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이 리조시대냐 왜 어린 지도자는 木船 타고 다니는 것을 선전하느냐”
⊙ 러시아 무기도입 실패 후 “(김정은) 다 끓여 놓은 죽도 못 먹는다”고 비판
⊙ 고사포 아닌 AK소총 90발 사형
⊙ 김정은, 현영철 사형 직후 청년일꾼 역할 강조하는 勞作 발간
⊙ 러시아 무기도입 실패 후 “(김정은) 다 끓여 놓은 죽도 못 먹는다”고 비판
⊙ 고사포 아닌 AK소총 90발 사형
⊙ 김정은, 현영철 사형 직후 청년일꾼 역할 강조하는 勞作 발간
- 김정은 시대 최고 실세인 현영철은 지난 4월 30일 강건종합군관학교 사격장에서 즉결 처형됐다.
지난 4월 30일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강건종합군관학교 강당에서 ‘인민군 및 인민보안부 지휘관 회의’가 있었다. 리영길 총참모장, 김원·윤동현·리재일·조경철·박영식 총정치국 조직부국장 등 60여 명의 간부들과 인민무력부·총참모부 장성(장군) 120여 명 등이 모였다. 회의 준비가 끝나자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강당에 모습을 드러냈다. 황병서는 다짜고짜 이렇게 말했다.
“지금부터 반당종파분자의 반당, 반혁행위를 폭로하고 즉결 처형을 진행하겠다. 끌고 오라.” 황병서의 명령에 국가안전보위부원 2명은 처형할 인물을 끌고 나왔다. 강당 안에 적잖은 긴장감이 나돌았다. 끌려 나온 인물이 현영철이었기 때문이다.
현영철이 누구인가. 2006년부터 백두산 서쪽 북·중 국경지대를 담당하는 8군단장으로 복무하다 김정은이 후계자로 공식 등장한 2010년 9월 노동당대표자회의에서 대장 칭호와 함께 당 중앙위원에 임명된 실세 중의 실세 아닌가. 현영철은 2013년 5월 전방 부대 병사 3명의 귀순 사건과 경험 부족을 이유로 전방 5군단장(상장 별 3개)으로 좌천됐지만 1년여 만인 2014년 6월 인민무력부장(대장 별 4개·우리의 국방부장관 격)으로 승진,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후 그는 김정은의 공개 활동 수행 14회로 전체 순위에서 4위를 차지(2015년 조사)하는 등 김정은의 최측근으로 활동했다.
아무리 ‘장성택 학습효과(김일성 사위이자 김정은의 고모부로 북한의 이인자였지만 2013년 12월 12일 사형)’가 있다고 하더라도 현영철 같은 거물의 즉결 처형은 놀라운 일이었다.
황병서는 현영철을 즉결 처형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야기는 길었지만, 결론은 “최고 존엄 모독 및 훼손”이었다. 고위 탈북자의 이야기다.
“북한에서는 죄명이 최고 존엄 모독 및 훼손이면 즉결 처형합니다. 최고 존엄 모독 및 훼손죄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입니다. 즉결 처단할 인물에게 대부분 이런 죄를 뒤집어씌우지요. 장성택도 그렇지 않았습니까.”
처형 이유를 설명한 황병서는 회의 참석자들을 사격장으로 모이라고 했다. 그리고 곧바로 현영철의 사형을 집행했다.
“현영철 처형 직접 봤다”
‘현영철 처형’ 첩보를 지난 5월 초 입수한 국정원은 5월 12일 열린 박근혜 대통령 주재 외교안보장관회의에 보고했고, 다음 날인 13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이 같은 사실을 밝혔다. 이 자리에서 국정원은 현영철 처형 사유로 김정은에 대한 불만 표출과 태공(怠工·일을 게을리함) 등을 꼽았다. 국정원 보고가 사실이라면 현영철은 어떤 식으로 김정은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을까. 또 어떤 까닭으로 김정은의 눈에 임무를 소홀히 한 인물로 보였을까.
현영철 처형 이유를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북한의 당과 군을 잘 들여다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가 남(南)으로 넘어온 탈북자를 만났다. 그는 국정원이 ‘곧바로 알았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이른 시간에 ‘현영철 처형’ 첩보를 입수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국정원은 사람에게서 직접 수집한 정보인 휴민트(HUMINT·인적정보)와 통신감청 등을 통한 시긴트(SIGINT·통신정보), 인공위성 등 과학기술을 활용한 테킨트(TECHINT·기술정보) 등 다양한 경로를 활용하여 ‘현영철 처형’ 정보를 수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탈북자는 ‘처형 장면을 목격한 인사에게 들은 이야기’라며 현영철 처형 이유를 전했다.
그의 말이다.
“김정은이 목선(木船)을 타고 방어대를 시찰한 적이 있습니다. 현영철이 그 모습을 보고 ‘옛날 리조시대 왕들이 가마 타고 다니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 군인들이 물에 반쯤 잠길 때까지 목선을 미는 모습이 보기에 안 좋다. 어린 지도자는 왜 이런 것을 선전하느냐’고 비판했다고 합니다. 이 발언에 대한 보고를 받은 김정은은 예상대로 대로했죠. 현영철 숙청의 결정적 이유는 리조시대 발언 때문입니다.”
