통제하나”(北 주민)
⊙ 세상 빛을 보지 못한 김정일 관련 영화 ‘조선의 장군’은 무슨 내용?
⊙ 北 주민들, YS 비판하려 만든 노래 개사해 김씨 3부자 욕해
- 북한 ‘109상무’가 작성한 내부 주민단속용 문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시작으로 판문점·평양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 문화교류가 활성화되고 있다. 평창올림픽을 기념해 북한 삼지연관현악단이 남한 공연을 진행했다. 이에 남측 공연단은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까지 만나면서 문화로 남북 화해의 물꼬를 트는 듯했다. 이런 북한의 모습은 진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겉으로는 외부 문화를 받아들이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내부 주민들 대상으로 사상투쟁을 더욱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월간조선》이 단독 입수한 북한 ‘109상무’(비상설 조직을 뜻함) 내부 자료를 보면 이 같은 사실이 잘 드러나 있다. 그동안 일부 언론을 통해 북한 주민들에게 금지된 영화와 노래 등 목록은 공개된 바 있지만 체계적으로 만들어진 종합문서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김정은 시대 들어서 북한 주민들에 대한 사상교육을 강화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문건에 보면 109상무가 주민들을 대상으로 남한 영화나 드라마뿐만 아니라 내부에서 제작된 영상물 중에서도 반체제 인물로 숙청된 장성택과 현영철 등과 관련된 인물들이 출연하는 영화·드라마들의 시청을 금지하고, 회수·삭제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다. 이 밖에도 주민들이 알아서는 안 될 김정은의 어머니인 고용희 관련 영상물, 김정일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음란비디오 촬영으로 구설수에 올랐던 은하수관현악단 영상, 북한 모란광명회사에서 제작한 화면노래반주곡집(뮤직비디오) 등이 포함되어 있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일명 ‘109그루빠’라고 불리는 109상무는 북한정권이 영상물과 불법 출판물, 라디오와 녹화기 단속을 목적으로 2004년 2월에 조직된 사상, 미디어 통제검열조직이다. 노동당 선전선동부가 책임지고 여기에 검찰소와 보위부, 보안성이 합류하여 중앙과 지방에 조직된 비상설기구이다. 사실상 상설기구이나 비상설기구라고 부르는 이유는 해당 시기마다 조직의 명칭을 바꾸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에 테이프식의 비디오로부터 시작된 비공개 한국영화 보급이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VOD 보급으로 북한주민들 속에서 활성화하자 북한정권이 ‘황색바람’을 막는다면서 조직된 109상무는 과거 김정일 시대에도 아무런 근거 없이 가정집들에 들이닥쳐 모조리 뒤지고 난탕을 쳐 주민들의 원성이 높았었다. 그런데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서 109상무의 검열은 더 강화되고 있다. 최근 대한민국의 드라마와 영화, K-POP음악이 북한주민들과 청소년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109상무는 북한주민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밖에도 북한에서 제작 유포된 영상도 김정은 시대 들어와 선별적으로 단속하고 있다.
“남한 공연 보고 가슴 벅찼다”던 김정은, 뒤로는 주민통제 강화
문건 첫 페이지에는 ‘자본주의 나라와 괴뢰들의 영화, TV극, 성록화물(성인물)’이라는 제목 아래 가장 전형적인 불순 출판선전물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여기서 자본주의 나라는 서양과 그 밖의 민주주의 나라를 뜻하고 괴뢰는 남한을 말하는 것이다. 자료에는 자본주의 나라 영상물의 경우 북한 TV나 평양국제영화관, 대동문영화관에서 방영하지 않았거나 ‘목란(북한 국화)’ 마크가 있는 외국영화는 허용된다. 하지만 남한 영화나 TV극(드라마), 화면음악(뮤직비디오)은 그 어떤 경우도 시청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정은은 4월 평양을 방문한 남측 가수들의 공연을 관람한 뒤 “우리 인민들이 남측의 대중예술을 깊이 이해하고 진심으로 환호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벅차고 감동을 금할 수 없었다”며 짧은 기간에 훌륭한 공연을 준비해 온 남측 공연단에 감사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남한 예술단이 평양을 방문해 다양한 공연을 선보인 지난 4월에도 북한 내부에서는 여전히 남한 영화와 드라마 단속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정통한 대북 소식통은 “남한 가수들이 평양을 방문한 후에도 북한에서는 남한 영화나 드라마에 대한 통제는 더욱 심해졌다”며 “이에 대해 북한 주민들은 왜 남한 가수들 영상은 보여주면서 영화나 드라마를 보지 못하게 하는지 불만이 많다”고 말했다.
반면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구소련), 동유럽 국가에서 제작된 영상물들은 방영하고 있다. 과거에는 체제나 이념을 선전하는 내용이나 ‘홍루몽’, ‘서유기’와 같은 고전을 소재로 한 영화, 드라마가 대부분이었지만 점차 서민들의 삶과 애정, 갈등을 포함한 현실적인 내용의 중국 드라마들도 방영되고 있다. 2008년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첩보물인 ‘잠복’, ‘흉계’ 등의 드라마가 북한 TV에서 방영됐다. 북한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에 주연으로 출연한 중국 여배우 류자(劉佳)는 북한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 ‘중국 경찰의 대명사’가 됐고 초청을 받아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중국 드라마 ‘모안영’이 북한에 방영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모안영은 마오쩌둥의 아들로 6·25 전쟁에 참전해 전사했다.
