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기자수첩

북한의 억지, 언제까지 용인해야 하나?

글 : 조성호  기자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지난 1월 9일 남북고위급회담이 열렸다. 남북은 3개 항으로 된 공동합의문도 내놓았다. 그러나 북한은 이러한 분위기에 또다시 찬물을 끼얹었다.
 
  회담 닷새 뒤인 14일 일본 ‘교도통신’은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 회담’의 조건으로 2016년 중국의 북한 음식점에서 집단 탈출한 여종업원들의 송환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여종업원들의 신병 인계를 조건으로 내건 북한의 행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북한의 ‘고약한’ 행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71년 이래 남과 북은 정치·군사·경제 분야 등에서 총 644번의 회담을 가졌다. 이 중 74번의 회담에서 합의문이 채택됐다. 11% 정도만 양측이 합의했고, 나머지는 결렬되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우리와의 회담뿐 아니라 다른 국가와의 회담에서도 결렬의 책임은 거의 북한에 있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1991년 5월, 일북(日北)수교회담 당시 북한은 일본에 전후(戰後) 45년 보상 등 ‘선(先)외교관계 설정’을 요구하고, (북한의) 핵사찰은 뒤로 돌릴 것을 제안했다. 이에 일본은 북한의 일본인 납치자 문제 해결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자 북한은 신경질적인 반응과 함께 이를 철회하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결국 일북수교회담은 결렬되고 말았다.
 
  1997년 9월 미국 뉴욕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4자회담이 열렸다. 이때도 북한은, ‘선(先)대북식량지원’과 ‘대북 경제제재 완화 약속’을 요구하며 ‘미북 평화협정 체결’과 ‘주한미군 지위 문제’를 의제에 포함시킬 것을 고집했다. 이 회담 역시 끝내 실패로 돌아갔다.
 
  1998년 4월 남북 당국자 간 회담에서도 북한은 남한의 이산가족면회소 설치 제안을 사실상 거절했다. 북한은 같은 달 20일 성명을 발표, “남측이 회담에서 시종일관 비료 제공 문제는 뒷전에 밀어놓고 비료 문제 밖의 정치 문제를 전제조건으로 들고나와 회담이 결렬되었다”고 강변했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고위급회담 이후 남북관계를 장밋빛으로 전망해 왔다. 북한의 ‘여종업원 송환 요구’로 우리 정부는 또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문재인 정부가 어떻게 대처할지 주목된다.⊙
조회 : 10072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201808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프리미엄결제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 마음챙김 명상 클래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