—김정은은 목선을 2012년, 2013년에 방어대를 시찰하는 데도 이용했습니다. 이 시기에 이조발언을 했다면 현영철은 어떻게 2014년 6월에 인민무력부장으로 승진한 것입니까.
“예전에 한 발언이 인민무력부장 승진 이후에 김정은 귀에 들어간 것이죠.”
그가 말을 이었다.
“참고로, 북한은 조선(북한에서는 리조로 명명)의 역사를 좋게 평가하지 않습니다. 북한 교과서를 보면 조선시대를 ‘리조 봉건국가’로 호칭하면서 성립과정을 다루지 않고 있지요. 김정은 입장에서는 자신을 그런 리조시대의 왕에 비유했으니 현영철에 대한 분노가 아주 컸을 것입니다.”
김정은은 2012년 8월 20일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 도발에 가담한 무도(茂島) 방어대를 목선을 타고 이동해 시찰했다. 7개월 뒤인 2013년 3월 12일 월내도(月乃島) 방어대를 시찰할 때도 바다에서 20명 정도가 탈 수 있는 목선을 이용했다.
당시 중앙통신, 조선중앙TV, 《로동신문》 등 북한 관용매체는 군인들이 김정은의 목선을 허리가 잠길 때까지 미는 영상과 사진을 각각 방영 게재하고 “그이께서 섬 방어대를 향하여 타고 가신 배가 27HP(마력-기자注)의 목선이라는 사실만 보아도 위대한 인간, 강철의 인간의 가슴속에 끓는 조국에 대한 사랑, 병사에 대한 사랑, 원수격멸의 용맹한 정신세계가 가슴을 쳐서 눈시울이 젖어 든다”며 이른바 김정은의 ‘목선 쇼’를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김정은이 목선을 이용해 무도, 월내도 방어대를 시찰한 것과 관련, 유성옥(55)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소장은 “그쪽 수심이 얕아 작은 배로만 접근할 수 있다. 하지만 화재에 취약해 소총 공격도 못 견뎌 낼 목선을 군용 선박으로 쓴다는 건 상식 밖이다. 아마도 (목선을 이용한 것은)김정은이 통 크고 대담한 지도자임을 부각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했다.
김광인 북한전략센터 소장도 “(김정은의) 담력을 과시하기 위한 계산된 연출”이라고 분석했다.
“어린 지도자 모시기가 힘들구나”
리조발언 이후 현영철 숙청을 벼르고 있던 김정은에게 또 다른 보고가 들어간다. 현영철이 다시 ‘최고 존엄’을 비판했다는 것이었다. 또다시 고위 탈북자의 설명이다.
“현영철은 처형 직전인 2015년 4월 13~20일 러시아를 방문했습니다. 러시아 무기 배치를 추진하기 위해서였지요.(홍콩 봉황위성 TV에 따르면 북한은 러시아 측에 지대공 미사일 시스템인 S-300을 물물교환 방식으로 구매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미 문건상으로는 합의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러시아 쪽에서 합의를 백지화했습니다. ‘김정은이 북한은 이미 첨단 무기를 다수 갖고 있어 미국도 제압할 수 있다고 과시하는데 굳이 우리가 지원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이후 현영철은 사석에서 실망감을 표시하며 김정은에 대해 ‘(김정은 때문에)다 끓여 놓은 죽도 못 먹었다. 어린 지도자를 모시기가 너무 힘들다’라고 투덜댔다고 합니다. 이 발언 역시 김정은에게 직보됐다더군요.”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현영철이 김정은을 어린 사람으로 자주 표현했다고 한다”며 “북한 사정에 정통한 탈북자들은 현영철이 (러시아 무기 배치 추진 실패 이후)‘어린 사람을 지도자로 모시고 일하려니 힘들다’는 취지의 말 등을 했으며 이와 같은 발언이 김정은에게 직보됐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국인 러시아 입장에선 북한과 핵 관련 이견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김정은은 현영철에게 러시아에 핵 관련 지지를 요구하는 동시에 무기 배치도 추진하라고 명령한 것 같다”며 “현영철이 이런 점을 답답해하며 김정은을 비판한 것이 보고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러시아 측의 주장대로 실제 김정은은 무기 자랑에 열을 올려 왔다. 지난 2012년 4월 KN-08 대륙간탄도미사일(사거리가 1만km 이상)을 처음 공개했고, 이후 핵무기를 이 미사일의 탄두에 장착할 정도로 소형화했다고 자랑해 왔다. “한미연합방위체계가 완전한 무용지물의 골동품이 됐다(《로동신문》)”고까지 했다.
러시아 관련 업무에 깊게 관여한 현영철의 숙청은 북·러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이다.