北 한류열풍 막기 위해 남한 노래·창법 금지
공개된 109상무 문건에는 ‘음성자료’라는 목차를 따로 만들어 ‘괴뢰들의 노래, 외국노래, 만화음악, 괴뢰들의 창법 또는 이색적인 창법으로 형상한 노래’ 제목을 붙여 남한과 외부세계 음악을 금지시켰다. 이 안에는 모든 남한 노래와 북한 음악을 남한식 창법(북한 특유의 성악 창법이 아닌 남한에서 일반 대중가요에서 쓰이는 바이브레이션을 넣어 부르는 것)으로 부르는 음악이 들어 있다. 고려호텔 소속 여가수인 신은주의 노래 ‘고향의 달밤에’ ‘우리 수령님 모습’(남조선 창법)과 모란봉악단의 ‘내 심장의 목소리’ 등이 명시되어 있다. 또 30여 개의 출처가 불분명한 노래와 북한 노래를 개사한 음악 91개 등의 목록을 만들어 첨부했다.
1994년에 발매된 김창남의 ‘선녀와 나무꾼’은 김영삼 대통령을 비하하기 위해 북한 당국이 노래 가사를 바꿔 DVD로 보급하기까지 했다. 북한 북극성메아리악단(북한 대남방송사)이 남한 가수로 위장해 대통령을 비방한 것처럼 제작했다. 원곡의 “하늘과 땅 사이에 꽃비가 내리던 날, 어느 골짜기 숲을~”이란 가사를 “청와대 김서방님 골이 쑥 빠졌당께. 딸라에 미쳐 엔에 녹아~”로 바꿔 부른다. 남한이 미국 사대주의로 망했다는 것을 선전하자는 차원이었지만, 주민들은 노래의 김서방이란 표현을 김일성, 김정일을 염두에 두고 불러 오히려 역효과를 낳았다는 후문이다. 당국은 2006년 들어 ‘선녀와 나무꾼’ DVD에 대한 수거 지시를 내렸다.
북한 정권은 한류열풍을 막기 위해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처벌을 한다. 지난 3월 22일 북한 북부 양강도 삼수군에서 16~17세 청소년 6명이 한국 가요를 듣고 춤춘 혐의로 공개 재판을 받았다는 보도가 일본 매체에 나오기도 했다. 이 중 4명은 ‘반국가 음모죄’로 노동단련형 1년을 선고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2명은 죄목과 형량이 불분명하다. 이 6명은 공개 재판이 끝난 뒤 모두 교화소에 수감됐다고 일본 매체는 전했다. 노동단련형이란 비교적 가벼운 죄를 저지른 사람을 6개월~1년가량 노역에 처하는 형벌이다. 한국의 ‘징역’에 해당하지만 실제 노동 강도와 수감자 처우는 “강제 노동에 가깝다”는 탈북자 증언이 많다. 양강도 삼수군은 압록강과 가까운 국경 지대로 이번에 재판을 받은 청소년 6명은 한국 가요 약 50곡을 듣고 춤춘 뒤 USB메모리에 복사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이 재판이 열린 지 열흘이 지난 이달 1일과 3일 평양에서는 걸그룹 레드벨벳 등 한국 대중음악 가수 11개 팀의 공연이 열렸다. 김정은 부부도 1차 공연을 관람했다. 북한 당국은 해외 거주 경험이 있거나 서양 음악에 익숙한 30대 당원들을 주로 동원해 객석을 채운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20~30대 문화 바꿔버린 한류
특히 최근 들어 남한 노래와 개사한 노래들이 군부대 내 군인들도 수첩에 적어 다닌다는 보고를 받은 김정은이 대로했다고 알려진 바 있다. 이를 단속하기 위해 북한 군 총참모부와 총정치국, 인민군보위국이 합동으로 109상무를 구성해 예하부대들을 대상으로 검열을 진행하고 있다.
한류가 북한에 확산된 것은 1990년대 말부터다. 북한이 경제난을 겪고 있던 시기 일명 ‘고난의 행군’ 시절 한류는 북한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당시엔 태진아, 설운도, 남진 등이 부른 트로트가 유행이었다. 하지만 2000년 중반에 들어서면서 발라드, 아이돌, 걸그룹의 노래가 큰 인기를 끌며 북한의 20~30대 문화를 바꿔 놓았다. 인기 가수도 바뀌었다. 북한 청년들에게 인기 많은 발라드 가수는 백지영, 거미, 이승철, 김범수, 조성모, 김건모 등이다. 아이돌·걸그룹 중에는 빅뱅, 동방신기, 소녀시대, 원더걸스 등이 최고의 인기다.
이 밖에도 사진과 그림도 통제하고 있다. 자료에 보면 ‘색정(야한)적인 내용의 그림’ ‘이색적인 내용이나 글이 편집되어 있는 그림 자료’(립체그림을 비롯한 다른 나라 미술작품) ‘자본주의 나라의 문화가 반영되어 있는 각종 사진, 풍경, 상표’ ‘태극기, 일장기, 미국기발(성조기)이 편집되어 있는 그림’ ‘외국인들의 옷차림과 몸차림을 형상한 사진, 그림’ ‘미신적이며 종교적인 색채가 반영된 그림’ ‘사진을 망탕(막) 찍어 가공처리하거나 인쇄하지 말 것’ ‘일부 체계들에서 화면보호기에 이색적인 그림이 들어 있음으로 지우고 리용하던지, 다른 체계를 설정하도록 할 것’ 등이 포함되어 있다.