미 하원 외교위원회 전문위원을 지낸 데니스 P 핼핀(Dennis P. Halpin)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 연구원은 지난 5월 14일(현지시각)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은은 러시아 전승절을 맞아 모스크바 방문을 약속했지만 어겼고, 러시아를 방문하고 돌아온 군부 실력자를 곧바로 총살했다”며 “러시아의 눈에 김정은은 이상한 사람으로 비칠 것”이라고 했다. 이어 “김정은이 장성택을 처형하고 북·중 관계가 소원해진 것처럼 현영철을 숙청함에 따라 북·러 관계가 틀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청한 대북 전문가도 “현영철은 푸틴 대통령을 면담했던 인물인 만큼 러시아 입장에선 처형을 지시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괘씸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현영철은 지난해(2014년) 11월 러시아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만난 바 있다.
졸아서?
현영철이 김정은의 연설 도중 졸아서 처형당했다는 주장도 있다. 국내 주요 언론은 이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 보도했다. 실제 지난 4월 24~25일 열린 군 훈련일꾼대회에 참석한 현영철이 김정은의 연설 도중 조는 모습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로동신문》은 4월 26일 1면으로 훈련일꾼대회를 보도하면서 현 부장이 눈을 내리깐 모습이 담긴 사진을 내보냈다. 조는 것처럼 오해받을 수 있는 사진이었다.
국정원 관계자는 “김정은은 회의석상에서 조는 것에 대해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처벌한다”고 했다.
실제 최경성 특수군단장(11군단장)과 김영철 정찰총국장은 김정은의 경고를 받고도 졸았다는 이유로 각각 상장에서 소장으로, 대장에서 상장으로 강등됐다. 김정은의 이런 조치는 아무리 고위층이라 해도 최고 존엄인 자신의 권위를 무시하고 불손한 태도를 보이면 무자비하게 처형당할 수 있다는 공포심을 불어넣기 위한 의도로 볼 수 있다.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김정은이 왕자로 태어나 권력욕과 자존심이 누구보다 강하다”며 “누군가 이견을 제기하고 불량한 태도를 보이면 나이 어린 자신을 무시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숙청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영철의 경우 존 것보다는 김정은에 대한 비판 발언이 알려진 게 처형의 직접적인 이유라는 주장이 더욱 설득력 있다. 앞서 언급했지만 김정은은 이미 현영철의 리조발언을 보고받는 순간 그의 숙청을 마음먹었다. 남성욱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도 비슷한 분석을 내놨다.
“제가 추측할 때는 (현영철 숙청을 마음먹은 김정은이) 현영철이 모스크바로 떠난 시기(4월 13~20일)에 (숙청 밑작업이)이뤄졌다고 봅니다. 현영철이 모스크바로 떠나는 날 이미 그의 운명은 정해졌던 셈이죠.”
고위 탈북자는 “현영철이 졸았다는 사실이 보도되기 일주일 전인 4월 18일 김정은이 황병서 등 측근들과 함께 백두산에 올랐는데 그때 현영철 처리 문제를 논의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김정은은 2013년 말 장성택을 처형하기 보름 전인 2013년 11월 말 황병서·김원홍 등을 데리고 양강도 삼지연(三池淵)에서 대책회의를 가졌었다”고 했다.
“고사포 처형 아니다”
김정은 집권 이후 처형 방식은 날로 잔인하고 다양해지고 있다. 2012년 3월 북한 당국은 김정일 상중(喪中)에 술을 마신 김철 인민무력부 부부장을 박격포 사격으로 처형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소식통은 “‘반역자는 이 땅에 묻힐 곳이 없다. 머리카락 한 올까지 흔적을 없애라’는 김정은의 지침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2013년 말에는 장성택과 그의 핵심 측근 인사들이 고사포 등으로 처형된 뒤 화염방사기로 소각됐다는 관측이 나왔다.
정보 당국이 입수한 2014년 북한 내부 문건에도 ‘종파 놈들은 불줄기로 태우고 탱크로 짓뭉개 흔적을 없애 버리는 것이 군대와 인민의 외침’이라고 적혀 있다.
실제 북한인권위원회(HRNK)가 2014년 10월 공개한 북한 평양 인근의 강건종합군관학교에서 집행된 공개처형 장면을 살펴보면 종합군관학교의 넓은 공터의 한가운데 10여 개 타깃(target)이 일렬로 서 있고 반대편에는 ZPU-4 고사포 6대가 이를 향해 나란히 배열돼 있다.
미국 북한인권위원회(HRNK)의 그레그 스칼랴튜 사무총장은 “상업위성사진 분석업체인 ‘ASA(All Source Analysis)’의 조셉 버뮤데즈 박사가 분석한 결과 이는 고사포로 공개처형을 하는 장면”이라고 했다.
ZPU-4 고사포(대공기관포) 14.5mm는 중기관총 4정을 묶어 만든 것이다. 이 고사포는 수직으로 발사했을 때 1.4km 상공에 있는 목표물까지 맞힐 수 있고, 일반적인 대공사격을 할 때도 사정거리가 2km에 달한다.