상표와 상품에도 금지 품목이 있다. ‘례배당(예배당) 그림을 비롯하여 이색적이며 불순한 내용의 그림과 글이 있는 건재품을 비롯한 상품’ ‘우리 나라를 북과 남으로 갈라서 표기한 중국산 지구의(지구본)를 비롯하여 판매 금지된 상품’ ‘출판검열국 79호실의 검열을 받지 않은 괴뢰 및 다른 나라 상표와 위조한 상표가 붙은 상품’ ‘색정적인 내용의 그림·상표가, 정치적으로 모호한 내용의 글이 씌어져 있는 여러 가지 형태의 상품’ ‘진바지, 진치마’ ‘외국 글자가 란잡한 피복류’ ‘몸매가 지나치게 드러나 보이는 의복류’ ‘가정들에 붙여 놓은 외국 풍경의 중국산 그림’ ‘이색적인 음성이 울리는 놀이감 손전화기’ 등이 있다.
앞에선 이재용 부회장 환영… 주민들에게 ‘SAMSUNG’ 제품 쓰지 말라
흥미로운 점은 휴대폰 관련이다. ‘손전화기’(휴대폰) 목록에는 ‘라지오(라디오)와 TV수신기능, 인터네트(인터넷) 접속기능이 있는 손전화기’ ‘괴뢰상표 《SAMSUNG》이 붙은 손전화기’가 금지 품목에 들어가 있다.
놀라운 사실이다. 김정일 집권 당시 북한의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은 남한의 삼성을 끌어들이는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했다고 한다. 이를 위해 1, 2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삼성 이건희 회장을 북한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건희 회장이 거절했다는 것이 고위 관계자의 전언이다.
그러나 2018년 평양 남북정상회담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당시 김정은은 이 부회장을 ‘부통령급’으로 대우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특별수행단의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이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후일담을 공개하면서 알려졌다. “이번 평양 회담에서 김 위원장은 물론 모든 (북한) 고위급 간부들이 이재용 부회장을 부통령처럼 대접하더라”고 했다.
마지막 날 백두산 인근 삼지연초대소 오찬에서는 우리 측 인사들이 “작별의 술잔을 건네겠다”고 해서 김정은 위원장과 술잔을 주고받았는데, 이 부회장도 포함됐다고 한다. 특히 방북 첫날 리용남 내각부총리와 만나는 자리에 배석한 황호영 금강산국제관광특구 지도국장이 이 부회장과 악수하면서 “우리가 꼭 오시라고 말씀드렸다”라고 했다. 북측이 이 부회장 등을 보고 싶어했다는 말이 나오자 청와대가 두 차례나 극구 부인했다. 경제계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이 이 부회장을 만나고 싶어했을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북한 주민 일부만 시청 가능한 외국어 영상물
북한은 겉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부통령급’의 환대를 해 주었지만 내부에서는 삼성 휴대폰, 가전제품 등을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 이에 대해 2016년 탈북한 태영호 전 주 영국 북한공사도 증언한 바가 있다. 2015년 김정은은 북한에서 한국제품, 특히 삼성이 인기가 많다는 사실을 알고 “삼성 제품을 절대 쓰지 말라”고 지시를 내리는 한편 삼성 제품을 회수하기도 했다.
북한 일반 주민들에게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교육 목적을 위한 영어, 일본어, 체육 관련 동영상 목록도 자료에 포함되어 있다. ‘최신영어 배우기 《New English》(음성만 리용)’, ‘현대영어 배우기 《Family Album》(음성만 리용)’, ‘쉽게 배울 수 있는 일본어회화’, ‘《탁구 배우기》 《배구 배우기》와 같은 체육과 관련한 외국 다매체편집물도 원칙적으로는 출판검열국의 승인을 받은 것에 한해서만 리용할 수 있음’ 등이다.
북한 국가대표급 축구선수로 활동하다 탈북한 A씨는 “우리의 프로구단 격인 평양의 체육선수단에는 영상자료실이라는 것이 있다. 이곳에 가면 세계 각종 경기 영상들이 있다”며 “어릴 때부터 프리미어리그, 세리에A 경기들을 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물론 내부에서만 볼 수 있다. 만약 외부에 공개된 것이 적발되면 해당 선수에게 처벌이 따른다”고 증언했다.
특히 외국어 교육용으로 일부 고등학생, 대학생에게만 공개되는 만화영화도 있다. 물론 모든 만화영화를 다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북한 영상제작 전문회사인 모란광명회사에서 수정 작업을 거친 영상만 가능하다. 목록에는 ‘사냥계절’ ‘멍멍이 이야기’ ‘네모를 찾아서’ ‘공주와 개구리’ ‘알라딘’ ‘요정 팅커벨’ ‘상어이야기’ ‘인어공주’ ‘라판젤’(라푼젤) 등 22개가 공개됐다.
지도층만 시청 가능한 북한 최고 존엄 관련 영화·영상
남한에도 공개된 바 있는 북한 기록영화(다큐멘터리) ‘위대한 선군조선의 어머님’도 비공개 녹화물로 지정됐다. 김정은의 친모 고용희 관련 영상이다. 영상에는 김정일 현지시찰 곳곳을 따라다니면서 내조를 했다고 한다. 또 방문하는 곳마다 어머니와 같은 사랑으로 따뜻이 보살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이 영상은 북한 주민들에게 공개되지 않고 내부 일부 지도층만 시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용희 출생지가 북한이 아니라 일본이라는 것이 첫 번째 이유다. 선군조선의 어머니가 북한 땅이 아닌 일본 출신이라는 것이 주민들에게 알려져서는 안 된다. 또 고용희는 정실부인이 아니다. 김정일은 생전 여러 여성들과 동거를 했다. 공식적은 아니지만 암살된 김정남의 모친인 성혜림이 첫째 부인이다. 이런 이유로 해당 영상은 제작을 마치고도 공개할 수 없다.
세상에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사망한 김정일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도 있다. 김정일 우상화를 위해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영상은 있지만 영화는 이것이 처음이다. 〈조선의 장군〉이라는 제목의 영화다. 김정일을 특수분장한 배우로 시험편을 찍었지만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특히 ‘위대한 장군님의 회상록 〈민족의 어버이를 회고하여〉도 비공개했다. 이는 김정일이 자신의 아버지인 김일성을 회상하는 기록영화이다. 하지만 이 영상이 왜 비공개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또 음란영상물 제작으로 공개 처형된 은하수관현악단 가수들의 영상도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
이 밖에 ‘인민군 3차 격술경기대회를 촬영한 록화물’ ‘목란광명회사에서 한심하게 제작하여 보급한 화면노래반주곡집’ ‘군사록화물 〈전쟁에서 특공대의 역할〉’ ‘보위사업참고자료 〈테로는 계속된다〉’ ‘실습작영화 〈돌생일〉’ ‘〈평양국제프로레스링경기대회〉’ 등이 나열되어 있다.
이에 대해 한 고위 탈북자는 “이 영상물들은 주민들에게 보여주려고 만든 것이 아니라 간부들 교육용”이라며 “영상에는 주민들이 절대로 봐서는 안 되는 내부 비밀들이 많이 내포되어 있다”고 말했다. 이같이 북한 당국은 주민 교육용과 간부들을 교육시키는 영상을 선별 제작해 보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에도 내부 비밀을 영상에 담아 드라마로 제작했다 감독과 작가는 처형되고 영화는 상영금지당했다. 바로 ‘이름 없는 영웅들’이다. 이 드라마는 과거 러시아(구소련)와 독일 전쟁 당시 러시아 첩자들이 독일 군 수뇌부에 침투해 첩보활동을 하는 내용을 담은 ‘17일 동안에 있은 일’을 모방한 것이다. 러시아 드라마를 본 김일성은 비슷한 영상을 제작할 것을 지시했다. 그래서 남한에서 활동하며 주요 정보를 북한으로 보낸 남파 공작원에 대한 드라마가 만들어졌다. 이 드라마가 문제가 됐던 것은 북한 당국의 정보 관계자가 작가에게 제공해서는 안 될 비밀을 줬고, 작가는 그대로 드라마에 녹였다. 더 큰 문제가 발생했다. 그 정보를 통해 남한 정보 당국은 남파되어 활동하던 북한 공작원들을 다수 색출해 냈다. 이게 북한에 알려지자 드라마 제작을 중단했고, 해당 관계자들을 처벌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숙청당한 장성택 관련자 영화 회수 조치
자료에는 금지 영상물로 장성택 흔적 지우기와 북한 정권에 의해 숙청당한 이들이 등장하는 영상과 북한에 의해 납치되었던 신상옥 감독이 제작한 영화도 들어 있다. 먼저 장성택 관련해선 ‘장성택역적의 여독(흔적)청산과 관련하여 회수하여야 할 전자다매체 목록(화면음악도 포함)’이라는 제목으로 북한에서 인기리 방영되었던 ‘줄기는 뿌리에서 자란다’ ‘대홍단 책임비서’ ‘민족과 운명(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밀림이 설레인다’ ‘국경관문’ ‘처녀 사격 선수들’ 등 17개가 포함되어 있다. 여기에 공통점이 있다. 이 드라마에 출연했던 남자 주인공 최웅철이 장성택의 조카사위다. 또 화면음악에는 북한이 자랑하는 평양냉면 노래를 포함해 150여 곡의 화면을 삭제했다.
최웅철은 1990년대와 2000년대 북한 영화계에서 활동한 배우다. 스무 편 넘는 영화에서 주·조연으로 활약한 최웅철은 출세작 〈대홍단 책임비서〉란 영화를 통해 북한 영화계 최고의 스타로 거듭났다. 미남형일 뿐만 아니라 실력 면에서도 다재다능한 최웅철은 당시 북한의 젊은 여성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런 최웅철에게 또 다른 의미에서 ‘기회’가 찾아온 것은 1990년대 장성택 가문에 의해서였다. 장성택의 조카이자 장성우 전 대장(장성택의 친형, 1988년까지 군 총참모부 정찰국장으로 재직)의 딸이 바로 자신의 남편감으로 최웅철을 지목한 것이다. 당시 최웅철은 동료 여배우였던 ‘광옥’과 약혼한 사이였고, 광옥은 임신 상태(이후 광옥은 최웅철의 아들을 출산했으며, 최웅철은 죽기 전까지 비공식적으로 이 아이를 보살폈다)였다. 하지만 최웅철은 결국 장성택의 조카와 부부의 연을 맺게 된다. 특히 두 사람의 결혼을 적극 주선한 사람은 김정일의 친동생이자 장성택의 부인이었던 김경희였다고 한다.
김정일 생전에 가장 아끼는 배우라고 알려진 홍영희 관련 영화도 삭제·회수 리스트에 포함됐다. 고위 탈북자의 증언에 따르면 “홍영희는 김정일의 여자로 불릴 정도로 큰 사랑을 받았다”고 말했다. 자료에 보면 ‘역적들과 그 관련자들의 낯짝이 비쳐지는 영화, TV극’이라는 제목으로 ‘사랑의 거리’ ‘먼 훗날의 나의 모습’ ‘철령의 대대장’ ‘붉은 소금’ ‘한 녀학생의 일기’ ‘높이 나는 새’ ‘시대는 축복한다’ ‘흰 연기’ ‘학생만경대 앞으로’ 등 27편의 영화와 7편의 TV극이 포함되어 있다. 홍영희 관련 작품은 ‘사랑의 거리’ ‘은비녀’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화면을 삭제하여야 할 화면음악’ 목록에는 ‘기쁨의 노래 안고 함께 가리라’ ‘운명의 쪽배’ ‘아 내조국’ ‘생이란 무엇인가’ ‘도시처녀 시집와요’ ‘축복하노라’ ‘황금나무 능금나무 산에 심었어’ ‘길동무’ ‘내 운명 지켜준 어머니 당이여’ ‘내 나라 노래하세’ ‘다시 만납시다’ ‘나의 사랑 나의 행복’ 등 30개가 뮤직비디오에서 화면을 삭제해야 한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 장성택과 그 관련 인물들 그리고 금지된 영화·드라마 OST다.