이런 이유로 현영철도 고사포로 처형당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국정원도 국회 정보위원회에 “현영철은 수백 명의 군 간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양 순안구역에 있는 강건종합군관학교 사격장에서 고사포(대공기관포)로 총살됐다”고 보고했다. 인터넷에는 ‘현영철 처형장면’(나중에 밝혀진 바로, 이 영상의 주인공은 현영철이 아니고, 이슬람 무장세력 IS의 포로였다)이라며 어떤 인물이 고사포에 맞아 산산조각 나는 동영상도 돌았다. 현영철 고사포 처형은 기정사실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알려진 바와 달리 현영철은 고사포로 사형당하지 않았다. 고위 탈북자는 “사격장에서 처형을 목격한 관계자의 전언”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사격장에 현영철을 묶어 놓고 사형을 집행하는 인물이 ‘반당 반혁 분자 현영철을 향해 15발씩 정발 쏴!’라고 명령했고, 이후 6명의 군인이 한 명당 15발씩 90발을 현영철을 향해 쐈다고 합니다. 사격장에는 공포심을 자극하고,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중무장한 보위사령부 소속 군인들이 사방에 배치돼 있었고 운집한 장성들 사이사이에도 권총을 찬 보위부 지도원들이 깔렸었다고 들었습니다.
고사포로 처형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엉터리 이야기입니다. 90발을 맞았으니 걸레가 되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고사포로 죽였다는 얘기가 나온 것 같습니다.”
그가 말을 이었다.
“북한에서는 사형을 집행할 때 죄질에 따라 쏘는 총알 수가 다릅니다. 일반 공개처형은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3명의 군인이 각각 3발씩 총9발을 쏩니다. 공개처형이 아닌 경우에도 일반적으로 6명이 한 사람당 5발씩 총 30발 정도를 쏘는데 현영철과 같이 죄목이 무거우면 사수 한 명당 15발씩 90발을 쏩니다.”
현영철 후임에 박영식
김정은은 숙청한 현영철 후임에 박영식을 임명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7월 11일 평양에서 열린 북한 군사대표단과 라오스 고위 군사대표단의 회담 소식을 전하며 참가자 가운데 한 명인 박영식을 인민무력부장으로 소개했다. 북한 매체가 박영식의 인민무력부장 임명을 공식 확인한 것은 처음이다.
박영식은 2009년 4월 15일 김일성 생일을 맞으며 중장으로 승진했고, 지난해(2014년) 4월 군 총정치국 조직부국장에 오르며 상장으로 진급한 데 이어 현영철 숙청 이후인 지난달 6월 29일에는 대장으로 초고속 승진을 했다.
국정원에 따르면 김정은은 집권 이후 군 간부 40%를 교체했다. 주한미군사령부와 한미연합사령부, 유엔사가 지난 6월 2일 공동으로 발간한 《전략 다이제스트(Strategic Digest)》라는 책자를 보면 김정은이 자신의 나이와 비슷한 인물로 군 지도부 세대교체를 하고 있다고 나와 있다.
중국 단둥에서 탈북자단체인 NK지식인연대 관계자와 만난 평양의 한 간부는 “사실 김정은은 김정일 3년 탈상이 끝나고 나서는 바로 당과 군의 많은 고위직을 교체하고 재배치하기 시작했는데 대부분의 핵심 요직에 자신과 긴밀한 관계가 있는 젊은 인사들을 배치했다”고 김정은의 세대교체 움직임을 기정사실화했다.
이 간부는 “김일성고급당학교는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김정은 서기실에 직접 학습실을 꾸리고, 새로 발탁한 젊은 간부들에게 당 조직 건설과 경제 지휘, 군중 동원 등의 내용을 집중적으로 교육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뿐만 아니라 내각의 경제관리 요직에도 젊은 사람들을 배치하고 있다”며 “지난해 부총리로 임명된 임철웅(53)이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전임 부총리 강능수(85), 강석주(76), 조병주(73), 김인식(67), 전승훈(64) 등에 비하면 파격적 임용이다.
현영철 숙청을 세대교체 일환으로 포장?
NK지식인연대는 “김정은이 김정일 사망 후 ‘할배들’에게 둘러싸여 노이로제에 걸려 있다는 소문도 떠돌고 있다”면서 “김정은이 최근 노동당 간부들에게 하달한 친필 지시를 살펴보면 ‘나이 많은 간부들이 김정은의 부름을 받거나 김정은을 영접하게 되면 묻는 말에 짧고 명확하게 답변하며, 제 자랑을 늘어놓는 무모한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지시문에는 나이 많은 간부들의 입 냄새가 김정은의 건강과 기분에 나쁜 영향을 주기 때문에 만나기 전 반드시 양치를 해야 하며 직접 말씀을 드릴 때에는 손으로 입을 가리라는 등의 요구사항도 들어 있다.