북한 대남방송사 ‘북극성메아리악단’ 노래 금지
북극성메아리악단은 북한의 대남방송을 전문으로 하는 혼성 7인조 그룹이다. 남성 2명과 여성 5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처음 북한에서 얼굴 없는 가수로 활동했다. 북극성메아리악단의 임무는 남한 노래를 북한 가사로 개사해 라디오를 통해 다시 남한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노래 창법도 북한이 아닌 남한 가수들의 창법으로 노래를 불렀다. 사실상 현재 북한 주민들이 부르고 있는 남한 노래 멜로디와 창법 등을 이들이 유포시켰다고 볼 수 있다. 처음 남한 멜로디라는 것이 주민들에게 공개됐을 때 북한 당국은 “남한 주민들이 북한을 흠모하던 나머지 우리의 노래를 가져다 자신들의 가사를 붙여 부르고 있다”고 선전했다.
북한은 북극성메아리악단이 개사해 부르던 남한 가수 신형원의 ‘서울에서 평양까지’, 안치환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김송희 ‘통일 차표팝니다’ 등 56곡을 금지했다.⊙
《월간조선》이 단독 입수한 북한 ‘109상무’(비상설 조직을 뜻함) 내부 자료를 보면 이 같은 사실이 잘 드러나 있다. 그동안 일부 언론을 통해 북한 주민들에게 금지된 영화와 노래 등 목록은 공개된 바 있지만 체계적으로 만들어진 종합문서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김정은 시대 들어서 북한 주민들에 대한 사상교육을 강화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문건에 보면 109상무가 주민들을 대상으로 남한 영화나 드라마뿐만 아니라 내부에서 제작된 영상물 중에서도 반체제 인물로 숙청된 장성택과 현영철 등과 관련된 인물들이 출연하는 영화·드라마들의 시청을 금지하고, 회수·삭제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다. 이 밖에도 주민들이 알아서는 안 될 김정은의 어머니인 고용희 관련 영상물, 김정일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음란비디오 촬영으로 구설수에 올랐던 은하수관현악단 영상, 북한 모란광명회사에서 제작한 화면노래반주곡집(뮤직비디오) 등이 포함되어 있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일명 ‘109그루빠’라고 불리는 109상무는 북한정권이 영상물과 불법 출판물, 라디오와 녹화기 단속을 목적으로 2004년 2월에 조직된 사상, 미디어 통제검열조직이다. 노동당 선전선동부가 책임지고 여기에 검찰소와 보위부, 보안성이 합류하여 중앙과 지방에 조직된 비상설기구이다. 사실상 상설기구이나 비상설기구라고 부르는 이유는 해당 시기마다 조직의 명칭을 바꾸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에 테이프식의 비디오로부터 시작된 비공개 한국영화 보급이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VOD 보급으로 북한주민들 속에서 활성화하자 북한정권이 ‘황색바람’을 막는다면서 조직된 109상무는 과거 김정일 시대에도 아무런 근거 없이 가정집들에 들이닥쳐 모조리 뒤지고 난탕을 쳐 주민들의 원성이 높았었다. 그런데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서 109상무의 검열은 더 강화되고 있다. 최근 대한민국의 드라마와 영화, K-POP음악이 북한주민들과 청소년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109상무는 북한주민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밖에도 북한에서 제작 유포된 영상도 김정은 시대 들어와 선별적으로 단속하고 있다.
“남한 공연 보고 가슴 벅찼다”던 김정은, 뒤로는 주민통제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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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은 4월 1일 동평양대극장에서 열린 남측 예술단 공연 ‘봄이 온다ʼ를 관람한 뒤 남측 예술단 출연자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조선중앙방송 캡처 |
하지만 김정은은 4월 평양을 방문한 남측 가수들의 공연을 관람한 뒤 “우리 인민들이 남측의 대중예술을 깊이 이해하고 진심으로 환호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벅차고 감동을 금할 수 없었다”며 짧은 기간에 훌륭한 공연을 준비해 온 남측 공연단에 감사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남한 예술단이 평양을 방문해 다양한 공연을 선보인 지난 4월에도 북한 내부에서는 여전히 남한 영화와 드라마 단속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정통한 대북 소식통은 “남한 가수들이 평양을 방문한 후에도 북한에서는 남한 영화나 드라마에 대한 통제는 더욱 심해졌다”며 “이에 대해 북한 주민들은 왜 남한 가수들 영상은 보여주면서 영화나 드라마를 보지 못하게 하는지 불만이 많다”고 말했다.
반면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구소련), 동유럽 국가에서 제작된 영상물들은 방영하고 있다. 과거에는 체제나 이념을 선전하는 내용이나 ‘홍루몽’, ‘서유기’와 같은 고전을 소재로 한 영화, 드라마가 대부분이었지만 점차 서민들의 삶과 애정, 갈등을 포함한 현실적인 내용의 중국 드라마들도 방영되고 있다. 2008년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첩보물인 ‘잠복’, ‘흉계’ 등의 드라마가 북한 TV에서 방영됐다. 북한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에 주연으로 출연한 중국 여배우 류자(劉佳)는 북한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 ‘중국 경찰의 대명사’가 됐고 초청을 받아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중국 드라마 ‘모안영’이 북한에 방영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모안영은 마오쩌둥의 아들로 6·25 전쟁에 참전해 전사했다.
北 한류열풍 막기 위해 남한 노래·창법 금지
공개된 109상무 문건에는 ‘음성자료’라는 목차를 따로 만들어 ‘괴뢰들의 노래, 외국노래, 만화음악, 괴뢰들의 창법 또는 이색적인 창법으로 형상한 노래’ 제목을 붙여 남한과 외부세계 음악을 금지시켰다. 이 안에는 모든 남한 노래와 북한 음악을 남한식 창법(북한 특유의 성악 창법이 아닌 남한에서 일반 대중가요에서 쓰이는 바이브레이션을 넣어 부르는 것)으로 부르는 음악이 들어 있다. 고려호텔 소속 여가수인 신은주의 노래 ‘고향의 달밤에’ ‘우리 수령님 모습’(남조선 창법)과 모란봉악단의 ‘내 심장의 목소리’ 등이 명시되어 있다. 또 30여 개의 출처가 불분명한 노래와 북한 노래를 개사한 음악 91개 등의 목록을 만들어 첨부했다.
1994년에 발매된 김창남의 ‘선녀와 나무꾼’은 김영삼 대통령을 비하하기 위해 북한 당국이 노래 가사를 바꿔 DVD로 보급하기까지 했다. 북한 북극성메아리악단(북한 대남방송사)이 남한 가수로 위장해 대통령을 비방한 것처럼 제작했다. 원곡의 “하늘과 땅 사이에 꽃비가 내리던 날, 어느 골짜기 숲을~”이란 가사를 “청와대 김서방님 골이 쑥 빠졌당께. 딸라에 미쳐 엔에 녹아~”로 바꿔 부른다. 남한이 미국 사대주의로 망했다는 것을 선전하자는 차원이었지만, 주민들은 노래의 김서방이란 표현을 김일성, 김정일을 염두에 두고 불러 오히려 역효과를 낳았다는 후문이다. 당국은 2006년 들어 ‘선녀와 나무꾼’ DVD에 대한 수거 지시를 내렸다.
북한 정권은 한류열풍을 막기 위해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처벌을 한다. 지난 3월 22일 북한 북부 양강도 삼수군에서 16~17세 청소년 6명이 한국 가요를 듣고 춤춘 혐의로 공개 재판을 받았다는 보도가 일본 매체에 나오기도 했다. 이 중 4명은 ‘반국가 음모죄’로 노동단련형 1년을 선고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2명은 죄목과 형량이 불분명하다. 이 6명은 공개 재판이 끝난 뒤 모두 교화소에 수감됐다고 일본 매체는 전했다. 노동단련형이란 비교적 가벼운 죄를 저지른 사람을 6개월~1년가량 노역에 처하는 형벌이다. 한국의 ‘징역’에 해당하지만 실제 노동 강도와 수감자 처우는 “강제 노동에 가깝다”는 탈북자 증언이 많다. 양강도 삼수군은 압록강과 가까운 국경 지대로 이번에 재판을 받은 청소년 6명은 한국 가요 약 50곡을 듣고 춤춘 뒤 USB메모리에 복사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이 재판이 열린 지 열흘이 지난 이달 1일과 3일 평양에서는 걸그룹 레드벨벳 등 한국 대중음악 가수 11개 팀의 공연이 열렸다. 김정은 부부도 1차 공연을 관람했다. 북한 당국은 해외 거주 경험이 있거나 서양 음악에 익숙한 30대 당원들을 주로 동원해 객석을 채운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20~30대 문화 바꿔버린 한류
특히 최근 들어 남한 노래와 개사한 노래들이 군부대 내 군인들도 수첩에 적어 다닌다는 보고를 받은 김정은이 대로했다고 알려진 바 있다. 이를 단속하기 위해 북한 군 총참모부와 총정치국, 인민군보위국이 합동으로 109상무를 구성해 예하부대들을 대상으로 검열을 진행하고 있다.
한류가 북한에 확산된 것은 1990년대 말부터다. 북한이 경제난을 겪고 있던 시기 일명 ‘고난의 행군’ 시절 한류는 북한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당시엔 태진아, 설운도, 남진 등이 부른 트로트가 유행이었다. 하지만 2000년 중반에 들어서면서 발라드, 아이돌, 걸그룹의 노래가 큰 인기를 끌며 북한의 20~30대 문화를 바꿔 놓았다. 인기 가수도 바뀌었다. 북한 청년들에게 인기 많은 발라드 가수는 백지영, 거미, 이승철, 김범수, 조성모, 김건모 등이다. 아이돌·걸그룹 중에는 빅뱅, 동방신기, 소녀시대, 원더걸스 등이 최고의 인기다.
이 밖에도 사진과 그림도 통제하고 있다. 자료에 보면 ‘색정(야한)적인 내용의 그림’ ‘이색적인 내용이나 글이 편집되어 있는 그림 자료’(립체그림을 비롯한 다른 나라 미술작품) ‘자본주의 나라의 문화가 반영되어 있는 각종 사진, 풍경, 상표’ ‘태극기, 일장기, 미국기발(성조기)이 편집되어 있는 그림’ ‘외국인들의 옷차림과 몸차림을 형상한 사진, 그림’ ‘미신적이며 종교적인 색채가 반영된 그림’ ‘사진을 망탕(막) 찍어 가공처리하거나 인쇄하지 말 것’ ‘일부 체계들에서 화면보호기에 이색적인 그림이 들어 있음으로 지우고 리용하던지, 다른 체계를 설정하도록 할 것’ 등이 포함되어 있다.