공교롭게도 김정은은 현영철 숙청 직후 〈청년들을 고상한 정신과 미풍을 지닌 시대의 선구자들로 키워 낸 당조직들과 청년동맹조직들에게〉라는 제목의 노작(勞作)을 북한군과 주민들에게 배포했다. 《월간조선》이 단독 입수한 노작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청년들이 들끓어야 온 나라가 들끓고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혁명적 앙양이 일어난다는 당의 뜻을 받들고 중앙과 지방의 각급 당조직들과 청년동맹조직들에서는 위대한 수령님들의 귀중한 유산인 청년동맹을 강화하고 청년들이 아버지, 어머니 세대들처럼 청춘을 빛나게 살도록 하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하였습니다.(중략) 당은 청년사업을 매우 중시하며 청년들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청년들이 강하면 우리 당과 인민군대가 강하고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청년들을 선군혁명의 척후대, 익측부대로 키우는 자양분은 우리 당의 혁명사상입니다. 나는 앞으로 청년미풍 선구자들을 배출하는 모범적인 단위들을 찾아가 훌륭한 청년들을 직접 만나보고 고무해 주려고 합니다.〉
한 탈북자는 “(청년일꾼 관련 노작 발간은)현영철 사형을 세대교체 일환으로 포장하기 위한 것”이라며 “죽은 현영철(66세 사망)은 젊은 편에 속하는데 이런 허술한 선전에 속는 주민이 얼마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지금부터 반당종파분자의 반당, 반혁행위를 폭로하고 즉결 처형을 진행하겠다. 끌고 오라.” 황병서의 명령에 국가안전보위부원 2명은 처형할 인물을 끌고 나왔다. 강당 안에 적잖은 긴장감이 나돌았다. 끌려 나온 인물이 현영철이었기 때문이다.
현영철이 누구인가. 2006년부터 백두산 서쪽 북·중 국경지대를 담당하는 8군단장으로 복무하다 김정은이 후계자로 공식 등장한 2010년 9월 노동당대표자회의에서 대장 칭호와 함께 당 중앙위원에 임명된 실세 중의 실세 아닌가. 현영철은 2013년 5월 전방 부대 병사 3명의 귀순 사건과 경험 부족을 이유로 전방 5군단장(상장 별 3개)으로 좌천됐지만 1년여 만인 2014년 6월 인민무력부장(대장 별 4개·우리의 국방부장관 격)으로 승진,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후 그는 김정은의 공개 활동 수행 14회로 전체 순위에서 4위를 차지(2015년 조사)하는 등 김정은의 최측근으로 활동했다.
아무리 ‘장성택 학습효과(김일성 사위이자 김정은의 고모부로 북한의 이인자였지만 2013년 12월 12일 사형)’가 있다고 하더라도 현영철 같은 거물의 즉결 처형은 놀라운 일이었다.
황병서는 현영철을 즉결 처형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야기는 길었지만, 결론은 “최고 존엄 모독 및 훼손”이었다. 고위 탈북자의 이야기다.
“북한에서는 죄명이 최고 존엄 모독 및 훼손이면 즉결 처형합니다. 최고 존엄 모독 및 훼손죄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입니다. 즉결 처단할 인물에게 대부분 이런 죄를 뒤집어씌우지요. 장성택도 그렇지 않았습니까.”
처형 이유를 설명한 황병서는 회의 참석자들을 사격장으로 모이라고 했다. 그리고 곧바로 현영철의 사형을 집행했다.
“현영철 처형 직접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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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이 2013년 3월 11일 서해 월내도 방어대를 시찰한 뒤 목선을 타고 떠나는 모습. |
현영철 처형 이유를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북한의 당과 군을 잘 들여다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가 남(南)으로 넘어온 탈북자를 만났다. 그는 국정원이 ‘곧바로 알았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이른 시간에 ‘현영철 처형’ 첩보를 입수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국정원은 사람에게서 직접 수집한 정보인 휴민트(HUMINT·인적정보)와 통신감청 등을 통한 시긴트(SIGINT·통신정보), 인공위성 등 과학기술을 활용한 테킨트(TECHINT·기술정보) 등 다양한 경로를 활용하여 ‘현영철 처형’ 정보를 수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탈북자는 ‘처형 장면을 목격한 인사에게 들은 이야기’라며 현영철 처형 이유를 전했다.
그의 말이다.
“김정은이 목선(木船)을 타고 방어대를 시찰한 적이 있습니다. 현영철이 그 모습을 보고 ‘옛날 리조시대 왕들이 가마 타고 다니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 군인들이 물에 반쯤 잠길 때까지 목선을 미는 모습이 보기에 안 좋다. 어린 지도자는 왜 이런 것을 선전하느냐’고 비판했다고 합니다. 이 발언에 대한 보고를 받은 김정은은 예상대로 대로했죠. 현영철 숙청의 결정적 이유는 리조시대 발언 때문입니다.”
—김정은은 목선을 2012년, 2013년에 방어대를 시찰하는 데도 이용했습니다. 이 시기에 이조발언을 했다면 현영철은 어떻게 2014년 6월에 인민무력부장으로 승진한 것입니까.
“예전에 한 발언이 인민무력부장 승진 이후에 김정은 귀에 들어간 것이죠.”
그가 말을 이었다.
“참고로, 북한은 조선(북한에서는 리조로 명명)의 역사를 좋게 평가하지 않습니다. 북한 교과서를 보면 조선시대를 ‘리조 봉건국가’로 호칭하면서 성립과정을 다루지 않고 있지요. 김정은 입장에서는 자신을 그런 리조시대의 왕에 비유했으니 현영철에 대한 분노가 아주 컸을 것입니다.”
김정은은 2012년 8월 20일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 도발에 가담한 무도(茂島) 방어대를 목선을 타고 이동해 시찰했다. 7개월 뒤인 2013년 3월 12일 월내도(月乃島) 방어대를 시찰할 때도 바다에서 20명 정도가 탈 수 있는 목선을 이용했다.
당시 중앙통신, 조선중앙TV, 《로동신문》 등 북한 관용매체는 군인들이 김정은의 목선을 허리가 잠길 때까지 미는 영상과 사진을 각각 방영 게재하고 “그이께서 섬 방어대를 향하여 타고 가신 배가 27HP(마력-기자注)의 목선이라는 사실만 보아도 위대한 인간, 강철의 인간의 가슴속에 끓는 조국에 대한 사랑, 병사에 대한 사랑, 원수격멸의 용맹한 정신세계가 가슴을 쳐서 눈시울이 젖어 든다”며 이른바 김정은의 ‘목선 쇼’를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김정은이 목선을 이용해 무도, 월내도 방어대를 시찰한 것과 관련, 유성옥(55)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소장은 “그쪽 수심이 얕아 작은 배로만 접근할 수 있다. 하지만 화재에 취약해 소총 공격도 못 견뎌 낼 목선을 군용 선박으로 쓴다는 건 상식 밖이다. 아마도 (목선을 이용한 것은)김정은이 통 크고 대담한 지도자임을 부각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했다.
김광인 북한전략센터 소장도 “(김정은의) 담력을 과시하기 위한 계산된 연출”이라고 분석했다.
우리 육사에 해당하는 초급 보병지휘관 양성소. 6·25 전쟁 때 지뢰를 밟아 전사한 총참모장 강건(姜建·본명 강신태)의 이름을 땄다. 북한은 엘리트 청년장교를 키워 내는 이곳을 처형장으로 이용한다. |
“어린 지도자 모시기가 힘들구나”
리조발언 이후 현영철 숙청을 벼르고 있던 김정은에게 또 다른 보고가 들어간다. 현영철이 다시 ‘최고 존엄’을 비판했다는 것이었다. 또다시 고위 탈북자의 설명이다.
“현영철은 처형 직전인 2015년 4월 13~20일 러시아를 방문했습니다. 러시아 무기 배치를 추진하기 위해서였지요.(홍콩 봉황위성 TV에 따르면 북한은 러시아 측에 지대공 미사일 시스템인 S-300을 물물교환 방식으로 구매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미 문건상으로는 합의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러시아 쪽에서 합의를 백지화했습니다. ‘김정은이 북한은 이미 첨단 무기를 다수 갖고 있어 미국도 제압할 수 있다고 과시하는데 굳이 우리가 지원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이후 현영철은 사석에서 실망감을 표시하며 김정은에 대해 ‘(김정은 때문에)다 끓여 놓은 죽도 못 먹었다. 어린 지도자를 모시기가 너무 힘들다’라고 투덜댔다고 합니다. 이 발언 역시 김정은에게 직보됐다더군요.”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현영철이 김정은을 어린 사람으로 자주 표현했다고 한다”며 “북한 사정에 정통한 탈북자들은 현영철이 (러시아 무기 배치 추진 실패 이후)‘어린 사람을 지도자로 모시고 일하려니 힘들다’는 취지의 말 등을 했으며 이와 같은 발언이 김정은에게 직보됐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국인 러시아 입장에선 북한과 핵 관련 이견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김정은은 현영철에게 러시아에 핵 관련 지지를 요구하는 동시에 무기 배치도 추진하라고 명령한 것 같다”며 “현영철이 이런 점을 답답해하며 김정은을 비판한 것이 보고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러시아 측의 주장대로 실제 김정은은 무기 자랑에 열을 올려 왔다. 지난 2012년 4월 KN-08 대륙간탄도미사일(사거리가 1만km 이상)을 처음 공개했고, 이후 핵무기를 이 미사일의 탄두에 장착할 정도로 소형화했다고 자랑해 왔다. “한미연합방위체계가 완전한 무용지물의 골동품이 됐다(《로동신문》)”고까지 했다.
러시아 관련 업무에 깊게 관여한 현영철의 숙청은 북·러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이다.
미 하원 외교위원회 전문위원을 지낸 데니스 P 핼핀(Dennis P. Halpin)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 연구원은 지난 5월 14일(현지시각)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은은 러시아 전승절을 맞아 모스크바 방문을 약속했지만 어겼고, 러시아를 방문하고 돌아온 군부 실력자를 곧바로 총살했다”며 “러시아의 눈에 김정은은 이상한 사람으로 비칠 것”이라고 했다. 이어 “김정은이 장성택을 처형하고 북·중 관계가 소원해진 것처럼 현영철을 숙청함에 따라 북·러 관계가 틀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청한 대북 전문가도 “현영철은 푸틴 대통령을 면담했던 인물인 만큼 러시아 입장에선 처형을 지시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괘씸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현영철은 지난해(2014년) 11월 러시아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만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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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6일자 《로동신문》에 보도된 조선인민군 제5차 훈련일꾼대회에 참석한 현영철 모습. 김정은이 발언하는데 현영철은 눈을 감고 졸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
《로동신문》은 4월 26일 1면으로 훈련일꾼대회를 보도하면서 현 부장이 눈을 내리깐 모습이 담긴 사진을 내보냈다. 조는 것처럼 오해받을 수 있는 사진이었다.