상표와 상품에도 금지 품목이 있다. ‘례배당(예배당) 그림을 비롯하여 이색적이며 불순한 내용의 그림과 글이 있는 건재품을 비롯한 상품’ ‘우리 나라를 북과 남으로 갈라서 표기한 중국산 지구의(지구본)를 비롯하여 판매 금지된 상품’ ‘출판검열국 79호실의 검열을 받지 않은 괴뢰 및 다른 나라 상표와 위조한 상표가 붙은 상품’ ‘색정적인 내용의 그림·상표가, 정치적으로 모호한 내용의 글이 씌어져 있는 여러 가지 형태의 상품’ ‘진바지, 진치마’ ‘외국 글자가 란잡한 피복류’ ‘몸매가 지나치게 드러나 보이는 의복류’ ‘가정들에 붙여 놓은 외국 풍경의 중국산 그림’ ‘이색적인 음성이 울리는 놀이감 손전화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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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단에 포함된 경제인들이 9월 18일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리용남 북한 내각부총리 면담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
놀라운 사실이다. 김정일 집권 당시 북한의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은 남한의 삼성을 끌어들이는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했다고 한다. 이를 위해 1, 2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삼성 이건희 회장을 북한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건희 회장이 거절했다는 것이 고위 관계자의 전언이다.
그러나 2018년 평양 남북정상회담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당시 김정은은 이 부회장을 ‘부통령급’으로 대우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특별수행단의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이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후일담을 공개하면서 알려졌다. “이번 평양 회담에서 김 위원장은 물론 모든 (북한) 고위급 간부들이 이재용 부회장을 부통령처럼 대접하더라”고 했다.
마지막 날 백두산 인근 삼지연초대소 오찬에서는 우리 측 인사들이 “작별의 술잔을 건네겠다”고 해서 김정은 위원장과 술잔을 주고받았는데, 이 부회장도 포함됐다고 한다. 특히 방북 첫날 리용남 내각부총리와 만나는 자리에 배석한 황호영 금강산국제관광특구 지도국장이 이 부회장과 악수하면서 “우리가 꼭 오시라고 말씀드렸다”라고 했다. 북측이 이 부회장 등을 보고 싶어했다는 말이 나오자 청와대가 두 차례나 극구 부인했다. 경제계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이 이 부회장을 만나고 싶어했을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북한 주민 일부만 시청 가능한 외국어 영상물
북한은 겉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부통령급’의 환대를 해 주었지만 내부에서는 삼성 휴대폰, 가전제품 등을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 이에 대해 2016년 탈북한 태영호 전 주 영국 북한공사도 증언한 바가 있다. 2015년 김정은은 북한에서 한국제품, 특히 삼성이 인기가 많다는 사실을 알고 “삼성 제품을 절대 쓰지 말라”고 지시를 내리는 한편 삼성 제품을 회수하기도 했다.
북한 일반 주민들에게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교육 목적을 위한 영어, 일본어, 체육 관련 동영상 목록도 자료에 포함되어 있다. ‘최신영어 배우기 《New English》(음성만 리용)’, ‘현대영어 배우기 《Family Album》(음성만 리용)’, ‘쉽게 배울 수 있는 일본어회화’, ‘《탁구 배우기》 《배구 배우기》와 같은 체육과 관련한 외국 다매체편집물도 원칙적으로는 출판검열국의 승인을 받은 것에 한해서만 리용할 수 있음’ 등이다.
북한 국가대표급 축구선수로 활동하다 탈북한 A씨는 “우리의 프로구단 격인 평양의 체육선수단에는 영상자료실이라는 것이 있다. 이곳에 가면 세계 각종 경기 영상들이 있다”며 “어릴 때부터 프리미어리그, 세리에A 경기들을 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물론 내부에서만 볼 수 있다. 만약 외부에 공개된 것이 적발되면 해당 선수에게 처벌이 따른다”고 증언했다.
특히 외국어 교육용으로 일부 고등학생, 대학생에게만 공개되는 만화영화도 있다. 물론 모든 만화영화를 다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북한 영상제작 전문회사인 모란광명회사에서 수정 작업을 거친 영상만 가능하다. 목록에는 ‘사냥계절’ ‘멍멍이 이야기’ ‘네모를 찾아서’ ‘공주와 개구리’ ‘알라딘’ ‘요정 팅커벨’ ‘상어이야기’ ‘인어공주’ ‘라판젤’(라푼젤) 등 22개가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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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생모인 고용희. 사진=인터넷 캡처 |
하지만 이 영상은 북한 주민들에게 공개되지 않고 내부 일부 지도층만 시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용희 출생지가 북한이 아니라 일본이라는 것이 첫 번째 이유다. 선군조선의 어머니가 북한 땅이 아닌 일본 출신이라는 것이 주민들에게 알려져서는 안 된다. 또 고용희는 정실부인이 아니다. 김정일은 생전 여러 여성들과 동거를 했다. 공식적은 아니지만 암살된 김정남의 모친인 성혜림이 첫째 부인이다. 이런 이유로 해당 영상은 제작을 마치고도 공개할 수 없다.