국정원 관계자는 “김정은은 회의석상에서 조는 것에 대해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처벌한다”고 했다.
실제 최경성 특수군단장(11군단장)과 김영철 정찰총국장은 김정은의 경고를 받고도 졸았다는 이유로 각각 상장에서 소장으로, 대장에서 상장으로 강등됐다. 김정은의 이런 조치는 아무리 고위층이라 해도 최고 존엄인 자신의 권위를 무시하고 불손한 태도를 보이면 무자비하게 처형당할 수 있다는 공포심을 불어넣기 위한 의도로 볼 수 있다.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김정은이 왕자로 태어나 권력욕과 자존심이 누구보다 강하다”며 “누군가 이견을 제기하고 불량한 태도를 보이면 나이 어린 자신을 무시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숙청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영철의 경우 존 것보다는 김정은에 대한 비판 발언이 알려진 게 처형의 직접적인 이유라는 주장이 더욱 설득력 있다. 앞서 언급했지만 김정은은 이미 현영철의 리조발언을 보고받는 순간 그의 숙청을 마음먹었다. 남성욱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도 비슷한 분석을 내놨다.
“제가 추측할 때는 (현영철 숙청을 마음먹은 김정은이) 현영철이 모스크바로 떠난 시기(4월 13~20일)에 (숙청 밑작업이)이뤄졌다고 봅니다. 현영철이 모스크바로 떠나는 날 이미 그의 운명은 정해졌던 셈이죠.”
고위 탈북자는 “현영철이 졸았다는 사실이 보도되기 일주일 전인 4월 18일 김정은이 황병서 등 측근들과 함께 백두산에 올랐는데 그때 현영철 처리 문제를 논의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김정은은 2013년 말 장성택을 처형하기 보름 전인 2013년 11월 말 황병서·김원홍 등을 데리고 양강도 삼지연(三池淵)에서 대책회의를 가졌었다”고 했다.
“고사포 처형 아니다”
김정은 집권 이후 처형 방식은 날로 잔인하고 다양해지고 있다. 2012년 3월 북한 당국은 김정일 상중(喪中)에 술을 마신 김철 인민무력부 부부장을 박격포 사격으로 처형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소식통은 “‘반역자는 이 땅에 묻힐 곳이 없다. 머리카락 한 올까지 흔적을 없애라’는 김정은의 지침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2013년 말에는 장성택과 그의 핵심 측근 인사들이 고사포 등으로 처형된 뒤 화염방사기로 소각됐다는 관측이 나왔다.
정보 당국이 입수한 2014년 북한 내부 문건에도 ‘종파 놈들은 불줄기로 태우고 탱크로 짓뭉개 흔적을 없애 버리는 것이 군대와 인민의 외침’이라고 적혀 있다.
실제 북한인권위원회(HRNK)가 2014년 10월 공개한 북한 평양 인근의 강건종합군관학교에서 집행된 공개처형 장면을 살펴보면 종합군관학교의 넓은 공터의 한가운데 10여 개 타깃(target)이 일렬로 서 있고 반대편에는 ZPU-4 고사포 6대가 이를 향해 나란히 배열돼 있다.
미국 북한인권위원회(HRNK)의 그레그 스칼랴튜 사무총장은 “상업위성사진 분석업체인 ‘ASA(All Source Analysis)’의 조셉 버뮤데즈 박사가 분석한 결과 이는 고사포로 공개처형을 하는 장면”이라고 했다.
ZPU-4 고사포(대공기관포) 14.5mm는 중기관총 4정을 묶어 만든 것이다. 이 고사포는 수직으로 발사했을 때 1.4km 상공에 있는 목표물까지 맞힐 수 있고, 일반적인 대공사격을 할 때도 사정거리가 2km에 달한다.
이런 이유로 현영철도 고사포로 처형당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국정원도 국회 정보위원회에 “현영철은 수백 명의 군 간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양 순안구역에 있는 강건종합군관학교 사격장에서 고사포(대공기관포)로 총살됐다”고 보고했다. 인터넷에는 ‘현영철 처형장면’(나중에 밝혀진 바로, 이 영상의 주인공은 현영철이 아니고, 이슬람 무장세력 IS의 포로였다)이라며 어떤 인물이 고사포에 맞아 산산조각 나는 동영상도 돌았다. 현영철 고사포 처형은 기정사실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알려진 바와 달리 현영철은 고사포로 사형당하지 않았다. 고위 탈북자는 “사격장에서 처형을 목격한 관계자의 전언”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사격장에 현영철을 묶어 놓고 사형을 집행하는 인물이 ‘반당 반혁 분자 현영철을 향해 15발씩 정발 쏴!’라고 명령했고, 이후 6명의 군인이 한 명당 15발씩 90발을 현영철을 향해 쐈다고 합니다. 사격장에는 공포심을 자극하고,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중무장한 보위사령부 소속 군인들이 사방에 배치돼 있었고 운집한 장성들 사이사이에도 권총을 찬 보위부 지도원들이 깔렸었다고 들었습니다.
고사포로 처형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엉터리 이야기입니다. 90발을 맞았으니 걸레가 되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고사포로 죽였다는 얘기가 나온 것 같습니다.”
그가 말을 이었다.
“북한에서는 사형을 집행할 때 죄질에 따라 쏘는 총알 수가 다릅니다. 일반 공개처형은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3명의 군인이 각각 3발씩 총9발을 쏩니다. 공개처형이 아닌 경우에도 일반적으로 6명이 한 사람당 5발씩 총 30발 정도를 쏘는데 현영철과 같이 죄목이 무거우면 사수 한 명당 15발씩 90발을 쏩니다.”
김정은은 숙청한 현영철 후임에 박영식을 임명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7월 11일 평양에서 열린 북한 군사대표단과 라오스 고위 군사대표단의 회담 소식을 전하며 참가자 가운데 한 명인 박영식을 인민무력부장으로 소개했다. 북한 매체가 박영식의 인민무력부장 임명을 공식 확인한 것은 처음이다.
박영식은 2009년 4월 15일 김일성 생일을 맞으며 중장으로 승진했고, 지난해(2014년) 4월 군 총정치국 조직부국장에 오르며 상장으로 진급한 데 이어 현영철 숙청 이후인 지난달 6월 29일에는 대장으로 초고속 승진을 했다.
국정원에 따르면 김정은은 집권 이후 군 간부 40%를 교체했다. 주한미군사령부와 한미연합사령부, 유엔사가 지난 6월 2일 공동으로 발간한 《전략 다이제스트(Strategic Digest)》라는 책자를 보면 김정은이 자신의 나이와 비슷한 인물로 군 지도부 세대교체를 하고 있다고 나와 있다.
중국 단둥에서 탈북자단체인 NK지식인연대 관계자와 만난 평양의 한 간부는 “사실 김정은은 김정일 3년 탈상이 끝나고 나서는 바로 당과 군의 많은 고위직을 교체하고 재배치하기 시작했는데 대부분의 핵심 요직에 자신과 긴밀한 관계가 있는 젊은 인사들을 배치했다”고 김정은의 세대교체 움직임을 기정사실화했다.
이 간부는 “김일성고급당학교는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김정은 서기실에 직접 학습실을 꾸리고, 새로 발탁한 젊은 간부들에게 당 조직 건설과 경제 지휘, 군중 동원 등의 내용을 집중적으로 교육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뿐만 아니라 내각의 경제관리 요직에도 젊은 사람들을 배치하고 있다”며 “지난해 부총리로 임명된 임철웅(53)이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전임 부총리 강능수(85), 강석주(76), 조병주(73), 김인식(67), 전승훈(64) 등에 비하면 파격적 임용이다.
현영철 숙청을 세대교체 일환으로 포장?
NK지식인연대는 “김정은이 김정일 사망 후 ‘할배들’에게 둘러싸여 노이로제에 걸려 있다는 소문도 떠돌고 있다”면서 “김정은이 최근 노동당 간부들에게 하달한 친필 지시를 살펴보면 ‘나이 많은 간부들이 김정은의 부름을 받거나 김정은을 영접하게 되면 묻는 말에 짧고 명확하게 답변하며, 제 자랑을 늘어놓는 무모한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지시문에는 나이 많은 간부들의 입 냄새가 김정은의 건강과 기분에 나쁜 영향을 주기 때문에 만나기 전 반드시 양치를 해야 하며 직접 말씀을 드릴 때에는 손으로 입을 가리라는 등의 요구사항도 들어 있다.
공교롭게도 김정은은 현영철 숙청 직후 〈청년들을 고상한 정신과 미풍을 지닌 시대의 선구자들로 키워 낸 당조직들과 청년동맹조직들에게〉라는 제목의 노작(勞作)을 북한군과 주민들에게 배포했다. 《월간조선》이 단독 입수한 노작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청년들이 들끓어야 온 나라가 들끓고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혁명적 앙양이 일어난다는 당의 뜻을 받들고 중앙과 지방의 각급 당조직들과 청년동맹조직들에서는 위대한 수령님들의 귀중한 유산인 청년동맹을 강화하고 청년들이 아버지, 어머니 세대들처럼 청춘을 빛나게 살도록 하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하였습니다.(중략) 당은 청년사업을 매우 중시하며 청년들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청년들이 강하면 우리 당과 인민군대가 강하고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청년들을 선군혁명의 척후대, 익측부대로 키우는 자양분은 우리 당의 혁명사상입니다. 나는 앞으로 청년미풍 선구자들을 배출하는 모범적인 단위들을 찾아가 훌륭한 청년들을 직접 만나보고 고무해 주려고 합니다.〉
한 탈북자는 “(청년일꾼 관련 노작 발간은)현영철 사형을 세대교체 일환으로 포장하기 위한 것”이라며 “죽은 현영철(66세 사망)은 젊은 편에 속하는데 이런 허술한 선전에 속는 주민이 얼마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