세상에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사망한 김정일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도 있다. 김정일 우상화를 위해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영상은 있지만 영화는 이것이 처음이다. 〈조선의 장군〉이라는 제목의 영화다. 김정일을 특수분장한 배우로 시험편을 찍었지만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특히 ‘위대한 장군님의 회상록 〈민족의 어버이를 회고하여〉도 비공개했다. 이는 김정일이 자신의 아버지인 김일성을 회상하는 기록영화이다. 하지만 이 영상이 왜 비공개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또 음란영상물 제작으로 공개 처형된 은하수관현악단 가수들의 영상도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
이 밖에 ‘인민군 3차 격술경기대회를 촬영한 록화물’ ‘목란광명회사에서 한심하게 제작하여 보급한 화면노래반주곡집’ ‘군사록화물 〈전쟁에서 특공대의 역할〉’ ‘보위사업참고자료 〈테로는 계속된다〉’ ‘실습작영화 〈돌생일〉’ ‘〈평양국제프로레스링경기대회〉’ 등이 나열되어 있다.
이에 대해 한 고위 탈북자는 “이 영상물들은 주민들에게 보여주려고 만든 것이 아니라 간부들 교육용”이라며 “영상에는 주민들이 절대로 봐서는 안 되는 내부 비밀들이 많이 내포되어 있다”고 말했다. 이같이 북한 당국은 주민 교육용과 간부들을 교육시키는 영상을 선별 제작해 보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에도 내부 비밀을 영상에 담아 드라마로 제작했다 감독과 작가는 처형되고 영화는 상영금지당했다. 바로 ‘이름 없는 영웅들’이다. 이 드라마는 과거 러시아(구소련)와 독일 전쟁 당시 러시아 첩자들이 독일 군 수뇌부에 침투해 첩보활동을 하는 내용을 담은 ‘17일 동안에 있은 일’을 모방한 것이다. 러시아 드라마를 본 김일성은 비슷한 영상을 제작할 것을 지시했다. 그래서 남한에서 활동하며 주요 정보를 북한으로 보낸 남파 공작원에 대한 드라마가 만들어졌다. 이 드라마가 문제가 됐던 것은 북한 당국의 정보 관계자가 작가에게 제공해서는 안 될 비밀을 줬고, 작가는 그대로 드라마에 녹였다. 더 큰 문제가 발생했다. 그 정보를 통해 남한 정보 당국은 남파되어 활동하던 북한 공작원들을 다수 색출해 냈다. 이게 북한에 알려지자 드라마 제작을 중단했고, 해당 관계자들을 처벌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숙청당한 장성택 관련자 영화 회수 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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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이 2013년 4월 25일 평양 금수산태양궁전에서 열린 인민군 창건 81주년 기념 열병행사를 지켜보면서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오른쪽)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조선중앙방송 캡처 |
최웅철은 1990년대와 2000년대 북한 영화계에서 활동한 배우다. 스무 편 넘는 영화에서 주·조연으로 활약한 최웅철은 출세작 〈대홍단 책임비서〉란 영화를 통해 북한 영화계 최고의 스타로 거듭났다. 미남형일 뿐만 아니라 실력 면에서도 다재다능한 최웅철은 당시 북한의 젊은 여성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런 최웅철에게 또 다른 의미에서 ‘기회’가 찾아온 것은 1990년대 장성택 가문에 의해서였다. 장성택의 조카이자 장성우 전 대장(장성택의 친형, 1988년까지 군 총참모부 정찰국장으로 재직)의 딸이 바로 자신의 남편감으로 최웅철을 지목한 것이다. 당시 최웅철은 동료 여배우였던 ‘광옥’과 약혼한 사이였고, 광옥은 임신 상태(이후 광옥은 최웅철의 아들을 출산했으며, 최웅철은 죽기 전까지 비공식적으로 이 아이를 보살폈다)였다. 하지만 최웅철은 결국 장성택의 조카와 부부의 연을 맺게 된다. 특히 두 사람의 결혼을 적극 주선한 사람은 김정일의 친동생이자 장성택의 부인이었던 김경희였다고 한다.
김정일 생전에 가장 아끼는 배우라고 알려진 홍영희 관련 영화도 삭제·회수 리스트에 포함됐다. 고위 탈북자의 증언에 따르면 “홍영희는 김정일의 여자로 불릴 정도로 큰 사랑을 받았다”고 말했다. 자료에 보면 ‘역적들과 그 관련자들의 낯짝이 비쳐지는 영화, TV극’이라는 제목으로 ‘사랑의 거리’ ‘먼 훗날의 나의 모습’ ‘철령의 대대장’ ‘붉은 소금’ ‘한 녀학생의 일기’ ‘높이 나는 새’ ‘시대는 축복한다’ ‘흰 연기’ ‘학생만경대 앞으로’ 등 27편의 영화와 7편의 TV극이 포함되어 있다. 홍영희 관련 작품은 ‘사랑의 거리’ ‘은비녀’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화면을 삭제하여야 할 화면음악’ 목록에는 ‘기쁨의 노래 안고 함께 가리라’ ‘운명의 쪽배’ ‘아 내조국’ ‘생이란 무엇인가’ ‘도시처녀 시집와요’ ‘축복하노라’ ‘황금나무 능금나무 산에 심었어’ ‘길동무’ ‘내 운명 지켜준 어머니 당이여’ ‘내 나라 노래하세’ ‘다시 만납시다’ ‘나의 사랑 나의 행복’ 등 30개가 뮤직비디오에서 화면을 삭제해야 한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 장성택과 그 관련 인물들 그리고 금지된 영화·드라마 OST다.
북한 대남방송사 ‘북극성메아리악단’ 노래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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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조선중앙TV는 2017년 7월 30일 북한 인민극장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4형’ 2차 시험발사 성공을 경축하는 모란봉악단, 공훈국가합창단의 합동공연이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사진=조선중앙방송 캡처 |
북한은 북극성메아리악단이 개사해 부르던 남한 가수 신형원의 ‘서울에서 평양까지’, 안치환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김송희 ‘통일 차표팝니다’ 등 56곡을 금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